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6/14 뷰캐넌, 처칠을 들어 부시를 내리치다 (22)
  2. 2008/04/14 2008년의 기대작 『자비의 여신들』과 홀로코스트 (4)

같은 역사를 두고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교훈을 끌어내느냐는 사람마다 제각각인 법이다. 한 주 내내 시국분석 관련 업무에 치여있다 순명大帝 검역소에서 영국의 대독항전 결정을 두고 일어난 작은 논쟁을 보고 다시 한 번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감상을 짧게만 언급하면, 홈지기 또한 처칠이 괴이한(?) "우파의 가치" 수호를 위해 전쟁을 계속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여긴다. 그건 대다수의 어떤 시각에서 보나 처칠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다. 재무통 체임벌린과 달리, 고루한 대영제국의 위상에 목을 매며 냉철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한 짓도 마다하지 않은 처칠에게 그런 뜬금없는 가치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홈지기가 슬쩍 놀랐던 것은 이 논쟁 자체가 아니었다. 논쟁 풍경이 마침 최근에 제기된 재미있는 신간의 주장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 패트릭 뷰캐넌(Patrick J. Buchanan)을 혹시 아시는가? 외신에 관심을 가져오신 분이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닉슨 시대부터 보수 논객으로 이름을 떨친 명사이니 말이다. 1992년과 199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왔고, 2000년에는 개혁당(Reform Party)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가 1%에도 미치지 못한 득표를 거둔 바 있다. 결국 지금은 다시 공화당에 돌아가 나이 일흔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전통적인 보수파 — 심지어 꼴통보수라는 소리도 가끔 듣지만 — 임에도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2006년에 출간한 『State of Emergency: The Third World Invasion and Conquest of America (위기의 국가: 제3 세계의 침공과 미국의 정복)』는 늘어나는 불법 이민자로 인해 미국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퇴락할 것이라는 지극한 우파적 주장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도 있다.

Patrick J. Buchanan

패트릭 뷰캐넌의 존안과

State of Emergency

그의 2006년 문제작,

Churchill, Hitler, and The Unnecessary War

그리고 2008년 최신작

그런 그가 지난 5월에 신작을 출간했다. 홈지기는 그의 신작 타이틀에 사뭇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이름하여 『Churchill, Hitler, and "The Unnecessary War": How Britain Lost Its Empire and the West Lost the World (처칠, 히틀러, 그리고 "불필요한 전쟁": 영국은 어떻게 제국을 상실하고 서구는 어떻게 세계를 상실했는가)』이다. 홈지기의 흥미를 확 잡아당기는 이런 제목의 책을, 그것도 뷰캐넌이 쓰다니?! (처음에는 동명이인의 작품인 줄 알았다.) 그리고 신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정말 그의 "독특한(?)" 시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마치 조갑제의 신간을 대할 때의 느낌에 비유하면 비슷할까. 나름 논리적 체계는 갖추고 있으나 접근 방식과 결론은 좀 생경한 그런 책이란 것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발췌해보자:

제1, 2차 세계대전 — 이제는 30년 간의 살육과 파괴의 발작으로 볼 수 있는 — 은 과연 불가피했는가? 정말 필요했던 전쟁이었는가? 인류가 겪은 가장 잔인하고 파괴적인 충돌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던 힘에 의한 운명이었던가? 아니면 불행한 판단 실패에 의한 산물이었는가? 이 기념비적이며 도발적인 역사에서, 패트릭 뷰캐넌은 영국 정치가들 — 대표적으로 윈스턴 처칠 — 의 큰 실수가 아니었다면 양 대전과 홀로코소트의 참사를 피할 수도 있었고, 대영제국도 붕괴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 독재자들의 강철 군화 밑에서 수 천만 명이 살인적 압제에 시달린 반 세기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며, 세계 정세에서 유럽의 중심적 역할이 많은 세대 동안 지속되었을 수도 있다.

영국과 처칠의 큰 실수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 1906년 내각 내의 작은 핵심 각료단이 내린,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할 경우 즉각 영국도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한다는 비밀 결정
  • 독일이 쓰라린 배신감에 사로잡혀 아돌프 히틀러의 호소를 받아들이게 만든 보복적인 베르사유 조약
  • 영국이 처칠의 주장에 따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영일동맹을 파기하고, 따라서 일본에게 모욕을 주고 고립시켜, 일본이 군국주의와 정복전쟁의 길로 들어서도록 부추긴 것
  • 이탈리아가 히틀러와의 추축동맹으로 빠져들게 만든 1935년의 제재 조치
  • 영국 역사상 최악의 실수: 1939년 3월 폴란드에 대한 불필요한 전쟁 보증 —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보증한
  • 스탈린의 진짜 야망에 대한 처칠의 놀라운 무지

논쟁과 활발한 토론을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한 『Churchill, Hitler, and "The Unncessary War"』는, 유럽의 세기에 막을 내리고 그 사라진 세계에 살던 누구에게도 그려볼만한 미래를 보증할 수 없었던 역사적 판단 실패에 대한 장대하고 과감한 통찰이다.

내용들을 살펴보면 일견 납득이 갈만한 내용일 수도 있으나, 서술한 논조에 따라 무리한 끼워맞추기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특히 미국에서 존경받는 윈스턴 처칠이 양 대전을 통틀어 병적인 호전적 자세와 판단 착오로 대영제국과, 더 나아가 유럽 헤게모니 몰락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미국 내에서도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홈지기도 처칠과 영국 외교정책의 함정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이었던 만큼, 일부 각론에는 동의하나 전체 그림에 대해서는 미심쩍음을 지울 수 없다. 아직 주문한 책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뭐라 콕콕 찝어서 비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뷰캐넌이 이런 책을 낸 궁극적 노림수가 더 재미있다. 현실정치와 강하게 밀착한 뷰캐넌 같은 논객이 글을 쓰는데 아무렴 그런 노림수가 없겠는가. 쉽게 짐작하다시피 이건 부시와 현 네오콘을 정조준한 책이다. 뷰캐넌은 네오콘과는 또 다른 방향 — 고립주의와 비간섭주의의 맥을 잇는 — 에서 미국의 (백색) 정체성과 세계질서의 핵심국 유지를 역설해온 인물임을 다시 기억하자.1 처칠과 당대 영국 정치가 일부가 오늘날 부시와 네오콘에 해당됨을 부각시킴으로써, 그는 미국이 양 대전을 통해 결정적으로 쇠락한 대영제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지극히 뷰캐넌다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뷰캐넌의 모습을 두고 그를 싫어하는 미국 내 좌파들도 참 재미있는 모습이라고 비꼬고 있다. 이라크전 반대라는 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뷰캐넌은 처칠을 걸고 넘어지는 참 독특한 방식으로 결론을 끌어내고 있지 않은가. 좌파들은 그런 번거로움 없이도 이라크전을 반대하고 있는데 말이다. 가끔 민노당과 조갑제가 미묘하게 비슷한 목소리가 되어 정부를 비판하는 하모니가 미국에서도 지금 펼쳐지고 있다.

혹시 뷰캐넌의 최근 존안이 궁금하고 영어 청취능력도 있는 분이라면 얼마 전 미국 CNN의 The Situation Room 프로그램에 나와 신간에 담긴 주장을 육성으로 보여준 방송 모습도 보시기 바란다:

뷰캐넌의 이런 주장이 전체적으로 정합성이 있는 내용인지는 문제의 책이 도착하면 숙독하여 다시 한 번 논해보도록 하자. 전체적으로 뻘소리(?)가 많이 섞여 있을 것 같으나 그래도 의미있게 건질 구석이 좀 있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최소한 아마존 등 여러 온라인 서점에 올라오는 서평들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을 보면, 정치색에 따라 골라 듣기 좋은 말들이 잔뜩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여하간에 어딘가에서는 처칠의 전쟁 지속 결정이 "우파의 가치"에 입각한 자기 희생적 용단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동시에 어딘가에서는 나라와 문명을 말아먹은 무모함과 무지의 소산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니 세상은 역시 재밌는 것이다. 서로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때로는 서로가 철저히 논박할 필요도 있겠지만,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사회의 비타민이 된다는 사실은 잊지 말자.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그의 정치성향은 이른바 고보수주의(古保守主義, Paleoconservatism)라고 하며, 신보수주의(네오콘)와 대비하여 '팔레오콘'이라고도 표현한다.
2008/06/14 09:10 2008/06/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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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6/14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일화 2008/06/14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르사유조약이 뻘짓이었다는 거야 케인즈이래로 꾸준하게 나온 얘기고, 영/프가 폴란드를 보증해 준 것은 저도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지만, 대영제국의 몰락이 처칠때문이라고 보기는 좀... 특히나 대륙에서의 패배후에 전쟁을 계속한 것은 역시 처칠!이라는 생각이라서요. 네오콘의 최근 행태야 누가 봐도 수상하지만 논리의 정합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홈지기님의 감상을 기다리겠습니다.(결국 직접 읽을 마음은 없다는...)

    • Periskop 홈지기 2008/06/16 0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처칠이 WW1 당시 해군장관으로서 보여준 미숙한 리더십은 여러 차례 비판의 도마에 올랐습니다만, WW2의 행적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들은 그리 많지 않지요. 있더라도 대부분 영국에서 나온 것들이고, 미국은 확실히 그런 책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책이기는 하지만, 정말 얼마나 정합성을 갖고 짜여진 책인지도 몹시 궁금합니다. 어서 도착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3. 獨步 2008/06/14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뷰캐넌옹 요즘은 뭐하시나 했더니 홈지기님의 글을 통해 근황을 알게 되는군요 - 예전 대선출마 때에 비해서 확실히 연로하신 듯...

    2. 저도 일화님과 마찬가지로 홈지기님의 서평을 기대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저 책이 조만간 한국어판이 나올거 같다는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웃음). 물론 홈지기님 서평이 더 빠르겠지만 For Your Eyes Only는 나름 중요하다 보기에.

    3. 조갑제옹과 비교대상이 되는 것 만으로도 뷰캐넌옹에게는 모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솔직히 든다는(웃음). 그런데 본문에서 민노당과 조갑제옹의 기이한 대정부비판상의 하모니... 를 말씀하셨는데, 제가 기억하는 가장 기이한 조합이 하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진보운동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고 조영래 변호사라는 분을 아실 것입니다 -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생 필독서나 다름없었던 '전태일평전'의 저자이기도 함. 이 분은 보도지침 사건 등 많은 시국관련 재판의 변론을 담당하셨는데 평소의 Heavy Smoking이 원인이었는지 결국 폐암으로 한창 일하실 나이에 안타깝게도 영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마지막을 장식한 조문을 다름아닌 조갑제옹이 썼다는 것!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의 너무나도 기가 막힌 예로 이거보다 더한게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긴 조갑제옹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등 근성의 사회부기자이기도 했으니 조변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의문).

    • noblenight 2008/06/14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조갑제 어르신이야 말로 신뢰도가 높지 않습니까?
      늘 한결같이 틀린말을 하니 타당성은 제로이지만 신뢰도 그자체는 정말 높다고 할수 있겠지요.. 2차세계대전 초반 영국의 고뇌에 대해서도 예전 외교학 수업을 들을때 많이 느껴던 거지만 어떻게 보면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입장과도 같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만...

    • 獨步 2008/06/15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noblenight님/

      말씀하신 타당성/신뢰성은 학계와 저자거리의 용어상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나타내는 준거와도 같죠 - 가장 큰 것은 아마 '도덕적 해이(moral hazzrard)'라고 봅니다.

      보통 강경파들의 경우 흑백논리가 강해서 그들의 준거 몇 가지만 파악하면 그게 거의 바뀌지도 않으니 오히려 상대하기는 쉬운 편입니다. 조갑제옹의 경우를 보면,

      1. 조국통일은 대한민국 육군의 K1전차가 북괴의 주석궁으로 진입하여 위대한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나야 완수되는 숭고한 임무이다.
      2. 1.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자들은 빨갱이고 다 쳐죽여야 한다.

      아주 단순하죠. 때로는 귀엽기까지 하다는(웃음)...

      그래서 오히려 안심하게 했다가 뒤통수 제대로 때리는 부류는 온건파가 더 많더라는게 개인적 경험이기도 합니다(경계).

      이것은 그야말로 덧말인데... 저는 다른 인터넷 게시판에 별로 글을 쓰는 편도 아니지만 이 곳에 글을 쓸 때면 내용검증의 압박을 상당히 받는 편입니다. 대충 넘어가지 않는 고수분들이 워낙 많다보니 소위 '역관광'의 가능성도 엄청나게 크고...

      바로 위의 글만 하더라도 당시의 정신적 충격(?)이 꽤나 컸기에 거의 확신하기는 했지만 혹시 틀렸을지 몰라서 간만에 해당 책들을 온통 뒤졌는데 책장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나오지를 않더군요.

      다른 게시판에서라면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조금 '잘난 척' 삼아 편하게 이야기했을 부분도 여기에선 검증과 역관광을 고민해야 하기에 과연 이 곳이 제 수준상 Commment를 해도 되는 장소인지 늘 생각하게 됩니다.

      몇 번 언급한 것 같은데 밤이 깊을수록 일관성을 잃어가는 제 글의 특성상 이만해야 할 듯 싶습니다(웃음/스르륵).

    • Periskop 홈지기 2008/06/16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저는 한국에서 이 책이 과연 출간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처칠빠들은 꽤나 많을텐데 이런 책이 상업성이 있을지……? 처칠을 황당하게까지 미화하는 책들은 여럿 번역되었어도, 처칠의 부정적인 면을 노출한 책들은 조금 나오다 청계천에 굴러 다니는 신세가 되는게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뷰캐넌의 정치색이 한국에 액면 그대로 소개되기는 어려운 요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갑제옹은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양반의 정신세계를 헤아리기는 어려우나, 기자 시절부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철저하게 노력하고 파헤치는 모습은 배울 구석도 있어 보입니다. 적어도 천박한 일부 목사들처럼 가볍게 무시할만한 인물은 아니지요.

    • noblenight 2008/06/16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새 대한민국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서울시청앞이 점령됬다고 군대는 무얼하냐고 하는 조갑제 어르신이나, 디지털 프롤레타리아는 일어나라라고 하시는 저희학교 진빠인 진중권어르신이나 다들 재미있지 않습니까? 정외를 그냥 부전공으로 습득했지만 행정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니 참 대한민국은 재미있는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2차세계대전초기 전후의 영국의 입장에 대해서는 저희과 교수님이신 손병권 교수님이 해주셨던 재미잇는 답변이 생각나네요 우리가 지금 뭐라고 평가하는건 결국 우리가 답안지를 시험후에 결과를 보고 평가하며 보는것과 같다고 하셨지요.. 모든건 다 불확실성과 관련되는거 아니겠습니까

    • chrisx 2008/06/16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http://news.nate.com/service/news/shellview.asp?ArticleID=2008061610352263138&LinkID=8

      한때는 갑제옹의 황당한 소리에 열받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긍정적으로 보고 말 것도 없이)
      애초에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그냥 피식 웃고 맙니다.

      뭔가 나와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ㅎㅎㅎ

    • 獨步 2008/06/17 0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다나까 요시끼의 '은하영웅전설'을 보면 거의 청년예찬이고 반대로 노인들에 대한 혐오감이 상당한데, 과거에는 거부감도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게 참 동감이 가더군요.

  4. 길 잃은 어린양 2008/06/14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달러 미만이면 한번 사 볼만 하겠군요.

  5. 구바바 2008/06/14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립주의와 비간섭주의의 맥을 이으면서도 세계질서의 핵심국 유지를 역설...한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모순적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니 흥미롭군요. ^^;

    • Periskop 홈지기 2008/06/16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핵심국이 '패권국'과는 다른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 유럽계 이민을 배경으로 쌓아올린 정체성 수호를 최우선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외정책도 이런 가치 수호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경제력에 걸맞는 핵심적 지위는 유지하되 주체할 수 없는 수준으로 패권을 추구하여 스스로 주저앉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6. sonnet 2008/06/14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 잘 보았습니다.

    뷰캐넌 옹은 20세기 전반 공화당의 주류의 맥을 잇는 실러캔스 같은 존재 아니겠습니까. 그런 분이 한국식 분류로는 좌빨들의 천국쯤 되는 http://antiwar.com/pat/에 컬럼을 꾸준히 쓰고 계신 걸 보면서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James Mann의 Rise of Vulcans를 보면 네오콘들이 처칠에 대해 특별한 숭배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해설이 있는데, 뷰캐넌이 처칠 때리기에 나서는 것은 그런 부분과도 연결되는 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16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처칠에 대한 자세가 미국 우파(특히 네오콘)와 영국 우파의 차이이기도 하지요. 영국 우파는 처칠을 싫어하는 사람이 참 많은데, 미국의 네오콘들은 역사적으로 왜 그리 처칠빠들이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골수 네오콘 윌리엄 루티(W. Luti)가 "처칠이 최초의 네오콘"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7. deutsch 2008/06/16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칠의 주장에 따라 영국이 미국에 압력에 굴복하여 영일동맹을 파기하여" << 이 부분은 문장이 미묘하네요. "영국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인지, "영국이 미국에 압력을 가했다는 것"인지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이 안가는 문장이라 사료됩니다.

  8. 눈팅 2008/06/17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 렘스덴 "처칠" -전 당연히 번역본 --;; - 에서 보면 처칠이 강경론자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사람들이 숭배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처칠도 만념에 그런 인상 때문에 괘 힘들었고 보수당 자체도 그러한 처칠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도 조금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처칠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경론자가 아니라는 점을 설파하더군요. 아마 그 책의 의견대로이면 처칠을 모르는 사람의 삘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0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대로 존 램스덴의 책이 그런 처칠의 이미지 변화를 잘 언급하고 있죠. 미국은 덜하지만 영국에서는 정말 전후부터 처칠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 변화가 심했습니다. 세기의 영웅부터 주정뱅이 영감까지 다양한 인식의 스펙트럼이 퍼져 있습니다. 이렇게 정파와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니 무엇이 정답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만, 극단적인 비토를 택했다면 역시 무지하거나 교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9. 라피에사쥬 2008/06/20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간 뷰캐넌옹이 전통적 우파의 가치에 너무 집착하는 듯하여 '위험하진 않지만 앞으로의 발전방향도 애매한' 구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06년에 이어 올해도 저런 활동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니 과연 노병은 노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네오콘들중에는 전쟁반대파 = 체임벌린, 이란 등 불량국가 = 나치독일, 네오콘 자신 = 처칠이라고 우겨대면서 상당히 WW2에 대입한 자기위로를 좋아하는 작자들이 간혹 보이는데 이번 뷰캐넌옹의 저서는 그 논리를 좀 다른 방식으로 반박하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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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분이라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 슈피겔 誌(Der Spiegel)를 눈여겨 보실 것이다. 필자도 심심할 때마다 직장 정보센터에서 구독하는 슈피겔을 들춰보고는 한다. 그냥 독일 돌아가는 정세도 궁금하고, 종종 2차대전과 관련되어 현재 독일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이야기들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08년 11호(3월 10일자) 슈피겔 誌의 표지는 필자의 동공을 확대시키기에 충분했다:

Der Spiegel Nr.11/10.3.08.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구분이 가시는가? 자그만치 그 이름도 화려한 생체실험의 주인공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쓰(Rudolf Höß),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장 요제프 크라머(Josef Kramer) 되시겠다. (맨 우측의 1인은 미상)

간만에 화끈한 표지와 함께 나온 슈피겔의 커버스토리의 제목은 「Morden für das Vaterland (조국을 위한 살인)」이었다. 그런데 처음 커버스토리를 펼치던 때의 흥분은 잠시, 내용을 스윽 훑어보니 어찌 보면 식상할만 떡밥이란 느낌이 들었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에 가담한 20만 명의 독일인들과 그 협력자들 상당수는 사실 사디스트나 싸이코패스가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는데,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내용이었다. 지금이 1950, 60년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여러 번 다룬 주제를 또 재탕하나……라는 푸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허나 이 내용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이유가 있었다. 오래지 않아 빠르게 눈에 박히는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조너선 리텔(Jonathan Littell). 애서가인 분이라면 2006년 공쿠르 상(Prix Goncourt)을 수상한 그의 이름을 스쳐라도 들어보셨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작가가 최초로 수상했기 때문이다 — 그는 미국 출신이다. 게다가 그는 공쿠르 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기행을 통해 이름을 한 번 더 드날리기까지 했다:

► 참고 ⇒ "최고 문학상?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오마이뉴스)

그에게 이런 영예를 안겨 준 문제의 작품이 바로 『Les Bienveillantes』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독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자스인 막시밀리안 아우에(Maximilian Aue). 작품 전체 구성 또한 전후 프랑스에서 레이스 공장을 운영하며 가족들과 여생을 보내던 그가, SS 장교로서 자신이 목도한 전쟁 중의 경험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여기서 1인칭의 주인공은 유명한 SS 특임대(Einsatzgruppen)의 일원으로 유태인과 소련 인민을 학살하기도 하고, 스탈린그라드 포위망에 갇혔다가 부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부상자 후송기에 실려 포위망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여기서의 활약으로 SS 상부로부터 공을 인정받고서는 폴란드의 강제수용소 운영에 관여하며 동유럽에서 자행된 여러 암울한 학살극과 전쟁 말기의 혼란상을 관찰한다. 그러다가 전쟁의 최후 순간에는 영화 『Der Untergang(몰락)』의 한 장면처럼 총통 벙커에서 히틀러에게 훈장을 수여받고, 베를린을 빠져 나와서는 프랑스 출신 노역자로 신분을 위장해 일체의 단죄받음도 없이 무사히 프랑스로 돌아와 평범한 소시민으로 변신한다…… 우리 주변의 지극히 평범해보이던 사람의 눈을 통해 과거에 벌어진 그런 끔찍한 일들이 담담히 회고되고, 그 사람도 사실은 그런 일들을 자행한 일원이었다는 점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묘한 공존을 그린 작품인 것이다.

900페이지가 넘는다는 이 장중한 대작이 미국인에 의해 프랑스어로 쓰여져 문학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는 사실이 독일에서도 꽤나 이슈가 되었나보다. 이 책을 출판한 갈리마르 출판사나, 작가나 기껏해야 3천에서 5천 부가 팔릴 것이라 예상했다지 않았는가 — 그런데 예상치의 100배가 팔리는 대박이 연출되었으니. 그래서 슈피겔은 이 작품의 독일어판 『Die Wohlgesinnten』이 출간되는 것에 맞춰 이 작품이 미묘한 시각으로 드러낸 학살 가담자들의 모습을 재조명한 커버스토리를 실었던 것이었다.

Les BienveillantesDie Wohlgesinnten

필자로서도 아직 프랑스어판, 독일어판 어느 것도 잡아보지 못해서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줄거리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리뷰를 쓰기는 곤란하다. 프랑스어판이 이슈가 될 때만 해도 조악한 프랑스어 독해 실력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는데, 슈피겔이 이만한 분량의 커버스토리를 기울여 언급하고 넘어갔다니 한 번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솟아 오른다. 다행히 이 대성공을 목도한 하퍼 콜린스 출판사가 올해 출간을 목표 — 내년으로 연기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 로 영어판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하니 영어판이 나오걸랑 꼭 일독해봐야 겠다.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에 대해 한 마디 짚고 끝을 맺도록 하자. 위에 링크를 걸어 놓은 기사와 여타 관련 국내 뉴스에서는 제목 『Les Bienveillantes』을 밋밋하게 '호의적인 사람들'이라고 번역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이 제목은 아이스킬로스(Αἰσχύλος)의 비극 오레스테이아(Ορέστειας) 3부작 중 마지막인 『에우메니데스(Ευμενίδες)』의 프랑스어 표기이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의 여신들로 활약하는 티시포네, 알렉토, 메가이라의 세 에리니스들(Ερινύες, 에리니에스)를 가리키는데, 사람들이 이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역설적으로 '자비의 여신들(에우메니데스)'이라고 부른데서 기인한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는 주인공 오레스테이아가 이들에게 쫓기다가 아테나 여신이 중재하여 마침내 저주에서 벗어나고 '복수의 여신들(에리니에스)'이 '자비의 여신들(에우메니데스)'로 바뀌게 된다. 조너선 리텔 소설의 주인공, 막시밀리안 아우에 또한 전범으로 잡혀갈 위기를 벗어나 프랑스인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을, 바로 이 에우메니데스에 비유한 것이다. 행여 앞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될 일이 있걸랑은 꼭 『자비의 여신들』로 번역되어 나오기를 바란다.

2008/04/14 17:10 2008/04/1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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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타인호프 2008/04/14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한국어판이 나올 가능성은 솔직히 낮다고 생각하지만, 영어판이라도 나오게 되면 구해서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7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워낙 난해한 작품이어서 한국어판이 2,3년 안에 나오기는 무리겠죠? 영어판도 올해 나올지 좀 위험하다고 합니다만, 나오면 잽싸게 블로그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2. 잔소리꾼 2008/04/18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고 말씀하신 부분은 "자비로운 여신들"이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자비의 여신들보다는 이쪽이 나은 것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딴지이오니 참고 삼으시면 되겠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9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번역판에서는 '~로운'을 썼군요. 하긴 '자비의 여신들'은 너무 영어를 직역한 티가 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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