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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7 쿠르스크 전투에서 남부집단군 초기 공격의 분석과 비판 Pt. 3 (3)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제2 SS 기갑군단이 거둔 좀 더 고무적인 성과의 원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제2 SS 기갑군단도 그리 만족스러운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48 기갑군단보다는 주도면밀한 작전 계획에 의해 제한적이나마 소련군 전방위 방어선 돌파의 실마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제2 SS 기갑군단의 공격 작전 계획

1943년 7월 5일에 제48 기갑군단이 거둔 평범한 성과와 제2 SS 기갑군단이 거둔 상대적인 성공을 비교하는데 있어, 우선 성채 작전에서 무장친위대 사단들에 대한 몇 가지 심각한 허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로빈 크로스(Robin Cross)와 같은 많은 저자들은 무장친위대 부대들의 수와 광신성에 대해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제2 SS 기갑군단을 "42대의 티거를 포함한 400대 이상의 전차, 1개 네벨베르퍼 여단을 갖추고 타격 자세를 잡은, 나치즘의 이념적 충각(衝角)"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실은 제48 기갑군단이 대부분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두드러지게 강력했으며, 이는 다음 도표에도 잘 나와있다:

1943년 7월 5일자 제48 기갑군단 및 제2 SS 기갑군단 전력 비교
  제48 기갑군단 제2 SS 기갑군단
총 병력(사단 예하) 86,381 74,863
전투병력 30,233 26,202
전차 및 돌격포(작전 가능) 533 451
포병대대(배속) 21 ¼ 18

티거의 수(제2 SS 기갑군단이 35대, 제48 기갑군단이 14대)와 7월 5일 아침 제8 항공군단의 공중지원 거의 대부분이 배정되었다는 점에서만 하우저의 사단들은 폰 크노벨스도르프의 부대들이 결여한 이점을 갖고 있었다.

3개 무장친위대 기갑척탄병사단 각각도 내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LSSAH 사단은 제프 디트리히를 막 떠나 보낸 상태였으며, 이는 설령 "Obersepp"(부대원들이 제프 디트리히를 부르던 애칭)가 기술적으로 유능한 사단장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기에 큰 타격을 줬다. 디트리히는 2번째의 SS 기갑군단 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전출되었으며, 그와 함께 신편 히틀러유겐트 사단 기간전력으로 35명의 핵심 장교들과, 수색대대 중 1개 중대, 1개 전차대대, 1개 포병대대가 차출되었다. 사단은 새로운 사단장과, 기갑연대, 포병연대, 양 기갑척탄병연대, 여타 4개 대대 전체에 걸친 많은 신병과 함께 성채 작전에 돌입했다. 무엇보다도 2-3월의 하리코프 일대의 격전에서 LSSAH 사단은 4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었다. 대거 전출과 전투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사단이 받은 부분적인 보충이라고는 공군에서 강제 전출된 2500명과 친위대 보충계통에서 충원한 수백 명의 징집병으로 메꿔졌다. DR 및 TK 사단도 이 보다는 덜 하지만 같은 문제를 겪었다.

또한 붉은 군대가 고의로 제2 SS 기갑군단 전면의 방어를 약화시킨 것도 아니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제4 기갑군의 돌파공격을 받아내야 했던 두 소련군 소총사단의 상대전력을 비교해보는 것이 유익하다. 제48 기갑사단 구역에서는 바크소프 소장의 제67 근위 소총사단이 독일군 공격 주력을 방어해야 했듯이, 제2 SS 기갑군단 공격의 주력은 네크라소프 대령의 제52 근위 소총사단이 막아내야 했다. 양 사단은 모두 14㎞의 전선을 담당했고, 공히 약 8000명의 병력, 36문의 야포, 167문의 박격포, 48문의 대전차포를 갖추고 있었다. 양 사단은 또 군단 직할부대나 야전군 직할부대로 증원된 상태였다. 네크라소프의 제52 근위 소총사단은 1개 대전차 소총대대(270정의 대전차소총 보유)와, 제538 및 1008 대전차 포병연대에서 대전차포 24문, 제230 전차연대의 전차 46대(반수가 T-34), 제142 포병연대의 야포 36문, 제5 근위 박격포연대(방사포 보유)에서 1개 방사포대대를 증원받았다. 야전군 사령부는 또한 유사시 72문의 대전차포를 보유한 제28 대전차여단을 증원하기로 약속했다. 따라서 네크라소프의 사단은 14㎞의 전선을 따라 대략 야포 72문, 박격포 250문, 대전차소총 270정, 대전차포 144문, 전차 46대를 배치했다. 바크소프의 제67 근위 소총사단은 제868 및 611 대전차연대, 제1440 자주포병연대, 제159 포병연대, 제5 근위 박격포연대의 2개 방사포 대대, 제245 전차연대를 증원받았다. 야전군 사령부는 또한 제27 대전차여단과 제496 대전차연대의 증원을 약속했다. 비록 정확한 비교는 곤란하지만, 제2 SS 기갑군단 전면의 제52 근위 소총사단은 대전차전력에 있어서는 약간 더 강력하고, 박격포와 경야포 부문에서는 약간 약한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전술적으로 중요하다기 보다는 단순한 통계상 차이일 뿐이다. 하우저나 폰 크노벨스도르프나 결코 만만한 전술적 문제에 맞닥뜨린건 아니었다.

무장친위대 기갑척탄병사단들이 가졌던 단 하나의 주요한 상대적 우위는 그들의 전면에 고지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제48 기갑군단이 군단의 주공점을 노출시키고, 심각한 사상자를 유발시켰으며, 준비 포격의 효과를 감퇴시킨 2단계 공격(7월 4일의 고지 장악을 위한 예비 공격)을 펼쳐야 했던데 반해, 제2 SS 기갑군단은 모든 작전 계획을 주공에만 집중시킬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이런 지형 환경이 7월 5일의 제2 SS 기갑군단의 더 나은 성공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줬(고 제48 기갑군단이 훨씬 전에 고지들을 미리 장악했어야 했다는 앞서의 관찰들을 뒷받침하고 있)으나, 제2 SS 기갑군단 및 예하 사단들의 작전참모들이 제48 기갑군단의 공격계획보다 더 훌륭한 공격계획을 수립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우저는 그의 3개 무장친위대 기갑척탄병사단과 좌익에 배치한, 제167 보병사단에서 증원된 1개 연대를 활용해 소련군 제52 근위 소총사단 방어망에 하나의 폭넓은 돌파구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돌파구가 열리면 LSSAH 사단의 예봉은 우선 비콥카(전선 약 14㎞ 후방), 이어 야코블레보(전선 약 20㎞ 후방)를 통과해 여기서 10㎞ 북쪽에 있는 프숄강 도하점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계획상으로는 수색부대가 "적의 2차 방어선을 돌파한 뒤에는" "프로호로롭카 북쪽 9㎞ 지점"까지 도달할 것을 예상했다. 이런 야심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2 SS 기갑군단은 소련군 방어망을 분쇄할 예리하고도 연속적인 타격을 조율했다.

공격 지원 임무를 맡은 DR 및 TK 사단은 각각 비슷하게 3개 작전제대로 조직되었다: 공격제대, 전과확대제대, 예비대와 본대였다. 공격제대는 1개 기갑척탄병연대(보병장갑차량에 탑승한 기계화대대 제외), 1개 공병중대, 돌격포 수 개 포대, 티거 중대로 구성되었다. DR 사단에서 공격제대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연대를 주축으로 편성되었으며, TK 사단에서는 "툴레(Thule)" 연대(역주: 이는 제5 SS 기갑척탄병연대 "Totenkopf"를 잘못 표기한 것이다)를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각 사단의 기갑연대, 1개 보병장갑차량화대대, 1개 자주포대대, 1개 공병중대로 편성된 기갑전투단은, 공격제대가 소련군 1차 방어선에 돌파구를 열면 이를 돌파해 진격해나갈 임무를 띠고 있었다. DR 사단의 전과확대집단은 LSSAH 사단이 비콥카를 통과하는데 필요하다면 북서쪽으로 방향전환해 이를 지원할 주 임무를 띠고 있었다. TK 사단의 전과확대집단 경우에는 군단 명령에 따라 DR 사단 구역으로 투입될 가능성도 있었다. 양 사단의 2번째 기갑척탄병연대, 전차엽병대대, 기갑수색대대 및 잔여 공병부대는 전술예비대로 편제되었으며, 모든 포병과 여타 지원부대는 사단 본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군단 주공점을 맡은 LSSAH 사단은 제167 보병사단으로부터 연대급 전투단의 증원을 받아 넓은 정면에서 공격을 펼치도록 조직되었다. 사단은 3개 공격제대와, 1개 기갑 전과확대제대, 소규모의 예비대, 1개 포병집단을 다음과 같이 배치하였다:

좌익 공격집단:
제315 척탄병연대
제238 포병연대 2대대
제238 공병대대 1중대
제55 박격포연대의 1개 포대
(후에 LSSAH 돌격포대대의 1개 포대 증강)

중앙 공격집단:
제2 SS 기갑척탄병연대 LAH (3대대 결여)
제1 SS 돌격포대대 LAH
제1 SS 기갑연대의 티거 중대
제1 SS 대공포대대 LAH 5포대(中)
제1 SS 기갑공병대대 LAH의 1개 중대
(최초 공격 후 1개 돌격포 포대가 제315 척탄병연대 지원 임무로 전속)

우익 공격집단 (주공점):
제1 SS 기갑척탄병연대 LAH
제1 기갑엽병대대 LAH의 1개 중대
제1 SS 대공포대대 LAH 4중대(中)

기갑집단:
제1 SS 기갑연대 LAH (티거 중대 결여)
제2 SS 기갑척탄병연대 LAH 3대대(반궤도)
제1 SS 전차엽병대대 LAH의 1개 중대
제2 SS 기갑포병연대 LAH 2대대(자주)
제1 SS 대공포대대 LAH 6포대(輕)

예비대:
제1 SS 기갑수색대대 LAH
제1 SS 전차엽병대대 LAH 본부 및 1개 중대
제1 SS 기갑공병대대 LAH (1개 중대 결여)
(필요에 따라 기갑집단에 배속)

포병:
제1 SS 기갑포병연대 LAH (2대대 결여)
제861 포병대대
제55 박격포연대 (1개 포대 결여)

7월 4일 23시00분에 전 3개 사단의 공격 선도 집단은 소련군 방어선 전방 초소들을 장악하기 위해 포병 지원 없이 조용히 전진했다. 제315 척탄병연대와 TK 사단은 각 담당구역에서 포병 관측반을 위한 고지를 장악하기 위해 예하 중대들을 파견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군단 주공점을 위장하는 효과를 낳았다. DR 사단은 야혼토프를 동쪽으로부터 공격하기 위한 출발점에 도달하기 위해 2개 중대를 먼저 투입했고, (LSSAH 사단의) 제1 SS 기갑척탄병연대 LAH도 이 마을 북동쪽의 골짜기로 침투하기 위해 1개 중대를 투입했다. 제2 SS 기갑척탄병연대 LAH는 야음을 틈타 중요한 228.6 고지를 장악 임무에 1개 대대 전체를 배정했다. 이 공격집단에 배속된 공병들은 준비 포격이 개시되는 순간 티거와 돌격포들이 228.6 고지로 올라설 수 있도록 "지뢰원과 대전차호에 최대한 넓게 통로를 개척하고 표시를 했다."

공격을 맡은 연대들의 잔여 제대들은 준비 포격 시작 15분 전인 03시00분에 전진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준비 포격도 독일군의 주공점에 대해 소련군에게 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개별 공격들을 잘 지원할 수 있도록 포격 순서가 세심하게 짜여졌다. 03시15분, 티거와 돌격포들이 228.6 고지를 향해 전진함과 동시에 고지 바로 북쪽을 향해 LSSAH 사단포병(및 제861 포병대대)은 2분 동안의 "허리케인" 포격을 퍼부었다. 03시17분부터 03시35분까지 이 탄막은 서서히 북쪽으로 전진하며 비콥카에 이르는 도로 양 편의 소련군 진지를 강타했다. 또한 03시00분에는 DR 사단포병과 2개 네벨베르퍼 연대가 야호토프를 향해 20분 간의 집중 포격을 퍼부어, 이 마을에 대한 2개 연대의 협공을 지원했다. 양 측면을 따라 제315 척탄병연대와 TK 사단에 배속된 포병도 공격 지원을 위한 국지적인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03시35분에 갑자기 LSSAH 및 DR 사단 구역의 포화는 10분 간 멈추기로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3가지 목적이 있었다: 포병들이 새로운 목표에 조준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공격집단들이 그들의 초기 목표를 장악할 시간을 주는 것, 그리고 방어자들이 공격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포격은 정확히 03시45분에 재개되었으며, 제2 SS 기갑척탄병연대 LAH가 공격에 나섬과 동시에 LSSAH 및 DR 사단포병, 제861 포병대대 및 1개 네벨베르퍼 대대가 비콥카를 향한 도로를 따라 펼쳐진 소련군 주 방어선을 타격했다. 비콥카를 향한 이 정면 공격은 소련군의 주의를 구역 중앙으로 돌려 놓았다. 그러나 얼마 후, 더욱 강력한 포병 집단(2개 포병대대, 1개 박격포대대, 5개 네벨베르퍼대대)이 보르스칼라 강을 따라 남서쪽부터 비콥카를 향해 전개될 제315 척탄병사단의 공격 지원을 위해 포격을 개시했으며, 이어 사전 경고 없이 곧바로 (LSSAH 사단의) 제1 SS 기갑척탄병연대 LAH 및 (DR 사단의) 도이칠란트 연대의 야혼토프 북쪽에서의 공격 지원으로 전환되었다. 20분 뒤인 04시05분에 사전 계획된 포격은 끝났고, 그 이상의 포격은 주공점 부대의 지원 요청에 따라 이뤄질 예정이었다.

이 복잡한(그리고 한치의 오차를 허용치 않는) 포격 계획은 제315 척탄병연대 및 제2 SS 기갑척탄병연대 LAH가 비콥카 남서쪽 접근로를 방어하는 소련군 제153 및 151 근위소총연대의 지경선을 타격하는 공격으로 소련군의 주의를 돌려 놓았다. 이들 2개 연대는 7월 5일 내내 비콥카를 향한 공격을 계속하며, 예하의 티거와 돌격포들은 소련군의 전술예비대를 유인하는 자석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소련군이 이 위협 방어에 집중하는 동안, 제1 SS 기갑척탄병연대 LAH와 도이칠란트 연대는 야호토프에서 베레조프를 돌아 동쪽에서 비콥카에 들이닥칠 계획이었다. 도이칠란트 연대와 DR 사단의 기갑전력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방어선의 돌파구를 확장할 예정이었다. 선봉이 비콥카를 우회하자마자, LSSAH 사단의 기갑전력이 투입되어 야코블레보에 있는 공격부대를 지나쳐 프숄강 도하점을 확보하기 위해 전진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7월5일 저녁까지 제2 SS 기갑군단은 소련군 방어선에 거의 종심 30㎞, 폭 15㎞에 이르는 구멍을 낼 것이었다.

제52 근위 소총사단은 실제로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상대였음이 밝혀졌다. 기록에 따르면 12시30분까지 LSSAH 사단의 두 기갑척탄병연대는 여전히 북진을 위해 격전을 벌이며, 간신히 비콥마 남쪽 2.5㎞ 지점에 있던 215.4 고지를 장악하는데 그쳤다. 그들의 연합 공격으로도 16시15분이나 되어서야 읍내에서 소련군 방어자들을 몰아낼 지경이었고, DR 사단의 도이칠란트 연대 공격집단은 18시00분이 지나서까지도 LSSAH 사단 우익에 미치지 못했다. 이 시점이 (비콥카 북쪽을 지나 사단 선봉으로 투입될 예정이던) LSSAH 사단의 기갑부대가 "밤이 되자마자 야코블레보 부근의 대전차 전선으로 쇄도한" 때였다. 거의 1000여 명의 사상자와 35대의 전차 손실을 입고서야, 제2 SS 기갑군단은 소련군 제1 방어선을 돌파하여 제2 방어선 언저리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7월 6일에 하우저가 내린 "야코블레보 남동쪽의 적진을 공격하여… 이미 명령한 목표에 도달하라"는 명령이 그의 좌절감의 일단을 드러낼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48 기갑군단이 7월 5일에 LSSAH 사단과 DR 사단이 달성한 것만큼이라도 해냈었다면 게임에 임한 독일군이 오보얀과 쿠르스크를 향한 재빠른 돌파를 이뤄내게 하는데는 충분했을 것이다.

2007/07/17 23:59 2007/07/17 23:59
creative commons license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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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7/07/19 0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얼마만입니까!!!

  2. 비밀방문자 2007/07/19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3. 이성순 2008/11/13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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