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09년도 열흘 남짓 남았다. 그래서일까, 2010년 선거철이 다가오는 징후인지 선거판 짜기가 슬슬 세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듯하다. 홈지기는 아직도 밀린 원고 젖히기에 바빠서 블로고스피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주시하지 못했는데, 이웃 동료A 군의 글을 보고서야 최근 이슈1들을 접하게 되었다. 역시나 민주당 지지자부터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민노당 지지자에 이르기까지 소위 개혁-진보세력에서는 반 한나라당 판짜기를 두고 해묵은 말들 참 많이 오가고 있다. 누굴 참여시키고 누굴 배제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노라니, 민주화 이후 몇 차례의 대선, 총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남은 교훈이 이리도 없는지 얕은 한탄부터 나온다.

지난 십 수년의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DJP 연합으로 명실상부한 민주세력의 집권을 달성한지 10년, 그리고 이제 다시 MB 정부가 등장한 2년 동안의 격랑을 헤치고 남은 것이라고는 막연한 선거연대의 꼼수 뿐인가. 민주세력의 연대, 물론 중요한 이야기이고 멋져 보이는 이야기이다. 허나 탄탄한 뿌리 없이 엮어낸 연대가 얼마나 서로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어왔는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진보세력들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쏟아내는 배신감이 어디서 비롯되었겠는가, 이념과 지향점 및 정책 수준의 진중한 공감은 이뤄내지 못한 채 표 갈라먹기부터 신경 쓴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런 무의미한 반복을 왜 거듭해야 하는가. 어차피 지리멸렬해진 개혁-진보세력이라면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더 낮고 미세한 수준의 연대와 통합부터 고민할 차례이다. 즉 정치적 정파의 연대를 말하기 이전에, 그 연대를 뒷받침할 브레인과 정책지식을 키우고 이들부터 교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의 한계는 무엇이었는가

홈지기가 한창 다른 일에 바빴던 지난 8월, 언론 지상에서 접했던 칼럼들 가운데 특히 공감했던 두 글이 있었다.

첫 번째 칼럼을 쓴 분은 한겨레경제연구소(HERI) 이원재 소장이시다. 이분과는 한 해 남짓동안 같은 직장에서 몸담은 인연도 있고 해서 이 글에 담긴 뜻이 더욱 절절히 느껴진다. 이 소장은 경력도 특이해서 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MIT Sloan MBASERI 수석연구원→HERI 소장의 길을 밟았다. 순전히 진영논리로만 보자면 좌우를 넘나드는 경력을 쌓았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한국사회 각 진영이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 직접 목도하고 꽤나 고민해왔음을 홈지기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이 소장은 칼럼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위기가 닥쳤는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졌다.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왜 이렇게 외로워 보일까?

불편하지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 진실 하나. 우리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손쉽게 그들[두 전직 대통령]에게 아웃소싱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역시 하청 받은 가치를 구체화할 수 있는 기술과 조직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당과 사회에는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낼 진보적 싱크탱크가 없었다. 결국 기업연구소와 국책연구소에서 지식을 빌렸다. 수십 년 동안 그 반대의 가치를 구체화하는 데 골몰했던 그런 싱크탱크에 기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 두 대통령에게 ‘갑’의 행세를 시작했었다. 그 정부가 현실과 타협하는 찰나, 그들을 거칠게 비판했다. 마치 품질이나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하청업체를 다루듯 말이다. 두 대통령 역시, 제대로 된 연구소조차 갖지 못한 개인사업자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홈지기도 계속 이 글에서 언급하는 ‘기업연구소’에 근무하며 이런저런 모습을 봐온 입장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정당과 사회진영은 여기저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구체적인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지식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존재들은 지극히 미약하다. 개혁진보진영의 싱크탱크들은 지난 번 오마이뉴스의 기획기사에서도 나왔듯이 대부분 아주 영세하다. 그렇다고 싱크탱크의 기능을 달리 대체할 수 있을까. 교수의 발탁도 문제가 많긴 마찬가지이다. 교수 분들은 이상향을 제시하고 학술지식을 생산하는 데는 능하나, 더 구체적인 수준의 정책지식과 정책안을 내놓는 데는 익숙치 않은 분들이 상당수이다. 참여정부에서도 여러 교수 분들이 가히 왕따를 당하고 점점 밀려난 것을 보지 못했는가. 경방고수 식으로 민간의 현인을 덜컥 모시면 되리라는 희망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이다. 독고다이로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실의 실행조직을 통솔할 리더십과 감각보다는 냉소와 나르시즘의 그늘이 너무 짙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개인플레이로 탄탄한 조직력을 이겨내기란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니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앞에서 질러놓은 거대담론을 구체화할 정책지식은 사후에 국책연구소나 기업연구소의 역량을 빌릴 수밖에 없다. 물론 국책연구소와 기업연구소가 지식생산자로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연구소들은 나름 투철한 ‘고객만족’의 마음가짐 — 컨설턴트라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실 것이다 — 으로 접근하는데 능란하다. 보완적인 정책지식 생산자로 잘 활용할 여지도 많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전 정책지식이 빈약한 정권은 이를 보완적으로 활용하기 보다는, 뒤늦게 현실의 벽을 절감하고 거꾸로 휘둘려가기 쉽다. 거기에 대통령의 의중, 정치구도의 변화까지 겹치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로 인해 나오는 결과물들은 누더기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결국 이상과 열정이 가득했던 정치세력과 지지자들에게는 실망과 상처만 남을 뿐이다. 한쪽에서는 비열한 타협자란 소리가, 한쪽에서는 현실에 담을 쌓은 몽상가란 소리가 난무한다. 이는 어느 진영이건 사람들의 관심은 그저 막연한 가치와 이를 실현해줄 대리인으로서의 대통령에 지나치게 쏠려있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각자의 목소리를 강고히 만들어줄, 체계적인 팀플레이를 하는 싱크탱크를 경시하고 있음에서 비롯되는 데도.

두 번째 강준만 교수의 칼럼은 그래서 정곡을 찌르고 있다. 막연한 反MB, 反신자유주의 등에 목매며 분노하는 것은 그저 무력한 투쟁의 반복일 뿐이다. 상대 정당을 그저 적들의 집합체로, 우리 정당은 적들을 깨부술 투사들의 집합체로 보는 反정치적인 열정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 속에서 세심하게 미래의 가치를 고민하고 지식과 여론을 끌어 모으는 정치인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그저 소모적인 투사로서의 정치인 이미지만 소비해대는 풍토만 활개를 친다. 여기에 변화가 없는 한, 개혁세력이건 진보세력이건 미래는 뻔한 것이다. 설령 삽질의 반작용으로 운 좋게 다시 집권을 한다 해도 또 어떤 개인사업자는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눈물을 머금고 파산하리라. 한국의 지식생산 및 소비구조에서 밑바닥까지 건드릴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없이 정권 잡겠다고 손을 잡았다 서로의 불신만 깊어지는 얕은 수는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

개혁-진보세력은 지식생태계부터 연대하라

따라서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발전이 이뤄지려면 이제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가시적인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올해 오마이뉴스에서 다뤘던 진보싱크탱크 특별기획은 분노하는 시민들의 눈길에서 동떨어진 곳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이런 싱크탱크들이 자꾸 식자들의 조망을 받고 누가 보더라도 품질 좋고 현실성이 있는 정책지식들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그 결과물이 자꾸 알려져야 한다. 기획 취지에서도 나왔듯이 그래야 ‘대안 없는 진보’라는 억울한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무엇보다 이런 개혁-진보세력의 작은 싱크탱크들부터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표를 두고서 유권자를 농락하는 마음에도 없는 연대에만 신경 쓰지 말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은 싱크탱크들이 뜻을 모아 공동연구도 해보면서 세부 정책 수준에서 다양한 대안부터 착실히 쌓아가야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공동연구를 해볼 재원도 부족하다면 최소한 개혁-진보세력의 공동 정책지식 발신 포탈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각 싱크탱크들마다 언론 노출 정도는 빈약하고, 각 홈페이지 방문자, 보고서 열람자도 한 줌인 상황에서는 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매번 몇몇 명망가, 대표논객이 쏟아내는 카타르시스성 글만 쫓아다니며 열광하는 게릴라전만 하고 있을 것인가. 개혁진보가 집권하려면 최소한 상상력이라도 상대를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즉흥적으로 의사표현하고 전투적 댓글로 소모하는 게시판은 지양하고, 한층 세련된 의제를 꾸준히 만들고 대안을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공간은 그저 꿈일 뿐인가. 수많은 의견 발신매체, 사회연결망 서비스들의 기술적 진보에만 열광하지 말고 이들을 엮어 진정한 개혁-진보세력의 지식생태계 연대로 구체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인가. 진정성도 없는 反한나라당 연대를 둘러싼 감정싸움은 접어두고 이런 준비과정에 기성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일반 누리꾼들이 더 많은 노력을 모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어느 날 서로가 더욱 차갑게 현실을 직시한 정치적 연대를 구성하길 바란다.

글을 맺기 전에 이원재 소장의 컬럼 마지막 부분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남겼다는 두 부분을 오버랩시켜 다시금 상기해본다.

역사의 발전을 위해 그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개혁한다는 것은 대통령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판이 잘 짜여져야 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국민적 요구가 있고 그런 변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주변 상황이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럴 때 역사의 큰 진보가 가능한 것입니다. 대통령을 뽑아놓고 그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항상 결과에 실망하게 됩니다. 실망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을 것입니다. — 노무현 (2009). 『성공과 좌절』. 서울: 학고재.

미국과 한국의 다른 점은, 사람과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 있었느냐에 있다. 진보든 시장만능주의든 가치가 먼저 있고, 그 가치를 담는 그릇으로서 독립적 싱크탱크가 있고, 그리고 레이건과 오바마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개혁적인 한국 대통령이 외롭지 않으려면, 국책연구소나 기업연구소를 넘어설 수 있는 규모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충분히 대중적이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구체적 정책대안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 이원재 (2009. 8. 20.). "두 전직 대통령이 외로웠던 이유". 한겨레신문.

솔직히 홈지기는 어찌 보면 개혁진보진영의 싱크탱크들과는 대척점에서 일하고 있다. 홈지기는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현재 몸 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존재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국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 돕지는 못해도 조금이나마 저런 민간 싱크탱크들에게 기부는 하고 있다. 그들이 홈지기의 목소리와 오롯이 가깝지 않더라도 그게 궁극적으로 ‘열정의 제도화’의 한 방편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구차한 진영논리를 떠나 한 사회가 쌓는 다양한 무형의 자산은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소중한 존재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 점을 많은 분들이 인식하고 노력을 보탰으면, 그래서 각자의 입지에서 ‘열정의 제도화’에 조금씩 더 다가갔으면 한다.

Notes.
  1. 대표적으로 얼음집에서 벌어진 최근 갑론을박에 대해서는 다음 두 글의 링크를 참고 바란다:
    이글루스 좌빨 VS 노빠 대전 PART 1,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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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진보싱크탱크

    Tracked from leopord의 무한회귀 2009/12/21 19:04  삭제

    개혁-진보세력은 지식생태계부터 연대하라 (periskop 님 포스팅) 한나라당에게 기대하다 (병풍A(구 sprinter) 님 포스팅) 0. 정치적인 긴장과 갈등 속에서 서로 허울 뿐인 연대를 공언하기 이전에 공동의 지식생태계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periskop 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1. 싱크탱크의 부재 문제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좌우를 넘어서 있다. 한나라당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가 당내 정치갈등 속에서 제...

  2. Subject: 왜 연대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생각할 때입니다.

    Tracked from 南無의 시사공작소 2009/12/21 21:06  삭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방선거 연대 못 하면 모두 루저”라는 발언을 시작하여 우파 정당과 좌파 정당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이와 같은 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왜” 연대를 하는가에 대해서 등한시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의 연대는 그 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핀란드의 좌, 우파 정당의 합심은 좋은 경제 발전과 복지의 양립의 예로써 널리 칭송 받고..

  3. Subject: 우리의 이름은 "국민의 방패" 입니다.

    Tracked from 삽군난무붑샤의 휘황찬란삐까반짝 블로그 2009/12/24 18:08  삭제

    한국의 모든 진보세력이 연대할수 있는 공통된 가치란 무엇일까? 나는 한가지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진정한 구호는 "반MB"가 아니다. "반MB"는 단지 2MB라는 쥐새끼 하나를 겨냥한것이다. 이런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 "지역정치극복" "독재" 같은말도 국민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우리가 진짜 외쳐야 할 말은 "국민의 방패" 가 아닐까? 한국의 진보세력이 모두 함께 합의할수 있는 가치관은 이것이다. "우리가 함께 국..

  4. Subject: 연대 혹은 사람

    Tracked from things trivial 2009/12/25 02:47  삭제

    실패(?)의 이유가 정책의 구체성 없음이 문제였다는 지적에는 동의 결과적으로 휘둘리고 말았다는 지적에도 동의 물론, 그들이 진지한 전망을 탄탄하게 마련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현재의 제도 속에서 그러한 전망을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과 정치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현재의 크고작은 연구소들은 민간 차원의 정책 생산이 부족하다는 공통된 문제의식 하에서 주욱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동안 주력해 온 이른바 '정책생산'이 얼마나 효..

  5. Subject: ■ 한 국가의 체제(體制)를 바꾼 사람들

    Tracked from deutsch`s Web Cafe 2010/01/04 10:28  삭제

    들어가며 한 국가, 한 체제를 바꿀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동원되는 것이 지난 2천년 역사의 특징이다. 거기에는 합법 수단, 합법을 가장한 수단, 비합법 수단 모든 것이 포함된다. 당시 상황에서, 주도자들이, 꺼낼 수 있는 카드를 시의 적절하게 활용했을때 성공한다. 그들은 그 카드를 사용할때 꺼리낌이 없었다. 왜냐하면, "합법"이라는 것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의 경우만 하더라도 자신이 그토록 엄금했던 것..

  6. Subject: 진보와 싱크탱크 그리고 책

    Tracked from kbookncat 2010/03/28 16:54  삭제

    먼저 시작하기 전에 당부 말씀부터 드린다. 이 글은 꽤 긴 분량의 글이고 깊이 들어가는 링크가 많아 난삽하거나 쓸데없는 글일 수도 있지만, 지적 유희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틈틈이 모아 올려본 것이니 맞는 부분은 취하시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버리는 취사선택을 하면 감사하겠다. 쉬운 이해를 위해 차근차근 읽어주길 바란다. □ 용어 정리 ① 싱크탱크Think tank - 두뇌집단, 지식집단으로 불리는 각 분야의 전문 연구진을 모아 정책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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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merfol 2009/12/20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정의 제도화. 이 말을 이렇게도 하는군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

    • Periskop 홈지기 2009/12/21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작명 센스는 부족해서 다른 멋진 말은 찾지 못하겠고, 나름 괜찮은 용법이라 생각되어 인용해봤습니다. 잘 읽고 계시다니 감사합니다.^^

  2. uriel  2009/12/20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DJ의 경우는 그래도 자기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까지는 자기 자신이 싱크 탱크 역할을 해 왔는데, 이게 야당으로 있는 동안 꾸준히 비축 해 놓은 컨텐츠였다는게 문제였죠. 그래서 집권 이후에 대해서는 비전은 제대로 없었고 막연한 방향성 정도만 있었습니다.

    진보 진형의 경우 싱크 탱크의 역할을 자생적 대학 물 먹은 쪽이 해왔다고 보는데, 문제는 같은 진형 내에서도 이 쪽을 입진보니 패션좌파니 해서 (둘 다 2009년에 블로그스피어 내에서 본 단어입니다) 진보의 *순수성*이 떨어지는 진짜 진보가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겠죠. 마치 중국의 문화혁명처럼 가는 것을 원하는 듯 하더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9/12/21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돌이켜 보면 그런 파편화된 개인은 싱크탱크가 아니라 싱크버켓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버켓 사이즈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죠. 탱크가 되려면 그 내부에서 지식이 잘 순환하여 숙성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오랜 시간과 자원의 투입이 있어야 한다는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개혁진보진영 내에서도 그런 지저분한 부분의 진가를 인정하고 중장기적 과제로 삼아 착실히 만들어가길 바랄 따름입니다.

  3. 별마 2009/12/21 0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도 나왔던 문제제기가
    이원재 소장과 강준만 교수의 입을 통해 리바이벌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페리스코프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아직 대략적인 윤곽조차 못 제시하는 것을 보면 조금 답답하네요.

    우리나라의 경우 좌파든 우파든 선거만 되면 거창해져서
    집권에 성공하면 단번에 관료들과 충돌하는 것을 봤는데
    결국 깨지는 쪽은 집권정치인이라고 할까요.
    그나마 우파의 경우 오랜 집권 경험 덕분에 깨지는 양상이 덜한데
    지난 10년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너무 처참하게 깨지는 거 같았습니다.

    결국 페리스코프님께서 지적하신 '지식생태계와의 연계'는
    단순히 좌파와 우파의 싱크탱크 균형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료'라는 또다른 현실적 존재와 균형을 이루도록 나아가야 할 거 같습니다.
    좌파의 개인플레이가 한계를 갖는 또다른 원인을 보면
    관료 수준의 조직력과 정보력이 없다는 것 또한 중요한 원인인 거 같아서죠.

    너무 관료에 대해 비관적으로 쓴 거 같네요.
    능력이 우수하고 패기넘치는 관료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길기만 할 뿐 영 엉뚱한 덧글인 거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윗분께서 말씀하신 입진보와 패션좌파는 저도 최근에 들었습니다.
    웃다가 정말 넘어갈 뻔 했는데 왜 그리도 씁쓸한지...

    • Periskop 홈지기 2009/12/21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사회의 관료집단은 그래도 일본처럼 노골적으로 정치 위로 기어 오르지까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낫습니다. 집권세력의 충실함에 따라 관료집단의 경륜을 슬기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정치인들이 당장 선거 줄서기에 목을 매고, 정책지식을 장기적으로 쌓아야 할 자산이 아니라 권력을 매개로 손쉽게 조달해 쓰는 소모품으로 생각하다보니 헛점이 계속 드러나는 것이겠지요. 조직력, 정보력 이런 것은 지금 있어 보이는 보수성향(?)의 집단들도 맨바닥에서 시작해 20년 이상씩 공들여서 쌓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소외만을 한탄하지 말고 어서 작은 싹들이나마 잘 키워내는 방향으로 논의가 모아졌으면 좋겠습니다.

  4. Crete 2009/12/2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글은 연말이라 그런지 더욱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혹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활동하는 게시판 한곳(theacro.com)에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퍼하고 싶은데요..

    요 몇일 홈지기님의 이번 글이 많은 교훈이 될 치열한 토론이 있었기에 부탁 드립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12/21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아크로 쪽은 제가 영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데 펌질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다행입니다. Crete 님도 연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5. 솔로부대장 2009/12/21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은 안달고 눈팅만 자주하는 눈팅족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중에 '가시적인 성과'라는 부분이 마음에 닿는군요.

    저도 심정적으로는 진보를 지지하지만 정치적으로 그들을 지지해주기 힘든것이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의'를 털끝만큼이라도 위해하는 세력이라면 무조건 비타협으로 일관하는 통에 실제로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국회의 의석을 상당수 차지하는 식의 가시적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하는 정치적으로 무능력함을 충실히 보여주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글쓴이님의 글은 충분한 현실적인 방향제시 같네요.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12/21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대를 극단적인 악의 세력으로 보지만 또한 우군은 소수임을 절감하기 때문에 자꾸 선명성을 강조함으로써 차별화를 시키려는 심리가 작동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나름의 절박한 상황이 일견 이해는 가지만, 그 열정에 비해 뭔가 실효성 있는 진전이 너무 이뤄지지 않는 듯해서 끄적여봤습니다. 제 글도 여전히 두리뭉실하긴 하지만, 개혁진보세력이라면 비중 있는 싱크탱크는 장기적금(?)을 들어서라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조금이나마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6. 길 잃은 어린양 2009/12/21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소위 진보진영을 보면 정치가 아니라 종교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답답함을 자주 느낍니다. 지적하신 것 처럼 야당쪽에서 현실성 있는 대안을 지속적으로 내놓아야 할텐데 실제로는 정치공학적인 놀음이나 하고 있으니 요즘은 대안이 없다고 짜증내는 분들이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당장 지금부터 시작하더라도 기초가 부실하니 제구실을 하려먼 시간이 꽤 걸릴 것 같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9/12/26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종교는 몸을 던질 열정을 만드는데는 좋은데 학습에는 꽤나 더딘 조직이지요.^^
      그리고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으면 뭐 그리 큰 문제이겠습니까. 제가 보니 조직력의 기초가 잡히려면 최소한 10~15년은 걸리던데, 어느덧 지나보면 훌쩍이지요. 서둘러 변화해온 한국 사회는 모든 면에서 호흡이 너무 짧다는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사람과 그들의 네트워크를 키울 수 있는 여유와 자양분만큼은 이제 꾸준히 흘렀으면 합니다.

  7. 일화 2009/12/21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싱크탱크의 부재에 대해서는 좌우 모두 할 말이 없겠지만, 우파는 그나마 큰 무리없이 연대할 민간자원이라도 있는 반면, 좌파는 그마저도 없으니 아무래도 두드려 맞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일조일석에 될 일은 아니고, 홈지기님 같은 분들이 진영과 상관없이 애쓰고 계시니 조금씩은 나아지는 미래를 기다려 볼 수 있겠지요.

    • Periskop 홈지기 2009/12/26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민간자원과의 연대(?)라는게 내막을 알고 보면 별건 아닙니다. 당장 밝히기는 곤란해도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측면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보다도 한국사회의 기성층이 좌파적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다는게 그대로 반영될 따름이죠.

      하여튼 나와 다른 가치와 거기서 파생되는 지식도 모두에게 유용하고 가꿔볼만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8. 2009/12/21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몇몇 명망가, 대표논객이 쏟아내는 카타르시스성 글만 쫓아다니며 열광하는 게릴라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 말씀이 와 닿네요.
    매번 '정치공학'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지향점과는 전혀 무관한 표 늘리기적 황당한 연대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 와중에 좋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ps. 연관 없는 얘기지만, 요즘 업계쪽 씽크탱크는 물론 KDI 같은 곳에서도 종종 꽤 소신 있게 쓴 보고서가 나온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12/26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KDI는 원래 거기 반골 분들께서 몰려계신 모처가 있잖습니까.^^ 제 직장만 봐도 주축 세대는 386분들인지라 밖에서 보는 이미지와 달리 생각들은 꽤나 자유롭습니다. 편견을 버리고 그런 점이라도 잘 읽고 서로 교류하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9. 효손 2009/12/21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좋은 블로그 발견했습니당. 자주 들르겠습니다 ^^

  10. asianote 2009/12/21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팅만 하다가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당장 승리할 전력이 안되면 침착하게 자원을 모아야 하겠지요.

    • Periskop 홈지기 2009/12/26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고수는 미리 이겨놓고 싸움을 한다지 않습니까. 이러다 나중에 명량해전의 판옥선 12척 운운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그런 수만 바라면 곤란하지요.

  11. capcold 2009/12/22 0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지식'생태계'라는 키워드가 특히 중요한 것이, 단순한 지식 생산이 아니라 축적, 유통, 피드백과 재생산 모든 것이 맞물려야 하며, 유통만 하더라도 전문 연구인, 행정가, 언론, 관심 있는 일반인, 무관심 일반인의 층위를 각각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문자 그대로 '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탁월한 문제제기, 나중에 여력이 되면(그게 언제?) 꼭 이어받아 좀 더 구체적인 '계' 구상을 나름대로 몇자 끄적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12. sonnet 2009/12/22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의 논쟁은 전형적인 통일전선전술이 아닌가 합니다. 그 전술이 오랜 역사를 갖고 계속되는 이유는 그 유용성(단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때문이겠지요.

    • Periskop 홈지기 2009/12/26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大帝님다운 관점입니다.ㅎㅎ 다만 이게 좀 잊혀질만한 시점에 다시금 꺼내들어야지 지금으로서는 너무 조급하고 식상한 수라고 보입니다. 이제는 다른 접근법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때도 되지 않았나 하군요. 그런 면에서 개혁-진보세력은 이제 대장정이라도 나서야....^^

  13. Chemie 2009/12/22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의 비극인게 어떻게 조선시대보다 "시스템"이 못한지 말입니다. -_- 아무리 당파니 어쩌니 저쩌니 하더라도 각자의 "아이디어"라는게 존재했고 자기들이 잡으면 그걸 실현 할려고 했는데 (물론 나중에 세도정치로 가면서 안드로메다로 갔지만). 아직도 사람에 의존해야하는 한국의 현실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 아닐까요? 진영에 상관없이. 그리고 또다른 문제점이 아군 아니면 적군 이라는 이 단순함이 또 사람잡는 요인이죠. (뭐...모 보수단체에서는 얼마전 팀킬도 합디다만...) 그러니 저런 패션 좌파라는 말이 튀어나올수 밖에 없죠.

    • Periskop 홈지기 2009/12/26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이런저런 생각이 납니다. 돌이켜 보면 시스템을 파괴하는 핵심은 극단화된 심리와 행동일텐데, 이 지나친 극단화의 관성을 어떻게 해야 제어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14. 안병길 2009/12/25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 박사님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이 글을 많이 읽으면 좋겠군요. 저도 2003년부터 제대로 된 종합정책 싱크탱크를 만들려고 생고생을 해봤습니다만, 현실의 벽은 매우 높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채 박사님 같은 마인드를 제대로 갖춘 사회지도층을 만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안타깝지요.

    잘 지내시죠? 새해 댁내에 행복이 가득 깃들길 기원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12/26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안 박사님의 그런 노력에 대해 익히 들어왔습니다. 시대를 앞서 좋은 길을 내딛으시려 하셨는데 저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음 기회가 온다면 좀 더 알찬 결실이 맺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안 박사님도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15. 종섭. 2009/12/25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누군가 진보진영이 당장 집권하는 것을 가정한 글을 봤었는데, 이게 좋은 느낌이라기 보다 오히려 무섭더군요. ㅎㄷㄷ. 그만큼 준비된 것이 없다는 이야기겠지요. '하루아침'에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이나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꾸준히 실력을 쌓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크리스마스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16. 없음 2009/12/30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링크로 스크랩해 갑니다 근데 글의 URL을 못 찾겠아서 못 걸었어요 >_<
    좋은 글 매번 잘 읽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네요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할 일도

  17. deutsch 2010/01/04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2008년 말부터 항상 하던 얘기가 있습니다. "이쪽엔 대가리가 없다". 쩝.

    • polargom  2010/01/30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히 얘기하면 대가리가 없는 게 아니라 대가리의 그릇이 되지 않는 무리가 대가리의 자리를 놓지 않는 겁니다.
      애는 자라고 있는데 머리엔 유아용 헬멧을 쓰고 있는 셈이죠. 내부를 향한 적당한 수준의 우민화정책이랄까요.
      이런 상황에선 절대로 싱크탱크구조를 오픈하지 못합니다. 겁이 나니까요.

    • deutsch 2010/02/03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대가리가 없는 겁니다.

    • polargom  2010/02/05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넹.

  18. 비밀방문자 2010/01/09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9. 야채 2010/01/31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진보진영의 '진정한 연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한데 묶어서 '진보진영'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진보진영 내부의 시각 차이는 조율이 불가능할 정도로 큽니다. 흔히 '진보'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한미FTA를 추진한 집단이 정부 주도하에 사업을 벌여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집단보다 신자유주의에 더 반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과연? 흔히 '민족주의'는 '당연히' 우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민족끼리' '반미' '이명박은 쪽바리'를 외치면서 그런 말이 가능할까요?

    막연하게 '보수'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 외에는 '진보'의 정체성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책적인 대안이 원활하게 나올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말하는 순간 '진보' 내부는 산산조각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적당히 '조율'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닙니다. 그리고 '연대'를 위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납득한 척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연대'를 외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뿐이며, '진보' 측에서 과도하게 연대에 집착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 쪽에서 한 말을 반대쪽에서 뒤집고 다른 쪽에서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이야기를 다른 쪽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진보'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정책을 분명하고 책임감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집단에서 (그런 게 있다면 말입니다만) 자기 집단과 다른 '진보' 무리의 차이를 분명하게 해서 다른 집단은 도태시켜 버리는 편이 낫습니다. 그 편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목수정 같은 사람들이 난리를 피운다면 그걸 '같은 진보'라고 옹호함으로써 "진보진영이라는 자들은 저런 행동이 좋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보다 차라리 "그건 한 개인의 행동일 뿐 우리가 그런 행위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선을 긋는 편이 낫지요.

    • Skyjet 2010/04/07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단체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연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건 진보 뿐만이 아니라,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에요. 야채 님이 말하는 '연대'가 연대의 정의라면 성립하는 연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연대는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정책'에 대한 연대이죠. 예를 들면 이번 지방 선거의 화두인 '의무 (무상) 급식' 처럼. 각자의 개인적 차이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야채 님이 제기한 민족주의 유무라든지) 정책은 그런 성향이 그나마 덜한 것이죠. 무작정 연대하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물론 목수정 씨 같은 경우, 감싸주는 것은 정말 뭣한 행동이죠. 그러나 그런 경우를 '연대의 문제점' 아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개인/단체/집단의 문제로 봐야지. 다시 한 번 말이지만, '무작정 연대하자' 는 정말 위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연대는 불가능하다' 와 같은 말이 될 수는 없죠. 서로의 차이는 당연히 인정하면서, 정책 등의 문제는 함께하는 연대는 구축할 필요가 당연히 있습니다.

    • 야채 2010/04/16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중요한가입니다. 무상급식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연대한다. 그건 좋습니다. 하지만 일단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연대를 해야 한다는 결정부터 먼저 하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면 그건 정치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책이 결정된 후에 연대를 할 것인지, 한다면 누구와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겁니다. 우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연대부터 하기로 한 후에 그에 합당한 방법으로 '정책 연대'를 생각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일 뿐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제대로 된 정책 연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정책이 확인되기도 전에 연대하라고 하는 것은 '무작정 연대하라'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연대하라'는 주장을 '무작정' 하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우리는 모두 '진보'니까 정책을 확인해 보면 분명 연대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미 FTA를 앞장서서 체결하는 집단과 신자유주의는 나의 원수를 외치는 집단이 연대를 하는 게 정상입니까? 신자유주의를 우리나라에 보급한 것은 DJ고 한미 FTA를 체결한 것은 지난 정권이었는데, "국가가 대운하를 파는 토목사업을 일으켜서 경제를 살리겠다. 물가는 직접 규제하는 방법으로 잡겠다."고 나서는 정권의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기 위해서 진보 전체가 단결하자고 하는 게 정상입니까?

      진보측의 그런 구호가 의미없는 사기라는 말은 아닙니다. 용어가 맞건 틀리건 진보진영에서 노동정책 등의 어떤 일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과연 같은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그 의미가 충분히 일관성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시작하면 진보진영 내부가 공중분해되기 쉽다고 봅니다. 노대통령이 진보진영의 학자들과 공개적으로 토론...이라기보다 서로 비난을 주고받았듯이 말입니다.

      게다가 문제는 그렇게 서로 비난을 주고받는 게 정상이라는 겁니다.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연대'를 위해서 신자유주의 절대 반대를 외쳐도 안되고, 신자유주의를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연대'를 위해서 한미 FTA를 찬성해도 안 됩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연대'는 표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정책 연대'는 각 정당이 '정책'을 개발하게 만드는 미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결과가 된다면 주객이 좀 전도되더라도 괜찮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연대'라는 구호가 그렇잖아도 쉽지 않을 '정당 정책 구체화'에 오히려 장애가 될 것으로 봅니다. 같은 정당 지지자들만 해도 동상이몽이 보통이 아닌데 다른 정당 지지자들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답이 없지 않겠습니까.

  20. Skyjet 2010/04/07 0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운영자가 달아야 할 댓글에 제가 대신 훈수를 둔 꼴이 되서 죄송합니다.

    '정책에 대한 연대 부재' 에 대해 이론적인 화두를 남겨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좋은 글 고맙고, 언제 한 번 대화나 트위터를 통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보았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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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가 윌리엄 예이츠의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일랜드(에이레)의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1 그런 그의 평소 모습은 영화 구석구석에서 예이츠의 시를 읊조리는 프랭키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다. 마지막 순간에 매기의 귓전에 'Mo cuishle'의 의미를 속삭이고는2, 과량의 아드레날린을 투여해 생을 거두어 돌아서는 프랭키의 모습. 돌아와 어둠에 잠긴 그의 모습을 떠올리노라면 예이츠의 시상(詩想)이 자연스레 나를 감돈다.

Million Dollar Baby

그 손에 들린 까만 예이츠. (출처: Blu-ray.com)

그런데 지난 밤 침대에 돌아누운 언저리에서 예이츠의 시가 계속 맴돌았다. 아일랜드의 몽환적인 풍광 속에 우뚝 솟은 벤 불벤, 그 아래에서 무언가 나의 뇌리를 휘젓고는 머나먼 길을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Under Ben Bulben

벤 불벤 기슭에서

by William B. Yeats3

I.

Swear by what the sages spoke
Round the Mareotic Lake
That the Witch of Atlas knew,
Spoke and set the cocks a-crow.

Swear by those horsemen, by those women
Complexion and form prove superhuman,
That pale, long-visaged company
That air in immortality
Completeness of their passions won;
Now they ride the wintry dawn
Where Ben Bulben sets the scene.

Here's the gist of what they mean.

II.

Many times man lives and dies
Between his two eternities,
That of race and that of soul,
And ancient Ireland knew it all.
Whether man die in his bed
Or the rifle knocks him dead,
A brief parting from those dear
Is the worst man has to fear.
Though grave-digger's toil is long,
Sharp their spades, their muscles strong,
They but thrust their buried men
Back in the human mind again.

III.

You that Mitchel's prayer have heard,
"Send war in our time, O Lord!"
Know that when all words are said
And a man is fighting mad,
Something drops from eyes long blind,
He completes his partial mind,
For an instant stands at ease,
Laughs aloud, his heart at peace.
Even the wisest man grows tense
With some sort of violence
Before he can accomplish fate,
Know his work or choose his mate.

IV.

Poet and sculptor, do the work,
Nor let the modish painter shirk
What his great forefathers did,
Bring the soul of man to God,
Make him fill the cradles right.

Measurement began our might:
Forms a stark Egyptian thought,
Forms that gentler Phidias wrought,
Michael Angelo left a proof
On the Sistine Chapel roof,
Where but half-awakened Adam
Can disturb globe-trotting Madam
Till her bowels are in heat,
Proof that there's a purpose set
Before the secret working mind:
Profane perfection of mankind.

Quattrocento put in paint
On backgrounds for a God or Saint
Gardens where a soul's at ease;
Where everything that meets the eye,
Flowers and grass and cloudless sky,
Resemble forms that are or seem
When sleepers wake and yet still dream,
And when it's vanished still declare,
With only bed and bedstead there,
That heavens had opened.

Gyres run on;
When that greater dream had gone
Calvert and Wilson, Blake and Claude,
Prepared a rest for the people of God,
Palmer's phrase, but after that
Confusion fell upon our thought.

V.

Irish poets, learn your trade,
Sing whatever is well made,
Scorn the sort now growing up
All out of shape from toe to top,
Their unremembering hearts and heads
Base-born products of base beds.
Sing the peasantry, and then
Hard-riding country gentlemen,
The holiness of monks, and after
Porter-drinkers' randy laughter;
Sing the lords and ladies gay
That were beaten into clay
Through seven heroic centuries;
Cast your mind on other days
That we in coming days may be
Still the indomitable Irishry.

VI.

Under bare Ben Bulben's head
In Drumcliff churchyard Yeats is laid.
An ancestor was rector there
Long years ago, a church stands near,
By the road an ancient cross.
No marble, no conventional phrase;
On limestone quarried near the spot
By his command these words are cut: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_

맹세하라, 성자들이 한 말을 두고,
마레오티스 호수 언저리에서,
아틀라스의 마녀가 알았고,
말했으며 수탉을 울게 했다 한 말을.

맹세하라, 저 말 탄 자들, 저 여자들을 두고,
낯빛과 매무새가 초인임을 증거하고,
그들의 열정으로 거둔 완벽함인
불멸의 몸으로 하늘을 나는
저 창백하고 길쭉한 얼굴의 무리들을;
지금 그들은 차가운 새벽에
벤 불벤이 펼쳐놓은 자락을 달린다.

여기 그들이 품은 뜻의 고갱이가 있다.

_

사람은 삶과 죽음을 무수히 반복한다
혈통의 영원함과 영혼의 영원함이라는
두 영원함 속에서,
옛 아일랜드도 이를 모두 알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죽든,
소총에 맞아 죽든,
다정한 이들과의 짧은 이별,
사람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무덤을 파는 이들이 오래도록 수고하고,
그들의 삽이 날카롭고, 근육이 강할지언정
그들은 그저 묻히는 자를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돌려보낼 뿐이다.

_

미첼의 기도를 들은 당신은 알리라,
"이 시대에 전쟁을 보내주소서, 오 주여!"
그 모든 말이 끝나고
한 사람이 미치도록 싸우고 있었을 때,
오래도록 멀었던 눈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부족했던 마음을 다 잡고,
이내 쉬이 일어서서,
평화로운 마음에 크게 웃었음을.
자신의 숙명을 이룰 수 있게 되었거나,
자신의 책무를 알게 되거나 짝을 고를 무렵엔
아무리 현명한 이라 할지라도
짐짓 격렬하게 긴장하게 마련이거늘.

_

시인이자 조각가여, 맡은 일을 하라,
유행을 좇는 화가라도
위대한 조상들이 해왔던 바를 기피하지 말라,
사람의 영혼을 신에게로 떠받들어
그로 하여금 요람을 올곧게 채우게 하라.

가늠에서 우리의 힘은 시작되었다:
굳건한 이집트인이 생각한 형상들, 
온유한 페이디아스가 만들어낸 형상들,
미켈란젤로시스티나 경당의 천장 위에
하나의 증거를 남겼다,
거기에서 반쯤 깨어난 아담은
세상을 주유하는 마담을
속이 뜨거워질 때까지 뒤흔들 수 있었다,
이는 비밀이 도사리는 마음 이전에
하나의 목적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인류의 세속적인 완성이라는.

콰트로첸토 시대에는
신이나 성인을 배경으로
영혼이 안식하는 정원을 그렸다;
이 정원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
꽃이나 풀이나 구름 없는 하늘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서도 여전히 꿈꾸는 듯 할 때와,
그 꿈이 사라져버려
거기에 침대와 침대 틀만이 있는데도,
여전히 천국이 열렸노라고 외칠 때
실재하거나 그런듯해 보이는 형상을 닮았다.

윤회는 계속된다;
그 위대한 꿈이 사라졌을 때
캘버트와 윌슨, 블레이크클로드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휴식을 마련했다는,
팔머의 말, 그러나 그 후
우리의 생각에는 혼미함이 드리워졌다.

_

아일랜드 시인들이여, 그대의 직분을 익혀라,
잘된 것은 무엇이나 노래하고,
요즈음 자라나고 있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망그러진 것들을 경멸하라,
기억을 상실한 그들의 마음과 머리는
싸구려 침대에서 잉태된 비천한 존재들.
농민을 노래하라, 그리고 나서
열심히 말 타기를 익히는 시골 신사들을,
사제들의 신성함을, 그 후엔
값싼 술 마시는 자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쾌활한 귀족과 귀부인들을 노래하라
영웅적인 일곱 세기 내내
흙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지난 날들에 생각을 돌려라
그러면 다가오는 날에 우리는
여전히 굴하지 않는 아일랜드인이 될 수 있으리라.

_

벗겨진 벤 불벤의 봉우리 기슭
드럼클립 묘지에 예이츠가 누워 있다.
먼 옛적 한 조상은 그곳 교구 목사였고,
근처에는 한 교회가 서 있으며,
길가에는 한 오래된 십자가가 서 있다.
대리석 조각도, 의례적인 비문도 부질없다;
근처에서 캐온 석회암 위에
그의 유언에 따라 다음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많은 사람들은 예이츠 시의 일부만을 기억하고는 한다. 그의 시 많은 부분이 미술사와 아일랜드의 모진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느끼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홈지기도 아일랜드와는 한참 떨어진 이국 사람으로서 그 정서를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랜 고통으로 점철된 아일랜드의 역사를 접해오며 그 속에서 묘한 유대감을 느껴온 터라 가슴 한 편 나지막한 맞울림을 느껴왔다. 아스라히 한국 역사의 떨림이 느껴질 때면 예이츠의 시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 시에 나오는 벤 불벤은 오랜 옛날, 지표가 거대한 빙하로 뒤덮였던 시절, 얼음덩어리들이 깎고 지나가며 남겨놓은 암괴이다. 푸르른 목초지 위에 덩그러니 남은 벤 불벤의 모습은 척박한 아일랜드에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생명과 정신이 우뚝 솟은듯한 인상을 준다. 윌리엄 예이츠는 바로 이곳 언저리, 슬리고 카운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벤 불벤의 그런 정기가 고스란히 전해진 탓일까, 예이츠는 비록 더블린에서 태어나고 한창 시절은 다른 곳에서 보냈음에도 이 일대를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다. 마지막 연 내용처럼 영원한 안식처도 이곳에서 찾을 정도로.

예이츠는 그런 끈끈한 정서 밑바닥으로부터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기억들을 끌어내어 이 시에 담아놓았다. II연에서 그는 삶과 죽음, 억겁의 세월 동안 반복하여 마주치는 그 현실을 담담히 읊는다. 망자 위에 흙을 뿌리는 한 삽, 한 삽은 결국 그를 남은 자들의 마음으로 돌려 보낼 따름이라는 구절.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흐름이 느껴진다. III연은 또 어떠한가, 19세기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의 풍운아 존 미첼, 그가 지배자 영국을 저주하며 외쳤다는 섬뜩한 단말마, 우리는 그 끝을 알고 있다. 반역죄로 수감된 형무소에서 탈출하여 미국을 배회했고, 미국 내전(남북전쟁) 속에서 두 아들의 목숨과 한 아들의 한 팔을 잃고서야 돌아온 그의 뒤안길은 분노와 증오의 무망함을 상기시킨다. IV연을 휘감는 영적인 승천을 갈망해온 예술의 역사를 지나고 나면, V연에서 우리는 꼭대기 귀족부터 밑바닥 민초들까지를 관통하는 역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역시 떠나갈 운명을 지닌 예이츠 자신의 존재까지 대비시키며……

Ben Bulben

예이츠의 무덤을 굽어보는 벤 불벤.

서둘러 깬 아침, 다시 켠 TV에서 흘러나오는 모습들, 오늘도 그가 사랑하고 마지막 안식처로 선택했다는 봉화산 기슭 풍경이 나온다. 그에게 별다른 애증을 느껴본 적이 없는 홈지기에게 솔직히 더 이상의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유언에서 당부했다는 말의 의미가 아련히 벤 불벤에 겹쳐 떠올랐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4

그 비석에 새겨질 말이 무언지는 모르겠다. 다만 흩뿌려지는 흙과 함께 홈지기의 마음 한 구석에 돌려보내질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질 것만 같다.

지난 날들에 생각을 돌려라.
그러면 다가오는 날에 우리는
여전히 굴하지 않는 한국인이 될 수 있으리라.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홈지기는 이제 지나쳐 앞으로 가련다. 그리고 언제고 예이츠의 시구가 다시 떠오르는 날, 역사 속에 나름의 의미를 새기고 지나간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굴하지 않는 정신을 다잡으리라.

Notes.
  1.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조상 가운데 아일랜드계도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배적인 혈통은 아니다.
  2.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Mo cuishle means my darling. My blood."
  3. 번역은 기존에 돌고 있는 우리말 판본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홈지기가 대폭 수정하였다. 비전공자로서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전액 신뢰하지는 말고 참고만 해주시기 바란다.
  4. 전문은 연합뉴스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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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5/27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shrike 2009/05/27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일랜드에 비유하기는 좀 그렇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때 과연 영국에 해당되는 그런 나라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니까 말이죠.
    (일본의 지배력은 구한말 포함해도 고작 50년 정도에 불과하죠.)

    전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태생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탓에 마치 껍질을 밖에서 깨줘서 나온 병아리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까요. 밑바닥 국민정서와 문화흐름을 보고 그것을 외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죠.

    노무현의 죽음 역시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그것에 비유하기는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평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말이죠..

    • Periskop 홈지기  2009/05/27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일랜드는 그냥 감정적 연결고리일 뿐이지요. 우리나라 역사와 아일랜드의 역사를 직접 비교한 대목은 없습니다만? 그리고 제 글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의 죽음을 노무현의 죽음과 비교한 대목도 없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제가 왜 예이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일 따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예이츠 스스로가 만년에 절감하고 'Under Ben Bulben'에 적은 내용이 노무현의 자살과 상통하는 바가 있으리라는 느낌을 적은 것이지요. 제가 감정의 흐름을 옮기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게 썼나 봅니다.

    • shrike 2009/05/28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래 군사적으로도 적의 수장. 커맨더를 먼저 노리고 제거하는것은 전투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그렇죠. 국가 내부 정치집단간의 암투 뿐만아니라 국가간의 영향관계에 있어서도 2차대전 겨울전쟁의 '핀란드-만네르헤임' 같은 관계가 어떤것인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MB야말로 제대로 운을 타고난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악재가 터지자마자 북한의 20Kt 핵실험 성공과 급속한 정세진행으로 완벽한 디펜스에 성공했으니까요.
      안됐지만 이번 사태는 과거 촛불시위보다 더 심각한 파장을 가져올겁니다. 촛불시위가 재야계의 공세축선과 예비전력을 날려버린 사태였다면 이번에는 지휘부의 붕괴로 'MB POWER' 를 극대화 시킬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것이니까요. 대운하부터 시작해 다양한 부분들에서 '역습' 이 아닌 '대공세' 차원의 판도가 빚어질겁니다.

      현재 재야계의 수준이나 모양새를 보고있자면 찹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무능합니다.
      게다가 스스로 무능하다는것 조차도 모르고있죠. 저쪽에서 그걸 이제 완벽하게 감 잡았고 그간 그걸 잘 활용해왔듯 이번 기회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을겁니다.
      감상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대단히 심각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04867&RIGHT_DEBATE=R0 이런 글도 돌아다니는 마당이니 사회 다양한 분야로 눈을 돌려보셨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배후에서 어떤 문제가 진행되어 왔고, 어떤 일이 기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직무 특성상) 이쪽이 더 정보가 많을 듯하니 크게 걱정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런 민감한 내용은 앞으로도 블로그건 게시판이건 공개된 장소에 구체적으로 적을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고라의 저 글은 왜 링크해주셨는지 도통 모르겠군요. mechanism design 내용을 정확히 알고 저런 비유를 했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혹세무민 수렁에 빠지기 쉬운 글인데 말입니다. 저 글 내용에 정말 솔깃하셔서 링크를 걸어주셨다면 아고라를 끊으라고 권해드리고 싶고, 저런 억지 비유가 난무하는 세태를 알리기 위해 링크를 걸어주셨다면 이미 많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shrike 2009/05/29 0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과거 '쇠고기파동' 에 따른 촛불시위가 어떤건지 보셨을겁니다.
      알려드리고 싶은것이 바로 그겁니다. 혹세무민의 structural mechanics 이죠.

      집단지성에 근거한 위키피디아같은 시스템이 실제로는 상당한 오류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곳에 실린 지식들을 추적해보면 극히 협소한 몇몇 소스들에서 기인해 복제된것임을 알고 계실겁니다. 즉 집단지성이 항상 옳으리라는 법은 없으며 그것에 대한 낙관은 마치 파생상품의 리스크평가를 그대로 믿는것과도 같은것이라는거죠.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는 항상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미 격어보고 지켜본바 있으시듯 말이죠..
      결국 그런 집단지성의 구조적 위험은 얼마만큼 양호한 기반에 리스크햇지를 제대로 해놓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형편없이 취약한지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단지 지식의 양이나 질.. 이전에 학계수준.... 이전에 교육체계...... 국민의 의식........ 그 밑바닥 정서까지.
      수직으로 큰 구멍이 뚫려있는것과도 같습니다.
      물론 그 구멍의 밑바닥에는 구멍의 출발점이 있죠.

      저 역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곳이 많다보니 저런것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스스로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도 말이죠. 덕분에 승병님과 같은 분의 장단점도 알게되곤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부딛히며 산다는건 정말 좋은것이더군요.
      스스로 말을 타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것인지. 가야 할 것인지를 길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3. 일화 2009/05/27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은 알았지만, 예이츠까지 수비범위이실 줄은 몰랐네요. 저야 예술적 소양은 꽝인 인간이라 반의 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막연하게나마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지는 알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7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예술적 소양은 별로이고, 시감은 더더군다나 떨어지지만 가끔 머리 속에서 뒤적이기엔 좋은 것 같습니다. 예이츠도 나름의 매력이 느껴져서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입니다.^^

  4. dasleich 2009/05/27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께서 제 정치적 성향을 잘 아실테지만,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이토록 슬퍼할 줄 몰랐습니다. 오늘 분향소에 다녀왔고, 지난 토요일부터 그야말로 추모의 마음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 항상 남보다 한 발 늦는 듯 합니다.
    노대통령 재임당시에는 속으로 괜찮은 정책이다 싶은 것들도 참 많았고,, 겉으로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속으로는 인간적 공감을 느낀 것 도 참 많았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그분의 모습에서, 언제나 저는 과거의 모습만 집착하다, 현실을 놓친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더합니다.

    올 여름휴가때는 딸들 데리고 봉하마을에 한번 다녀오려 합니다.
    언제나 제 본적지인 합천의 그분(?)만 바라보는 정치적 성향도 이기회에 고쳐보려 합니다.

    하여간 홈지기님은 국가원수가 되실 분입니다.
    정치적 소양에서, 지식, 인간적 됨됨이, 실력, 능력,,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분이니 말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dasleich 님의 말씀이야말로 놀랍군요. 전에 만나뵐 때도 이런저런 말씀을 듣긴 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마지막 말씀은 이거 영 민망해서…… --a 그냥 흘려 듣겠습니다.

  5. 獨步 2009/05/27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0.
    슈타인호프님의 블로그에 댓글로 썼던 내용을 거의 재탕하게 됩니다만 어떻든 여기도 쓰고 싶어지네요. 개인적인 글쓰기 공간이 없다보니 지인분들 블로그에 관련글이 등장하여 댓글로 쓸 기회만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많은 듯.

    1.
    저는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이미지가 에르빈 롬멜원수의 그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지네요.

    2.
    제 거주지 근처 강남역에 뜻밖에도 분향소가 설치되었더군요 - 서초/강남/송파가 한나라당 지지의 철벽요새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아고라의 관련글을 보니 설치한 분들의 예상도 벗어나 천막도 치고 규모면에서 대한문 분향소 수준까지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밤에 한 번 산책겸 나가서 살펴보니 4열종대 대기열이 한 블럭 가까이 이어져있더군요.

    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 거의 시종일관 반대입장을 유지했던 저로서는 등산길 소망탑에서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빈 다음 적어도 장례식이 끝나는 순간까지만이라도 고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입닥치고 삼가하는 편이 '죄송하다'며 분향소에서 소리내어 울먹거리는 것 보다 덜 위선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 분향하지 않았다는 말을 이렇게 늘일 수 있다는...

    3.
    숙어집에서만 본 표현이지만 영어로 'bury the hatchet'이 '휴전하다'는 뜻이라죠. 어떻든 이번 일을 기회로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무기를 너무 자주 빼들지 않는 대한민국이었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롬멜 원수의 경우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예리한 지적에 동감합니다. 막전막후에 그러한 측면이 있는데, 이 역시 짧게는 추모기간, 길게는 이번 정권 동안에는 차마 적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언젠가에는 깊이 다뤄볼만한 주제이겠죠. 그리고 강남역 분향소는 바로 회사 앞이어서 계속 지나쳤습니다만, 대한문 분향소 수준까지는 아니더군요. 저는 강남역 주변 사람들이 강남/서초/송파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아 큰 의미는 두지 않았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어떤 계기로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감정의 창칼을 녹여 이성의 보습과 쟁기를 만들기를 바랬는데 참 갑갑할 따름입니다.

    • 獨步 2009/05/28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강남'에 대한 저와 홈지기님의 대화는 '대한민국'에 대한 한국인과 박노자 교수의 대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웃음).

      거의 한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모습'과, 외부인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심정'은 하나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모두 중요할 것입니다 - 대개의 경우 네가 뭘 안다고... 라는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 deutsch 2009/06/18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보님이 강남 거주민이신 줄은 몰랐군요. 아마 저와 분향소에서 마주칠 번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6. noblenight 2009/05/29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 바빠서 채승병님의 홈페이지도 제대로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소식을 듣고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월요일 새벽에 대한문 갔다왔습니다. 아늑하게 펼쳐진 병풍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예전 부대 지휘관이었던분과 담소나 나누고 왔습니다. 서로 오지말아야 할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의 모여서 만든공간에 아늑하게 느껴지는 병풍속에서 함께한 대화는 참 어이러니 하더군요

    과연 앞으로 남은 세월이 지난세월만큼 보다 더 많은데 얼마나 더욱더 많은 일이 생길지가 걱정이 됩니다.

  7. 민우엄마 2009/06/0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저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지요. 성경 전도서를 읽으면서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이런 마음을 느꼈답니다. 그분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지요.

    그나 저나..참...사진과 글에서 느꼈던 내공이...이렇게 시까지...당최..전공자라고 하기엔 네루다 밖에 모르는 저의 팍팍함이 부끄럽네요!

    여하간 오늘 또 존경의 마음! 한자락 품고 갑니다!

  8. Bigcat 2009/06/11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읽어온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9. leopord 2009/06/14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뒤늦게 읽습니다.

    잠깐 아일랜드 전설에 관심이 있었을 때 관련 홈페이지에서 상당수 전설을 글로 남긴 사람이 예이츠임을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가 교과서에 실렸던 기억만 가물했던 때였는데도, 예이츠와 아일랜드 사이를 연결하는 몽환적인 이미지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 깔려있는 오랜 정서-한(恨)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가 예이츠의 독립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새삼 생각하게 되는군요. 여담이지만 예이츠가 제임스 조이스의 데뷔에도 관계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벤 불벤 기슭에서>. 정말 좋은 시입니다. 뜻도 채 모르는 문구를 입에 넣어 혀로 굴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느낌이 들어요.

  10. 廣野 2009/07/22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니스프리 호도'와 빌더글러스의 음악을 즐겨 감상했었는데
    예이츠에 대해서 이해의 폭을 넓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Innisfree
    이니스프리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외줄기 엮어 진흙 바른 작은오막집 짓고
    아홉 이랑 콩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벌떼소리 요란한 숲 속에서 홀로 살으리.

    그리고, 거기에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방울져 내리거든
    한밤중에는 온통 빛나고, 대낮에는 보라빛 光彩가 있고.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그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의 잔물결 소리 듣고 있으니
    한길이나 잿빛 鋪道위에 서 있을 때도
    가슴 깊은 곳에서 그 물결 소리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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