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행동'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4/17 치열해지는 교육 경쟁구도에 창조적 해결책이 존재할까? (23)

슬슬 직장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해서 오늘도 논제를 먼저 세우기 보다는 순명大帝(sonnet) 님의 글을 이어 쓰게 됨을 양해 바란다. 순명大帝 님은 '모델의 선택'이라는 블로그 글을 통해 '불난 극장 모델'을 한국의 대입경쟁을 설명하는데 도입해보자는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주셨다. 여기서는 과도한 경쟁이 오히려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며, 때로는 공권력이 이를 제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모델을 통해 설명하셨다.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는 한국의 대입경쟁을 고려함에 있어 이 문제가 꽤나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는 주장을 하셨다.

굳이 교육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불난 극장'처럼 위기 상황에서 군중들이 벌이는 비이성적 행동은 학술적으로도 꽤나 재미있는 현상이다. 특히 최근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이 발달하고, 학제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1990년대 말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재미있는 연구 결과들이 엄청나게 쏟아진 상태이다. 단적으로 순명大帝 님이 언급하신 바로 그 혼란의 탈출 상황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논문이 지난 2000년에 Nature(!)誌를 장식한 바 있다:

► 참고1 ⇒ Statistical physics: Following the crowd (Nature)
► 참고2 ⇒ Simulating dynamical features of escape panic (Nature)1

자세한 내용을 직접 보시기 힘든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만 설명하자. 이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은 단적으로 아래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How crowd behaviour affects escape from a smoke-filled room

How crowd behaviour affects escape from a smoke-filled room (from Nature)

경제학에서 논하는 합리적 주체, 즉 이성적으로 주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최적의 해법을 찾는 개인의 모습은 불난 극장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산산히 깨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급함에 쫓겨 독립적인 판단을 추구하기 보다는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 택하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쏠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평상시에 대충 큰 흐름에 묻어가다 보면 그만그만하게 생존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본능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어둡고 혼란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따라 한 군데 출구로 모이는 경향이 나타난다. 심지어 다른 출구가 존재하고, 그쪽 출구는 오히려 한가해서 생존 확률이 더 높은데도 말이다.

이렇게 한 군데 출구로 모인 군중은 급속도로 혼란으로 치달으면서 자기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조바심을 더욱 내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비이성적으로 돌변한다. 내가 먼저 살려는 생각으로 앞 사람을 계속 밀어 붙이다 보면 누군가 앞에서 넘어져서 크게 다치기도 하고, 가중된 압력으로 인해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져 그나마 출구에 가깝던 사람도 탈출이 더 느려진다 — 이를 clogging effect라고 한다. 위에서 링크한 연구는 이러한 개인들의 군중심리에 의한 비이성적 행동(herding behavior)을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규명해낸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러한 파국을 막으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순명大帝 님은 그 해결책으로 일반적인 공공 부문, 즉 공권력의 통제를 대안으로 고려했다. 군중의 돌출행동을 제압할 수 있는 공권력이 강제로 최적의 탈출로 제어한다는 개념이며, 이는 정부의 역할 강화를 주문하는 좌파 진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다. 교육문제로 비유하자면 사교육을 억제하고, 교육의 공공성, 평등성을 강화하자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취약하고,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그런 해법이 쉽게 가능하리라 보이는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 공권력에게 저 임무를 맡긴다면 아직도 분명 평소 혈연, 학연, 지연 등을 통해 알고 있던 사람부터 길을 열어주고, (정도가 약해졌긴 하지만) 권력과 재력 순으로 길을 열어주리라는 것을. 한국 사회는 공권력에게 위임하기에는 지극히 기반이 취약하고, 이에 대해 만인이 욕을 퍼붓는게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대안이라고는 공공 부문에 의지하자는 막연한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학제간 연구에서 다루는 저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다룬 모델들이 훌륭한 문제해결의 플랫폼이며, 기발한 아이디어의 실험대가 된다. 링크한 Nature의 논문이 나온 이후 해당 모델(과 그 변형)을 이용한 여러 해법들이 제시되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많은 이들에 의해 인용된 기발한 해결책 하나가 있다 — 바로 문 앞에 적당한 크기의 기둥을 하나 설치하는 것이다.

Evacuation

좁은 출구에서의 탈출. (a)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때 (b) 출구 앞에 기둥을 설치했을 때

얼핏 보면 전혀 상식과 맞지 않는 해결책이다. 있는 문을 빠져 나가기도 힘든데 문 앞에 장애물까지 설치하자니? 그러나 시뮬레이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 적당한 장애물을 통해 사람들은 좁은 출구로 나아가기 전에 순차적으로 걸러지는 효과가 나온다. 앞서의 문제가 출구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러붙어(clogging) 누구도 옴싹달싹 못하는 상황이 되는데 반해, 적당한 장애물은 사람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어 앞 사람들이 보다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결과적으로 극장 안의 사람들은 장애물이 없을 때보다 오히려 훨씬 빠르게 탈출할 수 있게 된다.

► 참고3 ⇒ Panic Dynamic (Catalyst, ABC1): 동물을 이용한 실험으로도 증명한 재밌는 방송

이것이 그냥 비현실적인 모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가? 이런 연구 성과들은 최근 대형 공연장 등의 설계에 꽤 활발히 적용되고 있으며, 걷잡을 수 없는 많은 군중의 질서유지에 꽤나 도움을 준다는 보고들이 저널에 지속적으로 실리고 있다. 그리고 Nature의 저 모델을 발표한 학자(D. Helbing)가 최근에 수행한 프로젝트는 하지(Hajj) 기간이면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메카의 구조개선 연구였다. Nature 등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그 연구는 분명 의미 있는 개선을 가져왔다. 이제껏 대형 공연장에 수많은 경찰을 배치하고 통제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들이 결정적 순간에 실패했던데 반해, 이런 기발한 구조적 장치 마련은 개개인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 참고4 ⇒ Crowd researchers make pilgrimage safer (Nature)
► 참고5 ⇒ Modeling Mecca's Crowds (Science)

다시 이것을 우리의 교육문제로 살짝 비틀어보자. 아주 위험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탈출구 앞에 기둥을 설치하는 해법은 우열반 활성화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리 우열반 등의 다양한 제도를 통해 각 경쟁 층위에서의 충돌을 분산시킴으로써 모두가 더 잘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 오해가 있을까봐 말하지만, 이게 꼭 맞는 비유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며, 실제의 해결책은 훨씬 복잡할 수도 있다. 중요한 시사점은, 이처럼 교육문제 같은 우리 현실 사회문제의 효과적 해법은 공공성 강화(左) 또는 일방적인 규제 완화(右)의 극단적 해법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복잡한 문제는 오히려 탈출구 앞에 기둥을 설치한다는, 역발상의 창조적 해결책들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문제는 좌우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이런 식의 색다른 해법이 건전하게 토의되고 합의될 여지 자체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불신이 깊은 공권력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그리고 맹목적인 규제 완화와 경쟁 강화에 목매지 않고서라도 공공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적절한 게임의 룰을 찾고, 이에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생산적 논의가 전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영 논리에 함몰되어 민주당이 주장했다고, 한나라당이 주장했다고 일방적으로 배척하고 조롱하는 치졸한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식인이건 키보드 워리어들이건 상대 진영의 논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기에 바쁜 분위기에서는 이는 매우 난망한 일이다.

아무튼 홈지기도 팔자가 이상해서 자연과학 전공한 뒤에 사회과학 연구 직장에서 이런 문제를 요즘 뻔질나게 고민하고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다 들고는 한다. 교육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올 하반기에 연구할 계획이 있으니 보다 자세한 대안에 대해서는 그때 논하기로 하자.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시대의 조류는 자연과학-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제의 지식을 모으고, 개개인의 열린 마음가짐을 기반으로 치열한 협력과 논의를 통해 창조적 해법을 모색해가는 길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편가르기가 너무 심해 그런 기반이 너무 취약한게 안타깝지만, 아무쪼록 앞으로는 보다 건전한 토론 속에 창조적 해법이 활발히 피어나고 합의될 수 있기를 바란다.

Notes.
  1. 연구직에 종사하고 계시지 않은 분들은 Nature 기사의 전문 읽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럴 경우 홈지기에게 메일 주시면 적당한 방법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다.
2008/04/17 22:15 2008/04/17 22:15
creative commons license 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Orca 2008/04/18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8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국에서의 생활은 어떠십니까? 뉴스레터는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저도 영국에 세 번 가봤습니다만, 전해오시는 글과 사진들을 보노라면 너무 가본 곳이 적은 것 같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무쪼록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2. 建武 2008/04/18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링크해놓으신 내용들이 흥미있어서 모두 읽어보게 되는군요. 상당히 좋은 제안입니다만, 우열반=기둥 이 역활에 있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히 기둥 역활을 해줄 어떠한 제도적 장치가 곧 나오길 바랍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8 0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단순히 '기둥=우열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글을 퇴근 전에 급히 쓰다보니 위험한 내용이지만 눈 질끈 감고 포함시켰는데, 정말로 기둥에 상응하는게 무엇인가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요. 이거야 말로 대중의 지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3. Crete 2008/04/18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봤습니다.

    홍순명님의 견해처럼 특정 모델의 경우 경쟁이 최선의 방책이 아니며 적절한 공권력의 도입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씀도 유익한 지적이며, 또한 채승병님의 견해처럼 문 앞에 적당한 크기의 기둥을 설치하는 시도처럼 역발상의 창조적 해결책 역시 충분히 고려해 봐야 할 요소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극장 안에 남아 있는 경우와 극장 밖으로 탈출했을 경우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즉 불이 난 극장처럼 안(죽음)과 밖(삶)의 수준이 극단적인 차이가 난다면, 공권력의 도입이던 문 앞의 기둥이던 관객들이 탈출을 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 즉 경쟁 압력 자체가 줄어들기를 바라기는 난망한 노릇입니다.

    서울대를 포함한 일류대 졸업생과 지방대 졸업생, 아니면 고줄 출신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지위와 신분 상승의 기회가 현재 대한민국처럼 현격히 차이가 난다면 (단순히 경제적 수입 차이에 더해 직업의 서열화와 이에 따른 차별적 시선 같은 보이지 않는 social hierarchy 에 의한 압력) 공권력에 의한 통제가 되었건 문 앞의 기둥 같은 역발상의 창조적 해결책이 되었건 압력 자체가 주는 경쟁 과열은 계속 될 것이라고 보는 거죠.

    결국 극장 밖으로 탈출한 관객들(= 일류대 졸업 후 고액 연봉의 사회 지도층)에게Noblesse oblige가 이벤트성의 행사가 아닌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또한 고액 수입에 걸 맞는 충분한 세금 납부와 기부 활동 등이 정착이 되고, 반대로 극장 안에 남겨진 관객들(=고졸이나 지방대 졸업 후 사회의 중하위권을 차지하는 서민들: 이런 표현 자체가 좀 차별적 시각이 내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선명한 비교를 위해 일단은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에게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과 노후 생활 보장 그리고 실직 시 실업수당 지급 같은 사회안전망 체계가 충분히 갖춰진다면 극장을 탈출하고자 하는 경쟁 자체가 조금은 약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늘 염려하는 것은 극장 안과 밖의 수준차이를 얼마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수준차이가 아주 미미하다면 극장 탈출을 위한 노력, 즉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 개발 의욕 저하와 궁극적으로 사회가 외부에 대해 갖는 상대적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야 하겠지만 계층간 위화감 문제와 이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 문제는 약화되겠죠. 하지만 반대 경우라면 일정 수준 정도의 사회적 긴장감이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를 부추기는 한편 계층간에 벌어진 차이가 사회의 안정을 해치게 되겠죠.

    이런 양 극단 사이에서 어느 포지션에 우리 사회가 자리를 잡는 것이 바람직할까 하는 고민을 해 봤습니다만,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은 조금은 더 극장 밖과 안의 차이를 줄이는 방향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는 합니다.

    홍순명님과 채승병님의 수준 높은 발제글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두분 모두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8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 내용의 기조는 중요한 지적입니다. 건강한 사회는 시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죠. 시장기능의 활성화 못지 않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배려하고, 재교육시켜 다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만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소싯적 대학입시는 좀 못했더라도, 사업이 한때 실패했더라도 마음 고쳐먹으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는 것이 극소수의 성공신화가 아니라 일상적인 모습이 되어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국민 의식, 제도, 문화 등의 모든 측면에서 한국은 선진국들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게 현실입니다.

      다만 이게 '궁극적' 해결방향이라고 하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성장-분배 논쟁에서 분배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논리와도 맞닿을 수 있겠지요. 근데 논의를 해 보면 한국은 시장기능과 사회안전망 모두가 취약하기 때문에 둘 다 병행해야지 어느 한 쪽을 해결하려 든다고 해서 풀릴 문제는 아니더군요. 흔히 좌-우가 같이 날아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양자의 선후경중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모두 구체적인 해결책이 난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정부들도 많은 노력을 했지만, 하위 20%는 명목소득조차 정체되어 사회에서 완전히 분리되고 있는 경향은 지속되고 있고 좀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 정책 브레인들의 솔직한 소회를 들어보면 정부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답답한 분위기입니다. 정치가들 장단에 겉으로는 만병통치약이 있을 것처럼 이야기해도 직접 이야기해보면 다들 한숨만 내쉽니다. 키보드 워리어들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끼리끼리 우물 안 이야기만 주고받는 모습이 대부분이고…… 제가 자꾸 진영논리를 허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자는 것도 이런 답답함의 발로일 것입니다.

    • Crete 2008/04/18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궁.. 한국은 아침 이른 시간일 텐데 장문의 답글을 다셨네요.

      채승병님의 지적이 전반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기능과 사회안전망 모두 취약한 상태이죠.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점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전에 The American Prospect의 staff writer인 Ezra Klein의 블로그에 놀러 갔다가 Larry Bartel 교수의 새로 나올 책에 담긴 도표 하나를 봤습니다.

      http://www.prospect.org/csnc/blogs/ezraklein_archive?month=04&year=2008&base_name=assignment_desk_inequality_edi

      우리가 흔히들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의 논리로 파이 자체가 커지면 저소득층에게도 결국은 더 큰 몫이 돌아갈 것이라고 믿죠? 미국의 경우 대개 공화당쪽이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을 민주당의 경우 증세와 복지를 통한 분배를 강조하는데…

      정작 결과를 놓고 보면 상위 10%의 부자나 하위 10%의 가난뱅이나 모두 민주당 집권 시절 소득 증가율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진보나 보수를 떠나 우리 머리 속에 막연히 있는 소위 ‘상식’도 막상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맞춰 보면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저 결과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8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익한 정보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도 저 비슷한 류의 실증분석들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하실 점은 한국은 워낙 고도 압축성장을 한데다가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어서 적당한 비교연구 대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폴 크루그먼도 저 데이터의 함의가 불분명하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데, 한국은 더합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도 한국이 성장만 열심히 추구해봤자 그 효과가 하위 20%까지 미치지 못하리란걸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성장의 혜택이 하위계층까지 고루고루 이전되는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이며, 이에 관한 연구들도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욕을 먹은게 그 고리를 복원하지 못해서인데, MB 정부도 지금 마인드로는 복원해내지 못할 겁니다. (민노당 or 진보신당의 마인드로도 복원 못한다는데 만 원 겁니다.)

      그 방법을 찾느라고 뻔질나게 해외사례를 들여다 보고는 합니다만 많은 분들이 이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이미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에 들어섰다고 말입니다.

  4. nishi 2008/04/18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onnet님의 블로그에서 찾아왔습니다. 본문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홈지기님의 마지막 댓글에서 궁금한 것이 있는데
    현재 한국에서 성장의 혜택이 하위에까지 미치는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라는 문구가 있는데 제가 옛날에 이에 대해서 읽은
    바로는 대기업이 이득을 봐도 하청을 주는 중소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홈지기님
    께서 언급하신 그 고리에 대해서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요?
    아니면 어떤 다른 측면에서 그 "끊어진 고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8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추한 곳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대기업-중소기업간 관계 문제로 분배 연결고리 유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갑"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원가 부담을 하청업체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거야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이것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경우 점점 글로벌 아웃소싱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은 근근히 살아남기도 바쁘고 글로벌 플레이어나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비중이 극히 낮아졌습니다. 한국 기업생태계의 쇠락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러니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소득이 정체될 수밖에요.

      또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생계형 자영업자 비율이 너무너무 높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인구 중에서 생계형 자영업자 비율이 선진국 비율의 3배가 넘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경쟁력도 새로운 유통체제에 미치지 못하고 사회안전망의 테두리에 들어 오지도 못하기 때문에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는 사회적 지식 및 노동력 낭비로 직결됩니다.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도 나이 먹으면 퇴물이 되어 자영업으로 퇴직금 까먹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도대체 재기의 기회란게 없으니까요. 여기에 고령화와 출산률 저하의 폭풍까지 밀려오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죠.

      이런 연구들은 광공업통계, 산업연관표, 공시정보 등이나 국민 소득 통계를 활용하기도 하고, 현장 서베이도 많이 이뤄집니다. 아무래도 현장의 고통이 통계로는 빨리 포착이 안 되니 연구자들이 더 부지런해지는 수밖에요.

  5. 기린아 2008/04/18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로서는 저 모델 자체가 현실에서 제일 중요한 키 팩터들을 설명하는데 충분한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트랙백으로 생각을 좀 정리해 봤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8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ㅍㅍ 어차피 논문이나 보고서 쓰려고 만든 모델도 아닌데 아이디어 회의 같은 이런 가벼운 논의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자연과학적 사고가 사회과학 문제 접근에 청량제 정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좋은거고.^^ 사실 논문용으로는 우리 팀에서 다른 프레임워크를 구상하고 있으니 시간이 나면 그걸 또 소개해보기로 하쥐. 어쨌건 의견 줘서 고마우이.

    • 기린아 2008/04/18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옙. 저도 그 점은 동의하구요. 그렇지만 이런 모델을 보면 꼭 한번 머릿속에서 대비를 해보는건 습관적으로 어쩔수 없는듯 합니다^^

  6. 길 잃은 어린양 2008/04/18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개해 주신 Dirk Helbing의 연구가 흥미롭길래 이 양반이 쓴 교통 관련 논문 두어 편을 찾아 본 뒤 저의 무식함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는 중입니다.;;;;;

    위의 댓글에서 '우리는 이미 남들이 가보지 못한 길에 들어섰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저도 항상 이 문제에 대해 조금씩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한국이 처한 사회적 문제들, 예를 들면 쓸데없이 지독한 입시경쟁 같은 것들이 결국은 한국의 특이한 문화적 전통위에 근대적 제도들이 괴상하게 결합된 부작용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술자리 잡담의 특성상 마지막에는 "역시 답은 없군!"과 같은 허무주의적 결론만 내곤 논의의 진전이 없는데 이번에 올려주신 글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9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Dirk Helbing의 논문이라면 이것저것 수식이 많이 들어가서 이공계통이 아닌 분들이 보기엔 매우 힘드셨을텐데, 시도라도 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그걸 무식함이라고 하기는 곤란하죠. 그리고 한국의 특수한 발전경로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뜯어 보려는 연구가 지속되고 있는데, 아직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학도이시니 종적인 관점에서 명쾌한 틀을 개발해주시기 바랍니다.^^

  7. sonnet 2008/04/18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운 아이디어 잘 봤습니다. 현실에서 어떤 장치가 저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는 정말 재미있는 화두인 것 같습니다.

    사실 교육이란 주제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뭐라 대담하게 말하기 힘든데, 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외형을 관찰해 볼 때 대학입시경쟁의 현 상황은 공황상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 점도 "공황이 확실하냐" 이렇게 물으면 제가 딱 부러지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데, 개인적으론 그렇다고 봅니다)
    현재 정부에서 말하는 논리는 공교육의 양적, 질적 강화가 수요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통해 사교육을 구축할 수 있을 거라는 식인데, 이것은 정상상황이면 몰라도 공황상황에 먹힐만한 처방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예를 들면 bankrun이 진행중인데, 관련 은행업계의 영업규제를 완화한다는 식의 대책발표라고나 할까요.
    이 문제에 어떻게 개입하느냐는 우선 현 상황이 공황이라고 판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9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대로 교육문제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만, '공황'이라고 봐야하는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공황의 여러 특징을 따져가며 비교가 이뤄져야겠죠. 개인적으로 제가 속한 연구팀에서 설계하는 프레임워크로는 '공황'까지 표현하지는 않지만 모종의 악순환을 부르는 '덫'에 걸린 상황이라고는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추가로 글을 적어보든지 하겠습니다. 어쨌든 좋은 문제제기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셨으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8. 백성주 2008/04/18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 노력과 돈이 많이 드는 대입제도 '입니다. 고비용이란 노력과 돈이 많이 든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다시 말해 볼까요?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 고비용 대입제도 '입니다.

    왜 노력과 돈이 많이 들까요? 여러분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대학은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뽑습니다. 그러니 입학지원자들은 시험성적순을 높이기 위해서 서로 경쟁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력과 돈이 많이 드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여러분도 다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는 있는데, 백성주처럼 '고비용 대입제도'라고 한 단어로 정리해서 말하지 않은 것 뿐이지요.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가 봅시다. 머리를 한 번만 더 굴려 보자 이겁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할 테니, 잘 생각한 다음 대답해 보십시오.

    질문 : 고비용 대입제도 아래에서 사교육비 경감이 가능할까요?

    정답 : 사교육비 경감은 불가능합니다.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실제로도 불가능합니다.

    왜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걸까? 궁금하시죠? 그건 이렇습니다.

    고비용 대입제도는 노력과 돈이 많이 드는 대입제도입니다. 시험성적순을 지금 그대로 유지하려면 아무리 적어도 남이 하는 노력만큼 노력해야 하고, 남이 쓰는 돈만큼은 써야 합니다. 시험성적순을 지금보다 더 높이려면 남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남이 쓰는 돈보다 더 많이 써야 합니다. 노력 경쟁, 돈 쓰기 경쟁은 금방 무한경쟁으로 격화됩니다. 이렇게 즉시 무한경쟁으로 격화되는데 사교육비가 어떻게 경감될 수 있겠습니까?

    1. 대학이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
    -->2. 성적순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기와 돈 쓰기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3. 사교육비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순서로 사교육비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사교육비를 싫어해서 돈을 안 쓴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사람의 성적순이 점점 더 낮아질 겁니다. 성적에 밀려서, 이 사람은 처음에 갈 수 있었던 대학 학과에 못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감수하기 싫다면, 이 사람도 남들만큼 사교육에 돈을 써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 사람과 같은 입장에 놓입니다. 사교육에 돈을 쓰거나, 성적순에 밀려서 대학 학과를 낮춰서 선택하거나 둘 중의 하나죠. 사교육에 돈을 쓰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대학 학과를 낮춰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1. 대학이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
    -->2. 성적순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기와 돈 쓰기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3. 사교육비문제가 발생한다

    이처럼 고비용 대입제도 아래에서 사교육비 경감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그동안 실행했던 교육개혁정책이 왜 사교육비경감에 실패했는지 이유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 실행할 교육개혁정책이 왜 사교육비경감에 실패하게 되는지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교육비를 경감하려면 어떤 대입제도를 도입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사교육비문제를 일으킨 대입제도(교육개혁정책)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모두 고비용 대입제도입니다.

    1. 예비고사-본고사
    2. 학력고사
    3. 수능시험
    4. 논술시험
    5. 내신성적
    6. 실기시험
    7. 이해찬의 여러 줄 세우기 정책
    8. 안병영의 텔레비전과외 정책
    9. 수능등급제 정책
    10. 수능시험 난이도 낮추기
    11. 과외금지 정책

    아직 실행하지 않았지만, 실행하면 반드시 사교육비문제를 일으키는 교육정책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이것들도 고비용 대입제도입니다.

    1. 공교육강화 정책--박근혜
    2. 대학평준화 정책--학벌없는사회와 하재근
    3. 자사고 정책--이명박
    4. 고교등급제


    '고비용 대입제도'를 뒤집으면 여러분도 '저비용 대입제도' 를 즉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대학이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하지 않으면, 성적순 올리기 무한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사교육비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저비용 대입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비용 대입제도' 아래에서는 사교육비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사교육 자체가 없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비용 대입제도'의 예를 들면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시험-추첨' 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겁니다. 둘째는 '자격시험-추첨' 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겁니다.

    무시험-추첨은 아무 시험 없이 입학생을 선발하되, 입학지원자의 수가 입학정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추첨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자격시험-추첨은 (운전면허시험처럼)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치러서 일정 점수 이상인 학생에게 원서를 낼 권리를 주고, 입학지원자의 수가 입학정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추첨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무시험-추첨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입학지원자는 자신이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다.
    2.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한다.
    3. 원서접수를 마감한다.
    4. 입학지원자의 수가 입학정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추첨으로 합격자를 선발한다.

    무시험-추첨이라고 말하면 흔히들 '고등학교 배정 추첨'으로 오해하는데, 제가 말하는 무시험-추첨은 합격-불합격만 추첨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무시험-추첨을 실행하면 적어도 11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1. 과외문제가 해결된다.
    2. 학생들의 공부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3. 입시교육문제가 해결된다.
    4. 재수하기가 쉽다.
    5. 학과를 선택할 때 성적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심과 적성만 고려하면 된다.
    6. 평생교육을 지원하기가 쉽다.
    7. 고등학교 커리큘럼을 개혁할 수 있는 기초가 되어 준다.
    8. 아무 비용과 준비 없이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다.
    9. 지방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0. 대입전형과 관련해서 비용이 들지 않는다.
    11. 고등학생이 자신의 특기나 취미를 공부할 시간여유가 생긴다.

    저는 모든 대학 모든 학과가 무시험-추첨을 선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기존의 경쟁시험으로 선발하는 대학과 학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경쟁시험으로 선발하는 대학과 무시험-추첨으로 선발하는 대학이 공존하는 대입제도 이원화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이 성적이 하위 50%인 학생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시험-추첨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대학을 무시험으로 입학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학력이 낮아질 거라는 우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대학입학만 무시험으로 하는 것이지, 졸업 후에는 취업시험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학생들이 공부를 등한히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때까지는 대학입학을 위해서 공부했다면, 앞으로는 졸업 후의 취업을 위해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진짜배기 공부경쟁은 대학에 들어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대학입학을 위한 공부는 입학하는 것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니 대학입학을 위해서 공부경쟁을 하지 말고, 대학에 무시험으로 들어가서 진짜 공부경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4/19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입시경쟁 구도가 고비용 구조라는데는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제시해주신 해결책이 이걸 완벽히 저비용 구조로 전환시킬 해법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자격시험 이후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은 대학이 보유한 자원 격차가 엄존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제도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대학 평준화로 이슈가 옮겨붙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강제할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공권력이 강제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입니다. 국공립대는 몰라도 사립대의 평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장기적인 지향점을 될 수 있겠으나 중단기적 해결책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별도의 글을 통해 더 논의해볼 문제라 할 수밖에요. 어쨌건 장문의 주장 제시해주셔서 감사하고, 좀 더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9. 백성주 2008/04/20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작위로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 이 부분을 보면, 홈지기 님이 추첨에 대해서 오해하신 모양입니다.

    입학지원자가 대학과 학과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입학정원보다 입학지원자의 수가 많을 때만 추첨을 하는 겁니다. 본문에도 이 설명이 들어 있는데, 글이 길다 보니 놓치신 듯합니다.

    고등학교 추첨 : 학교 배정

    무시험-추첨, 자격시험-추첨 : 합격/불합격만 판정

    완벽히 저비용 대입제도로 가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반드시 고비용-저비용 이원화로 가야 합니다.

    대학평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제가 증명한 적이 있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서울대와 부산대를 평준화하는 것이 가능하냐를 상상해 보면 압니다. 그건 억지로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서울대와 부산대와 전남대를 평준화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아무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 3개의 대학도 평준화가 불가능한데, 국공립대 평준화가 가능할 리가 없지요.

    새로 글을 써서 다시 오겠습니다.

  10. 일화 2008/05/02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당히 창조적인 해결책이네요. 트랙백까지 읽어보았습니다만, 적절한 장애물이 과다경쟁으로 말미암은 비효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주장의 타당성은 확실해 보입니다. 물론 문제는 현 대학입시에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적절한 장애물이 무엇이냐는 것이겠지만 말이죠. 현재 우리나라 사회시스템이 여기저기 고장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은 저도 걱정하는 문제인데, 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1. 일화 2008/05/02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회의 빠른 양극화의 원인으로 저는 세계화/지식경제화라는 현재의 추세가 개인에게 주는 부담을 해결할만한 패러다임이 국내에 자리잡지 못해서라는 지극히 미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거시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대책에는 전혀 진전이 없네요. 아직 관심이 제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보니 그런 듯 합니다만, 홈지기님이나 다른 분들의 고견을 더 들어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12. 수상한사람 2008/12/3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일본에 오래 살다 와보니, 일본 사정에 관심이 가네요.

    아, 제가 여기 댓글을 단건, 님이 자연계 공부를 하셨다고 한 뒤, 어떻게 하다 보니, 사회학 연구를 하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입니다.

    저도, 자연계 공부를 하고(석사 졸), 지금은 병역특례로 기업의 전문연구요원으로 들어가 있는데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가 사회학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자연계 공부를 하고도, 이렇게 사회학 연구를 하시는데 있어서 어려운 점이 뭔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더 공부해 두면 좋을까 하는 것도 궁금하고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