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8'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5/20 생텍쥐페리의 최후, 그 기억의 자기정당화 (18)

톡톡 튀는 센스로 열렬한 인기를 얻고 있는 굽시니스트 님의 최근 만화('Yankee doodle came to town')를 보게 되었다. 여기 보면 패튼이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의 '어린 왕자'와 오버랩되는 대단한 대목이 나온다. 한참 키득거리며 웃다 보니, 어느새 생텍쥐페리의 최후에 대한 2달 전의 기사들이 연상되었다. 기억이 나시는가? 지난 3월 중순에 갑자기 많은 주요 국내 언론사의 외신란에 생텍쥐페리의 최후가 이슈화되었던 것을:

이 기사는 그 동안 60년 이상 미스테리로 남아왔던 생텍쥐페리의 죽음이 독일 공군의 격추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격추의 주인공으로 아직껏 생존하고 있는, 독일 공군 제200 전투비행대대(JGr. 200) 소속 Me 109를 조종하던 호어스트 리퍼트(Horst Rippert) 병장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고 적고 있다. 이런 떠들석한 뉴스의 진원지는 프랑스의 두 언론사였다:

자유프랑스군의 일원으로 P-38 라이트닝(더 정확히는 정찰형인 F-5B)을 몰고 정찰비행을 하다 대서양 상공에서 영면한 만인의 생텍스(Saint Ex). '어린 왕자'의 신비함만큼이나 홀연한 죽음이었기에 이에 대해 그 동안 갖가지 설이 난무했다. 1944년 7월 31일 코르시카에서 이륙한 뒤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락한 기체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그의 유품은 남아 있는지 등등에 대한 각종 탐사보도들이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고는 했다. 이 보도 또한 생텍쥐페리의 기체 유해 탐사를 다년간 계속해오던 프랑스 연구자들 — Jacques Pradel, Luc Vanrell — 이 그간의 탐사 내용을 신간 『Saint-Exupéry, l'ultime secret (생텍쥐페리, 궁극의 비밀)』으로 엮어 내면서 터뜨린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과연 이번 보도는 정말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생텍쥐페리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완전히 해결될 결정적 단서가 나온 것인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었다.

Antoine de Saint-Exupéry

Antoine de Saint-Exupéry

Saint-Exupéry, l'ultime secret

Saint-Exupéry, l'ultime secret

사실 홈지기도 몇 가지 자료를 갖고 있던 바가 있어 뉴스가 처음 나왔을 때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해설 글을 써볼까 했다. 그러나 쓰다 보니 해외 전문가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면서 슬금슬금 관망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적절한 포스팅 타이밍을 놓친 채 묵혀두고 있었다. 다행히 두어 달이 지나자 어느 정도 해외의 반응도 모인 듯 싶고, 이제 한 번쯤 정리하고 넘어가기에 적당한 시점이 된 것 같다.

리퍼트 병장의 생텍쥐페리 격추 스토리

먼저, 리퍼트 병장의 격추 주장을 조금 더 들여다 보자. 리퍼트 병장이 소속된 JGr. 200액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지방에 주둔중인 전투기 부대였다. 본부중대를 비롯한 3개 중대 모두 Me 109G-6 기종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이래 다수의 공중전을 치루며 손실을 겪었고, 다른 절박한 부대로의 전투기 차출도 많이 당한 상태였다. 그 결과 7월 말에는 19대 수준으로 전력이 뚝 떨어진 상태였다. 이 무렵에는 남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에도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준비 중에 있었기 때문에, JGr. 200이 담당한 공역에도 코르시카와 사르데냐를 거점으로 한 연합군의 정찰비행 및 초계비행이 매우 빈번했다.

생텍쥐페리 최후의 비행
생텍쥐페리의 정찰기 또한 프랑스 내륙으로 진출하여 리용(Lyon)과 프랑스 알프스 일대(그르노블, 샹베리 등)의 정찰비행에 나서고는 했다. 1944년 6월 6일에는 툴롱, 마르세유 지역으로 정찰비행을 나갔으나 중간에 엔진고장으로 회항했고, 6월 29일에는 사르데냐의 알게로(Alghero)를 출발하여 아느시, 그르노블 등을 정찰하고 이탈리아의 토리노, 제노바 일대를 거쳐 코르시카의 보르고(Borgo) 비행장으로 회항했다. 1944년 7월 31일에는 08시45분(영국시간), 다시 그르노블과 아느시 일대의 정찰을 위해 보르고 비행장을 이륙했다. 예정대로라면 임무를 완수하고 12시35분~13시00분 정도에는 다시 기지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목표지점 부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11시00분, 생텍쥐페리의 정찰기는 리용 근방의 샤즐레쉬르리용(Chazelles-sur-Lyon)에 위치한 독일군의 레이더 기지 'Stellung Falter'에 의해 감지되었다. 이 기지는 3기의 프레야(Freya) 레이더와 2기의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레이더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감지 즉시 JGr. 200에 출격명령이 내려졌다. 경보를 받은 JGr. 200은 3중대의 리퍼트에게 출격을 지시했고, 마르세유 근방에서 회항하는 생텍쥐페리를 따라잡은 리퍼트는 공중전 끝에 격추했다.

결국 지중해 바닥으로 추락해 사라진 생텍쥐페리와 그의 F-5B는 끝내 보르고로 돌아오지 못했고, 14시30분까지도 귀환하지 못하자 연합군은 그가 실종되었음을 타전했다. 생텍쥐페리의 실종은 오래지 않아 연합군 측의 라디오 방송에도 등장했고, 이를 청취하던 독일군 측도 이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리퍼트는 자기가 격추시킨 적 정찰기가 생텍쥐페리의 비행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자책감에 휩싸였다. 그는 결국 그 후로도 이를 숨긴 채 오랜 세월 침묵을 지키다가 60여 년만에 프랑스 연구자들의 인터뷰에서 비로소 사실을 털어놓게된 것이었다……

리퍼트 병장 격추설의 진위 여부

뭔가 세월을 뛰어 넘은 아련함이 밀려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 탐구에 있어 마냥 감상적 태도는 금물이다. 리퍼트 병장의 격추 주장이 나온 이후 프랑스, 독일 등을 중심으로 한창 떠들석한 논의가 이어졌다. 과연 이것이 오랜 생텍쥐페리 죽음의 미스테리에 종지부를 찍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과는 다소 허탈하다 — 현재 시점에서 정리해보면 리퍼트 격추설도 여전히 가설에 불과하다. 아니, 분명히 본인이 격추했다고 함에도 왜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일까? 그것은 리퍼트 병장의 격추를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매우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독일군의 작전 기록들과 연합군의 적정동향 기록들은 하나같이 7월 31일을 평이한 하루로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전역의 항공부대를 관할하고 있던 독일 제3 항공군(Luftflotte 3)은 그 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아군 작전:

대 게릴라 작전을 위해 남부 전투항공사령부(Jafü Süd)는 12대, 본가르트 비행단(Geschwader Bongart)은 2대의 항공기 투입.

통산: 적기 6대 격추; 아군기 13대 상실; 지상에서 3대 손실.

여기서 기록된 격추된 적기 6대는 모두 제1 및 제2 전투비행단(JG. 1, 2)의 전적이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JGr. 200은 물론, 다른 남부 전투항공사령부 소속 부대들이나 심지어 대공포 부대들도 적기를 격추했다는 보고가 없었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이미 독일의 에니그마를 이용한 암호전문이 완벽히 해독되고 있었으므로, 연합군은 도청된 전문을 바탕으로 상세한 적정동향 기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도 생텍쥐페리 실종 시간 부근의 특이동향에 대한 보고는 전혀 없었다.

전투기 및 전폭기

전술정찰기가 18시20분부터 18시48분까지 활동, 다른 상세사항은 불명.

…… 전투기 3개 편대가 칸, 툴롱 및 북쪽에 출몰한 연합군 전투기를 상대하러 07시58분부터 09시29분 사이에 출격; 아무런 교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임. 툴롱 북쪽의 초계활동이 14시10분부터 14시25분 사이에 있었음.

전투기 출격을 기록한 시간이 생텍쥐페리의 비행 시간과 매우 유사하긴 하나, 현존하는 문서들엔 일체의 교전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리퍼트가 만일 출격하여 교전, 격추에 성공했다면 무전으로 즉시 보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 당시에는 조종사가 생텍쥐페리란 사실을 전혀 몰랐으므로, 보고를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특이한 사항이라고는 바로 전 날, 1944년 7월 30일에 실제로 P-38 정찰기형(F-5)이 격추된 사례가 있었다. 이것은 11시15분에 있었던 일로, JGr. 200 3중대(3./JGr. 200) — 바로 리퍼트의 소속 중대 — 의 구트(Guth) 중사의 전공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독일군의 공식기록이 남아 있다. 7월 30일에 거둔 유사한 전공이 잘 기록이 되어있는데, 31일의 격추 기록이 특별히 신빙성 있는 양측 기록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을 이유는 없다.

또한 알려진 호어스트 리퍼트의 격추 기록에도 1944년 7~8월의 격추 스코어는 6기로 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7월 31일자 격추 기록은 없다:

1944-07-05 Ogfr. Rippert, Horst 3./JGr.200 P-51 04 Ost S/DL,4000 m,S. Marseille1409
1944-07-24 Ogfr. Rippert, Horst 3./JGr.200 B-24 04 Ost S/CL-2 at 10km (SW Marseille)1205
1944-08-07 Ogfr. Rippert, Horst 3./JGr.200 B-25 0935
1944-08-08 Ogfr. Rippert, Horst 3./JGr.200 P-47 0940
1944-08-12 Ogfr. Rippert, Horst 3./JGr.200 Spitfire DN-3 2000m [N.E. Hyere]1031
1944-08-12 Ogfr. Rippert, Horst 3./JGr.200 P-47 BM-7 3000m [N. St. Maximin]18281

이러한 일련의 이유 때문에 리퍼트의 증언을 대부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리퍼트는 왜 이런 증언을 했던 것일까?

Horst Rippert
그렇다면 결국 리퍼트는 왜 전후 60년도 넘은 지금 시점에서 이런 근거가 희박하고 모호한 증언을 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가 너무도 고령(88세)인 나머지 특별한 악의 없이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편집해내지 않았을까 한다. 다른 당시 독일군 공군부대 생존자들은 이미 사건 발생 얼마 후 생텍쥐페리의 실종 사실이 독일군 측에게도 알려졌고, 혹시나 독일공군이 이를 격추시킨 것이 아닌지 자체 조사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지역에 위치한 다른 인접 부대였던 제13 근접정찰비행대대(Nahaufklärungsgruppe 13) 소속이었던 게오르그 펨러(Georg Pemler)의 증언에 의하면, 이 무렵 JGr. 200과 NAGr. 13 부대원들에게 31일에 연합군 정찰기를 격추시킨 일이 있냐고 수소문해봤지만 아무도 격추시킨 바 없다고 했었다 한다.2

그런데 리퍼트는 이 때가 아닌 전쟁이 끝난 뒤에서야 자신이 혹시나 생텍쥐페리를 격추시킨 것이 아닌가 자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950년 경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3 연구자들은 위에서도 언급한 7월 30일의 작전, 즉 구트 중사가 적 정찰기를 격추한 작전에 동참한 기억이 리퍼트를 헷갈리게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구트 중사와 리퍼트 병장은 같은 중대원으로 이날 작전에 함께 출격했을 것이다. 리퍼트는 구트가 격추한 정찰기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 뭔가 자신의 격추 스코어 중에 적 정찰기가 포함이 되어 있던 것으로 혼동했고, 시기도 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그것이 생텍쥐페리가 아니었나 의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억은 한 때는 잊혀졌지만, 다시 반 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다시 물어오자 모호한 상태로 상기되어 "내가 생텍쥐페리를 격추했소"라고 증언하지 않았을까?

이런 현상은 매우 일반적이다. 기억은 하나하나의 단편적인 형태로 기억되지 않으며, 어떤 맥락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맥락이 어떤 이유에선가 변화하면 세부 기억은 그에 따라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해버린다.

이 책의 저자 중 하나인 캐럴 태브리스(Carol Tavris)가 제일 좋아하는 어린이책은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의 『놀라운 축복 O (The Wonderful O)』인데,  그녀는 그 책을 아버지께 선물로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캐럴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해적단이 한 섬을 점령하고 섬 사람들에게 O자가 든 말을 못하게 하고 O자가 든 물건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가 그 책을 읽어주던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부끄럼쟁이 오필리아 올리버(Ophelia Oliver)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 O를 다 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웃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옛날에 읽었던 그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뒤인 1957년에 출간된 것이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발행 연도를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 틀림없이 그 책을 내게 준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고, 그것을 내게 읽어준 사람, 필리아 리버(Phelia Liver)라는 이름에 함께 웃은 사람……도 다른 사람이었다."

이 짧은 이야기는 기억에 관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시한다. 첫째, 그 때의 감정과 세세한 내용까지 담고 있는 생생한 기억이 명백히 틀리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어떤 기억의 정확성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해도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셋째, 기억의 착오가 현재의 감정과 신념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4

그렇다면 생텍쥐페리의 진짜 실종 이유는?

리퍼트의 증언 내용이 신빙성이 없다면 결국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의 비행기가 추락한 지점이 정확히 알려지고, 그의 비행기 잔해와 유품이 인양되어 전시되는 시대가 왔어도 1944년 7월 31일 오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부족한 근거로 막연히 추정하는 수밖에는.

다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그는 몹시 피곤하고 지쳐있었다는 사실이었다. F-5B 기종은 여러 잔고장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심했고, 이전에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사건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생텍쥐페리 자신이 육체적으로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각도에 따라 일견 샤프해보이기도 하는 이미지와는 달리 대전 말기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섭식장애로 꽤나 비대해지고 비행도 그리 쉽지 않았다고도 전해진다. 이런 사실에다 그르노블로 가는 항로와는 영 동떨어진 마르세유 인근에 추락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건강상 발작이나 기체 고장으로 인한 컨트롤 불능 상태에서 사고사했다는 결론이 그래도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Saint-Exupéry

뚱뚱한(?)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 최후 항적의 의혹

최후 항적의 의혹

생텍쥐페리 탑승기의 잔해

생텍쥐페리 탑승기 잔해

앞으로도 '어린 왕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기억되는한, 생텍쥐페리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점점 옅어져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뒤질만큼 뒤져본 기록의 단편들을 바탕으로 다른 가설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수많은 가설로 만들어진 상자의 구멍 속으로 양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일 것이다.

P.S.1 [김종현(deutsch)님의 지적에 따라 추가]
위에서 리퍼트 병장이 구트 중사와 함께 출격했다는 것도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또한 다른 기록에서는 1944년 7월 30일(생텍쥐페리 실종 하루 전)의 독일군 손실을 보면 3./JGr.200의 중대장 아른트-리하르트 훕펠트(Arndt-Richard Hupfeld) 소위가 격추되어 중상을 입었다고 되어 있다. 이를 보면 구트 중사는 훕펠트 소위와 편대를 이뤄 출격했었을 가능성도 있다.

P.S.2 [라피에사쥬 님의 지적에 따라 추가]
라피에사쥬 님도 지난 3월에 이에 대한 분석 글을 써 주신 바가 있었으니 참고 바란다:
► 참고 ⇒ Horst Rippert 병장이 생떽쥐페리를 격추시켰을까? (라피에사쥬의 회색빛 세상)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Prien, J., Rodeike, P. & Stemmer, G. Messerschmitt BF 109 im Einsatz bei der III. Und IV./jagdgeschwader 27.
  2. The Luftwaffe and Saint-Exupéry: the evidence pt.4 (Ghost Bombers)
  3. Saint-Exupéryho nikdo nesestřelil, vyplývá z archivních dokumentů.
  4. Tavris, C. & Aronson, E. 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Why We Justify Foolish Beliefs, Bad Decisions, and Hurtful Acts. (Harcourt: 2007).
creative commons license 2.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riskop.info/trackback/98

  1. Subject: Hedonist의 생각

    Tracked from hedonicu's me2DAY 2008/05/21 02:26  삭제

    생텍쥐페리의 최후, 그 기억의 자기정당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길 잃은 어린양 2008/05/20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가격이 후덜덜한 Prien의 책을 소장하고 계신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2. deutsch 2008/05/20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트 중사와 리퍼트 병장은 같은 중대원으로 이날 작전에 함께 출격했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승병님의 추정 아니신지요? 만일, 7월 30일에 두 사람이 같이 출격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리퍼트 병장(이왕이면 독일어 계급명도 같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하위 계급으로 갈수록 외국군의 계급명은 혼란스럽지 않나요?)이 그런 착각을 했을 가능성도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게 없다면 좀 곤란하니까요.

    제가 보기엔, 지금 이 글은 승병님께서 두 사람이 같이 출격했다는 믿음으로 쓰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본문에서 7월 30일 P38라이트닝의 정찰형 F-5B 격추때 두 사람이 같이 출격했고, 전투 현장에 같이 있었다는 자료가 첨부되어야 합니다.

    연합군측에 기록이 없다면, 이미 생텍쥐베리가 미처 공중전을 보고하지 못했다면 기록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적기와 조우 사실을 미처 생텍쥐베리가 보고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귀환하지 않았으니 공중전이 없다고 기록할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만일 두 사람이 같이 7월 30일에 출격하지 않았고 7월 31일에 리퍼트가 혼자 출격한 것이 맞다면 (본문의 뉘앙스는 마치 혼자 출격한 것같습니다. 혼자 출격했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하기는 힘듭니다만) 이유는 몰라도 본인이 보고를 누락하지 않았을까요(그러나 이 얘기는 저도 자신이 없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날카로우십니다.^^ 사실 리퍼트가 7월 30일에 구트 중사(Feldwebel)와 같이 출격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이것도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은 밝혀둬야겠군요.

      그리고 제가 언급한 연합군 기록은 연합군 조종사들의 보고를 취합한 것이 아니라, 연합군 감청부대에서 독일 공군 부대들, 또는 출격한 공군기와 지상기지 사이에 오고간 전문을 해독하여 적정보고하던 것입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놀랄만큼 정확하게 독일 공군의 활동을 따라잡고 있었습니다. (독일 공군의 통신보안이 가장 취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다른 날의 격추기록들은 독일군도 상세히 보고했고 연합군도 잘 감청했는데, 유독 31일만 양측 모두 기록이 없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말씀하신대로 리퍼트 병장(Obergefreiter)이 단독 출격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겁니다. 당시 3./JGr.200이 위험을 무릅쓰고 단독 출격을 시켜야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편대 출격하여 한 대가 격추당했다거나 이탈한 그런 비정상적 상황도 보고된 바 없고요. 이런 일련의 이유가 리퍼트 격추설을 부정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deutsch 2008/05/21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렇다고 하면 리퍼트가 생텍쥐베리를 격추했다는 주장을 입증할 자료가 없는 셈이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인데, 생텍쥐베리가 탔다는 기체에서 총격 흔적이 혹시 발견되었나요? 너무 오랫동안 바닷속에 있어서 부식되어 찾을 수 없었나.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첨부한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인양된 잔해도 워낙 오랜 세월 동안 바다 속에 있었기에 심하게 파손되고 부식되어 딱히 추락 원인을 정확히 잡아낼 수 없다고 합니다.-_-

  3. 백색별 2008/05/20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요즘 차길진씨의 글을 많이 보는데, 이분의 글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종교에 상관없이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뉴스검색에서 검색할수 있습니다.

  4. 라피에사쥬 2008/05/21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La Provence지의 기사가 이슈가 되었을때 리퍼트병장의 격추기록과 또 다른 가설등을 인용해 관련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잘 정리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deutsch님// 리퍼트의 당시 계급은 obergefreiter로 hauptgefreiter 같은 특수 병계급을 제외하고는 병계급중 가장 상위의 계급입니다. 한국군은 같은 위치에 병장을 쓰고 있고 대부분의 번역용례 역시 최상위 병계급을 병장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당대 독일 공군과 해군에는 한국군의 이병에 해당하는 계급이 없었고, 장기복무한 병장에게 hauptgefreiter(44년 12월 5일부터 stabsgefreiter)를 부여하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구분상으로는 현 한국군의 병 계급체계와도 비교적 유사한 편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라피에사쥬 님도 정리해주신 바가 있었군요. 이글루는 검색이 잘 안되는 것 같아서 미처 몰랐습니다. 주소 알려주시면 트랙백을 걸든지 하겠습니다.^^

  5. 일화 2008/05/21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인간의 기억만큼 믿을 수 없는 것도 없군요. 잘 봤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참전용사들의 회고담을 봐도 남아있는 당대 기록과 어찌 그리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신기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역시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한가 봅니다.=_=

    • 獨步 2008/05/21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의 소재로도 종종 등장하는 데자뷰, 즉 기시감이라는 것도 결국 냉정하게 따져보면 뇌의 착각이라죠.

      그런데 이렇듯 망각을 포함하여 인간의 기억이 불완전한 것이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연인이든 부부든 인연을 맺고 몇 년 지난 후 대화를 해보면 먼저 목맸던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아니라고 증언한다죠(웃음).

      이것은 만화 도라에몽에도 나오는 에피소드인데... 이러한 논쟁(?)이 '뭐 누가 먼저 시작했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이렇게 우리 잘살고 있음 된거지'로 끝나야지 온갖가지 증거자료가 등장하며 내 말이 맞다... 가 되면 이 얼마나 로맨틱하지 못한 시츄에이션 되겠습니까(껄껄).

      전국민의 사진작가 시대에 저는 오히려 사진이란 것을 예전부터 별로 즐기지 않았는데... 그 배경 가운데 하나가 '진정 소중한 기억은 가슴에 새기는 것'이란 저답지 않은 고집 때문이랍니다(나름진지).

      변색되고 탈색한들 어떻겠습니까. 그 나름대로 힘든 순간 떠올렸을 때 삶의 힘이 되면 그만인 것을(미소)...

    • 일화 2008/05/21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보님 // 저말고도 사진에 가치를 두지않는 분이 있다니 무척 반갑네요. 요새는 하도 여기저기서 찍어대는 지라 영 적응이 안되서 말이죠...

  6. 비밀방문자 2008/05/21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7. deutsch 2008/05/22 0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승병님께 제안하나 드립니다. 독일군 관련 용어들의 정리 작업을 혹시 해보실 생각없으신지요? 물론 승병님 혼자만 그 부담을 다 지시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 일종의 공동 프로젝트로 (저도 굉장히 부족합니다만 참여하겠습니다) 몇 가지 분야의 용어에 대해 표준 번역을 "제안"하는 작업입니다. 독일 국방군 및 친위대, 돌격대 계급명, 독일 군사 용어에 대한 한국어 번역을 지금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집단은 없습니다. (SS와 SA의 계급명 등은 직역과 의역을 동시에 해야할 것입니다. 모든 문서에 직역한 "상급 돌격지도자"등의 명칭을 쓰기는 .... ㄷㄷㄷ) 승병님이 따로 운영하시는 포럼을 통해 독일 육해공군 및 SS,SA의 계급명과 군사 용어들의 표준 번역어 작업(Armeegruppe와 Gruppearmee같은)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5/27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고, 제가 다른 곳에 신경쓰다보니 답이 늦었습니다. 용어 정리작업은 사실 저도 예전부터 추진하던 것이긴 한데, 적당한 표준 플랫폼을 마련하지 못해 — 사실은 게을러서 T.T —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저는 오히려 종현님께서 위키피디아에 다 하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제가 총대를 매야 한다면 저 위에 비워놓은 Archive 쪽에다가 적절한 공간을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당장은 바쁘니 여름휴가 무렵에나 시작해보죠. 단순한 건의가 아닌 건설적 도움을 제안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 deutsch 2008/05/29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총대를 메시기엔 가장 적합한 분이 아니겠습니까 음하하 (공 넘기기 ㅋㅋㅋ) 거기에 우마왕님과 길잃은어린양님도 반드시 포함시켜야죠... 저야 뭐.. ;;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