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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6 어떤 홍보 전문가의 처칠 진단 (17)

다음은 어떤 홍보 전문가가 모 언론사의 요청에 따라 1942년에 처칠의 대중 화술을 진단한 글이다:

최근 한 중립 언론사가 처칠 씨는 어떻게 영국 여론에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어왔다. 최악의 반전과 사기를 꺾는 패배들, 초기의 의심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국 대중은 이 영리한 문장가에 사로잡혀 그의 우둔한 정책과 군사 리더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질문은 대답하기에 쉬우면서도 어렵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은, 처칠 씨는 정치와 군사 리더십 양면에서 전략적 감각이 전혀 없긴 해도, 비상하게 능란한 전술가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적 정당과 언론을 다루는 리더십에서는 거장이며, 현존하는 영국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이다. 알려진대로 딱히 대단한 지성을 타고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의 수법은 누구나 생각할만큼 원시적이기도 하다. 그의 아이디어들은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않고, 누구든 그가 말하거나 행할 바를 그대로 예측할 수 있다.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영국 수상에 취임했을 때, 그는 후퇴나 패배를 망라한 어떤 정치적, 군사적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끝까지 버텨내겠다는 슬로건을 선언했다. 이는 모든 비난을 막아 주었다: "피와, 땀과 눈물1." 이런 슬로건 하에서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날 위험 없이, 쓰디쓴 결말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승리한다면 대중은 그런 슬로건 따위를 기억해내진 못할테고, 패배한다면 그는 예언가인 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칠 씨는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 병상 옆에 서서 이런 말을 하는 의사와 같다: "이 분 돌아가시겠군요." 환자 상태가 더 악화되거나, 죽는다면, 그는 옳은 것으로 판명난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의 탁월한 예지력을 자랑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환자가 호전되거나, 낫는다고 해도, 어느 누가 의사 말과 달리 병세가 호전되었다며 그 의사를 비난하겠는가?

누구도 이런 수법이 영리하다던가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는 이게 먹힌다. 지금 이 순간까지, 처칠 씨는 그렇게 해 왔다. 예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그의 속임수로부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도는 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주 동안 벌어진 대영제국의 심각한 패배 뒤에, 그는 분명 바로 이런 상황을 예상해왔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의 선견지명은 대중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처칠 씨가 두 달 뒤에 이야기할 바를, 그리고 당장 오늘 이야기할 바를 예측할 수 있다. 그의 수법 중 하나는 과거를 가장 암담한 시기로 색칠하고는, 현실에서 은빛 서광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도 그가 상황을 회색빛 정도로 봤던 지난 8월 연설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그가 오늘 이야기하는 것만 보고서 그 때 체감하던 심각성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을 과거보다 더 좋아 보이게 하기 위해, 과거가 더 나빴던 것처럼 만드는게 그의 수법이다! 이건 사실에 반하지만, 그는 대중의 망각에 의존한다. 대중은 그가 지난 8월에 정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찾아보고 오늘 한 이야기와 비교해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

그는 그 자신과, 그의 정책 또는 전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불편함을 다루는 대단히 영리한 술책을 갖고 있다. 그는 비난 비스무리한 것들은 허용한다. 대영제국이 타격을 입고 비틀거릴 때, 그는 잠시 무대 뒤로 물러나 대중들이 비난을 퍼붓도록 내버려둔다. 말하자면 그는 밸브를 활짝 열고, 대중들의 분노가 흩어지도록 한다.

이게 그의 뜻에 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게임을 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는 대중이 가장 시끄럽게 목소리를 외치면 곧 목이 쉴 것임을 안다. 이른바 처칠판 위기가 정점에 다다르면,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등장할 것이다. 그는 파도를 잠재우고, 술에 물을 탈 것이며, 패배를 최소화하고, 그가 전부 예견한 것이라 설명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기가 더 심한 것도 예견했었다고 하며, 그렇게까지 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고 할 것이다. 대중들은 우박을 맞지 않고, 단지 비만 맞았다고 기뻐할 것이다……2

이 평가는 지극히 악의적이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불편한 진실을 일부 담고 있기도 하다. 처칠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신감과 담력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그는 쉽사리 지도자를 교체하기 어려운 전시 상황을 톡톡히 이용해가며 즐겼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영국 내에서도 많이 받았다. 이 점이 평시의 지도자들은 함부로 처칠의 리더십을 따라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꿰뚫어 본 전문가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괴벨스 박사였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처칠이 수상에 취임한 직후인 1940년 5월 13일에 하원에서 한 연설이다. 여기서 그는 "저는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2. 주간 『Das Reich』誌 1942년 3월 1일자에 실린 글이다.
2008/08/06 01:05 2008/08/0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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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8/06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기린아 2008/08/06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ㄲㄲㄲ. 역시 괴벨스 박사. 괴벨스는 이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 같아요. 그런점에서 보면 괴벨스는 역사학을 했어도 잘 했을거 같은 느낌. 말하는 완전히 양웬리네 -_-;;;

  3. 獨步 2008/08/06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 전 6.29 이후 대선 당시 노태우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YS/JP에 대한 흑색선전물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참 가관이더군요(헛웃음). 찌라시다운 과장이 내용의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찌라시조차 일말의 진실은 담고 있는게 사실인거보면 어떻게 저런 양반들이 정치사의 거목으로 군림했었나... 싶은 정치혐오증이 느껴질 수 밖에 없더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08/07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 현대사에서는 그런걸 불가피하다고 자신을 위안할 이유가 매우 많았겠지요. 막막한 숲을 한 사람이 헤치고 가고, 다른 사람들이 뒤따르다보면 길이 만들어지게 되는 원리는 나쁜 쪽으로 더 많이 작용했을 겁니다.^^

  4. uriel  2008/08/06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괴벨스야말로 한 50년은 타임머신 타고 앞으로 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0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인간의 속성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역시 한 가닥 한 인물들의 어록 속에는 오늘날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괴벨스처럼 그런 속성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데 재능을 발휘한 인물들에게서는 서늘함이 느껴지는 대목이 종종 나오죠.

  5. 삽질랜드 2008/08/06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괴벨스 선생은 히틀러 때문에 스킬이 증가 하신 듯'ㅅ'

  6. 일화 2008/08/07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방식을 엄청난 두께의 얼굴로 밀어붙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거죠. 단순한 전략일수록 고도의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 거라... 롬멜에게 호되게 당했을 때의 연설도 다른 사람에게서 보기 힘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7. 비밀방문자 2008/08/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8. 양성민 2008/08/07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고 보니 영화 매트릭스 3부에서도 'Deus ex machina'가 나왔었더군요.

  9. chrisx 2008/08/09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랄한 평가의 주인공이 괴벨스였다니.
    고수들끼리는 서로 알아보는 건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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