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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2 사상 최대 열차포 도라의 전과조작 의혹 (18)

역사상 최대의 열차포로 이름이 높은 "도라(Dora)" — Schwerer Gustav — 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놀라운 위압감과 상징성 때문인지 잊을라치면 어디선가 떡밥이 튀어 나오고는 한다. 물론 대부분은 상한 떡밥의 재탕 수준이어서 과거에 포럼이나 이곳 블로그에서 했던 이야기들, 인터넷 상에 도는 정보들로 갈음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돌아보면 홈지기가 언급했던 내용 중에서도 사실 관계가 부정확한, 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들이 있다. 식품 안전성으로 신음하는(?) 이 시대에, 정확성이 강조되어야 할 컨텐츠 역시 예외는 아닌 듯 싶어 이런 부분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조금 해볼까 한다.

Schwerer Gustav

Periskop의 기존 관련 글:

첫 번째 문제는, "도라"가 이뤄낸 불멸의 전과로 꼽히는 소련군의 탄약창 "하얀 절벽(Weiße Klippe)" 파괴에 대한 의혹이다. "도라"는 제한된 탄약을 갖고 당시 세바스토폴 외곽을 방어하는 주요 요새시설에 대한 포격을 감행했다. 1942년 6월 5일부터 사격이 개시되어 이날 15발을 쐈고, 다음 날인 6월 6일에 16발, 6월 7일에 7발, 이어 11일과 17일에 또 각각 5발씩이 발사되었다. 5–6일은 공격 준비포격 기간이어서 하루 종일 사격이 이뤄졌고, 7/11/17일은 지상군 진격이 병행되던 관계로 이른 아침에만 사격을 했다. 절정의 사격을 퍼부은 6월 6일의 포격이 역시 많은 사람의 도마에 올랐으며, 이날 17시43분 포격을 관측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120 Meter hohe, schnell ausschießende Rauchwolke

120미터 높이의, 빠른 탄착 연기 구름 관측

독일군이 세바스토폴의 탄약창 "하얀 절벽(Weiße Klippe)"의 존재에 대해 인지한 것은 1942년 1월의 일이었다. 포로가 된 소련 해군 포병장교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이 거대한 탄약창의 존재가 드러났다. 세바스토폴 안쪽으로 만입한 세베르나야 만 북쪽 해안 절벽 안쪽 깊숙이 위치해있으며, 3층 규모의 구조에 수백 미터에 이르는 길이로 뻗어있는 보관 시설에는 수비대가 2년간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의 탄약이 저장되어 있다는 보고였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두터운 해안 암벽 자체가 탄탄하게 감싸고 있는 이 시설은 독일군의 다른 어떤 무기체계로도 격파가 불가능해 보였다. 이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는 오직 "도라"밖에 없었다. 다른 요새시설에 대한 포격에 이어, "도라"의 철갑탄 8발이 "하얀 절벽"을 향해 날아갔고, 17시43분 사격에서 관측된 무시무시한 연기는 "하얀 절벽"이 파괴되었다는 명확한 신호였다.

그러나 1990년대 세바스토폴이 개방된 이후 — 흑해함대의 모항이라 냉전 중에는 개방되지 못했음 — 독일과 러시아(및 우크라이나) 연구자들이 현지 답사를 통해 조사한 결과는 사뭇 달랐다. 이들은 도라가 "하얀 절벽"을 날려 버렸다는 설명은 지나친 과장이라는 쪽에 비중을 둔다. 어디나 그렇지만 탄약창은 한꺼번에 모든 저장 탄약이 날아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격벽을 짜서 저장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하얀 절벽" 또한 당대와 오늘날의 사진을 보면 탄약창이 몇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고, 수송선에 탄약을 싣기 위한 부두 시설과, 트럭 등 지상 운송수단을 이용한 탄약 이송을 위한 야적장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탄약창의 한 구획이 피탄되거나, 사고가 일어난다고 쉽사리 전체 탄약창 파괴로 이어지기는 힘들었다.

하얀 절벽

1942년 세바스토폴 전투 이후 "하얀 절벽"의 피탄 사진

여기서 당대의 자료사진을 보자. 탄약창 입구 한 곳 외벽에 명중탄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로 인해 절벽 사면이 붕괴된 모습은 7톤 짜리 철갑탄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세바스토폴 요새가 2년이나 농성할 분량의 탄약이 대거 연쇄폭발을 일으켰다기에는 그 정도가 약해 보인다. 수천 톤의 탄약이 유폭되었으면 훨씬 거대한 규모의 사면 붕괴가 목격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탄약창 입구들은 오늘날까지도 멀쩡히 남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 번째 사진 삼각표식 문의 오늘날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얀 절벽" 탄약창의 다른 출입구 잔해

이 사실로부터 17시43분 사격은 "하얀 절벽" 탄약창 입구 1개와, 일부의 탄약만을 유폭시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120미터 높이의 연기 구름을 만들어 내고, 접안해있던 함선을 침몰시킬 정도의 파괴력은 발휘했다. 하지만 진정 세바스토폴이 농성할 기력을 소진시킬 수준의 효과를 달성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탄약이 제대로 유폭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이미 공격을 예감한 소련군이 상당수의 탄약을 각 요새 거점 및 야전부대로 반출시켰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막대한 운용자원이 소모되는 1350톤 짜리 괴물을 동원해서 얻은 결과치고는 다소 실망스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하얀 절벽" 파괴가 널리 알려지게된 것도 "도라"의 존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독일군의 과대 선전이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당시 "도라"가 탄약창을 목표로 다수의 철갑탄을 발사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히틀러는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Vom Chef AOK 11 wurde ein Gespräch der Heeresgruppe weiter vermittelt, 'daß der Führersehr aufgebracht sei, weil "Dora" auf Munilager "Weiße Klippe" gefeuert hat.' Der Führer äußerte sich dahingehend, daß dies kein Ziel für "Dora" sei. Dieses Geschütz ist nur für betonierte Kampfstände da.

제11군 사령관으로부터 '총통께서 "도라"가 탄약창 "하얀 절벽"에 사격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격분하셨다'는 집단군과의 대화 내용을 전해 들었다. 총통은 이것이 "도라"의 적절한 목표가 아니며, 이 포는 콘크리트 전투거점에만 쓰여야 한다고 지적하셨다.

제54 군단의 전투일지에 수록된 이 내용은, 히틀러가 "도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목표 하나하나에도 간섭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세세한 간섭 — 히틀러와 처칠의 공통점이기도 했던 — 이 기울여지는 와중에, "하얀 절벽"에 대한 포격 효과도 그리 없었다고 보고가 이뤄진다면? 분명히 지휘관 누군가는 목이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하얀 절벽"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뉘앙스의 보고와 연이은 선전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꽤 크다. 오늘날 기업 현장에서도 경영진이 닥달하는 시급한 문제일수록, 문책의 두려움에 압박을 느낀 나머지 허위 보고가 빈발하는게 현실 아니겠는가?

당시 독일군은 "도라"를 위해 준비한 탄약이라고는 1차분으로 철갑탄 48발 밖에 없었다. 추커토르트 장군이 지휘하던 HArko 306은 이를 8군데 목표에 배정했고, 결국 목표당 평균 6발이 사격되었다. "도라" 관련 포병관측일지에는 목표에서 20미터 이내로 탄착한 경우가 이 가운데 8회였다고 하지만, 단일한 시설이 아니라 여러 포좌와 화점이 연결된 소련군 요새 시설을 일격으로 무력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콘크리트로 강화된 요새시설에 명중탄과 유폭이 일부 발생했어도, 이후 보병의 공격단계에서 소련군은 여전히 치열한 방어로 독일군을 괴롭혔다. 만슈타인 등 야전지휘관들이 예상한대로 오히려 1차 세계대전의 유물과도 같았던 20~30㎝급 구경의 구포와 초중곡사포들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들은 탄약 재고도 풍부했고, 속사성도 훨씬 좋았다. 당장 21문의 30.5㎝ 구포는 작전 기간 내내 4920발(1640톤)을 퍼부으며 보병이 돌입하기에 유리한 탄막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의혹보다는 사소하지만, "도라"에 대한 자발적 리콜 하나만 더 하고 마무리짓자. 홈지기가 적어놓은 바도 그렇고, 많은 문헌에서 세바스토폴 전투 기간 "도라"가 사격한 포탄이 총 48발이라고 하지만, 실은 53발이었다. 전투 개시 당시에는 철갑탄 48발 밖에 준비되어있지 못했으나, 이후 추가로 보급을 받아 고폭탄(Sprenggranate) 5발의 재고를 뒤늦게 확보했다. 이는 철갑탄과 달리 탄두 대부분이 고폭약으로 채워져있으니 그 폭발력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고폭탄은 시험사격을 해본 적도 별로 없고, 이미 48발의 철갑탄 사격으로 인해 사격제원이 영 불안했기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 직접 지원포격을 하기는 위험했다. 결국 달리 쓰기도 뭣하고 해서 전투 막바지인 6월 25일에 이 5발을 그냥 쏴 버렸다. 4발은 바다에 떨어졌고, 1발이 세바스토폴 시내에 떨어졌다. 그리고 관측기록에는 이 마지막 포탄으로 인해 무려 너비 200미터, 높이 35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연기 구름이 피어 올랐다고 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8/07/12 15:30 2008/07/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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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라프 2008/07/12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미츠급 항공모함보다 더 큰 물기둥이라...;; 당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정말 볼만한 광경이었겠군요.-_-;

    • 獨步 2008/07/12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화시위의 개념이 전혀 없었던 80년대 후반 시내중심가에서 가게를 하셨던 친척분 말씀으로는 해외언론에까지 언급된 '과격' 시위조차 한 걸음 떨어져서 구경하면 그렇게 흥미진진한 볼거리일 수 없었다고 증언(?)하시더군요(웃음).

    • Periskop 홈지기 2008/07/15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기사 저도 80년대 중딩 시절에 방과 후 친구들이랑 가까운 모 대학 시위 구경가던 기억이 있군요. 최루탄 냄새도 나지 않는 모 건물 옥상에서 백골단과 시위대가 엉기고 사과탄 정신없이 터지는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는 했습니다. 지나보면 저 발치 아래에서 있던 살벌한 일에 그리 무덤덤할 수 있었던게 섬뜩하긴 합니다.

  2. 일화 2008/07/12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크기가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군요. 그나저나 히틀러가 도라에도 관심이 많았는지는 몰랐네요.

  3. 삽질랜드 2008/07/13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탄약을 한군데에 한꺼번에 모아놨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2년치를 쌓아놔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을텐데 그걸 모아놓기 보다는 주된 탄약고를 하얀절벽으로 지정하고, 조금씩 꺼내서 다른 보루마다 필요양만큼씩은 놓았을 것 같네요'ㅅ'

    • Periskop 홈지기 2008/07/15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식적으로 그랬을 것 같긴 하지만, 그런 부분이야말로 역사에서 별로 관심을 안 기울이는 측면이기에 뭐라 신통한 대답을 본 적은 없군요. =.=

  4. 길 잃은 어린양 2008/07/13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가지에 떨어진 마지막 고폭탄 한 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까 생각하면 섬뜩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15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감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소개당했겠지만 희생이 제법 있었겠죠. 바르샤바 봉기 진압 때 '칼'의 포탄이 떨어지며 건물 하나를 완전히 주저앉히던 모습도 놀라웠는데, '도라'의 포탄은 오죽했겠습니까.

  5. 양성민 2008/07/13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6. 비밀방문자 2008/07/13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15 0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KTB(Kriegstagebuch) 맞습니다. 전투일지에는 당연히 해당 부대에서 하루에 있었던 주요 사건 경과와 특이동향을 적습니다.

    • 비밀방문자 2008/07/15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18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닙니다. 그건 OKW 수준의 전투일지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건 단순히 군단사령부 전투일지입니다. 물론 제가 전투일지 복사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2차 저작에서 인용한 내용을 보고 쓴 것입니다.

    • 비밀방문자 2008/10/08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7. 액시움 2008/07/2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불신사회;;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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