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사를 뒤적이다보니 한국에는 뒤늦게 소개된 사건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 오바마, 처칠 동상 반환 구설수 [연합뉴스, 2009-02-23]
내용인즉슨 이렇다. 선주 부시는 그의 기반세력인 네오콘과 마찬가지로 처칠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2001년 블레어 영국 수상은 미국 출신의 조각가 엡스타인(Jacob Epstein)이 만든 처칠 흉상을 부시에게 진상임대해줬다. 이 동상은 부시 임기 내내 영-미 동맹과 우의의 상징으로서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흉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찬밥 신세가 된다. 오바마의 취향에 맞게 집무실 인테리어가 바뀌면서 이 자리에는 그가 존경하는 링컨의 흉상이 들어서고, 처칠 흉상은 영국에 반환되어 주미 영국대사 공관으로 밀려난 상태이다. 이것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영-미간 우의에 안좋은 징조라는 등의 이야기가 오고간다는게 기사의 내용이다.
우선 이 이야기는 그리 싱싱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지난 주말(2월 21일)에 나온 뉴스위크 기사를 보고 한글 기사를 만들어 송고했는데, 아마 연합뉴스 기자가 모니터링하는 언론매체가 몇 개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따지자면 이 뉴스는 1주일 전인 2월 14일에 영국의 텔레그라프가 내보낸 기사가 직접 발단이 되었고,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여기저기서 한 달 전부터 꾸준히 돌고 있었다:
- Barack Obama sends bust of Winston Churchill on its way back to Britain [Telegraph, 2009-02-14]
- Busted: The Churchill Flap [Newsweek, 2009-02-21]
- What will Obama do with Churchill's bust? [openDemocracy, 2009-01-20]
그런데 문득 홈지기가 작년에 썼던 글들을 떠올려 보니 이 뉴스로 이어지는 긴 맥락의 끈이 다시금 느껴진다. 우선 작년, 부시 정권의 심상치 않은 말로가 예견되던 시기에 홈지기는 대표적 고보수주의 논객인 뷰캐넌의 신작을 소개한 바 있다:
- 보수논객 뷰캐넌의 필봉은 여전하다 [Periskop, 2008-07-21]
처칠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그 화살을 부시로 돌린 뷰캐넌, 그의 신간 마지막 구절은 바로 이번 뉴스의 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국은 1939년 대영제국처럼 과도하게 뻗쳐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핵심 이익과는 상관 없는 수십 개 국가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약속, 몇 개 국가가 한꺼번에 요청하면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갖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를 민주화시키고, 모든 국가를 우리의 사회 정의와 인권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며, "세계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미국의 정책을 천명해왔다.
그리고 만방에 그가 맡은 책무를 보여주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그의 집무실에 윈스턴 처칠의 흉상을 갖다 놓았다.
— Pat Buchanan, Churchill, Hitler, and 'The Unnecessary War'
재미있게도 이 대목에서 연합뉴스 기자는 물론 외국 기자들도 사실 확인에 게으른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 위의 기사들에는 블레어가 처칠의 흉상을 진상임대한 것이 9/11 사건 직후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어 달 전인 7월 16일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당시 백악관 공식 뉴스에서도 확인된다.

2001년 7월 16일, 영길리 대사가 황제에게 처칠 흉상을 진상하다
He was a man of great courage. He knew what he believed. And he really kind of went after it in a way that seemed like a Texan to me.
— 선주 George W. Bush
기쁜 마음으로 영국의 선물을 받으며 남긴 말에도 드러나듯이, 선주 부시에게 처칠은 알라모 요새의 윌리엄 트레비스나 데비 크로켓 정도의 우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히틀러나 사담 후세인, 김정일은 산타 안나?)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어쩔 수 없는 텍사스 카우보이 부시의 가슴 속에는 "Remember the Alamo!"를 외치며 멕시코 병사들을 향해 쇄도하는 샘 휴스턴의 모습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봤을 때 오바마의 집무실에서 처칠의 흉상이 치워졌다는 뉴스를 가벼이 볼 수는 없으리라. 대통령의 역할 모델로서 처칠이 물러나고 링컨이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은 지난 1년간 몰아닥친 거센 흐름의 변화를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역시 처칠과 링컨을 떠올리노라면 부시와 오바마에게만 시선이 머물 수는 없다. 홈지기는 다른 글을 통해 그들 각각을 역할 모델로 삼았던 우리네 두 전직 대통령과, 그들 모두를 역할 모델로 삼았던 또 다른 미국 대통령을 살펴본 바 있다:
- 링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노 대통령 [Periskop, 2007-06-21]
- 역사의식을 보면 MB가 보인다 [Periskop, 2008-07-23]
물론 이런 식의 역할 모델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만능의 관찰 포인트는 아니다. 홈지기도 저 두 글에서 공통적으로 닉슨을 언급하며 각자의 깜냥과는 상관 없는 역할 모델에의 매몰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의 아이러니에는 고개를 가로짓지 않을 수 없다. 링컨을 쫓아 민주화 이후의 통합 지도자를 꿈꿨으나 섣부른 열정이 앞선 나머지 경원당하며 퇴장한 노무현, 그리고 처칠을 쫓아 경제를 구할 전시 사령관을 꿈꿨으나 도덕성과 정치력 부족으로 지리멸렬하는 이명박 — 우리가 링컨을 치워버리고 처칠을 들어 앉히는 사이, 바다 건너에선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자꾸만 어긋나는 해미국바라기에서 벗어나 우리의 항로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지혜는 이래서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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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최상위권 강대국 일진들에게 둘러싸인 대한민국 처지에서는 에스파니아의 프랑코 총통처럼 도움받을 때에는 감사히 받았다가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려오면 중립으로 확 돌아서는 '배은망덕형 외교'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 물론 극한의 눈치숙련이 필요함.
하지만 명나라에 대한 의리 운운하다가 임금이 머리쳐박고 항복의식하는 것도 모자라 명나라가 패망하고 나서는 소중화의 진정한 후계자 운운하는 무협만화적 설정에 도취되었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21세기에 이르러서까지 해방과 한국전쟁 당시의 은혜를 성조기 흔들며 수도 한 가운데에서 소리높여 찬양하는 사회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집권이 불가능한 리더십이겠죠.
배은망덕형(?) 외교는 관리해야할 리스크 부담이 너무 커서 정치세력이 불안정한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력까지 빈곤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다들 우물에 빠져 있는지 대안들이 아직 영 신통치 않습니다.
비대하면 멸종하는 것은 공룡뿐만이 아니겠죠. 미국을 보고 있으면 - 물론 전후의 - 굉장히 에너지효율이 낮은 거대한 스팀엔진이 연상됩니다. 전전의 영국이 그러했을 것처럼... 패권주의 국가를 용인하여야만 하는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또 어느 나라를 그 비효율적인 공룡으로 키워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죠. :)
적당히 비효율적인 패권국가는 주변국가들의 생존과 번영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는 중국과 인도 같은 덩치 큰 국가들이 미국의 탐욕을 떠받쳐주며 자본획득에 열을 올리다보니 스트레스 누적으로 세계경제가 출렁대는 형국이겠지요. 안 그래도 직장에서 향후 국가간 경제질서와 의존 네트워크가 어떻게 변할지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해보고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사실 처칠이 2차대전 승리에 기여한 바는 히틀러나 스탈린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그나마도 체제상의 문제로 직접 지휘할 수 없었다는 점이 주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저로서는 처칠을 모델로 삼는다는 것이 영 걱정이 되네요.
사실 굳이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가카께서 생각하시는 궁극의 역할 모델은 따로 있다는 전언이 있거든요. 공개하기는 그렇습니다만, 그게 좋아서라기 보다는 지금보다야 더 나빠지지는 않을거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처칠옹이 위인이긴 위인입니다만...
이미지가 워낙 시카고 마피아보스 포스가 강해서...ㅋㅋ
두주불사의 불독부터 마피아보스까지 그분의 포스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홈지기님의 처칠관련 글은 두번째 접하는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 봤습니다. 정치가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 어릴적 한번쯤은 처질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암튼 나의 역할모델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으 누구였나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무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셨다니 글쓴 보람이 조금이나마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정환님의 블로그에 보니까 해외에 무제한 호스팅 회사를 쓰신다고 댓글을 남기셨더군요. 혹시 정보를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실지요? 지금은 설치형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게 은근히 불편하네요. 계획이 끝나는 시점에서 저도 한번 사용하시는 호스팅 회사와 접촉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은 웹호스팅 회사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간판회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디스크사용량, 트래픽 'Unlimited'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평판이 좋은 대표적인 웹호스팅 업체를 꼽아보자면,
hostmonster.com
bluehost.com
inmotionhosting.com
webhostingpad.com
……
같은 것들이 있겠군요. whois 검색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저 가운데 bluehost.com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사시니까 저런 업체들을 이용하시는게 쓰기에 훨씬 편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정작 미국 살면서 저런 서비스가 있는지도 모르고 local에서 서비스하는 회사들 비싸다고 타박하고 있었군요...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뭘 좀 계획하는 것이 있어서... 이번 정보가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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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래전 일도 기억하신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습니다. 당시 제 ID는 h*는 아니었고 c*였죠.^^
그나저나 질문해주신 내용은 사실 제가 현용 밀리터리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명쾌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본질을 꿰뚫고 계신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문제를 좀 더 살펴보고, 언급하신 내용보다 더 자세한걸 말씀드릴 수 있으면 글을 올리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