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방군 총사령부 공보(Die Berichte des OKW)가 국민을 위해 공표했던 전황과 그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진짜 사건들을 한 번 비교해보자. 여기서는 1942년 6월 1일자 공보를 분석해봤다:
An der Ostfront wurden eigene örtliche Angriffe erfolgreich durchgeführt. Vereinzelte Angriffe des Gegners wurden abgewiesen. Die Luftwaffe bekämpfte mit starker Wirkung militärische Ziele in Stadt und Hafen von Sewastopol.
동부전선에서는 아군의 국지적 공격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적의 산발적인 반격은 격퇴되었다. 공군은 세바스토폴 시가와 항구에 있는 군사 목표를 강타하며 전투를 벌였다.
이날 히틀러는 폴타바(Полтава)의 전진 야전 사령부로 날아가서 동부전선의 주요 지휘관들과 하계공세 전반에 대해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6월 7일부터는 반드시 세바스토폴 공격을 개시하도록 확정된다. 또한 동부전선에 산개되어있던 제8 항공군단(Fliegerkorps Ⅷ) 소속 항공기들의 전진배치가 완료된다. 전진배치된 항공부대는 육군의 1개 장거리정찰 비행중대 및 2개 단거리정찰 비행중대, 공군의 4개 전투 비행대대, 3개 급강하폭격 비행대대, 7개 수평폭격 비행대대 등 600여 대의 항공기에 이르렀다.1
In den Gewässern von Murmansk beschädigten Sturzkampfflugzeuge zwei große Frachtschiffe durch Bombentreffer.
무르만스크로 가는 해역에서는 아군 급강하폭격기들이 직격으로 2척의 대형 화물선을 손상시켰다.
극지 보급선단 PQ-16에 대한 공격 막판 전과를 설명한듯 하다. PQ-16은 아이슬랜드에서 무르만스크(Мурманск)및 아르한겔스크(Архангельск)로의 보급 임무를 띠고 있었으며, 출항한 36척의 화물선 중에 8척이 격침당했다. 이 전과 대부분은 5월 27일에 달성되었다.2
In Nordafrika wurden britische Gegenangriffe unter hohen Verlusten des Feindes abgeschlagen. Deutsche und italienische Jäger schossen am gestrigen Tage in Luftkämpfen 24 britische Flugzeuge ab. Im Verlaufe der bisherigen harten Kämpfe brachten deutsche und italienische Truppen über 2000 Gefangene ein und vernichteten oder erbeuteten über 350 Panzerkampfwagen, 53 Geschütze und zahlreiches anderes kriegsmaterial.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의 반격은 적의 막대한 손실로 귀결되었다.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전투기들은 어제 공중전에서 24대의 영국군 항공기들을 격추시켰다. 지난 치열한 격전으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은 2천 명의 포로를 사로잡았으며, 350대의 전차, 53문의 야포,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전쟁물자를 파괴하거나 노획하였다.
5월 27일에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역사적인 가잘라 요새 전투가 개시된 상황이었다. 비르 하케임 남쪽으로 돌아 영연방군 배후로 진출한 추축동맹군은 보급 추진이 엉망이면서도 격전을 치루고 선전하고 있었다. 북아프리카 역시 전황 보고가 늦게 이뤄지는 전구였으므로 공보는 2~3일 전 소식이 나갔다. 여기서 기술하는 전과는 5월 27-29일 사이의 것이다. 또한 국방군 총사령부 내부 보고서에는 영연방군 전차 손실 전과를 288대로 기술하고 있으나, 공보에서는 다소 과장시켜 내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아프리카군단(DAK) 사령관 크뤼벨(Ludwig Crüwell) 기갑대장은 본인의 정찰기가 격추되어 행방불명이 되었고 — 이때 영국군 진영에 불시착하여 포로가 되었다 —, 제15 기갑사단장 폰 파어스트(Gustav von Vaerst) 소장은 부상을 당했다. 당연히 이런 흉보도 공보에는 실리지 않았다.
An der Kanalküste verlor der Feind am gestrigen Tage 19 Flugzeuge.
영불해협에서는 어제 적이 항공기 19대를 잃었다.
Zur Vergeltung für den Terrorangriff der britischen Luftwaffe auf die Innenstadt von Köln griffen starke Kampffliegerkräfte in der letzten Nacht den Bischofssitz von Canterbury in Südostengland mit Tausenden von Spreng- und Brandbomben an. Die in geringer Höhe und bei guter Sicht anfliegenden Verbände beobachteten große Brände.
쾰른 중심가에 가해진 영국 공군의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밤 아군 폭격기들이 영국 남동부 캔터베리 대주교좌를 수천 개의 고폭탄과 소이탄으로 공격했다. 낮은 고도와 좋은 시야에서 아군 부대들은 거대한 화염을 목격했다.
Einzelne britische Flugzeuge unternahmen in der Nacht zum 1. Juni wirkungslose Störflüge in das westdeutsche Gebiet.
6월 1일 밤에 서부 독일 영토에 대해 산발적으로 전개된 영국군의 폭격 작전은 효과 없이 격퇴되었다.
1942년 5월 30/31일 밤에 걸쳐 아서 해리스의 야심작, 1000기 폭격 작전이 쾰른을 상대로 전개되었다. 1047대의 폭격기(웰링턴 602대, 핼리팩스 131대, 스털링 88대, 햄덴스 79대, 랑카스터 73대, 만체스터 46대, 휘틀리 28대)가 투입된 이 작전에서 영국군은 폭격기 41대를 잃었지만 독일측에 468명의 사망자와 5000명이 넘는 부상자를 야기시켰다.3 또한 6월 1일 밤에는 2대의 모스키토가 쾰른에 출몰했으나 1대가 격추되었다고 한다.4
Der Kampf gegen die Versorgungsschiffahrt Großbritanniens und der Vereinigten Staaten war im Monat Mai besonders erflogreich. Kriegsmarine und Luftwaffe versenkten 170 feindliche Schiffe mit zusammen 924 400 BRT. Außerdem wurden 66 Schiffe durch Bomben- oder Torpedotreffer zum Teil schwer beschädigt. An diesen Erfolgen hat die Unterseebootwaffe, wie schon durch Sondermeldung bekanntgegeben, mit der Versenkung von 140 Schiffen mit zusammen 767 400 BRT besonderen Anteil.
영국과 미국의 수송선단에 대한 전투는 5월에 신기록에 도달했다. 해군과 공군은 적 함정 170척, 총 92만 4400톤을 격침시켰다. 여기에 더해 폭격과 뇌격으로 66척에게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전 특보(特報)에서 밝혔다시피 이 가운데 잠수함무장에 의해 함정 140척, 76만 7400톤이 격침되었다.
전후 집계된 실제 독일 잠수함부대의 1942년 5월 전과는 56만 7782톤이었으며, 이것은 대전 전 기간의 월간 전과 2위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 1위는 바로 다음 달인 1942년 6월의 63만 5126톤이다.5 실로 독일 잠수함부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Bei den letzten Kämpfen auf der Halbinsel Kertsch hat sich der Obergefreiter Entian dadurch besonders ausgezeichnet, daß er in einem Steinbruchgebiet trotz starken feindlichen Feuers allein in eine Höhle eindrang und durch deren Sprengung die Gefangennahme von neun Offizieren und 650 Mann ermöglichte.
케르치 반도에 대한 지난 전투에서 엔티안 병장이 두드러진 무공을 세웠다. 그는 채석장에서 적의 맹렬한 포화를 뚫고 단신으로 동혈에 쇄도하여 9명의 적 장교와 650명의 병사들을 사로잡았다.
여기부터는 뛰어난 전공을 세운 장병들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엔티안 병장의 일화는 이곳 페리스코프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아지무시카이 채석장 전투의 한 장면으로 보인다. 엔티안 병장이 누군지는 다른 자료를 찾지 못했다. 1944년 9월의 독일십자장금장(DKiG) 수훈자 중에 빌헬름 엔티안(Wilhelm Entian) 중사가 있는데, 동일인물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6
Bei den Erfolgen deutscher Unterseeboote vor der amerikanischen Küste hat sich das Boot des Kapitänleutnants Winter besonders ausgezeichnet.미국 연안에서의 독일 잠수함들의 성공 가운데 빈터 소위의 잠수함이 두드러진 무공을 세웠다.
빈터(Werner Winter) 소위는 당시 U-103 함장으로 세운 무공으로 1942년 6월 5일에 기사철십자장(Ritterkreuz)을 수여받는다. 그는 1942년 7월에 브레스트의 제1 잠수함 전대장으로 발령받아 전쟁을 무사히 살아남고 독일연방군에서도 복무했다.7
Bei dem britischen Luftangriff auf Köln haben die dort eingesetzten Luftschutzkräfte, ungeachtet der eigenen Verluste, durch Tatkraft und besonderen Mut eine größere Ausdehnung der Brände verhindert.
영국군의 쾰른 공습에서 방공부대의 희생을 무릅쓴 정렬적이고 용기있는 헌신에 의해 더 큰 화재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쾰른 대공습과 이어진 캔터베리 보복공습 모두 양국의 후안무치 대 민간인 작전의 극치를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쾰른 대성당과 켄터베리 대성당이 모두 전쟁 통에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고나 할까.
- Kurowski, Franz. Sewastopol: Der Angriff auf die stärkste Festung der Welt 1942. Wölfersheim-Berstadt: Podzun-Pallas, 2002. 102.
- PQ-16의 선단 구성에 대해서는 ConvoyWeb을 참조.
- Middlebrook, Martin, and Chris Everitt. The Bomber Command War Diaries: An Operations Reference Book 1939-1945. Revised Ed., Earl Shilton, Leicester: Midland Publishing Ltd., 1996. 271-273.
Caddick-Adams, Peter. "Blitzed by guidebook." BBC News. 27 Mar 2002. 1 Jun 2007. <http://news.bbc.co.uk/2/hi/uk_news/1892714.stm>.
- Middlebrook, Martin, and Chris Everitt. op. cit. 274.
- Boog, Horst, Werner Rahn, Reinhard Stumpf, and Bernd Wegner.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Bd. 6. Der Globale Krieg. Stuttgart: DVA, 1990. 367.
- "ENTIAN, Wilhelm." World War 2 Awards.com. unknown. 1 Jun 2007. <http://www.ww2awards.com/person/4080>.
- "Korvettenkapitän Werner Winter." uboat.net. unknown. 1 Jun 2007. <http://uboat.net/men/winte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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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랑 바스 폭격...그 공습 작전명이 "베데커 작전"이었다죠. 여행안내서 이름을 따서 유적지 폭격을 명명하다니 이건 뭐라고 평을 해야 할지 참.
이 부분도 문제가 있습니다. 베데커 출판사의 여행 가이드북 순서와 폭격당한 도시 순서가 묘하게 맞긴 한데, 독일 공군의 작전 기획에 이 가이드북이 쓰였다는 어떤 문헌이나 증언도 없습니다. 공식적인 작전명도 '베데커'는 아니었습니다. 영국계 문헌들에서 나오는 유일한 방증이라고는 구스타브 브라운 폰 슈툼(Gustav Braun von Sturm)이라는 사람이 "베데커 가이드북에 별 세개 매겨진 도시를 순서대로 보복해주겠다!"라고 했다는 것인데, 정작 이 사람이 실존 인물인고 진짜 그런 말을 했는지 독일측 기록에서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조심스러운 추측은, '구스타브 브라운 폰 슈툼'이라는 인물은 이름부터 엉성한 것이 가공의 인물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군사적 중요성도 없는 도시에 테러 폭격을 가한 양국의 행동이 결코 정당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본 책에서도 그게 공식적인 작전명이라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사실 제가 그 이야기를 본 건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학사전" '여행안내서의 대명사 칼 베데커'항목이었습니다). 전쟁사 책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잡학사전이라 2차대전에 대한 상세한 묘사 따윈 없고, 그 항목 자체가 2차대전이 주제가 아니라 베데커 여행안내서 자체가 주제라서 2차대전에 대해서는 "베데커란 이름은 유럽의 명승지와 어찌나 밀접하게 얽혀 있던지, 2차대전중 영국이 쾰른과 뤼벡을 공습한 데 대한 보복으로 독일이 바스와 캔터베리의 유적을 폭격했을 때, 그 작전은 '베데커 공습'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내용이 전부였거든요. 그러고 보니 제가 윗 리플을 쓸 때는 그나마 책 내용하고도 다르게 썼군요. 내용을 확인해봤어야 하는건가--;;
아마 공식적인 작전명과는 상관없이 참가자들이나 피해자 중 일부가 "이 도시들 다 베데커 안내서에 나오는 거 아냐?"하고 농담삼아 부르기 시작한 게 아니려나요. 정작 당사자도 내가 그런 말 했는지 기억 안 날 정도로--;;
그렇군요. 영국도 당시 당한 'Blitz'에 많이 이가 갈렸는지 여러 설들이 나도는 것 같습니다. 해묵은 문제라고 여겨지던 드레스덴 폭격을 가지고도 아직도 양쪽에서 정당했느냐 아니냐 여부로 책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걸 보면 말입니다.
"스탑카(Stavka) 공보(?)"처럼 독일군도 노골적으로 전과를 과장하고, 피해를 언급하지 않았군요. 간격과 이면을 읽으라는 말은 이래서 생긴 거겠죠.
그나저나 Archive를 슬슬 여시든가 아니면 전처럼 적당히 용어를 정리한 목록이 실린 문서를 게재하셨으면 합니다. 독일 황금십자장과 독일십자장 금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귀가 얇아서 이 글을 보고 독일십자장 금장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훈장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번역명을 찾고 있는데, 능력이 미천해서 성과가 미흡합니다.
추가로 포럼에서 날뛰고 있는 봇도 처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증식에 여념이 없는 스팸을 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같은 시기 사람이 올린 글보다 봇이 올린 글이 더 많습니다. OTL
마지막으로, 전에 제 블로그에서 언급하신 제17 SS 기갑척탄병 사단 괴츠 폰 베를리힝엔 4호 돌격포에 관한 자료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올려주시거나 쪽지로 주셨으면 합니다. 기왕이면 어디 공간을 할애하셔서 공식적으로 정리해 주셨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위키백과에 올릴려고 하는데, 자료도 없는 제가 뭐라고 해봐야 공신력이 없습니다. 채승병 님의 귄위를 통해 공신력을 확보할려고 합니다. 이미 아시는 미싱 링크 사이트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스스로는 귄위가 없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건 보기 나름이고(어차피 고정된 사실은 없지 않습니까. 현시점에서 분명 채승병 님의 주장은 귄위가 있습니다.), 승병 님께서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계시니 신뢰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가 비록 반쪽짜리 백과 사전이지만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굴곡 없는 2차 세계 대전사가 위키 백과에 널리 퍼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나중에 살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올린 자료 중 상당수의 출처가 페리스코프 포럼입니다.)
Archive에 용어정리를 올려야죠. 아아,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으니 제가 시간을 그쪽으로 좀 내보겠습니다. 포럼의 문제는 일단 스팸필터를 제가 설치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회원제 글쓰기로 완전히 가려고 합니다. 조금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GvB 사단에 관해서는 제가 출처 정리가 되는대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裝猫님 때문에 이거 저자 친필사인이 들어간 고색창연한 GvB 사단사를 결국 제가 사야겠군요.
계획대로라면 지금 쯤 하임달에서 나온 쇠주먹 사단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이래저래 일이 꼬여서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설령, 그 책을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돌격포 고증은 힘들었을 걸로 생각됩니다. 히틀러유겐트의 판터 수수께끼처럼 그냥 헤맸겠죠. 채승병 님이시라면 일단의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날로 먹을려고 하는 건데, 무장 친위대 쪽은 잘 다루시지 않으시니 이 기회에 채승병 님이 그쪽을 널리 알려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소매띠 건은 의도적이었다기보다는 우발적인 진상 밝히기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의도적인 무장 친위대 전사 다루기가 채승병 님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관련 의혹과 왜곡된 진실이 좀 더 굴곡이 없는 형태로 세상에 알려지겠죠.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이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책의 개인적인 평가를 간단하게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종종 언급되는 조르주 베르나주 씨의 노르망디의 기갑 부대와 전투입니다.
The Panzers and the Battle of Normandy: 5 June to 20 July 1944, 저자 Bernage, Georges 출판사 Casemate Pub & Book Dist Llc
Zetterling 씨의 언급이 걸려서 이렇게 자문을 구합니다. (체터링 씨에게 안 씹힌 노르망디 전투 연구자가 없더군요.)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라도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얘기하시면 바로 주문할 생각입니다. 세간의 평가보다는 채승병 님의 평인 전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도에 나왔을 때는 영어권에서 평이 꽤 좋은 책이었습니다. 허나 솔직히 저는 유럽에 갔을 때 Heimdal의 프랑스어판 책들을 몇 권 집어온게 있어서 감흥이 덜했습니다. 내용이나 일러스트를 중복해 쓴 것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뭐랄까 이 책은 취향따라 인상이 달라 딱히 추천하기도 그렇고 비추하기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진과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가벼운 책을 원한다면 요즘은 훨씬 저렴하게 구입이 가능하니 괜찮을텐데, 텍스트에 좀 중독이 되어 있고 『Normandy 1944』나 기타 다른 책 몇 권을 이미 봤다면 성에 안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선택은 돈 지불하는 사람의 몫이겠죠. RZM에 올라온 책 정보를 조금 더 보고 결정하시는게 좋을 듯 싶군요. http://www.rzm.com/books/eh/panzersnorm.cfm
답변 감사드립니다. :) 애매한 수준의 서적이라는 거군요. RZM에 실린 정보를 보니 약간 실망을 할 거 같기도 합니다. 중요한 게 텍스트인데, 그게 부실하다고 하면 분명 실망하겠죠. 대충 그림으로 떼울려는 무성의함을 싫어하는지라 꽤나 감안을 해야겠습니다. (가벼운 책들은 일반적으로 부족한 텍스트를 그럴 듯한 사진으로 떼울려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이거 [오스프리] 비슷한 물건 한 권 더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