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꼭 존경할만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그가 소유한 자질을 간절히 배우고 싶어할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 그런 대상이 매우 많이 있겠지만, 홈지기에겐 그 중의 한 명이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다 — 설마 글래드웰이 어느 듣보잡이냐라고 하실 분들은 (별로) 없으리라 믿는다. 그의 두 저작 『The Tipping Point (티핑 포인트)』와 『Blink (블링크)』는 당당히 말 그대로의 밀리언 셀러로 성공을 거뒀다. 이 때문에 타임 지에서는 2005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한 명으로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그의 저작들은 이에 못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고, 때로는 스타벅스에서 무료열람 서적으로도 맞닥뜨릴 정도였다. 이들 책 이외에 『The New Yorker』 지의 상임작가로 활동하면서 쏟아낸 기사들이나 여러 강연들도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다. 그야말로 미국의 손꼽히는 학구적 저널리스트이자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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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드웰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홈지기에게 많은 자극을 준다. 우선 평이하면서도 다양한 예문으로 본질에 술술 접근하게 만드는 그의 글솜씨를 꼽을 수 있다. 뉴요커 지의 애독자(?)인 홈지기는 글래드웰(과 그 밖의 필진들)의 유려한 글 구성에 종종 탄복하고는 한다. 어떻게든 좀 뭔가 배워 써먹어볼 수 없을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드는 글들이다. 가장 최근에 이곳 Periskop 블로그의 방문객 수 상승에 기여한 「제럴드 포드의 전철을 밟는 MB, 그 예고되는 파탄」 또한 사실은 글래드웰의 기사 「In the Air: Who says big ideas are rare?」를 보고 영감을 얻어 구성해본 것이다.1
그리고 또 다른 자극원은 문제에 접근해가는 그의 질긴 자료수집 자세이다. 그는 '저널리스트'를 표방하지만 전문 학자 못지 않게 학술 저널의 논문들과 각종 에세이, 방대한 전문가 인터뷰에 파묻혀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논문을 쓰려는 것은 아니고 그 내용들 가운데 에센스를 뽑아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재료로 쓰기 위해서 말이다.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워싱턴 포스트에서 10년 동안 경제과학부 기자를 해온 경력을 감안하더라도 범상치 않은 태도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사학과 졸업, 경제과학부 기자 10년, 전문 주간지 기자 10여 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분들은 적지 않겠지만, 이만큼 글재주를 지니고 논문까지 뒤져가며 공부에도 열심인 분들은 얼마나 계신지?
이런 글래드웰이 『Blink』의 후속작을 2009년 출간 목표로 준비한다는 사실은 이미 작년부터 솔솔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러 인터뷰 기사에서도 신작 내용의 힌트가 공개되었고 말이다. 홈지기가 작년까지 추적했던 그의 관심은 각 분야에서 놀랄만한 두각을 나타내는 뛰어난 인재들이 만들어지는 조건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한 가지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은 그가 그 원인의 하나로 동아시아(한·중·일)를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에서 자라서, 현재는 뉴욕에 뿌리 내리고 있는 반 영국계(부계)-반 자마이카계(모계) 혼혈인이다. 그런만큼 서구 문화에 강한 배경을 가진 그가, 동아시아의 차별적 특성에도 깊이 관심을 갖고 있음을 고백한 바 있다.
난 세계 다른 곳을 무시하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자 노력해왔고, 내 새로운 작업에도 아시아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어요. 나는 의식적으로 내 지평을 넓히며 동아시아에 대해 쓰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나는 특히 동아시아적 관점이 서구적 관점에 비해 대단히 가치있고 우수한 많은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인보다 동아시아인들이 훨씬 성공적으로 해온, 맥락적 사고(contextual thinking)와 교육에 대한 생각에 정말로 흥미를 갖고 있죠. 동아시아인들은 가족과 문화를 훨씬 더 심각하게 고려합니다, 성공을 설명할 때도 말입니다. 그건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사람들은 누군가가 성공한 이유를 생각할 때, 그 사람의 개인적 특성에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이 일원으로 속한 더 큰 공동체에도 원인이 있을 거라는 데에는 그다지 빨리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2
이런 내용들을 보면 그가 개개인의 뛰어난 자질은 물론, 협업의 태도와 관계적 사고를 중요한 성공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서구 심리학계나 교육학계에서 최근 동아시아 및 서구의 문화적 차이와 그에 따른 학습 및 두뇌 정보처리 프로세스의 차이, 각각의 장단점이 핫 이슈인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홈지기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꽤나 흥미가 있었지만 단편적인 지식 뿐이어서 제대로 정리해 소화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런 조류를 글래드웰이 어떻게 소화해서 맛깔스럽게 펼쳐놓을지 몹시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신간은 2009년에 나온다는 맥빠지는 이야기에 생각들을 망각의 터널 속에 잠시 쳐박아 두고 말았다.
그러다가 이것을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은 뉴요커 지의 연례 컨퍼런스 동영상을 보고 나서의 일이다. 뉴요커 지는 최근 해마다 5월 경에 특정 주제를 가지고 자사 필진을 주축으로 컨퍼런스를 여는데, 올해의 토픽은 "Stories from the Near Future"였다. (2007년에는 아예 5년 뒤인 2012년을 타겟으로 근미래 예측 컨퍼런스를 연 바 있다.) 아직 말단 연구원인 홈지기 수준에 아직 뉴욕까지 가서 볼 형편은 못 되니 공개된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는 수밖에. 그나마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피일차일 미루던 차에 이번 연휴에 볼 기회를 만들었다. 이번 컨퍼런스도 오프닝 세션은 글래드웰이 장식했다 — Reinventing Invention이란 제목으로.
▶ 참고 ⇒ "Reinventing Invention" by Malcolm Gladwell (The New Yorker Conference 2008)
이 동영상에서 글래드웰은 자신의 새로운 책 선전도 제법 하고, 여기에 나올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좀 더 많이 던져줬다. 특히 우리의 현재 교육과 평가 시스템이 미래상에 걸맞는 인재들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른바 업무 현장에서의 "mismatch problem"을 역설했다. 일례로 각종 프로 스포츠(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들도 정작 신인 선발 및 테스트 현장에서 받은 점수는 형편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육 현장의 질을 높인다고 교사들의 학위 취득을 독려하고 연수도 많이 시켰지만 그들이 특별히 학생을 더 잘 가르치지는 못했다. 자격고시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변호사들이 꼭 유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류의 사례를 통해 오늘날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상은 이미 과거에 고안된 단순한 지표로 측정하기는 어렵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한참 문제제기를 한 뒤에 그에 대한 해답은 연말에 나올 신간에서 밝힐 것처럼 살짝만 내비쳤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강연 요건에는 이렇게 밑밥을 뿌려놓는 센스가 필요하다.)

저는 좀 비싼 사람이지요 (글래드웰의 초청 강연료는 4~5만 달러를 호가함)
언제 그의 책 이야기가 이렇게 진전이 되었을까? 이 강연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바짝 들어 다시 신간 소식을 뒤져보니, 올해 11월 출간을 예고로 제목까지 확정되어 발표된 것이 아닌가. 그의 이번 신간은 『Outliers: Why Some People Succeed and Some Don't (이상자들3 : 왜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가)』이다. 위에서 열거한 힌트들과 출판사에서 내놓은 예고 안내를 함께 보면 책에서 의도하는 메시지에 대한 대략적인 감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Outliers is a book about success. It starts with a very simple question: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those who do something special with their lives and everyone else? In Outliers, we’re going to visit a genius who lives on a horse farm in Northern Missouri. We’re going to examine the bizarre histories of professional hockey and soccer players, and look into the peculiar childhood of Bill Gates, and spend time in a Chinese rice paddy, and investigate the world’s greatest law firm, and wonder about what distinguishes pilots who crash planes from those who don’t. And in examining the lives of the remarkable among us — the brilliant, the exceptional and the unusual — I want to convince you that the way we think about success is all wrong.
『Outliers』는 성공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매우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삶에서 특출난 무언가를 해내는 이들과, 다른 평범한 이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Outliers』에서 우리는 미주리 주 북부의 말 농장에서 삶을 보낸 한 천재를 만날 것이다. 또한 프로 하키나 미식축구 선수들의 기괴한 이력을 검사하고, 빌 게이츠의 특이한 유년시절을 들여다볼 것이고, 중국의 논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며, 또한 세계 최고의 법률사무소를 조사하여, 비행기를 추락시킨 조종사들이 그렇지 않은 조종사들과는 어떤 점이 구분되었는지 의문을 품어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뛰어난 이들 — 똑똑하고, 예외적이며, 비범한 — 의 삶을 검사해봄으로써, 저자는 우리가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모두 틀렸음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고자 한다.
컨텐츠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갖고서도 그의 호언 — 성공에 대한 통념을 뒤집어주겠다는 — 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는 몹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 출판시장까지 잔잔히 밀려온 사회과학 분야 교양서 유행의 한 축을 선도해온 글래드웰의 이름값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도 지적 흥미를 자극시킬 거리는 꾸준히 쏟아지고 있는게 다행이다, 주머니가 가벼워져서 문제이지만. 아마도 올 연말 쌀쌀한 방 안을 후끈 달구며 즐겁게 긴 밤을 보낼 거리를 하나 기대해보도록 하자. 그나저나 사소한 트집거리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지적 유행을 이끌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을 보노라면, 글래드웰이 바로 '지두형 다능인(versatilist)'4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 링크한 글래드웰의 기사도 그의 끊임없는 고민거리인 혁신에 통찰을 주는 재미있는 글이니 일독해보시면 좋을 것이다.
- Bennett, J. (2007, September 23). Malcolm in the Middle East. Arabian Business.
- outlier는 보통 통계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인데, 다른 데이터 값들과 영 동떨어진 값(異常値)을 의미한다. 통계적으로 이런 값들의 존재는, 단순한 측정 오차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심각한 돌발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보통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사람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예외적인 사람일 수도 있지만, 놀라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사람일 수도 있다.
- 홈지기의 직전 글인 「페르미 추정법과 일본의 "지두력" 유행」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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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살아가면서 늘 발상의전환을 잘하는 사람들 처럼 머리가 빨리빨리 휙휙 잘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못한 아픔 ㅎㅎ
좋은 소개글 잘읽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발상의 전환이란게 톡톡 튀는 스마트함도 있지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버릇으로도 어느 정도 훈련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글래드웰도 이번 책에서 성공의 요인으로 '천재성' 이외의 것들에 초점을 맞출 겁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종의 압력이 느껴집니다……^^)
블링크를 읽을까 말까 계속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럴 이유가 없었군요... 신작은 더더욱 관심가는 주제이니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블링크는 이미 곳곳에 공짜로 읽을 건수가 있으니 굳이 사 보지 않더라도 편하게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1월에 나온다는 Outliers는 내용에 대한 힌트가 더 나오는 대로 틈틈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처음에 글 안 보고 사진만 보자마자 뭔 아후로머리 듣보잡이냐고 해버렸습니다. 역시 저는 교양이 부족하군요. orz
헉, 무슨 그런 말씀을…… 저만 이상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을 확대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a
홈지기님의 포스트를 읽을때마다 문득 다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생긴답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
아주 반가운 소리입니다. 저도 여기저기 글을 쓰지만 생소한 분야에 대한 지적 욕구가 생기게 한다는 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