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통령이 CEO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시대이다. 정치가의 덕목과 기업가의 덕목이 크로스오버되는 시대 분위기이니, 오늘날의 정치사회 문제를 바라봄에 있어 경영 문제의 교훈을 빌려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오늘 풀어볼 '후광효과(halo effect)'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러하다.
이 글의 단초는 스위스 IMD(국제 경영개발원)의 필 로젠츠바이크(Phil Rosenzweig) 교수의 저서, 『The Halo Effect: ... and the Eight Other Business Delusions That Deceive Managers』가 제공해줬다. 이 책은 영어판이 나온지 불과 1년 조금 넘었을 따름이지만, 나온 초기부터 꽤나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당장 부제 — '... 그리고 경영인을 기만하는 다른 8가지 비즈니스의 망상들' — 만 봐도 굉장히 자극적인 면을 건드리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 '기만적인 망상'의 대상들은 세기의 위대한 경영서라고 꼽히던 책들 — 예를 들어 톰 피터스의 『초우량 기업의 조건 (In Search of Excellence)』,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 — 이었다. 이런 명저들이 주장하는 경영의 마법 주문과도 같은 지침들을 파헤쳐 그 허상을 밝혀내면서 커다란 반향을 끌어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파격적 인기를 업고 우리말로도 단숨에 번역되어 이미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홈지기가 보기에도 이 책은 자연과학의 엄밀성을 지향하지만, 아직 그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이른 경영학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진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후광효과(halo effect)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역시 본문을 잠시 인용하는 것이 적절할 듯 싶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Edward Thorndike)는 상사의 부하 평가 방식을 연구했다. 한 연구에서 그는 장교들에게 부하들의 다양한 특성, 예컨대 지능과 체격, 리더십과 성격 등을 평가해보라고 했다. 그는 결과에 깜짝 놀랐다. "우수한 병사"라고 생각되는 일부는 거의 모든 항목에서 높게 평가되었고, 반면에 다른 병사들은 모든 항목에서 평균 이하로 평가되었다. 장교들은 미남이고 품행이 바른 병사가 사격실력도 좋고, 전투화도 잘 닦고, 하모니카도 잘 분다고 생각한 듯했다. 손다이크는 이것을 후광효과(the Halo Effect)라고 불렀다. 또한 전반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병사들은 구체적인 기준에서도 나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악마효과(the Devil Effect)라고 불렀다.1
후광효과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손다이크가 관찰한 것처럼, 일반적인 인상을 토대로 구체적인 특성을 추론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개의 특성을 독립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체로 이들을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다. 후광효과는 심리적으로 일관된 그림을 그려내고 유지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줄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후광효과는 단순히 인지부조화를 줄이는 방법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들이 직접 평가하기 어려운 것들을 추론하는 데 사용하는 발견적인(heuristic) 방법이자 일종의 어림법칙(rule of thumb)이다. 우리는 그럴듯하고 실체적(tangible)이며 객관적인 듯한 정보를 이해한 다음, 보다 공허하고 모호한 특징들은 거기에 귀착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기록에 의해 잘 입증되는 후광효과의 사례인 면접시험을 살펴보자. 면접자가 가진 지원자 정보 가운데 가장 그럴듯하고 실체적인 정보는 무엇일까? 아마도 학위를 받은 학교와, 성적, 최종학위일 것이다. 면접관은 이처럼 그럴듯하고 실체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이는 정보들을 먼저 명확히 염두해 둔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덜 실체적인 정보들, 이를테면 지원자의 개인적 매너라든가 질문에 대한 답변 수준 등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Rosenzweig, Philip M. The Halo Effect. New York, NY: Free Press, 2007. p.50-53.2
이러한 후광효과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의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우리의 판단을 흐리는 후광으로 '기업의 실적'을 지목하고 있다. 공시를 통해 발표하는 재무실적은 무엇보다도 명확한 것처럼 보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다른 추상적인 특징들은 모두 이 후광효과을 받기 마련이다. '리더십'도 그 대표적 사례이다.
아마 리더십만큼 후광효과에 영향을 받기 쉬운 것은 없을 듯하다. 훌륭한 리더는 명확한 비전,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 자신감, 개인적 매력 등 중요한 가치를 가득 지녔다고 흔히 이야기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훌륭한 리더십의 요소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요소 각각을 정의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들 가운데 몇몇은 관찰자의 시각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며, 그 시각도 회사 실적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진지한 리더십 연구자였던 버팔로 뉴욕주립대의 故 제임스 마인들 교수는, 통찰적인 일련의 연구 끝에 실적과 무관하게 효과적인 리더십을 설명할 만족스러운 이론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우리는 좋은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 명확한 비전, 커뮤니케이션 기술, 훌륭한 판단력 등의 기준으로 —, 그러나 굉장히 넓은 범위의 행동들이 이 기준에 부합된다. 나에게 높은 실적을 낸 기업을 하나 알려주기만 하면, 난 언제나 그 기업 책임자의 긍정적인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 — 그의 비전의 명확성이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건, 명확한 판단력이건, 정직성이건 말이다. 반대로 어려운 시기에 몰락한 기업을 하나 알려주면, 왜 그 기업 리더가 실패했는지 설명할만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리더십에 대한 모든 책들에 뭔가 다른 것과 명확히 구분지어 판단할 수 있는 실적의 실마리 — 말하자면 재무실적 — 가 없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좋은 리더십을 구분해낼 수 없다. 일단 사람들은 어떤 기업이 좋은 성과를 냈다는 증거가 있기만 하면, 기업의 리더십은 물론, 기업문화, 고객지향점, 구성원의 자질까지 줄줄이 자신있게 연관지을 것이다.
— 같은 책. p.57-61.
이 책에서는 빌 게이츠 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분량상 전문 전제는 피하고 요점만 살펴보자. 2001년 미국에서 윈도우의 반독점소송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자 빌 게이츠는 단호하게 대응했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부와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며 회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무모한 리더십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불과 2년이 지나자 사태는 수습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최악의 상황, 즉 회사분할의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자 많은 이들은 단호한 태도로 회사의 위기를 수습한 강인한 리더십이라고 칭송했다. 빌 게이츠의 생각이나 리더십에는 별반 변한 것이 없었음에도 그 평가는 계속 변한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지난 부시 시니어 시대와 클린턴 시대를 통틀어 칭송을 받아오던 전 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도 있다. 한 때 경제의 연금술사로 불리던 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지자 무리한 저금리 정책으로 버블을 조장했다고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까지 하나하나 생각해가며 다른 이를 평가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편하고 뭔가 그럴듯한 측면 몇 가지를 후광삼아 뭉뚱그려 평가하는 것이다.
후광효과가 알려주는 것은 간단하다. 세상사는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의 제한된 인지 및 판단능력(또는 합리성)으로는 명쾌하게 판단하기가 극히 어렵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명쾌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매달려 전체의 모습을 색칠하고 그 이상의 판단을 거부한다. 무언가가 훌륭했기 때문에 좋은 실적을 거둔게 아니라,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훌륭한 점이 억지로 부각되는 것일 뿐임에도 사람들은 그 일부 훌륭한 점에 열광한다. 반대로 무언가가 형편없어 나쁜 실적을 거둔게 아니라, 실적이 나빴기 때문에 안좋은 점이 억지로 부각되는 것일 뿐임에도 사람들은 그 일부 안좋은 점에 쌍심지를 켠다. 이런 현상을 '조중동의 악랄한 책동'이라는 식으로 핑계삼으려면 끝도 없다. 오히려 톰 피터스나 짐 콜린스처럼 칭송이 자자하던 지식인들도 그 함정에 빠졌듯이, 이 문제는 악의가 있건 없건 부딪히기 쉬운 문제라고 보는게 맞다. 빠른 판단과 인지조화가 필요하던 급박한 환경에서 진화해오며 인간이 체득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이런 점에서 꾸준히 인터넷 상의 떡밥이 되고 있는 국개론3은 그냥 웃어넘길 유머에 지나지 않는다. 국개론이 이야기하는 국민의 습성은 동서고금에 걸친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MB가 당선되고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은 국민이 특별히 개XX여서가 아니라, 작금의 한국 사회를 덮고 있는 후광의 문제이다. 후광이 때로는 청계천이 되었건, 자사고와 뉴타운이 되었건, 정치는 결국 누가 어떤 후광으로 국민을 미혹시키냐에서 결판나게 마련이다. 분명 현재의 통합민주당이나 소수 진보진영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그럴듯하고 실체적이라고 여길만한 의제를 던지고 그 후광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 여기에 눈을 감는 (자칭)좌파가 있다면 완벽한 합리성과 완전시장에 목을 매는 (골수)우파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전환기에 정치인을 대하는 국민의 태도는 역시 같은 책에 실린 한 일화가 잘 대변해줄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언론의 자유와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1964년 미국 대법원 판결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대법관 포터 스튜어트(Potter Stewart)는 다음과 같이 길이 남을 판결을 남겼다. 그는 비록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좋은 정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내가 척 보니 알겠다 (I know it when I see it)"4
라고 했다……
— 같은 책. p.60.
"내가 척 보니 X는 빨갱이더라……", "내가 척 보니 X는 볍진이더라……", "내가 척 보니 X는 수구꼴통이더라……" 등은 슬슬 좀 지겹긴 해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버전을 바꿔가며 계속될 말들이다. 후광효과에 미혹되는 현실의 불완전한 인간상은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 사이에서 이상을 만들어보고 싶거든 국개론 푸념이나 하지 말고 이상으로 가는 실체적 미끼와 그 후광을 만드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할 일이다.
- 회색 처리한 부분은 필자가 갖고 있는 영어 초판본에는 없으나 한글 번역판본에 있는 내용이다. 영어판에 나중에 부가된 내용인지는 불분명하다.
- 한글 번역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이 많아 원문을 대조하여 수정하였다.
- DC 대선갤에서 유래되었다 전해지며, '국민개XX론'을 일컫는다 한다. 사익에 눈이 멀어 공익에 반하는 후보와 정파를 지지하는 국민을 조소하는 논리라나……
- 이 어구를 오해하지는 말길 바란다. 이 사건은 한 프랑스 영화('The Lovers')가 외설 혐의로 기소된 것인데, 스튜어트 법관은 외설이 아니라고 평결을 내리면서 딱히 근거가 불분명하자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원문은 위키피디아의 해당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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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점점 선험적으로 기업을 좋게 할 방법을 찾는게 불가능해 지는 듯 합니다.-_-;;
하긴 자꾸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이 줄어들기 때문에 적절한 practice를 끌어 내기가 너무 힘들지. 게다가 판단할 정보는 부족한데 무슨 연구든 '시사점'을 만들어내라는 압박 때문에 부지불식 중에라도 억지를 쓰는 일은 계속되고…… 하긴 컨설팅 업계만 하겠냐만ㅍㅍ 하여튼 soft science의 지향점을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지 나도 확실한 판단이 안 서.
헤일로 이펙트에 관한 채승병님의 글을 보니 이건 "종족의 우상"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유서깊은 오류인 것 같군요.
그렇죠,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해서 써먹을 곳이 없나 한창 고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