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 100일도 채 안 되었건만 MB 리더십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현안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불신감만 심어주어 벌써 지지율이 20% 대로 곤두박질쳤다는 뉴스가 나오고, 시사잡지마다 실패의 원인 분석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홈지기는 취임 첫 100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두고두고 발목을 잡힌 또 한 명의 대통령을 떠올려본다 — 그는 바로 미국의 38대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이다.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것은 겨우 895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들 중에 가장 임기가 짧았다. 그러나 그의 임기는…… 리더십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중에는 그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할 것도 있다. 그는 취임 후 처음 몇 주일 동안, 특히 첫 100일 동안 대통령의 능력을 입증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 기간은 나머지 임기보다 훨씬 중요하다. 구태여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모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포드는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에도, 그는 바로 이 대목에서 실패했다.
— 이하 본 글의 모든 인용문은 아래 책(영어판 및 국역판)을 인용함.
Gergen, D. Eyewitness to Power: The Essence of Leadership Nixon to Clinton. (Simon & Schuster: 2001).
데이비드 거젠 지음. 서율택 옮김.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스테디북: 2002).
제럴드 포드는 아시다시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의 뒤를 이어 갑작스럽게 대통령 직에 올랐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에 민심을 수습하고 미국의 자존심을 일으켜세워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 국민들은 그의 소탈함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고,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 기대도 잠시, 포드가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보인 몇 가지의 치명적인 실수는 집권 기간 내내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되고 말았다. 『Eyewitness to Power』에서 데이비드 거젠은 신임 대통령이 금기해야할 실수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배우가 성공을 하려면, 첫 신과 마지막 신에서 탁월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들 한다. 첫 신은 극의 전체 흐름 속에서 그의 캐릭터를 형성시켜주고,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에게 좋은 기억을 갖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의 리더십에서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
포드의 별은 일단 광채를 잃자, 자신의 빛으로 다시 대권을 얻을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취임 후 첫 100일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의 첫 신에 해당했다. 그리고 이 기간은 그가 백악관을 차지했던 나머지 기간 동안의 대중적인 평가를 좌우했다.
포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정권은 왜 그렇게도 빨리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을까? 다음에 다루게 될 이 세 가지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미래의 대권주자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금기의 전형이다.
첫 번째 실수. 결정을 실행하는 방법의 중요성 간과
포드에게 치명상을 입힌 첫 번째 사건은 바로 전임 대통령 닉슨의 사면 발표였다. 집권 30일 만인 1974년 9월 8일 일요일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이 사면조치는 충격 그 자체였다. 백악관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대통령 특별담화를 계획했고, 이는 최측근 보좌관 여섯 명만이 전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사면을 단행한 이 조치는 예상과 달리 국민의 엄청난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71%에 달하던 포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단 하룻밤 사이에 49%로 추락해버렸다.

정권을 어떻게 이양해야할 것인가?
사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언론은 닉슨과 포드의 비밀거래설에 대한 광범위한 의혹을 제기했다. 닉슨의 사면은 전임 비서실장 알렉산더 헤이그와 포드 사이의 밀약에 의해 계획된 수순이었다는 보도가 빗발치면서, 포드는 궁지에 몰렸다. 포드는 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양심에 따라 국익을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포드는 사실 비밀거래를 해봤자 이득볼 거리도 없던 상황이었고, 그의 설명도 나름대로는 충분히 합당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포드는 임기 내 씻을 수 없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리더십과 관련하여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포드가 변변치 못해서 사면권을 발동하는 잘못된 혹은 어리석은 결정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포드는 닉슨이 기소되어 자신의 범죄행위를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았다는 것이다. 혹은 아예 은전을 베풀지 않았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포드의 닉슨에 대한 사면은 도덕적 측면은 물론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국익에 부합되는 결정이었다…… 담화문 발표가 있던 날 아침 포드가 의회 지도자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설명했듯이, 사면조치는 이 같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일단 사면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서자, 포드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즉각적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에 대해 네티즌 다수의 의견은 "MB가 변변치 못해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잘못된 혹은 어리석은 결정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질타하고 있다. 홈지기도 최소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6월 정도까지 기싸움을 더 해보는게 옳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홈지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안 자체는 현실적으로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꼬여가고 있는 한-미 FTA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고도 본다. MB 또한 아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한다면, 이왕 부시 만나는 자리에서 화통하게 제시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다.
신임 대통령을 비틀거리게 만든 것은 결정 자체가 아니라,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이었다. 언론보좌관이었던 존 허센의 표현처럼, "마치 진주만 기습처럼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포드는 지도자로서의 처신에 대해서는 아직 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인지, 정서적으로도 가장 부담이 큰 조치를 발표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준비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는 언론과 국민들의 정서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물론 측근들에게조차도 사면에 대한 고려는 몇 달 후쯤의 일로 보였던 것이다……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보좌관들조차 무슨 내용인지 전혀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수백만의 미국 국민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던 그 일요일 아침 시간에 방송을 타고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이라는 것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도 때로는 정치 지도자가 갑작스러운 깜짝쇼를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호소해야할 때가 있다. 아이젠하워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한국행을 발표했던 것이 그랬고, 인간의 달 착륙에 대한 케네디의 호소, 닉슨의 중국 방문이 또한 그랬다. 그들도 모두 극적인 발표의 주역이었다. 모두 좋은 뉴스들이었고, 깜짝쇼라는 자체가 특별한 희열이었다. 그렇지만 포드의 발표는 전혀 범주가 달랐다. 백악관의 결정이 논란의 여지가 많다거나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가 현명한 대통령이라면 여러 주 또는 여러 달에 걸쳐 세심한 정지작업을 했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국민들도 그 결정을 받아들일 심리적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포드처럼 MB의 결정적인 실수는 국민들의 정서를 전혀 읽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이게 국민들의 쇠고기 구입 부담을 줄여줄 좋은 뉴스라고 생각했고, 깜짝쇼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영 딴판임이 드러나고 있다. MB가 현명했다면 협상 카드를 노출시키지 않더라도 다른 적절한 방법으로 시간을 들여 세심한 정지작업을 했어야 했다. MB와 청와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에서 극도로 미숙함을 보였다.
이 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포드의 행동은 전적으로 명예라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사면조치가 공익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지도, 그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도 못함으로써, 포드의 조치는 오히려 위기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 같은 잘못은 악의보다는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포드 대통령은 이 문제로 인하여 워터게이트의 함정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후로 2년 동안 그 늪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 실수. 잘못된 대중적 이미지의 구축
포드가 취임했을 때, 미국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미국 경제는 초유의 스테그플레이션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 통제를 통한 해법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는 악화일로였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집권한 포드에게는 유효한 정책 수단이 없었다. 스테그플레이션을 잡을만한 현실적인 대책이 궁했던 포드 행정부는 가히 시대착오적인 국민계몽운동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게 유명한 "
Whip Inflation Now (WIN)" 운동이었다. 경험이 부족했던 백악관은 저축을 장려하고, 소비습관을 개선하자는 고리타분한 대국민홍보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1974년 10월 15일, 생방송으로 방영된 영농후계자들에 대한 절약운동 장려 연설에서 포드는 이런 어이 없는 말까지 했다:
마음껏 먹고, 음식은 절대 남기지 마라. 어렸을 때 부모들은 늘 이런 간단하지만 명확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식탁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이것은 지금 상황에도 매우 잘 들어맞는 가르침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포드와 WIN 운동은 온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빨간 WIN 배지를 사람들은 거꾸로 차고 다니며 — "NIM"으로 보이게 된다 — "Nonstop Inflation Merry-go-round (멈추지 않는 인플레이션 회전목마)"라고 희화화했다.
이런 실수는 MB도 똑같이 벌이고 있다. 인수위의 온갖 삽질부터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조소까지 MB의 대중적 이미지는 철저히 구겨지고 있다. 조중동이 아직은 버텨주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그의 실수를 부각하는데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메가바이트가 밀리바이트, 마이크로바이트까지 내려가지 않았는가?
이는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한 가지 진리를 말해준다. 뉴딜 시대 이후 백악관 보좌관들은 일반적으로, 신임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본받아, 취임 후 첫 100일 내에 의회를 압도하고 홍수같은 법안을 제출하여 이 나라를 주문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대통령을 통해 보았듯이, 첫 100일의 중요성은 새로운 백악관이 얼마나 많은 법안을 통과시키고 얼마나 많은 겉치레를 만들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언론이나 국민이 대통령이 생각했던 업무 우선 순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일단 선서증언을 하고 나면, 국민과 언론은 그를 새롭게 평가한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자신들의 미래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새롭게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 같은 평가는 오로지 대통령으로서 오른손을 들고 공식적으로 지도자로서 선서를 하고 난 후에나 가능할 수 있다. 국민들의 판단이 형성되는 것은 단 몇 주일 안의 기간 동안이고, 일단 형성이 되면 돌처럼 단단히 굳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인 것이다.
MB도 천부적인 워커홀릭이라서 자기 방식대로 초기에 미친듯이 일을 해서 한국을 도약기의 현대건설로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MB의 업무 방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MB가 YS의 '신경제 100일'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미숙함으로 점철되었다. 벌써 국민들의 MB에 대한 이미지는 꽤나 단단히 굳어져버린 듯 하다.
세 번째 실수. 전임자의 유산에 대한 과민반응과 권한 위임의 실패
포드와 그의 보좌진은 갖은 비난을 받고 물러난 닉슨에 대해 매우 예민했다. 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나쁘지 않으나, 이런 강박관념은 마땅히 계승해야할 만한 유산들까지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백악관 보좌진의 운용 방식이었다. 닉슨 시절에는 강력한 비서실장을 두고, 폭넓은 권한을 위임하였다. 포드는 이들이 결국 신권의 남용으로 닉슨을 워터게이트의 수렁에 빠뜨렸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포드는 백악관 조직을 축소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업무의 축이 되어, 12명에 이르는 수석보좌관들을 직접 챙기는 구조("축과 바큇살" 구조)로 재편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 포드 스스로가 직접 비서실장 노릇까지 했던 것이다.
포드도 인정했다시피 그것은 끔찍한 실패작이었다. 신임 대통령으로서, 특히 준비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우선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을 파악해야 했으므로, 세부 문제에 대한 검토나 보좌관들의 업무 조율 따위의 문제는 아예 손댈 꿈도 꾸지 못했다. 책임의 소재 또한 불분명해졌다. 그 결과 보좌관들은 서로 적당히 책임을 회피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감"에 따라 적당히 알아서 움직였다. 남는 것은 갈등과 혼란 뿐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강력한 실권을 가진 비서실장이 있었다면, 닉슨의 사면조치 따위도 훨씬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포드 취임 6개월 뒤에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사람이 바로 럼스펠드였다. 부시 행정부에서 망가진 럼스펠드와는 달리, 그 당시 그는 꽤나 촉망받는 유능한 행정가였다. 럼스펠드는 임명 당시부터 이 구조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비서실장에게 폭넓은 권한 위임을 요구했다. 포드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말 뿐이었다. 럼스펠드, 그리고 후임 체니 — 역시 오늘날 망가진 체니가 아니라 매우 유능한 비서실장이었다 — 까지 비서실장들은 어정쩡한 권한 위임 속에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도 한 때는 이렇게 젊었다오 (왼쪽부터 럼스펠드, 포드, 체니. 1975년 사진)
MB도 이런 명백한 실패의 길을 밟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싫다고 국정홍보처를 없애고, 책임총리제도 폐지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운하 구상하고 연설문 다듬어주던 교수를 들어 앉혔다. 한 마디로 권한 위임의 의지란 눈꼽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이래 가지고는 일이 될 리가 없다. 지금도 책임 회피로 인한 갈등과 혼란이 이토록 심각한데, 현 구조를 가지고 앞길이 순탄히 열릴 리도 만무하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앉아 있는 대통령 — 노통도 사실 이 문제에서 피해갈 수 없었지만 — 밑에서 갈등과 혼란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나는 포드의 백악관을 통해 리더십에 대한 두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활하게 운영되는 훈련된 조직의 중요성이었다. 이 점에서는 아이젠하워가 정확했다. 그 같은 조직이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조직이 없다는 사실은 대통령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포드는 그 점을 너무 늦게 배웠고…… 그 같은 접근 방법을 선택했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훗날 로저 포터가 지적했듯이, "축과 바큇살이라는 개념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개방성과 접근의 용이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포드가 개척하려고 했던 독창적인 통치 스타일의 핵심적인 개념이 바로 이것이었으며, 나아가 대통령이 직접 실무 집단을 통제해야 한다는 실무가적인 기질을 드러내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통령에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가 확실한 집안단속이다. 백악관은 문어발처럼 방대한 정치조직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채찍을 들고 업무집행을 감독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감독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얽히고 설킨 바깥 세상의 일만으로도 너무나 바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비서실장에게 완전한 권위를 부여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누가 비서실장이 되어야 하고, 비서실장은 어떤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부통령 지명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대통령이 전임자의 잘못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기가 쉽다는 점이다. 과거로부터 잘못을 배우고, 잘못을 교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상적인 업무 집행 자체를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지만 처음 몇 달 동안 포드의 임명을 받았던 사람들은 마치 적국 수도에 진주한 점령군처럼 닉슨이 세웠던 모든 것을, 모든 조직구조와 관행을 파괴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차별성 있는 대안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 포드의 주변 인물들이 닉슨의 해악적인 부분은 폐기한다 치더라도 그의 최고의 유산들은 계승한다는 전망을 갖고 있었으면, 집권 초기를 보다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으리라.
권한 위임도 실패하고 있고, 전임자의 공과 과를 냉정히 평가하여 바람직한 유산을 계승하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이런 MB에게 과연 임기 말까지 역전의 희망이 있을 것인가? 홈지기는 이미 90%는 끝장났다고 본다. 포드가 범했던 세 가지 실수, 그리고 지금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실수를 MB는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주 22일의 대국민 담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 더 큰 곤혹스러운 일들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그의 잘못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모든 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처음 100일의 족쇄에 매달려 힘겹게 5년을 끌고 갈 공산이 크다.
MB가 지금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인가
MB는 이처럼 포드가 저지른 임기 초반 대통령의 금기 사항들을 너무나 곧이 곧대로 답습해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그 역시 포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포드는 미숙한 상태에서 대통령 직에 오르고, 초반에 치명적인 실수를 했지만, 그에게는 뛰어난 품성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대통령에 올랐듯이 본질적으로 권력욕이 없었다. 포드는 승리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을 부담없이 대하면서도 독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겸손한 인물이었다. 처음 100일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에 포드는 재임 초에는 온갖 조롱을 받았고 재선에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실무에서의 공은 인정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 포드는 결코 위인의 반열에 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때가 늦기는 했어도, 어쨌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 모든 실책에도 불구하고, 특히 1976년 선거에서 그를 패배하게 만들었던 첫 100일 동안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훌륭한 실무 대통령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이 남긴 상처를 치료했으며, 이 나라를 경기침체에서 구해냈고, 철의 장막에 균열을 냈으며, 지미 카터에게 다시 말끔히 정리된 지휘봉을 넘겼다.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로서 판단한다면, 포드는 시험을 통과했다……
난장판 속에서 그는 너무 정직한 경기를 했다. 이것이 그에 대한 가장 공정한 비판이다. 또한 그는 이 나라를 진창에서 완전히 끄집어내지 못했다. 정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원상대로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렇지만 개방성과 정직, 겸손의 미덕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이 가치들은 세로운 세기를 맞아 다소나마 정치라는 말이 다시 품위를 뜻하는 말이 될 수 있도록 희망의 불씨를 당겨 주었다.
물론 MB는 포드만큼의 끝을 맺기도 쉽지 않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수많은 부도덕성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한다. CEO 대통령이라는 모토로 이 자리에 올랐으면, 남은 진실성이나마 최대한 발휘하고 실수를 받아들여 주어진 실무 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지금의 세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롱의 바람이 언젠가 가라앉고, 역사는 포드에게 그랬듯이 MB에게 작은 미소나마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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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린 시절에는 처칠을 존경했는데 알면 알수록 따라가서는 안될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더군요. 그래도 그는 흥분한 노동자 군중의 면전에서 시가를 빼물고 당당히 나설 정도로 배짱과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 아니었습니까?
MB가 그런 걸 따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황새 쫓아가는 뱁새 꼴 날 것 같습니다. 어쩌자고 이런 천박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처칠은 워낙 다양한 모습을 내재한 인물이라 파헤치며 즐기기엔 좋지만, 말씀하신대로 뭘 특별히 따라하기엔 곤란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들어주신 일화처럼 배짱과 카리스마도 있었지만, 한 켠에서는 눈물도 자주 흘리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는 몹시 당황스럽더군요. 그나저나 MB에 대해서는 역시 견적이 안 나옵니다.^^
음...분석대상의 수준을 너무 높이 파악하신 거 아닐지...
그냥 전쟁에 <승리>한 국가지도자들 중에서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도입한 사람,
공산군에게 패배한 사람, <좌파>가 본받으라 읊어대는 나라의 지도자
(이상, 어디까지나 MB 보시기에 그렇단 말이죠)
이렇게 빼고 나면 처칠밖에 없죠...
그런 직선적인 필터링 규칙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MB가 역사적 식견이 더 있었으면 더 좋은 전범을 찾을 수 있었겠죠.
'현명한 리더는 취미를 즐기거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업무 외의 다른 것도 추구한다.'라는 말이 멋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양한 삶을 즐기시길.^^
처칠 평전 돌렸다길래 존 렘스덴의 책인줄 알았더니 저런 상업서를......
하긴 MB 수준이 그렇지... -_-;
이래서 양질의 학술서적 시장이 나날이 입지가 좁아지는 지도 모르겠죠.^^
그러나 저러나 각하께서 저 가벼운 책에서 뭔가 거창한 것을 이끌어내려는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각하의 머리 속에는 엘알라메인 전투가 아른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몬티 역으로 누구를 내세울까요?
드골도 허걱했는데 처칠이라니.. orz
하긴 전시의 이명박이라면 지금보단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자신이 난세에 태어났으면 더 멋있게 활약했을텐데……라는 지도자 분들이 꼭 계시지요. 현대건설 현장을 누비던 야전사령관의 꿈과 사뭇 다른 대통령 직에 통분하고 있을 겁니다.
뭐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모습을 볼때 큰 걱정이 안들기는 하네요. 뭔가를 읽고 영향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질 않으니...
아, 또 그런 점이…… 그에 대해서도 쓸 거리가 있는데 다음번 글로 적어보도록 하지요.
MB가 박정희나 처칠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70년대의 '통치 낭만주의'에 빠져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거 당시 자신의 정체성으로 밝혔던 '경제 견인 성장'의 코드는 분명히 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박정희나 처칠 당시의 시대적 특질을 지금 시점에서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국가 목적 달성에 전제되는 피아식별이 분명했으며 사회 공동체 내에 '주적'에 대한 전사적 긴급상황이라는 공동 이해가 도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내외적으로 피아식별이 모호해지고 여러가지 불만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소위 '칼 든 영웅'이 활동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권 10년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낼 영웅 이명박'의 모습이 경선 때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랴'부터 이번 처칠 평전까지 지속되고 있는 듯 합니다. 씁쓸 그 자체네요.
참고로 저는 앤드류 로버츠의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Hitler & Churchil: Secrets of Leadership)>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울러 MB도 꼭 이 책을 읽고 히틀러에게서 뭔가 배웠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보단 닮은 사람에게서 더욱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써주신 바에 공감합니다. 시대 흐름 속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적절히 적응해가야 할텐데, 아무래도 머리가 굳어지면 자기가 변화하려고 하기 보다는 시대가 나를 따라 잡아주길(?) 기대하는 심리가 강해지죠. 처칠도 1930년대에는 정말 많은 욕을 먹고 인기도 지지리 없었던 것을 상기하면서, MB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호기가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요?)
자신에게 유리한 호기가 있는데 그걸 '저놈들이' 막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듯 합니다.
문제는 '저놈들이'의 실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건데 언제쯤 거울을 들여다 볼지 모르겠습니다. 이리저리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주변에서도 다 손 놨다는 얘기가.. --;
흐음.. 승병님은 자연과학을 전공하셔서 그런가요?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무척이나 신중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MB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저는 그 판단에 항상 공감하지만요. ^^;;)
MB는 현상황을 그저 영웅설화의 시련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니 처칠이 얼마나 매력적이겠습니까. 전유럽을 석권한 히틀러에
굴복하지 않고, 영국을 지켜내고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윈스턴 처칠수상.
그야말로 MB취향에 딱인 겁니다. 실제 처칠의 진실같은건 전혀
알 바 아니고요.(아직도 '읍니다'를 고수하는걸 보면 책이나 글과는
담쌓은 사람이란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냉정히 말해 청와대 직원들한테
돌린 저 책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거라는데 만원 걸겠습니다. ^^)
얼마전에 승병님이 시티노 교수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잖아요.
저는 그 책을 보면서 MB가 오버랩되더군요.
그 사람은 60이 훌쩍 넘도록 밀어부치기 식으로만 살아왔으니
그 프레임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파열음을 내다가 예전에도 썼다시피
결국 한나라당의원들한테도 버림받을거라 봅니다.
아웅~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졸려서 이만 자야겠습니다.
타임라이프 2대전사랑 몇몇 책과 디시 2대전갤러리 글이나 읽은 제게
승병님이나 다스라이히님, 어린양님, 윤민혁님 등 대인배들의 신선놀음같은
토론을 보면서 그저 굽신굽신하기만 했는데 어째 MB관련해서만 덧글을 달게
되네요. 이러고 싶지 않은데.. ㅡ.,ㅡ;;
참고로 독소전쟁사는 정말 감동하면서 봤답니다. ㅠ_ㅠ
디시 표현을 쓰면 우왕ㅋ굳ㅋ이었죠.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역시 남의 심리를 해석하는 것은 논리보다 정말 "블링크!"가 필요할 때도 종종 있는 법이라……^^ 저는 본능적 감지에 좀 약하다보니 주절주절 자꾸 줏어담아 분석하게 되더군요.
오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드골이나 테오도어 루즈벨트나 윌슨, 아이젠하워처럼" --> "그렇지만 드골보다 테오도어 루즈벨트나 윌슨, 아이젠하워처럼"가 더 문맥상 적당한 것 같습니다.
- SBC 방송중 승병님의 오랜 팬으로부터 -
맞습니다, 제가 실수했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SBC라는 소리를 들으니 순간 감시카메라가 있나 헉! 했습니다.
모신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책을 8권이나 쓴 분입니다. 또,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기자와의 간담회에서 "이 사람아, 독서는 생활이지~"라는 감동적인 말씀을 하신 분입니다.
또한, 바뀐 지 20년이 지나도록 "~습니다"대신 "~읍니다"를 고수하는 분이시고, 조지훈의 '승무'에도 나오는 단어 '고이'에 강세를 넣어 '고히'로 쓰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박학다식하신 분이라면, 저정도 책은 책표지만으로도 내용을 꿰뚫으셨을 겁니다. 처칠의 연설이요? 그야 이미 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분이지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능력'을 가진 분들도 가끔 만납니다. "내가 저런 분 밑에서 일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하는 생각도 들지요. 예, 저는 이미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단계를 넘었지요.
돈주고 사람 사서 쓴거지.
동감합니다.^^ 그런 '능력'의 소유자 앞에서 할 말을 잃었을 때의 느낌이란…… 저는 아직 그 경지를 초월하기엔 좀 멀더군요.T_T
책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소리하기 뭐하지만, 데이비드 거겐의 프랑스 정치사나 드골에 관한 악평은 왠지 앵글로색슨의 프랑스 비하론 같은 느낌이;;;;;;;;;;
그냥 정치풍토가 다르니 엉뚱한 대상을 골랐다 정도로도 충분히 전달을 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런 뉘앙스가 있기는 합니다만, 저에게도 드골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괴악한 점들이 많이 느껴져서 그런지 공감이 가더군요.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이정환님 덕분에 멋진 블로그 하나 알았네요^^ 종종 놀러 오겠습니다.
MB의 천박한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서울시장 시절 때부터 새삼 놀랄게 없지만 처칠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네요^^: 좋은 글 잘 보다가 갑니다^^
발키리때문에 홈지기님의 글들을 읽게 되었는데 더 좋은 글들이 훨씬 많네요. 처칠은 마치 정치를 위해 태어난 인물 아닐까 싶습니다. 평전보다 어린시절 읽었던 위인전에서 기억나는 처칠의 모습 몇가지만 기억해보더라두요.
정치가 삶이자 취미이자 목표이자 수단이었죠
이글과 또 다른 MB 관련 책 포스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한번 글을 준비해 봤습니다.
지도자의 성공조건: MB의 1년 회고
http://crete.pe.kr/9145
처칠이라.. 곤란하게 됐군요. 평화시에 처칠은 두드러지지 못한 정치가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 처칠은 종군을 했쟎아!)
처칠처럼, 어지간히 "고집"을 부릴 모양인가 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