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 2년 동안 죠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등의 저작이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도 '프레임' 담론이 제법 퍼진 듯하다. '프레임'은 간단히 '생각의 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인간은 항상 사물과 현상을 인지함에 있어, 기존에 축적된 지식과 사고체계에 근거하여 받아들이려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반복되는 인지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견고한 생각의 틀을 형성하게 되고, 새로운 사물과 현상을 맞닥뜨렸을 때도 이 틀에 맞춰 받아들인다.
레이코프의 책 가운데 현실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시사성으로 꽤나 읽힌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Don't Think of an Elephant!)』에는 증세/감세 문제를 받아들이는 '프레임'의 사례를 들고 있다. 현 부시 정부는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이것을 단순한 감세(tax cut)라고 표현하지 않고,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표현을 썼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쉽사리 그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감세 문제를 '구제(relief)' 가 갖는 긍정적 의미에 엮으려는 의도이다. 우리는 '빈민 구제'라는 맥락을 계속 인지해오며, '구제는 좋은 것'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감세를 이 프레임에 맞춰 받아들이면서 '감세는 좋은 것'이라는 프레임을 발전시키게 된다. 감성과 이성이 결합되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세금 폭탄'론이 퍼지면서 '종부세는 나쁜 것'이라는 프레임을 확산시킨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역사의 접근에서도 은연 중 많이 쓰이게 된다. 변화를 추동하는 거시 구조적 동력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지만, 역사적 순간마다 상황의 인지와 행동을 이끌어 낸 미시적 '프레임'도 핵심적인 연구 대상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들도, 당대의 시각, 당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프레임'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전쟁사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전쟁의 각 장면마다 등장하는 각국 인물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났고, 그들의 감성과도 강하게 밀착된 '프레임'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니 처음 군사사에 입문해서 뻘소리(?) 같은 의문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설사 내공이 조금 쌓였다고 해도 '프레임'에 대한 오해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정보를 얻은 역사책도 결국에는 각 역사가가 여러 자료를 각자의 '프레임'에 맞춰 해석하고 투영했다는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드워드 카(E. H. Carr)의 이야기까지 새삼스레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사를 이해함에 있어 필수적인 '프레임'은 무엇일까? 특히 많은 대전사 팬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마련인 독일군에 대한 프레임은? 이에 대한 해답을 고집스럽게 하나의 맥락에서 찾고자 하는 이가 있으니 Eastern Michigan 대학의 로버트 시티노(R. M. Citino) 교수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행동 이면의 동인을 프로이센군 이래의 독일 고유의 군사적 전통에서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에 활약한 고위 독일군 지휘관들은 상당수 구체제(독일제국)에서 독일적 개성이 강한 교육을 받아왔고, 독일 군사사의 전훈을 통해 당대의 전쟁을 바라보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저작들에 대해서는 이미 홈지기도 「전격전의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 독일 국방군의 종말 | ![]() 그리고 그 전작 |
그런 일련의 연작 속에서 궁극의 의문, 즉 독일 국방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게 된 원인을 찾는 책이 『Death of the Wehrmacht: The German Campaigns of 1942』이다. 제목에서도 묻어나듯 1942년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전환의 해였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의 처참한 실패를 딛고, 독일군은 1942년 5월 케르치 반도와 이쥼 돌출부에서 대승리를 얻어냈다. 비슷한 시기, 북아프리카에서는 가잘라 방어선을 우회하여 마침내 토브룩을 장악했다. 이 여세를 몰아 러시아전선에서는 캅카스 유전지대를 향해, 북아프리카에서는 카이로와 수에즈 운하를 향해 진격했으나, 결국 이 모든 노력은 스탈린그라드, 테레크 강, 엘알라메인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1942년 겨울, 독일군은 치명적인 반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전면적인 수세로 휩쓸리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정적인 고비에서 조금 더 유연한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왜 독일군은 고집스럽게 파탄의 길로 들어섰을까?
이 책은 그 원인을 독일군의 뿌리 깊은 프레임, 즉 '기동전(Bewegungskrieg)' 프레임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Bewegungskrieg'은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가 전작 『The German Way of War』에서 설파했듯이, 독일은 프리드리히 대왕 이래 주변 강대국들과의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내선의 이점과 신속한 동원체제, 허를 찌르는 공격적 기동으로 신속하게 적을 연파하는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노력이 집약된 체계가 독일식 기동전이며, 2차 세계대전기 독일 지휘관들은 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종하려는 프레임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견지에서 시티노 교수는 토브룩 전투 이후 알람 할파를 거쳐 엘알라메인으로 내달린 롬멜의 행동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의 뼈아픈 경험으로 인해 당대 독일군 지휘관으로서는 진지전(Stellungskrieg)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확고한 프레임이 서 있었다. 그러므로 기동전 프레임에 맞추어 미약하게 열린 승리의 문을 기회로 받아들이며 과감히 밀어 젖히는 결정도 무리가 아니었다. 독일이 이전 많은 전쟁에서 그래왔듯이, 롬멜과 다른 지휘관들은 물량의 열세에서 앉아서 죽는 게임을 하느니 지휘관의 의지를 믿고 기동 속에서 승리를 찾는 선택에 나선 셈이다. 단적으로 롬멜 자신의 말에서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의 역전의 기병 지휘관으로 자이들릿츠와 치텐이 밟은 영광의 길을 쫓고자 했던 의중이 드러난다:
Die Zeit eins Seydlitz und Zieten ist wiedergekommen. Wir müssen den heutigen Krieg vom Kavallerie-Standpunkt sehen — Panzereinheiten wie Schwadronen führen. Befehle im fahrenden Panzer wie früher aus dem Sattel geben.
자이들릿츠와 치텐의 시대가 돌아왔다. 우리는 전쟁을 기병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 전차부대를 기병중대처럼 지휘하자. 말 안장 위에서 그랬듯이 움직이는 전차에서 명령을 내리자.
![]()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자이들릿츠와 | ![]() 한스 요아힘 폰 치텐 |
독일군은 결국 이런 작전술 차원의 기동전 추구가 전략적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그런 귀결을 가져온 역사를 자랑스러워했다. 2차 세계대전 초반부터 1942년 중반까지 이어온 성공은 그러한 영광스러운 역사의 재림인 듯 보였으며, 그들의 프레임을 한층 강화시켰다.
시티노 교수는 결국 이런 기동전 프레임에 대한 몰입이, 급속히 변화하는 전쟁 환경과 유리되면서 독일 국방군의 종말을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1942년 중반에 독일식 기동전의 놀라운 성공을 가져왔던 전장 환경은, 단 6개월 뒤에는 전혀 이질적인 곳으로 바뀌어 버렸다. 1942년 중반에 전개된 느시사냥 작전, 프리데리쿠스 작전, 테세우스 작전 환경은 측면과 배후의 기동공간과 함께 적을 포위할 수 있는 막다른 공간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독일군이 기동전의 파괴력을 극대화하고, 특유의 포위섬멸전을 끌어내기 극히 유리한 환경이었다. 반면 이후 돈 강 너머에 막다른 공간 없이 광막하게 뻗은 대지, 카타라 저지대에 가로막힌 회랑은 그들의 전쟁 수행방식의 이점을 모두 날려 버렸다.
독일군은 이 상황에서 다른 대안을 모색할 도리가 없었다. 독일식 기동전은 작전술 수준에서 매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나, 전략적 수준의 딜레마에 해답을 제시하기란 불가능했다. 애초부터 독일식 기동전은 독일 본토 주변의 작전술 규모 공간을 상정하고 발전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더 이상 기동전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국면에서 군부와 국가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 것인가? 우려했던대로 물량의 위력에 짓눌리고 결정적 활로를 찾지 못하는 전략적 한계에 부닥치며, 그들에게는 과거 속으로의 침잠 이외에는 달리 위안의 길이 없었다. 점점 독일 지휘관들은 전략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7년전쟁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운명을 강조했다. 표트르 3세의 갑작스러운 즉위가 7년전쟁의 급반전을 가져왔다는 과거는 "전쟁은 포기할 때만이 패배한 것"이라는 헛된 신념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히틀러의 전략적 오판에 종속되고 독일의 처참한 피해와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애시당초 독일은 전략적인 수준에서 1942년에 이만한 기동전의 도박을 벌릴 여유가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남부 러시아와 캅카스, 북아프리카의 광대한 전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전술 차원의 돌파구를 모색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롬멜이 설령 엘알라메인 회랑을 돌파해 알렉산드리아와 수에즈 운하에 도달했다고 해도, 미국과 인도의 지원을 업고 있던 영국의 전략적 우위를 확실히 반전시킬 카드가 되었을까?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를 장악하고 칼라치-스탈린그라드 일대에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했다고 한들 이를 얼마나 지켜낼 수 있었을까? 독일군은 한 가지 목표를 확실히 추구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작전술 차원의 우위에 기댄 채 무리한 공세에 나서 1942년의 파멸을 맞게 되었다. 결국 독일군의 전통은 '작전의 승리'에만 유효할 뿐, '전쟁의 승리'를 쟁취하는 수단으로서는 종언을 고한 것이었다. 이 시대적 의미를 깨닫지 못함으로써 독일 제3 제국 체제와 국방군은 패망했다.
이 『Death of the Wehrmacht』는 여러 책들에서 숱하게 다룬 1942년의 전쟁사를 잘 압축해 설명하면서도, Bewegungskrieg이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고자 하는 시티노 교수의 고민에 대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만큼 가볍게 책을 읽으면서 독일의 패배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게 만드는 데는 좋은 책인 것 같다. 단순히 1942년 동부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전개된 작전의 흐름에 대한 정보 차원이라면 부족한 책일 수 있겠으나, 이전에 이에 관한 내용을 숙지한 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을만한 책일 것이다. 특히나 『The German Way of War』를 읽어본 상태에서는 그런 기쁨을 더 크게 느끼리라 생각된다.
물론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당대 인물들의 행위를 일률적으로 독일적 전통의 프레임에 맞춰 보려는 시티노 교수의 시각이 좀 지나치다는 느낌도 남는다. 지난 번 『Hitlers Heerführer』를 소개하며 언급했듯이,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 지휘관의 인적 구성에는 프레임에 맞추기는 어려운 일단의 다양성도 존재했다. 독일군 총사령부와 각급 제대 사령부, 지휘관들 사이에 존재했던 팽팽한 이견과 긴장은 그저 사소한 것이었을까? 프레임에 매몰되다가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했던 많은 이들의 노력도 주목해야할 부분이 아닌가? 이것이 근본적 변화의 계기로 작동할 여지는 없었는가? 이러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채 진행되는 서술은 뭔가 구성상의 허술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기동전 프레임 중심의 해석도 한계는 있는 법이며, 이에 매몰되어 다른 요인들을 경시하는 위험은 경계하며 읽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프레임을 두루 읽기도 힘든 마당에, 머나먼 땅에서 과거에 있었던 프레임까지 생각하려니 참 쉽지 않은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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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격전의 전설에서 프리저 대령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죠 아마. 1941년 대소 개전 결의에 그런 독일식 기동전에 대한 맹신이 크게 작용했다는 식일 텐데... 분명히 어느 정도는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히틀러 탓이 아닐까 싶네요. -_-;
네, 맞습니다. "전격전의 전설"에도 작전술과 전략 수준에서의 전격전에 대한 이야기에 비슷한 언급이 있지요. 말씀하신대로 전략 수준의 고려에 대한 책임은 최고 통수권자인 히틀러에게 있으니, 가장 무거운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3 제국 시기에는 과거의 카이저와도 다른 총통(대통령 겸 수상)이라는 직위, 변화된 육군 참모본부의 위상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프레임으로 군부에게 과한 책임을 묻기 어려운 측면도 있고 말입니다. 다만 제3 제국의 전략수립에는 여전히 냉철한 정치외교 전문가들보다 군 수뇌부의 입김이 강했던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결론: 역사의 마이너스 손('ㅅ') 히틀러
마이너스 손……^^
역시 학자의 글은 막연했던 것을 명확하게 밝혀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하네요. 전략적으로 수세를 취해야 하거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공세를 선호하는 독일의 선택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프랑스전역 막바지 등과 같은 예외가 있고, 그런 예외들까지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현재까지의 인류지성으로는 아직 무리인듯 합니다. 복잡계이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요. (채승병님의 책에 재도전 중이기는 합니다만, 아직까지는 잘 와닿지가 않네요... ㅜ.ㅜ)
음음, 책 이야기를 하시니 빨리 다른 쉬운 개설서를 준비해야……=_=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책을 대략 100페이지 정도만 읽고 책장에 꽂아놨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빨리 마저 읽어야 겠군요.
그러고 보면 기동전에도 소모전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봤던 투하체프스키의 식견은 정말 탁월한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심각하게 생각해서 스탈린에게 욕을 얻어 먹은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요. 독일 군인들이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서 기동전에 몰입한 반면 소련 군인들은 어떻든 소모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부터 깨닫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아무래도 소련의 기동전 개념이 독일 보다 한 수 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치체제와 군사전략, 작전술 수준에 이르기까지 유기적 체계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소련의 프레임이 우월한 측면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만 독일군 행동에 대한 시티노 교수의 시도처럼, 대전기 소련군 지휘관들의 행동을 그런 프레임에 맞춰 설명하는게 가능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프레임...;;
일각에서 일정한 사고의 틀을 깨부수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42년의 승리가 독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는 이제까지의 관성을 이겨낼 수 없지 않았을까요.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시티노 교수는 2차 세계대전기 독일군의 패배를 바로 그 관성의 측면에서 귀결지으려 하는 것이지요. 돌이켜 보면 많은 체제와 조직이 그러한 관성에 휘말려 처참히 몰락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가운데도 가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성공한 경우들을 보면, 그게 단순히 우연이었는지 뭔가 변화의 열쇠를 읽은 혜안의 산물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