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사 팬들에게 지난 6월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바르바로사 작전, 바그라티온 작전 등 다양한 과거를 떠올려주는 한 달이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7월은 확실히 비중이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65년 전 강철의 격돌로 유명한 쿠르스크 전투를 아스라히 떠올리는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 믿는다. 바로 오늘(7월 5일)이 (공식적인) 성채 작전(Unternehmen Zitadelle)의 개시일이기도 하니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하겠다.

반 세기도 훌쩍 넘긴 전투이지만, 2차 세계대전사 팬의 견지에서는 지난 10여 년간의 발전이 그 이전 50년 보다 더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그간 모호했던 전말에 대해 독일, 러시아 양측의 좋은 연구서적들이 많이 나오면서 한층 풍부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음도 몇 차례 전한 바 있다. 이런 최신의 연구 동향을 추적하지 못한다면 쿠르스크 전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독일측의 시각은 사실 지난 2007년에 나온 준 공간사 DRZW 8권에 집약되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홈지기가 이전 소개글에서 다뤘다시피, 이는 쿠르스크 전투만을 다룬 단행본이 아니고 1943/44년의 동부전선 전황 전체의 맥락에서 128페이지를 할애한 책이다. 그러므로 세부 전개상황 기술에서는 불만족스럽긴 해도 전략/작전술/전술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평가는 고루 내리고 있다. (이 평가를 집약해서 한 번 소개하려고 기획은 계속 해왔는데 다른 일에 우선순위가 밀려 진행이 안 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 부분을 집필한 저자가 『전격전의 전설(Blitzkrieg-Legende)』을 쓴 프리저(K.-H. Frieser)임을 감안하면 대표성도 충분하다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탄탄한 단행본이 독일쪽에서 하나 나와 줬으면 싶지만, 당분간 그럴 움직임은 없는 듯하다.

영어권에서는 그리 뚜렷한 움직임은 없으나 올 초에 나왔던 베르그스트룀(C. Bergström)의 저작은 주목할 만하다. 베르그스트룀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독소전의 공중전에 대해 차분히 잘 파헤친 4부작 『Black Cross, Red Star』(현재 3권까지 출간)로 유명하다. 그는 이 시리즈 말고도 항공서적으로 유명한 Classic Publications에서 좀 더 짤막짤막한 독소전의 공중전사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Kursk: The Air Battle - July 1943』이다. 분량이래야 150페이지 정도이지만, 그의 스타일을 잘 살려 치열했던 쿠르스크 돌출부 상공의 격투를 잘 그리고 있다. 독소전 항공팬 여러분들이라면 역시 하나쯤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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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러시아측은 몇몇 연구자를 중심으로 아직도 흥미를 끌만한 내용들이 쏟아지는 추세이다. 지난 1999년 글란츠(D. M. Glantz)의 『The Battle of Kursk』가 나왔을 때만 해도, 러시아 연구자들이 여전히 과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객관적인 저작을 내놓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자극받았는지 최근의 저작들은 훨씬 상세한 진전이 눈에 띈다. 가장 선도적인 연구자는 자물린(В. Замулин)과 로프홉스키(Л. Лопуховский)를 들 수 있다. 이들은 2002~2003년 경에 2차대전사 잡지를 통해 참신한 자료들을 많이 소개하다가 2005년부터 각자 의미 있는 신작 4권을 쏟아낸 바 있다:

  • 『Прохоровка: неизвестное сражение великой войны(프로호롭카: 대전의 알려지지 않은 전투)』 (by В. Замулин)
  • 『Прохоровка: Без грифа секретности (프로호롭카: 기밀 제한 없는)』 (by Л. Лопуховский)
  • 『Курский излом: Решающая битва Отечественной войны (쿠르스크의 좌절: 대조국전쟁의 결정적 전투)』 (by В. Замулин)
  • 『Засекреченная Курская битва: Неизвестные документы свидетельствуют (기밀에 싸여있던 쿠르스크 전투: 미발굴 문헌의 공개)』 (by В. Замулин)

처음 이 책들을 입수했을 당시 홈지기의 인상도 이미 소개글로 남긴 바 있다. 『Курский излом』은 조금 다루는 부분이 다르지만, 나머지 3권은 공동연구하던 두 저자가 모두 프로호롭카 전투 전후를 중심으로 쓴 것이라 내용상 중복되기도 한다. 그래도 시기적으로 계속 자료를 발굴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덧붙였기에,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참신한 맛은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다. 내용 자체는 과거 나온 저작들이 제한된 자료로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던 부분을, 기밀 해제된 원사료 발굴로 메꾸고 있기에 아주 만족스럽다. 독일연방군 군사사연구소(MGFA)도 대략 15년 전부터 러시아연방 문서고와의 교류를 통해 쿠르스크 전투 관련 원사료를 공급받아서 DRZW 집필에 활용했다지만, 역시 현지인들의 이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자물린 등은 여기에 문헌을 추가 발굴하여 내년 쯤에 신작을 하나 더 낼 것 같다는 소식이다.

다만 러시아어의 장벽이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 홈지기도 러시아어 독해 속도는 좀체 빨라지지 않고 있다 — 내용 흡수와 소개에 고민이 따랐다. 그런데 다행히 『Курский излом』은 영어권 모 출판사에서 현재 영역(英譯)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내년 중에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늦어도 내후년 쯤에는 쿠르스크 전투 연구의 최신 내용에 대해 영어로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마 프로호롭카 전투 중심의 서적들에 대해서도 얼마 안 있어 영역이 이뤄지리라 예상한다.

이를 기다리기 지루해서 좀 더 러시아어로 빠르게 내용을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적당히 좋은 소식이 있다. 홈지기는 러시아 책들은 이상하게 너무나 빨리 절판이 되어버리니 기회가 될 때 팍팍 지르시라는 조언을 한 바 있다. 위에 열거한 4권이래야 2006~7년에 나온 책들인데 이 가운데 3권 정도는 벌써 절판되었다. 그래서 어디 소개하기도 뭣해 혼자 몹시 아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이런 2차 세계대전사 서적을 많이 내고 있는 출판사인 엑스모(Эксмо)가 이번 쿠르스크 전투 65주년을 맞이해서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하여 선보였다 — 이름하여 '1943. К 65-летию Курской битвы (1943. 쿠르스크 전투 65주년)'이다. 홈지기는 맨 처음에는 또 다른 책들을 찍어내나 했는데, 그건 아니고 이들 저작들을 시리즈만 바꿔 재출간하는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치졸한 상술이라고 비난하겠지만, 러시아 사정에서는 그나마도 감지덕지인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신간이 가격이 올라간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아마 『Прохоровка: неизвестное сражение великой войны』는 애초에 출판사가 달라 이 시리즈에 들어가기 힘들겠지만, 나머지 3권은 엑스모에서 나왔던 만큼 올해 중에 모두 표지를 바꿔 재출간될 예정이다. 그러니 뜻 있는 분들은 이번에는 꼭 기회를 잡으시기 바란다. 그 외에 어떤 새로운 저작들이 이 시리즈에 추가되어 나올지는 미지수인데, 확인되는대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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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해는 살인적인 환율 압박으로 외서 구매가 어려운 한 해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식 섭취 활동을 마냥 손 놓고 있기에는 여전히 재미있는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음을 어찌하랴. 아무쪼록 다들 알뜰하게 할인정보 두루 살펴가며 외서사냥 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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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獨步 2008/07/05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회수 0에 보는 상큼함... 등등 등수놀이하는 댓글을 보면 저러는 이유가 뭘까 했는데 막상 제가 해보니 꽤 재미있네요(웃음).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경제상황이 안좋을 때에는 '좋은 자료'도 좀 나중에 나와줬음 하는 바람까지 드는게 현실이지만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더란(낙담).

    뭐 저는 워낙에 다른 앞서나가는 분들을 멀리에서 뒤따라 막차타고 가는 형편이니 이런 소개글로 맛보기하며 살으렵니다(웃음).

  2. 일화 2008/07/05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서야 애시당초 능력밖이니 홈지기님 같은 분들의 하해와 같은 성은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는... 어쨌거나 2차대전사에 대해서 연구가 쌓여가고 있다니 기쁘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07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러시아 연구자들의 태산과 같은 은혜와 영어권 출판사들의 속 보이는 수완을 기대하고 삽니다.^^ 군사서적은 러시아어 저작의 번역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귀추가 주목될 따름입니다.

  3. dasleich 2008/07/05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진료실에 러시아 환자가 자주 찾아옵니다.
    짧은 러시아어 회화가 의외로 도움이 되더군요..
    뭐..쁘쇼. 나르말리너? (좀 덜아프십니까?) 정도만 해도..
    감격하더군요..그분들이..

    이제 독일어 책들은 사전만 있으면 읽어내려가는데 문제 없을 듯 한데..
    역시 러시아어는.. 최소한 지금부터 1년은 더 지나야 할 듯 싶습니다.

    사전하나 찾는데도 전전긍긍대는 정도이니...

    앞으로 홈지기님께서 신청하시는 책은 2차대전에 관해서는 독일어든/러시아어든 2권씩 신청해 주십시오.. 책 비용은 제가 싹 다 대겠습니다.
    어린양님꺼까지 3권씩 신청해도 좋습니다. 그 비용은 일절 제가 대지요...

    제가 러시아어를 좀 알기 시작하면 뭣합니까?
    어떤 책이 좋은지는 여전히 까막눈 수준인데 말입니다.T.T

    • Periskop 홈지기 2008/07/07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항구도시라 러시아인들이 제법 돌아다니는 모양입니다 —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러시아어는 사전 찾기가 매우 귀찮던데 적당한 전자사전도 발견하지 못해서 꽤나 갑갑합니다. 윤시원 님처럼 끼릴 알파벳 자판을 외우던지 해야겠습니다.

  4. 삽질랜드 2008/07/05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훗, 갑자기 위에 댓글을 보니 생각나는게 초급 수준의 러시아어 실력에 무슨 책인지 모르고 아무 책이나 샀다가 몇 달 뒤에 '자본주의 돼지들을 쳐부수기 위해 인민들은 피를 토하며 용맹하게 전진해 나갔다'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입니다'ㅅ';;;

    • Periskop 홈지기 2008/07/07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러시아인들은 요즘 생각보다 많이 자본주의와 나찌에 쩔어 있습니다.^^ 랜덤으로 찍으면 반대 극단으로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5. 윤민혁 2008/07/06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아아 영어도 못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분들께 격심한 질투심이 일고 있습니다... (...)



    ... 이러다가 언젠가 식칼을 들고 찾아가서 목을 잘라들고 Nice Boat 엔딩... (... 이런 오덕 orz)

  6. 우마왕 2008/07/06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Kursk: The Air Battle - July 1943"은 전작들과 달리 출판사 아이콘이 Classic으로 변경되었더군요.

    뭐 다른 러시아 책들은 굼벵이에도 추월당하는 제 끼릴 실력으로 볼 때 1/2 읽으면 영문판이 나오는 건 아닐까 싶은 불상사가 느껴집니다. OTL

  7. 길 잃은 어린양 2008/07/06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Засекреченная Курская битва는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이번 기회에는 입수하도록 해야 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8. 양성민 2008/07/07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 동안 못 들어왔더니 이런 일이 있었군요.

  9. noblenight 2008/07/07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회가 된다면 사서 보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최근들어 경제 압박에 힘들군요... 요새들어 점점더 경제 압박이 심해지는거 같습니다. 뭐 학교가 장학금도 쥐꼬리만큼만 주니 뭐 이건 속칭 초등학생들이 쓰는 안습? 상황인거 같습니다. 담주부터 이른바 8학군에 사교육 자리가 들어와서 다음달에는 조금 나아 질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뉴스 보니 사교육도 소득공제 입법안이 추진된다는군요... 점점 이눔의 나라가 살기 싫어지고 있습니다.
    전 내후년에 영어판이 나오면 읽어야 겠습니다. ㅎㅎ

    • Periskop 홈지기 2008/07/07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사교육 보수는 얼마나 하는지요? 저도 학창시절에 꽤 오랜 세월 사교육 서비스로 잡비 때우고 살았습니다만, 십수 년 동안 정말 보수는 안 올랐던 것 같습니다. 기세등등한 학원들에게 밀려서 그런건지……

    • noblenight 2008/07/08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극히 시장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저도 군입대전과 지금과 비교해 봣을때도 큰 변동은 없는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교육에 거품이 빠진다는 긍정적인 결과이라는 광속개념 주장들이 가끔 보이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경기가 확실히 않좋아지는건 분명한거 같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독일연방군의 제2차 세계대전 준(準) 공간사(semi-official history)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이하 DRZW)』 시리즈에 대해서는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세 차례나 소개한 바 있다:

특히 마지막 글에서는 올해로 예정된 DRZW 시리즈 최후의 10권에 대한 예고를 이미 날린 바 있다. 그리고 MGFA(독일연방군 군사사연구소)는 예정대로 지난 4월에 대망의 10권(10/1, 10/2)를 출간하였다. 이로써 1979년 첫 1권이 발간된 이래 장장 꼬박 30년(!)을 이어온 편찬사업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홈지기가 이 사업에 관계된 바는 없으나 순수한(?) 2차 세계대전사 팬으로서 이 시리즈 완간에 매진한 독일 연구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예정대로라면 홈지기는 4월에 10권이 발간되자마자 잽싸게 입수하여 늦어도 5월 초에는 소개글을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MB 정부 출범과 함께 환율 절하의 폭풍이 밀려와서 유로화 환율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올라버렸다. 권당 50유로, 우리 돈으로 8만 원에 가까운 책을 선뜻 집어들기에는 아직 홈지기의 주머니 사정이 그리 신통치 않았다 — 물론 윤시원 님같은 독실한 신자에 비해 믿음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간절한 믿음의 갈구를 마눌님의 모습으로 떨쳐내며 다잡기를 한달 반 넘게 하다가, 결국 모처에 출강한 강연료를 덥썩 받아든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을 지름의 클릭으로 옮겨냈다. 그리고 빠른 일처리를 자랑하는 독일 아마존은 역시 단 6일 만에 묵직한 상자를 안겨 주었다. 최근에 여러 책 상자를 받아들던 가운데서도 가장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A box from Amazon.de

단숨에 도착한 책 상자

DRZW Band 10/1 u. 10/2

그 안에 담겨 있던 DRZW 10권

돌이켜 보면 홈지기가 DRZW 시리즈의 존재를 처음 인지하고 사 모으기 시작한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기록을 뒤져보니 2000년 5월 31일에 1~6권(총 7책)을 한꺼번에 주문했었다. 아직 마르크화로 결제하던 시절, 그 때는 권당 가격이 100마르크 정도, 우리 돈으로 5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이렇게 두툼하고 알찬 책 가격 치고는 꽤나 싸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략 한 달 과외비를 탁탁 털어서 과감히 지르고는, 퍽이나 거대한(?) 상자를 받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2001년 12월에 7권, 2007년 1월에 9권, 같은 해 4월에 8권을 거쳐 드디어 이번에 10권까지 채우게 된 것이다. 전권을 사 모으는데 8년의 시간과 8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 셈이다. 수많은 장서가들의 컬렉션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 오랜 기다림 끝에 또 한 시리즈의 전질을 꽉 채우니 기분은 자못 흐뭇하다.

이번 10권 「Der Zusammenbruch des Deutschen Reiches 1945(독일의 붕괴 1945)」은 내용 면에서도 꽤나 깔끔한 마무리를 짓고 있다. 10/1권은 「Die militärische Niederwerfung der Wehrmacht(독일국방군의 군사적 패배)」인데, 그간 남겨놨던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최후 지상전은 물론, 대전 말기 해전과 전략항공전에 대해 서술하며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군사적 활약에 대한 종지부를 찍었다.

  1. Die deutsche Seekriegführung 1943 bis 1945 (독일의 해전지휘 1943-1945)
  2. Die deutsche militärische Kriegführung im Westen 1944/45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군사적 전쟁지휘 1944-1945)
  3. Der Zusammenbruch der deutschen Verteidigung zwischen Ostsee und Karpaten (발트 해와 카르파티아 사이 독일 방어의 전면붕괴)
  4. Die Rote Armee auf deutschem Boden (독일 국경으로 쇄도하는 붉은 군대)
  5. Die strategische Bomberoffensive der Alliierten gegen Deutschland und die Reichsluftverteidigung in der Schlußphase des Krieges (독일을 향한 연합군의 전략 폭격공세와 전쟁 말기의 영공방어)

그간 7, 8권에서는 지상전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홈지기의 관심 또한 지상전에 잔뜩 맞춰져 있었는데, 6권 이래 방기되고 잊혀져 있던 해전과 전략항공전에 대한 언급은 매우 적절하게 보였다. 지상전 부분도 6, 8권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표준적인 내용에 대해 충실하게 다뤄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DRZW sample map

대전 말기 對독일 전략폭격 통계 그림

DRZW sample map

최후의 베를린 작전 전황도

10/2권은 「Die Folgen des Zweiten Weltkrieges(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역시 그대로 넘기기 어려운, 의미있는 전쟁 결산의 주제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 Die Wehrmacht 1944/45: Eine Armee im Untergang (독일 국방군 1944-1945: 몰락해가는 군대)
  2. Der Zusammenbruch des Wirtschaftslebens und die Anfänge des Wiederaufbaus (경제생활의 붕괴와 재건의 시작)
  3. Die deutsche Frage und Wandel des internationalen Systems (독일 문제와 국제 시스템의 변화)
  4. Das Schicksal der deutschen Kriegsgefangenen des Zweiten Weltkrieges (2차 세계대전기 독일 전쟁포로들의 운명)
  5. Ethnische »Säuberung« als Kriegsfolge: Ursachen und Verlauf der Vertreibung der deutschen Zivilbevölkerung aus Ostdeutschland und Osteuropa 1941 bis 1950 (전쟁 흐름에 따른 '인종청소': 동부 독일과 동유럽으로부터 독일계 민간인 추방의 원인과 과정 1941~1950)
  6. Im Schlagschatten des Krieges. Von den Folgen militärischer Gewalt und nationalsozialistischer Herrschaft in der frühen Nachkriegszeit (전쟁의 폭풍 그늘에서. 전후 초기, 군사적 소요와 민족사회주의 통치의 결과에 대해)
  7. Das Deutsche Reich und das Jahr 1945. Eine Bilanz (독일과 1945년. 그 대차대조표)

잘 아시다시피 독일은 전쟁 속에서 처절한 몰락을 겪었다. 군인, 민간인할 것 없이 막대한 희생을 치뤘고, 죽음을 간신히 벗어난 이들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생존과 재건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은 크게 손상되었다. 동유럽의 수많은 영토의 상실과 함께 몰려온 수많은 피난민들의 수용과 부양도 엄청난 사회적 부담이 되었다. 뒤이은 냉전의 굴레 속에서 소련에 끌려간 수많은 포로들은 이후 10년이나 이국 땅에 억류되어 있다가 뒤늦게 귀환하며 숱한 비극적 드라마를 낳기도 했다. 다시 감당하기에는 사회 곳곳에 너무나 큰 상처가 새겨진 전쟁이었다.

때문에 마지막 글을 맡은 롤프-디터 뮐러(Rolf-Dieter Müll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시리즈의 끝을 맺고 있다:

…… Der Zweite Weltkrieg ist deshalb auch in dieser Hinsicht der „letzte deutsche Krieg“ gewesen.

…… 따라서 이런 점에서 2차 세계대전은 "마지막 독일의 전쟁"이었다.

홈지기는 그 동안 1만 2천 페이지가 넘는 막대한 분량의 DRZW 시리즈를 조금씩 읽어보며 — 여전히 진행형이다 — 자연스럽게 여러 생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격렬했던 역사 속에서 독일인들이 찾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과거의 장병들이 이국 땅에서 벌이던 처절한 극한 상황에 대한 서사와 서스펜스, 향수 뿐인 것인가? 승자의 시선이 아닌, 전쟁을 도발한 독일국방군의 멍에를 물려받은 독일연방군 스스로는 어떻게 그런 과거를 정리하고 평가할 것인가? DRZW는 육해공의 군사작전뿐 아니라 전쟁에 임한 독일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고루 다룸으로써 끔찍했던 전쟁을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기쁨을 주었다. 더불어 (여전히 부족한) 독일어 공부를 좀 더 하도록 신선한 자극이 되었음도 빼놓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스스로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맛깔난 영양제였다고나 할까.

DRZW full set

책꽂이 두 칸을 채운 DRZW 시리즈 전질 13책. 4권과 5권 사이에는 4권의 별책 부도집이 끼워져 있다. 종이가 얇아서 그런지 1만 2천 페이지 분량 치고는 공간을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축 쳐져가는 여름이지만, 이제 온전히 1질이 꽂힌 책꽂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층 더 독서의 의욕이 솟는다. 이제는 계속 즐거운 고민을 거듭하며 완독까지 해낼 그 날을 기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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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 잃은 어린양 2008/06/21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축하드립니다. 전권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10/1의 내용은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군요. 저도 빨리 지갑 사정이 호전돼야 할텐데 주변 상황은 계속 신통치 않으니 걱정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3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으로 이 바닥도 경제력에 의한 양극화(?)가 나타나지는 않을지 두려운 대목이죠. 이럴 때는 교편 잡아 공금으로 책을 수집하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10/1은 장 제목은 그럴 듯한데 내용이 기존 단행본들보다 특별히 좋다거나 그런 부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죠.^^

  2. 일화 2008/06/21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의 내공이 조금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될 비급을 취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3. 양성민 2008/06/21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히 부럽네요! 축하드립니다.

  4. 비밀방문자 2008/06/21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3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세하게 다룬 책이 꽤나 있어서 다 소개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어권에서는 C. Duffy의 "Red Storm on the Reich"와 R. Schneider의 "Gotterdammerung 1945"가 있겠죠. 독일어권에서는 H. Lindenblatt의 "Pommern 1945"라든가 K. Dieckert의 "Der Kampf um Ostpreussen" 같은게 어떨까 합니다.

    • 비밀방문자 2008/06/23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5. 獨步 2008/06/21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맥주 한 병 열면서 리플이나 볼까 하면서 들렀는데 이것이 축하주가 되겠네요 - 얼치기 전쟁사애호가지만 당연 축하할 일이지 않겠습니까.

    30년에 걸친 저작물의 전권소장자가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한 편으로 드는 우려(?)는... 홈지기님 가내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어쩌면 국가정보원, 경찰청 수장일 수 있는 그 분(!)께서 강연료의 존재를 알고 계셨는지 궁금하군요(덜덜and벌벌) - 금전수입불신고 및 개인유용에는 가공할 징벌이 내리지 않을까... 하는데 말입니다(소멸).

  6. 그라프 2008/06/22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독일의 전쟁'이라는 대목을 보니 갑자기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건담'을 다룬 어느 블로그의 주인장이 최근의 건담 시리즈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거의 시리즈에서 토미노 감독이 연출했던 휴먼)드라마는 온데간데 없고, 어느새 한편의 전쟁다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아슬아슬했던 영광과 추억 놀이에 빠져 그것을 안주 삼아 즐기고 있는 무x충들의 한계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신병기 평가 부대를 다룬 최근의 시리즈에서는 나치 독일군 미화에 가까운 연출이 상당부분 들어 있다고 평해집니다.

    독일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더 우울한 성향은 아닐 터인데.(...) 똑같이 전쟁에 의해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저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_^;

    • Periskop 홈지기 2008/06/23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긴 하죠. 일본의 문화적 차이가 아무래도 많이 언급되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는 일본에서도 영화 "몰락(Der Untergang)"에 나오는 것처럼 연합군이 진공하여 자살, 처형, 추방 등 갖가지 형태로 인적청산이 벌어졌으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거라 봅니다. 대전 말기와 전후 역사를 살펴보면, 역시 독일이 일본보다 입은 상처가 질적으로도 컸다는 차이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전후 68세대 등의 등장과 함께 과거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죠. 독일도 1944년 중반에 항복하는 수준에서 끝냈다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일지는 의문입니다.

  7. 라피에사쥬 2008/06/22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경하드립니다. 홈페이지에 소개하셨을때부터 눈여겨보았는데 드디어 완결이군요. 개인적으로는 역시 "독일을 향한 연합군의 전략 폭격공세와 전쟁 말기의 영공방어"파트가 있는 10/1이 인상적인데 영문판은 과연 언제쯤 나올련지(영문판의 가격을 감안하면 아낀 돈으로 독일어 공부하는게 빠를것 같기도 합니다 -_-)

    • Periskop 홈지기 2008/06/23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라피에사쥬 님이 관심 있어하실 부분은 7권에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1943/44년 전략항공전이 한창 피크였으니 말입니다. 10/1은 이미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전쟁 말기를 다루고 있어서 좀 맥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8. 슈타인호프 2008/06/24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등학교 독일어 시간때 잠만 자지 말고 좀 성실히 배워 둘 걸 그랬습니다. 그랬으면 사전 뒤져가면서 더듬더듬 읽을 수라도 있을 텐데...;;

    • Periskop 홈지기 2008/06/25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고등학교 독일어에서 기억나는건 관사 'der des dem den……' 외운거랑 노래 몇 개 가사밖에는 없었습니다. 나중에서야 독일어 좀 들여다보려니 참 고역이더군요. 그래도 참고 하다보면 어떻게 또 머리가 트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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