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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01 일본을 덮고 있는 세 가지 격차, 다음은 한국? (31)
  2. 2008/09/08 핀란드 교육 속에서 발견한 믹시 (39)

요즘 한숨 돌릴듯 하면 터져 나오는 미국발 경제위기가 여러 사람을 몹시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홈지기도 밥벌이 업무상 이 문제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기로 하자. 그 보다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일련의 사태들이 한국을 계속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사회경제의 다양한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이 밟아왔던 나쁜 시나리오에 이미 빠져들었고, 여기서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짙어진다.

그 가운데에서 일본의 존재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이 여럿 눈길을 끈다. 사실 일본이야 산업화시대 이래로 우리의 역할모델이자 추격의 대상이었으니, 변화의 양상도 어느 정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막상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도 여럿 있다. 날로 소외되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회에 대한 증오가 그런 것일거다. 그런데 요즘 직장에서 맡는 연구들을 하다보면, 한국이 섬뜩하리만큼 일본을 닮아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요즘은 일본에서 일상화된 말인 '격차사회(格差社会)'가 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대전 후 일본은 원래 중류(中流)의식이 강한 나라였다. '일억총중류(一億総中流)'라는 말이 있듯이, 고도성장 속에서 빡빡한 각계 조직 속에 배치된 사람들은 나름의 역할과 비교적 균등한 소득을 보장받았다. 일본인들은 특유의 집단적인 문화 속에서 서로가 튀는걸 억제하며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갔고, 또 그렇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 버블 붕괴의 후유증과, 글로벌화의 파도 속에서 일본에도 사회를 나누는 '격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도 처음에는 외연적인 경제소득의 격차부터 시작되었다. 종신고용체제의 붕괴와 함께 비정규직 고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노동시장이 분리되면서 가속화된 현상이다. 작금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말이다. 중류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는 일본 사회의 커다란 충격이었고, '격차사회'란 말은 최근 몇 년간 일본 내 담론의 주요 타이틀을 장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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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도 역시 이 논의는 식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여기에 고약한 일본의 세습문화가 결합되어 '격차의 세습'이 고착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 달여 전에 나온 주간 다이아몬드(週刊ダイヤモンド) 誌에는 이 문제에 대해 사카이야 타이치(堺屋太一)의 글이 실려 있었다. 국회의원이 아님에도 오부치 내각에서 경제기획청장관으로 발탁되어 이름을 떨치기도 했던 그는, 이에 대해 일본에는 세 가지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1

첫 번째 격차는, 일본의 정치인, 배우 및 예능인 직군에서 많이 보이는 이른바 부모의 끗발 격차이다. 부모 잘 만났다는 것이 뭐 특별한 이슈일까?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아이들이 뭔가 좀 더 있어 보이고, 재산을 더 많이 물려 받았으니 살기 좋겠다는 푸념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나오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단순한 '부의 세습'이 이슈가 아니다. 전통의 재력가 가문이나 고도성장기 신흥 부유층들이 여전히 경영권과 거액의 유산을 물려주고 있다지만,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그에 못지 않게 몰락한 경우도 많다. 특히 지방 자산가들이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며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도 많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맥과 같은 무형자산을 물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새로 총리에 취임한 아소 타로(麻生太郎)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외손자이듯이 정치인들의 지역구 세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2 이들은 부모가 구축한 공고한 인맥의 후광을 그대로 받으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중앙정계로 진출한다. 예능인들도 기획사, 방송사, PD 등에 걸친 인맥을 고스란히 전수해주고 있다.

두 번째 격차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는 노동시장에서 생겨나는 이른바 '직연인(職緣人)'과 '무연인(無緣人)'의 격차이다. 이것은 일본의 기성 질서의 핵심을 구축해온 관료집단 및 대기업군에 정규직으로 편입되어 그 네트워크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직연인')과, 비정규직에서 뱅뱅 도는 사람들('무연인')의 격차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 10년 여의 일이기 때문에 최근에야 가시화되는 격차이기도 하다. 과거 일본에서는 산업에 필요한 임시직 노동력을 겸업농가의 고령 유휴인력과, 여성인력이 담당했다. 여성인력은 적당히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물다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자연스레 전업주부로 빠져 버렸기 때문에, 도시 남성이 정규고용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여성들의 사회적 욕구 증가로 인해 여성의 근속기간이 길어졌다. 거기에 겸업농가의 급격한 감소가 겹치면서, 남녀할 것 없이 비정규직 수요가 청년층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순한 소득격차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노는 물이 달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더군다나 한 번 무연인의 길을 밟기 시작하고 30대 초반까지 여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아예 탈출구가 막혀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나이가 많다고, 나이에 비해 해당 분야 경력이 없다고 문전박대하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이다. 결국 무연인 층은 프리터족, 니트족을 전전하며 경기변동에 가장 민감한 구석에서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노동시장이 개방화되면서 해외에서 유입되는 저임금 노동력과도 갈등을 빚을 소지가 크다. 한국은 아직 해외인력이 농촌의 다문화가정이나 공단의 3D 업종에 국한되어 그 영향을 크게 못 느끼지만, 일본의 위기감은 자못 심각해 보인다.

세 번째 격차는, 도쿄 일대 수도권과 다른 지방과의 지역격차이다. 일본도 '유기형 지역구조의 확립'이라는 목표 아래 도쿄 일대가 국가의 두뇌 역할을 하고, 다른 지방이 손발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정책을 지속해왔다. 그러다 보니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과 문화시설, 막대한 인구가 도쿄에 집중되는 불균형 국가가 되었다.

그나마 과거에는 이 구조 하에서 지방에 6종류의 부유층이나마 있었다. 이들은 ①산림업자, ②양조업자, ③지역중소제조업(이른바 '지장산업地場産業') 경영자, ④지역중심상인, ⑤지역건설업자, ⑥의사가 그들이다. 일본도 90년대 이후 선심성 공공사업이 축소되고, 각종 지역산업이 몰락하면서 ①~⑤의 기반이 심각히 망가진 상태라고 한다. 한국은 지역 산림업, 양조업의 비중이 원래 그다지 높지 않았다지만, 다른 중소제조업, 상업, 건설업의 붕괴는 공통적으로 겪은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도 그래도 지역에서 현상을 유지하는 직군이 의사라는 점이다. 다만 의사, 간호사들도 지방에 있기를 기피하다보니 소득은 높아도 점점 구인난이 심해진다고 한다. 이 또한 한국에서 참으로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지역격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회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미래의 글로벌화된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자질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외부와의 소통과 자극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일본은 매우 발전된 산업국가이지만, 이런 면에서 여전히 고립된 국가이기도 하다. 일본 이외의 세상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은 도쿄 일대와, 항구에 연한 일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과거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일본이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를 통해서만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듯이 말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다지만, 일상 속에서 외국인과 해외 문물을 접해가는 것만큼의 효과를 발휘하기는 힘들다. 빠르게 해외로부터의 자극을 수용하고 창의성을 키워갈 환경을 결여한 지방은 또 다른 하류(下流)의 은거지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세 가지 격차의 심화, 이 모두가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한국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직접 체감하는 바,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에서 전해듣는 바, 각종 통계를 분석하여 드러나는 바가 모두 그러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는 세습구조까지도 수렴해가려 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만큼의 세습에 대한 강한 문화적 뿌리는 없다고 하지만, 작금의 인적자원 육성 시스템 변화는 이에 대한 의식구조마저 바꿔갈 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가장 공고한 학벌 내 동류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으로 부상하는게 이른바 에스컬레이터 식 일관교육 수혜집단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소학교)는 게이오의숙유치사(慶應義塾幼稚舎), 중학교는 게이오의숙중등부(慶應義塾中等部), 고등학교는 게이오의숙고등학교(慶應義塾高等学校), 대학교는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学)으로 줄줄이 가는 것이다.3 이들은 일본 내 상류층과 중류층들의 사회적 지위 세습 열망을 한껏 끌어 모으고 있다. 한국도 아직 초-중-고등교육의 일관체제가 구축되지 않았다 뿐이지, 서울 시내 국제중 및 국제고 인가와 이어지는 수순은 언젠가 일본과 비슷한 모습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지난 번 글에서 설명했듯이 명문 사립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에 올라타서 일관교육체제와 함께 쭉쭉 올라가려는 극심한 열풍과, 일찌감치 경쟁을 포기한 무심함이 공존하는 사회가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차라리 오늘날처럼 대학입시만을 위해 목을 매던 시대가 그리워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변화의 관성이 현재는 생각보다 꽤나 크다. 아무리 책상머리에서 상황을 호전시킬 정책 대안을 고민해도, 시행하기에는 재원 부담이 너무 크거나 이를 관철할 만한 정치력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단순히 정권 바뀐다고 반전의 기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존의 가치를 학습할 수 있을 때까지의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堺屋太一 (2008). "「健全な格差」とは何か." 『週刊ダイヤモンド』, 96(33), 59-62.
  2. 며칠 전 MBC 뉴스에서도 이에 대해 한 꼭지를 할애한 바 있다: 「일본은 세습정치 전성시대
  3. 이와 같은 명문사립학교들에서는 초-중-고의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일부 정원(대략 반 정도)을 자기 재단 소속 학교들에서 무시험으로 뽑아 올린다(내부진학). 따라서 먼저 유치원/소학교에 올라타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계속 무시험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하며 끈끈한 연을 맺게 된다. 최근의 또다른 현상은 외국인학교나 영어 수업을 실시하는 국제학교의 인기이다. 명문사학들은 이에 맞춰 우리의 국제고에 해당하는 학교들도 재단 내에 설립,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든 게이오의숙 재단도 게이오의숙 쇼난후지사와 중고등부(慶應義塾湘南藤沢中・高等部)라는 중고통합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08/10/01 11:11 2008/10/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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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 잃은 어린양 2008/10/01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번째의 지역격차 문제는 정말 한국과 거의 동일한 것 같습니다. 특히 지역 유지들의 몰락이 의미심장하군요. 주변에서 건설업을 하다가 접은 양반들을 몇 분 접하다 보니 아주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지역격차는 남조선 같은 제3세계나 겪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제1세계인 일본도 심각하다는게 놀랍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10/04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건설업으로 지역경제의 한 축이 지탱될 시기는 확연히 지나가고 있지요. 농공단지도 별 재미를 못 보고 있고, 갈수록 지역민들의 희망이라고는 선심성 개발정책의 수혜로 토지보상받는 정도일까요? 지방에서도 공무원, 의사, 교사에 목 매는게 일본이나 한국이나 당연한 귀결인 것 같습니다. 뜻 있는 지역운동가가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더군요.

  2. 폴라곰  2008/10/01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의 특이한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경향이 세계화Globalization의 흐름에서 일본을 보호해주는 차폐막의 역할을 했는데 그게 깨어지고 나니 격차가 구체화 되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p.s : 글의 주제가 무거워서 그런진 몰라도 왠지 그간 고생하신 티가 글에서 묻어나는 듯 합니다. :)

    • Periskop 홈지기 2008/10/04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도 있지요. 그래도 보면 볼수록 생각치도 않았던 곳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에 더 놀랍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십수년 전의 모습과는 또 많이 달라지고, 서로가 공통의 흐름에 휩싸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닮아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유쾌한 글도 좀 더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 구들장군 2008/10/01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4. 양성민 2008/10/01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희 부친께서도 건설업에 종사하시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5. 함은희 2008/10/01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날로 소외되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회에 대한 증오"
    - 며칠전 묻지마 살인..에 대한 프로들이 나오는데...정말 아찔했습니다. 다들..증오와 분노를 학창시절부터 켜켜이 쌓은 사람들...아이들이 얼마나 병들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두 폭발직전의 스트레스에 내몰려 있고 점차..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지요.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야 아직 어려서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만...앞으로 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면...어찌될지 암울하기만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10/04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가 커가던 시절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좁은 문에 들어가려고 아둥바둥한다는 이야기에 많이 당황스러운 요즘입니다. 정말 작금의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교사분들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지는군요.^^

  6. Adrian Monk  2008/10/01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번째 격차에서 여성의 사회적 신장 욕구 증가가 예로 나왔군요.
    그렇다고 이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뭔가 좀 애매한 분석이네요 두 번째는..

    • Periskop 홈지기 2008/10/04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성의 욕구 신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죠. 당연한 변화입니다만 경제 불황과 같은 다른 요인들과 결합되어 급속히 진행되다보니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확대에 일조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일 뿐입니다. 다른 부수적 요인들을 무시하고 일부분만 부각시켜 극단적, 반동적 해법을 주장하는 것은 저도 반대합니다. 서구에서도 사실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후방 노동력이 부족해서 여성을 많이 고용했다가, 종전 이후 남성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대대적으로 가정으로 돌려보내서 여성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잖습니까.

  7. 음? 2008/10/01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이 잘못됐네요. '다음'이 아니라 동시진행형이죠.

    • Periskop 홈지기 2008/10/04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시진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이 조금 후행하는 시차가 두드러집니다. 그런 면을 강조하고자 제목을 저렇게 붙인 것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8. 이승환 2008/10/02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서 일본만 한국으로 고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

  9. 기석 2008/10/02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일본의 격차사회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는데... 그게 다른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군요.

  10. 라피에사쥬 2008/10/02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년제 상위권 대학+정규직 루트를 타야만 생존의 길이 열린다."는 압박을 받아가며 프리터를 전전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정말 느끼는 바가 많은 글입니다. 그런데 목표한 바대로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저런 형태의 사회로 변화된다면 희망차게 살아가기는 매우 어려울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10/04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는 희망보다는 만족을 더 강조하는 시대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쪼록 힘내시기 바랍니다.

  11. 獨步 2008/10/02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저는 이미 하층민으로 전락했으니 곧 대한민국에서도 그러할 것이며 따라서 삶의 길은 밖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패자부활전이 없는 대한민국의 가혹함에 직접 대면할 처지가 되다니 인생 참 힘들어지네요(한숨).

    • Periskop 홈지기 2008/10/04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도 패자부활(?) 장치를 더 마련해야 한다고 계속 촉구는 하고 있습니다만, 외연적 정책수립도 지지부진하고 사람들 내면의 심리는 여전히 완고하니…… 그래도 길이 없는건 아닐테니 실망만은 마시기 바랍니다.

  12. 카군 2008/10/03 1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어 트랙백 해가겠습니다 :-)

  13. 일화 2008/10/05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로서는 첫번째와 세번째 격차는 어느정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리 룰을 공평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시할 수는 없고,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건 무의미한 집안싸움이 될 듯 해 보이니까요. 다만 제 생각은 이 두가지 격차가 두번째 격차와 맞물려서 더욱 심각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나와서 쌓은 실적에 따른 역전이 가능해야 집안이 한미하고 외진 지역에 사는 사람도 빛을 볼 수가 있게 되는데 지금 상황은 그걸 막고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노동유연성 부족(=경력자 이직시장의 비활성화)이 현실적으로 가장 유의미한 문제가 아닐까하는 것이 최근 드는 생각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10/06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적하신대로 시급한 문제는 두 번째 문제가 맞습니다. 한창 일할만한 노동력들이 갖가지 장벽에 부딪혀 이렇게 소모되고 있는 현실을 떠안고 사회가 유지될 턱이 없지요.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큰 틀의 인식전환 노력이 전혀 없어 갑갑할 따름입니다. 감세나 종부세 완화, 외식업 창업지원 등의 변죽 때리기 정책만으로 개선될 문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14. reske 2008/10/05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자유경쟁이 국가 통제에 비해 더 효율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을 볼때 덮어놓고 자유시장의 만능만을 주장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어서 의미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국제중, 국제고 제도가 일본의 게이오식 계열체제로 수렴할지는 아직도 좀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국제중, 국제고가 시행 초기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진화해나갈지 불확실합니다. 실제 시행면에서는 일본 사립고와 다르게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3불정책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아직 대입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학 측에서 함부로 손을 대기가 어려운 것이 국민 정서이니까요.. 아마 "연세고"학생들이 "연세대"로 자동 진학하게 해준다면 전국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 그렇지만, 채승병님이 지적하신 큰 틀, 그러니까 교육의 세습 문제는 교육 당국에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데는 동의합니다. 이미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특목고나 자사고에서도 그런 경향이 조금씩은 보이니까요...

    p.s. 하류사회 부분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트랙백해갑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10/06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행 체제에서 당장 대학교까지 일관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으로 나뉘어진 사학재단 간의 협력을 통해 다른 형태의 일관 시스템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지금도 사교육계에서 부를 축적한 학원들이 초중등교육 재단으로 발전하려는 중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우월한 자원을 바탕으로 명문 초중고로 도약하면, 대학들도 생존을 위해 이들 학교 졸업생 유치채널을 음양으로 도입하리라 봅니다. 그러면 재단은 달라도 특정한 진학경로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를테고, 그 경로에 편입시키기 위한 경쟁도 격화되겠죠. 적절한 수준의 변화라면 추이를 봐가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부분도 있기는 한데, 그게 예상을 넘어선 방향으로 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특히 이번 정부가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유달리 조급한 면을 많이 보이기에 어느 순간 고삐가 확 풀려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 reske 2008/10/12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재단을 달리하는 일관제 진학이라면.. 충분히 미래에는 벌어질 가능성도 있겠네요.

      사실 지금도 어느정도 그런게 있어요. 특목고와 연고대의 커넥션이랄까요. 서울대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내신을 상당히 따지기 때문에 특목고들이 진학하기에 다소 불리한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고대같은 경우에는 내신성적을 거의 따지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능이나 논술에서 일반고에 비해 평균적으로 우수한 특목고 학생들의 진학률이 높습니다. 일본보다는 다소 느슨한 형태이긴 한데

      대원,한영,명덕,외대부속,대일,이화외고->연세대,고려대

      이런 루트가 어느정도 자리잡고는 있습니다. 특히 연세대나 고려대와 같은 경우에는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특목고생 유치를 위해 입시안을 만든다는 그런 느낌이 좀 있습니다. 내신성적 산출방식을 특목고생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정하는게 그 예죠. 서울대 같은 경우에도 특목고생들 진학을 유치하기 위해 수시모집 비중을 갈수록 증가시킨다는 그런 불만도 다소 있습니다. 물론 대학측으로선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그런 제도적 조정을 계속 가하는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명문고 학생들이 날이 갈수록 입시에서 유리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공계 쪽은 훨씬 심한것으로 압니다. 과학고나 영재학교의 명문대 진학 강세는 외국어고등학교를 훨씬 능가하니까요.

      물론 저런 시스템은 일본의 일관제에 비해서는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상태라고 봅니다. 중간에 다른 학생들이 끼여들 여지도 많고, 한번 명문고에 들어가도 본인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가기 힘드니까요. 그렇지만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지 좀 지켜볼 필요는 있지요.

    • 폴라곰 2008/10/12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에서 '중고일관교육제도'에 의해 같은 계열의 중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 입시를 면해주는 제도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립대 입시의 '개별학력검사'에도 같은 제도가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면 좀 알려주세요.

  15. 리카르도 2008/12/27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그런걸까요? 조중동이 국민들에게 일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려 애를 쓰는것들이 정말 두렵기만합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대뜸 '믹시'라는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어떤 존재를 떠올릴까? 한국의 블로고스피어에서 주로 활동하는 분이라면 메타블로그 서비스 "믹시(mixsh)"를 떠올릴 것이다. 좀 더 해외동향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일본 굴지의 SNS인 "미꾸시(ミクシィ, mixi)"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믹시"는 정확히 어떤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아시는 분은 제보바란다.) 일본의 "미꾸시"는 '섞는다'는 뜻의 mix와, '사람, 나'라는 뜻의 i가 합쳐진 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둘 다 뭔가 사람과 사람, 의견과 의견의 혼합과 공유에 대한 이상을 표현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자료조사를 하다가 이와는 사뭇 다른 뜻을 가진 '믹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홈지기가 요즘 직장에서 참여하고 있는 여러 연구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중등교육 문제에 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 선진국, 그 가운데서도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핀란드의 사례를 살펴보고 있었다. PISA, 즉 OECD의 국제 학생능력 평가 프로그램이 지난 2000년에 처음 실행된 이래, 언어/수학/과학분야 능력에 걸쳐 골고루 최상위에 랭크된 나라, 그러면서도 동북아의 고질적인 입시경쟁이 없는 나라로 큰 주목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서는 핀란드 교육에 대해 깊이 파헤친 자료들이 그리 많이 나와있지 않다. 오히려 어느 나라보다도 일본에 많은 자료들이 나와 있다. 이는 지난 PISA 결과에서 일본 학생들의 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충격이 열도를 강타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홈지기도 일본의 자료를 여럿 검토하면서, 일본의 교육계가 느낀 당시의 충격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를 전후 세계 제2의 경제대국 도약의 발판이 되었던 교육 시스템이 어느 구석부터인가 붕괴되는 징후로 해석했다. 특히 PISA 2003에서 우리 한국이 각 분야에 걸쳐 핀란드와 나란히 1~2위를 내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더했던 것 같다. 우리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깔보듯이, 일본인들도 분명 속마음으로는 한국을 한 수 아래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백년대계의 교육이 한국에 뒤쳐지기 시작했다니. 위기를 느끼지 않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홈지기도 처음 일본의 교육관련 문헌들을 읽을 때는 다소의 뿌듯함도 느껴지고는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핀란드와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학력분포가 우수함을 부각시켰다. 특히 일본 교육계는 핀란드와 한국의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에 주목했다. 일본의 상위권 학생들은 여타 국가들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PISA 랭킹이 낮아진 주 원인은 하위권 학생들의 실력이 국제 평균보다 한참 낮은게 주 원인이었다. 그에 반해 핀란드와 한국은 모두 하위권 학생들도 평균 이상의 높은 성적을 거뒀다.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교육의 효과에 새삼 주목하게 만드는 본보기였던 것이다. 이는 홈지기가 일전에 지적한 일본의 교육 현실의 글에서도 지적한 문제였다. 전체적인 경쟁의 강도는 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낙오자를 당연시하는 폐해가 있음을 일본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읽다보니 이런 뿌듯함은 금방 사라졌다. 이런 문헌들이 중반에 들어서면 은근슬쩍 한국을 주목대상에서 뺀다. 이것은 PISA 결과 이면의 원인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의 높은 성취도가 과도한 방과 후 사교육 시간의 효과임을 읽고, 또한 학생들이 성적은 좋을지 몰라도 공부 자체에 대한 흥미는 형편없음을 읽고 있다. 학원에서 논술공부, 수능공부 달달달 하면서 높인 학업성취도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이는 가장 최근에 실시된 PISA 2006에서 한국 학생들의 과학능력이 떨어진 것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다. 입시교육에서 과학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곧바로 순위 하락로 직결되는 폐단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문헌들은 한국의 성과에 주목하면서도, 한국 교육이 답습할 대상은 아님을 낙인찍고 있다. 그리고는 핀란드 교육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부단히 연구를 하고 있었다.

図解 フィンランド・メソッド入門
이런 흐름 속에서 홈지기도 도대체 핀란드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읽은 책 가운데 얄팍한 것으로 『図解 フィンランド・メソッド入門 (도해 핀란드 메소드 입문)』이란 책이 있었다. 이 책은 별 깊이는 없지만, 핀란드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습법에 대해 매우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핀란드 교육이 중점적으로 함양시키고자 하는 학생의 능력 5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1. 발상력
  2. 논리력
  3. 표현력
  4. 비판적 사고력
  5.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 가운데 논리력에 대한 장을 펴 들었을 때, 홈지기는 흠칫했다. 첫 섹션 제목이 "「ミクシ?」功擊の秘密 ('믹시?' 공격의 비밀)"이었다. 믹시? 믹시가 여기 왜 나올까? 그 다음 단락으로 눈이 넘어가서야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핀란드어로 '믹시(Miksi)?'는 우리말로 하면 '?', '어째서?' 정도의 표현이었다. 한국의 "믹시(mixsh)", 일본의 "미꾸시(mixi)"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야기인즉슨, 핀란드에서는 가르침에 있어 '당연하다고 넘어가는'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의 교육 현장은 잘 모르겠지만, 홈지기가 자라올 때만 더듬어봐도 우리의 교육은 교과서 체계에서 정형화된 지식을 주입시키고 응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특정한 지식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버릇을 들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책상'의 품사는 뭐지?"라고 묻는다고 하자. 학생이 일어나서 "동사입니다"라고 하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저런 당연한 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들을 것이다. 반면 "명사입니다"라고 하면 짝짝짝 박수 쳐주고 당연한 듯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의 교육현장에서는 그렇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설령 '명사'라는 답을 했어도 곧바로 선생은 "Miksi?"를 날린다. 학생은 "그게…… 명사니깐요"라는 식으로 답해서는 안 된다. 나는 왜 그것을 '명사'라고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고, 이 과정을 외화(外化)시켜 서술해야 한다.

핀란드의 교실

너무 시간낭비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 현실의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게 마련이며, 하나의 관점, 하나의 해답만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 각자는 어떤 정보나 지식, 관념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나름의 합당한 이유를 갖추고 있는 의견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당장 좌파와 우파가 세상을 바라보는 논리가 다르다. 각자에게는 나름대로의 근거도 있다. 촛불시위같은 구체적인 현상을 놓고서도, 어떤 사람은 MB와 정부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PD수첩과 시민단체의 잘못으로 생각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각자 진영에 선 사람들 대다수가 '내가 옳고, 남이 틀렸다'는 인식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은 이걸 어렸을 적부터 지양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각자가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을 함께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그게 논리적으로 타당한 추론이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다. 충분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누군가가 무언가에 대해 '그건 당연하지!'라고 이야기한다면, 십중팔구 그것은 실상은 제대로 모르고 나머지를 얼버무려 이해하려는 습관의 발로이다. '당연하다'는 말에 자꾸 묻어가다보면, 논리력은 절대 키워지지 않는다. 더욱 나쁜 것은, 점점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의도적으로 귀를 닫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사회는 모두가 자기 우물에 갇혀 남을 비난하기만 해대는, 신뢰 상실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핀란드의 교사와 학생들은 끊임없이 "Miksi?"를 외치라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다. 서로가 '믹시'를 주고 받으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그 흐름 속에서 배움의 가지는 뻗어 나간다. (참고로 이러한 생각의 가지를 정리하기 위해 핀란드에서는 마인드맵1을 사용하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훈련이 잘 되어 있다면, 커서도 쉽게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통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주장을 절대시하는 것은 금기이며, 서로가 '믹시'를 던져야 한다는 규약을 배웠기 때문이다. 북유럽을 두고 감탄하는, 각자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늘어놓고 시비를 가리며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힘이 이 '믹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홈지기는 핀란드 교육 현장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믹시'를 발견하고 작은 기쁨을 느꼈다. 흔히 한국은 신뢰가 상실된, 사회적 자본이 매우 저열한 국가로 진단된다. 그에 반해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신뢰와 양호한 사회적 자본을 갖춘 나라로 꼽히고 있다. 홈지기는 이제껏 다양한 각도에서 그 배경을 고찰해왔는데, '믹시'도 그 다양한 배경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믹시'가 유일하고도 중대한 사회적 동력은 아니겠지만, 결코 무시 못할 교육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가 모든 배경을 무시하고 핀란드 시스템을 이식할 수야 없겠지만, 이런 '믹시'의 습관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할 것이다.

홈지기도 근래 새삼스레 외국의 교육철학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복잡한 세사를 바라봄에 있어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나의 의견을 절대시하지 말자.2 그리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외쳐보자.

Miksi?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핀란드어로는 마인드맵을 Käsitekartta라고 하는데, 교육 현장에서는 흔히 줄여 '카르타(Kartta)'라고 부른다고 한다.
  2. 물론 이것이 과학이 일궈온 성과와 지식체계를 상대시하고 창조론이 옳다는 등의 극단적 회의주의로 빠지자는 말은 아니다.
2008/09/08 20:15 2008/09/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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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ete 2008/09/08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들어 부쩍 마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너무 나의 생각틀 속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검열이라고 할지 아니면 자기 경계라고 할지 제법 노력을 해 본다고 해 보지만 결국 제가 쓴 글 조차도 한참 후에 보면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결국 이런 건 혼자 노력한다고 완전히 해결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내게 자신의 다른 생각을 나눠 줄 때, 그리고 제가 그런 생각 나눔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제 생각을 내려 놀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죠.

    오늘도 또 좋은 가르침을 받고 갑니다.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네요. 늘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9/09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결국 열린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그런 소양에 대한 훈련을 별로 못 받다가, 조금 머리가 커지고 나서 고쳐나가려니 영 어색함을 떨치기 함들더군요. 그래도 Crete 님은 많이 노력하고 계시니 앞으로도 좋은 공력 쌓아가시리라 믿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2. 이승환 2008/09/08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거 참으로 동감하고 반성하게 하는 글이군요. 예전에 과외 할 때 생각이 납니다. 애들이 문법이나 해석 좀 틀리면 무지 갈궜는데 -_-ㅋ

    • Periskop 홈지기 2008/09/09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과외를 무진장 오래 했었는데, 역시 한정된 시간에 학부모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무리수가 많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공부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해보고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얼렁뚱땅 넘어간 적도 많아 꽤나 찔리는군요. 그 당시에 요즘처럼 교습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고는 합니다.

  3. 김근태 2008/09/08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중학생 아들이 있는데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학원수업을 받으면서도 학교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 심하게 질책한
    적이 있었습니다. 좀더 멀리보는 안목이 없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9/09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중학생 자제분을 키우고 계시다니 여러모로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_- 주변의 학부형 분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아무리 장기적인 안목으로 키우고 싶어도 말처럼 되지 않는다는 고충이 매우 심각하더군요. 차근차근히 과정을 다지고 가더라도 같은 능력에 도달할 수 있는데, 당장의 학벌 꼬리표가 아쉽다 보니 학생들을 보채고 몰아칠 수밖에 없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아무튼 댓글 감사합니다.^^

  4. 삽질랜드 2008/09/09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 초에 수능 끝나고 집에서 노는데 15살 아이들에대한 세계적인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마봉춘씨가 핀란드 같은 유럽 국가들의 교육 방식에 대해 보여줬는데 그거 보면서 탁자를 치고 "왜 나는 저런 교육을 받지 못한 건가!" 하며 한탄해 했죠'ㅅ';;;(진짜입니다. 이거 DVD 나오면 사가지고 학교 도서관에 기증해서 시청각 자료로 천년만년 울궈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벌써 눈에서 눈물이'ㅅ';;;

  5. 양성민 2008/09/09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6. 비밀방문자 2008/09/09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7. 댕글댕글파파 2008/09/09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문장이 머리에 깊숙이 박히네요.

  8. 뱀장수 2008/09/09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나라 교육 (공교육 사교육 모두) 은 좀 심하게 말해서
    사상누각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겠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09/09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짜 중요한 것은 평생을 두고 스스로 학습하는 열의와 기초적인 자질이겠죠. 저도 새삼스레 그 중요성을 계속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공교육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 위기라고 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찌어찌하여 부실한 기반 위에도 서 있기라도 한데, 교육정책이 앞으로 잘못되면 진짜로 무너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9. vicious 2008/09/09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십수년전 캐나다의 호스트 맘에게서(초등학교 선생)들었던 말이 생각나는 군요.

    "동양권 학생들은 너무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흑백도 있지만 그 사이에는 회색도 있다."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었는대...

    요새들어서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절망하고 있죠
    (사회 꼴아지나 대학원생이라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걸 보면 ㅠㅠ)

    • Periskop 홈지기 2008/09/09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신이 명확한 의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의견을 도출하고 수정함에 있어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 양립해야겠죠. 그런데 우리 사회와 교육은 이러한 덕성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최근의 교육철학에 대한 세계적 조류를 다음에 한 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10. 구들장군 2008/09/09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적어도 군사독재 이후에는, 교육과 부동산은 정권탓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결국 교육도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내는 문제 같군요.

    개인적으로, 중2-고2까지 공부작파했었습니다. 고3 되서야 ebs와 노량진단과학원 좀 다녔습니다. 사교육 받은게 별로 없죠. 그러다보니 고액과외 많이 받은 애들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믿음 비스무레한게 있었죠. 그래서 대학에서 '강남어린이' 출신들이 고액과외 별 효과 없더란 말을 해도 안 믿어지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맞을 거란 생각이 든게, 고시준비하면서였습니다. 수석합격기들이야 안믿는다고 쳐도, 내 주변에서 뛰어난 애들 보면 모두 남들 다보는/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책과 평범한 학원강의로 공부해서 뛰어난 결과를 이루더라구요.

    고액과외는 불안하니까/질 수 없어서 하는 거지, 큰 성과를 거두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모두가 바보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쓰고나서 보니, 글과 좀 안맞는 엉뚱한 소릴 썼군요. 그냥 글 읽고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린 거라 이해해주시길..-_-;;

    • Periskop 홈지기 2008/09/09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법조계에 계시나보죠? 저는 사실 고시준비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쪽 세계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긴 안목에서 단기적인 주입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데에는 동감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당장의 턱밑을 조여오는 경쟁의 위협 앞에 아이들을 학원으로 무기력하게 내몰고 있지요. 여기에 어떤 탈출구가 있을지 참 고민입니다.

    • 구들장군 2008/09/09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시낭인에 불과한 놈입니다. 괜히 오해하시게 글을 써놨나보군요.

  11. 獨步 2008/09/09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자신과 다른 주장을 들었을 때,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크게 한 번 웃어줄 수 있는 호방함인 듯.

  12. 폴라곰  2008/09/09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정의 외화..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제한된 개념을 고등학교 때 논술공부하면서 '자기문제화'라는 단어로 접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언제적 얘기인지.. 돌아오라 시간이여...

    • Periskop 홈지기 2008/09/09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논술세대가 아니라서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경험적으로 익힌 글쓰기 노하우와, 중고교에서 가르치는 논술기법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논술교육을 받은 경험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됨을 느끼고 계신가요?

    • 폴라곰  2008/09/10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97학번입니다. 재수했구요. 전공은 컴퓨터이지만 외도를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

      현행 논술교육은 글쓰는 '테크닉'부터 시작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문단짜기, 첫 문장 참신하게 쓰기, 내용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등등. 그러면서 '스키마 주입'도 같이 들어갑니다. 각종 사회적 이슈부터 시작해서 자주 인용되는 사상가들의 명언이나 사상의 흐름 등. 이런 것들이 '다이제스트'되어서 제공됩니다.

      문제는 '생각의 결과'이어야 하는 논술에서조차도 주제별 모범답안이 나온다는 겁니다. 글의 논리적 전개에 의한 모범답안보단 각 주제에 따른 무난한 답안의 내용에 주목하게 되고 이를 '암기'하게 됩니다. 글이라는 게 제일 처음 썼을 때 가장 생명력이 넘치고 참신하지 않습니까? 반면 손을 대면 댈수록 무난해지지만 팔딱팔딱대는 맛이 없어지는데 이미 머릿속에 주입된 내용을 적어내다 보니 글의 맛이 없어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덕분에 대학에서는 허를 찌르는 참신한 문제를 내느라 골몰하시는 모양이구요.

      그래도 논술교육의 가장 큰 순기능은 '지식을 활용'하는 훈련이 된다는 점 입니다. 단순 암기를 통해 머릿속에 넣어뒀다가 그대로 꺼내서 보여주는 것과 머릿속에 넣은 것을 활용해서 논리적 무기로 활용하는 건 매우 다르니까요. 또한 사회 이슈 등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접했을 때의 결론과 진지하게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난 뒤의 결론은 매우 달라집니다. 앞서 얘기한 '자기문제화'의 순기능이구요.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일반론에 대해 저렇게 접근했을 때의 충격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지적 욕구에 대한 건전한 자극이라는 효과도 빼놓을 순 없겠습니다. 알아야 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