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녁 운동을 하고 지친 몸으로 느즈막히 현관에 들어섰다. 서둘러 유청단백질을 휘휘 들이키고 거실 소파에 앉아 킨 TV, 그런데 우연인지 몰라도 갑자기 어딘지 낯 익은 얼굴이 보이는게 아닌가. '앗, 저 양반은……'

Daniel Yergin

한 눈에 알아보는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바로 다니엘 여긴(Daniel Yergin)이다.1 홈지기의 책장 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꽂혀 있는 책 『황금의 샘(The Prize)』의 저자이다. 책날개에 박힌 저자 사진이 어디가 인상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재빨리 떠올랐다. 이 『The Prize』는 석유를 둘러싸고 엎치락뒤치락한 강대국들과 석유 메이저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다룬 책으로서, 여긴은 이 책으로 1992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략 15년 전쯤에 이 책을 샀던 것 같은데, 당시 대학생이 된지 얼마 안 된 홈지기는 석유 그 자체보다도 책 내용 중에 2차 세계대전 중 석유 쟁탈을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이유로 3권 1질을 덥썩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Daniel Yergin황금의 샘Commanding Heights

어쨌든 이 양반이 갑자기 왜 TV에 나오나 싶었는데 조금 보다보니 다시금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 이 프로그램도 다니엘 여긴의 동명 넌픽션2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바로 『Commanding Heights3』였다. 원작은 지난 1998년에 출간된 것으로, 당시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급부상하던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를 둘러싼 이슈를 다각도로 파헤친 작품이다. 이번에 KBS에서 방영4는 하는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공영방송 PBS가 이후 2002년에 9/11 이후 미국의 상황을 반영하여 조금 다른 관점의 3부작 다큐멘터리(총 6시간)로 이를 정리해낸 것이다. 꽤나 오래 전에 본 다큐멘터리인데 이렇게 다시 맞닥뜨리다니 반가움과 어색함이 교차했다.

이 작품의 함의는 부제에서도 미묘하게 드러난다 — 『The Battle for the World Economy (세계 경제를 둘러싼 전투).』 여기서 전투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시장'과 '정부'이다. 최근 새로운 서브프라임발 경제위기를 맞아 다시금 가열되고 있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이 떠오르지 않는가? 여기서는 이 논의가 실은 얼마나 지난 한 세기 자본주의 역사를 달궈온 것이며, 얼마나 많은 논란과 반전 속에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인지를 조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다음의 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1. The Battle of Ideas
    첫 번째 에피소드는 20세기 경제사의 쟁쟁한 두 거두, 케인즈하이에크가 중심 인물이다. 잘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글로벌화된 세계 경제에서 이들은 각자의 독특한 논점에서 지향점을 제시한 이들이었다. 맑시즘과 경쟁하는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케인즈는 일반이론 이후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고, 하이에크는 일관되게 자유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후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케인즈주의가 대세로 자리잡았으나, 상황은 역전되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새롭게 글로벌 스탠다드로 부상한다. 자본주의 진영 내부에서 벌어진, 이러한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둘러싼 이론의 부침이 20세기의 역사적 순간과 오버랩되어 펼쳐진다.
  2. The Agony of Reform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이어지는 1990년대 공산주의의 몰락은 세계 곳곳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맑스주의 혁명의 세기가 끝나며 거꾸로 자본주의 혁명이 곳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그 현장을 동유럽(폴란드), 러시아, 남미(볼리비아나 칠레), 인도 등 다양한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조망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체제 붕괴로 인한 거센 세파에 내몰린 동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이른바 '시카고 보이'들에 의해 경제변화를 강요당한 남미, 네루의 제3 세계 노선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로 편입해간 인도…… 기존의 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이행한 국가들이 얻은 외형적 번영과, 그 속에서 깊어져간 골과 신음이 동시에 펼쳐진다.
  3. The New Rules of the Game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는 희망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심각한 재앙의 뇌관이기도 했다. 공산주의가 붕괴될 때만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1990년대 후반이 되자 점차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세계 경제를 국경 없이 넘나드는 자본의 힘이 현대의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본다. NAFTA 이후 멕시코의 난점들, 급부상하는 아시아 네 마리 용과 중국,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등의 익숙한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로 기존의 발전모델이 송두리째 붕괴되는 현장, 이어 대두되는 글로벌 양극화와 반 세계화 움직임도 펼쳐진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모호함에 갇혀버린 세계의 파노라마 속에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용 요약을 보면 알겠지만, 실로 상당한 분량의 이슈들을 포괄하고자 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러다 보니 각 에피소드에 2시간씩이 할애되었어도 충분히 깊이 있는 분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각 꼭지(chapter) 마다 수 분간 펼쳐지는 시간들은 너무나 짧게 느껴지고 이래가지고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될까 우려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PBS의 이 『Commanding Heights』에는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 뭐랄까, 내용의 단순한 정보성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장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홈지기가 이전에도 몇 개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면서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정보의 양과 질 면에서 다큐멘터리는 책을 따라오기 힘들다. 2차 세계대전사도 당연히 잘 정리된 책을 통해 훨씬 압축적으로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장답사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The Battle Box' 답사기에서도 밝혔듯이 역사의 현장에 직접 가봤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말레이 전역과 싱가포르 전투에 대해 책에서 받아들였던 정보가 다시 풀어 헤쳐지면서 좀 더 몸에 꼭 맞는 느낌으로 다시금 자리잡는 것이다.

홈지기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감흥을 많이 느꼈다. 홈지기도 문헌으로야 케인즈주의자나 하이에크주의자들의 주장을 여럿 섭렵했으니 나레이터의 해설은 좀 진부했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케인즈의 남긴 육성이 흘러나오자 짜릿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이에크가 생전에 가진 인터뷰들에서 파란의 시기에 대한 회고를 늘어놓는 모습에서 한층 고조되는 박동을 느꼈다. 그들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죽은 옛사람이 아니라 이렇게도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충격이었을까.

또 다른 장면을 보자.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정부 개입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풍조에 위기의식을 느낀 하이에크가 유명한 몽펠르랭회(Mont Pélerin Society)를 만든 것을 아시는가. 스위스의 한적한 리조트에서 당대 자유주의 수호의 거두 39인이 모였던 방의 모습과,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의 생전 회고가 펼쳐질 때는 꽤나 숙연했다. 우리가 그토록 많이들 이야기해왔던 브레튼우즈 체제는 또 어떠한가. 그 이름이 붙게 된 회의장소,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가 시청자의 마음을 편하게 할 정도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지는 여기서 처음 알았었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영양가는 떨어질지언정 고적답사를 느끼며 즐기던 감정의 선율을 재현하는 힘이 있는 법이다. 이것이 홈지기가 글 제목에 '경제 청량음료'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이기도 하다.

Bretton Woods

브레튼우즈의 Mount Washington 호텔

Mont Pélerin

Mont Pélerin의 회합이 열린 방

6시간을 들여 이 세 에피소드를 섭렵한다고 오늘날 우리가 처한 복잡한 경제위기의 본질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펼쳐지는 이 모습이, 그리 간단한 도식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20세기 내내 지구촌 곳곳, 수많은 현장에서 허다한 사람들이 흘려온 땀과 피, 그리고 수많은 지성들의 치열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음을. 변변한 경제 지식도 없이 우리의 경제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분이라면, 그 깊이를 맛보는 의미에서도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라고 본다. 설령 이미 많은 책을 섭렵하여 정보로서는 더 얻을게 없는 분이라도, 가끔 책을 놓고 역사의 감흥을 즐기기에도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된다. 주말 버라이어티 쇼에서 연예인 풍설에 지친 분들, 특히나 키보드 워리어로 자나깨나 리만 브라더스 욕으로 혈압이 올라가신 분들이라면, 분노를 잠시 삭히고 이런 다큐멘터리라도 보면서 생각을 한층 가다듬으시길 권해드린다.

한 가지 팁을 더 알려 드린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굳이 졸리는 시간대에 KBS를 통해 볼 필요가 없다. 이미 2004년에 PBS는 이 다큐멘터리 전편을 홈페이지에서 마음껏 공짜로 볼 수 있도록 차려놨다. 영어 듣기가 안 된다고 걱정을? 그런 걱정도 덜 수 있도록 PBS는 VOD에 영문 자막 서비스도 하고 있으며, 영어 대본을 따로 볼 수 있게도 해놨다. 편한 시간대를 골라 영어 공부도 좀 할겸 시청해보시라.5

마지막으로 홈지기가 인상적으로 들었던 하이에크의 한 마디를 소개하며 맺기로 하자. 첫 번째 에피소드에 보면 얼마전에 작고한 랄프 해리스가 몽펠르랭에서 하이에크가 남긴 말을 회고하는 장면이 있다:

해설자:
그러나 하이에크는 회합에서 그들[역주: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아주 큰 교훈 하나를 얻었다고 말했다.

랄프 해리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자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찬사를 바치며 이렇게 말했어요.
사회주의자들의 위대한 힘은,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상주의적이 되고,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하나의 비젼을 가지고, 그리고 그 비젼을 향해 시종일관 일해나갈 그런 용기를.6

하이에크가 배우자고 역설한 저런 용기야말로 이런 시기일수록 되새겨야 할 자세가 아닐까. 이 용기는 섶을 짊어지고 불길에 뛰어들라는 만용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신을 가다듬고 새 시대의 논리를 마련해가는 용기이다. 우리 앞을 살아간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그런 용기를 갖고 "The Battle of Ideas"를 펼쳐갔다. 과연 이 시대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사람들이 진정 그런 용기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홈지기 스스로부터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기억하자, 세상에는 더한 좌절 속에서도 저런 용기를 갖고 시대의 지평을 열어온 이들이 있었음을.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KBS는 '다니엘 여진'이라고 자막을 넣어놨다.
  2. 국내에도 지난 1999년에 번역되어 나왔으나 이미 절판된 상태이다.
    다니엘 예르긴, 조셉 스태니슬로 (1999). 『시장 대 국가: 국가 주도 경제의 쇠퇴와 시장 경제의 승리』 (주명건 譯). 서울: 세종연구원.
  3. 러시아어로는 'командные высоты'라고 하는데, 한 국가의 경제를 주도하는 기간산업 또는 주도 세력을 의미한다. 이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레닌이 주요 기간산업을 초기 국유화 목표로 설정하면서 회자된 말이다.
  4. 자세한 국내 방송 일정 안내는 KBS의 안내 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5.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다큐멘터리 페이지도 두고두고 보며 추가학습할 수 있는 정보들을 담아 공들여 만들기를 바란다.
  6.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RALPH HARRIS: Hayek paid enormous tribute to the socialist intellectuals and said that the great strength of the socialists is that they had the courage, he said, to be idealistic; to have a theory, to have a project, to have a vision, and to go on working towards that, through thick and thin."
2009/01/06 13:05 2009/01/0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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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獨步 2009/01/06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 마지막 인용문에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끼면 아직 나이가 덜 든 것일까요(웃음).

    '빨갱이'와 '친일파'들에게도 무언가 배울 긍정적인 점은 분명 있을텐데. 양 진영 모두 너무나도 쉽게 척결만을 외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이를 덜 먹은게 아니라 아직 인생이 내리막길은 아니라는 증거겠죠. 말씀마따나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절충하고 합의하고 지켜가는 자세가 매우 아쉽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워낙 담벼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분들이 많으니 반작용으로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인지 올해도 계속 고민, 고민입니다.

  2. 양성민 2009/01/06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역시 '맛있는' 글이 많네요.

    조금 늦었지만 "새해 福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shrike 2009/01/06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어제부터 KBS1 에서 하고있습니다. 저녁 11시 30분에 합니다.

  4. 2009/01/0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방송된 1부를 봤는데, 정말 재미있더군요..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픈 프로그램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언론이고 블로고스피어고 너무 연예 프로그램에 매몰된 감이 있는데, 교양 프로그램도 적극 소개하고 추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 Crete 2009/01/0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포스팅 중에 어느 하나도 감사 드린다는 말씀이 허언인 적이 없었지만, 이번 포스팅은 정말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부족할 듯 싶네요. 특히 마지막 말씀은 저 역시 쥐구멍을 찾게 만듭니다. 언제나 좋은 글, 생각할 거리를 듬뿍 주시는 글에 감사 드립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Crete 님이 쥐구멍을 찾으시면 저는 무슨 구멍을 찾아야할까요. =_= 앞으로도 좀 더 팬시한 아이디어와 글감이 없을지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6. foog 2009/01/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아시겠지만 이 다큐는 동명의 책을 기초로 만들어진거죠. 요즘 그 책을 읽고 있답니다. 다 읽고 다큐를 감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맛뵈기로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침 그 책을 읽고 계셨다니 재밌는 우연이네요. 책과 다큐멘터리가 논조가 미묘하게 다르게 잡혀 있으니 독서와 시청을 연달아 하시면 훨씬 느낌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창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확 다를 것 같습니다. 번역판에서는 자그만치 "국가 주도 경제의 쇠퇴와 시장 경제의 승리"라고 부제를 달아놨는데 10년도 안 되어 상황이 이렇게 역전이 되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foog 2009/01/07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현재까지로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물론 그 책이나 여타 경제현상을 다룬 책들이 신자유주의 혹은 그와 다른 입장들의 우위를 기조로 하는 내용들이 대다수이고 이 책도 그러한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부분들보다는 '결국은 어떠한 입장이든지 간에 혁신하지 않는 고인 물은 썩게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소비에트 모델도 어찌되었든 한때는 다른 국가들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습니다. 케인즈 모델도 서구자본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하게끔 만들어 주었던 모델이고요.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신자유주의 모델도 케인즈적인 국가개입주의 모델의 부담을 덜어냈다는 점에서는 혁신이었죠. 하지만 그 부담을 덜어냄의 과함, 즉 균형점을 찾지 못한 일방적인 자유화때문에 또 다시 이전의 모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거죠. 결국 인간은, 그리고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찾아헤매고 그것이 혁신적일 때까지는 유효한 그러한 좌충우돌의 시스템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8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으신 말씀입니다. 가만히 다른 곳에 올라온 글들을 보노라니 이 다큐멘터리를 1편만 보고 단순히 "신자유주의 찬양"으로 아는 분들도 있더군요. 사실 전편을 다 보면 어느 한 쪽을 편들려는 것보다는 그렇게 돌고 도는 자본주의의 큰 흐름을 전달해주려는 것임을 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저도 우리 현실을 영위해나가는 시스템에 있어 만인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그런 영속된 균형잡힌 체제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면 완벽하겠지 하는 믿음이 들다가도 한 구석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며 썩어가기 마련이죠. 그런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구해온 노력들이 있어왔고, 그것이 어느 순간 격렬한 파도와 맞물려 세상은 바뀌는게 아니겠습니까.

  7. 일화 2009/01/07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게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이 많아져야 희망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8. 風林火山 2009/01/07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타고 와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글 하나에 정성을 들이는 것을 보면서 다른 글들도 좋은 글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블로그를 링크해두고 구독까지 해야할 듯 합니다. 종종 들려서 좋은 글들 읽어보겠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8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써주신 글이 한RSS 페이퍼에 떠 있길래 비슷하다 싶어 트랙백을 걸어놨는데 이렇게 찾아와 댓글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9. 길 잃은 어린양 2009/01/08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에서 한 방송을 놓친 덕에 링크해 주신 PBS 사이트에서 시간 되는 대로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 대략 10분 단위로 분량을 나눠 놓은 것이 상당히 편리하군요. 번역판이라도 대출해서 읽어 봐야 겠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8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을 보고 각주에 번역서 정보를 간략히 추가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번역판은 모처에서 한 번 빌려본게 다인지라 소장하고 있지는 못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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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이 돌던 몇 주를 보내고 그럭저럭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지난 주에 말레이시아를 다녀왔고, 돌아와 잔일 정리도 얼추 마무리지었다. 완성할 보고서 원고가 하나 있기는 해도 연말까지는 한결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을듯 싶다. 12월도 벌써 반이 갔는데, 연말까지 예고했던 글 정리와 새해 준비, 이어지는 모임 참석을 하다보면 또 시간이 훌쩍 가리라.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주말에는 집에서 빈둥대면서 여러 책과 동영상에 탐닉했다. 역시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더니 한켠에 쌓아둔 자료가 소화하기 버거울 지경이다. 그 가운데 가장 재밌었던 것 중의 하나가 지난 10월 말부터 한달여 동안을 바짝 달궜던 독일 ZDF의 "Die Deutschen" 시리즈였다 — 아마 독자분들 중에는 '또 독일어 자료!'를 외치면서 설레발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어쩌겠나, 즐거운 자료는 그래도 소개를 해야할 성 싶으니. 이 "Die Deutschen"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독일인', 그 가운데서도 독일사의 핵심을 장식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성립부터 19세기까지 1000년 독일사의 10대 인물과 사건을 꼽고, 이를 멋진 비쥬얼과 자료를 통해 꿰뚫는 장쾌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라 할 수 있다.

ZDF Die Deutschen

이곳에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독일사에도 많은 관심이 있으실터,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인물들과 사건을 꼽으시겠는가? ZDF의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다음과 같이 10대 인물과 사건을 정리했다:

  1. Otto und das Reich (오토와 제국)
    그렇다, 첫 번째 인물은 단연 오토 1세이다. 아무리 역사의 아마추어라 해도 오토 1세의 역정과 신성로마제국의 성립이야말로 독일사의 첫 장면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2. Heinrich und der Papst (하인리히와 교황)
    세계사 시험에 문제로도 많이 나왔던 '카노사의 굴욕'을 기억하시는가. 두 번째는 바로 그 주인공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이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충돌은 분명 신성로마제국의 일대 사건이었다.
  3. Barbarossa und der Löwe (바르바로사와 사자공)
    붉은 수염 '바르바로사'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1세야 말로 독일사 숱한 전설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다년간의 이탈리아 원정과 3차 십자군 원정에서의 최후까지 그는 많은 무용담을 남겼다. 그리고 그 대항마로서 유명한, 작센과 바이에른의 사자공 하인리히도 동시대를 산 라이벌로 빛나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4. Luther und die Nation (루터와 민족)
    루터는 진정 독일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종교개혁가로서의 일대기뿐 아니라 독일어 성경 번역을 통해 근대 독일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운 루터의 활동을 그리고 있다.
  5. Wallenstein und der Krieg (발렌슈타인과 전쟁)
    군사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30년 전쟁기 각종 전술적 혁명과, 이를 주도했던 걸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 가운데 뵈멘(보헤미아) 출신의 발렌슈타인은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2세를 위해 카톨릭계 황제군을 이끌고 실로 맹활약을 했다. 야심많던 귀족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30년 전쟁이 남긴 독일의 암흑기를 조망한다.
  6. Preußens Friedrich und die Kaiserin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와 여제)
    프리드리히 대왕이야말로 프로이센의 중흥을 이끈 빛나는 계몽군주라 할 수 있다. 그의 대항마는 역시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7년 전쟁의 물고 물리는 혼전 속에서 독일의 기초를 세운 과정이 그려진다.
  7. Napoleon und die Deutschen (나폴레옹과 독일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독일인이 아님에도 독일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구체제의 질서를 뒤흔들고 혁명의 이념을 전파함으로써 '독일 민족'의 정체성이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했다.
  8. Robert Blum und die Revolution (로베르트 블룸과 혁명)
    로베르트 블룸은 아마 이 시리즈의 인물 가운데 한국에는 가장 덜 알려진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는 유럽을 휩쓴 1848년 혁명의 주역으로서 독일에서 이름이 높다. 작센의 한 열혈 혁명가가 빈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역정 속에서 당대 혁명 정신을 엿본다.
  9. Bismarck und das Deutsche Reich (비스마르크와 독일제국)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야말로 독일의 정치적 통합의 주역이었다. 북독일연방 성립과 보불전쟁, 독일제국 건국과 평화 유지를 위해 필생을 다한 과정이 소개된다.
  10. Wilhelm und die Welt (빌헬름과 세계)
    독일제국의 종막을 가져온 비운의 황제 빌헬름 2세는 결과적으로 독일이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여는데 기여하고 말았다. 험난한 1차 세계대전으로의 길과 독일 민주주의가 맹아를 틔우게 되는 모습 속에서 독일은 현대로 진입한다.

이 10부작 시리즈는 지난 10월 26일 첫 방송 이래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에 번갈아 방영되며 11월 25일 막을 내렸다. 시리즈의 각 편은 45분 분량으로 표준적인 편성이며, 사실 각 편의 구성 또한 어찌보면 평범할 수 있다. 역사 다큐멘터리들이 그렇듯이 적당히 발췌한 서사구조 속에서 여러 재현장면과 역사가들의 인터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여러 기록과 유물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홈지기가 예전에도 소개한 ZDF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봐온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구성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홈지기는 원래 이런 역사 다큐멘터리에 대해 그리 달갑지 않게 느꼈던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2차 세계대전사 관련 다큐멘터리의 폐해를 많이 봐서 특히 그럴 것이다. 엉성한 사료에 기반하여 전혀 맞지도 않는 영상물을 짜집고 설명 내용도 오류 투성이인 쓰레기 다큐멘터리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걸 보고서 대단한 내용을 아는 것처럼 행색하는 이도 너무 많았다. 다큐멘터리 10편보다 책 한 권에 담긴 정보가 훨씬 정확하고 깊이 있는데도 말이다. 가까운 이들에게는 그런 영상물에 희희낙낙할 시간에 책 한 줄이나 더 읽으라는 핀잔도 꽤나 여러 번 줬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여기저기서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많이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여전히 좋은 책에 담긴 정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좋은 다큐멘터리는 한때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뭔가 공부를 더 해보고픈 의욕이 솟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른바 '삘'을 받아서 더 많은 자료와 책을 탐독하면서 당대 시대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선순환 과정의 촉매로 작용하는 것이다.

"Die Deutschen" 시리즈는 이런 면에서 영상물 이외에도 세심한 공을 들였다. 일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영상물 다시보기 이외에도 다양한 관련자료들을 함께 엮어놓고 있다. 10부작마다 어떤 내용인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짜놓은 것부터 인상적이다.

⇒ Interaktiv: Ein Jahrtausend deutsche Geschichte (1000년 독일사)

ZDF Die Deutschen

1000년 독일사를 좌아악......

ZDF Die Deutschen

다양한 전문가 인터뷰와

ZDF Die Deutschen

세심한 인터랙티브 자료들

여기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예고편, 축약판, 완전판, 각종 인터뷰, 당대 지도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또한 각 회별 페이지에 들어가면 관련된 다양한 사진 및 문서자료, 보조 영상자료 등이 함께 집약되어 있다. 특히나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재연장면 하나하나에도 충실한 고증을 기울인 모습에는 감탄이 나온다. 최대한 초상화와도 비슷하게 선정된 재연배우들이 당대의 복식과 무장을 거의 제대로 갖추고 등장한다. 제작비의 한계상 웅대한 스케일은 보여주지 못해도, 역사책에서 그림과 문자 해설로 상상하던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기획 단계부터 이 시리즈 영상물을 일반 학교에서 역사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한 세심한 흔적도 보인다. 각 회마다 자료로 쉽게 쓸 수 있도록 교습용 역사자료(Materialien für Lehrer)가 PDF 파일로 제공되어, 다큐멘터리 속 해설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영상물 보며 흥미를 돋구고, 홈페이지 들어가서 이 자료 저 자료 뒤적이다보면 절로 재미있게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구조가 짜여져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한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이 다큐멘터리가 던지는 핵심 질문이 결코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Wer wir waren — wer wir sind.
우리는 누구였으며 — 우리는 지금 누구인가

홈지기는 이 "Die Deutschen" 시리즈의 매력에 푹 빠져 보면서 국내 공영방송의 유사 역사 다큐멘터리가 자꾸 비교되었다. 한국도 개개의 프로그램이야 열심히 만든다고 하지만, 대부분 거기서 끝이고 이런 다양한 부수적인 정보들까지 전달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방송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봐도 무료 VOD 서비스와 대본 정도 서비스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상세한 자료와 함께 이런저런 책을 참고하라는 해설까지 수록된 ZDF의 홈페이지에 비해 우리 공영방송의 역사 다큐멘터리 홈페이지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재미있게 본 사람이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지식을 확장해가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뭔가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식활동의 연쇄반응은 좀체로 일어나기 힘든 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온/오프라인의 자료를 보라고 꼭 함께 소개한다

돈도 안 되는 학문이라고 사학과가 외면받기는 독일도 매한가지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처럼 역사가 그저 흥미도 없이 달달 외워 점수 몇 점 얻으려는 과목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제도권의 정론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환국의 세계에서 망상의 나래를 훨훨 펴는 움직임이 극성이지도 않다. 그런 역량의 차이는 결국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들이 역사를 다루는 모습에서도 극명히 드러나지 않나 싶다. 오늘날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공중파 방송은 즉자적인 감흥만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원이다. 그 감흥을 받은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생산적인 지식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공중파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라면 마땅히 부담해야할 책임이 아닐까. 시청자들이 악플, 뻘플로 도배한다고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의 방송과 지식인들이 그런 시청자들의 열정을 얼마나 생산적인 곳으로 돌릴 수 있도록 길을 마련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학계도 발벗고 나서야 할 일이기도 하다. 한국이라고 꼭 지식을 재밌게 풀어갈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없겠는가. 블로그계에도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인들이 손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운 형태로 흩어져있다. 갖가지 공동의 지식활동을 매개할 수 있는 서비스가 개발되고 있다지만, 각계 전문가들이 헌신적으로 동참하지 않고서는 공허한 움직임에 불과할 것이다.

아, 잠시 잊었다. 하기사 한국은 여전히 정치권부터 사학자들을 들들 볶고 교과서 고쳐내라고 윽박지르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홈지기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해외 공영방송의 나날이 발전해가는 서비스들, 곳곳에 '2.0' 붙여가며 겉만 번지르르한 우리네와는 다른 깊이가 느껴져서 꽤나 부럽다. 이런 각국의 알짜 컨텐츠를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부족한 것 하나 더 짚고 가자. 저 엄숙해보이는 독일의 "Die Deutschen" 시리즈 홈페이지에는 (DC갤에 어울릴법한) 이런 e카드를 보낼 수 있는 코너까지 있다:

ZDF Die Deutschen

폭주족 프리드리히 대왕

진지함에 빠져들다가도 함께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그들의 위트마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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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18:30 2008/12/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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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들장군 2008/12/15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의외로 칼 맑스가 안나왔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12/17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맑스가 빠진게 좀 의아하게 보이기도 합니다만, 아마 독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맑스가 세계적인 영향력은 상당해도 정작 다큐멘터리 주제인 '당대 독일인'들에게는 그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게 이유가 아닐까요.

  2. 獨步 2008/12/15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들장군님//
    '현대' 직전에서 끊은 것 같습니다. 어디든 현대에 벌어진 일들은 아직도 학설정리라든지 심지어 이해관계자가 생존해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저런 공영방송의 일반인용 교양프로그램에서는 '정리가 끝난 부분'만 다루는게 적절하겠지요. 아마 지금 30대들의 손자들은 마르크스/히틀러/아데나워 등이 추가된 판본을 볼지도요(웃음).

    아마 대한민국 K본부에서 유사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면 고종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그래서 높지 않을까 합니다 - 하긴 고종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은 많은 듯 합니다만... 아,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國父' 이승만편이나 '조국근대화의 기수' 박정희편으로 마무리될지도.

    홈지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런데

    ...이런 각국의 알짜 컨텐츠를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와 같은 저처럼 무능하고 게으른 자의 폐부를 갈라놓는 비수는 여전히 빼놓지 않으시는군요(훌쩍).

    여튼 올해도 이제 마무리되어 갑니다. 모임이 많으실텐데 술조심하시고요(웃음).

    • 구들장군 2008/12/16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찾아보니 칼맑스가 1818년에 태어나서 1883년 죽었군요. 19세기에 들어가긴 합니다만.. 말씀 듣고보니 그런 면이 있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12/17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홈페이지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Die Deutschen" 후속으로 "Die Deutschen im 20. Jahrhundert", 즉 "20세기의 독일인" 시리즈 5부작이 방영되었습니다. 이 후속작은 바이마르 공화국부터 독일 통일까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야 뭐 獨步님도 충분한 내공이 있으신데 그렇게 아파하실 것까지야 ^^

  3. 일화 2008/12/16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나 대국의 기상은 다큐멘터리에서도 느껴지는군요. 연말연시에 몸조심하셔서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12/1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적으로는 옆 나라의 "대국굴기"보다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국굴기"는 스케일만 크지 디테일이 너무 생략되어있어서 저로서는 별 감흥이 없더군요. 역사 다큐멘터리는 짜임새를 갖추려면 이 정도 스케일이 상한이 아닐까 합니다.

  4. 나그네입니다 2008/12/16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이 언어의 장벽;

  5. shrike 2008/12/17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오히려 저런 움직임을 국내의 드라마들에서 발견하게되곤 합니다.
    다름아닌 MBC의 제3공화국, 제5공화국,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들이 그렇죠.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재미와 시청률을 목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료로도 손색이 없을만큼 여러모로 훌륭합니다.
    SBS의 야인시대같은 프로그램도 희화되긴 했지만 여러모로 당시의 배경과 분위기를 전달하는데 나름 성공했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불멸의 이순신이나 몇몇 본격적인 역사다큐멘터리를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크게 우려될만큼 편향된 시각이나 부실한 고증위에서 망상의 나래를 훨훨 펴는걸 보고있자면 여러모로 저런 역사이해의 기반을 기존 학계-혹은 지식인들이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한다는것이 걱정됩니다. 그런 망상들이 망상차원에서 끝나면 좋겠지만 미디어를 통한 재생산은 앞으로도 몇세대에 걸쳐 악순환을 만들어낼테니까요.

    사실 그런 프로그램 제작프로세스 측면에서 접근해본다면 시간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전제작방식의 활성화를 비롯해 이것도 해결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론들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의 역사교과서 문제가 그렇지만 권력차원에서의 격차가 사라지고 완전히 수평적인 선상에 놓인 우익-좌익 사람들간에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사실 그쪽동네도 보고있자면 서로간에 자기방어본능의 장벽을 맹목적으로 세우고서 농성전에 나서는걸 볼 수 있는데.. 민주계열 쪽에서도 민주주의의는 좋아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토론문화 자체에 대해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갖는 그런 모습들이 밑바닥에서는 많이 보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중세기적 제도교육에도 손을 대야만 할겁니다. 공자왈 맹자왈에서 내용만 20세기 서양문명의 그것으로 채워진게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이니.. 정말 오래 걸리겠죠.


    p.s : 사실 한국의 인터넷이 다른나라보다 유독 빨리 진보하면서 그런 교류채널들을 대규모로 확대시키고 있는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시끄럽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좋은거죠.

    • Periskop 홈지기 2008/12/17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전에 번동대감님께서 "불멸의 이순신" 제작 자문에 뛰어드시면서 한결 보기가 편해졌던 기억이 나는군요. 말씀하신대로 그나마 사극이면 사극, 다큐멘터리면 다큐멘터리, 인터넷 곳곳의 밑바닥 토론 등 이렇게 별개의 컨텐츠로는 나름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걸 잘 엮어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구조 형성이 미흡하게 느껴집니다. 매양 반복되는 문제 이면에는 그런 파편화된 지식 습득구조가 큰 걸림돌이란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각종 지식관련 서비스가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만, 이런 노력을 공영방송 같은 유력 매체에서도 해야 할 것입니다. 방송 컨텐츠와 서지 컨텐츠, 온라인 컨텐츠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나저나 온 나라가 땅파는 소리로 가득차게 할 돈으로 이런데 투자를 해야 할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6. deutsch 2008/12/18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원래 이런 거라는 거지요. 쩝.

    • Periskop 홈지기 2008/12/22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키에서 그 꿈을 이루시려고 하시는지, 아니면 더 멋진 공간을 꿈꾸시는지요?^^

    • deutsch 2008/12/26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위키는 아닙니다.ㅎㅎ 위키는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죠. historytravel.co.kr에서 그 꿈을 이루려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historytraveler.co.kr이란 도메인도 가지고 있죠 ㅎㅎ;;)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지난 글에서 ZDF의 역사 다큐멘터리 "Die Wehrmacht"를 소개하면서, 또 다른 올해의 화제작 "Die Gustloff"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였다. 이는 역사상 최악의 해난사고로 기억되고 있는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의 비극에 대한 미니시리즈(및 해설 다큐멘터리)이다.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는 전쟁 전에는 여객선으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원선으로 쓰인 배였다. 그러다가 대전 막바지인 1945년 1월, 복수심에 가득해 밀어닥친 소련군을 피해 동프로이센의 피난민들을 해상 소개시키는 임무(한니발 작전)에 동원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운명의 시간은 묘하게도 히틀러 집권 12주년인 1월 30일에 찾아왔다. 차디찬 발트해를 따라 피난민을 가득 싣고 항행하던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는 소련 잠수함 S-13호에서 발사한 어뢰에 피격, 침몰했다. 2천 명 정원의 배에 1만여 명이 타고 있었으니 그 아비규환이란…… 이 한 번의 사고로 무려 9,343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는 타이타닉 호의 침몰(사망자 1,517명)에 비해서도 훨씬 비참한 사건이었음에도, 오랜 세월 역사의 조명을 받을 수 없었다. 전쟁을 도발한 독일인들, 게다가 이제는 남의 나라 땅이 되어버린 동프로이센 사람들이 피해자였다는 이유였다. 희생자 절반이 철 모르는 어린이였고, 나머지 대다수도 애꿎은 피난민 여성이었음에도 말이다. 구스틀로프 호 사건이 공론화되는 것 자체가 나찌의 죄상을 희석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로 치부되고는 했다.

그러다가 2002년에 독일 사회에서 갑작스레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는 『Die Blechtrommel (양철북)』으로 유명한 독일의 문호 귄터 그라스의 힘이었다. 그가 구스틀로프 호 사건을 소재로 독일 사회 이면의 갈등을 파헤친 『Im Krebsgang (게걸음으로 가다)』를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 그 후 구스틀로프 호 참사에 대한 저작들이 독일에서도 여럿 출간되었고, 이제 ZDF에서 역사를 회고하는 다큐멘터리와 미니시리즈까지 제작되었다. 영화 "스탈린그라드"의 감독으로도 알려진 요제프 필스마이어(Joseph Vilsmaier)가 메가폰을 잡은 미니시리즈는 생각만큼 호평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ZDF의 (VOD로도 공개한) 2부작 다큐멘터리만으로도 『Im Krebsgang』이 주었던 강렬한 느낌이 다시금 깨어나는 것 같다:

  1. Hafen der Hoffnung (희망의 항구)
    소련군이 동프로이센에 침공하자 수백만 동부독일인들의 희망은 고텐하펜(Gotenhafen)으로 쏠린다. 차가운 겨울의 풍설 속에서 고향을 등진 이들의 슬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2. Flucht über die Ostsee (발트해를 통한 탈출)
    애써 구스틀로프 호에 오른 9천여 피난민에게 발트해는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자세한 피격 정황과 생존자들이 전하는 당시의 아비규환과 뒷얘기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Die Gustloff

구스틀로프 호 참사 이튿날 새벽 바다 재연 장면. 9천여 명이 이렇게 죽었다.

이쯤 되면 Periskop 방문객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이런 의문을 품으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멀리 이국 땅에서 전쟁 중에 일어난 비극이 뭐 그리 대수이겠냐고. 그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독일어 조금 할 줄 안다고 자랑하느냐는 푸념까지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홈지기가 이 구스틀로프 호 사건과 귄터 그라스의 『Im Krebsgang』, ZDF의 다큐멘터리를 함께 소개함이 그저 지적 호사만을 누리려는 뜻은 아니다. 홈지기는 나름대로 이들 속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느낌을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 6년 전(2002년 5월 28일)에 『Im Krebsgang』을 읽고 옛 Periskop에 올린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와 독일의 역사적 멍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올해 초였다. 대략 2월 경에 국내 몇몇 언론에서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의 하나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가 독일 사회의 금기를 깨고 빌헬름 구스틀로프(Wilhelm Gustloff) 호의 비극을 들춰내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짤막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홈지기가 구스틀로프 호의 참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정확히 언제, 어느 책에서인지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동프로이센폼메른 일대 독일 제3 제국 최후의 저항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면서가 처음이었고, 그 뒤에 FeldGrauA Memorial to the Wilhelm Gustloff 페이지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던 것 같다. 2차대전 초기에 독일이 소련에서 저질렀던 만행은 분명 용서하기 힘든 범죄였다. 그럼에도 그 보복으로 동부 독일인들이 겪어야 했던 숱한 참상, 그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빌헬름 구스틀로프 호의 참사에는 불가피한 전쟁의 비극이라 해도 한참이나 씁쓸함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귄터 그라스가 이에 대한 신작을 발표하다니? 좌파의 이미지에 아무리 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싶은 귄터 그라스의 신작 소식은 홈지기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당장 독일어판을 주문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바쁜 연초에, 띄엄띄엄 읽는 독일어 독해 실력으로는 당장 사봤자 제대로 안 읽겠다는 생각에 주문을 피일차일 미루고 있었다.

Günter GrassIm Krebsgang게걸음으로 가다

그러다가 최근 들려온 뉴스는 더욱 놀라왔다. 웬일인지 국내에서도 대단히 빠르게 이 작품의 번역이 진행되고 있었다 — 놀랍게도 세계 최초 번역판이란다. 아마 이번 주 월드컵 개막 전야제 축시 낭송을 위해 내한하는 귄터 그라스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홈지기는 지난 주 출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급히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참의 몰입 끝에 책을 놓은 지금, 참으로 묘한 기분에 젖어 이 글을 쓰고 있다.

홈지기는 여기서 구스틀로프 호의 비극에 대해 구구절절 써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인터넷만 뒤져봐도 이 참사에 대한 개략적인 이야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테고, 무엇보다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이 소설 안에 중요한 이야기들은 다 쓰여있다. 참사 표면의 이야기보다 더 가슴깊이 느껴지고, 이 글에서 간략하게 언급해보고 싶은 것은 현대 독일사회에 드리워진 역사적 멍에와 그로 인한 세대간의 간극이다.

세 명의 실존 인물과 세 명의 허구 인물

이 작품에서는 실제의 인물 세 명과 허구의 인물 세 명이 등장한다. 실제의 인물들은 참사를 당한 이 여객선 이름의 주인공 스위스의 나찌당 간부 빌헬름 구스틀로프와 그를 암살한 유태인 청년 다비드 프랑크푸르터, 그리고 구스틀로프 호를 격침시킨 소련 잠수함 S-13호 함장 알렉산드르 마리네스코 이다. 허구의 인물들은 구스틀로프 호의 참사가 있던 1945년 1월 30일 그 배에 타고 있던 임산부 툴라 포크리프케, 바로 참사 직전에 배에서 출산한 아들 파울 포크리프케, 또 그의 손자 콘라트 포크리프케이다. 앞의 실제 세 인물은 한 비극의 시대 속에 살면서 그 시대의 의식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의 길을 간 사람들이었고, 뒤의 허구 세 인물은 이어지는 시대 속에서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지고 부모들이 물려준 역사의 멍에를 짊어지고 오늘의 독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Wilhelm Gustloff

빌헬름 구스틀로프

David Frankfurter

다비드 프랑크푸르터

Александр Иванович Маринеско

알렉산드르 마리네스코

구스틀로프 호의 참사를 현장에서 겪고, 동독 지역의 슈베린(Schwerin)에 정착하여 험난한 전후시대를 억척스럽게 살아오며 아들을 키워온 어머니 툴라에게 동부 독일인들의 비극은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녀에게 나찌 시대의 죄악과 참상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독일 촌구석에서 목수일을 즐겼고, 나찌가 계급평등의 기치를 내세우며 KdF(환희역행단)을 통해 제공한 노동자 유람선 여행의 즐거운 기억만을 갖고 있었다. 평범한 처녀에게 제3 제국의 민족사회주의건 동독의 공산주의건 이념의 문제는 삶의 본질을 비켜나있는 것이었다. 오직 피난 행렬 속에서 떨어지는 포화에 자신 옆에 서 있던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득찬 배가 어뢰 3발을 맞아 철모르는 아이들 4천 명을 비롯해 9천 명이 넘는 목숨이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된 비극만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아들 파울에게 이 모든 것은 있어서는 안되었을, 지긋지긋한 굴레일 뿐이었다. 차라리 그 날 자신을 뱃속에 품고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품는다. 하필이면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바로 그 날, 1월 30일에 그 비극의 장소에서 아버지도 모르고 태어난 사생아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전쟁을 몸소 뼈저리게 겪지는 못하였지만 유년 시절의 기억은 전쟁이 남긴 상처 속에 파묻혀있는 세대였다. 그의 청년기는 68세대의 영향으로 나찌 시대와 연관된 모든 것들이 죄악시되는 시대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파울의 아들 콘라트는 전쟁의 상처가 모두 아물고, 인터넷이 보급되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서도 세상에 대해 무언가를 외칠 수 있는 이 시대의 청년이다. 그러나 콘라트는 부모가 이혼하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파울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슈베린의 할머니 곁에서 살아간다. 내성적인 청소년으로서 나찌시대와 2차대전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힘든 그에게, 학교에서는 나찌시대의 이야기를 무조건 죄악시하고 언급조차 찍어 누른다. 사생아의 아들, 이혼 부부의 아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알기도 힘든 그 무언가에 대한 강박적인 억압, 그 속에서 콘라트는 독일 나찌시대의 과거와 구스틀로프 호의 이야기에 흥분한다. 그리고 그 탈출구로 인터넷을 찾아 자신의 사이트에 구스틀로프와 나찌시대를 찬양해댄다.

툴라, 파울, 콘라트로 상징되는 독일사회 세 세대의 모습. 이야말로 오늘날 독일이 처한 역사적 딜레마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내고있다. 마치 홈지기가 지난 1997년 독일 여행을 하면서 만나고 느꼈던 이 시대 독일 사람들처럼.

홈지기가 느낀 독일 사회 내면의 갈등

홈지기는 1996~97년 겨울 두 달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 이야기지만 홈지기는 그 당시에 2차대전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전쟁사나 독일사에 대한 책 몇 권 읽고서 나름대로는 독일을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만나는 독일 사람들과 기회가 닿으면 그들의 지난 20세기 중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내 나름대로의 분석으로 그들의 역사에 대해 선을 긋고 평가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커다란 자만이었고, 실로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기억의 일부로 옮아가보자.

1997년 1월 초, 홈지기는 그 1주여 전에 드레스덴의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금발의 독일 아가씨와 베를린에서 재회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웠던 그 아가씨와 나는 베를린 동물원 역(Bahnhof Zoo) 부근 어딘가에서 만나 베를린 대성당 등을 같이 둘러보고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카페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덧 이야기 주제도 역시나 역사 이야기로 빠졌다. (확실히 제대로 연애 못해본 티가 나는 실수였다.) 스무살이던 그 아가씨는 내가 어설프게 늘어놓던 생각들 — 이를테면 당대 독일인들은 1차대전 패전 이후 침체한 시대 속에서 "강한 독일"을 원했고 그런 민족주의 속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 아닌가 — 을 듣더니 단호히 "Nein"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게 아냐? 과연 그럼 뭐가 독일을 전쟁으로 이끈거지? 하는 의문에 그 아가씨가 남긴 말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주변의 부모나 나이 먹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어떻게 자신과 같이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선량한) 독일인들이 그러한 참극의 가해자일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홈지기는 내 또래 그 아가씨의 말을 되새기며 골똘한 생각에 그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Brandenburger Tor

그렇게 홈지기는 베를린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저녁 함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베를린과 이별하는 아쉬움에 기차 컴파트먼트 한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맞은 편 자리에는 웬 독일 친구가 앉아 있었다. 좀 있더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