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뜸 '믹시'라는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어떤 존재를 떠올릴까? 한국의 블로고스피어에서 주로 활동하는 분이라면 메타블로그 서비스 "믹시(mixsh)"를 떠올릴 것이다. 좀 더 해외동향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일본 굴지의 SNS인 "미꾸시(ミクシィ, mixi)"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믹시"는 정확히 어떤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아시는 분은 제보바란다.) 일본의 "미꾸시"는 '섞는다'는 뜻의 mix와, '사람, 나'라는 뜻의 i가 합쳐진 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둘 다 뭔가 사람과 사람, 의견과 의견의 혼합과 공유에 대한 이상을 표현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자료조사를 하다가 이와는 사뭇 다른 뜻을 가진 '믹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홈지기가 요즘 직장에서 참여하고 있는 여러 연구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중등교육 문제에 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 선진국, 그 가운데서도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핀란드의 사례를 살펴보고 있었다. PISA, 즉 OECD의 국제 학생능력 평가 프로그램이 지난 2000년에 처음 실행된 이래, 언어/수학/과학분야 능력에 걸쳐 골고루 최상위에 랭크된 나라, 그러면서도 동북아의 고질적인 입시경쟁이 없는 나라로 큰 주목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서는 핀란드 교육에 대해 깊이 파헤친 자료들이 그리 많이 나와있지 않다. 오히려 어느 나라보다도 일본에 많은 자료들이 나와 있다. 이는 지난 PISA 결과에서 일본 학생들의 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충격이 열도를 강타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홈지기도 일본의 자료를 여럿 검토하면서, 일본의 교육계가 느낀 당시의 충격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를 전후 세계 제2의 경제대국 도약의 발판이 되었던 교육 시스템이 어느 구석부터인가 붕괴되는 징후로 해석했다. 특히 PISA 2003에서 우리 한국이 각 분야에 걸쳐 핀란드와 나란히 1~2위를 내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더했던 것 같다. 우리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깔보듯이, 일본인들도 분명 속마음으로는 한국을 한 수 아래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백년대계의 교육이 한국에 뒤쳐지기 시작했다니. 위기를 느끼지 않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홈지기도 처음 일본의 교육관련 문헌들을 읽을 때는 다소의 뿌듯함도 느껴지고는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핀란드와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학력분포가 우수함을 부각시켰다. 특히 일본 교육계는 핀란드와 한국의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에 주목했다. 일본의 상위권 학생들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PISA 랭킹이 낮아진 주 원인은 하위권 학생들의 실력이 국제 평균보다 한참 낮은게 주 원인이었다. 그에 반해 핀란드와 한국은 모두 하위권 학생들도 평균 이상의 높은 성적을 거뒀다.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교육의 효과에 새삼 주목하게 만드는 본보기였던 것이다. 이는 홈지기가 일전에 지적한 일본의 교육 현실의 글에서도 지적한 문제였다. 전체적인 경쟁의 강도는 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낙오자를 당연시하는 폐해가 있음을 일본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읽다보니 이런 뿌듯함은 금방 사라졌다. 이런 문헌들이 중반에 들어서면 은근슬쩍 한국을 주목대상에서 뺀다. 이것은 PISA 결과 이면의 원인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의 높은 성취도가 과도한 방과 후 사교육 시간의 효과임을 읽고, 또한 학생들이 성적은 좋을지 몰라도 공부 자체에 대한 흥미는 형편없음을 읽고 있다. 학원에서 논술공부, 수능공부 달달달 하면서 높인 학업성취도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이는 가장 최근에 실시된 PISA 2006에서 한국 학생들의 과학능력이 떨어진 것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다. 입시교육에서 과학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곧바로 순위 하락로 직결되는 폐단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문헌들은 한국의 성과에 주목하면서도, 한국 교육이 답습할 대상은 아님을 낙인찍고 있다. 그리고는 핀란드 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부단히 연구를 하고 있었다.

- 발상력
- 논리력
- 표현력
- 비판적 사고력
-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 가운데 논리력에 대한 장을 펴 들었을 때, 홈지기는 흠칫했다. 첫 섹션 제목이 "「ミクシ?」功擊の秘密 ('믹시?' 공격의 비밀)"이었다. 믹시? 믹시가 여기 왜 나올까? 그 다음 단락으로 눈이 넘어가서야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핀란드어로 '믹시(Miksi)?'는 우리말로 하면 '왜?', '어째서?' 정도의 표현이었다. 한국의 "믹시(mixsh)", 일본의 "미꾸시(mixi)"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야기인즉슨, 핀란드에서는 가르침에 있어 '당연하다고 넘어가는'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의 교육 현장은 잘 모르겠지만, 홈지기가 자라올 때만 더듬어봐도 우리의 교육은 교과서 체계에서 정형화된 지식을 주입시키고 응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특정한 지식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버릇을 들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책상'의 품사는 뭐지?"라고 묻는다고 하자. 학생이 일어나서 "동사입니다"라고 하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저런 당연한 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들을 것이다. 반면 "명사입니다"라고 하면 짝짝짝 박수 쳐주고 당연한 듯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의 교육현장에서는 그렇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설령 '명사'라는 답을 했어도 곧바로 선생은 "Miksi?"를 날린다. 학생은 "그게…… 명사니깐요"라는 식으로 답해서는 안 된다. 나는 왜 그것을 '명사'라고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고, 이 과정을 외화(外化)시켜 서술해야 한다.

너무 시간낭비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현실의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게 마련이며, 하나의 관점, 하나의 해답만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 각자는 어떤 정보나 지식, 관념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나름의 합당한 이유를 갖추고 있는 의견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당장 좌파와 우파가 세상을 바라보는 논리가 다르다. 각자에게는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다. 촛불시위같은 구체적인 현상을 놓고서도, 어떤 사람은 MB와 정부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PD수첩과 시민단체의 잘못으로 생각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각자 진영에 선 사람들 대다수가 '내가 옳고, 남이 틀렸다'는 인식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은 이걸 어렸을 적부터 지양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각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을 함께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그게 논리적으로 타당한 추론이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다. 충분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누군가가 무언가에 대해 '그건 당연하지!'라고 이야기한다면, 십중팔구 그것은 실상은 제대로 모르고 나머지를 얼버무려 이해하려는 습관의 발로이다. '당연하다'는 말에 자꾸 묻어가다보면, 논리력은 절대 키워지지 않는다. 더욱 나쁜 것은, 점점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의도적으로 귀를 닫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사회는 모두가 자기 우물에 갇혀 남을 비난하기만 해대는, 신뢰 상실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핀란드의 교사와 학생들은 끊임없이 "Miksi?"를 외치라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다. 서로가 '믹시'를 주고 받으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그 흐름 속에서 배움의 가지는 뻗어 나간다. (참고로 이러한 생각의 가지를 정리하기 위해 핀란드에서는 마인드맵1을 사용하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훈련이 잘 되어 있다면, 커서도 쉽게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통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주장을 절대시하는 것은 금기이며, 서로가 '믹시'를 던져야 한다는 규약을 배웠기 때문이다. 북유럽을 두고 감탄하는, 각자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늘어놓고 시비를 가리며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힘이 이 '믹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홈지기는 핀란드 교육 현장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믹시'를 발견하고 작은 기쁨을 느꼈다. 흔히 한국은 신뢰가 상실된, 사회적 자본이 매우 저열한 국가로 진단된다. 그에 반해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신뢰와 양호한 사회적 자본을 갖춘 나라로 꼽히고 있다. 홈지기는 이제껏 다양한 각도에서 그 배경을 고찰해왔는데, '믹시'도 그 다양한 배경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믹시'가 유일하고도 중대한 사회적 동력은 아니겠지만, 결코 무시 못할 교육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가 모든 배경을 무시하고 핀란드 시스템을 이식할 수야 없겠지만, 이런 '믹시'의 습관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할 것이다.
홈지기도 근래 새삼스레 외국의 교육철학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복잡한 세사를 바라봄에 있어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나의 의견을 절대시하지 말자.2 그리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외쳐보자.
Mik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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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들어 부쩍 마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너무 나의 생각틀 속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검열이라고 할지 아니면 자기 경계라고 할지 제법 노력을 해 본다고 해 보지만 결국 제가 쓴 글 조차도 한참 후에 보면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결국 이런 건 혼자 노력한다고 완전히 해결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내게 자신의 다른 생각을 나눠 줄 때, 그리고 제가 그런 생각 나눔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제 생각을 내려 놀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죠.
오늘도 또 좋은 가르침을 받고 갑니다.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네요. 늘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맞습니다, 결국 열린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그런 소양에 대한 훈련을 별로 못 받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고 나서 고쳐나가려니 영 어색함을 떨치기 함들더군요. 그래도 Crete 님은 많이 노력하고 계시니 앞으로도 좋은 공력 쌓아가시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 이거 참으로 동감하고 반성하게 하는 글이군요. 예전에 과외 할 때 생각이 납니다. 애들이 문법이나 해석 좀 틀리면 무지 갈궜는데 -_-ㅋ
저도 과외를 무진장 오래 했었는데, 역시 한정된 시간에 학부모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무리수가 많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공부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해보고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얼렁뚱땅 넘어간 적도 많아 꽤나 찔리는군요. 그 당시에 요즘처럼 교습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고는 합니다.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중학생 아들이 있는데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학원수업을 받으면서도 학교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심하게 질책한
적이 있었습니다. 좀더 멀리보는 안목이 없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요즘 중학생 자제분을 키우고 계시다니 여러모로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_- 주변의 학부형 분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아무리 장기적인 안목으로 키우고 싶어도 말처럼 되지 않는다는 고충이 매우 심각하더군요. 차근차근히 과정을 다지고 가더라도 같은 능력에 도달할 수 있는데, 당장의 학벌 꼬리표가 아쉽다 보니 학생들을 보채고 몰아칠 수밖에 없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댓글 감사합니다.^^
올해 초에 수능 끝나고 집에서 노는데 15살 아이들에대한 세계적인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마봉춘씨가 핀란드 같은 유럽 국가들의 교육 방식에 대해 보여줬는데 그거 보면서 탁자를 치고 "왜 나는 저런 교육을 받지 못한 건가!" 하며 한탄해 했죠'ㅅ';;;(진짜입니다. 이거 DVD 나오면 사가지고 학교 도서관에 기증해서 시청각 자료로 천년만년 울궈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벌써 눈에서 눈물이'ㅅ';;;
저도 십수년 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그래도 저희 때 제가 다닌 모 고등학교는 요즘처럼 피튀기지는 않아서 천만다행입니다. 압박은 심했어도 나름 즐거운 기억도 여럿 있었으니 말입니다.
삽질랜드님 혹시 그 프로그램 제목이 뭐였나요?
MBC 스페셜 "열다섯살, 꿈의 교실" 3부작이었을 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주말에 드디어 책을 좀 짊어지고 왔습니다. 오늘 귀가하면 꼭 답변 달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T.T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문장이 머리에 깊숙이 박히네요.
다른 분들의 뇌리에 좀 더 오래 남아있을 수 있는 글을 쓴다는게 정말 흐뭇한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나라 교육 (공교육 사교육 모두) 은 좀 심하게 말해서
사상누각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겠군요...
진짜 중요한 것은 평생을 두고 스스로 학습하는 열의와 기초적인 자질이겠죠. 저도 새삼스레 그 중요성을 계속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공교육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 위기라고 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찌어찌하여 부실한 기반 위에도 서 있기라도 한데, 교육정책이 앞으로 잘못되면 진짜로 무너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아.. 십수년전 캐나다의 호스트 맘에게서(초등학교 선생)들었던 말이 생각나는 군요.
"동양권 학생들은 너무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흑백도 있지만 그 사이에는 회색도 있다."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었는대...
요새들어서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절망하고 있죠
(사회 꼴아지나 대학원생이라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걸 보면 ㅠㅠ)
자신이 명확한 의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의견을 도출하고 수정함에 있어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 양립해야겠죠. 그런데 우리 사회와 교육은 이러한 덕성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최근의 교육철학에 대한 세계적 조류를 다음에 한 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적어도 군사독재 이후에는, 교육과 부동산은 정권탓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결국 교육도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내는 문제 같군요.
개인적으로, 중2-고2까지 공부작파했었습니다. 고3 되서야 ebs와 노량진단과학원 좀 다녔습니다. 사교육 받은게 별로 없죠. 그러다보니 고액과외 많이 받은 애들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믿음 비스무레한게 있었죠. 그래서 대학에서 '강남어린이' 출신들이 고액과외 별 효과 없더란 말을 해도 안 믿어지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맞을 거란 생각이 든게, 고시준비하면서였습니다. 수석합격기들이야 안믿는다고 쳐도, 내 주변에서 뛰어난 애들 보면 모두 남들 다보는/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책과 평범한 학원강의로 공부해서 뛰어난 결과를 이루더라구요.
고액과외는 불안하니까/질 수 없어서 하는 거지, 큰 성과를 거두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모두가 바보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쓰고나서 보니, 글과 좀 안맞는 엉뚱한 소릴 썼군요. 그냥 글 읽고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린 거라 이해해주시길..-_-;;
법조계에 계시나보죠? 저는 사실 고시준비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쪽 세계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긴 안목에서 단기적인 주입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데에는 동감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당장의 턱밑을 조여오는 경쟁의 위협 앞에 아이들을 학원으로 무기력하게 내몰고 있지요. 여기에 어떤 탈출구가 있을지 참 고민입니다.
고시낭인에 불과한 놈입니다. 괜히 오해하시게 글을 써놨나보군요.
역시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자신과 다른 주장을 들었을 때,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크게 한 번 웃어줄 수 있는 호방함인 듯.
그래서 저같은 소심한 사람은 매일 가슴 졸이고 사나 봅니다.^^
과정의 외화..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제한된 개념을 고등학교 때 논술공부하면서 '자기문제화'라는 단어로 접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언제적 얘기인지.. 돌아오라 시간이여...
저는 논술세대가 아니라서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경험적으로 익힌 글쓰기 노하우와, 중고교에서 가르치는 논술기법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논술교육을 받은 경험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됨을 느끼고 계신가요?
저는 97학번입니다. 재수했구요. 전공은 컴퓨터이지만 외도를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
현행 논술교육은 글쓰는 '테크닉'부터 시작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문단짜기, 첫 문장 참신하게 쓰기,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등등. 그러면서 '스키마 주입'도 같이 들어갑니다. 각종 사회적 이슈부터 시작해서 자주 인용되는 사상가들의 명언이나 사상의 흐름 등. 이런 것들이 '다이제스트'되어서 제공됩니다.
문제는 '생각의 결과'이어야 하는 논술에서조차도 주제별 모범답안이 나온다는 겁니다. 글의 논리적 전개에 의한 모범답안보단 각 주제에 따른 무난한 답안의 내용에 주목하게 되고 이를 '암기'하게 됩니다. 글이라는 게 제일 처음 썼을 때 가장 생명력이 넘치고 참신하지 않습니까? 반면 손을 대면 댈수록 무난해지지만 팔딱팔딱대는 맛이 없어지는데 이미 머릿속에 주입된 내용을 적어내다 보니 글의 맛이 없어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덕분에 대학에서는 허를 찌르는 참신한 문제를 내느라 골몰하시는 모양이구요.
그래도 논술교육의 가장 큰 순기능은 '지식을 활용'하는 훈련이 된다는 점 입니다. 단순 암기를 통해 머릿속에 넣어뒀다가 그대로 꺼내서 보여주는 것과 머릿속에 넣은 것을 활용해서 논리적 무기로 활용하는 건 매우 다르니까요. 또한 사회 이슈 등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접했을 때의 결론과 진지하게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난 뒤의 결론은 매우 달라집니다. 앞서 얘기한 '자기문제화'의 순기능이구요.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일반론에 대해 저렇게 접근했을 때의 충격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지적 욕구에 대한 건전한 자극이라는 효과도 빼놓을 순 없겠습니다. 알아야 쓰니까요.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논술교육의 순기능은 물론 크다고 봅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생각하면……^^ 여기에 모범답안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버릇'을 어떻게 배양할지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트랙백에서 대입논술에 대해서 아는바를 몇자 좀 적어봤습니다. 원래 덧글로 달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트랙백을 했습니다. 홈지기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실제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논술공부에 대한 통념과 실제 논술을 많이 다른데 그런 부분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저는 오히려 나이들면서 공부를 더 많이 하는 부류입니다. 결과는 못냈지만, 고시공부부터 거의 손대지 않은게 없으니 말이지요...
저는 저희 딸들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으려 하는데...
집사람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군요..T.T
분명히 공부에 있어서만은 집사람보다 제가 조금은 더 잘했을 법 싶은데...
하여간 제가 인생 후반기에 새롭게 이책저책 잡는데, 가장 큰 자극은 홈지기 님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담배끊으면서, 건강이 회복되고 있으니, 다시 공부에 박차를 가할까 합니다.
아무쪼록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제 직장에서도 요즘 권 선생님과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해서 다들 건강문제를 각성하고 계십니다.
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 다시한번 돌아보게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셨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핀란드의 교사와 학생들은 끊임없이 "Mixsh?"를 외치라고 가르치고
->mixsh를 miksi로 바꿔야하지 않을까요?
지적 감사합니다. 역시 기자답게 오타 집어내는 눈매가 날카로우십니다.^^
동양에서의 전통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싶네요. 과거라는 것도 (적어도 중국에서는) 모범답안을 정해진 문체와 서체로 외워 써내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혼자서 생각해봐야 호응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는 듯 하고요.
생각과 희망과 전혀 다른 현실이라는 실존 상황에 서있노라면 일단 문제 많이 맞추는 것에서 애들이 뒤져 가는 순간부터는 '인내심'과 판단이 사라집니다.
또 단체생활이다 보니 흐름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선생님, 교육기관, 국가관련기관등 따로 놀고 각 가정에서부터 혁명을 바라는 것은 그냥 중얼거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은 각 개인의 자식문제가 아닌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인데 말이죠.
'MBC스페셜 교육3부작-열다섯살,꿈의교실'을 이제야 구해서 봤습니다. 상당한 쇼크인데요.
혹시 보고프신 분 계시면 연락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