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는 환율 문제를 논하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인 '일물일가의 법칙(LOOP)'과 크루그먼, 돈부쉬의 기여(PTM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이번에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구매력평가, 즉 purchasing power parity(이하 PPP) 가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그런데 여기서의 '평가'는 評價가 아니라 平價임을 주의해야 한다. '동등한(또는 균등한)' 가치라는 의미에서 平을 쓴 것인데, 왜 굳이 혼동하기 쉬운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 아마도 일본어에서는 評이 ひょう, 平이 へい로 명확히 구분되므로 일본 쪽에서 平價라고 번역했는데 이걸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여하간 이것은 (이상적인 조건에서는) 같은 값어치(교환가치)의 각국 통화는 모두 동등한 '구매력'을 갖도록 환율이 결정될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럼 여기서 굳이 '구매력(purchasing power)'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PPP와 LOOP의 차이가 숨어 있다. LOOP은 PPP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는 단일한 상품에 대한 것이다. 지난 글에서 써먹은 바나나의 예를 상기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통용되는 환율을 설명하기에는 LOOP을 쓰기가 매우 곤란하다. 이건 LOOP이 꼭 틀려서라기 보다도 상품 대 상품의 비교가 근본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문제 중의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 대표적으로 먹거리의 경우 음식문화에 따라 수요가 천차만별이다. 말레이지아와 베트남이 인접해 있다지만, 세계 다섯 손가락 내에 드는 돼지고기 소비국가인 베트남에 비해 무슬림이 주인 말레이지아의 돼지고기 소비는 한참 떨어진다. 돼지고기의 시세차를 이용한 차익거래가 일어나도 양국의 외환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다르다. 지리적, 문화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1대 1로 비교할 수 있는 의미있는 상품부터가 그리 많지 않다.
구매력은 이런 부분을 감안하여 비교대상을 단일 상품의 가격이 아닌, 각국의 물가 수준 — 정확히는 소비자 물가지수(CPI) — 을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어느 나라건 소비자 물가지수는 그 나라 소비자들의 생활에 민감한, 수요가 매우 높은 대표적 상품들을 모아 가중평균하여 산출한다.1 결국 PPP는 각국의 소비자들은 같은 가치의 돈으로 각국 수준에서 동등한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환율이 조정된다는 의미이다. 이에 의하면 일본에서 (일본국민의 기준으로) 지극히 평범하게 의식주를 해결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누리는데 1달에 10만 엔이 들고, 한국에서는 (한국국민의 기준으로) 100만 원이 든다면 환율이 1엔=10원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것을 엄밀히는 절대적 PPP라고 한다. 반면 각국의 상이한 인플레이션이 반영되어 딱 이 값이 아니어도 안정한 비율(예를 들어 1엔=8원)이 유지된다는 것이 상대적 PPP이다.
PPP의 개념은 이미 15~16세기 무렵부터 나온 것이고, 20세기 초부터는 점증하는 환율 문제가 연계되어 꽤나 진지하게 논의가 전개되었다. LOOP이 이상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는 경제학자들도 PPP는 장기 균형환율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그래서 PPP에 입각한 환율 — 이른바 실질환율(real exchange rate, RER) — 을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현재의 환율이 중단기적으로 고평가/저평가되었는가를 가늠하려는 노력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PPP로 계산한 실질환율이 진짜 옳은 것일까? PPP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일까? 이 부분마저도 사실 명확하지가 않다 — 그래서 PPP는 여전히 '가설'이다. 이제껏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갖가지 분석을 통해 PPP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말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경제학계에서 PPP 가설의 부침은 단순히 하나의 학설에 대한 검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경제학의 '진리(내지 통념)'라는 것이 얼마나 제도와 환경에 민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이 점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하자.
PPP 가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유로운 외환거래에 기반한 변동환율제를 주장한 이는 역시 누가 뭐라해도 (故)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 대인이시다. 1950년대 종횡무진 일합을 겨루며 통화주의 세력을 주류로 끌어올린 프리드먼은 변동환율제를 도입해도 환율의 심각한 왜곡과, PPP 가설을 벗어나는 움직임은 두드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시장이 합리적으로 작동하여 불순한 악의 투기세력들을 저절로 척결하리라는 논리에 많은 경제학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많은 경제학자들을 감화시킨 프리드먼의 바로 그 주장을, 그가 라디오 오스트레일리아와 가진 인터뷰 일부로 알아보자:
……
질문자:
이제 달러 가격에 대한 또 다른 통념이나 오해 쪽으로 화제를 옮길 수 있겠지요? 많은 일반인들은 그게 세계 방방곡곡에서 밀려오는 뉴스에 매달리는 스크린자키(screen jockey)2인양 여기는 것 같은데요. 매 순간 환율을 결정하는 게 그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무식하다고 하는) 스크린자키란 거죠. 경제학자로서 이 변동환율제 하에서 누가 환율을 결정하는 것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프리드먼 교수:
음, 하루하루 단위의 수준에서는 당신이 말한 투기꾼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쉬운 질문을 하나 던져 보도록 하죠: 자, 당신은 투기꾼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돈을 잃습니까? 당신은 뭔가 물건을, 그게 통화일 수도 있고, 밀일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겠지요, 여하간에 상대적으로 싸게 사서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아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만약 당신이 싼 값에 물건을 샀다면, 당신은 사지 않는 것보다 이미 값을 비싸게 만든 겁니다. 당신이 비싼 값에 물건을 판다면, 당신은 역시 팔지 않는 것보다 이미 값을 싸게 만든 겁니다. 투기꾼이 돈을 버는 행위는, 전반적으로는, 다소의 드문 이론적 예외가 있긴 해도 전반적으로는, 시장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불안정하게 만드는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얘기하던대로 페그제 환율을 채택했다면, 이건 투기꾼들을 초청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투기꾼들이 일방통행하도록 했기 때문이죠. 투기꾼들은 정부가 거래 상대자이기 때문에 돈을 잃을래야 잃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돈을 잃어주기 때문에 투기꾼들이 돈을 버는 일이 일어납니다. 정부는 사실상 지속할 수 없는 정책을 쫓고 있는 겁니다. 정부는 돈을 쓰려는 환율 문제와는 맞지 않는 내부 통화정책을 쫓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아직도 그들은 환율을 고정시키려 하고 있어요. 이런 프로세스는 투기꾼들에게 일방적 옵션을 주는거죠.
그러나, 변동환율제 시장에서는, 투기꾼들은 시장을 불안하게 해야 돈을 버는게 아니라,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일조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 그러니까 1달, 2달, 혹은 3달 정도가 아니고서는 환율과 변동환율제는 두 가지 근본적 힘에 의해 결정됩니다: 첫 번째는 교역, 즉 수입, 수출, 어떤 국가의 수출품에 대한 상대 우위 같은 것이고, 두 번째는 자본 이동입니다.
어떤 국가가 외국인들이 자본을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곳이라면, 그 국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환율을 가질 겁니다.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라면 낮은 환율을 갖겠죠. 그게 변동환율제의 근본입니다. 환율에 대해서는 특별한게 없다는걸 강조합니다. 호주가 양모 가격을 박아놓으려고 한다면, 양모가 호주의 주요 생산품이라고 하고요, 그리고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다면, 그건 환율을 너무 높게 책정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냅니다. 가격이 너무 높으면, 양모를 팔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양모를 살려는 사람들은 부족해집니다. 양모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되면, 반대 현상이 벌어집니다. 앞의 경우에서는 정부가 양모를 수매하여 쌓아놔야만 가격이 유지되고, 뒤의 경우에서는 양모 재고를 방출해야만 됩니다. 내가 방금 말했던 모든게 태국 바트화의 경우3에도 꼭 들어맞는 겁니다.
……
원문: Professor Milton Friedman Interviewed by Radio Australia, 17 July 1998
이 인터뷰 내용은 1990년대 말에 와서도 1950년대 이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는 프리드먼의 고집을 정확히 보여준다. (불필요할 정도로 좀 길게 인용한 것은 나중에 고정환율제 찬반 논의 재료로 써먹기 위해서이니 양해바란다.) 프리드먼의 주장은 투기꾼의 단기차익을 노린 거래행태는 오히려 시장이 균형가격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거래행태로 어쩌다 조금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중장기 수익률에서는 별 초과수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므로 투기꾼들이 위험한 불장난을 해봤자 결국 하나 둘 오링나면서 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4
프리드먼의 영향이 어찌나 강했는지 1950~60년대의 PPP 가설에 대한 검증 연구에서는 환율이 비교적 안정적인 장기 추세를 가지며, 그게 PPP 가설의 실질환율도 지지하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여럿 등장했다.5 브레튼-우즈 체제가 표류한 1970년대 초까지 이 기세는 계속 이어져서 통화주의자들의 주장대로 PPP 가설에 입각한 변동환율제의 찬미는 경제학계의 대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막과 함께 변동환율제가 도입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극적인 반전은 여기서 일어난다. 정작 1970년대 금본위제 폐지와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에 환율 변화가 그 이전의 연구 결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 번에 순명大帝께서 크루그먼의 국제경제학 교과서를 스캔해 설명한 그림에 잘 나와 있다.) 예상과는 다른 환율 널뛰기와 큰 변동성은 PPP 가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초에 이르면 'PPP 가설은 틀렸다'라는 주장이 다시 경제학계를 휩쓸게 된다.6 기존 제도 하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갖고 하나의 가설, 더 나아가 다른 제도가 옳다고 얘기가 되었으나, 정작 제도를 바꾸고 나니 그 가설 자체가 흔들려버리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경제사회문제의 이론과 현실이 어긋나고 서로 뒤통수를 치는 이런 흔한 문제가 고스란히 환율 문제에서도 벌어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게 다가 아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 이번에는 PPP 가설을 부정한 연구결과들이 올바른 방법론을 사용했느냐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PPP 가설이 중단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PPP 가설이 맞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다시 끓어 올랐다. PPP 가설이 장기적인 추세나마 맞다는 것을 보이려면, PPP 가설로 예견되는 실질환율로 돌아오려는 장기적 경향이 존재함을 보여야 한다. (순명大帝 글의 엔/달러 환율과 달러/마르크 환율 추세 그림을 추가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로 환율의 변동 패턴이 확연히 바뀌었기 때문에 의미있는 데이터는 1970년대 이후만 골라 써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주식시장 주변의 여러 협잡꾼들이야 일봉, 주봉 챠트를 현란히 늘어놓고 아무렇게나 이동평균선 따라 추세선을 그어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그만이지만, 학문이 어디 그런가. 실질환율 추세로의 복귀 여부를 엄밀히 검정하려면 적어도 25년 분량 이상의 충분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지적 등등 1980년대에 어떤 결론을 내리기에는 데이터가 너무 부족했다는 약점이 제기되었다. 1980년대 쏟아진 반증들은 통계적으로 하자가 있었다는 지적들이었다.
계량경제학에 이런 약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여러 새로운 통계적 방법론들이 도입되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 PPP 가설의 입지는 또 변한다. 요약하자면, 'PPP 가설은 장기적인 수준에서 맞는 것 같다' 정도이다. '맞는 것 같다'라고 한 것은 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학자들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PPP 가설이 장기적으로 맞다고 하더라도, 실질환율에서 벗어난 변동이 반감하려면 최소 (무려) 3~5년은 걸린다는 점에 웬만큼 공감하고 있다. 용수철의 예로 돌아간다면, 이 환율의 중장기 변화는 너무 변화무쌍해서 용수철이 걸려 있는지 안 걸려 있는지도 모르고, 설사 걸려 있다고 해도 너무 댐핑(damping)이 커서 아주 천천히 돌아간다는 것 까지만 알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 사이에 격하게 동요하는 이유와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분량의 설명이 필요하고, 아직도 끊임없이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모호한 결론을 낼 것임에도 장황하게 설명하여 독자 여러분들은 좀 지루했을지 모르겠다.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많은 경제학 이론이라는게 근본적으로 물리학 법칙만큼의 엄밀함을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경제사회 문제의 연구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집하는 데이터는 불가피하게 과거의 것들이고, 이것들은 실험실의 잘 통제된 환경에서 측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설이 잡아내지 못한 수많은 요인들이 범벅이 된 산물이다. 비단 환율이 아니더라도 복잡한 경제사회 문제들은 가설이 검정된 것처럼 보여도 실은 다른 효과에 의해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만큼 과거의 경험에 기반하여 미래의 정책이나 전략을 합리화하기에는 위험천만한 함정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더군다나 그러한 정책이나 전략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위의 프리드먼처럼) 대개 일견 합리적인 논리와 나름의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경제사회 문제를 논함에 있어 폴리페서나 자칭/타칭 논객들이 백업하는 당파적 주장에 휩쓸리지 않고 명징한 사고주체로서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 한국 CPI는 국가통계포털의 "물가지수는 어떻게 만드나?"를 참조하기 바란다.
- 스크린자키의 "정확한" 뜻은 필자도 모르겠다. 다만 흔히 쓰는 디스크자키(DJ)에 빗대어 음반 대신에 각종 시황, 뉴스 전광판 내용을 해설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문맥 상으로는 이렇게 그때그때의 뉴스에 휘둘려 차트 보고 초단타 내지 단타거래를 일삼는 거래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태국 바트화 사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 필자는 이 주장을 소싯적인 15년 전에 프리드먼의 『돈의 이야기(Money Mischief: Episodes in Monetary History)』란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역시 그땐 꽤나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번역서가 출판사인 고려원 부도와 함께 영영 절판이 되어버린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 대표적으로 프리드먼과 슈워츠 공저의 『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867-1960』을 참고하길 바란다.
- 엄밀히 설명하려면 시계열분석(time series analysis)의 단위근 검정(unit-root test)이나 공적분(cointegration) 등의 개념을 알아야 하나 이걸 당장 쉽게 설명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므로 일단 패스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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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공력의 끝이 어디란 말씀입니까?
본좌라는 표현도 너무 모자라, 거의 신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자극을 받아,
올해는 경제학 공부를 좀 해야 겠습니다.
12년전 사법시험 준비할때,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망각속에 묻어두었던 열정을 다시금 발굴할때인것 같습니다.
좋은 글에 훌륭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헉스, 군사사야 취미니까 아는거고, 자연과학이야 학창시절 전공이니까 아는거고, 경제/경영문제야 요즘 제 밥줄이니까 공부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_- 권 선생님의 전공을 생각한다면 제가 뭐가 나을게 있겠습니까. 꾸준히 학습하고 세상을 다면적으로 바라보려는 많은 분들의 열정을 흠모하고 쫓아갈 뿐입니다.
아주~~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저 역시 거의 반평생을 자연과학 속에서만 지냈습니다. 미국에 와서 포닥 중에 잠시 짬을 내서 근처 한 주립대학에서 경영대학원을 마쳤죠. 실제 제가 전공한 분야는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이었지만, 가장 재미있게 들은 수업은 International Management란 과목이었습니다.
이과 공부 특히나 실험실 현장에서 수행하는 실험의 경우 한 가지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 다른 접근을 하는 2~3개의 실험으로 교차 증명을 하고는 합니다. 그런 일에 익숙해 있던 제게 경영학, 특히나 International Management를 포함해서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수 많은 과목들이 소위 학문이란 타이틀을 걸고 학생들에게 수업되는 것에 처음에는 참 많은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논문이나 저서의 저자들이 이과생의 눈에 꽤나 주관적으로 보이는데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고요.
아마 이번 글의 화두 역시 단순한 PPP 가설이라기 보다는 당파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한 가지 사물이나 현상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객관적으로 볼 것이며, 정책 당국자가 특정 정책을 수행할 때 자신의 논리를 위해 특정 이론을 억지로 끌어 맞추는 데 대한 경계의 글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위에 댓글을 남기신 dasleich님 말씀마따나 이과출신인 분께서 어마어마한 내공을 보여주시는데 많이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dasleich님께서도 사시 준비를 하셨다니…. 저 역시 LSAT 을 준비 중이랍니다. 뭐 작정을 하고 준비하는 것은 아니고 그리고 이 나이에 변호사가 되어서 경력을 바꿀 생각 역시 아니지만, 법학을 통해 생각을 좀 더 잘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마침 근처 대학에 법대 야간반이 생겨서 장기적으로 한 5년 정도에 걸쳐 졸업을 해 볼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여기 법대 등록금이 좀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
아무튼 좋은 글로 또 다시 제 머리 속을 refresh할 수 있는 계기를 주셨군요. 늘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자연과학으로 박사학위 따시고 MIS로 MBA까지 하셨다니 놀랍군요. 원래 저도 경영학을 처음 접했을 때는 사기극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도 계속 보다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고충이 있었고, 자연과학에서는 배울 일이 없었던 통찰도 많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학문체계에서 전승, 발전되던 프레임워크로만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걸 배웠다고나 할까요. 역시 세상 이치를 깨달으려면 공부하고 사색할게 아직 너무 많습니다.=_= 아무쪼록 준비하시는 법학 공부에서 뜻한 바대로 많은 통찰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