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숨 돌릴듯 하면 터져 나오는 미국발 경제위기가 여러 사람을 몹시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홈지기도 밥벌이 업무상 이 문제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하기로 하자. 그 보다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일련의 사태들이 한국을 계속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사회경제의 다양한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이 밟아왔던 나쁜 시나리오에 이미 빠져들었고, 여기서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짙어진다.
그 가운데에서 일본의 존재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이 여럿 눈길을 끈다. 사실 일본이야 산업화시대 이래로 우리의 역할모델이자 추격의 대상이었으니, 변화의 양상도 어느 정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막상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도 여럿 있다. 날로 소외되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회에 대한 증오가 그런 것일거다. 그런데 요즘 직장에서 맡는 연구들을 하다보면, 한국이 섬뜩하리만큼 일본을 닮아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요즘은 일본에서 일상화된 말인 '격차사회(格差社会)'가 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대전 후 일본은 원래 중류(中流)의식이 강한 나라였다. '일억총중류(一億総中流)'라는 말이 있듯이, 고도성장 속에서 빡빡한 각계 조직 속에 배치된 사람들은 나름의 역할과 비교적 균등한 소득을 보장받았다. 일본인들은 특유의 집단적인 문화 속에서 서로가 튀는걸 억제하며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갔고, 또 그렇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1990년대 이래 버블 붕괴의 후유증과, 글로벌화의 파도 속에서 일본에도 사회를 나누는 '격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도 처음에는 외연적인 경제소득의 격차부터 시작되었다. 종신고용체제의 붕괴와 함께 비정규직 고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노동시장이 분리되면서 가속화된 현상이다. 작금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말이다. 중류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는 일본 사회의 커다란 충격이었고, '격차사회'란 말은 최근 몇 년간 일본 내 담론의 주요 타이틀을 장식해왔다.

첫 번째 격차는, 일본의 정치인, 배우 및 예능인 직군에서 많이 보이는 이른바 부모의 끗발 격차이다. 부모 잘 만났다는 것이 뭐 특별한 이슈일까?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아이들이 뭔가 좀 더 있어 보이고, 재산을 더 많이 물려 받았으니 살기 좋겠다는 푸념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나오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단순한 '부의 세습'이 이슈가 아니다. 전통의 재력가 가문이나 고도성장기 신흥 부유층들이 여전히 경영권과 거액의 유산을 물려주고 있다지만,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그에 못지 않게 몰락한 경우도 많다. 특히 지방 자산가들이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며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도 많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맥과 같은 무형자산을 물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새로 총리에 취임한 아소 타로(麻生太郎)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외손자이듯이 정치인들의 지역구 세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2 이들은 부모가 구축한 공고한 인맥의 후광을 그대로 받으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린 나이에 자연스럽게 중앙정계로 진출한다. 예능인들도 기획사, 방송사, PD 등에 걸친 인맥을 고스란히 전수해주고 있다.
두 번째 격차는,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는 노동시장에서 생겨나는 이른바 '직연인(職緣人)'과 '무연인(無緣人)'의 격차이다. 이것은 일본의 기성 질서의 핵심을 구축해온 관료집단 및 대기업군에 정규직으로 편입되어 그 네트워크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직연인')과, 비정규직에서 뱅뱅 도는 사람들('무연인')의 격차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 10년 여의 일이기 때문에 최근에야 가시화되는 격차이기도 하다. 과거 일본에서는 산업에 필요한 임시직 노동력을 겸업농가의 고령 유휴인력과, 여성인력이 담당했다. 여성인력은 적당히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물다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자연스레 전업주부로 빠져 버렸기 때문에, 도시 남성이 정규고용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여성들의 사회적 욕구 증가로 인해 여성의 근속기간이 길어졌다. 거기에 겸업농가의 급격한 감소가 겹치면서, 남녀할 것 없이 비정규직 수요가 청년층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단순한 소득격차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노는 물이 달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더군다나 한 번 무연인의 길을 밟기 시작하고 30대 초반까지 여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아예 탈출구가 막혀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나이가 많다고, 나이에 비해 해당 분야 경력이 없다고 문전박대하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이다. 결국 무연인 층은 프리터족, 니트족을 전전하며 경기변동에 가장 민감한 구석에서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노동시장이 개방화되면서 해외에서 유입되는 저임금 노동력과도 갈등을 빚을 소지가 크다. 한국은 아직 해외인력이 농촌의 다문화가정이나 공단의 3D 업종에 국한되어 그 영향을 크게 못 느끼지만, 일본의 위기감은 자못 심각해 보인다.
세 번째 격차는, 도쿄 일대 수도권과 다른 지방과의 지역격차이다. 일본도 '유기형 지역구조의 확립'이라는 목표 아래 도쿄 일대가 국가의 두뇌 역할을 하고, 다른 지방이 손발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정책을 지속해왔다. 그러다 보니 핵심 고부가가치 산업과 문화시설, 막대한 인구가 도쿄에 집중되는 불균형 국가가 되었다.
그나마 과거에는 이 구조 하에서 지방에 6종류의 부유층이나마 있었다. 이들은 ①산림업자, ②양조업자, ③지역중소제조업(이른바 '지장산업地場産業') 경영자, ④지역중심상인, ⑤지역건설업자, ⑥의사가 그들이다. 일본도 90년대 이후 선심성 공공사업이 축소되고, 각종 지역산업이 몰락하면서 ①~⑤의 기반이 심각히 망가진 상태라고 한다. 한국은 지역 산림업, 양조업의 비중이 원래 그다지 높지 않았다지만, 다른 중소제조업, 상업, 건설업의 붕괴는 공통적으로 겪은 것이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도 그래도 지역에서 현상을 유지하는 직군이 의사라는 점이다. 다만 의사, 간호사들도 지방에 있기를 기피하다보니 소득은 높아도 점점 구인난이 심해진다고 한다. 이 또한 한국에서 참으로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지역격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회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미래의 글로벌화된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자질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외부와의 소통과 자극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일본은 매우 발전된 산업국가이지만, 이런 면에서 여전히 고립된 국가이기도 하다. 일본 이외의 세상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은 도쿄 일대와, 항구에 연한 일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과거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일본이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를 통해서만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듯이 말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다지만, 일상 속에서 외국인과 해외 문물을 접해가는 것만큼의 효과를 발휘하기는 힘들다. 빠르게 해외로부터의 자극을 수용하고 창의성을 키워갈 환경을 결여한 지방은 또 다른 하류(下流)의 은거지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세 가지 격차의 심화, 이 모두가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한국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직접 체감하는 바,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에서 전해듣는 바, 각종 통계를 분석하여 드러나는 바가 모두 그러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는 세습구조까지도 수렴해가려 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만큼의 세습에 대한 강한 문화적 뿌리는 없다고 하지만, 작금의 인적자원 육성 시스템 변화는 이에 대한 의식구조마저 바꿔갈 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가장 공고한 학벌 내 동류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으로 부상하는게 이른바 에스컬레이터 식 일관교육 수혜집단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소학교)는 게이오의숙유치사(慶應義塾幼稚舎), 중학교는 게이오의숙중등부(慶應義塾中等部), 고등학교는 게이오의숙고등학교(慶應義塾高等学校), 대학교는 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学)으로 줄줄이 가는 것이다.3 이들은 일본 내 상류층과 중류층들의 사회적 지위 세습 열망을 한껏 끌어 모으고 있다. 한국도 아직 초-중-고등교육의 일관체제가 구축되지 않았다 뿐이지, 서울 시내 국제중 및 국제고 인가와 이어지는 수순은 언젠가 일본과 비슷한 모습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지난 번 글에서 설명했듯이 명문 사립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에 올라타서 일관교육체제와 함께 쭉쭉 올라가려는 극심한 열풍과, 일찌감치 경쟁을 포기한 무심함이 공존하는 사회가 미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차라리 오늘날처럼 대학입시만을 위해 목을 매던 시대가 그리워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변화의 관성이 현재는 생각보다 꽤나 크다. 아무리 책상머리에서 상황을 호전시킬 정책 대안을 고민해도, 시행하기에는 재원 부담이 너무 크거나 이를 관철할 만한 정치력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단순히 정권 바뀐다고 반전의 기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존의 가치를 학습할 수 있을 때까지의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 堺屋太一 (2008). "「健全な格差」とは何か." 『週刊ダイヤモンド』, 96(33), 59-62.
- 며칠 전 MBC 뉴스에서도 이에 대해 한 꼭지를 할애한 바 있다: 「일본은 세습정치 전성시대」
- 이와 같은 명문사립학교들에서는 초-중-고의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일부 정원(대략 반 정도)을 자기 재단 소속 학교들에서 무시험으로 뽑아 올린다(내부진학). 따라서 먼저 유치원/소학교에 올라타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계속 무시험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하며 끈끈한 연을 맺게 된다. 최근의 또다른 현상은 외국인학교나 영어 수업을 실시하는 국제학교의 인기이다. 명문사학들은 이에 맞춰 우리의 국제고에 해당하는 학교들도 재단 내에 설립,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든 게이오의숙 재단도 게이오의숙 쇼난후지사와 중고등부(慶應義塾湘南藤沢中・高等部)라는 중고통합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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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의 지역격차 문제는 정말 한국과 거의 동일한 것 같습니다. 특히 지역 유지들의 몰락이 의미심장하군요. 주변에서 건설업을 하다가 접은 양반들을 몇 분 접하다 보니 아주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지역격차는 남조선 같은 제3세계나 겪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제1세계인 일본도 심각하다는게 놀랍습니다.
건설업으로 지역경제의 한 축이 지탱될 시기는 확연히 지나가고 있지요. 농공단지도 별 재미를 못 보고 있고, 갈수록 지역민들의 희망이라고는 선심성 개발정책의 수혜로 토지보상받는 정도일까요? 지방에서도 공무원, 의사, 교사에 목 매는게 일본이나 한국이나 당연한 귀결인 것 같습니다. 뜻 있는 지역운동가가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더군요.
일본의 특이한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경향이 세계화Globalization의 흐름에서 일본을 보호해주는 차폐막의 역할을 했는데 그게 깨어지고 나니 격차가 구체화 되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p.s : 글의 주제가 무거워서 그런진 몰라도 왠지 그간 고생하신 티가 글에서 묻어나는 듯 합니다. :)
물론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도 있지요. 그래도 보면 볼수록 생각치도 않았던 곳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에 더 놀랍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십수년 전의 모습과는 또 많이 달라지고, 서로가 공통의 흐름에 휩싸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닮아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유쾌한 글도 좀 더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희 부친께서도 건설업에 종사하시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시군요, 입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이 답답하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_=
" 날로 소외되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회에 대한 증오"
- 며칠전 묻지마 살인..에 대한 프로들이 나오는데...정말 아찔했습니다. 다들..증오와 분노를 학창시절부터 켜켜이 쌓은 사람들...아이들이 얼마나 병들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두 폭발직전의 스트레스에 내몰려 있고 점차..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지요.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야 아직 어려서 여전히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만...앞으로 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면...어찌될지 암울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커가던 시절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좁은 문에 들어가려고 아둥바둥한다는 이야기에 많이 당황스러운 요즘입니다. 정말 작금의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교사분들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지는군요.^^
두 번째 격차에서 여성의 사회적 신장 욕구 증가가 예로 나왔군요.
그렇다고 이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뭔가 좀 애매한 분석이네요 두 번째는..
여성의 욕구 신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죠. 당연한 변화입니다만 경제 불황과 같은 다른 요인들과 결합되어 급속히 진행되다보니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확대에 일조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일 뿐입니다. 다른 부수적 요인들을 무시하고 일부분만 부각시켜 극단적, 반동적 해법을 주장하는 것은 저도 반대합니다. 서구에서도 사실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후방 노동력이 부족해서 여성을 많이 고용했다가, 종전 이후 남성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대대적으로 가정으로 돌려보내서 여성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었잖습니까.
제목이 잘못됐네요. '다음'이 아니라 동시진행형이죠.
동시진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국이 조금 후행하는 시차가 두드러집니다. 그런 면을 강조하고자 제목을 저렇게 붙인 것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글에서 일본만 한국으로 고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무슨 희한한 내선일체(?)인지 모르겠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일본의 격차사회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는데... 그게 다른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군요.
한국이 격차를 떠 안고 갈 준비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더 우울합니다.
"4년제 상위권 대학+정규직 루트를 타야만 생존의 길이 열린다."는 압박을 받아가며 프리터를 전전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정말 느끼는 바가 많은 글입니다. 그런데 목표한 바대로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저런 형태의 사회로 변화된다면 희망차게 살아가기는 매우 어려울것 같습니다[..]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는 희망보다는 만족을 더 강조하는 시대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쪼록 힘내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저는 이미 하층민으로 전락했으니 곧 대한민국에서도 그러할 것이며 따라서 삶의 길은 밖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패자부활전이 없는 대한민국의 가혹함에 직접 대면할 처지가 되다니 인생 참 힘들어지네요(한숨).
저희도 패자부활(?) 장치를 더 마련해야 한다고 계속 촉구는 하고 있습니다만, 외연적 정책수립도 지지부진하고 사람들 내면의 심리는 여전히 완고하니…… 그래도 길이 없는건 아닐테니 실망만은 마시기 바랍니다.
몇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어 트랙백 해가겠습니다 :-)
재미있는 글 써주셨더군요,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저로서는 첫번째와 세번째 격차는 어느정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리 룰을 공평하게 적용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시할 수는 없고,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건 무의미한 집안싸움이 될 듯 해 보이니까요. 다만 제 생각은 이 두가지 격차가 두번째 격차와 맞물려서 더욱 심각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나와서 쌓은 실적에 따른 역전이 가능해야 집안이 한미하고 외진 지역에 사는 사람도 빛을 볼 수가 있게 되는데 지금 상황은 그걸 막고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노동유연성 부족(=경력자 이직시장의 비활성화)이 현실적으로 가장 유의미한 문제가 아닐까하는 것이 최근 드는 생각입니다.
지적하신대로 시급한 문제는 두 번째 문제가 맞습니다. 한창 일할만한 노동력들이 갖가지 장벽에 부딪혀 이렇게 소모되고 있는 현실을 떠안고 사회가 유지될 턱이 없지요.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큰 틀의 인식전환 노력이 전혀 없어 갑갑할 따름입니다. 감세나 종부세 완화, 외식업 창업지원 등의 변죽 때리기 정책만으로 개선될 문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자유경쟁이 국가 통제에 비해 더 효율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을 볼때 덮어놓고 자유시장의 만능만을 주장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편한 진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어서 의미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국제중, 국제고 제도가 일본의 게이오식 계열체제로 수렴할지는 아직도 좀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국제중, 국제고가 시행 초기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진화해나갈지 불확실합니다. 실제 시행면에서는 일본 사립고와 다르게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3불정책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아직 대입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학 측에서 함부로 손을 대기가 어려운 것이 국민 정서이니까요.. 아마 "연세고"학생들이 "연세대"로 자동 진학하게 해준다면 전국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 그렇지만, 채승병님이 지적하신 큰 틀, 그러니까 교육의 세습 문제는 교육 당국에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데는 동의합니다. 이미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특목고나 자사고에서도 그런 경향이 조금씩은 보이니까요...
p.s. 하류사회 부분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트랙백해갑니다.
현행 체제에서 당장 대학교까지 일관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으로 나뉘어진 사학재단 간의 협력을 통해 다른 형태의 일관 시스템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지금도 사교육계에서 부를 축적한 학원들이 초중등교육 재단으로 발전하려는 중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우월한 자원을 바탕으로 명문 초중고로 도약하면, 대학들도 생존을 위해 이들 학교 졸업생 유치채널을 음양으로 도입하리라 봅니다. 그러면 재단은 달라도 특정한 진학경로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를테고, 그 경로에 편입시키기 위한 경쟁도 격화되겠죠. 적절한 수준의 변화라면 추이를 봐가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부분도 있기는 한데, 그게 예상을 넘어선 방향으로 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특히 이번 정부가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유달리 조급한 면을 많이 보이기에 어느 순간 고삐가 확 풀려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재단을 달리하는 일관제 진학이라면.. 충분히 미래에는 벌어질 가능성도 있겠네요.
사실 지금도 어느정도 그런게 있어요. 특목고와 연고대의 커넥션이랄까요. 서울대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내신을 상당히 따지기 때문에 특목고들이 진학하기에 다소 불리한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고대같은 경우에는 내신성적을 거의 따지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능이나 논술에서 일반고에 비해 평균적으로 우수한 특목고 학생들의 진학률이 높습니다. 일본보다는 다소 느슨한 형태이긴 한데
대원,한영,명덕,외대부속,대일,이화외고->연세대,고려대
이런 루트가 어느정도 자리잡고는 있습니다. 특히 연세대나 고려대와 같은 경우에는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특목고생 유치를 위해 입시안을 만든다는 그런 느낌이 좀 있습니다. 내신성적 산출방식을 특목고생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정하는게 그 예죠. 서울대 같은 경우에도 특목고생들 진학을 유치하기 위해 수시모집 비중을 갈수록 증가시킨다는 그런 불만도 다소 있습니다. 물론 대학측으로선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그런 제도적 조정을 계속 가하는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명문고 학생들이 날이 갈수록 입시에서 유리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공계 쪽은 훨씬 심한것으로 압니다. 과학고나 영재학교의 명문대 진학 강세는 외국어고등학교를 훨씬 능가하니까요.
물론 저런 시스템은 일본의 일관제에 비해서는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상태라고 봅니다. 중간에 다른 학생들이 끼여들 여지도 많고, 한번 명문고에 들어가도 본인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가기 힘드니까요. 그렇지만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지 좀 지켜볼 필요는 있지요.
일본에서 '중고일관교육제도'에 의해 같은 계열의 중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 입시를 면해주는 제도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립대 입시의 '개별학력검사'에도 같은 제도가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면 좀 알려주세요.
그래서 그런걸까요? 조중동이 국민들에게 일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려 애를 쓰는것들이 정말 두렵기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