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끼고 간단한 여름휴가를 즐기고 오느라 글이 뜸했었다. 비싼 항공료 때문에 바다 건너 이국땅에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소소히 놀러다니며 집안 일하는 재미도 쏠쏠했던 시간이었다. 원래는 그 동안 미뤄뒀던 책들도 잔뜩 읽어 제껴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으나, 일상의 게으름에 취해 기대 만큼은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글감으로 쓸만한 거리는 제법 발견한 것 같아 다행이다. 당분간은 이런 독서거리들을 엮고 엮어 글을 적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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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자세한 소개는 다른 글에서 하겠지만, 이번에 재밌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데이빗 슬론 윌슨(David S. Wilson)의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만인을 위한 진화론: 다윈의 이론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이다. 윌슨은 다층선택이론으로 유명한 생물학자이고, 우리나라에는 그의 저작 가운데 『Darwin's Cathedral』이 번역 — 우리말 제목은 『종교는 진화한다』 — 되어 있다. 홈지기는 직업상(?) 사회조직, 경제시스템 수준의 진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지를 한창 고민하다보니, 이 부분에 대해 많은 통찰을 주는 윌슨의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윌슨이 일반 대중을 위해 말랑말랑하게 진화에 대해 설명한 책을 내놨다는 것이 어느덧 작년. 진화에 대한 책이야 허다하지만 뭔가 끌리는 마음에 덜컥 재어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책장을 펼쳐들 수 있었다.

감상? 한 마디로 재밌다. 사연을 들어보니 윌슨이 정말 "Evolution for Everyone"이라는 강의를 개설해서 수강생들을 상대로 펼쳐놓은 내용들이 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1 늘어지는 맛이 없이 짤막짤막한 주제를 엮어가며 책을 완성하는게, 최근 유행하는 대중 교양과학서 스타일을 꽤나 벤치마킹한 것 같다. 실제로 시카고대학의 지구물리학자 피에르훔버트 교수는 '진화 분야에서의 『Freakonomics (괴짜경제학)』 같은 책'이라는 서평도 쓴 바 있다.

오늘은 맛보기로 이 가운데 재밌는 이야기 하나만 같이 살펴보자. 참고로 이 이야기는 퍼듀대학 동물과학과 윌리엄 뮤어(William M. Muir) 교수의 실제 연구라고 한다.

William M. Muir

제가 지저분한 양계장에서 감동의 연구를 끌어내었지요

대부분의 닭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드넓은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무리를 짓고 알을 낳는 환경을 조성해서 인간을 먹여살릴 계란을 조달하기는 힘들 것이다. 기업적인 산란용 양계장에서는 보통 닭장 하나에 9~12마리 정도의 암탉을 가둬놓고 계속 알을 낳게 한다. 닭 입장에서는 지극히 잔인한 환경임이 분명하다. 인간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 이외에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암탉 각각의 계란 생산성을 높여 그나마 적은 생명이 희생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뮤어 교수는 (이런 인도주의적 취지였을지는 모르겠으나) 계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산란용 암탉(산란계) 품종 개량법을 연구했다. 역시 인위선택을 통해 계란을 잘 낳는 암탉을 대를 이어 선별해내는 법이 좋을 듯 싶었으나, 그는 구체적으로 조금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실험해봤다.

  1. 양계장의 각 닭장에서 제일 알을 많이 낳는 암탉 한 마리씩을 뽑아 번식시키기를 반복하는 방법
  2. 양계장의 모든 닭장 중에 제일 알을 많이 낳는 닭장 하나를 뽑아 그 안의 모두를 번식시키기를 반복하는 방법

인위선택의 단위가 암탉 개체이냐, 닭장이냐의 차이를 둔 것이다. 몇 세대에 걸쳐 이러한 인위선택을 반복하면 과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얼핏 생각해보면 첫 번째 방법이 효율적일 것 같다. 가장 뛰어난 개체를 직접 선발해서 우수한 형질을 씨내림하는 것이 좀 더 좋지 않겠는가. 반면 두 번째 방법은 아무래도 무임승차자의 폐해(?)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운좋게 닭장 안의 암탉 두세 마리가 우수한 놈이었다면, 나머지 몇 마리의 암탉들은 별로 산란능력이 좋지 않아도 슬쩍 묻어갈만도 하다. 최고의 암탉을 뽑아 경쟁시켜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비효율을 지켜보고 있다니, 이는 양계산업 발전의 심각한 장애물이자 산란계의 과도한 희생을 방조하는 비인도적 처사일지도 모른다.

뮤어 교수는 그렇게 여섯 세대 번식을 (아마도 대학원생에게) 시키고, 그 결과를 확인하였다. 첫 번째 방법을 반복 사용한 닭장의 모습은 놀라웠다. 왜? 그 아래 계란이 수북히 쌓여 있어서? 아니다. 닭장 안에는 있어야 할 아홉 마리 대신에 단 세 마리만 살아 있었고, 이들 세 마리도 온통 털이 빠진 상태였다. 이 안에서 암탉들은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으면서 피터지게 싸우다가 여섯 마리가 죽고 나머지 세 마리도 기진맥진한 것이었다. 결국 제일 알을 많이 낳던 최고의 암탉들은 남을 핍박하여 — 먹이를 가로챈다던가 자신의 활동공간을 넓힌다던가 — 자신의 생산성을 높인 암탉이었다. 이 인위선택의 과정은 이런 공격적이고, 수탈적인 속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서로가 만만하게 등쳐먹을(?) 대상이 없어지고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모이자 막다른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반대로 두 번째 방법을 반복 사용한 닭장은 어땠을까? 여기에선 아홉 마리 암탉 모두 건강했으며 여섯 세대 동안 계란 생산성도 매우 높아졌다. 첫 번째 방법과 달리 이 경우에는 남을 핍박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즉 매우 이기적인 속성을 지닌 암탉이 선택될 확률이 낮아진다. 이런 수탈적인 암탉이 존재하는 닭장에서는 다른 암탉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닭장 전체적인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불편한 환경 속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며 함께 생산성을 높이는 암탉들로 이뤄진 닭장이 선택되게 마련이다. 처음 단계에서는 무임승차자들이 끼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세대가 흘러가고 선택이 반복되면서 무임승차자 비율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모두가 살아남은 아홉 마리 암탉들은 좁은 닭장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속성을 유지한 채로 생산성을 높이는 형질을 획득한 것이었다.

이처럼 경쟁과 선택의 단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이것은 비단 계란을 낳는 암탉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 내용을 인간사회로 투영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임을 다들 아실 것이다. 암탉에게 시행된 인위선택이 효과를 발휘하듯이, 인간조직에서도 경쟁과 선택은 생산성과 복리를 증진시키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떤 경쟁과 선택의 규칙은 첫 번째 인위선택 방법처럼 황폐화한 조직과 사회만을 남기기도 한다.

많은 경우 일부의 비효율로 보이는 개별 요소를 제거하려고 조급하게 처신하는 것보다, 공존과 조화의 미덕을 보존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인 생존과 성공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기업경쟁에 있어서도 근래 개별 회사 단위의 이익 극대화에 급급하지 않고, 연대를 통해 기업생태계(business ecosystem)을 구축한 기업연합들이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의 모토가 강조될수록,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쌓아올린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너무도 쉽게 내쳐지지 않는지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2

이 책의 저자 윌슨은 이 연구에 심히 감명받아 그의 동의를 구하고 다른 자신의 강연에서도 이 사례를 소개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강연이 끝나고 한 교수가 헐레벌떡 와서는 외쳤다고 한다:

저 첫 번째 닭장이 바로 우리 학과군요! 저 세 암탉3 이름도 댈 수 있어요!

자, 여러분의 주변에도 세 마리 암탉이 있습니까?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윌슨 교수는 최근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과정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5월 27일자 뉴욕타임즈 기사가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2.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개발정책, 경영전략, 인사제도 등의 사례를 알고 있으니 나중에 천천히 소개해보겠다.
  3. 노파심에서 적지만, 이 글 전체에 나오는 '암탉'은 사람의 실제 성(性)과는 전혀 무관하다. 계란을 낳는게 암탉이다보니 불가피하게 쓴 표현이다.
2008/08/19 13:30 2008/08/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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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8/19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비밀방문자 2008/08/19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20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꾸 늦어져서 죄송한데, 제가 본가에 가서 책들을 잔뜩 들고 와야 확실해서 그렇습니다. 최근에 본가에 갈 일이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었네요. 9월 되기 전에 한 번 갖다올 예정이니 그 때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비밀방문자 2008/08/21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3. 마파람 2008/08/19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사서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

    " 저 첫번째 닭장이 바로 우리 부서군요! 저 세 암탉 이름도 댈 수 있어요!"

    • Periskop 홈지기 2008/08/20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희 직장에 저런 닭장부서에 대한 사례조사가 제법 있는데, 여기에 어떻게 살을 붙여서 깔끔한 보고서로 만들 수 없는지 고민 중입니다.^^ 만약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간다면 마파람 님께 제가 인터뷰라도…… 댓글 감사합니다.

  4. 길 잃은 어린양 2008/08/19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문장이 공포 효과를 유발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2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원생들도 이 소리에 움찔할 때가 많이 있지요. 특히 연구실 생활이 빡빡한 이공계에서 종종 그러는데, 사회과학 쪽의 대학원도 그런 경향이 있는지요? --a

    • 길 잃은 어린양 2008/08/20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원 이야기는 아니고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잠시 생계전선에 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요.^^;;;;

  5. 일화 2008/08/19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0년대 일본의 강점을 팀 중심의 경쟁으로 해설하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확실히 인간은 무리지어서 사는 동물인 모양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20 1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이야 기업 내 팀 조직뿐 아니라, 기업 수준에서도 토요타 및 계열사들의 독특한 협력체계를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되었지요. 업의 종류에 따라 잘난 개인이 중요한 분야도 있습니다만,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에서는 확실히 팀플레이의 가치가 많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6. 폴라곰  2008/08/19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화론이 여러가지 분야에서 재발견되는 모습도 상당히 주의깊게 보고 있습니다. 『다윈의 대답(Darwinism Today)』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그렇고 닭장 시리즈도 유행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국회, 우리 부대, 우리 학교, 우리 협회 등등.

    • Periskop 홈지기  2008/08/20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윈의 대답』 시리즈도 재미있는데, 생각만큼 팔리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아쉽습니다.^^

    • 폴라곰  2008/08/21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체주의적 관점에서도 이타주의가 설명 가능하며(1) 따라서 집단선택에 의해 나타나는 이타주의는 넓게 적용된 호혜적 이기주의로 볼 수 있다는 주장(2)도 있습니다.

      1: Kerr & Godfrey-Smith(2002), "Individualist and Multi-level Perspectives on selection in Structured Populations", Biology and Philosophy 17, pp.477~517

      2: 정상모, "적응도의 늪", 과학철학 7-1(2004), pp. 91~107

  7. Krang 2008/08/2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글&책이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8/20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분들이 개인을 넘어선 집단과 조직 수준의 경쟁 단위를 생각하고 팀플레이 능력을 키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8. 하얀까마귀 2008/08/20 0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리가 있어 머리가 끄덕여지는 이론입니다만, 겨우 여섯 세대 갖고 진화의 효과가 저만큼 극명하게 드러날지는 조금 의문이긴 하네요.

  9. 지나가던 손님 2008/08/20 0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보고나니 이 주제하고 상관있을런지, 없을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가 있더군요. '일개연대의 지휘관이 나폴레옹이라면 그 부대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지만, 연대의 구성원들이 전부 나폴레옹이라면 그 부대는 자멸한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20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상통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조직은 통제적 리더의 덕성만 갖고는 움직여지지 않는 법이지요. 통제를 따르면서도 긴밀한 팀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성원들의 협력적 속성이 증진되어야 온전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부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군대는 이런 측면에서 두 번째 방법의 인위선택을 충실히 시행해온 조직이기도 합니다. 군대에서는 혼자 잘난 병사들보다 동료를 챙기고 함께 살아남으려는 병사들을 더 높이 평가하고, 훈련과정에서도 그런 습성을 키워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런 특성을 가진 군대가 더 높은 전투력을 발휘하고 승리해왔기에 그런 관행과 문화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보니 과도한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반감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군대의 속성까지 오롯이 부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개인과 집단 모두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균형잡힌 인식이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 ssn688 2008/08/20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계장 방법1은 이미 우리 사회의 교양이요 상식이요 가치관인 듯합니다.

  11. 獨步 2008/08/20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
    '뮤어 교수는 그렇게 여섯 세대 번식을 (아마도 대학원생에게) 시키고...'
    이번 글의 웃음포인트(흐흐).

    둘.
    모두가 암닭 세 마리를 댈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중 한 마리임을 인지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듯 합니다.

    셋.
    베트남전쟁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미합중국에서 대학생들을 조사해보니,
    1. 반대시위에 적극적인 부류 10
    2. 그 때 그 때 다른 반응을 보이는 부류 80
    3. 아예 무관심한 부류 10
    으로 나타나서 실험을 통해 1.을 제거했더니 나머지 90이 또다시 9/72/9로 분화되더라는 연구결과가 있었다는 기억이 드는군요.

    예전 댓글에서 '박멸의 신화'라는 말씀을 드린 일 있는데, 윗분들은 마음에 드는 부분을 키우고 안드는 부분을 잘라내는 조치를 너무도 선호하고 또한 쉽사리 취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도처에 있는 듯 합니다 - 국제고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그런 극한경쟁에서 생존할 자신이 도저히 없는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씁쓸...하더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09/01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잊혀지기 쉬운 부분을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살아남은 존재가 반드시 아름답고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할텐데, 많은 분들이 그걸 너무 쉽게 간과하시고는 하지요.

  12. 어부 2008/08/20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닭 뿐 아니라 사람에게 가까이 있는 동물은 사람의 집단 위계 질서에 적응한 녀석들이니, '위계 질서가 안정된' 닭장이 달걀 생산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9/01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습니까? 저는 당연하게까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만…… --a 제가 과문해서 그럴테니 적당한 자료가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3. 슈타인호프 2008/08/20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는 순간 멋진 신세계의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왜 모든 신생아를 A레벨의 자질을 갖게 탄생시키지 않나요?"
    "과거에 실험을 해본 적이 있지요. A레벨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만 모아놓으면 유토피아가 생길 줄 알았는데, 한 섬에 실제로 A레벨만 모아놓았더니 서로 남의 위에 서려고 싸우기만 하다가 집단 자체가 망해버렸어요. 그 이후로 능력별 비율을 맞추고 있지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똑같지는 않겠지만(지나가던 손님님의 나폴레옹 이야기와 비슷할 듯), 비슷한 주제는 될 듯 하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9/01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오, 『멋진 신세계』에 그런 대목이 있었던가요? 한참 전에 읽어 내용도 다 잊어먹었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4. 민달이 2008/08/21 1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인상 깊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구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15. 기린아 2008/08/21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런데 저건 과학적으로만 보면 '제대로 된 인과관계'를 모른 상태에서 한 실험 아니에요?^^ 모이먹는 양이라든지 상호 위계질서 같은게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실험이니, 그걸 다시 통제해서 실험하면 결과는 달라질지도^^;;

    • Periskop 홈지기 2008/09/01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뮤어 교수의 저 연구 관련된 논문 여러 편이 1996년에 게재되었는데, 전부 숙독해보지는 않았어도 변인 통제는 나름 괜찮게 된 것 같더라구. 궁금하면 한 번 검토해보구 연락줘.^^ (PubMed 링크는 윗쪽 댓글에……)

  16. 김우재 2008/08/23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슬로안 윌슨에 대한 글을 접하게 되니 반가워 쓰레기 같은 글 하나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글들 잘 구독하고 있습니다. 혹시 퍼키님이신가요? 아니면 말구요 ㅎㅎ ^^

    • Periskop 홈지기 2008/09/01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 유사 종교집단(?)의 일원으로서 '불편한 진실'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좋은 글 트랙백 감사하고, 저도 구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퍼키(?)라는 닉을 쓴 적이 없는데 다른 분과 혼동하신 모양입니다.

  17. reske 2008/08/24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렇군요. 새로운 사실을 또 알아갑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사람 입장에서 루즈하기 짝이 없는 일반 고등학교의 현실에 좌절한 나머지, 우수학생들만 따로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게 독이 있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경쟁때문에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수도 있으니까요..(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평준화 고등학교들처럼 난장판 학교를 만드는게 정당화 될수는 없겠지만요.;;)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9/01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셨다면, 앞으로 제가 교육문제 관련된 글을 쓰걸랑 현장 감각을 갖고 커멘트 좀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고등학교는 십 수년 전 제가 다닐 때랑은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말이죠.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8. 갈매기 2008/08/25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우리가 살아남는 암탉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씁쓸하군요.

  19. Crete 2008/08/30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홈지기님의 이 글을 읽자마다 바로 퇴근길에 단골 도서관에 들러서 'Evolution for Everyone'을 빌려서 읽고 있습니다. 사실 홈지기님께서 골라주신 스토리같은 편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을 줄 알고 빌렸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진화와 창조 스토리가 대부분이라 당황하며 읽고 있습니다. 단 한 페이지도 숙독을 하지 않고는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더군요.

    아무튼 이런 식의 3마리 암탉 현상은 좁게는 책에 소개된 한 department 수준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국가 차원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이맘때 서프에 썼던 글이 있죠. 마비끼라는 현상을 빗대어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지적한 글이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털빠진 닭 3마리꼴의 우리나라와 막부 시절의 일본을 비교한 내용이죠. 홈지기 님의 글을 읽으면 예전 생각이 났더랬습니다. 글 말미에 링크를 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마비끼(間引き)를 아십니까? (이런데도 복지 예산을 안 늘릴 텐가?)
    http://crete.pe.kr/321

    • Periskop 홈지기 2008/09/01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게 제대로 된 북 리뷰로 쓴게 아니어서, 책의 무게감(?)에 대한 소개가 부족했던 것 같군요. 당황하게 만들어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내용보다도 저의 얄팍한 vocabulary를 드러내는 단어들에 좀 고전했었습니다. 그래도 그만큼 보람은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링크해놓으신 글은 잘 읽었습니다. 마비키랑 연관지어 글을 쓰시니 색다르게 느껴지는군요, 감사합니다.^^

    • Crete 2008/09/02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제가 당황했다고 표현한 것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아주 많이 좋은 책이어서 감사드린다는 표현이랍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소화하셨다는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액손이나 시냅시스야 그렇다고 치고 클러스터 같은 경우 유전학쪽에 나오는 용어인데... 그리고 이 책은 제 나와바리인데 오히려 다른 분을 통해 소개받다니... 제 게으름을 한동안 자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늘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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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가 요즘 직장에서 연구를 시작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교육 문제이다. 아무래도 고질적인 한국의 교육 현안이라면 중등교육에 퍼붓는 과도한 사교육비일텐데…… 다른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기초조사를 하다 보니 앞서가는 한국의 거울, 바로 일본의 사례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의 초등학교 3학년생 J양(9)은 여름방학이라는 실감이 안 난다. 이틀에 한 번씩 오전 9시~낮 12시까지 학원에서 국어와 수학 수업을 받는다. 그 나머지도 학원 숙제를 하다보면 친구들과 놀 시간이 나지 않는다. 사립 중학교 진학 희망자의 절반가량은 이처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입시전쟁'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는 2007년 8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1의 일부이다. 맏딸을 도쿄(東京)의 사립중학교에 진학시킨 맞벌이 회사원 K씨(46)의 사례다. K씨는 2005년 5학년 되던 딸을 처음 학원에 보냈다가 학원강사로부터 '학원을 보낸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다급해진 나머지 다른 학원을 추가로 등록했다. 학원비 부담으로 K씨는 결국 내집 마련을 위해 붓고 있던 적금을 깼다는 것이다.
……

일본 사립학교 입시 준비생들

入試必勝! 일본의 사립학교 입시 준비생들

김[영철] 박사는 그러나 "일본의 과외열풍은 197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증가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다소 꺾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국립교육정책연구소(NIER)에서 2001년부터 2년 반가량 연구활동을 했던 한국교육개발원 정광희 박사도 마찬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6학년이던 아이를 도쿄 변두리 초등학교에 보냈다. 아이는 주말마다 농구하고 놀러 다녔다. 아이의 급우들도 과열과외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

일본의 과외열기가 주춤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본은 이미 계층구조가 고착화되어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둔화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에 한계가 생기자 사교육에 올인할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다. 다시 정광희 박사의 말이다.

"일본은 명문대 부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부속 중·고등학교를 거쳐 계열 대학까지 저절로 올라가는 수순을 밟는 경우가 많다. 명문 사립중에 입학해도 고교까지 6년간 별도의 사교육 없이 대학에 갈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티켓'을 따내기 위해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단계에서 이미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른다. 이른 단계에서 아이의 진로가 결정되므로 사교육의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2

인용한 책은 작년 12월 28일, 대통령직 인수인계 문제로 만난 자리에서 노통이 MB에게 선물했다는 바로 그 화제의 책, 『대한민국 교육 40년』3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명박 당선자 만찬회동 브리핑 전문) 이 인용문 서두에 나오는 동아일보의 기사는 사실 일본의 유토리(ゆとり) 교육, 더 나아가 참여정부 교육정책을 비판하려는 (다분히 악의적인)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만 보면 일본도 심각한 홍역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일본의 다층화된 입시경쟁구조가 결과적으로는 전체 사교육 수요의 감소를 가져오고 있다니 흥미로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홈지기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바로 이 블로그에 한달 전 쯤에 쓴 「치열해지는 교육 경쟁구도에 창조적 해결책이 존재할까?」 글이 생각났다.

Evacuation

좁은 출구에서의 탈출. (a)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때 (b) 출구 앞에 기둥을 설치했을 때

이 글에서 홈지기는 뭔가 '출구 앞에 설치한 기둥' 같은 대책이 창조적 해결책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밝힌 바 있는데…… 외국 사례를 보니 자연적으로 이런 기둥과 유사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나라도 있는 것이었다! 아마 우리나라도 학원재벌과 결합된 자율형 사립고가 대거 허가되면 이런 일본식의 시스템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을까?

이런 문제 때문에 홈지기는 교육 문제 해법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할지 몹시 고민이다. 단순히 국민 전반의 사교육비 지출 총량을 줄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이처럼 경쟁단계를 확대하여 아예 일찍부터 사교육 수요를 꺾어버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처럼 계층구조의 고착화, 사회적 이동성의 둔화라는 치명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물론 서구의 많은 국가들도 실질적으로는 계층구조의 고착화가 상당히 진전되어 있고, 한국도 그 흐름에 휩쓸려가는 분위기지만, 교육정책이 이를 방치 또는 가속화시켜서는 안될 노릇이다. 교육이 제공하는 사회적 이동성을 촉진하면서도 끝없는 사교육 경쟁의 사회적 덫(social trap)에서 빠져나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과연 그런 기발한 또 다른 창조적 해결책이 존재할 것인가? 앞으로 연구를 해 보면서 지속적으로 고민할 일이 아닐 수 없다.

P.S. 다음 번에 이 문제로 글을 쓸 때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사례조사를 좀 더 해보고 그 결과를 간단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日 '사립중 보내기' 입시광풍 (동아일보)
  2.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대한민국 교육 40년: 공교육 정상화·대학 발전·평생학습사회를 향한 전진.』 (한스미디어: 2007).
  3. 이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대한민국 정책포털에 온라인으로 연재되어 있으니, 책 사 보기 아까우신 분들은 온라인으로 읽어 보시기 바란다.
2008/05/21 16:30 2008/05/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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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risx 2008/05/21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의 상황은 일전 포스팅에 나오는 "출구 앞의 기둥"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네요. 출구가 다르지 않습니까.
    명문 유치원-> -> ->계열명문대(엄친아) vs 평범 유치원-> -> ->평범 대학(결과적으로 평범남) 쯤 되려나.
    굳이 극장 상황에 비하자면 층을 아예 나눠버린 셈이죠.
    일단 허름 트랙에 들어서면 엄친아 트랙으로 갈아타는 게 무쟈게 어려우니 지레 포기하도록.

    뭐, 우열반 편성하고 등등 해서 장차 일본처럼 트랙이 아예 나뉘게 되는 것도 사교육비를 줄이는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불난 극장 출구 앞 기둥 모델로 저 상황을 설명하기엔 좀 무리가 아니냔 게 내 생각. (탈출만 하면 되는 진짜 극장과는 달리, 교육 극장에선 애초에 문을 나온 뒤의 상황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는 거니까. 하긴, 불타는 극장 문을 나선다는 걸 어떻게 정의해야 될 지도 애매하죠. 명문대에 갔다? 대학에 갔다? 사교육비 거의 안쓰고 대학에 갔다? 게다가, 하얀 점은 학생? 학부모? 기껏 문을 빠져나갔더니 비정규직의 늪이었다면? )

    일전에는 그냥 가볍게 생각해볼만한 거리로 극장의 기둥 얘기를 던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포스팅을 보니 정말로 저런(일본같은) 상황이 극장 모델에 있는 "출구 앞의 기둥"과 비견할만 하다고 전제하는 건가 싶어서 한 마디 얹어봅니다.

    @@극장 출구 앞 기둥처럼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는 제도/장치를 교육에도 도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는 십분 동의합니다. 네. ㅎㅎㅎ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출구라는게 꼭 특정 레벨의 대학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주 rough하게 '빠른 탈출=명문대 진학', '늦은 탈출=평범대 진학'으로 받아들여도 다단계 스크리닝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ㅍㅍ

      그리고 실제 연구하는데 저 극장 모형을 쓰지는 않을 생각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설계 중인 연구모형에는 당연히 개개인의 진학 후 생애기대후생(life-time expected welfare) 등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게 작용하지. 지적대로 극장 모형(또는 탈출 모형)은 교육문제 연구에 쓰기에는 비현실적인 모형임이 분명하고. 다만 이 글에서는 그 모형에서 시사하는 다단계 스크리닝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시스템이 일본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연상한 것일 뿐이지. 또한 이런 일본의 사례를 봄으로써, 한쪽 측면에만 집중하여 해결책을 찾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정책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경계하려는 의미도 있고. 그나저나 교육 문제는 다들 아이디어 회의를 주구장창 해도 자꾸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야.-_-

  2. chrisx 2008/05/21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x년 뒤면 학부모가 될 예정이다보니(후훗)
    요즘 하신다는 연구의 성과 플러스,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팀장님도 현재 입시전선에서 혈전 중인 학부모이신지라 열의가 대단하시지. 뻔한 결과가 아닌 좀 참신한 대안을 내놔야 할텐데 다들 후덜덜할 뿐이야.T.T

  3. 양성민 2008/05/21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noblenight 2008/05/21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잘 읽고있습니다.
    물론 계층구조의 고착화에 따른 사회적 이동성의 둔화가 지나친 과외열풍을 막을수 있다는 점은 분명 좋은 부분이지만 글쎄요...;
    과연 전체의 공익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적합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직업의 세습화 현상이 나타나서는 안되기에 우리는 교육에 있어 평등권을 강조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셧지만 이건 음의 피드백구조 2개가 상호작용하여 양의 피드백으로 전환되는것이기에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전 듭니다. 단 국가에서 해결해야할 부분은 부작용을 줄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겟죠.. 그러나 이를 뛰어넘어서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의 열기는 존재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 Periskop 홈지기 2008/05/21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일본식 시스템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취지의 글을 적은 것은 아니니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씀하신대로 공익 측면에서 사회적 이동성의 저하 또한 멀건히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골치아픈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사교육 열풍이 지나친 것은 맞는데, 그걸 해결하자고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방면의 고찰이 필요하겠죠. 교육 문제는 워낙 복잡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많이 있습니다만, 정말 그런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숙이 고민을 해봐야 겠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정책 패키지가 나올 길은 과연 없을런지…… -_-

    • noblenight 2008/05/22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쓴글에 오해의 부분이 있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채승병님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그와 관련해서 예전에 선후배들과 토론했던 사실이 생각나서 교육의 특이성을 말씀드린거였습니다. 그토론에서도 채승병님이 말씀하신 출구의 기둥과 같은 대책과 비슷한 대책에 있어 선진국의 사례 주로 영국이나 미국의 사례가 중심이 되겠죠 를 들며 사회적 타당성을 입증하보려고 의견이 있었으나 오히려 반발만 더 커질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갑론을박 하다가 끝나버렷죠
      정책이란 어려운거 같습니다. 함부로 외국의 사례를 채용할수 없지 않습니까? 내가 연못에 던진 돌 하나가 연못 생태계에는 대 재앙의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방법이 옳은지는 그시점 마다 섣불리 판단할수 없는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친구들은 제 의견을 망언이라 하였지만
      전 이문제는 어쩔수 없이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거 같습니다. 결국 선진국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걸 우리가 해보는 것도 괜찮을거 같습니다만 제생각으로는...ㅋㅋ

      괜찮지 않겠습니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사회전체가 자원의 한계성에 걸려 ㄴ넘어지는 그순간까지 기달려 보는것도 말입니다. ㅎㅎ

  5. chrisx 2008/05/21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갑자기 궁금해지는 건, @.@
    사기업 연구소에서 왜이런 정부 정책연구스런 걸 하고 있는 거죠?
    설마 교과부 과제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닐 테고.

    @설마가 사람 잡은 건가요? ㅎㅎ

    • 獨步 2008/05/21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친위대(SS)는 초법적으로 국가의 모든 것을 장악하는게 최종목표이기 때문일 겁니다(움하하).

      넝담이고... 제 생각에는 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 제고라는... 결국은 경제/경영적 측면에서 접근이 시도된게 아닐까 합니다 - 개인적 공상일 뿐입니다.

      어떻든 교육문제는 심각하므로 연구주체야 어떻든 논의가 이루어져야지 않겠습니까. 결론은 SS의 교육사업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되더라도 말이죠(웃음).

    • Periskop 홈지기 2008/05/24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chrisx/ 우리 연구소에도 공공정책실이 있고 연구원도 10여 명이나 되는데?^^ 우리는 씽크탱크를 지향하는 곳이라 계열사 지원 외에도 공공 성격의 연구도 많이 수행하고 있지.

      獨步/ SS Ordnungspolizei 요원들이 들이닥칠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 獨步 2008/05/24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홈지기님/

      만일 그렇다면 SS-HQ와 제 거처와의 거리가 워낙 가까운 탓에 떴다 하면 도피할 시간이 없겠는데요(덜덜). 모처에 마련해놓은 안가로 잠시 피신해야 하나(고민).

      그런데 SS는 제 거처 근처로 HQ를 옮긴 이래 어째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地氣가 안좋은 곳인지(웃음).

  6. 일화 2008/05/21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적 유동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야말로 교각살우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듯 하네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남의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문제라 가끔 고민해봅니다만, 진짜 답이 안나오긴 하더군요. 현재의 교육열은 다소 지나친 감이 있지만 그 자체로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니 어떻게든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텐데, 지금 현상은 완벽한 고비용 저효율 교육이라... 부디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기를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식 있는 분들이 만나기만 하면 교육 문제를 토로하는 것만 봐도 고비용 저효율의 악순환은 매우 심각하죠.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15년 전과는 한참 달라진 환경의 원인을 해체하는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기존 논의에서 얼마나 더 전진할 수 있을런지 고민입니다.

  7. 기린아 2008/05/22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입시전쟁을 없애면서 계급 이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계급을 온전히 고착화 시키고 대신 계급간 평등을 이루는 - 아마도 공산혁명, 또는 잘나가는 북유럽 정도 - 것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OTL;;

  8. 길 잃은 어린양 2008/05/22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정희가 구상만 하다가 실패한 교육정책의 골격이 고등학교를 30%의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와 70%의 실업계로 나눈다는 것 이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구상이 사실상 전제군주였던 박정희의 생전에 처절하게 실패했던걸 보면 한국사회의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욕구는 세계의 어느 지역 보다도 강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비관적이긴 한데 사회적 유동성을 살리면서 교육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지상천국을 현실세계에 도래시키는 것과 비슷한 일 같습니다.

    • 獨步 2008/05/22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승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게 유별나게 강한 이유는 이 사회는 윗대가리가 되면 가지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고 책임질 부분은 필요 이하로 적어지기 때문인 듯 합니다. 솔직히 '남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상승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필기시험만큼은 다른 것과는 다르게 그래도 '나(와 내 자식)도' 한 번 해볼만한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이라는 생각과 연계되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통일신라시대 독서삼품과가 도입된 이후 결국은 과거제라고 할 수 있는 국가단위시험에 열폭하는 분위기의 진정한 폐해는 역설적이게도 '공부 ZOT나게 안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일 겝니다 - 헛공부에 열폭들을 하니 인생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못하는 것 절반 안하는 것 절반이겠죠.

      공부안하는건 좌빨이든 우꼴이든 가리지 않죠. 후자는 뭐 언급할 가치도 없고. 전자의 경우도 모당이 총선전 평등파-자주파 논쟁으로 갈라진 것만 봐도 결국 80년대식 PD-NL 이분법이 지금껏 이어진거 아닙니까? 도대체 세월이 어느 땐데 아직도 저러는지...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지만 결국 이번 광우병에 대한 괴담(?)이 이렇게 확대일로를 걸을 것도 인터넷 등등에 횡행하는 정보를 Screening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부족에 원인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음... 댓글의 댓글이 쓰다보니 또 너무 길어지네요. 저는 길게 글쓰면 특히 해가 지면 안되는 사람인데(웃음). 이만 급히 마칩니다(후다닥).

    • Periskop 홈지기 2008/05/27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회주의 중국도 이미 오래 전부터 사교육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걸 보면, 공산혁명보다도 어려운게 교육문제일지도 모르지요.^^

  9. 델카이저 2008/05/23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어떤 분이 프랑스에서 살다 오셨는데요.. 그 분이 말씀하신 방법은 서울대 하나만 빼고 모든 대학을 평준화 시키는 거였죠..-_-;; 그럼 서울대를 노리는 상위 0.5%는 입시지옥을 겪겠지만 나머지 95.5%는 입시지옥에서 해방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뭐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방법 같기도 하네요..


    ps. 세상에는 꼭 해결할 필요가 없는 문제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5/27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닌게 아니라 프랑스 외에도 그런 방식으로 효과를 보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사교육 경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지만, 국소적으로 몰아버리는 방법이죠. 그런데 이 경우는 상위 1%와 비교하여 99%가 소외되는 느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한국이 순탄히 과연 그런 사회로 넘어갈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연구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10. 별마 2008/05/23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경합니다. 저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지만 저 역시 1,2년 정도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해 나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004년 김태억, 이창용 등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원에서 발표한 자료 <입시제도의 변화(제목 요약)>의 결론 부분이 홈지기께서 소개하신 동아일보 기사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네요(교육부의 대학자율화 억제가 고소득층의 상위권 대학 진학을 오히려 부추겼다는 얘기죠).
    홈지기께서 설명하신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성의 둔화는 사실 한국에서도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제 견해(아무런 연구도 없습니다만)는 대학 진학 등에 여러가지 평가자료를 요구하는 현행 입시제도가 가장 큰 원인 같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수능의 비중을 줄이는 한편 내신,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