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지기가 윌리엄 예이츠의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일랜드(에이레)의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1 그런 그의 평소 모습은 영화 구석구석에서 예이츠의 시를 읊조리는 프랭키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다. 마지막 순간에 매기의 귓전에 'Mo cuishle'의 의미를 속삭이고는2, 과량의 아드레날린을 투여해 생을 거두어 돌아서는 프랭키의 모습. 돌아와 어둠에 잠긴 그의 모습을 떠올리노라면 예이츠의 시상(詩想)이 자연스레 나를 감돈다.

Million Dollar Baby

그 손에 들린 까만 예이츠. (출처: Blu-ray.com)

그런데 지난 밤 침대에 돌아누운 언저리에서 예이츠의 시가 계속 맴돌았다. 아일랜드의 몽환적인 풍광 속에 우뚝 솟은 벤 불벤, 그 아래에서 무언가 나의 뇌리를 휘젓고는 머나먼 길을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Under Ben Bulben

벤 불벤 기슭에서

by William B. Yeats3

I.

Swear by what the sages spoke
Round the Mareotic Lake
That the Witch of Atlas knew,
Spoke and set the cocks a-crow.

Swear by those horsemen, by those women
Complexion and form prove superhuman,
That pale, long-visaged company
That air in immortality
Completeness of their passions won;
Now they ride the wintry dawn
Where Ben Bulben sets the scene.

Here's the gist of what they mean.

II.

Many times man lives and dies
Between his two eternities,
That of race and that of soul,
And ancient Ireland knew it all.
Whether man die in his bed
Or the rifle knocks him dead,
A brief parting from those dear
Is the worst man has to fear.
Though grave-digger's toil is long,
Sharp their spades, their muscles strong,
They but thrust their buried men
Back in the human mind again.

III.

You that Mitchel's prayer have heard,
"Send war in our time, O Lord!"
Know that when all words are said
And a man is fighting mad,
Something drops from eyes long blind,
He completes his partial mind,
For an instant stands at ease,
Laughs aloud, his heart at peace.
Even the wisest man grows tense
With some sort of violence
Before he can accomplish fate,
Know his work or choose his mate.

IV.

Poet and sculptor, do the work,
Nor let the modish painter shirk
What his great forefathers did,
Bring the soul of man to God,
Make him fill the cradles right.

Measurement began our might:
Forms a stark Egyptian thought,
Forms that gentler Phidias wrought,
Michael Angelo left a proof
On the Sistine Chapel roof,
Where but half-awakened Adam
Can disturb globe-trotting Madam
Till her bowels are in heat,
Proof that there's a purpose set
Before the secret working mind:
Profane perfection of mankind.

Quattrocento put in paint
On backgrounds for a God or Saint
Gardens where a soul's at ease;
Where everything that meets the eye,
Flowers and grass and cloudless sky,
Resemble forms that are or seem
When sleepers wake and yet still dream,
And when it's vanished still declare,
With only bed and bedstead there,
That heavens had opened.

Gyres run on;
When that greater dream had gone
Calvert and Wilson, Blake and Claude,
Prepared a rest for the people of God,
Palmer's phrase, but after that
Confusion fell upon our thought.

V.

Irish poets, learn your trade,
Sing whatever is well made,
Scorn the sort now growing up
All out of shape from toe to top,
Their unremembering hearts and heads
Base-born products of base beds.
Sing the peasantry, and then
Hard-riding country gentlemen,
The holiness of monks, and after
Porter-drinkers' randy laughter;
Sing the lords and ladies gay
That were beaten into clay
Through seven heroic centuries;
Cast your mind on other days
That we in coming days may be
Still the indomitable Irishry.

VI.

Under bare Ben Bulben's head
In Drumcliff churchyard Yeats is laid.
An ancestor was rector there
Long years ago, a church stands near,
By the road an ancient cross.
No marble, no conventional phrase;
On limestone quarried near the spot
By his command these words are cut: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_

맹세하라, 성자들이 한 말을 두고,
마레오티스 호수 언저리에서,
아틀라스의 마녀가 알았고,
말했으며 수탉을 울게 했다 한 말을.

맹세하라, 저 말 탄 자들, 저 여자들을 두고,
낯빛과 매무새가 초인임을 증거하고,
그들의 열정으로 거둔 완벽함인
불멸의 몸으로 하늘을 나는
저 창백하고 길쭉한 얼굴의 무리들을;
지금 그들은 차가운 새벽에
벤 불벤이 펼쳐놓은 자락을 달린다.

여기 그들이 품은 뜻의 고갱이가 있다.

_

사람은 삶과 죽음을 무수히 반복한다
혈통의 영원함과 영혼의 영원함이라는
두 영원함 속에서,
옛 아일랜드도 이를 모두 알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죽든,
소총에 맞아 죽든,
다정한 이들과의 짧은 이별,
사람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무덤을 파는 이들이 오래도록 수고하고,
그들의 삽이 날카롭고, 근육이 강할지언정
그들은 그저 묻히는 자를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돌려보낼 뿐이다.

_

미첼의 기도를 들은 당신은 알리라,
"이 시대에 전쟁을 보내주소서, 오 주여!"
그 모든 말이 끝나고
한 사람이 미치도록 싸우고 있었을 때,
오래도록 멀었던 눈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부족했던 마음을 다 잡고,
이내 쉬이 일어서서,
평화로운 마음에 크게 웃었음을.
자신의 숙명을 이룰 수 있게 되었거나,
자신의 책무를 알게 되거나 짝을 고를 무렵엔
아무리 현명한 이라 할지라도
짐짓 격렬하게 긴장하게 마련이거늘.

_

시인이자 조각가여, 맡은 일을 하라,
유행을 좇는 화가라도
위대한 조상들이 해왔던 바를 기피하지 말라,
사람의 영혼을 신에게로 떠받들어
그로 하여금 요람을 올곧게 채우게 하라.

가늠에서 우리의 힘은 시작되었다:
굳건한 이집트인이 생각한 형상들, 
온유한 페이디아스가 만들어낸 형상들,
미켈란젤로시스티나 경당의 천장 위에
하나의 증거를 남겼다,
거기에서 반쯤 깨어난 아담은
세상을 주유하는 마담을
속이 뜨거워질 때까지 뒤흔들 수 있었다,
이는 비밀이 도사리는 마음 이전에
하나의 목적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인류의 세속적인 완성이라는.

콰트로첸토 시대에는
신이나 성인을 배경으로
영혼이 안식하는 정원을 그렸다;
이 정원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
꽃이나 풀이나 구름 없는 하늘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서도 여전히 꿈꾸는 듯 할 때와,
그 꿈이 사라져버려
거기에 침대와 침대 틀만이 있는데도,
여전히 천국이 열렸노라고 외칠 때
실재하거나 그런듯해 보이는 형상을 닮았다.

윤회는 계속된다;
그 위대한 꿈이 사라졌을 때
캘버트와 윌슨, 블레이크클로드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휴식을 마련했다는,
팔머의 말, 그러나 그 후
우리의 생각에는 혼미함이 드리워졌다.

_

아일랜드 시인들이여, 그대의 직분을 익혀라,
잘된 것은 무엇이나 노래하고,
요즈음 자라나고 있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망그러진 것들을 경멸하라,
기억을 상실한 그들의 마음과 머리는
싸구려 침대에서 잉태된 비천한 존재들.
농민을 노래하라, 그리고 나서
열심히 말 타기를 익히는 시골 신사들을,
사제들의 신성함을, 그 후엔
값싼 술 마시는 자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쾌활한 귀족과 귀부인들을 노래하라
영웅적인 일곱 세기 내내
흙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지난 날들에 생각을 돌려라
그러면 다가오는 날에 우리는
여전히 굴하지 않는 아일랜드인이 될 수 있으리라.

_

벗겨진 벤 불벤의 봉우리 기슭
드럼클립 묘지에 예이츠가 누워 있다.
먼 옛적 한 조상은 그곳 교구 목사였고,
근처에는 한 교회가 서 있으며,
길가에는 한 오래된 십자가가 서 있다.
대리석 조각도, 의례적인 비문도 부질없다;
근처에서 캐온 석회암 위에
그의 유언에 따라 다음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많은 사람들은 예이츠 시의 일부만을 기억하고는 한다. 그의 시 많은 부분이 미술사와 아일랜드의 모진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느끼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홈지기도 아일랜드와는 한참 떨어진 이국 사람으로서 그 정서를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랜 고통으로 점철된 아일랜드의 역사를 접해오며 그 속에서 묘한 유대감을 느껴온 터라 가슴 한 편 나지막한 맞울림을 느껴왔다. 아스라히 한국 역사의 떨림이 느껴질 때면 예이츠의 시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 시에 나오는 벤 불벤은 오랜 옛날, 지표가 거대한 빙하로 뒤덮였던 시절, 얼음덩어리들이 깎고 지나가며 남겨놓은 암괴이다. 푸르른 목초지 위에 덩그러니 남은 벤 불벤의 모습은 척박한 아일랜드에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생명과 정신이 우뚝 솟은듯한 인상을 준다. 윌리엄 예이츠는 바로 이곳 언저리, 슬리고 카운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벤 불벤의 그런 정기가 고스란히 전해진 탓일까, 예이츠는 비록 더블린에서 태어나고 한창 시절은 다른 곳에서 보냈음에도 이 일대를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다. 마지막 연 내용처럼 영원한 안식처도 이곳에서 찾을 정도로.

예이츠는 그런 끈끈한 정서 밑바닥으로부터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기억들을 끌어내어 이 시에 담아놓았다. II연에서 그는 삶과 죽음, 억겁의 세월 동안 반복하여 마주치는 그 현실을 담담히 읊는다. 망자 위에 흙을 뿌리는 한 삽, 한 삽은 결국 그를 남은 자들의 마음으로 돌려 보낼 따름이라는 구절.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흐름이 느껴진다. III연은 또 어떠한가, 19세기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의 풍운아 존 미첼, 그가 지배자 영국을 저주하며 외쳤다는 섬뜩한 단말마, 우리는 그 끝을 알고 있다. 반역죄로 수감된 형무소에서 탈출하여 미국을 배회했고, 미국 내전(남북전쟁) 속에서 두 아들의 목숨과 한 아들의 한 팔을 잃고서야 돌아온 그의 뒤안길은 분노와 증오의 무망함을 상기시킨다. IV연을 휘감는 영적인 승천을 갈망해온 예술의 역사를 지나고 나면, V연에서 우리는 꼭대기 귀족부터 밑바닥 민초들까지를 관통하는 역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역시 떠나갈 운명을 지닌 예이츠 자신의 존재까지 대비시키며……

Ben Bulben

예이츠의 무덤을 굽어보는 벤 불벤.

서둘러 깬 아침, 다시 켠 TV에서 흘러나오는 모습들, 오늘도 그가 사랑하고 마지막 안식처로 선택했다는 봉화산 기슭 풍경이 나온다. 그에게 별다른 애증을 느껴본 적이 없는 홈지기에게 솔직히 더 이상의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유언에서 당부했다는 말의 의미가 아련히 벤 불벤에 겹쳐 떠올랐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4

그 비석에 새겨질 말이 무언지는 모르겠다. 다만 흩뿌려지는 흙과 함께 홈지기의 마음 한 구석에 돌려보내질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질 것만 같다.

지난 날들에 생각을 돌려라.
그러면 다가오는 날에 우리는
여전히 굴하지 않는 한국인이 될 수 있으리라.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홈지기는 이제 지나쳐 앞으로 가련다. 그리고 언제고 예이츠의 시구가 다시 떠오르는 날, 역사 속에 나름의 의미를 새기고 지나간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굴하지 않는 정신을 다잡으리라.

Notes.
  1.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조상 가운데 아일랜드계도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배적인 혈통은 아니다.
  2.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Mo cuishle means my darling. My blood."
  3. 번역은 기존에 돌고 있는 우리말 판본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홈지기가 대폭 수정하였다. 비전공자로서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전액 신뢰하지는 말고 참고만 해주시기 바란다.
  4. 전문은 연합뉴스 기사 참조.
2009/05/27 00:50 2009/05/27 00:50
creative commons license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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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5/27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shrike 2009/05/27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일랜드에 비유하기는 좀 그렇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때 과연 영국에 해당되는 그런 나라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니까 말이죠.
    (일본의 지배력은 구한말 포함해도 고작 50년 정도에 불과하죠.)

    전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태생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탓에 마치 껍질을 밖에서 깨줘서 나온 병아리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까요. 밑바닥 국민정서와 문화흐름을 보고 그것을 외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죠.

    노무현의 죽음 역시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그것에 비유하기는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평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말이죠..

    • Periskop 홈지기  2009/05/27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일랜드는 그냥 감정적 연결고리일 뿐이지요. 우리나라 역사와 아일랜드의 역사를 직접 비교한 대목은 없습니다만? 그리고 제 글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의 죽음을 노무현의 죽음과 비교한 대목도 없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제가 왜 예이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일 따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예이츠 스스로가 만년에 절감하고 'Under Ben Bulben'에 적은 내용이 노무현의 자살과 상통하는 바가 있으리라는 느낌을 적은 것이지요. 제가 감정의 흐름을 옮기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게 썼나 봅니다.

    • shrike 2009/05/28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래 군사적으로도 적의 수장. 커맨더를 먼저 노리고 제거하는것은 전투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그렇죠. 국가 내부 정치집단간의 암투 뿐만아니라 국가간의 영향관계에 있어서도 2차대전 겨울전쟁의 '핀란드-만네르헤임' 같은 관계가 어떤것인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MB야말로 제대로 운을 타고난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악재가 터지자마자 북한의 20Kt 핵실험 성공과 급속한 정세진행으로 완벽한 디펜스에 성공했으니까요.
      안됐지만 이번 사태는 과거 촛불시위보다 더 심각한 파장을 가져올겁니다. 촛불시위가 재야계의 공세축선과 예비전력을 날려버린 사태였다면 이번에는 지휘부의 붕괴로 'MB POWER' 를 극대화 시킬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것이니까요. 대운하부터 시작해 다양한 부분들에서 '역습' 이 아닌 '대공세' 차원의 판도가 빚어질겁니다.

      현재 재야계의 수준이나 모양새를 보고있자면 찹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무능합니다.
      게다가 스스로 무능하다는것 조차도 모르고있죠. 저쪽에서 그걸 이제 완벽하게 감 잡았고 그간 그걸 잘 활용해왔듯 이번 기회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을겁니다.
      감상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대단히 심각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04867&RIGHT_DEBATE=R0 이런 글도 돌아다니는 마당이니 사회 다양한 분야로 눈을 돌려보셨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배후에서 어떤 문제가 진행되어 왔고, 어떤 일이 기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직무 특성상) 이쪽이 더 정보가 많을 듯하니 크게 걱정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런 민감한 내용은 앞으로도 블로그건 게시판이건 공개된 장소에 구체적으로 적을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고라의 저 글은 왜 링크해주셨는지 도통 모르겠군요. mechanism design 내용을 정확히 알고 저런 비유를 했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혹세무민 수렁에 빠지기 쉬운 글인데 말입니다. 저 글 내용에 정말 솔깃하셔서 링크를 걸어주셨다면 아고라를 끊으라고 권해드리고 싶고, 저런 억지 비유가 난무하는 세태를 알리기 위해 링크를 걸어주셨다면 이미 많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shrike 2009/05/29 0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과거 '쇠고기파동' 에 따른 촛불시위가 어떤건지 보셨을겁니다.
      알려드리고 싶은것이 바로 그겁니다. 혹세무민의 structural mechanics 이죠.

      집단지성에 근거한 위키피디아같은 시스템이 실제로는 상당한 오류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곳에 실린 지식들을 추적해보면 극히 협소한 몇몇 소스들에서 기인해 복제된것임을 알고 계실겁니다. 즉 집단지성이 항상 옳으리라는 법은 없으며 그것에 대한 낙관은 마치 파생상품의 리스크평가를 그대로 믿는것과도 같은것이라는거죠.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는 항상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미 격어보고 지켜본바 있으시듯 말이죠..
      결국 그런 집단지성의 구조적 위험은 얼마만큼 양호한 기반에 리스크햇지를 제대로 해놓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형편없이 취약한지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단지 지식의 양이나 질.. 이전에 학계수준.... 이전에 교육체계...... 국민의 의식........ 그 밑바닥 정서까지.
      수직으로 큰 구멍이 뚫려있는것과도 같습니다.
      물론 그 구멍의 밑바닥에는 구멍의 출발점이 있죠.

      저 역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곳이 많다보니 저런것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스스로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도 말이죠. 덕분에 승병님과 같은 분의 장단점도 알게되곤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부딛히며 산다는건 정말 좋은것이더군요.
      스스로 말을 타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것인지. 가야 할 것인지를 길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3. 일화 2009/05/27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은 알았지만, 예이츠까지 수비범위이실 줄은 몰랐네요. 저야 예술적 소양은 꽝인 인간이라 반의 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막연하게나마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지는 알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7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예술적 소양은 별로이고, 시감은 더더군다나 떨어지지만 가끔 머리 속에서 뒤적이기엔 좋은 것 같습니다. 예이츠도 나름의 매력이 느껴져서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입니다.^^

  4. dasleich 2009/05/27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께서 제 정치적 성향을 잘 아실테지만,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이토록 슬퍼할 줄 몰랐습니다. 오늘 분향소에 다녀왔고, 지난 토요일부터 그야말로 추모의 마음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 항상 남보다 한 발 늦는 듯 합니다.
    노대통령 재임당시에는 속으로 괜찮은 정책이다 싶은 것들도 참 많았고,, 겉으로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속으로는 인간적 공감을 느낀 것 도 참 많았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그분의 모습에서, 언제나 저는 과거의 모습만 집착하다, 현실을 놓친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더합니다.

    올 여름휴가때는 딸들 데리고 봉하마을에 한번 다녀오려 합니다.
    언제나 제 본적지인 합천의 그분(?)만 바라보는 정치적 성향도 이기회에 고쳐보려 합니다.

    하여간 홈지기님은 국가원수가 되실 분입니다.
    정치적 소양에서, 지식, 인간적 됨됨이, 실력, 능력,,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분이니 말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dasleich 님의 말씀이야말로 놀랍군요. 전에 만나뵐 때도 이런저런 말씀을 듣긴 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마지막 말씀은 이거 영 민망해서…… --a 그냥 흘려 듣겠습니다.

  5. 獨步 2009/05/27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0.
    슈타인호프님의 블로그에 댓글로 썼던 내용을 거의 재탕하게 됩니다만 어떻든 여기도 쓰고 싶어지네요. 개인적인 글쓰기 공간이 없다보니 지인분들 블로그에 관련글이 등장하여 댓글로 쓸 기회만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많은 듯.

    1.
    저는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이미지가 에르빈 롬멜원수의 그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지네요.

    2.
    제 거주지 근처 강남역에 뜻밖에도 분향소가 설치되었더군요 - 서초/강남/송파가 한나라당 지지의 철벽요새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아고라의 관련글을 보니 설치한 분들의 예상도 벗어나 천막도 치고 규모면에서 대한문 분향소 수준까지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밤에 한 번 산책겸 나가서 살펴보니 4열종대 대기열이 한 블럭 가까이 이어져있더군요.

    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 거의 시종일관 반대입장을 유지했던 저로서는 등산길 소망탑에서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빈 다음 적어도 장례식이 끝나는 순간까지만이라도 고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입닥치고 삼가하는 편이 '죄송하다'며 분향소에서 소리내어 울먹거리는 것 보다 덜 위선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 분향하지 않았다는 말을 이렇게 늘일 수 있다는...

    3.
    숙어집에서만 본 표현이지만 영어로 'bury the hatchet'이 '휴전하다'는 뜻이라죠. 어떻든 이번 일을 기회로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무기를 너무 자주 빼들지 않는 대한민국이었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롬멜 원수의 경우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예리한 지적에 동감합니다. 막전막후에 그러한 측면이 있는데, 이 역시 짧게는 추모기간, 길게는 이번 정권 동안에는 차마 적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언젠가에는 깊이 다뤄볼만한 주제이겠죠. 그리고 강남역 분향소는 바로 회사 앞이어서 계속 지나쳤습니다만, 대한문 분향소 수준까지는 아니더군요. 저는 강남역 주변 사람들이 강남/서초/송파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아 큰 의미는 두지 않았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어떤 계기로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감정의 창칼을 녹여 이성의 보습과 쟁기를 만들기를 바랬는데 참 갑갑할 따름입니다.

    • 獨步 2009/05/28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강남'에 대한 저와 홈지기님의 대화는 '대한민국'에 대한 한국인과 박노자 교수의 대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웃음).

      거의 한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모습'과, 외부인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심정'은 하나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모두 중요할 것입니다 - 대개의 경우 네가 뭘 안다고... 라는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 deutsch 2009/06/18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보님이 강남 거주민이신 줄은 몰랐군요. 아마 저와 분향소에서 마주칠 번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6. noblenight 2009/05/29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 바빠서 채승병님의 홈페이지도 제대로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소식을 듣고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월요일 새벽에 대한문 갔다왔습니다. 아늑하게 펼쳐진 병풍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예전 부대 지휘관이었던분과 담소나 나누고 왔습니다. 서로 오지말아야 할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의 모여서 만든공간에 아늑하게 느껴지는 병풍속에서 함께한 대화는 참 어이러니 하더군요

    과연 앞으로 남은 세월이 지난세월만큼 보다 더 많은데 얼마나 더욱더 많은 일이 생길지가 걱정이 됩니다.

  7. 민우엄마 2009/06/0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저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지요. 성경 전도서를 읽으면서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이런 마음을 느꼈답니다. 그분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지요.

    그나 저나..참...사진과 글에서 느꼈던 내공이...이렇게 시까지...당최..전공자라고 하기엔 네루다 밖에 모르는 저의 팍팍함이 부끄럽네요!

    여하간 오늘 또 존경의 마음! 한자락 품고 갑니다!

  8. Bigcat 2009/06/11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읽어온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9. leopord 2009/06/14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뒤늦게 읽습니다.

    잠깐 아일랜드 전설에 관심이 있었을 때 관련 홈페이지에서 상당수 전설을 글로 남긴 사람이 예이츠임을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가 교과서에 실렸던 기억만 가물했던 때였는데도, 예이츠와 아일랜드 사이를 연결하는 몽환적인 이미지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 깔려있는 오랜 정서-한(恨)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가 예이츠의 독립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새삼 생각하게 되는군요. 여담이지만 예이츠가 제임스 조이스의 데뷔에도 관계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벤 불벤 기슭에서>. 정말 좋은 시입니다. 뜻도 채 모르는 문구를 입에 넣어 혀로 굴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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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慕

심야잡상록 2009/05/23 15:35

출처 - Corbis
홈지기는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행위를 단호히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들의 연모와 증오를 동시에 끌어낼 수 있었던 매력적인 정치인이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우리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진정성을 갖추고 있었음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간의 호오를 떠나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등져야 했음을 못내 안타까워할 따름이다. 그의 마지막 선택이 전해주는 의미가 부디 이 사회에 은은한 연꽃 향기처럼 퍼져나가길 바란다.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9. 5. 23. 흐린 창가에서.

2009/05/23 15:35 2009/05/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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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사를 뒤적이다보니 한국에는 뒤늦게 소개된 사건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선주 부시는 그의 기반세력인 네오콘과 마찬가지로 처칠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2001년 블레어 영국 수상은 미국 출신의 조각가 엡스타인(Jacob Epstein)이 만든 처칠 흉상을 부시에게 진상임대해줬다. 이 동상은 부시 임기 내내 영-미 동맹과 우의의 상징으로서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흉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찬밥 신세가 된다. 오바마의 취향에 맞게 집무실 인테리어가 바뀌면서 이 자리에는 그가 존경하는 링컨의 흉상이 들어서고, 처칠 흉상은 영국에 반환되어 주미 영국대사 공관으로 밀려난 상태이다. 이것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영-미간 우의에 안좋은 징조라는 등의 이야기가 오고간다는게 기사의 내용이다.

우선 이 이야기는 그리 싱싱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지난 주말(2월 21일)에 나온 뉴스위크 기사를 보고 한글 기사를 만들어 송고했는데, 아마 연합뉴스 기자가 모니터링하는 언론매체가 몇 개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따지자면 이 뉴스는 1주일 전인 2월 14일에 영국의 텔레그라프가 내보낸 기사가 직접 발단이 되었고,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여기저기서 한 달 전부터 꾸준히 돌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홈지기가 작년에 썼던 글들을 떠올려 보니 이 뉴스로 이어지는 긴 맥락의 끈이 다시금 느껴진다. 우선 작년, 부시 정권의 심상치 않은 말로가 예견되던 시기에 홈지기는 대표적 고보수주의 논객인 뷰캐넌의 신작을 소개한 바 있다:

처칠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그 화살을 부시로 돌린 뷰캐넌, 그의 신간 마지막 구절은 바로 이번 뉴스의 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국은 1939년 대영제국처럼 과도하게 뻗쳐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핵심 이익과는 상관 없는 수십 개 국가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약속, 몇 개 국가가 한꺼번에 요청하면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갖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를 민주화시키고, 모든 국가를 우리의 사회 정의와 인권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며, "세계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미국의 정책을 천명해왔다.

그리고 만방에 그가 맡은 책무를 보여주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그의 집무실에 윈스턴 처칠의 흉상을 갖다 놓았다.

— Pat Buchanan, Churchill, Hitler, and 'The Unnecessary War'

재미있게도 이 대목에서 연합뉴스 기자는 물론 외국 기자들도 사실 확인에 게으른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 위의 기사들에는 블레어가 처칠의 흉상을 진상임대한 것이 9/11 사건 직후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어 달 전인 7월 16일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당시 백악관 공식 뉴스에서도 확인된다.

Acceptance of Bust of Winston Churchill

2001년 7월 16일, 영길리 대사가 황제에게 처칠 흉상을 진상하다

He was a man of great courage. He knew what he believed. And he really kind of went after it in a way that seemed like a Texan to me.

— 선주 George W. Bush

기쁜 마음으로 영국의 선물을 받으며 남긴 말에도 드러나듯이, 선주 부시에게 처칠은 알라모 요새윌리엄 트레비스데비 크로켓 정도의 우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히틀러나 사담 후세인, 김정일은 산타 안나?)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어쩔 수 없는 텍사스 카우보이 부시의 가슴 속에는 "Remember the Alamo!"를 외치며 멕시코 병사들을 향해 쇄도하는 샘 휴스턴의 모습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봤을 때 오바마의 집무실에서 처칠의 흉상이 치워졌다는 뉴스를 가벼이 볼 수는 없으리라. 대통령의 역할 모델로서 처칠이 물러나고 링컨이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은 지난 1년간 몰아닥친 거센 흐름의 변화를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역시 처칠과 링컨을 떠올리노라면 부시와 오바마에게만 시선이 머물 수는 없다. 홈지기는 다른 글을 통해 그들 각각을 역할 모델로 삼았던 우리네 두 전직 대통령과, 그들 모두를 역할 모델로 삼았던 또 다른 미국 대통령을 살펴본 바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역할 모델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만능의 관찰 포인트는 아니다. 홈지기도 저 두 글에서 공통적으로 닉슨을 언급하며 각자의 깜냥과는 상관 없는 역할 모델에의 매몰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의 아이러니에는 고개를 가로짓지 않을 수 없다. 링컨을 쫓아 민주화 이후의 통합 지도자를 꿈꿨으나 섣부른 열정이 앞선 나머지 경원당하며 퇴장한 노무현, 그리고 처칠을 쫓아 경제를 구할 전시 사령관을 꿈꿨으나 도덕성과 정치력 부족으로 지리멸렬하는 이명박 — 우리가 링컨을 치워버리고 처칠을 들어 앉히는 사이, 바다 건너에선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자꾸만 어긋나는 미국바라기에서 벗어나 우리의 항로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지혜는 이래서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9/02/24 06:00 2009/0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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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獨步 2009/02/24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최상위권 강대국 일진들에게 둘러싸인 대한민국 처지에서는 에스파니아의 프랑코 총통처럼 도움받을 때에는 감사히 받았다가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려오면 중립으로 확 돌아서는 '배은망덕형 외교'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 물론 극한의 눈치숙련이 필요함.

    하지만 명나라에 대한 의리 운운하다가 임금이 머리쳐박고 항복의식하는 것도 모자라 명나라가 패망하고 나서는 소중화의 진정한 후계자 운운하는 무협만화적 설정에 도취되었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21세기에 이르러서까지 해방과 한국전쟁 당시의 은혜를 성조기 흔들며 수도 한 가운데에서 소리높여 찬양하는 사회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집권이 불가능한 리더십이겠죠.

    • Periskop 홈지기 2009/02/25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배은망덕형(?) 외교는 관리해야할 리스크 부담이 너무 커서 정치세력이 불안정한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력까지 빈곤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다들 우물에 빠져 있는지 대안들이 아직 영 신통치 않습니다.

  2. foog 2009/02/24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대하면 멸종하는 것은 공룡뿐만이 아니겠죠. 미국을 보고 있으면 - 물론 전후의 - 굉장히 에너지효율이 낮은 거대한 스팀엔진이 연상됩니다. 전전의 영국이 그러했을 것처럼... 패권주의 국가를 용인하여야만 하는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또 어느 나라를 그 비효율적인 공룡으로 키워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죠. :)

    • Periskop 홈지기 2009/02/25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당히 비효율적인 패권국가는 주변국가들의 생존과 번영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는 중국과 인도 같은 덩치 큰 국가들이 미국의 탐욕을 떠받쳐주며 자본획득에 열을 올리다보니 스트레스 누적으로 세계경제가 출렁대는 형국이겠지요. 안 그래도 직장에서 향후 국가간 경제질서와 의존 네트워크가 어떻게 변할지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해보고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3. 일화 2009/02/24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처칠이 2차대전 승리에 기여한 바는 히틀러나 스탈린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그나마도 체제상의 문제로 직접 지휘할 수 없었다는 점이 주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저로서는 처칠을 모델로 삼는다는 것이 영 걱정이 되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9/02/25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굳이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가카께서 생각하시는 궁극의 역할 모델은 따로 있다는 전언이 있거든요. 공개하기는 그렇습니다만, 그게 좋아서라기 보다는 지금보다야 더 나빠지지는 않을거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4. 비스마르크 2009/02/25 0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칠옹이 위인이긴 위인입니다만...

    이미지가 워낙 시카고 마피아보스 포스가 강해서...ㅋㅋ

  5. newrun 2009/02/26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의 처칠관련 글은 두번째 접하는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 봤습니다. 정치가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 어릴적 한번쯤은 처질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암튼 나의 역할모델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으 누구였나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2/26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셨다니 글쓴 보람이 조금이나마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 Crete 2009/02/26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이정환님의 블로그에 보니까 해외에 무제한 호스팅 회사를 쓰신다고 댓글을 남기셨더군요. 혹시 정보를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실지요? 지금은 설치형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게 은근히 불편하네요. 계획이 끝나는 시점에서 저도 한번 사용하시는 호스팅 회사와 접촉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Periskop 홈지기 2009/02/26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은 웹호스팅 회사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간판회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디스크사용량, 트래픽 'Unlimited'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평판이 좋은 대표적인 웹호스팅 업체를 꼽아보자면,

      hostmonster.com
      bluehost.com
      inmotionhosting.com
      webhostingpad.com
      ……

      같은 것들이 있겠군요. whois 검색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저 가운데 bluehost.com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사시니까 저런 업체들을 이용하시는게 쓰기에 훨씬 편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7. Crete 2009/02/26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작 미국 살면서 저런 서비스가 있는지도 모르고 local에서 서비스하는 회사들 비싸다고 타박하고 있었군요...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뭘 좀 계획하는 것이 있어서... 이번 정보가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8. 비밀방문자 2009/02/27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3/02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래전 일도 기억하신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습니다. 당시 제 ID는 h*는 아니었고 c*였죠.^^

      그나저나 질문해주신 내용은 사실 제가 현용 밀리터리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명쾌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본질을 꿰뚫고 계신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문제를 좀 더 살펴보고, 언급하신 내용보다 더 자세한걸 말씀드릴 수 있으면 글을 올리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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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大帝께서 상국의 폐주 닉슨의 선례를 들어 박노자의 언설에 대해 일침을 날려 주셨다. 홈지기는 이 글을 보니 문득 몇 년 전에 정치경제학에서 인기를 끈 유명한 효과가 생각났다 — 바로 "Nixon goes to China" 효과라 불리는 것이다.

이 효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경제학자인 마리아노 토마시(Mariano Tommasi)의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경제학계의 권위 있는 저널 중의 하나인 American Economic Review에 1998년에 실린 논문 "When Does it Take a Nixon to Go to China?"에 나온 이야기이다. 원문을 읽기 전에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아보자.

순명大帝의 글에도 나와 있듯이 닉슨은 집권 이전인 1950~60년대에 걸쳐 전형적인 반공투사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집권한 1970년대에는 동서 데탕트의 문을 열어 젖혀 중국 방문이라는 빅 이벤트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런 예는 닉슨과 키신저가 유별난게 아니다:

  • 페론주의자로 알려졌던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볼리비아의 포퓰리스트 파즈 에스텐소로 모두 예상과 달리 친 시장적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 초, 사회당 미테랑 정권 하에서 일부 민영화가 추진되고, 물가 안정 중심으로 경제 정책이 선회했다.
  • 이스라엘에서도 1970년대 말, 매파로 꼽히던 베긴 총리가 오랜 반대 끝에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는 조치를 취했다.
  • 상대 파트너였던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도 이스라엘에 대한 효과적인 군사행동(욤 키푸르 전쟁)을 벌여 명성을 떨친 바 있다.
  • ……

이런 수많은 사례들은 정당의 정강 및 노선과 정책이 일치하고, 이럴 때 가장 큰 추진력을 얻는다는 이상주의적인 생각과 배치된다. 오히려 중대한 변화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정당(또는 정치인)에 의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확인된다. 윌리엄슨의 연구1에 의하면 시장 친화적 개혁을 했다는 13개 국가의 사례를 조사해보니, 정작 우파에 의해 이런 개혁이 이뤄진 경우는 3건에 불과했다 — 그리고 그 중 2건은 독재 정권(칠레와 한국)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2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이런 중대한 "정책 반전"이 결코 이상한 현상이 아니었다. 즉,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주변부 2류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Menachem Begin

나는 왼쪽으로

Paz Estenssoro

나는 오른쪽으로

Carlos Menem

나는 아내쪽으로

그렇다면 이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토마시의 설명의 개요를 알기 위해 논문 초록까지 읽어보실 분들은 아래 숨겨진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토마시 논문 초록 펼치기

토마시는 정치경제학자 답게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우선 많은 경우 정책 당국자들은 정책 반전이 국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더 나은 정보를 갖고 있으나, 이를 자기 정당 지지자들이나 다른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정책 하나만 뚝 떼어놓고 그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같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실행하는 주체가 어떤 사람이냐는 점을 함께 고려하여, 즉 정책 입안자와 정책을 쌍으로 놓고 찬반 의견을 결정한다. 닉슨이 중국 방문을 전격적으로 성사시켰을 때, 미국의 여론은 그나마 저항이 덜한 편이었다 — 물론 좌파들은 "정치적 개종"이라 조롱하고, 일부 우파들은 "배신"이라고 분노했지만 말이다. 이것은 닉슨같은 골수 반공투사가 공산주의자들과 화해를 추진한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설사 잘못 되더라도 나라를 공산주의자들에게 팔아 먹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민주당의 허버트 험프리가 집권하여 이런 정책을 시행했으면 공산주의자와의 결탁이라고 훨씬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다. 이렇게 정책 입안자가 기존에 구축한 신뢰를 바탕으로, 반대 정파라면 불가능했을 과감한 정책 반전을 이뤄내는 것이 바로 "닉슨 중국에 가다(Nixon goes to China)" 효과이다.

Nixon in China

역시 역사는 나를 재평가하기 시작했어!

지난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한미 FTA도 어땠는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추진했기 때문에 그나마 비난이 그 정도였던 것은 아닐까? 아시다시피 수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은 연이은 이런 돌발정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우왕좌왕했다. 일부는 반노로 돌아서기도 했으나, 또 그래도 많은 수의 지지자들은 '노짱이 하시는 일인데……'라며 온갖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고자 갖가지 눈물 겨운 논리를 짜내지 않았던가? 이회창이 한미 FTA를 추진했더라면 당장 거리로 나섰을 사람들까지 말이다. (이명박에게는 지금 그런 정도의 우군도 변변히 없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는 "닉슨 중국에 가다" 효과와 더불어 "노짱 FTA 추진하시다"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3

물론 이런 현상이 아주 "빈번한"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반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정당이 추구해오던 방향을 따라 순항하는 것이 대체로 올바른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류가 역사 속에서 파괴적 부작용 없이 점진적인 변화를 쌓아가는 과정으로서 진화시켜온 체계이다. 그러나 내생적이건 외생적이건 중대한 환경 변화에 따라 급격한 방향 전환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며, 이는 뭔가 "잘못된" 듯 보이는 바탕에서 튀어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긴 역사에서 보면 그것은 반드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럴 법도 한" 것일 뿐이다. 때로는 그런 반전이 파탄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닉슨이 냉전 해체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되듯이 역사에 길이 남는 업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하튼 세상에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상식과 반한 역사도 많이 있었고, 그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한국도 국민의 반대를 찍어 누를 수 있는 독재체제에서 탈피했고, 국가적 지향점에 대한 논의는 혼란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출현할 여러 정권에서 다른 형태의 정책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분명 기존의 반대파는 조소를 퍼부을 것이고, 기존의 지지자는 배신자라고 돌을 던져댈 것이다. 그럴 때 상기하시라, 그것이 꼭 후진성의 증거는 아니라는 점을, "닉슨 중국에 가다" 효과의 틀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길길이 날뛰며 바로 잡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폐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Williamson, J. and Haggard, S. "The Political Conditions for Economic Reform." in Williamson, J. (ed.) The Political Economy of Policy Reform. Washington, D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1994, pp. 527-536.
  2. 이건 물론 십수 년 전 연구 결과이니, 오늘날 개정한다면 DJ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친 시장적 정책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3. 오해는 마시라, 홈지기는 노통을 (인간적인 이유는 절대 아니고 정파적 이유에서) 아주 소극적으로 지지했고 한미 FTA는 찬성한다.
2008/06/25 10:00 2008/06/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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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6/25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Crete 2008/06/25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승병님 글에 특별히 딴지를 걸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소전 관련해서야 워낙 각종 자료와 객관적 해석에 더해 인품이 묻어 나오는 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니까요. 또한 시사 관련 글 역시 대개의 경우 조급함이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거리를 두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비교적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글의 전개를 통해 폭 넓은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시는 글 쓰기를 보여 주셨으니 그 또한 높이 사고 있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글은… 그런데…

    일단 스타트는 박노자님이 끊으셨고 홍순명님께서 추임새를 넣으신 것까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과연 홍순명님의 글이 박노자님의 글에 ‘일침’을 날리신 글인지는 차치하고… 오늘 채승병님 글의 말미에 언급하신 ‘노무현 지지자’들에 대한 언급에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1)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우왕좌왕
    (2)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고자 갖가지 눈물 겨운 논리를 짜내지 않았던가?

    쩝….

    소위 ‘노무현 지지자’들의 경제적인 입장이야 천차만별이고 한미 FTA에 대한 견해 역시 각기 주어진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 것 같은데… ‘노무현 지지자’들이 무슨 개인 숭배의 종교 집단도 아니고 특정 정책의 해석을 위해 우왕좌왕할 일은 무엇이며 또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일은 무엇일까요? 게다가 특별히 자신의 입장과 상반된 논리를 ‘짜낼’ 필요까지 있을지.

    작년 1월에 제가 서프에서 한 분과 한미 FTA에 대한 토론 중에 써 올린 글이 있어 퍼 오겠습니다. 일단 2007년 1월 15일에 쓴 글이죠.

    “저는 비록 민노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FTA에 한가지 궁금점이 있어서 출동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현재 정부쪽에서 FTA 추진의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는 대외정책경제연구원(KIEP)의 작년 3월 보고서를 보면 한가지 의문점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과 FTA 체결시 우리나라의 수출은 단기적으로 50억 달러 정도 증가하는 반면에 수입은 80억 달러 증가라고 나옵니다. 결국 30억 달러 적자 요인이 발생하죠. 장기적으로는 수출 154억 증가, 수입 152억 증가로 변해서 2억 달러 정도 흑자가 나온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혜택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위의 자료는 우리나라의 전체 무역에 관한 이야기이고, 미국과의 무역 부분으로 촛점을 좁혀보면 이야기가 한층 달라지죠.

    즉 단기적으로는 미국에 수출이 54억 달러 증가, 수입은 96억 달러 증가로 나와, 42억 달러의 적자 요인이 발생합니다. 장기적으로도 수출은 99억 달러 증가에 불과한데 반해서 수입은 172억 달러 증가해서 결국 73억 달러의 적자가 생기게 되죠.

    물론 무역 수지 그 자체보다는 교역 규모의 증가에 촛점을 맞춘다면 여전히 긍정적인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언듯봐도 우리에게 그렇게 유리한 면이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가 미국에 대해 수출하고 있는 품목중에서 높은 관세 때문에 물먹고 있는 분야는 철강 수출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용 창출도 단기적으로는 8만5천명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장기적으로는 68만명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지만 솔직히 구체적인 논리의 전개가 적어도 제게는 설득력이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미 FTA에 대해서는 선듯 손을 들어줄 판단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은 제가 인용한 KIEP의 작년 3월 보고서는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이론적 근거로 사용하는 강력한 자료이기는 하지만 저는 같은 자료에서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았습니다.

    출동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다른 자료나 별도의 자료가 있으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생각의 간격을 좁히는 토론 자체를 ‘우왕좌왕’ 이라고 표현하실 셈이신지요?

    제가 의문을 제기한 위 글에 당사자인 출동님은 ‘FTA- crete님 에게.....’라는 글로 본인의 생각을 보여 주셨고

    http://seoprise.com/board/view.php?uid=56796&table=global&mode=search&field=nic&s_que=%C3%E2%B5%BF&start=220

    그 글에 대해 저 역시 다음의 글로 추가로 문제 제기를 했죠.

    “우선 출동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별도로 글을 올려 주시고.

    그리고 제 글의 분위기는 출동님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기 보다는 제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에 혹시라도 설명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올리는 글이었습니다.

    사실 여전히 제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출동님이 주장하시는 내용은 100% 수긍을 하기는 하는데….

    그런데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올라가는 것, 그리고 우리 경제 체질을 바꾸는 것과 한미 FTA 가 높은 연관성이 있나요? 가령 미국의 금융업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국내에 진출하면 우리 경제 체질이 바뀌나요? 또한 의약업쪽으로 개방이 되면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 체질이 출동님의 희망대로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위로 가게 되는지요?

    솔직히 저는 두 가지 개념 사이에 연관성이 잘 납득이 안됩니다.

    대미 무역 수지 악화를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우리 경제 체질이 바뀐다는 확신이 있다면 몇 년간의 적자 확대도 인내할 수 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게 그런 효과를 담보하는 거래인지 잘 모르겠네요.

    이 부분에 대한, 즉 서비스업과 의약업, 농업 쪽의 개방이 우리 경제 체질을, 그것도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위로 올려 놓는 것에 대한 연관성을 좀 더 자료와 논리로 설명해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출동님께 듣고 싶은 건, 그러니까 양쪽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은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라기 보다는 그 다리를 건넌 뒤에 딛고 선, 즉 반대편에의 좋은 면에 대한 강조 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


    이런 식으로 열린 마당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정리해 보는 것이 어찌 ‘눈물 겨운 논리 짜기’가 될까 합니다.

    전 여전히 한미 FTA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당장 뭔가 손에 주어지는 확정적인 이득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정도라고 보는 거죠. 물론 우리가 기회를 충분히 활용을 하지 못 한다면 오히려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또한 농업 분야나 의약, 서비스, 금융 쪽은 단기간에 확정적인 손해가 있을 테고.

    어차피 자신의 의식 속에 특정 집단에 대한 stereotype이 굳어진 분께 이런 글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피상적으로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내부의 진지한 의사소통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물론 제가 ‘노무현 지지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무현 지지자’들의 소굴(?)인 서프에서 Crete 란 필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는 아닐 겁니다. 그러니 이 정도 appeal 글을 쓸 자격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에 관해서는 서프 대문에 다음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한미 FTA 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
    (국가의 안보는 단순히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http://crete.pe.kr/154

    이 부분은 평소 제 소신이기도 한 내용입니다.. 그럼...

    • Periskop 홈지기 2008/06/25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괜한 말을 언급하여 긴 댓글 남기시게 한 것 같아 무안합니다. 제가 그 말을 쓴 것은 당연히 '노무현 지지자' 일반을 싸잡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각주에다가 저도 '소극적 노무현 지지자'라고 적시했습니다. Crete 님이 말씀하신대로 일반적인 지지자층 전체를 염두해뒀다면야 그건 제 스스로에 대고 욕하는 셈이겠죠. 거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한미FTA의 실행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말이 바뀌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염두해두고 쓴 것입니다.

      그리고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너무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봤지만, 돌이켜 보면 좋게 생각할 점도 많이 있다는게 이런 평가들의 요지 아니겠습니까? 노무현도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는 뉘앙스로 재밌게 쓴다는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좀 더 배려하여 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일화 2008/06/25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히 두 분의 댓글에 끼어드는 것이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두분의 글 모두 존경의 마음으로 즐겁게 읽고 있는 사람이라(Crete님의 글에는 덧글을 달기 힘들어서 못달고 있기는 합니다만...) 한 마디 하자면, Crete님께서 홈지기님의 글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신 것이 오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홈지기님께서 오해의 소지가 있게 쓰신 잘못이 있습니다만, 제3자인 제 입장에서 볼때, 홈지기님이 말씀하시는 노무현지지자들은 현재 광우병 파동 등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감정적인 지지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되고, Crete님처럼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하면서 의견을 수립해나가는 분들을 포함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3. 빛둥 2008/06/25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느 때처럼 홈지기님 글 잘 읽었습니다.

    단, 저는 열렬노빠인데도 노전대통령의 '한미FTA 추진'에 대해 별로 인지부조화는 겪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물론 다른 노빠분들은 어떨 지 모르지요.)

    노전대통령은 대우조선 노동자 파업에도 지원을 했었지만 동시에 대우자동차가 GM에 인수될 때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쪽이었고, 대선 직전에는 농업의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계란을 맞은 적도 있습니다. 특히 자유무역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돌을 맞아도 할 건 하는 정치인들이 김대중-노무현-유시민 이 라인들입니다.

    정치/사회적 민주화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이 둘이 무역 및 경제의 자유화와 같이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글쎄요. 서구의 역사는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보기도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지요.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에 대한 이런 오해?는 꽤 광범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그게 오해?라는 걸 여러번 해명했었답니다. 문제는 그 해명조차 계속 오해?하며 받아들이니...

    생각해보니, 미국 민주당도 비슷하군요. 오바마 후보의 말을 문제삼아 민주당이 집권하면 보호무역이 될 것이라고 뉴스에 말들이 많은데... 정작 유명한 NAFTA가 시행된 건 클린턴 행정부 때죠. 그 이후 각종 자유무역협정을 본격적으로 맺기 시작한 것도 클린턴 행정부 때이고요. 긴 역사로 봐서도 미국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세력들은 꾸준히 자유무역을 지지해왔죠. 보호무역주의자는 민주당의 소수였을 뿐이고요...

    각설하고, 최소한 제게 있어 1997년 선거와 2002년 선거에서 두 전 대통령을 찍은 이유에 '보호무역(예를 들어, 농업을 보호)'을 할 것이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정치/사회 개혁과 경제적 자유(자유무역 포함) 이 두 가지를 믿기 때문에 찍었고, 10년 간 물론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큰 인지부조화는 다행히 없었답니다.

    다시 한번 홈지기님의 여러 글 내용에는 감사드립니다. 재밌습니다. ^_^

    • 빛둥 2008/06/25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쓰는 동안(딴 짓을 하느라 오래 써서)...

      홈지기님이 비슷한 내용의 Crete님 댓글에 대한 답글을 다셨군요. 홈지기님의 뜻은 잘 이해되는군요. 제 글에 대한 답이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쓴 글을 지우는 건,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남겨 두겠습니다.

    • 일화 2008/06/25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듣기로는 클린턴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상당한 당내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시글의 지적대로 그건 공화당이 할 법한 일이라는 식의 비판이었다고 하더군요. 미국 민주당내에서 보호무역주의자가 소수라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드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빛둥/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말씀하신 뜻은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좀 더 독자분들의 오해가 없도록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4. 漁夫 2008/06/25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어느 현대 작곡가가 'Nixon in Peking'인가 하는 오페라로까지 썼다고 하던데요 ^^

    저도 이번 광우병 논란을 보면서, 차라리 노 대통령이 마무리해 버렸으면 이런 정도의 문제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데 10000원 걸 의향이 있습니다. 어차피 욕 많이 먹었다면, 별 문제 없을 만할 일은 다 처리해 버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페라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네요. 제가 클래식이나 오페라 같은 쪽에는 워낙 문외한인지라……^^ 저도 쇠고기 수입 협상을 참여정부에서 끝냈으면 이런 일까지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랬다면 ABR이 훨씬 탄력을 받았을테니 폐해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그럼 아마 대운하를 두고 촛불시위가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여하튼 노통 덕(?)으로 대통령에 오른 MB가 요즘 온갖 삽질로 보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니 참 재미있습니다.

    • 漁夫 2008/06/27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거 뭐 '고양이의 보은'도 아니고... (MB의 이미지는 鼠公 아니3. 하하)

      어찌됐거나 MB 수령께서 '오른편으로 깜박이 넣고 좌회전'하는 센스를 발휘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Of course I'm afraid not. (sigh)

  5. sonnet 2008/06/25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인의 박람강기는 당할 수가 없습니다. ;-)
    제 생각에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혹은 반대로 "오른쪽쪽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이 국민적 저항을 줄이고 지지를 획득하기 유리하다는 현상은 현실정치에서 두 가지 함의를 갖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중도지향적인 개혁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론통합을 도모하는데 고유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
    둘째는 어떤 개혁정책이 필요하다고 간주했을 때,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이 더 쉬울지에 대해 판단근거를 제공한다는 점.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博覽强記라니 별 말씀을.^^ 사실 이 "Nixon goes to China" 효과는 참여정부 때 신 국가비젼 수립하면서 설왕설래했었다고 합니다. 노통 귀에까지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최근에는 MB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이 지향할 생산레짐 이야기가 또 달라지면서 안주거리로 등장하고 있지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핸들을 급히 꺾으려면 적당히 반대편을 끌어들이는 妙도 필요한 법인데, MB는 성격상 그런걸 꽤나 껄끄러워 했다고 합니다.

  6. 바보이반 2008/06/26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짱 무오류설의 신봉자로 신심이 지극한 분들은 당연히 FTA 추진에대한 인지 부조화를 겪지 않은게 당연합니다. 노짱이 하시는 일에 잘못이란 있을수 없으니까요. 그분들의 사고체계에서는 "노짱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노짱을 믿는자는 영원히 살고 노짱을 불신하는자는 수구 보수 한나라 당 무리들과 같이 무간지옥에서 영원히 타리라. 노렐루야 노렐루야 노멘" 이지요.

    솔직히 인지 부조화를 겪은 사람들은 이른바 비판적지지를 내세우며,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위해 어쩔수 없이 민노당 대신 노무현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사이비 노빠들이 아니겠습니까. 민노당은 민노당이고 노짱은 노짱이거늘, 예시당초 이미 존재하고 있던 인지부조화가 FTA를 계기로 표출된 것이라고 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한탄해야 할까요?^^ 저는 정치색이 흐릿한 사람이라 여기저기 표류하며 스스로 인지부조화를 종종 겪는다고 느낍니다.

  7. 바보이반 2008/06/26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TA가 노빠들의 신앙심의 순수성을 테스트 할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게 좀 아이러니 하지만 더 해괴망측한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죠. MB교도의 신앙의 순수성은 대운하로 테스트 할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도 듭니다. 순수 맹빠와 노짱이 싫고 정동영이 재수 없어서 찍은 사이비 맹빠를 가르는 기준으로 꽤 유용할듯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의미에서 극보수 개신교 목사 분들은 대박해를 상기시키는 설교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폭도들의 촛불에 맞아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대운하를 건설하시니……"라고 읊조릴 수도 있는 추 목사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8. 獨步 2008/06/26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노무현만큼 지금까지나 앞으로도 논란의 대상이 될 캐릭터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 2mb에 대해서는 이미 평가/정리가 완료되어 논란 자체가 없을 듯(냉소).

    흔히 공부를 잘하든지 착하든지... 에서 2mb는 이미 공부도 못하고 착하지도 못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노무현은 공부짱에 맘짱이다에서 2mb나 별 차이가 없다까지 평가의 스펙트럼이 참으로 넓은 듯 합니다 - 또한 특이한 점은 평가자마다 자신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랄까요?

    덧말 )

    개인적인 시련의 시기에 위로를 전해주신 홈지기님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홈지기님 직장과 제 거처도 가깝고 하니 식사 한 번 함께할 기회가 있었음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그래도 MB의 미래가 더 궁금합니다. 욕이야 계속 먹겠지만 과연 어디서 헤매다 멈출 지는 예측불허 아니겠습니까. 역사 속에서 선천적인 수면부족인 사람들은 반드시 끝까지 지켜봐야 하더군요.

      P.S. 그나저나 일은 무사히 잘 치루셨는지요. 아무쪼록 힘든 일 겪으셨는데 집안 두루 잘 추스르시기를 바랍니다.

    • 슈타인호프 2008/06/27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홈지기님의 "선천적 수면부족"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나폴레옹이 생각납니다. 나폴레옹도 하룻밤에 4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고 했었죠. 2MB의 워털루는 어디일까요(...)

  9. 쿤돌 2008/06/27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홈지기님의 글들은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홈지기가 요즘 직장에서 연구를 시작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교육 문제이다. 아무래도 고질적인 한국의 교육 현안이라면 중등교육에 퍼붓는 과도한 사교육비일텐데…… 다른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기초조사를 하다 보니 앞서가는 한국의 거울, 바로 일본의 사례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의 초등학교 3학년생 J양(9)은 여름방학이라는 실감이 안 난다. 이틀에 한 번씩 오전 9시~낮 12시까지 학원에서 국어와 수학 수업을 받는다. 그 나머지도 학원 숙제를 하다보면 친구들과 놀 시간이 나지 않는다. 사립 중학교 진학 희망자의 절반가량은 이처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입시전쟁'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는 2007년 8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1의 일부이다. 맏딸을 도쿄(東京)의 사립중학교에 진학시킨 맞벌이 회사원 K씨(46)의 사례다. K씨는 2005년 5학년 되던 딸을 처음 학원에 보냈다가 학원강사로부터 '학원을 보낸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다급해진 나머지 다른 학원을 추가로 등록했다. 학원비 부담으로 K씨는 결국 내집 마련을 위해 붓고 있던 적금을 깼다는 것이다.
……

일본 사립학교 입시 준비생들

入試必勝! 일본의 사립학교 입시 준비생들

김[영철] 박사는 그러나 "일본의 과외열풍은 197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증가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다소 꺾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국립교육정책연구소(NIER)에서 2001년부터 2년 반가량 연구활동을 했던 한국교육개발원 정광희 박사도 마찬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6학년이던 아이를 도쿄 변두리 초등학교에 보냈다. 아이는 주말마다 농구하고 놀러 다녔다. 아이의 급우들도 과열과외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

일본의 과외열기가 주춤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본은 이미 계층구조가 고착화되어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둔화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에 한계가 생기자 사교육에 올인할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다. 다시 정광희 박사의 말이다.

"일본은 명문대 부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부속 중·고등학교를 거쳐 계열 대학까지 저절로 올라가는 수순을 밟는 경우가 많다. 명문 사립중에 입학해도 고교까지 6년간 별도의 사교육 없이 대학에 갈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티켓'을 따내기 위해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단계에서 이미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른다. 이른 단계에서 아이의 진로가 결정되므로 사교육의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2

인용한 책은 작년 12월 28일, 대통령직 인수인계 문제로 만난 자리에서 노통이 MB에게 선물했다는 바로 그 화제의 책, 『대한민국 교육 40년』3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명박 당선자 만찬회동 브리핑 전문) 이 인용문 서두에 나오는 동아일보의 기사는 사실 일본의 유토리(ゆとり) 교육, 더 나아가 참여정부 교육정책을 비판하려는 (다분히 악의적인)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만 보면 일본도 심각한 홍역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일본의 다층화된 입시경쟁구조가 결과적으로는 전체 사교육 수요의 감소를 가져오고 있다니 흥미로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홈지기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바로 이 블로그에 한달 전 쯤에 쓴 「치열해지는 교육 경쟁구도에 창조적 해결책이 존재할까?」 글이 생각났다.

Evacuation

좁은 출구에서의 탈출. (a)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때 (b) 출구 앞에 기둥을 설치했을 때

이 글에서 홈지기는 뭔가 '출구 앞에 설치한 기둥' 같은 대책이 창조적 해결책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밝힌 바 있는데…… 외국 사례를 보니 자연적으로 이런 기둥과 유사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나라도 있는 것이었다! 아마 우리나라도 학원재벌과 결합된 자율형 사립고가 대거 허가되면 이런 일본식의 시스템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을까?

이런 문제 때문에 홈지기는 교육 문제 해법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할지 몹시 고민이다. 단순히 국민 전반의 사교육비 지출 총량을 줄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이처럼 경쟁단계를 확대하여 아예 일찍부터 사교육 수요를 꺾어버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처럼 계층구조의 고착화, 사회적 이동성의 둔화라는 치명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물론 서구의 많은 국가들도 실질적으로는 계층구조의 고착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고, 한국도 그 흐름에 휩쓸려가는 분위기지만, 교육정책이 이를 방치 또는 가속화시켜서는 안될 노릇이다. 교육이 제공하는 사회적 이동성을 촉진하면서도 끝없는 사교육 경쟁의 사회적 덫(social trap)에서 빠져나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과연 그런 기발한 또 다른 창조적 해결책이 존재할 것인가? 앞으로 연구를 해 보면서 지속적으로 고민할 일이 아닐 수 없다.

P.S. 다음 번에 이 문제로 글을 쓸 때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사례조사를 좀 더 해보고 그 결과를 간단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日 '사립중 보내기' 입시광풍 (동아일보)
  2.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대한민국 교육 40년: 공교육 정상화·대학 발전·평생학습사회를 향한 전진.』 (한스미디어: 2007).
  3. 이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대한민국 정책포털에 온라인으로 연재되어 있으니, 책 사 보기 아까우신 분들은 온라인으로 읽어 보시기 바란다.
2008/05/21 16:30 2008/05/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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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risx 2008/05/21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의 상황은 일전 포스팅에 나오는 "출구 앞의 기둥"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네요. 출구가 다르지 않습니까.
    명문 유치원-> -> ->계열명문대(엄친아) vs 평범 유치원-> -> ->평범 대학(결과적으로 평범남) 쯤 되려나.
    굳이 극장 상황에 비하자면 층을 아예 나눠버린 셈이죠.
    일단 허름 트랙에 들어서면 엄친아 트랙으로 갈아타는 게 무쟈게 어려우니 지레 포기하도록.

    뭐, 우열반 편성하고 등등 해서 장차 일본처럼 트랙이 아예 나뉘게 되는 것도 사교육비를 줄이는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불난 극장 출구 앞 기둥 모델로 저 상황을 설명하기엔 좀 무리가 아니냔 게 내 생각. (탈출만 하면 되는 진짜 극장과는 달리, 교육 극장에선 애초에 문을 나온 뒤의 상황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는 거니까. 하긴, 불타는 극장 문을 나선다는 걸 어떻게 정의해야 될 지도 애매하죠. 명문대에 갔다? 대학에 갔다? 사교육비 거의 안쓰고 대학에 갔다? 게다가, 하얀 점은 학생? 학부모? 기껏 문을 빠져나갔더니 비정규직의 늪이었다면? )

    일전에는 그냥 가볍게 생각해볼만한 거리로 극장의 기둥 얘기를 던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포스팅을 보니 정말로 저런(일본같은) 상황이 극장 모델에 있는 "출구 앞의 기둥"과 비견할만 하다고 전제하는 건가 싶어서 한 마디 얹어봅니다.

    @@극장 출구 앞 기둥처럼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제도/장치를 교육에도 도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는 십분 동의합니다. 네. ㅎㅎㅎ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출구라는게 꼭 특정 레벨의 대학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주 rough하게 '빠른 탈출=명문대 진학', '늦은 탈출=평범대 진학'으로 받아들여도 다단계 스크리닝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ㅍㅍ

      그리고 실제 연구하는데 저 극장 모형을 쓰지는 않을 생각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설계 중인 연구모형에는 당연히 개개인의 진학 후 생애기대후생(life-time expected welfare) 등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게 작용하지. 지적대로 극장 모형(또는 탈출 모형)은 교육문제 연구에 쓰기에는 비현실적인 모형임이 분명하고. 다만 이 글에서는 그 모형에서 시사하는 다단계 스크리닝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시스템이 일본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연상한 것일 뿐이지. 또한 이런 일본의 사례를 봄으로써, 한쪽 측면에만 집중하여 해결책을 찾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정책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경계하려는 의미도 있고. 그나저나 교육 문제는 다들 아이디어 회의를 주구장창 해도 자꾸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야.-_-

  2. chrisx 2008/05/21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x년 뒤면 학부모가 될 예정이다보니(후훗)
    요즘 하신다는 연구의 성과 플러스,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팀장님도 현재 입시전선에서 혈전 중인 학부모이신지라 열의가 대단하시지. 뻔한 결과가 아닌 좀 참신한 대안을 내놔야 할텐데 다들 후덜덜할 뿐이야.T.T

  3. 양성민 2008/05/21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noblenight 2008/05/21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잘 읽고있습니다.
    물론 계층구조의 고착화에 따른 사회적 이동성의 둔화가 지나친 과외열풍을 막을수 있다는 점은 분명 좋은 부분이지만 글쎄요...;
    과연 전체의 공익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적합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직업의 세습화 현상이 나타나서는 안되기에 우리는 교육에 있어 평등권을 강조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셧지만 이건 음의 피드백구조 2개가 상호작용하여 양의 피드백으로 전환되는것이기에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전 듭니다. 단 국가에서 해결해야할 부분은 부작용을 줄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겟죠.. 그러나 이를 뛰어넘어서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의 열기는 존재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일본식 시스템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취지의 글을 적은 것은 아니니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신대로 공익 측면에서 사회적 이동성의 저하 또한 멀건히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골치아픈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사교육 열풍이 지나친 것은 맞는데, 그걸 해결하자고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방면의 고찰이 필요하겠죠. 교육 문제는 워낙 복잡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많이 있습니다만, 정말 그런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숙이 고민을 해봐야 겠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정책 패키지가 나올 길은 과연 없을런지…… -_-

    • noblenight 2008/05/22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쓴글에 오해의 부분이 있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채승병님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그와 관련해서 예전에 선후배들과 토론했던 사실이 생각나서 교육의 특이성을 말씀드린거였습니다. 그토론에서도 채승병님이 말씀하신 출구의 기둥과 같은 대책과 비슷한 대책에 있어 선진국의 사례 주로 영국이나 미국의 사례가 중심이 되겠죠 를 들며 사회적 타당성을 입증하보려고 의견이 있었으나 오히려 반발만 더 커질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갑론을박 하다가 끝나버렷죠
      정책이란 어려운거 같습니다. 함부로 외국의 사례를 채용할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연못에 던진 돌 하나가 연못 생태계에는 대 재앙의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방법이 옳은지는 그시점 마다 섣불리 판단할수 없는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친구들은 제 의견을 망언이라 하였지만
      전 이문제는 어쩔수 없이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거 같습니다. 결국 선진국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걸 우리가 해보는 것도 괜찮을거 같습니다만 제생각으로는...ㅋㅋ

      괜찮지 않겠습니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사회전체가 자원의 한계성에 걸려 ㄴ넘어지는 그순간까지 기달려 보는것도 말입니다. ㅎㅎ

  5. chrisx 2008/05/21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건, @.@
    사기업 연구소에서 왜이런 정부 정책연구스런 걸 하고 있는 거죠?
    설마 교과부 과제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설마가 사람 잡은 건가요? ㅎㅎ

    • 獨步 2008/05/21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친위대(SS)는 초법적으로 국가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게 최종목표이기 때문일 겁니다(움하하).

      넝담이고... 제 생각에는 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 제고라는... 결국은 경제/경영적 측면에서 접근이 시도된게 아닐까 합니다 - 개인적 공상일 뿐입니다.

      어떻든 교육문제는 심각하므로 연구주체야 어떻든 논의가 이루어져야지 않겠습니까. 결론은 SS의 교육사업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되더라도 말이죠(웃음).

    • Periskop 홈지기 2008/05/24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chrisx/ 우리 연구소에도 공공정책실이 있고 연구원도 10여 명이나 되는데?^^ 우리는 씽크탱크를 지향하는 곳이라 계열사 지원 외에도 공공 성격의 연구도 많이 수행하고 있지.

      獨步/ SS Ordnungspolizei 요원들이 들이닥칠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 獨步 2008/05/24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홈지기님/

      만일 그렇다면 SS-HQ와 제 거처와의 거리가 워낙 가까운 탓에 떴다 하면 도피할 시간이 없겠는데요(덜덜). 모처에 마련해놓은 안가로 잠시 피신해야 하나(고민).

      그런데 SS는 제 거처 근처로 HQ를 옮긴 이래 어째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地氣가 안좋은 곳인지(웃음).

  6. 일화 2008/05/21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적 유동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야말로 교각살우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 하네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남의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문제라 가끔 고민해봅니다만, 진짜 답이 안나오긴 하더군요. 현재의 교육열은 다소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 자체로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니 어떻게든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텐데, 지금 현상은 완벽한 고비용 저효율 교육이라... 부디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기를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식 있는 분들이 만나기만 하면 교육 문제를 토로하는 것만 봐도 고비용 저효율의 악순환은 매우 심각하죠.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15년 전과는 한참 달라진 환경의 원인을 해체하는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기존 논의에서 얼마나 더 전진할 수 있을런지 고민입니다.

  7. 기린아 2008/05/22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입시전쟁을 없애면서 계급 이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계급을 온전히 고착화 시키고 대신 계급간 평등을 이루는 - 아마도 공산혁명, 또는 잘나가는 북유럽 정도 - 것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OTL;;

  8. 길 잃은 어린양 2008/05/22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정희가 구상만 하다가 실패한 교육정책의 골격이 고등학교를 30%의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와 70%의 실업계로 나눈다는 것 이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구상이 사실상 전제군주였던 박정희의 생전에 처절하게 실패했던걸 보면 한국사회의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욕구는 세계의 어느 지역 보다도 강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비관적이긴 한데 사회적 유동성을 살리면서 교육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지상천국을 현실세계에 도래시키는 것과 비슷한 일 같습니다.

    • 獨步 2008/05/22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승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게 유별나게 강한 이유는 이 사회는 윗대가리가 되면 가지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고 책임질 부분은 필요 이하로 적어지기 때문인 듯 합니다. 솔직히 '남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상승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필기시험만큼은 다른 것과는 다르게 그래도 '나(와 내 자식)도' 한 번 해볼만한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이라는 생각과 연계되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통일신라시대 독서삼품과가 도입된 이후 결국은 과거제라고 할 수 있는 국가단위시험에 열폭하는 분위기의 진정한 폐해는 역설적이게도 '공부 ZOT나게 안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일 겝니다 - 헛공부에 열폭들을 하니 인생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못하는 것 절반 안하는 것 절반이겠죠.

      공부안하는건 좌빨이든 우꼴이든 가리지 않죠. 후자는 뭐 언급할 가치도 없고. 전자의 경우도 모당이 총선전 평등파-자주파 논쟁으로 갈라진 것만 봐도 결국 80년대식 PD-NL 이분법이 지금껏 이어진거 아닙니까? 도대체 세월이 어느 땐데 아직도 저러는지...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지만 결국 이번 광우병에 대한 괴담(?)이 이렇게 확대일로를 걸을 것도 인터넷 등등에 횡행하는 정보를 Screening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부족에 원인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음... 댓글의 댓글이 쓰다보니 또 너무 길어지네요. 저는 길게 글쓰면 특히 해가 지면 안되는 사람인데(웃음). 이만 급히 마칩니다(후다닥).

    • Periskop 홈지기 2008/05/27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회주의 중국도 이미 오래 전부터 사교육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걸 보면, 공산혁명보다도 어려운게 교육문제일지도 모르지요.^^

  9. 델카이저 2008/05/23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어떤 분이 프랑스에서 살다 오셨는데요.. 그 분이 말씀하신 방법은 서울대 하나만 빼고 모든 대학을 평준화 시키는 거였죠..-_-;; 그럼 서울대를 노리는 상위 0.5%는 입시지옥을 겪겠지만 나머지 95.5%는 입시지옥에서 해방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뭐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방법 같기도 하네요..


    ps. 세상에는 꼭 해결할 필요가 없는 문제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7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닌게 아니라 프랑스 외에도 그런 방식으로 효과를 보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사교육 경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지만, 국소적으로 몰아버리는 방법이죠. 그런데 이 경우는 상위 1%와 비교하여 99%가 소외되는 느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한국이 순탄히 과연 그런 사회로 넘어갈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연구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10. 별마 2008/05/23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경합니다. 저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지만 저 역시 1,2년 정도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해 나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김태억, 이창용 등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원에서 발표한 자료 <입시제도의 변화(제목 요약)>의 결론 부분이 홈지기께서 소개하신 동아일보 기사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네요(교육부의 대학자율화 억제가 고소득층의 상위권 대학 진학을 오히려 부추겼다는 얘기죠).
    홈지기께서 설명하신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성의 둔화는 사실 한국에서도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제 견해(아무런 연구도 없습니다만)는 대학 진학 등에 여러가지 평가자료를 요구하는 현행 입시제도가 가장 큰 원인 같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수능의 비중을 줄이는 한편 내신, 논술 및 구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아마 학생선발 자율을 요구하는 일련의 교육계를 달래기 위한 교육부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방침의 취지는 전인교육의 완성이라는 훌륭한 것입니다만 현실에서는 자본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욱 키울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바꿔 말하자면 과거 본고사 혹은 수능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자본의 영향이 오히려 한계(물론 자본의 영향력이 그 당시에 컸습니다)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계급을 고착화시키는 방법은 홈지기 말씀대로 사회적 이동력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젠가 네이버 인조이재팬에 일본인들을 상대로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에 대한 질문을 해봤을 때 일본인들은 상당히 무덤덤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식 방법이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구요(일본인들이 저 상태를 만족하는 것을 보고 저거 나름대로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제 생각은 입시에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것보다 수능 등의 방법처럼 국가에서 하나의 기준을 정립해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수능 하나만 보고 대학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사회적 이동성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실제 그런 사례가 제 주변에 있습니다).
    어차피 자본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교육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할 것입니다. 문제는 여유가 없는 저소득 계층입니다. 이 저소득 계층의 교육비 투자를 줄여주는 방법 중 적어도 입시에 있어서 자본이 투입될 수 있는 영역 자체를 줄여버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몇몇 단체(대부분 뉴라이트들이더군요)들은 교육에 있어서 국가의 개입이 제한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홈지기님의 말씀처럼 사회적 이동성을 희생하는 대가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기 소르망의 <Made in USA>에서 나타나는 소수자 계층을 위한 미국 교육계의 배려에 대한 흑인과 인디언의 반응일 것입니다).
    여의도연구소에서 정책제안 이벤트(용어가 적절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를 개최한다기에 한번 이 문제를 다뤄볼까 생각하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별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홈지기께서 명쾌한 해결책을 내려주신다면 그 자료를 베이스로 저도 미흡하나마 연구를 해볼까 기대해봅니다 ^^.

    • noblenight 2008/05/25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장 근본적으로 막아야 할것은 사회적 이동성의 둔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열기가 뜨거운 건 사실이지만 그에 따른 긍정적인 영향도 많이 있지 않나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만 자랑스럽게도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또한 모국어외 외국어 즉 영어및 제2 외국어의 학습률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이런 긍정적인 요인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빠르게 한 측면이 있지 않나 싶은게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는 우려가 없는바 아니지만 너무 심각하게 대안을 생각하는것도 문제인거 같습니다. 우리가 흔희 호미로 막을걸 가래로 막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측면에서 '별마'님이 주장하신 입시에 지출되는 대상을 줄이는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거라 생각이 들지만 단순히 응급처방에 머물지 않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근본적으로 학력에 대한 우열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국민들의 의식속에서 배제하도록 정책을 집행 하여야지 그렇지 않다면 이 문제는 계속 발생할거라 생각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7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여러 부분을 지적해주셔서 댓글에서 다 소화하기는 쉽지 않네요. 말씀하신 내용을 참고하여 다음 글 작성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제안하신대로 입시제도의 개선 문제도 첨예한 논쟁거리인데, 최근에는 해외조기유학이라는 탈출구가 또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기존같은 효과는 거두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한 번 가능성을 차근히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11. 외고생 2008/05/23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저도 그나마 상위 쪽인 학생 중 하나입니다만(실력도 별로고 집안도 별로입니다.) 저런 식으로 되는 건 확실히 아니라고 보네요. 그런데 학교의 몇몇 아이들은 저런 사회를 바라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뭐 제가 학교 내에서 좀 왼쪽 성향이긴 하지만서도요. 아무래도 외고는 좀 보수적인 얘들이 많다는 느낌입니다. 꼭 그게 나쁘단 건 아니지만..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덧글 남기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5/27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감사드립니다.^^ 외고에 다니시는군요. 아무래도 느낌상 보수적 성향을 갖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와는 환경이 너무 달라져서, 그런 성향을 갖는 학생들의 구체적 비중이나 추세, 심각성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이 있었으니, 어느 정도 말랑말랑한 시각만 유지하고 있으면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서로가 배타성이 커지는 추세라면 문제가 있겠죠. 제 경험 상으로는 특목고보다도 오히려 해외조기유학생들 중에 저런 문제가 심해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습니다.

  12. seagull 2008/06/1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계층구조 고착화로 사회이동성이 둔화되어, 결국 사교육열풍이 줄어들었다...이 대목에서 깜짝놀랐습니다. 위의 의견처럼 사회이동성 둔화는 암담한 미래지요...(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상당부분 진행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사교육비의 사회적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면 결국 사회이동성 둔화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결국은...해외취업 및 이민확대 쪽이 될까요? 열려있는 문이 작으니 아무리 공부해도 '투입노력 대비 미래보장율'(말도 안되는 조어법입니다만)이 낮다면 그것이 사교육비 절감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냐, 아니면 미래보장율(?)을 늘리는 쪽으로 갈 것인가로 나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인도에서 봇물터지듯 흘러나오는 학생들과 그들이 현지에서 JOB 잡는 모습들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의 투입노력 대비 미래보장율은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이겠죠? 그것이 대부분의 인도학생들이 해외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학을 뗄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겠구요...
    그렇게보면 우리보다 더 폐쇄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 미래보장(?)을 확대하는 쪽이 아닌 사교육비 감소로 귀결되어 졌다는 것이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하는군요. 정말 바람직한 결과는 아닙니다만...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니 결국 '쳇, 결국 문제는 영어인가' 라는 쓴웃음이;;

    좋은 글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13. 폴라곰  2008/06/30 0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에 獨步님께서 얘기해주신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나라는 내부자아로 인한 '안에서 밖으로의 진행과정'을 거쳐 신분사회구조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외력에 의한 개방, 즉 '밖에서 안으로의 진행과정'을 거쳐 신분사회구조를 벗어났기 때문에 이 과정 중 (전자의 경우였다면)자연스럽게 새로운 형태의 사회구조로 접근하면서 재정립되어야 할 새로운 사회계층구조에 대해 이해 및 적응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즉, 타 계층에 대한 이해가 적었을 뿐더러 계층구조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그 모습 자체가 '신사회계층구조'의 전부로 받아들여진 모습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치 초기 자본주의를 보고 자본주의의 모든 것인양 생각했던 맑스 처럼요.

    이 다음은 獨步님께서 말씀하신 부분과 같습니다. 현재 '작은 책임'을 지면서 '큰 권리'를 누리고 있는 상위계층의 모습이 당연히 큰 유혹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구요. 이런 이해는 우리나라에서 유별난 '부에 대한 경시(특히 재벌)'를 연결하는 데에도 무리없을 듯 합니다.

    뭐 써놓고 보니 상위계층을 각성시키는 일이나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나 힘들긴 매한가지 일 듯 합니다만.

  14. 곰소문 2009/04/22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인 기회의 균등이라는 이상적인 대의는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계층의 고착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에 가장 큰 폐해는 인재 활용성이 극단적으로 낮아지고 경쟁을 통한 효율화와 역량 강화가 사라지는 것이죠.

    비록 유능한 인재일지라도 사립 유치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적절한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뿐만 아니라, 인재끼리의 경쟁이 사라져서 결국 프랑스나 일본처럼 사회의 열기와 잠재력이 죽어갑니다.

    가장 무서운 일이 되는 겁니다. 작은 나라에 인재만이 재산인데, 이조차도 버려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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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
이 글은 필자가 2002년 대선에 임박하여 모교(KAIST) 학내 게시판에 게재했던 글이다. 당시 노무현의 경제정책을 두고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에 빗대어 논한 다른 게시물을 보고 그에 대해 논한 글이다. 이 글을 쓴지 어느덧 5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 노무현도 낙향하였고, 새롭게 MB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살펴보면 그 때의 우려가 해결되지 못한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도 있고, MB 정부도 별반 나아진게 없어 답답함은 더하다. 글 속의 이름들은 조금 과거의 이름들이 되었으나 여전히 곱씹어볼 대목이 있지 않을까 하여 먼지를 털어내고 이곳에 다시 올려본다. 世事를 바라보는 독자 제현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글을 쓴 계기가 된 다른 분의 원문:

필자의 반론:

보낸이 (From) : chess (채승병)
시 간 (Date) : Tue Oct 29 13:32:24 2002
제 목 (Title) : 다르게 바라보는 신법과 구법 이야기

얼마 전 올 초에 키즈의 어떤 분에 의해 쓰여진 북송대 왕안석의 신법과 그에 따른 신법파-구법파 사이의 당쟁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보통 중국사 중에서도 5대 10국의 혼란기를 거쳐 북송대에 이르는 역사는 교양서적 수준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왕안석의 신법에 대해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려간 내용은 많은 이들에게 참신한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차용한 글에서는 항상 이야기 그대로 현혹되지 말고 제대로 본질을 꿰뚫어 차용한 것인지, 오늘날 현실의 눈으로 살펴보려는 의도 가운데에 무리는 없는가 항상 의심을 가져보아야 한다. 왕안석의 신법의 이야기 또한 그럴듯 해보이나 이런 의심 많은 필자의 눈에는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들이 눈에 밟히는 것을 어찌하랴.

그 글에서는 왕안석의 신법 이야기를 차용하여 두 가지 결론을 끌어 내고자 하였다. 첫째는, 신종 시대의 개혁의 필요성에 빗대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개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그 개혁의 주도자로서 노무현의 시대적 필요성을 은근히 내세웠다. 아울러 원래 글타래의 단초처럼 노무현 진영 쪽에 당장 왕안석과 같은 인물이 보이지 않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개혁을 추진하는 길이 옳다는 논리이다. 둘째는, 북송이 피폐해진 원인으로 당쟁을 꼽으면서 우리네 지역감정과 비교해볼 때 유사한 난국이 아닌가, 시급히 극복해야할 과제임을 첨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원글에서는 시종일관 위기 탈출수단으로서 신법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이 신법의 의도가 구법파로 지칭되는 기존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 때문에 훼손되고 좌초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허나 필자는 이에 의문을 던지고자 한다. 왕안석의 신법은 진정한 개혁이었는가? 그리고 북송의 문제를 해결할 올바른 방향을 짚었던가? 신법이 좌초된 책임을 기득권층들의 반동에만 전가할 수 있는가?

신법이 필요하게 된 신종조 북송상황을 이해하려면 멀리 5대 10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중국은 당의 멸망 이후 국가가 찢겨져 여러 작은 나라들이 반세기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계속 세워졌다 사라지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기는 통일된 국가를 지향하는 범 중화권 시각에서야 암울한 시기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사회 하부로 보면 꼭 그러했던 것만은 아니다. 유럽에서 고만고만한 여러 나라들이 할거하면서 절대권력의 권위가 먹히지 않던 것이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상공업의 발전을 촉진했듯이, 5대 10국의 느슨한 체제는 상공업 발전의 큰 기틀이 되었다. 소국으로 쪼개진 나라들은 각자 먹고 살길 확보를 위해 특산물을 개발하고 무역을 장려했던 것이다.

거기에 북송의 시조인 조광윤은 군인 출신으로 나름대로 합리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군주였다. 조광윤은 이러한 경제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오늘날로 말하면 통화팽창정책을 시행하였다. 북송은 태조 시절부터 통화공급에 열을 올려서 동전만도 500만 관이 넘게 공급을 이뤄냈다. 이것은 후대 명조 시기 전체에 걸친 통화공급보다 많은 양인데, 북송은 이것을 태조 재임기에 투입하여 전 근대적이나마 경기진작을 이뤄내었다. 그 결과 북송 초기의 세수는 기록적일 정도였고 수도 개봉(開封)에 축적된 자본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북송은 근대적인 사회 발전에 필요한 경제력 확보에서 대단히 시대를 앞서간 국가였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에서 흘러나온 잉여자본이 서구와 같이 신흥 부르주아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황실과 전 국가적인 관료조직으로 모여 정체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북송체제가 안정이 되면서 중국의 고질적인 병폐, 즉 과도한 중앙집권체제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쟁이 아니라 안정화된 권력층에 빌붙어서 독점적인 경제력을 유지하는 거상들이 출현하였으며 이들은 나아가 대규모 농지를 장악하고 일반 농민으로부터 전대를 수취하여 이중으로 살을 찌웠다. 부의 독점화와 관료집단의 부패가 얽히면서 국가의 세수는 줄고 국방력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참고로 북송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었기에 거란과의 관계가 악화된 이후 국방비 부담이 매우 컸다.)

신종과 왕안석의 신법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개혁안이었다. 당시 왕안석이 착안한 점은 세수증대를 위해서는 극단화된 경제 질서를 바로잡고 건전한 중간계층 — 중소농민, 중소상인 — 을 육성해야한다는 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건강한 중산층이 많아야 한다는 점이 경제 개혁의 이슈가 되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초기 실시한 것이 유명한 청묘법(靑苗法)인데, 상평창이 가진 1400만 전의 자본을 저리(연 20%)에 농민에게 공급하여 소수 호상에게 집중된 돈줄을 틔운다는 아이디어였다. 이를 도시 중소상인들에게 실시한 것이 시역법(市易法)이고, 종래 강제동원 노역을 노동력으로 활용하던 차역법을 개선하여 봉급을 지급하며 고용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 모역법(募役法)이었다. 모역법은 정부주도 공공사업을 통해 자본을 시중에 풀어내는 방법이었으니, 어찌보면 이 신법은 후대 케인즈 경제학과 통하는 맥락이 있었다.

얼핏 보아 왕안석의 신법이야말로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뤄낸 선구적인 개혁안이라고 평가되는 것도 이러한 점들 때문이다. 상업자본이 대거축적된 북송대에 이렇듯 교묘하게 자본흐름을 이용한 정책이 나온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일부나마 본질을 짚어내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놀라웠다.

그러나 신법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왕안석과 신법파는 케인즈와는 달리 자본주의와는 한참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신법파라 해도 결국 유교적 교육을 받은 관료집단이었으며, 이들의 경제 지식은 일천한 수준이어 신법이 서기 위한 바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이들의 방법론은 경제 전체가 화폐경제로 이행되고 근대적 시장경제가 확립된 바탕에서 쓸 수 있는 방법론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를테면, 청묘법이 유효하려면 일반 농민들에게 자본수요가 있어야 했는데 당대 농민들에게 돈을 쥐어줘봤자 쓸모가 없었다. 구매력있는 소비주체로서 키워진 농민이 아니라 단순한 생산수단으로서의 농민이었으므로 수요라고는 악랄한 지주의 고리지대 납부를 위한 정도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는 새로운 관제 가렴주구 수단이 되어버렸다. 관청에서 강제로 농민에게 돈을 떠맡기고서 농민들은 돈을 쓰고 굴리는 법도 모르다가 애꿎은 이자만 물어야 했다. 이는 신법의 효과가 비교적 상업이 발달한 도시 주변에서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곳곳에서 좌초된 원인이기도 했다.

또한 북송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초기부터 화폐 공급을 늘였는데, 적절한 통화정책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이후엔 악수를 거듭하게 된다. 계속 중국식 관료주의에 경직되어 침체로 치닫는 경제 하에서 국방비 조달을 위해 통화공급을 늘이는 수밖에 없었는데, 북송은 이를 위해 최첨단(?)의 지폐까지 발행한다. 하지만 역사가 어찌 그리 똑같은지 태환성이 철저히 보장되지 않은 불환지폐 남발은 두고두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부작용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프랑스 혁명기의 아시냐나 미국 남북전쟁기의 그린백과 같이.

서구처럼 민간부문에서 금융업이 성장해간 것이 아니라 관 주도로 금융업을 치루다보니 모럴 헤저드가 극심했으며, 화폐경제-시장경제를 떠받치는 신용질서가 제대로 유지되기 힘들었다. 민간에서 신용질서를 위반하는 자가 나오면 사법기능과 시장 자체의 기능으로 퇴출이 가능하겠지만, 관이 앞장서 돈 떼먹고 신용은 나몰라라 하면 금융질서가 유지될리가 만무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험이 일천한 서민들에게 화폐경제를 강요해 놓고 막상 국가가 통화관리를 엉망으로 하였을 때 일어나는 폐해가 얼마나 큰지는 경제학 지식이 쌓인 오늘날엔 경제 교과서들을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북송의 신법은 경직된 경제체제를 뚫어보겠다고 자본 공급의 색다른 활로를 열었으나, 낙후된 사회체제 때문에 수요 진작에는 실패하고 상업부문에서는 신용불안을 초래했으며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영세농민의 몰락은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북송대의 이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심화가 되어 금나라에 이르면 무려 6000만 배에 이르는 통화증발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경제정책 실패로 모병제로는 국방의 한계가 드러나자 국민개병 개념을 다시 도입하여 보갑법(保甲法)-보마법(保馬法)을 실시하였는데, 이것은 이미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층의 부담을 증가시켰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개혁의 방향은 옳은 길이고, 신법은 민중을 잘 살게 하는 길이라고 끌고 가는 것 또한 무리였다.

그리고, 원글의 저자는 왕안석이 신법을 추진한 기간이 무슨 성과를 내기엔 너무 짧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왕안석이 직접 집정한 시기 8년뿐 아니라 휘종조까지 이어진 신법파의 25년 집권기는 당대의 집권자들이 정책을 밀어준 상당한 시간이었다. 신법이 진정 단명했다면, 어찌 신법을 추종하는 세력이 파당을 이루고 그토록 세를 떨칠 수 있었겠는가? 신법이 결국 폐지되고 구법으로 돌아간 것은, 개혁의 방향이 옳았는데 신법파가 뜻을 펼칠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개혁의 방향과 방법 자체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법파는 애시당초 경제 측면에서 세수확대라는 목표에서 출발했고, 신민을 세공에 필요한 효율적인 생산수단으로 육성하는데 치우쳤다. 민중의 자유와 민권을 보장하여 근대적 시장경제로 나갈 수 있는 길은 꼭꼭 막아놓은채 추진한 신법은 오히려 민중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사회구조의 기반이 닦여있지 않은 상황에서 신법의 추진은 100%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미 사학계에서는 많이 지적되는 사실이다. 이것은 중국이 왜 자발적 근대화에 실패했는가와도 연관이 있는데, 이미 진나라 시대부터 거대통일국가로의 경험과 꽉 짜여진 중앙집권 관료주의에 얽매인 바탕에서 개개인이 경제주체로서 행동하는 시민계급으로의 발전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거기다가 신법파는 왕안석 이후 제대로 된 개혁정신을 가진 걸출한 인재 또한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 왕안석이 집권을 하자 정권에 빌붙어 출세하려는 인물들 또한 신법파에 많이 끼여들었으며, 시간이 지나자 개혁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처신에 능하고 신법으로 위장한 소인배들이 들끓기도 했다. 신법의 몰락은 신법파 스스로 퇴락해서 벌어진 문제가 실로 크다.

물론 그랬다고 구법이 옳았다는 것을 설파하려는 것은 아니다. 구법은 말그대로 개혁의 의지조차도 박약했기 때문에 구법으로의 회귀는 북송의 참담한 말로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신법으로 피폐해진 농민층은 구법의 체제 하에서 더 이상 희망도 없이 퇴락해갔으며, 북송은 결국 거란의 기세마저 무너뜨린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패망하고 만다.

그래서 필자가 위와 같이 신법의 역사를 보며 얻은 교훈은 사뭇 다르다.

첫째로, 개혁은 그 이름만으로 만능의 수단은 아니다. 개혁이란 이름을 거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자기검증에 소홀히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독선에 빠질 위험도 대단히 크다. 왕안석과 같은 이들에게 화폐경제의 본질 일부를 파악하는 능력은 있었으나, 범 국가적인 정책으로 시행하기 이전에 선결할 전제 조건이 무언지는 알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해악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인지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왕안석은 대학자요 나름대로의 투철한 의식을 지닌 인물이었음에도 말이다.

불행하게도 아무리 역사를 들여다본들 어떻게 하면 올바른 개혁이 될 수 있는지 정답은 없다. 지금 제각기 후보들이 (심지어 이회창까지도) 개혁이란 이름으로 갖가지 주장을 해대고 있지만 어느 하나 후보 이름만 믿고 넘기기엔 위험천만한 것들이 곳곳에 눈에 밟힌다. 누구에게건 항상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봐야한다. 이회창 진영에서 나왔다고, 혹은 노무현 진영에서 나왔다고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양측 모두 세련된 정책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사회라면 열심히 비판도 하고 의견도 나눠가며 검증을 열심히 해야한다. 막연한 기대로 이회창 만세, 정몽준 멋쟁이, 노무현은 달라~ 외치느니 주사위 던져 투표하는 것이 더 이로울지 모른다.

둘째로, 개혁이란 이름도 훼손되는건 한 순간이다. 신법파는 왕안석 이래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재에 주도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권력지향적인 파벌로 변질되었다. 이들의 출신 성분은 대개 구체제에서 억압받던 미천한 계층에서 올라온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의 목적은 진정한 민생보국보다는 정권 교체의 혼란기를 틈타 울분을 풀고 나도 한몫 잡겠다는 식이 많았으며 결과적으로 후기 신법파는 개혁이 무색하게 타락한 소인배들로 넘쳐났다. (마치 요새 민주당 일부 바이러스들이 생각나지 않는가?)

글의 원래 발단이 노무현의 경제 브레인 이야기 쪽이었던데, 참고로 필자는 노무현 지지자라면 한가하게 집권해서 구해 쓰면 되겠지……라는 생각일랑은 버려야한다고 생각한다. 집권해서 구해쓴다고 한다면 대부분 몰려드는 것은 의기의 지사가 아니라 시대를 두고 끊임없이 발견되는, 출세욕에 불타 사탕발림에 열을 올리는 권영해니 최규선 같은 아첨꾼들일 확률이 크다. 진정한 개혁가라면 오랜 시간에 걸쳐 인재를 모으고 많은 교감을 나누는 준비가 필요하다. 집권하고서 당장 일해야 하는데 팀웍이 맞지 않아 서로 삐걱거리기에는 5년이란 시간은 짧다.

조중동 때문에 개혁이 안 굴러가고 인재 발탁이 안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개혁을 해내려면 거꾸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열세의 개혁세력이 성공하려면 애초부터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 놀리는 사람에게야 그때그때 비난하는 것으로 직성이 풀릴지 모르겠지만, 집권하겠단 세력이라면 조중동 때문에 만사가 안된다고 하기 전에 그러면 조중동의 방해를 어떻게 피해나갈 것인지부터 강구해야 한다. 인사에 관한한 카드를 충분히 준비해놓고 예기치 않은 반대파의 공세에 맞춰 주도적으로 쓸 수가 있어야지, 상대편이 한 두번 공격했다고 해서 밑천을 드러낼 수준이라면 더욱 반대는 거세지게 마련이다. 세상이 옛날처럼 한촌에 제갈량이 숨어있을만큼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막연히 어디 인재가 있을거야……라는 기대를 하는 것이 기득권층에게 끌려다니는 첩경임은 분명하다.

왕안석의 신법파가 타락한 것을 당쟁의 소산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애시당초 왕안석이 당을 만들어 입각한 것이 아니라 입각을 하고서 쉽게 사람을 끌어썼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필자는 그래서 오늘날도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없는 한 어느 후보가 되어도 기대하는 만큼의 사회개조는 당장 이뤄내지 못하리라 본다. 평시부터 충분히 의식을 공유하면서 참여의 토대가 되어주는 지지층이 없는 마당에 근본 개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개혁국민정당의 열기도 3만 당원의 모집에서 정체되고 있는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대략 통계적으로 봐도 성숙된 이념정당이 유지가 되면서 정책방향을 원활히 주도하려면 적극적인 당원이 정당별로 인구의 0.5~1% 이상은 되면서 강력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한국의 실정에서 최소 20만은 필요하다.)

한나라당이 첨에는 비교적 참신한 이회창이란 인물을 끌어들여 나름대로 일신을 바꿔보겠다고 했으나 결국에 진정한 지지핵심세력이 없어서 저런 잡탕 기회주의자들이 득시글하듯이, 아무리 노무현이라고 해도 이처럼 미약한 기반으로 국민의 막연한 개혁기대만 의지해 나아간다면 집권한다고 해도 정치 파리떼를 쫓아내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아마 이 문제는 정몽준이 집권하게 된다면 가장 심각하게 발생할 문제일 것이다.

이제껏 너무 역사 속에서 개혁의 암울한 면을 강조했는가? 그렇다고 한탄할 필요 또한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북송이라는 시기는 중국의 고질적인 관료주의의 폐해에 얽매인데다 북으로는 거란이라는 외적이 버티고 있던 시기였으니 왕안석의 힘으로 돌려놓기에는 이미 늦은 사회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아직도 정치문화가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역동성은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북송 신종조의 시기보다는 훨씬 세상을 바꿔내기가 쉬운 입지에 처해있다. 역사는 지금 어떠한 개혁방향이 정답인지 이야기해주지는 않지만 지금이 최소한 나름대로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할 시기임은 이야기 해주고 있다. 현대 한국 정치사의 노정은 아직 실망하기에는 너무 짧다.

단언컨대 이 나라 정치가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고 굴러가는 날은 노무현이 이회창이 정몽준이 대통령이 되는 날 그 어느 것도 아닐거다. 어느 정당이 되었건 선명한 민주적 정책정당이 50만 열성당원을 가지고 후보를 추대하고 당선을 시키는 그날이 한국 정치를 바꿔놓는 날이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말처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고 할 수 있는 개혁세력을 꿈꾸며.

…… 행동은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동은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지혜의 본질은 회피하는 것에 있는게 아니라 행동에 얽매임 없이 바르게 행동하는 가운데 정신의 숭고한 뜻을 파악하는데 있다……

— "Bhagavad Gita(भगवद्‌ गीता)" 에서

2008/03/30 17:30 2008/03/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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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민혁 2008/03/30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에 절대동감이올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6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결론이 먹히는 상태라는 거군요. -ㅅ-;

  2. 고전압  2008/03/30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와서 살펴보니 더더욱 감회가 새롭네요. DC 역사갤러리나 저희 학교 게시판 같은 곳에 퍼가도 될까요?

    (아, 인제보니 사정상 근시일 내에 퍼가진 못하겠네요;; )

    • Periskop 홈지기  2008/03/31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오래된 게시물이어서 어디 퍼나르기엔 부끄럽습니다. 다만 원칙상 제 게시물은 배너 달아놨듯이 CCL2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원저작자를 표시하고, 비영리 목적으로만 활용하고(애드센스 붙인 블로그도 자제바람), 변경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그리고 되도록 트랙백, 방명록 등을 활용하여 어디로 퍼 가셨는지를 알려 주십시오.

  3. dasleich 2008/03/30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껏 읽어왔던 채승병님 글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글입니다.
    왜 넷 상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본좌라고 회자되는지, 그 이유가 압축된 명문입니다.
    채승병님 같은 분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네요...
    평생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겠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3/31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윽,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즐비한 논객들 앞에 명함이나 내밀 수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2002년에 쓴 글이 가장 맘에 드셨다니 그 동안 5년 반 동안 글솜씨가 퇴보하지 않았나 심히 걱정입니다. =_=

  4. 길 잃은 어린양 2008/03/31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차분하고 논리적인 전개가 일품입니다.

    저는 저 때 노무현 후보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에 냉소적인 조롱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건설적인 비판은 전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정치에 대해 생산적인 태도를 가져보려고 하긴 하는데 아직도 기껏해야 '투표 당일 기권하지 맙시다' 정도에 그치고 있어 아쉽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의 건달 기질이 쉽게 가시질 않으니 한동안은 계속해서 냉소적인 농담이나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3/31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가까운 주변 동료들 가운데 워낙 노사모에 열성적인 이들이 많았는지라 냉소적으로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 깔끔하게 주관을 지키며 순수한 열의를 보여줬던 이들에게는 지금도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 저도 예나 지금이나 특정 정치인에게 열광하며 그에 맞춰 세상을 비틀어 사고하는 자세를 혐오하기에, 간혹 독립적 사고주체로의 정신줄을 놓아버린 듯한 소수의 행태는 퍽이나 참기 힘들더군요.

  5. dcafe 2008/04/01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건 아직 모르겠고 (회사라서...) "유럽에서 고만고만한 여러 나라들이 할거하면서 절대권력의 권위가 먹히지 않던 것이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상공업의 발전을 촉진"했다고 하기는 좀 곤란합니다. 옛 교과서에는 흔히 한자동맹을 상공업의 부활의 대표명사 격으로 사용했었지만, 실제 독일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것은 19세기나 되서야 얘기고, 한자동맹은 별로 기여하지 못했지요. 오히려 부르주와지들은 절대권력의 권위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필요했습니다. 귀족보다 하층민이었던 그들의 지위가 상승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부분은 좀 옥의 티인듯..........후다닥...~

    • Periskop 홈지기 2008/04/01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저게 6년 전에 쓴 글이다보니 틀린 부분이 여럿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고쳐놓는 것보다는 냅두고 다른 분들의 지적을 받는게 온당한 것 같아서 사소한 오타만 고쳐서 올렸습니다. 글에 다른 문제가 있거나 대의에 공감하지 않으시면 또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6. 양성민 2008/04/01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과는 무관한 질문 2번째입니다. Korück, Höheres Kommando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간략하게나마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01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Korück(Kommandant rückwärtiges Armeegebiet)은 야전군이 담당하는 전선 후방지역 위수업무를 담당하는 별도의 지휘부입니다. 전방 야전군이 군사작전 관련 업무에 집중하고, 나머지 후방의 보안, 민정, 보급 등의 제반 군정업무를 Korück이 처리했습니다. Höheres Kommando는 대개 원래 대전 이전의 Grenzschutz-Abschnittkommando, 즉 국경수비대 지휘부였습니다. 야전부대 말고 국경수비부대를 모아서 통괄하고 있었는데, 대전이 발발하면서 기존 국경이 의미없게 되거나 적군과 직접 대치하는 전선이 되어버려서 이름을 이렇게 바꾸고 특정 후방지역의 위수사령부 기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또 1942~43년 경에 일반 군단사령부로 전환되어 폐지됩니다. 그러다 1944년이 되면 일부 지역에서 다시 부활되기도 하죠.

    • 양성민 2008/04/0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친절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7. ssn688 2008/04/03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부 93학번 연령인 본햏 기억으론, 고교에서 배웠던 세계사 교과서에서 신법 부분을 단 1줄로 처리했는데, "개혁을 시도했으나 반발로 좌절..."이란 내용이라서 은연중에 "신법=송나라 부흥의 방책=좋은 것 vs 구법=보수반동=비애국"이란 도식을 조장하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세계사 선생님께서 보마법이 얼마나 삽질인가를 예시해주셔서(군마로도 쓸모가 없고 농민 부담만 드는) 신-구법당의 대결이 가치판단을 내리기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구나...하는 어렴풋한 감을 가진 채로 넘어갔는데, 경제구조의 측면에서 바라본 본격적인 해설을 보니 놀랍습니다. @.@
    조정에 출사한 송대 신유학파(장횡거, 이정, 주희)는 구법당 인사로 분류됩니다만, 정전제와 같은 '옛 법도'에 근거해서 토지균분이나 환곡제도 개선을 통한 (절대다수가 농민인)민생안정을 주장했는데, 송대의 경제현실을 보면 이게 더 타당했을지 모르겠네요. 물론 이미 토지를 과점한 기득권층을 달래든 강제하든 움직이게 할 방안을 강구하는 문제에 이르면 할 말이 없어지겠습니다만.

  8. ssn688 2008/04/03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절대권력의 권위가 먹히지 않던 것이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상공업의 발전을 촉진" 이것은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서도 본 듯한 시각인데, 본햏이 폴 케네디를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절대권력'이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상공업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지의 여부는 그 권력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중세 봉건제를 거치고 난 뒤의 서양이라면 "동네마다 제각각"인 사회구조를 최소한 (대부분 민족단위 국가로 가는)'국가 범위'로 통합하는 절대권위가 상공업 발전에도 유익했겠지만,
    하나의 '문명권 범위'(중국이나 무굴제국)에서의 절대권력이라면...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할거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문명권에 비해서 부강함을 향한 발전을 촉진하는 압박이 덜할 것 같습니다.

  9. 별마 2008/05/01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굉장히 해박하시네요. 덜덜덜.. 근대 님의 문장에 약간 의문이 있어서 몇 가지 여쭤볼려고 합니다. 우선 5대10국 체제를 기존 중국의 중앙집권체제에 비해 많이 중앙집권이 약화된 국가라고 설명하셨는데 근거를 조금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리고 송대 신법의 고민은 사실 조선후기 지식인 일반의 고민과 유사한 거 같습니다. 송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조선 후기 지식인 일반이 강조했던 개혁방안은 (물론 편차가 심하지만) 대체로 국가중심의 경제 건설이었다고 보여지네요. 그것은 조선 후기 나타났던 토지의 집중화 현상(이른바 광작이라고 하죠)에 의한 일반국민(국민이라는 용어는 참 맘에 안드네요)의 생활기반 상실이 조선후기 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조일전쟁 기간 유입된 은화(대략 삼백만냥 정도라고 하네요)를 기반으로 형성된 화폐경제는 거의 국가의 통제권에서 벗어났는데 이로 인해 전란(돈난리^^)이 심각했었습니다. 국가 기본 산업인 농업이 이상화되고 상업으로 인해 농민들이 농촌을 이탈하는 상황을 보고 유형원이나 이익 같은 이들(흔히 중농학자라고 하지만 사실 중농학자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은 국가를 매개로 한 경제구조 재건을 주장합니다. 제가 왕안석의 신법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해서 조선후기 사회와 연관지어 생각했기 때문에 논리적 비약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님의 글을 읽고 송대 왕안석이 느꼈던 문제점과 조선후기 지식인 일반(실학자라는 표현은 잠시 제쳐두죠)이 느꼈던 문제점의 유사성과 대안(해결책)의 유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왕안석과 비슷하게 조선후기 지식인 일반 역시 정치에 상대적 소수(극소수라고 보기는 힘들죠)를 점하면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고 본다면(볼 수 있을까요?^^) 조선후기 지식인의 개혁 정책이 좌절된 것도 왕안석의 좌절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이 너무 난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우실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근데 알고보니 대단하신 분이시더군요.. 글쓰면서 눈팅하다 알게 됐습니다. 자주 블로그 방문하면서 고견을 많이 듣고 싶어집니다.

  10. 일화 2008/05/02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미흡하나마 동일한 주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고, 노무현의 정책과의 연계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서 매우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제가 생각한 태생적인 문제점은 왕안석이 신종에게 자신의 정책을 세일즈할 때 원 목표와는 달리 군사력강화라는 목표에도 신법이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청묘법이 강제적으로 바뀌고, 보갑법이 중시된 주된 원인이 바로 신종의 군사적 야심을 위한 개혁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국가권력과 자본주의의 발달에 대해서는 유럽의 절대왕정 수준이 적당하다는 것이 세계체제이론의 주된 주장인 듯 합니다. 중국의 역사에 적용시키면 춘추전국과 5대10국이 이에 해당하고 바로 뒤를 잇는 전한과 북송대 화폐경제가 상당히 발전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서양을 포괄하는 이론으로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저의 짧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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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참평포럼 상임집행위원장 안희정 씨의 발언으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sonnet 님기린아 님의 글을 보고 떠오르는 바 있어 적어 놓고자 한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이해할 때 링컨을 종종 떠올리고는 한다. 링컨 이야기를 읽으며 대통령의 꿈을 꾸었다는 일화도 있고, 자신이 직접 링컨에 대한 책까지 썼으니 말이다. 그만한 애정이면 행동과 생각 구석구석 링컨에 대한 이미지가 박혀있고, 그것을 자신에 대한 다짐으로 종종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최근 노 대통령의 행보에서는 링컨의 유명한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올랐다:

"…… I did understand however, that my oath to preserve the constitution to the best of my ability, imposed upon me the duty of preserving, by every indispensable means, that government – that nation – of which that constitution was the organic law. Was it possible to lose the nation, and yet preserve the constitution? By general law life and limb must be protected; yet often a limb must be amputated to save a life; but a life is never wisely given to save a limb. I felt that measures, otherwise unconstitutional, might become lawful, by becoming indispensable to the preservation of the constitution, through the preservation of the nation. ……"

"…… 나라를 잃으면서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가당합니까? 일반적인 법에 의한다면 목숨과 사지(四肢)는 모두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종 목숨을 살리기 위해 사지 하나를 절단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지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포기하는 법은 없습니다. 나는 그 조치들이 국가를 수호하고, 따라서 헌법을 수호하는데 필수 불가결하므로 일면 헌법에 맞지 않더라도 합법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 1864년 4월 4일, 링컨이 하지스(Albert G. Hodges)에게 보낸 서신에서

당시 링컨은 미국내전(남북전쟁)을 치루면서 적절한 의회의 동의 없이 인신보호법의 무력화, 예산 낭비, 강제 징병 등을 초래한 것에 대해 비난여론에 시달리고 있었다 — 남부 지지자라는 이유로 18,000명의 시민을 불법 격리 구금시키기도 했다. 이 서신은 그러한 비난들에 대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내용이다. 그는 여기서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매우 확대해석하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의 최근의 언동 속에서도 이런 링컨의 잔상이 느껴졌다면 필자가 매우 과민한 것일까? 자신의 발언이 현행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에서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의 더 큰 가치로 인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듯 하다. 링컨에게 연방 수호를 위협하는 적이 남부 분리주의자들이었다면, 노 대통령에게는 '수구' 언론이나 한나라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직껏 (일반적으로) 칭송되고 있는 링컨처럼 대한민국사에 자리매김하려는 욕구가 숨어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링컨을 상기하며 국정을 운영한 또 다른 분이 계셨다:

F: …… you stated, quote, "It's quite obvious that there are certain inherently government activities, which, if undertaken by the sovereign in protection of the interests of the nation's security are lawful, but which if undertaken by private persons, are not." What, at root, did you have in mind there?

F: …… 이런 말씀을 하셨었죠, 읽어드리자면, "정권이 국가 안보의 이익 수호를 위해 하면 합법이고, 개인이 하면 불법인, 분명한 정부 고유의 활동들이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근본적으로 무엇을 염두해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N: Well, what I, at root I had in mind I think was perhaps much better stated by Lincoln during the War between the States. Lincoln said, and I think I can remember the quote almost exactly, he said, "Actions which otherwise would be unconstitutional, could become lawful if undertaken for the purpose of preserving the Constitution and the Nation."

Now that's the kind of action I'm referring to. Of course in Lincoln's case it was the survival of the Union in wartime, it's the defense of the nation and, who knows, perhaps the survival of the nation.

N: 음, 제가 본질적으로 염두해둔 것은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에 남긴 말이 훨씬 더 잘 설명할 것 같군요. 제가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여깁니다만,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르게라면 헌법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도 헌법과 국가 수호를 위한 목적으로 행해졌다면 합법화될 수 있다."

그것들은 제가 언급하고 있는 종류의 행동들입니다. 물론 링컨의 경우는 전시에 연방의 존립의 문제였지만, (제 경우에는) 국가 방위의 문제였고, 또 누가 알겠냐만 아마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F: But there was no comparison was there, between the situation you faced and the situation Lincoln faced, for instance?

F: 하지만 각하가 직면한 상황과 링컨이 직면했던 상황을 비교했던 적은 없었는데요. 예를 들자면 뭡니까?

N: This nation was torn apart in an ideological way by the war in Vietnam, as much as the Civil War tore apart the nation when Lincoln was president. ……

N: 이 나라는 링컨이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를 갈라놓은 남북전쟁 만큼이나 베트남전으로 인해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

— 1977년 5월 20일자 뉴욕 타임즈에 실린 닉슨 전 대통령(N)과 데이빗 프로스트(F)의 인터뷰

필자는 노 대통령이 나름의 신념과 능력도 있고, 국정을 잘 끌어가려는 선의와 노력도 강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한계가 답답하다고 이런 식으로 무리한 승부수를 계속 걸면서 개혁의 추진력을 소진하고 일부 지지자들만 열광하게 만드는 일련의 처사에는 개탄할 수밖에 없다. 링컨의 그림자를 쫓으며 지역주의 타파와 언론개혁을 부르짖는 노 대통령의 마지막 발걸음이 과연 링컨과 닉슨 사이의 스펙트럼 가운데 어디쯤에 놓일지, 필자로서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일 따름이다.

2007/06/21 14:41 2007/06/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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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보이반 2007/06/21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간조선에 조갑제 영감님께서 링컨의 저 고사를 인용하며 "국군이여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기위해 (빨갱이 노무현일당을 때려잡는)행동에 나서라!"고 쓰신걸 보면 노짱과 갑제횽아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링컨 대통령은 대인배를 넘어 마성의 X이가 틀림없습니다.

  2. shrike 2007/06/22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컴퓨터가 국가라면.. os가 헌법이겠죠.

    만약 윈도우가 다운되어 정상종료가 불가능해졌다면 os를 무시하는 하드웨어적인 강제리셋도 불가피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급적이면 정상적으로 셧다운을 하는게 좋겠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느정도 하드웨어적인 무리가 따르더라도 리셋을 하고 os를 갈아엎을수 있는것이라 생각됩니다.

    너무 단순한 생각일까요? ^^;

  3. 玄武 2007/06/22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그 컴퓨터가 개인컴이 아니라 공용컴이라는 거죠. 단지 한 사람의 판단으로 OS를 갈아엎겠다는건 권한남용일뿐이지요.

  4. 바보이반 2007/06/22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rike님의 논리라면 5.16 과 12.12도 주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OS를 무시한 강제종료및 OS 재설치가되죠.

  5. 켈베로스 2007/06/22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 대통령...... 아무래도 믿었던 사람들이 당을 깨부수고 나가겠다고 하니, 이대로는 자신이 실패 대통령으로 남지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좀 무리수를 많이 두네요.

  6. 번3 2007/06/23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rike님// (이번 일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shrike님의 댓글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헌법의 강제 리셋이라...그것이 정치적이나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신지.

  7. Lawlite 2007/06/24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헌법학에서 이야기하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OS를 재설치해도 된다는 논리 덕분에(바이마르 헌법의 기본 틀이라고 할까요) 히틀러와 나치가 집권해서 그 난리를 칠 수 있었죠. 종전 후 서독 헌법에서는 이걸 교훈삼아 방어적 민주주의라든가, 최고 권력관계의 규율을 새로이 하는 등 여러 불가침적인 헌법 조항들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한국 헌법 역시 이와 거의 유사하고요. 헌법이란, 함부로 지웠다 다시 까는 게 아닙니다. 그냥 대한민국이 아닌 새로운 나라를 현재의 국체를 뒤엎어서 만들자고 하는 게 빠르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엄밀히 말해 헌법학적으로는 역대의 독재 헌법들 역시 헌법의 개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8. shrike 2007/06/26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럼 os 를 정권.
    bios를 헌법에 비유하는게 좀더 걸맞을듯 싶군요. 한때 메인보드 롬바이오스가 플래쉬롬을 사용하며 이것을 sw적으로 통제할수 있도록 만들자 이것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바이러스가 출현해 홍역을 격은일이 있었죠.

    그 뒤로 메인보드 cmos 셋업메뉴에 bios Protect 항목이 새로 생겨서 sw적인 라이팅 여부를 bios 차원에서 결정해 스스로를 보호시킬수 있는 기능이 생겨났죠. Lawlite 님의 말씀을 보니.. 여기에 비유하는게 더 걸맞겠다 싶어집니다. ^^

    (예전 롬바이오스 잡아먹는 바이러스 파동때.. 등장한 해결책은 메인보드상의 바이오스 플래쉬롬을 직접 뽑아내어 멀쩡한 다른 롬으로 바꾸는 것이었죠. 번거롭긴 하지만 시스템이나 메인보드를 새로 구입하는것보다는 훨씬 저렴했기에 이렇게 해결하곤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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