홈지기가 얼마 전에 모처에 내보낼 원고로 작성했다가 과감하게 잘린(편집된……) 부분을 하나 소개해보자:
복잡한 세상의 파괴적 현상,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작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도대체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 인류에게는 끔찍한 천재지변을 당한 뒤에 무심한 하늘만을 원망하던 시대가 있었다. 역사 속에서 가뭄, 홍수, 지진, 병충해 등이 연발하여 흉작으로 점철된 시기는 결코 드물지 않았다. 일반적인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 통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 또는 '신의 섭리'라는 귀결이 최선의 답이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는 최소한 그런 절대적 영역에 귀착시킬 필요는 없다. 인간이 운영하고 있는 경제사회 시스템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책임 소재는 모호하다. 혹자는 월 스트리트의 퀀트(quant)들을 원망한다. 현란한 수학, 물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파생상품들을 쏟아내어 리스크를 확대시켰다는 이유에서이다. 또 다른 이들은 돈벌이에 눈이 먼 금융기관 경영자들과 펀드 운용자들을 원망한다. 회사는 문을 닫는 마당에도 황금 낙하산(golden parachute) 제도를 이용해 천문학적인 퇴직금을 챙겨간 CEO들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의 돈을 끌어들여 초대형 폰지 사기(Ponzi scheme) 사건을 일으킨 버나드 메이도프(Bernard Madoff)는 이런 세태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누군가는 닷컴버블 이후 저금리정책을 고수했던 전 FRB 의장 그린스펀(Alan Greenspan)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사태를 안이하게 바라봤다는 현 FRB 의장 벤 버냉키(Ben Bernanke), 네오콘의 패권주의에 휘둘려 미국 경제가 파탄 나도록 무심했다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빠질 수 없다. 더 나아가 보다 심연을 짚는다는 이들은 궁극적으로 월 스트리트, 아니 우리 모두의 탐욕(greed)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라고 읊조린다. 그러나 이 많은 의견들도 결국 어떤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어떨까, 십여 년 전의 아시아 외환위기와 이어진 IMF 관리체제에서 한국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경제개혁의 모범생으로 불리며 위기를 탈출했다. 국민의 정부 시기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소비 버블, 참여정부 초기 부동산가격 폭등이 있었으나 이후 연이은 규제로 위기의 확산 억제에는 성공해왔다. 이번 위기만큼은 미국과 구미 각국의 책임임을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애꿎은 저들의 탐욕에 우리가 파편을 맞고 있다는 인식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는 최근 이와는 다른 관점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 3월 2일자 뉴욕타임즈 칼럼 "Revenge of the Glut"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오히려 지엽적인 것이며, 세계적인 저축 과잉이 보다 거시적인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2005년 이후 버냉키 FRB 의장이 피력한 이른바 글로벌 '저축 과잉(saving glut)' 귀책론과 궤를 같이 한다.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의 위기는 아시아 신흥국들의 방어적 행동으로 초래된 불균형이 주요한 원인이다 — 지난 19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신흥국들은 자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급격히 전환했다. 즉 이전까지는 경제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했으나, 이후에는 외환시장 방어를 위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고스란히 쌓아뒀다. 이들 달러 대부분은 수익성은 낮지만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미국 국채로 다시 투자되었다. 이러한 미국으로의 저금리 자본유입은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내고서도 건재할 수 있도록 떠받쳐줬다. 동시에 미국 금융시장에 넘쳐나는 자금은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 모두에서 가격상승이 견인했고, 도처에 자산버블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글로벌 유동성 과잉은 미국뿐 아니라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동유럽 각국 등에도 자산버블의 허깨비를 만들었으며, 이제 그 버블의 도미노 붕괴가 세계경제를 신음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와 버냉키 의장의 이런 주장은 현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이 아시아 신흥국들에게 있다는 투로 들린다. 물론 이들의 발언이 사태의 책임을 온전히 아시아 신흥국으로 떠넘기는 것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버냉키도 실은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런 문제의 연쇄반응을 끊기 위해 미국 국민들이 저축이 늘려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을 여러 번 역설했다. 탐욕의 추구와 버블의 팽창은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났지만, 이것이 브레이크 없는 팽창으로 이어지는데는 아시아 신흥국들의 저축 과잉도 중요한 상승동력을 제공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를 인정한다면 경제위기의 책임은 더욱 가지를 뻗어 나간다. 아시아 신흥국들이 저런 방어적 태도에 나서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경제주권을 사실상 빼앗기다시피 하고 관리체제에 놓였을 때의 쓴 맛을 보게 만든 IMF와 주류 경제학자들의 책임인가?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대화한 글로벌 환투기 세력들의 책임인가? 허술한 금융관리 시스템을 방조한 각국 관료들의 책임인가? 아니면 동아시아 개발 독재자들……? 뒤엉킨 인과관계의 매듭을 따라가다보면 끝이 없다.
결국 이러한 견해는 우리의 경제사회 시스템이 당면하고 있는 복잡한 현실을 극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하나하나의 국가, 하나하나의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 미덕으로 여겨지는 행태도 시스템 전체적인 시각에서 종합하여 보면 전혀 예상치 않은 결과에 기여하게 된다. 아시아 신흥국들이 높은 저축과 수출주도형 경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동시에 미국 같은 선진국들이 무역적자를 감수한 대량 소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부터도 개인 차원에서야 불황일수록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아끼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이지만, 모두가 이런 행동에 나서면 정작 국가경제, 세계경제 자체는 더더욱 심한 불황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역설적으로 누군가 사치의 악덕(?)을 부리지 않으면 근검의 미덕도 그 효과가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다……
편집된 이유를 자세히 밝히긴 그렇지만, 간략히 이야기하면 홈지기가 속한 조직 내부에서도 아시아 신흥국들의 'saving glut'의 역할을 둘러싼 이견이 있기 때문이라고만 해두자. 어쨌건 이러한 'saving glut'에 대한 이야기는 그 경중의 논란은 있어도 이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말이 되었다. 지난 수 년간 여러 경제학자들의 논변을 추적하다보면 이미 여러 번 화제거리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깝게는 국내 블로그 이웃분들께서 적절하게 짚고 넘어간 경우도 있고 말이다:
- 골디락스의 환상과 그 결과 [foog.com, 2008-10-19]
- 글로벌 불균형(Barry Eichengreen) [a quarantine station, 2009-01-05]
- 글로벌 불균형과 現 경제위기의 연결 고리(?) [Orca의 雜想 note, 2009-01-06]
- 주택거품 붕괴는 동아시아의 복수 [Dean Baker, 한겨레신문, 2009-03-13]
물론 이러한 설명들에 힘입어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자신이 이런 구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 내(FRB) 책임은 아니다 — 라고 항변하여 최근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었다:
- The Fed Didn't Cause the Housing Bubble [Alan Greenspan, WSJ, 2009-03-11]
- 그린스펀 "저금리, 주택거품 주범아냐" [연합뉴스, 2009-03-12]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과거 그린스펀과 FRB의 안이함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애꿎은 송장을 매질하듯 이제와 낯을 싹 바꾸고 비난을 퍼부어대는 일각의 태도를 보면 그린스펀도 참 억울한 기분이 들만도 하겠다는 동정도 간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언급해보기로 하자.
어쨌건 홈지기가 사실 저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바는, 세상은 복잡하며 그만큼 책임의 소재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속성상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함에 직면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세상만사 피곤한 문제를 일정한 틀 안에 우겨넣고 획일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맘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빨갱이들의 책동이라고, 혹은 신자유주의 암흑세력들의 음모라고 비난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신의 뜻이라고 체념하기 일쑤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러한 획일화된 귀책 성향은 놀라운 집단 분노나 그럴 듯한 설명을 제공해주는 선지자에 대한 종교적 열정으로 번지다가 애매하게 변질되고는 한다. 물론 그렇게라도 이 세상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또한 나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그것이 문제의 본질, 복잡한 시스템의 작동원리에는 근본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사그러지는게 현실이다.
누구에게든 우선 책임부터 물어야겠다는 조급함을 잠시 미뤄둘 수는 없을까? 감정의 과잉을 누그러뜨리고 퍼즐 맞추듯이 저러한 복잡성을 이해하는 과정을 즐기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함께 나아가는 길은 없을까? 손쉬운 설명을 포기하면 머리도 살짝 과열되고 몸도 마음도 조금 피곤하다. 그래도 세상이 저렇게 복잡하기에 가끔은 우리가 살아가고 생각하는 보람이 있는 것은 아닐런지.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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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일본 경제회복에 큰 도움이 됬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생각나네요..
사회현상은 정말 복잡하죠.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 또는 dominant factors를 찾아내는 것이 지식인들이 할 일이지요. 채박사님의 견해에 수긍이 갑니다. 좋은 글이었습니다.
일단 위기가 닥치면 만만한 희생양을 골라서 분노를 발산하는 것이 유인원때부터 인간의 본성인 듯 하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죠. 물론 일부는 그런 와중에도 이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곳간에 곡식을 쌓아놓기만 하고 묵지를 않으면 결국 썩어나가는게 생기는 법인게여"하셨던 어떤 할배의 말씀이 기억나는군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제 졸필 포스팅에 트랙백 까지 걸어주시고 감사합니다...ㅎㅎㅎ
제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소련의 전차 개발사 + 종심작전' 관련 내용도 좀 코멘트 해주셔서 첨삭지도 해주시면 (빨간펜?) 그저 굽신굽신 입니다...ㄳ
에니웨이 요즘은 좀 바빠서 포스팅을 못하고 있네요...
써주신 글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관심있는 블로거들끼리 이렇게 한 주제를 가지고, 트랙백도 하면서 중지를 모아보면 나름 재미있을 것도 같습니다...^^
1920년대의 경제대공황은 누구의 탓이었을까요? 사실 그 때의 사람들도 자신들이 가장 옳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그냥 평범하게 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결과가 왔죠.
문득 예전 모 항공기사고 다큐멘터리가 생각납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고공에서 여객기 조종석의 전방유리창이 갑자기 떨어져나가 기장이 튕겨나가고 죽을뻔했던 사고였죠.
사고조사결과 전방유리창의 나사가 작은것이 들어가 틈이 벌어져 단단히 조여지지 않았다는것이 밝혀졌고 마지막으로 그 작업을 했던 정비사가 소환되어졌죠.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정비사는 죄가 없었던것이죠.
마지막 정비때 그 정비사는 자신이 담당한 조종석 전방유리창을 조이고 있던 나사가 매뉴얼 규격보다 미세하게 큰 비규격품이 박혀있었다는 사실을 발견. 굳이 모든 부분들을 교체해야될 필요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규격나사를 전부 빼낸뒤 정식 표준나사로 전부 교체했었던 겁니다. 그것도 가까운 창고에서 그 규격나사를 찾을 수 없자 한참 멀리있는 다른 부품창고까지 뒤져가면서 말이죠..
결국 비규격나사로 인해 크게 벌어져있는 나사구멍에 좀더 작은 크기의 표준나사가 들어가자 틈이 벌어진것이고 비행기가 고공에 올라가 압력이 높아지자 압력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여객기 전방유리창이 펑~! 하며 튕겨나가고.... 하마터면 추락할 뻔 했던 큰 사고가 발생된겁니다.
그 이전에 그 비규격나사를 거기에 박아넣은것이 누구인지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알 수 없었죠.
물론 그가 좀더 생각이 있었다면 차라리 비규격나사를 그냥 방치하는것이 좀더 현명한것이라는걸 알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는 좀더 자신의 책무에 충실하겠다는 생각으로 굳이 퇴근시간까지 늦춰가며 그 일을 수행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뉴얼에 '비규격나사가 박혀있더라도 그게 더 큰거라면 그냥 놔두세요.' 라는 문구를 안써넣은 매뉴얼 작성담당자의 잘못이었을까요?
문명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그런 다양한 변수의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사실 전 이번 경제사태가 '핵무기 오발사로 인한 핵전쟁' 만큼 심각한 사태는 아니라는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질 뿐이죠. ;)
saving glut에 대한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만큼 지구상 어느 누구도 경제의 글로벌화와 금융의 과잉팽창을 피해갈 수 없다는 얘기겠지요. 정치적 입장을 떠나, periskop 님과 sonnet 님 등 공력 있는 분들께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정의 과잉을 누그러뜨리고 퍼즐 맞추듯이 저러한 복잡성을 이해하는 과정을 즐기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함께 나아가는 길은 없을까?"
periskop 님 글을 읽으면서 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이런 자세에 따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씩 퍼즐을 함께 맞추는 과정을 서투르게라도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카오스의 이론처럼 작은 사소한 원인이 커다란 결과를 내재되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책임론을 통해 희생양을 찾는 행동은 바람직 하지 않다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일을 할수록 단순하게 해결하는게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라고 곰곰히 생각을 해볼수도 있더군요
예를 들어서 알렉산더 대왕이 신전에서 고래디아스 매듭을 풀때 방식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복잡한것 보다 간단하고 심플한것 그리고 증오의 대상이 있으면 모든 일에 만사가 다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조금 자괴감을 받을떄가 종종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최대한 될수 있는대로 분석하고 내 나름대로의 글을 쓰고 싶다는것은 욕심일지 모르겠군요
저로서는 저런 설명들도 변죽만 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토플러의 'Eco-spasm' 개념을 접했기에 그렇습니다.
안녕하세요. 글을 항상 잘 보고 있는 유저고 잇빨중사라고 합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한 질문글에 '82공수사단이 노르망디에서 해안상륙작전에 참가했나?'하는 질문이 있어 몇자 남깁니다.
정답은 '맞다'입니다. 101과 82는 노르망디 당시 2개 낙하산연대와 1개 글라이더연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글라이더는 1개 분대 밖에 태울수 없었고, 보급품 지원에도 큰 몫을 하였기에, 82공수사단의 325글라이더연대 총인원을 태울 글라이더는 숫자가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에 325글라이더연대의 1/3 많으면 반 정도가 해안상륙군과 함께 유타비치에 상륙했습니다.
처음은 아니고, 시실리 침공에서도 (미군은 글라이더를 사용 안했고, 영국은 사용했음) 글라이더연대는 해안으로 상륙했습니다.
좋은 글 잘보고 있습니다.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