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연방군의 제2차 세계대전 준(準) 공간사(semi-official history)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이하 DRZW)』 시리즈에 대해서는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세 차례나 소개한 바 있다:
- 독일의 2차 세계대전 공간사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 독일 2차 세계대전 공간사 8권 「동부전선 1943/44」의 첫인상
- 2008년의 기대되는 2차대전사 신간들, Pt. 1
특히 마지막 글에서는 올해로 예정된 DRZW 시리즈 최후의 10권에 대한 예고를 이미 날린 바 있다. 그리고 MGFA(독일연방군 군사사연구소)는 예정대로 지난 4월에 대망의 10권(10/1, 10/2)를 출간하였다. 이로써 1979년 첫 1권이 발간된 이래 장장 꼬박 30년(!)을 이어온 편찬사업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홈지기가 이 사업에 관계된 바는 없으나 순수한(?) 2차 세계대전사 팬으로서 이 시리즈 완간에 매진한 독일 연구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예정대로라면 홈지기는 4월에 10권이 발간되자마자 잽싸게 입수하여 늦어도 5월 초에는 소개글을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MB 정부 출범과 함께 환율 절하의 폭풍이 밀려와서 유로화 환율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올라버렸다. 권당 50유로, 우리 돈으로 8만 원에 가까운 책을 선뜻 집어들기에는 아직 홈지기의 주머니 사정이 그리 신통치 않았다 — 물론 윤시원 님같은 독실한 신자에 비해 믿음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간절한 믿음의 갈구를 마눌님의 모습으로 떨쳐내며 다잡기를 한달 반 넘게 하다가, 결국 모처에 출강한 강연료를 덥썩 받아든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을 지름의 클릭으로 옮겨냈다. 그리고 빠른 일처리를 자랑하는 독일 아마존은 역시 단 6일 만에 묵직한 상자를 안겨 주었다. 최근에 여러 책 상자를 받아들던 가운데서도 가장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단숨에 도착한 책 상자 | ![]() 그 안에 담겨 있던 DRZW 10권 |
돌이켜 보면 홈지기가 DRZW 시리즈의 존재를 처음 인지하고 사 모으기 시작한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기록을 뒤져보니 2000년 5월 31일에 1~6권(총 7책)을 한꺼번에 주문했었다. 아직 마르크화로 결제하던 시절, 그 때는 권당 가격이 100마르크 정도, 우리 돈으로 5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이렇게 두툼하고 알찬 책 가격 치고는 꽤나 싸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략 한 달 과외비를 탁탁 털어서 과감히 지르고는, 퍽이나 거대한(?) 상자를 받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2001년 12월에 7권, 2007년 1월에 9권, 같은 해 4월에 8권을 거쳐 드디어 이번에 10권까지 채우게 된 것이다. 전권을 사 모으는데 8년의 시간과 8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 셈이다. 수많은 장서가들의 컬렉션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 오랜 기다림 끝에 또 한 시리즈의 전질을 꽉 채우니 기분은 자못 흐뭇하다.
이번 10권 「Der Zusammenbruch des Deutschen Reiches 1945(독일의 붕괴 1945)」은 내용 면에서도 꽤나 깔끔한 마무리를 짓고 있다. 10/1권은 「Die militärische Niederwerfung der Wehrmacht(독일국방군의 군사적 패배)」인데, 그간 남겨놨던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최후 지상전은 물론, 대전 말기 해전과 전략항공전에 대해 서술하며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군사적 활약에 대한 종지부를 찍었다.
- Die deutsche Seekriegführung 1943 bis 1945 (독일의 해전지휘 1943-1945)
- Die deutsche militärische Kriegführung im Westen 1944/45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군사적 전쟁지휘 1944-1945)
- Der Zusammenbruch der deutschen Verteidigung zwischen Ostsee und Karpaten (발트 해와 카르파티아 사이 독일 방어의 전면붕괴)
- Die Rote Armee auf deutschem Boden (독일 국경으로 쇄도하는 붉은 군대)
- Die strategische Bomberoffensive der Alliierten gegen Deutschland und die Reichsluftverteidigung in der Schlußphase des Krieges (독일을 향한 연합군의 전략 폭격공세와 전쟁 말기의 영공방어)
그간 7, 8권에서는 지상전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홈지기의 관심 또한 지상전에 잔뜩 맞춰져 있었는데, 6권 이래 방기되고 잊혀져 있던 해전과 전략항공전에 대한 언급은 매우 적절하게 보였다. 지상전 부분도 6, 8권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표준적인 내용에 대해 충실하게 다뤄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대전 말기 對독일 전략폭격 통계 그림 | ![]() 최후의 베를린 작전 전황도 |
10/2권은 「Die Folgen des Zweiten Weltkrieges(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역시 그대로 넘기기 어려운, 의미있는 전쟁 결산의 주제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 Die Wehrmacht 1944/45: Eine Armee im Untergang (독일 국방군 1944-1945: 몰락해가는 군대)
- Der Zusammenbruch des Wirtschaftslebens und die Anfänge des Wiederaufbaus (경제생활의 붕괴와 재건의 시작)
- Die deutsche Frage und Wandel des internationalen Systems (독일 문제와 국제 시스템의 변화)
- Das Schicksal der deutschen Kriegsgefangenen des Zweiten Weltkrieges (2차 세계대전기 독일 전쟁포로들의 운명)
- Ethnische »Säuberung« als Kriegsfolge: Ursachen und Verlauf der Vertreibung der deutschen Zivilbevölkerung aus Ostdeutschland und Osteuropa 1941 bis 1950 (전쟁 흐름에 따른 '인종청소': 동부 독일과 동유럽으로부터 독일계 민간인 추방의 원인과 과정 1941~1950)
- Im Schlagschatten des Krieges. Von den Folgen militärischer Gewalt und nationalsozialistischer Herrschaft in der frühen Nachkriegszeit (전쟁의 폭풍 그늘에서. 전후 초기, 군사적 소요와 민족사회주의 통치의 결과에 대해)
- Das Deutsche Reich und das Jahr 1945. Eine Bilanz (독일과 1945년. 그 대차대조표)
잘 아시다시피 독일은 전쟁 속에서 처절한 몰락을 겪었다. 군인, 민간인할 것 없이 막대한 희생을 치뤘고, 죽음을 간신히 벗어난 이들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생존과 재건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은 크게 손상되었다. 동유럽의 수많은 영토의 상실과 함께 몰려온 수많은 피난민들의 수용과 부양도 엄청난 사회적 부담이 되었다. 뒤이은 냉전의 굴레 속에서 소련에 끌려간 수많은 포로들은 이후 10년이나 이국 땅에 억류되어 있다가 뒤늦게 귀환하며 숱한 비극적 드라마를 낳기도 했다. 다시 감당하기에는 사회 곳곳에 너무나 큰 상처가 새겨진 전쟁이었다.
때문에 마지막 글을 맡은 롤프-디터 뮐러(Rolf-Dieter Müll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시리즈의 끝을 맺고 있다:
…… Der Zweite Weltkrieg ist deshalb auch in dieser Hinsicht der „letzte deutsche Krieg“ gewesen.
…… 따라서 이런 점에서 2차 세계대전은 "마지막 독일의 전쟁"이었다.
홈지기는 그 동안 1만 2천 페이지가 넘는 막대한 분량의 DRZW 시리즈를 조금씩 읽어보며 — 여전히 진행형이다 —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격렬했던 역사 속에서 독일인들이 찾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과거의 장병들이 이국 땅에서 벌이던 처절한 극한 상황에 대한 서사와 서스펜스, 향수 뿐인 것인가? 승자의 시선이 아닌, 전쟁을 도발한 독일국방군의 멍에를 물려받은 독일연방군 스스로는 어떻게 그런 과거를 정리하고 평가할 것인가? DRZW는 육해공의 군사작전뿐 아니라 전쟁에 임한 독일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고루 다룸으로써 끔찍했던 전쟁을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기쁨을 주었다. 더불어 (여전히 부족한) 독일어 공부를 좀 더 하도록 신선한 자극이 되었음도 빼놓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스스로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맛깔난 영양제였다고나 할까.

책꽂이 두 칸을 채운 DRZW 시리즈 전질 13책. 4권과 5권 사이에는 4권의 별책 부도집이 끼워져 있다. 종이가 얇아서 그런지 1만 2천 페이지 분량 치고는 공간을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축 쳐져가는 여름이지만, 이제 온전히 1질이 꽂힌 책꽂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층 더 독서의 의욕이 솟는다. 이제는 계속 즐거운 고민을 거듭하며 완독까지 해낼 그 날을 기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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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축하드립니다. 전권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10/1의 내용은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군요. 저도 빨리 지갑 사정이 호전돼야 할텐데 주변 상황은 계속 신통치 않으니 걱정입니다.
앞으로 이 바닥도 경제력에 의한 양극화(?)가 나타나지는 않을지 두려운 대목이죠. 이럴 때는 교편 잡아 공금으로 책을 수집하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10/1은 장 제목은 그럴 듯한데 내용이 기존 단행본들보다 특별히 좋다거나 그런 부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죠.^^
홈지기님의 내공이 조금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될 비급을 취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계기'란 말이 의미심장하네요. 결국 읽기 전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
심히 부럽네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날이 한 5년 뒤에 올 줄 알았습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상세하게 다룬 책이 꽤나 있어서 다 소개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어권에서는 C. Duffy의 "Red Storm on the Reich"와 R. Schneider의 "Gotterdammerung 1945"가 있겠죠. 독일어권에서는 H. Lindenblatt의 "Pommern 1945"라든가 K. Dieckert의 "Der Kampf um Ostpreussen" 같은게 어떨까 합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맥주 한 병 열면서 리플이나 볼까 하면서 들렀는데 이것이 축하주가 되겠네요 - 얼치기 전쟁사애호가지만 당연 축하할 일이지 않겠습니까.
30년에 걸친 저작물의 전권소장자가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한 편으로 드는 우려(?)는... 홈지기님 가내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어쩌면 국가정보원, 경찰청 수장일 수 있는 그 분(!)께서 강연료의 존재를 알고 계셨는지 궁금하군요(덜덜and벌벌) - 금전수입불신고 및 개인유용에는 가공할 징벌이 내리지 않을까... 하는데 말입니다(소멸).
당장은 이중장부로 모면했습니다만, 아마 회계감사 때 적발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_=
'마지막 독일의 전쟁'이라는 대목을 보니 갑자기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건담'을 다룬 어느 블로그의 주인장이 최근의 건담 시리즈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거의 시리즈에서 토미노 감독이 연출했던 휴먼)드라마는 온데간데 없고, 어느새 한편의 전쟁다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아슬아슬했던 영광과 추억 놀이에 빠져 그것을 안주 삼아 즐기고 있는 무x충들의 한계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신병기 평가 부대를 다룬 최근의 시리즈에서는 나치 독일군 미화에 가까운 연출이 상당부분 들어 있다고 평해집니다.
독일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더 우울한 성향은 아닐 터인데.(...) 똑같이 전쟁에 의해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저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_^;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긴 하죠. 일본의 문화적 차이가 아무래도 많이 언급되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는 일본에서도 영화 "몰락(Der Untergang)"에 나오는 것처럼 연합군이 진공하여 자살, 처형, 추방 등 갖가지 형태로 인적청산이 벌어졌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거라 봅니다. 대전 말기와 전후 역사를 살펴보면, 역시 독일이 일본보다 입은 상처가 질적으로도 컸다는 차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전후 68세대 등의 등장과 함께 과거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죠. 독일도 1944년 중반에 항복하는 수준에서 끝냈다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일지는 의문입니다.
오오 경하드립니다. 홈페이지에 소개하셨을때부터 눈여겨보았는데 드디어 완결이군요. 개인적으로는 역시 "독일을 향한 연합군의 전략 폭격공세와 전쟁 말기의 영공방어"파트가 있는 10/1이 인상적인데 영문판은 과연 언제쯤 나올련지(영문판의 가격을 감안하면 아낀 돈으로 독일어 공부하는게 빠를것 같기도 합니다 -_-)
라피에사쥬 님이 관심 있어하실 부분은 7권에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1943/44년 전략항공전이 한창 피크였으니 말입니다. 10/1은 이미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전쟁 말기를 다루고 있어서 좀 맥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독일어 시간때 잠만 자지 말고 좀 성실히 배워 둘 걸 그랬습니다. 그랬으면 사전 뒤져가면서 더듬더듬 읽을 수라도 있을 텐데...;;
저도 고등학교 독일어에서 기억나는건 관사 'der des dem den……' 외운거랑 노래 몇 개 가사밖에는 없었습니다. 나중에서야 독일어 좀 들여다보려니 참 고역이더군요. 그래도 참고 하다보면 어떻게 또 머리가 트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