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무리 지을 보고서, 논문이 줄줄이 있는 관계로 맘 편히 블로그 글을 써댈 처지가 못 된다. 그나마 어느 정도 수습을 하고 돌아와 보니 예로부터 이어져온 시장과 정부 역할의 조화 문제에 대해 이웃 블로거 분들께서 의견을 펼쳐놓으셨다.
홈지기도 할 말은 많은 주제이나 시간 여건상 여기에 깊숙이 발을 담그기는 조금 꺼려지고, 우선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에 대해 관전평(?) 정도만 늘어놓아보자.
우선 느껴지는 것은 '논쟁'이라고 보기에는 포커스가 아직 모호한 느낌이 든다. 大帝(sonnet) 님이 아무래도 좌-우를 슬쩍슬쩍 건드리며 사전 포석을 하시는 것으로 보이는데, 홈지기는 스티글리츠의 냄새가 확실히 강하게 느껴진다. 사카키바라(榊原英資)의 글이 양념으로 제시되었으나, 결국은 大帝님도 잠깐 인용하신 스티글리츠의 『Whither Socialism? (번역서명: 시장으로 가는 길)』에서 제기되는 신고전학파(右) 및 시장사회주의론(左) 양측에 대한 비판론이 주된 골격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 스티글리츠는 자신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준 정보 불완전성 문제를 통해 좌-우가 — 흥미롭게도 많은 부분 공통적으로 — 기반하고 있는 경제학적 논리의 토대를 공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적절한 '조화'라는 자신의 신념을 역설하고 있다. 허나 이 논쟁은 한칼에 베기에는 곤란하다. 이미 학계에서도 숱하게 진척된 논제라서 대립점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선 '논쟁의 포지션' 글에서는 예의 후생경제학 기본정리에 대한 비판이 이용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발라(L. Walras)의 일반균형이론(GET)이 갖는 (비현실적) 가정에 대한 논변으로 흔히 쓰인다. 홈지기는 이 부분, 즉 미시경제학의 토대가 문제가 많다는 데는 100% 동의한다. 이것은 홈지기가 물리학을 전공한 입장이어서 더 절절히 느끼는 부분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늘날의 신고전파 경제이론의 근간은 19세기 에너지에 대한 고전물리학, 특히 고전열역학(classical thermodynamics)에 있다. 발라가 쿠르노(A. Cournot)의 영향 하에서 물리학적 체계의 채용에 노력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이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피셔(I. Fisher)는 물리학을 꽤나 진지하게 공부하고 — 역시 위대한 물리학자로 꼽히는 깁스(W. Gibbs)가 학위논문 지도교수였다 — 열역학 체계의 개념과 경제학 개념의 일대일 대응을 야심차게 시도했다. 이 때문에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상당 부분은 열역학을 배운 물리학도에게는 매우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곧이어 경제학이 너무 옛(old-fashioned) 물리학 체계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원래 열역학이 적용되는 조건은 매우 엄격하며, 비평형(불균형)상태의 동역학(dynamics)은 훨씬 복잡하다. 발라와 피셔의 시대에는 물리학에도 이러한 부분을 포괄할 이론이 미비했기 때문에, 이들은 고전물리학의 이론적 틀을 경제에 끼워맞추기 위해 현실에의 적실성을 일부 포기해버린다. 그리고는 애석하게도 경제학과 물리학이 결별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20세기를 걸쳐 통계물리학에서는 훨씬 많은 변화의 동역학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었으며, 우리는 비평형(불균형)상태를 떠돌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시스템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홈지기에게 경제학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균형으로의 회귀, 지나치게 정적인 문제로 환원된 접근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만약 논쟁의 핵심이 이런 골수 신고전파 경제이론의 타당성으로 제한된다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홈지기도 경제학이 물리학 체계를 확대해석하고 이후에 불균형 상태의 동학에 대한 고려가 미비했던 점에 대해 얼마든지 논리를 보탤 수 있다. 규범적인 가치에 매몰되어 시장자유주의에 목매고 있다는 부분 또한 경제학의 신념체계와 신학적 신념체계의 유사점을 들어 거들 수 있다. 그러나 大帝님이 '시장원리주의'라 이름붙인 시각은 이 부분의 쐐기돌 하나를 뺀다고 쉽게 와르르 무너질만한 것은 아니다. 현실의 경제학자들도 사실 저런 문제들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나름의 다른 보완적 논리체계를 여럿 갖추고 있다. 홈지기는 그 가운데서도 작금의 논의에서 하이에크(F. Hayek)와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이 상기된다.
특히 기린아(sprinter)님의 글에서는 — 본인이 인정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 — 시장에 대한 신뢰의 근거가 다분히 하이에크의 그것과 겹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이에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유주의를 다각도로 옹호하고 있다. 단순히 완전시장에 대한 믿음과 규범적, 윤리적인 측면 말고도 인간의 불완전성과 진화적 과정의 인식으로부터 정부 개입의 문제를 논해왔다. 하이에크는 자유가 필요한 근거로서 인간의 '무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 "(자유를 옹호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는 무지, 필연적인 무지를 기초로 하고 있는 논거이다"라는 말에도 이것은 잘 드러난다. 그에 의하면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시장을 설명하는 '경제학 이론'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신고전파의 일반균형 관점을 공박하며, 시장이란 불완전한 정보를 가진 자유로운 행위자들이 만들어낸 자기조직화된(self-organized) 시스템이라고 보아왔다. 시장은 동태적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여기서는 정부 및 공무원 또한 많은 결함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 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개입이 나쁜 것은 이러한 자생적 질서의 형성과 진화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개입하려 들기 때문이며, 이러한 행동은 자생적 질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시장원리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이에크 신봉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복거일 씨만 봐도 그렇다. 참고: '복거일의 진화론적 자유주의 성찰') 이런 사람들에게 일반균형과 시장완전성이 엉터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들에게는 大帝님이 제기하신 '시장은 위기에 취약하다'는 인식 자체도 문제가 있어 보일 것이다. 여기서는 '위기'가 다분히 시장 시스템에 가해지는 외생적 충격(exogenous shock)이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러나 하이에크식 자유주의와 진화의 관점에서는 시장의 위기도 내생적 과정(endogenous process)로 포괄하고 있다. 시장실패도 복잡한 내생적 메커니즘에 의해 다양한 규모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일 뿐이다. 시장은 이러한 문제를 겪어가며 조정(coordination)과 탈조정(decoordination)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내적인 복잡성과 질서를 구축해간다. 정부의 개입이 부당한 것은, 어떤 행동을 통해 이런 변화과정을 강제로 조정하고 의도된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 — 꼭 사회주의 계획경제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 부터가 계몽주의적 오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시장실패를 고스란히 인정하더라도 정부의 개입이 저절로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기린아 님의 인식과 많은 부분 상통한다 할 수 있다.
물론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책에서 이러한 하이에크의 주장에 대해서도 몇 가지 논박을 해놨다. 스티글리츠는 역시 『Whither Socialism?』에서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옹호 근거 가운데 주로 '결과론적 옹호론'과 '진화론적 옹호론'의 문제를 거론하였다. 결과론적 옹호론이란 자유주의적 발달을 통해 형성된 시장경제가 이처럼 발전을 이뤄냈으니 충분히 자생적 질서가 좋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옹호론은 현재 구축된 시장경제 시스템의 구조가 연이은 선별(selection)을 통해 잘 다듬어진 '집단학습'의 결과물이기에 존중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진화론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말하듯이, 진화와 진보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진화가 곧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살아남은 존재는 어떤 환경 조건에서 생존하기 유리했을 뿐이지, 다른 변화한 환경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효율적이고 우월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이에크가 경제주체의 제한합리성과 동태적 진화과정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했다 하더라도,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경제발전이 이뤄졌다는 것만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의 지적이다.
또한 스티글리츠는 하이에크가 인간의 구조적 무지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사회과학에서의 정량적인 접근을 지적 오만으로 평가절하한 점도 문제삼고 있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복잡성이 너무 크고 어느 것 하나 쉽게 단순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단순화된 정량적 모형을 통한 예측이 부질없다고 주장해왔다. 엄밀한 점 추정(point estimation) 보다는 전반적인 변화 패턴(pattern)에 주목해야한다는 식이다. 이 때문에 정반대 입장에 선 밀튼 프리드먼과 이에 대해 한바탕 논란을 펼친 적도 있다. 스티글리츠는 하이에크와 많은 시장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단순화된 모형으로의 접근은 여전히 옹호한 바 있다. 그리고 정작 하이에크식 진화경제 이론은 너무 말로 때우고 넘어가려 한다는 식의 비판도 했었다. 이런 비판의 많은 부분이 수긍이 가는 대목이기는 하나, 스티글리츠의 비판이 하이에크의 방대한 주장을 오롯이 논파한다고 보기는 아직 무리가 있다. 이 문제는 오히려 최근 또 다른 맥락의 진화경제학 분야에서 오히려 더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홈지기에게는 이러한 기존의 대가들 사이 논쟁이 자꾸 오버랩되다보니 어느 장단에 거들어야 할지 애매하기 짝이 없다. 그런고로 각 대인들께서 이러한 충돌점, 즉 각자의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포지션을 보다 선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형성된 배경에 대해 좀 더 설명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관전자들도 추가로 이것저것 찾아보며 스스로 깨치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참고로 홈지기는 시장경제를 동태적/진화적 관점에서 보는걸 열렬히 좋아하되, 하이에크처럼 자유주의 옹호로 이를 전용하는 것에는 반감을 갖고 있다. 오히려 스티글리츠의 이야기처럼 행위자 수준의 계산모형을 통해 미시행위와 거시질서의 연계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참고: '모든 모델은 틀렸다, 그러나……') 굳이 편을 나누자면 홈지기는 마이너한 진화경제학과 계산경제학에 발을 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닫기 전에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의들을 통해 얻었으면 하는 바만 하나 적어보자. 다들 아시겠지만 시장의 오작동 및 실패 가능성, 정부 개입의 정당성 및 효율성 문제 논란은 결코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1920~40년대 하이에크, 랑게, 폰 미제스, 레르너, 슘페터 등 쟁쟁한 대가들이 벌인 이른바 경제계산논쟁(economic calculation problem)만 봐도 그렇다. 홈지기는 꽤나 늦게 이들의 글들을 읽어보고서, 수십 년의 세월이 무색해질 정도로 시장과 정부의 강점과 약점을 헤아린 깊은 통찰에 고개를 절로 떨구고는 했다. 어설프게 읊어대고 으스대던 시장과 정부의 문제점들이 실은 그들이 이미 치열하게 고민하며 펼쳐낸 것임을 발견했을 때의 화끈거림이 아직도 생각난다. 서로가 글을 쓸 때 다소 귀찮더라도 독자들에게 이런 다양한 참고할 거리를 함께 던져주는 노력이 병행되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고견을 경청하며 선학들의 지혜에 머리도 숙여갈 수 있는 논의가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홈지기도 당장은 곤란해도 기회될 때 물리학도가 본 경제학에 대해 좀 더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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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것도 엄청났는데 이런 것까지....대단하십니다. 감사하게 보겠습니다^^;;
넵, 그냥 맘편히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와.. 그렇지 않아도 시간 개념을 넣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미 이렇게 훌륭히 구현하셨군요.
이번 릴레이는 periskop덕에 장엄한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재능과 열정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여실히 보여줬지요. ^^
"한 사람"이라 함은 inuit 님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죠?^^ 저는 장엄한 마무리까지 하는 처지는 못 되고 그냥 밥숟갈 하나 더 얹어놓은 정도 같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분석거리가 나올만한 이벤트 많이 선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시간 순으로 보니까 흥미로운 점이 관찰되네요. 종료일이 꽤 남았는데도 어느 순간 증가율이 확 떨어져 버리는군요.
음, 그게 아마 공식 종료일은 '20일'인데, 제가 26일까지 돌아가게 해놓아서 그럴 겁니다. 공식 종료일 이후에도 글을 써주신 분들이 계시는지라 그냥 마감일 넘어서도 추이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저 데이터가 불완전합니다. 현재 보여드리고 있는 데이터에는 릴레이 바톤을 받은 분들이 400분 좀 넘게 들어가 있는데, 아직 누락된 분이 100여 분 이상 더 계시지 않나 합니다.
'위대한 작품은 결코 위원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대학입시용 영문독해연습서에 나온 문구인데 그 이후 살아가면서 한 개인의 능력과 의지가 얼마만큼 큰 일을 이룰 수 있는지 목격할 때 마다 상기하게 됩니다. 이번 독서론 Trilogy(?)도 그렇군요.
하지만... 우측 하단에 자리잡은 고양이귀를 한 미소녀는 볼 때 마다 인지부조화에 시달리는 듯한 환각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듯(헛웃음).
음 이거는 대단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그냥 유희(?) 수준인데 말입니다…… --a 그리고 아직 본편은 갈 길이 멉니다. 본격적인 사회연결망 분석은 아직 하나도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이걸로 블로그를 도배하다가는 뭇매를 맞을테니, 그런 추가 업데이트판은 다른 경로로 발전시키고 공개해나갈 생각입니다.
ㅍㅍ 그리고 독보님 반응을 보니 역시 백투더소스 배너는 짱입니다! capcold님과 Curtis님께 다시금 경의를!
제 시대에 뒤떨어진 컴퓨터가 위대한 작품을 견식할 기회를 날려버리는 군요. 아쉽습니다... ㅜ.ㅜ
컴퓨터 성능이 떨어질수록 Firefox나 Chrome을 적극 활용하시는게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만……^^
Chrome에서는 네이버도 덩달아 빨라집니다. 똥컴의 필수품! 꼭 설치하세요~
승병님, 어째서 자꾸만 승병님 블로그를 다른 분들에게 홍보하고 싶게끔 만드시는 겁니까.ㅎㅎ;;
시각화 동태모델에 정말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됩니다. 정말 감사해요.
위험한 발언이십니다.^^ 스토커(?) 아니냐고 제 아내님께서 타박하실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사회경제계의 동학을 밝히는 일이야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니, 다른 분들께 약간의 동기유발이 되었다면 충분히 기쁠 따름입니다.
블로그계에서 '릴레이 문화(놀이)'만큼 지속가능하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연계와 협업의 (놀이) 형식은 떠올리기 쉽지 않은데요(김우재씨께서 강조하신 블로그 특유의 글쓰기 형식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하는 편입니다). 거기에 이런 멋진 작업을 접하니 앞으로 좀더 다양한 릴레이 문화가 블로그계에 자리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네요. : )
이번 독서론 릴레이를 정리해보면서 저도 재밌는 아이디어를 많이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일단 국내 블로고스피어 지형의 일단을 탐색해본다는 점에서 몹시 흥미가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블로그 순례를 열심히 도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잘 모르는게 많았는데, 네트워크를 펼쳐놓고 속성을 추가하다보니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앞으로 시간나는대로 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여 이런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공유해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릴레이 같은 블로그 문화를 직접 주도할만한 깜냥은 아직 안 되는듯 싶습니다. 다만 나름의 정리 & 분석 능력을 통해 그런 문화 창달(?)의 촉매같은 역할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민노씨 님같은 영향력 있는 분들의 더 많은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이런 '툴'이 블로그에서 애드온 기능으로 제공되면 흥미로운 일들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텍스트큐브 개발자들과 제가 친분이 있는 사이이니 다음에 보거들랑 어떤 가능성이 있을지 논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