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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eriskop over Military History</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link>
		<description>군사사와 사회 현안의 지평을 조망하는 관측소</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20 Aug 2008 17:02: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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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eriskop over Military Histor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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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군사사와 사회 현안의 지평을 조망하는 관측소</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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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 주변의 세 마리 암탉</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8</link>
			<description>&lt;p&gt;광복절을 끼고 간단한 여름휴가를 즐기고 오느라 글이 뜸했었다. 비싼 항공료 때문에 바다 건너 이국땅에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소소히 놀러다니며 집안 일하는 재미도 쏠쏠했던 시간이었다. 원래는 그 동안 미뤄뒀던 책들도 잔뜩 읽어 제껴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으나, 일상의 게으름에 취해 기대 만큼은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글감으로 쓸만한 거리는 제법 발견한 것 같아 다행이다. 당분간은 이런 독서거리들을 엮고 엮어 글을 적어볼 생각이다.&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315295952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00&quot; width=&quot;133&quot; /&gt;&lt;/div&gt;보다 자세한 소개는 다른 글에서 하겠지만, 이번에 재밌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lt;a href=&quot;http://evolution.binghamton.edu/dswilson/&quot; target=&quot;_blank&quot;&gt;데이빗 슬론 윌슨(David S. Wilson)&lt;/a&gt;의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m/books?id=pnKwAAAACAAJ&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m/books?id=pnKwAAAACAAJ&quot;&gt;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039;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lt;/a&gt; (만인을 위한 진화론: 다윈의 이론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이다. 윌슨은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Group_selection&quot; target=&quot;_blank&quot;&gt;다층선택이론&lt;/a&gt;으로 유명한 생물학자이고, 우리나라에는 그의 저작 가운데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m/books?id=nMnfISTYnC4C&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m/books?id=nMnfISTYnC4C&quot;&gt;Darwin&#039;s Cathedral&lt;/a&gt;』이 번역 — 우리말 제목은 『종교는 진화한다』 — 되어 있다. 홈지기는 직업상(?) 사회조직, 경제시스템 수준의 진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지를 한창 고민하다보니, 이 부분에 대해 많은 통찰을 주는 윌슨의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윌슨이 일반 대중을 위해 말랑말랑하게 진화에 대해 설명한 책을 내놨다는 것이 어느덧 작년. 진화에 대한 책이야 허다하지만 뭔가 끌리는 마음에 덜컥 재어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책장을 펼쳐들 수 있었다.&lt;/p&gt;
&lt;p&gt;감상? 한 마디로 재밌다. 사연을 들어보니 윌슨이 정말 &quot;Evolution for Everyone&quot;이라는 강의를 개설해서 수강생들을 상대로 펼쳐놓은 내용들이 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8#footnote_128_1&quot; id=&quot;footnote_link_128_1&quot;&gt;1&lt;/a&gt;&lt;/sup&gt; 늘어지는 맛이 없이 짤막짤막한 주제를 엮어가며 책을 완성하는게, 최근 유행하는 대중 교양과학서 스타일을 꽤나 벤치마킹한 것 같다. 실제로 시카고대학의 지구물리학자 &lt;a href=&quot;http://geosci.uchicago.edu/%7Ertp1/&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geosci.uchicago.edu/~rtp1/&quot;&gt;피에르훔버트 교수&lt;/a&gt;는 &#039;진화 분야에서의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m/books?id=bCdQAAAACAAJ&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m/books?id=bCdQAAAACAAJ&quot;&gt;Freakonomics&lt;/a&gt; (괴짜경제학)』 같은 책&#039;이라는 &lt;a href=&quot;http://www.bookmarksmagazine.com/book-review/evolution-everyone/david-sloan-wilso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bookmarksmagazine.com/book-review/evolution-everyone/david-sloan-wilson&quot;&gt;서평&lt;/a&gt;도 쓴 바 있다.&lt;/p&gt;
&lt;p&gt;오늘은 맛보기로 이 가운데 재밌는 이야기 하나만 같이 살펴보자. 참고로 이 이야기는 &lt;a href=&quot;http://www.ansc.purdue.edu/&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ansc.purdue.edu/&quot;&gt;퍼듀대학 동물과학과&lt;/a&gt; &lt;a href=&quot;http://www.ansc.purdue.edu/faculty/muir.htm&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ansc.purdue.edu/faculty/muir.htm&quot;&gt;윌리엄 뮤어(William M. Muir) 교수&lt;/a&gt;의 실제 연구라고 한다.&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5188258547.jpg&quot; alt=&quot;William M. Muir&quot; height=&quot;320&quot; width=&quot;480&quot; /&gt;&lt;p class=&quot;cap1&quot;&gt;제가 지저분한 양계장에서 감동의 연구를 끌어내었지요&lt;/p&gt;&lt;/div&gt;
&lt;p&gt;대부분의 닭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드넓은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무리를 짓고 알을 낳는 환경을 조성해서 인간을 먹여살릴 계란을 조달하기는 힘들 것이다. 기업적인 산란용 양계장에서는 보통 닭장 하나에 9~12마리 정도의 암탉을 가둬놓고 계속 알을 낳게 한다. 닭 입장에서는 지극히 잔인한 환경임이 분명하다. 인간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 이외에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암탉 각각의 계란 생산성을 높여 그나마 적은 생명이 희생되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뮤어 교수는 (이런 인도주의적 취지였을지는 모르겠으나) 계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산란용 암탉(산란계) 품종 개량법을 연구했다. 역시 인위선택을 통해 계란을 잘 낳는 암탉을 대를 이어 선별해내는 법이 좋을 듯 싶었으나, 그는 구체적으로 조금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실험해봤다.&lt;/p&gt;
&lt;ol&gt;&lt;li&gt;양계장의 각 닭장에서 &lt;strong&gt;제일 알을 많이 낳는 암탉 한 마리&lt;/strong&gt;씩을 뽑아 번식시키기를 반복하는 방법&lt;/li&gt;&lt;li&gt;양계장의 모든 닭장 중에 &lt;strong&gt;제일 알을 많이 낳는 닭장 하나&lt;/strong&gt;를 뽑아 그 안의 모두를 번식시키기를 반복하는 방법&lt;/li&gt;&lt;/ol&gt;
&lt;p&gt;인위선택의 단위가 암탉 개체이냐, 닭장이냐의 차이를 둔 것이다. 몇 세대에 걸쳐 이러한 인위선택을 반복하면 과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lt;/p&gt;
&lt;p&gt;얼핏 생각해보면 첫 번째 방법이 효율적일 것 같다. 가장 뛰어난 개체를 직접 선발해서 우수한 형질을 씨내림하는 것이 좀 더 좋지 않겠는가. 반면 두 번째 방법은 아무래도 무임승차자의 폐해(?)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운좋게 닭장 안의 암탉 두세 마리가 우수한 놈이었다면, 나머지 몇 마리의 암탉들은 별로 산란능력이 좋지 않아도 슬쩍 묻어갈만도 하다. 최고의 암탉을 뽑아 경쟁시켜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비효율을 지켜보고 있다니, 이는 양계산업 발전의 심각한 장애물이자 산란계의 과도한 희생을 방조하는 비인도적 처사일지도 모른다.&lt;/p&gt;
&lt;p&gt;뮤어 교수는 그렇게 여섯 세대 번식을 (아마도 대학원생에게) 시키고, 그 결과를 확인하였다. 첫 번째 방법을 반복 사용한 닭장의 모습은 놀라웠다. 왜? 그 아래 계란이 수북히 쌓여 있어서? 아니다. 닭장 안에는 있어야 할 아홉 마리 대신에 단 세 마리만 살아 있었고, 이들 세 마리도 온통 털이 빠진 상태였다. 이 안에서 암탉들은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으면서 피터지게 싸우다가 여섯 마리가 죽고 나머지 세 마리도 기진맥진한 것이었다. 결국 제일 알을 많이 낳던 최고의 암탉들은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남을 핍박하여&lt;/span&gt; — 먹이를 가로챈다던가 자신의 활동공간을 넓힌다던가 —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자신의 생산성을 높인 암탉&lt;/span&gt;이었다. 이 인위선택의 과정은 이런 &lt;strong&gt;공격적이고, 수탈적인 속성을 극대화하는 과정&lt;/strong&gt;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서로가 만만하게 등쳐먹을(?) 대상이 없어지고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모이자 막다른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lt;/p&gt;
&lt;p&gt;반대로 두 번째 방법을 반복 사용한 닭장은 어땠을까? 여기에선 아홉 마리 암탉 모두 건강했으며 여섯 세대 동안 계란 생산성도 매우 높아졌다. 첫 번째 방법과 달리 이 경우에는 남을 핍박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즉 매우 이기적인 속성을 지닌 암탉이 선택될 확률이 낮아진다. 이런 수탈적인 암탉이 존재하는 닭장에서는 다른 암탉들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닭장 전체적인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불편한 환경 속에서 &lt;span style=&quot;color: rgb(0, 0, 255);&quot;&gt;상대방을 배려하며 함께 생산성을 높이는 암탉&lt;/span&gt;들로 이뤄진 닭장이 선택되게 마련이다. 처음 단계에서는 무임승차자들이 끼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세대가 흘러가고 선택이 반복되면서 무임승차자 비율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모두가 살아남은 아홉 마리 암탉들은 좁은 닭장에서 조화롭게 &lt;strong&gt;공존하는 속성을 유지&lt;/strong&gt;한 채로 &lt;strong&gt;생산성을 높이는 형질을 획득&lt;/strong&gt;한 것이었다.&lt;/p&gt;
&lt;p&gt;이처럼 &lt;strong&gt;경쟁과 선택의 단위&lt;/strong&gt;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lt;strong&gt;극적으로 다른 결과&lt;/strong&gt;를 낳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이것은 비단 계란을 낳는 암탉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 내용을 인간사회로 투영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임을 다들 아실 것이다. 암탉에게 시행된 인위선택이 효과를 발휘하듯이, 인간조직에서도 경쟁과 선택은 생산성과 복리를 증진시키는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떤 경쟁과 선택의 규칙은 첫 번째 인위선택 방법처럼 황폐화한 조직과 사회만을 남기기도 한다.&lt;/p&gt;&lt;p&gt;많은 경우 일부의 비효율로 보이는 개별 요소를 제거하려고 조급하게 처신하는 것보다, 공존과 조화의 미덕을 보존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인 생존과 성공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기업경쟁에 있어서도 근래 개별 회사 단위의 이익 극대화에 급급하지 않고, 연대를 통해 기업생태계(business ecosystem)을 구축한 기업연합들이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의 모토가 강조될수록,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쌓아올린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너무도 쉽게 내쳐지지 않는지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8_2&quot; id=&quot;footnote_link_128_2&quot;&gt;2&lt;/a&gt;&lt;/sup&gt;&lt;/p&gt;
&lt;p&gt;이 책의 저자 윌슨은 이 연구에 심히 감명받아 그의 동의를 구하고 다른 자신의 강연에서도 이 사례를 소개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강연이 끝나고 한 교수가 헐레벌떡 와서는 외쳤다고 한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저 첫 번째 닭장이 바로 우리 학과군요! 저 세 암탉&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8_3&quot; id=&quot;footnote_link_128_3&quot;&gt;3&lt;/a&gt;&lt;/sup&gt; 이름도 댈 수 있어요!&lt;/p&gt;
&lt;/blockquote&gt;
&lt;p&gt;자, 여러분의 주변에도 &lt;span style=&quot;color: rgb(255, 0, 0);&quot;&gt;세 마리 암탉&lt;/span&gt;이 있습니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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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li id=&quot;footnote_128_2&quot;&gt;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개발정책, 경영전략, 인사제도 등의 사례를 알고 있으니 나중에 천천히 소개해보겠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128_2&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li id=&quot;footnote_128_3&quot;&gt;노파심에서 적지만, 이 글 전체에 나오는 &#039;암탉&#039;은 사람의 실제 성(性)과는 전혀 무관하다. 계란을 낳는게 암탉이다보니 불가피하게 쓴 표현이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128_3&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ol&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심야잡상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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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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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9 Aug 2008 13:3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일본의 실책을 틈타 순항하는 인천공항</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7</link>
			<description>&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7935862772.jpg&quot; alt=&quot;週刊東洋経済&quot; height=&quot;160&quot; width=&quot;120&quot; /&gt;&lt;/div&gt;지난 7월 26일자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toyokeizai.co.jp/mag/toyo/index.html&quot; href=&quot;http://www.toyokeizai.co.jp/mag/toyo/index.html&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간 도요게이자이(週刊東洋経済)&lt;/a&gt;』에는 재밌는 표지기사가 실렸다. 세계 항공수요를 두고 벌어지는 각국 공항 및 항공사들의 각축을 소개하는 특집 「エアポート ＆ エアライン(공항&amp;amp;항공사)」이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내용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내용의 많은 부분을 우리 한국의 인천공항에 할애한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내용인즉슨, 일본의 잘못된 공항 관련 정책으로 인해 &lt;strong&gt;항공수요 상당 부분을 인천공항에 뺏기고 있다는 것&lt;/strong&gt;이었다.&lt;/p&gt;
&lt;p&gt;&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ja.wikipedia.org/wiki/%E6%88%90%E7%94%B0%E5%9B%BD%E9%9A%9B%E7%A9%BA%E6%B8%AF&quot;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6%88%90%E7%94%B0%E5%9B%BD%E9%9A%9B%E7%A9%BA%E6%B8%AF&quot; target=&quot;_blank&quot;&gt;나리타(成田)공항&lt;/a&gt;이라는 굴지의 공항에다가, 오사카에도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ja.wikipedia.org/wiki/%E9%96%A2%E8%A5%BF%E5%9B%BD%E9%9A%9B%E7%A9%BA%E6%B8%AF&quot;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9%96%A2%E8%A5%BF%E5%9B%BD%E9%9A%9B%E7%A9%BA%E6%B8%AF&quot; target=&quot;_blank&quot;&gt;간사이공항&lt;/a&gt;을 갖춘 일본이 도대체 왜 이런 죽는 소리를 내고 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기사를 읽을수록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재밌는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먼저 그 차이를 비교해보기 위해 일본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할 경우의 예상시간표를 살펴보자.&lt;/p&gt;
&lt;p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사례1. &lt;a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4%BB%99%E5%8F%B0%E7%A9%BA%E6%B8%AF&quot; target=&quot;_blank&quot;&gt;센다이(&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span class=&quot;t_nihongo_kanji&quot;&gt;仙台)&lt;/span&gt;&lt;/span&gt;&lt;/a&gt;⇒호치민(베트남) 여행&lt;/p&gt;
&lt;ul&gt;
&lt;li&gt;나리타공항을 경유할 경우: 
&lt;ul&gt;
&lt;li&gt;08시20분 센다이 출발(NH3232:&lt;a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5%85%A8%E6%97%A5%E6%9C%AC%E7%A9%BA%E8%BC%B8&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일본공수&lt;/a&gt;) → 09시25분 나리타 도착, 수하물 픽업해서 다시 체크인 → 18시05분 나리타 출발(JL759:&lt;a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6%97%A5%E6%9C%AC%E8%88%AA%E7%A9%BA%E3%82%A4%E3%83%B3%E3%82%BF%E3%83%BC%E3%83%8A%E3%82%B7%E3%83%A7%E3%83%8A%E3%83%AB&quot; target=&quot;_blank&quot;&gt;일본항공&lt;/a&gt;) → 22시15분 호치민 도착 
&lt;/li&gt;&lt;li&gt;항공료 10만 7600엔 &lt;/li&gt;&lt;/ul&gt;
&lt;/li&gt;&lt;li&gt;인천공항을 경유할 경우: 
&lt;ul&gt;
&lt;li&gt;&lt;strong&gt;13시30분&lt;/strong&gt; 센다이 출발(OZ151:&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Asiana_Airlines&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시아나항공&lt;/a&gt;) → 16시00분 인천 도착, 수하물 자동 연결 → 20시10분 인천 출발(OZ731) → 23시40분 호치민 도착 
&lt;/li&gt;&lt;li&gt;항공료 11만 6000엔 &lt;/li&gt;&lt;/ul&gt;&lt;/li&gt;&lt;/ul&gt;
&lt;p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사례2. &lt;a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7%A6%8F%E5%B2%A1%E7%A9%BA%E6%B8%AF&quot; target=&quot;_blank&quot;&gt;후쿠오카(福岡)&lt;/a&gt;⇒로스엔젤레스(미국) 여행&lt;/p&gt;
&lt;ul&gt;
&lt;li&gt;나리타공항을 경유할 경우 1: 
&lt;ul&gt;
&lt;li&gt;12시00분 후쿠오카 출발(NH2144) → 13시45분 나리타 도착, 수하물 자동 연결 → 17시10분 나리타 출발(NH006) → 다음날 11시10분 로스엔젤레스 도착 
&lt;/li&gt;&lt;li&gt;항공료 17만 엔 &lt;/li&gt;&lt;/ul&gt;
&lt;/li&gt;&lt;li&gt;나리타공항을 경유할 경우 2: 
&lt;ul&gt;
&lt;li&gt;12시00분 후쿠오카 출발(NH2144) → 13시45분 나리타 도착, 수하물 픽업해서 다시 체크인 → 15시45분 나리타 출발(NW002:&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Northwest_Airlines&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스웨스트항공&lt;/a&gt;) → 다음날 09시40분 로스엔젤레스 도착 
&lt;/li&gt;&lt;li&gt;항공료 14만 3000엔 &lt;/li&gt;&lt;/ul&gt;
&lt;/li&gt;&lt;li&gt;인천공항을 경유할 경우: 
&lt;ul&gt;
&lt;li&gt;17시20분 후쿠오카 출발(OZ133) → 18시50분 인천 도착 → 20시20분 인천 출발(OZ204) → 다음날 15시50분 로스엔젤레스 도착 
&lt;/li&gt;&lt;li&gt;항공료 &lt;strong&gt;11만 9800엔&lt;/strong&gt; &lt;/li&gt;&lt;/ul&gt;&lt;/li&gt;&lt;/ul&gt;
&lt;p&gt;첫 번째 사례에서 보듯이, 일본 지방공항에서 나리타를 거쳐 외국에 갈 경우, 연결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도쿄만 해도 국내선은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ja.wikipedia.org/wiki/%E6%9D%B1%E4%BA%AC%E5%9B%BD%E9%9A%9B%E7%A9%BA%E6%B8%AF&quot;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6%9D%B1%E4%BA%AC%E5%9B%BD%E9%9A%9B%E7%A9%BA%E6%B8%AF&quot; target=&quot;_blank&quot;&gt;하네다(羽田)공항&lt;/a&gt;이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리타에 취항하는 편수 자체가 적다. 그러다 보니 행선지에 따라 나리타공항에서 &lt;span style=&quot;color: rgb(255, 0, 0);&quot;&gt;속절없이 연결편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lt;/span&gt;한다. 센다이에서 호치민을 갈 경우 무려 8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도 국내선은 김포, 국제선은 인천으로 이원화되어 있지만, 둘 다 서울 서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상호 이동이 그나마 낫다. 공기수송전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lt;a href=&quot;http://www.arex.or.kr/index.jsp&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항철도&lt;/a&gt;를 이용하면 진짜 금방이다. 반면 하네다에서 나리타로 가려면 일단 도쿄 시내로 들어왔다 가야 하므로 이동하는데도 꽤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lt;/p&gt;
&lt;p&gt;두 번째 사례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후쿠오카같은 서일본 지방에서는 미국을 가더라도 나리타를 이용하나 인천을 이용하나 &lt;span style=&quot;color: rgb(255, 0, 0);&quot;&gt;시간 차이는 거의 없다&lt;/span&gt;. 그런데 인천을 이용하는 편이 &lt;strong&gt;항공료가 훨씬 싸다&lt;/strong&gt;. 시간의 이점이 없으면 가격이라도 싸니 짠돌이 일본인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lt;/p&gt;
&lt;p&gt;더군다나 일본 각지의 공항과 연결노선이 많은 공항 순위를 따져보면 놀랍게도 인천공항이 4위(25노선)이다. 1위는 하네다공항(48노선), 2위는 오사카의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ja.wikipedia.org/wiki/%E5%A4%A7%E9%98%AA%E5%9B%BD%E9%9A%9B%E7%A9%BA%E6%B8%AF&quot;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5%A4%A7%E9%98%AA%E5%9B%BD%E9%9A%9B%E7%A9%BA%E6%B8%AF&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타미(伊丹)공항&lt;/a&gt;(32노선), 3위는 &lt;a href=&quot;http://ja.wikipedia.org/wiki/%E9%82%A3%E8%A6%87%E7%A9%BA%E6%B8%AF&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키나와공항&lt;/a&gt;(29노선)이다. 오키나와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국제선을 이용하느라 하네다→나리타로 이동하거나 이타미→간사이로 이동해야하는 불편은 인천공항을 이용함으로써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단순한 노선 수뿐만 아니라 빈도에서도 앞선다. 후쿠오카같은 서일본 지역의 경우는 후쿠오카↔나리타가 1일 2편인데 반해, 후쿠오카↔인천이 1일 5편에 이른다. 심지어 인천공항에서 다른 3국으로의 취항도시 수는 나리타공항의 그것보다도 더 많다. 이 잡지가 인터뷰한 한 항공관계자는 &quot;&lt;strong&gt;서일본은 완전히 인천공항이 제패했다&lt;/strong&gt;&quot;는 분석까지 하고 있다.&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7477286679.jpg&quot; alt=&quot;일본 지방도시 연결 항공노선&quot; height=&quot;440&quot; width=&quot;480&quot; /&gt;&lt;p class=&quot;cap1&quot;&gt;일본의 지방도시와 인천(붉은선) 및 나리타(푸른선)를 연결하는 항공노선&lt;/p&gt;&lt;/div&gt; 
&lt;p&gt;이뿐만이 아니다. 일본도 지금 우리나라의 개점휴업 상태인 지방공항들처럼 수요부족으로 골머리를 썩는 공항들이 제법 있다. 일본은 워낙 철도 인프라가 잘 되어있어 국내 이동을 비행기로 할 수요가 제한적이다. 국내선 손님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으니 지방공항 입장에서도 국제선을 유치해야 하고, 가까운 한국이 이에 가장 적합하다. 일본 각지로 온천 즐기고, 골프 치고, 스키 타고, 쇼핑 즐기러 가는 우리 한국 관광객부터 많이 늘지 않았는가. 이들을 유치하고 남는 좌석은 각 지방 주민들의 한국 또는 여타 해외여행 수요로 채우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해 인천으로 가면 수하물을 다시 찾을 필요도 없다. 인천공항 내부에 일본인 환승객들을 위한 서비스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일본 내 관문공항들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각 현(縣) 정부로서는 지역민들에게 저렴한 해외여행수단을 마련한다는 명분도 선다. 이 때문에 니가타(新潟)에서 인천으로 가서 국제선으로 환승하는 승객만도 2005년에 비해 올해는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한다.&lt;/p&gt;
&lt;p&gt;이런 점 때문에 나리타공항은 자국 인구 대비 국제여행객 비율이 단 27%에 불과한데, 인천공항은 현재 65%에 이른다(2007년 4월~2008년 3월 이용객 통계). 일본이 인구는 한국의 2.5배에 이르면서도 대표관문공항의 국제여행객 수는 3000만 명 정도로 비슷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lt;strong&gt;나리타공항이나 간사이공항으로 갈만한 수요를 인천이 제법 흡수&lt;/strong&gt;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국제여행객 수 상위 공항들은 역시 여러 나라들이 밀집한 유럽 지역에 위치해있다. 국제여행객 수가 세계 최대인 런던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London_Heathrow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히드로공항&lt;/a&gt;이 자국 인구 대비 국제여행객 비율 102%, 2위인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aris-Charles_de_Gaulle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샤를드골공항&lt;/a&gt;이 87%, 3위인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Amsterdam_Airport_Schiphol&quot; target=&quot;_blank&quot;&gt;스키폴공항&lt;/a&gt;이 288%, 4위인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Frankfurt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프랑크푸르트공항&lt;/a&gt;이 58%를 차지하고 있다.)&lt;/p&gt;
&lt;p&gt;그래서 도요게이자이誌는 이 경쟁 열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약점 투성이인 나리타공항의 보완을 주문하고 있다. 나리타공항은 일단 3가지 보완 필요점이 있다.&lt;/p&gt;
&lt;ol&gt;
&lt;li&gt;주변 소음문제 때문에 23시~06시 동안 이륙이 금지되어 있다. 이 때문에 나리타에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항공편들 시간대가 몰려 있어 다른 지역에서 오는 승객들이 시간을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운영시간을 늘리고 선택 시간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lt;/li&gt;&lt;li&gt;활주로가 엉망이다. 특히 제2활주로가 문제인데, 나리타공항 건설 당시 용지매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비행기 유도로가 희한하게 굽어 있다. 이 때문에 활주로를 연장해도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Airbus_A380&quot; target=&quot;_blank&quot;&gt;에어버스 A380&lt;/a&gt;이 뜨지 못할 형편이다. 더군다나 기존 활주로 용량은 이미 포화상태라 두바이행 직항편을 띄울 수도 없을 정도이다. 이건 막대한 투자로 활주로를 추가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 
&lt;/li&gt;&lt;li&gt;도심에서 너무 멀다.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계 주요 대도시 중에서는 도심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공항에 속한다. 이것은 현재 연결 고속철 노선들을 추가 건설하고 있으니 그나마 나아질 가망이 더 있어 보인다고 한다. &lt;/li&gt;&lt;/ol&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9885355023.jpg&quot; alt=&quot;第2滑走路&quot; height=&quot;359&quot; width=&quot;400&quot; /&gt;&lt;p class=&quot;cap1&quot;&gt;나리타공항 제2활주로. 활주로 반대 끝편 유도로가 직선이 아니라 안쪽으로 움푹 들어온 것이 보인다.&lt;/p&gt;&lt;/div&gt;
&lt;p&gt;결국 나리타공항만 기대하기 어렵다면, 규제를 풀어 &lt;strong&gt;하네다공항을 다시 국제선 공항으로 대폭 활용&lt;/strong&gt;하자는 의견이 비등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한-중-일 셔틀노선만 취항하고 있는 하네다공항을 다시 국제선 공항으로 활용한다면, 일본 지방 여행객들의 환승 불편을 크게 줄이고 다시 이들을 끌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역시 일본이 어디 개혁이 쉬운 나라인가. 하네다공항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해관계자가 대단히 복잡해서 이들을 조정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하네다공항은 우선 겉보기는 국가 직할관리 공항이다. 그런데 하네다공항 내부에서 활주로와 기본시설은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데 반해, 터미널과 상업시설은 또 다른 회사가 관리하고, 주차장은 또 다른 재단법인이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네다공항 하나에서만도 운영주체가 복잡한데, 나리타공항과의 알력은 더 심각하다. 이들 양 공항이 국제선 및 국내선 노선을 조정하려고 할 때마다 정치권부터 들썩인다. 나리타가 소재한 치바현과 도쿄도의 알력이 많이 작용하다보니 양 공항을 조율한 통일된 전략 수립이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오사카를 두고 효고현의 이타미공항과 간사이공항이 티격태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lt;/p&gt;
&lt;p&gt;이것은 공항 운영에 있어 경쟁구도의 설계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일본처럼 정-관-재계까지 이해관계가 얽힌 구도가 물론 정상적인 경쟁구도라 할 수는 없겠지만 — 고질적인 나눠먹기의 소산 —, 일본도 겉으로는 경쟁의 장점을 내세워 저렇게 주요 공항기능을 쪼개놨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는 이렇게 지방승객은 유출되면서도 별반 손을 쓰지도 못하는 절름발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도요게이자이誌는 궁극적으로 선진국들과 같이 &lt;strong&gt;대도시 주변 공항들의 운영주체를 일원화&lt;/strong&gt;하여 항공편 배분 전략을 일목요연하게 짤 수 있도록 해야함을 역설하고 있다. BAA(런던)가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London_Heathrow_Airport&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London_Heathrow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히드로&lt;/a&gt;,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London_Gatwick_Airport&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London_Gatwick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개트윅&lt;/a&gt;,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London_Stansted_Airport&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London_Stansted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스탠스테드공항&lt;/a&gt;을 모두 관리하고, ADP(파리)가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Paris-Orly_Airport&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aris-Orly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를리&lt;/a&gt;,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Paris-Charles_de_Gaulle_Airport&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aris-Charles_de_Gaulle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샤를드골공항&lt;/a&gt;을 관리하며, SEA(밀라노)가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Milan_-_Malpensa_Airport&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Milan_-_Malpensa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말펜사&lt;/a&gt;, &lt;a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Linate_Airport&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Linate_Airport&quot; target=&quot;_blank&quot;&gt;리나테공항&lt;/a&gt;을 관리하듯 말이다.&lt;/p&gt;
&lt;p&gt;눈치 빠르신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애초에 이 기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 인천공항이 MB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첫 물망에 오른 문제 때문이었다. 일본의 이런 관리 난맥상이 인천공항에게는 큰 기회가 되고 있으니 당장은 좋지만, 섣부르게 민영화 문제에 접근하다가 우리도 이런 실수를 반복 — 죽 쒀서 왕서방주는 —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홈지기는 직장 관계상 현재 인천공항 민영화 추진이 단순히 좋다/나쁘다는 입장을 단정적으로 쓰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민영화 자체보다도, 그 이후 운영주체가 이런 거시적인 시각에서 주변 국가 지방공항 및 국내 항공사들과 전략적 관계를 확대하고, 서비스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지가 더 관건이라는 점만 밝히고 싶다. 진정 우리가 성장해오며 잠시 경쟁에서 밀쳐낸 이들이 어떻게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지, 항상 귀 기울여가며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때이다.&lt;/p&gt;
&lt;p&gt;P.S. 기실 MB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들도 민영화 여부 그 자체보다도 훨씬 들여다봐야할 세세한 문제들이 많은데, 다들 너무 표면적인 부분에만 매몰되어있지 않나 싶어 안타까운 점도 더하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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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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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blog.periskop.info/127#entry127comment</comments>
			<pubDate>Wed, 13 Aug 2008 21:55: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박정희 경제성장 성공요인의 데자뷰</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6</link>
			<description>&lt;p&gt;지난 달부터 몇몇 대인들께서 박정희 정권 하의 경제성장을 시작으로 &lt;a href=&quot;http://sonnet.egloos.com/3049566&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sonnet.egloos.com/3049566&quot;&gt;흥미로운 토론&lt;/a&gt;을 한창 진행하신 바 있다. 홈지기는 사실 거시적인 경제성장론은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간간히 지켜보기만 할 뿐 별달리 참여할 생각은 안 했다. 당장 처리해야할 과제도 여럿 있어서 깊이 발을 담글 여유도 없고 말이다. 빨랑 밥벌이 일을 마무리해야 홈지기도 휴가를 떠나지 않겠는가.&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7511365137.gif&quot; alt=&quot;The East Asian Miracle&quot; height=&quot;148&quot; width=&quot;120&quot; /&gt;&lt;/div&gt;그런데 며칠 전에 순명大帝께서 쓰신 &lt;a href=&quot;http://sonnet.egloos.com/3851742&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sonnet.egloos.com/3851742&quot;&gt;수출주도정책으로의 전환에 대한 글&lt;/a&gt;을 보니, 이 내용을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스쳤다. 홈지기는 사실 자료를 체계적으로 스크랩하고 색인을 다는 데 영 서툴러서 이럴 경우 종종 헤매고는 한다. 결국 그게 어디였을까 어제부터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오늘 직장 정보센터에서 한참을 뒤적거리다 그 소스를 찾았다. 동아시아의 발전에 대해 다룬 역작으로 꼽히는 세계은행의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m/books?id=jKOCAAAACAAJ&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m/books?id=jKOCAAAACAAJ&quot;&gt;The East Asian Miracle: Economic Growth and Public Policy&lt;/a&gt;』의 내용이었다. 이 책은 &lt;a href=&quot;http://web.worldbank.org/WBSITE/EXTERNAL/COUNTRIES/AFRICAEXT/EXTAFROFFCHIECO/0,,contentMDK:20722941%7EisCURL:Y%7EmenuPK:1808666%7EpagePK:64168445%7EpiPK:64168309%7EtheSitePK:1205436,00.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eb.worldbank.org/WBSITE/EXTERNAL/COUNTRIES/AFRICAEXT/EXTAFROFFCHIECO/0,,contentMDK:20722941~isCURL:Y~menuPK:1808666~pagePK:64168445~piPK:64168309~theSitePK:1205436,00.html&quot;&gt;존 페이지(John Page)&lt;/a&gt;의 지휘 하에 신제도주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분석한 보고서인데, 발간된 지 15년이 지났음에도(1993년 발간) 여전히 이 방면의 중요한 저작으로 인용되고 있다.&lt;/p&gt;
&lt;p&gt;여기에는 동아시아 고성장 국가들이 펼친 공공정책의 특징이 어떻게 설명되는지 우선 세 가지 시각 — 신고전파, 수정주의, 시장친화 — 을 제시하고, 각각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복합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진은 여기에 성장의 다중경로(multiple paths to growth)라는 이름을 붙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 동아시아의 경험으로부터 각 요소들이 어떻게 고성장에 기여하느냐를 보기는 쉽다. 그러나 지역 전체에 걸친 단일한 레서피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다. 대안적인 접근법은 각국이 취한 정책들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정책들의 여러 가지 조합이 어떻게 경제 운영의 세 가지 중심 기능(축적, 배분, 생산성 향상)의 성공적인 수행에 기여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개발에 핵심적인 중심 기능들은 항상 처리되어야 하지만,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정책은 전술처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lt;/span&gt;고 인식한다.&lt;/p&gt;
&lt;p&gt;고성과 동아시아 경제(&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High_Performing_Asian_Economies&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High_Performing_Asian_Economies&quot;&gt;high performing Asian economies&lt;/a&gt;, 이하 HPAE)의 경제정책 수립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서의 &lt;strong&gt;실용적 유연성&lt;/strong&gt;이다. &lt;span style=&quot;color: rgb(0, 0, 254);&quot;&gt;효과를 발휘하는 도구들은 유지&lt;/span&gt;된다.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실패하거나 다른 정책 목표들을 방해하는 도구들은 포기&lt;/span&gt;된다……&lt;/p&gt;
&lt;p&gt;&lt;strong&gt;분산적이고, 변화하면서도 의도적인 정책 조합&lt;/strong&gt;을 구사하는 HPAE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경제들은 겉보기에도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성공적이지 못한 정책에 완고히 집착&lt;/span&gt;하거나 — 예를 들어, 남미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수입 대체 정책, 인도의 독자 기술 개발 정책, 동유럽의 국가 주도 산업화 정책 등이 장기간 고수된 것 —, 다른 지역의 몇몇 경제들의 조정 프로그램의 역사가 입증하듯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의도적인 방향 설정을 결여&lt;/span&gt;하고 있었다……&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6#footnote_126_1&quot; id=&quot;footnote_link_126_1&quot;&gt;1&lt;/a&gt;&lt;/sup&gt;&lt;br&gt;&lt;/p&gt;
&lt;/blockquote&gt;
&lt;p&gt;이미 15년 전에 세계은행의 연구진들도 단일한 경제성장의 성공 공식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교적 성공적인 발전을 이뤄온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견 유사하면서도 또 저마다 다른 정책을 구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뭔가 공통적인 요인을 판별한다면,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정책의 유연성&lt;/span&gt;을 핵심으로 꼽았던 것이다. 순명大帝도 지적했듯이, 박정희 초기의 경제성장 정책에 있어서도 1962~65년 무렵에는 제1차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와중에서 온갖 시행착오가 있었다. 초기에는 잘못된 방향설정으로 인해 사실상의 외환위기로 고전했지만, 박정희는 테크노크라트들에게 권한을 폭넓게 위임하고 조정 역할을 강화하는 유연성을 보이며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세계은행의 연구팀은 이외에도 1970년대 말~1980년대 초기의 중공업 위주 경제정책의 후유증으로 시달린 한국 경제를 다시 궤도에 올린 일 등을 유연성의 사례로 들고 있다.)&lt;br&gt;&lt;/p&gt;
&lt;p&gt;홈지기는 복잡계적 관점을 좋아하는지라 이 설명을 보고 아주 흥분했었던 기억이 있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수많은 경영 서적에서 제시하는 류의 일관되게 우월한 성공 공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처한 경쟁환경, 산업환경에 따라 똑같은 전략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결국 경직된 전략과 행동패턴을 버리고, 의도적인 기업 건전성 유지 목표에 따라 폭넓은 조정기능을 발휘해가며 유연하게 적응하는 기업이 살아남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국가 발전에 대해서도 세계은행이 이와 일맥상통하는 논거를 이미 제시해줬다니 어찌 기쁘지 아니했겠는가. (그런데 왜 잊어먹었을까.=_=) 이 책은 물론 다른 관점에서의 비판도 제기되었고,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미흡한 점도 눈에 밟힌다. 그래도 홈지기는 여전히 군데군데 잘 뜯어봐야할 훌륭한 보고서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순명大帝도 독자적으로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니 감탄할 따름이다.&lt;/p&gt;
&lt;p&gt;글을 닫기 전에 이 책에서 홈지기가 제일 와닿았던 말 하나만 소개하자:&lt;/p&gt;
&lt;blockquote&gt;
&lt;p&gt;동아시아는 운이 좋았던 게 아니라 &lt;strong&gt;애자일(agile)&lt;/strong&gt;했다.&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6_2&quot; id=&quot;footnote_link_126_2&quot;&gt;2&lt;/a&gt;&lt;/sup&gt;&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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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li id=&quot;footnote_126_2&quot;&gt;같은 책 (pp. 117). &lt;a href=&quot;#footnote_link_126_2&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ol&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심야잡상록</category>
			<category>경제성장</category>
			<category>박정희</category>
			<category>복잡계</category>
			<category>수출주도</category>
			<category>실용</category>
			<category>애자일</category>
			<category>유연성</category>
			<category>테크노크라트</category>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guid>http://blog.periskop.info/126</guid>
			<comments>http://blog.periskop.info/126#entry126comment</comments>
			<pubDate>Thu, 07 Aug 2008 17:3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어떤 홍보 전문가의 처칠 진단</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5</link>
			<description>&lt;p&gt;다음은 어떤 홍보 전문가가 모 언론사의 요청에 따라 1942년에 처칠의 대중 화술을 진단한 글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최근 한 중립 언론사가 처칠 씨는 어떻게 영국 여론에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어왔다. 최악의 반전과 사기를 꺾는 패배들, 초기의 의심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국 대중은 이 영리한 문장가에 사로잡혀 그의 우둔한 정책과 군사 리더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질문은 대답하기에 쉬우면서도 어렵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은, 처칠 씨는 정치와 군사 리더십 양면에서 전략적 감각이 전혀 없긴 해도, &lt;strong&gt;비상하게 능란한 전술가&lt;/strong&gt;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적 정당과 언론을 다루는 리더십에서는 &lt;strong&gt;거장&lt;/strong&gt;이며, 현존하는 영국 정치인들 가운데 &lt;strong&gt;최고&lt;/strong&gt;이다. 알려진대로 딱히 대단한 지성을 타고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의 수법은 누구나 생각할만큼 원시적이기도 하다. 그의 아이디어들은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않고, 누구든 그가 말하거나 행할 바를 그대로 예측할 수 있다. 언제나 마찬가지이다.&lt;/p&gt;
&lt;p&gt;그가 영국 수상에 취임했을 때, 그는 후퇴나 패배를 망라한 어떤 정치적, 군사적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끝까지 버텨내겠다는 슬로건을 선언했다. 이는 모든 비난을 막아 주었다: &quot;&lt;a href=&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1&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1&quot;&gt;피와, 땀과 눈물&lt;/a&gt;&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5#footnote_125_1&quot; id=&quot;footnote_link_125_1&quot;&gt;1&lt;/a&gt;&lt;/sup&gt;.&quot; 이런 슬로건 하에서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날 위험 없이, 쓰디쓴 결말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승리한다면 대중은 그런 슬로건 따위를 기억해내진 못할테고, 패배한다면 그는 예언가인 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칠 씨는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 병상 옆에 서서 이런 말을 하는 의사와 같다: &quot;이 분 돌아가시겠군요.&quot; 환자 상태가 더 악화되거나, 죽는다면, 그는 옳은 것으로 판명난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의 탁월한 예지력을 자랑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환자가 호전되거나, 낫는다고 해도, 어느 누가 의사 말과 달리 병세가 호전되었다며 그 의사를 비난하겠는가?&lt;/p&gt;
&lt;p&gt;누구도 이런 수법이 영리하다던가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는 이게 먹힌다. 지금 이 순간까지, 처칠 씨는 그렇게 해 왔다. 예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그의 속임수로부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도는 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주 동안 벌어진 대영제국의 심각한 패배 뒤에, 그는 분명 바로 이런 상황을 예상해왔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의 선견지명은 대중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lt;/p&gt;
&lt;p&gt;우리는 처칠 씨가 두 달 뒤에 이야기할 바를, 그리고 당장 오늘 이야기할 바를 예측할 수 있다. 그의 수법 중 하나는 과거를 가장 암담한 시기로 색칠하고는, 현실에서 은빛 서광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도 그가 상황을 회색빛 정도로 봤던 지난 8월 연설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그가 오늘 이야기하는 것만 보고서 그 때 체감하던 심각성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을 과거보다 더 좋아 보이게 하기 위해, 과거가 더 나빴던 것처럼 만드는게 그의 수법이다! 이건 사실에 반하지만, 그는 대중의 망각에 의존한다. 대중은 그가 지난 8월에 정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찾아보고 오늘 한 이야기와 비교해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lt;/p&gt;
&lt;p&gt;……&lt;/p&gt;
&lt;p&gt;그는 그 자신과, 그의 정책 또는 전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불편함을 다루는 대단히 영리한 술책을 갖고 있다. 그는 &lt;span style=&quot;color: rgb(255, 0, 0);&quot;&gt;비난 비스무리한 것들은 허용&lt;/span&gt;한다. 대영제국이 타격을 입고 비틀거릴 때, 그는 잠시 무대 뒤로 물러나 대중들이 비난을 퍼붓도록 내버려둔다. 말하자면 그는 밸브를 활짝 열고, 대중들의 분노가 흩어지도록 한다.&lt;/p&gt;
&lt;p&gt;이게 그의 뜻에 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게임을 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는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대중이 가장 시끄럽게 목소리를 외치면 곧 목이 쉴 것&lt;/span&gt;임을 안다. 이른바 처칠판 위기가 정점에 다다르면, 그는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Deus_ex_machina&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Deus_ex_machina&quot;&gt;데우스 엑스 마키나&lt;/a&gt;로 등장할 것이다. 그는 파도를 잠재우고, 술에 물을 탈 것이며, 패배를 최소화하고, 그가 전부 예견한 것이라 설명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기가 더 심한 것도 예견했었다고 하며, 그렇게까지 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고 할 것이다. &lt;strong&gt;대중들은 우박을 맞지 않고, 단지 비만 맞았다고 기뻐할 것이다&lt;/strong&gt;……&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5_2&quot; id=&quot;footnote_link_125_2&quot;&gt;2&lt;/a&gt;&lt;/sup&gt;&lt;/p&gt;
&lt;/blockquote&gt;
&lt;p&gt;이 평가는 지극히 악의적이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불편한 진실을 일부 담고 있기도 하다. 처칠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신감과 담력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그는 쉽사리 지도자를 교체하기 어려운 전시 상황을 톡톡히 이용해가며 즐겼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영국 내에서도 많이 받았다. 이 점이 평시의 지도자들은 함부로 처칠의 리더십을 따라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lt;/p&gt;
&lt;p&gt;그런데 이를 꿰뚫어 본 전문가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Joseph_Goebbels&quot; style=&quot;color: rgb(255, 255, 255);&quot; target=&quot;_blank&quot; title=&quot;나치 선전부장관 요제프 괴벨스 박사&quot;&gt;괴벨스 박사&lt;/a&gt;였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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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li id=&quot;footnote_125_2&quot;&gt;주간 『Das Reich』誌 1942년 3월 1일자에 실린 글이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125_2&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ol&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인물과사건</category>
			<category>데우스엑스마키나</category>
			<category>선전부장관</category>
			<category>처칠</category>
			<category>홍보전문가</category>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guid>http://blog.periskop.info/125</guid>
			<comments>http://blog.periskop.info/125#entry125comment</comments>
			<pubDate>Wed, 06 Aug 2008 01:05: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고루했던 보수의 나라 영국을 깨운 소리</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4</link>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3&quot; title=&quot;http://blog.periskop.info/123&quot; class=&quot;external&quot;&gt;이전 글&lt;/a&gt;에서 처칠의 1940년 6월 4일자 &#039;&lt;a href=&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3&quot; title=&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3&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We shall fight on the beaches&lt;/a&gt;&#039; 연설의 뒷이야기에 대해 언급하고나니, 저 연설 본편의 의의를 생각해보게 된다. 처칠의 저 연설은 오늘날에는 전시 연설들 가운데 손꼽히는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당대에는 그렇게 단번에 영국 사회를 뒤흔든 연설이 아니었다. 이 연설의 파급력은 전쟁 기간 내내, 그리고 전후에까지 지속적으로 되새김되며 누적적으로 쌓여온 것이다.&lt;/p&gt;
&lt;p&gt;원래 영국인 일반 대중에게는 1940년 5월 프랑스전역이 개시되어 독일의 전격전이 위력을 발휘할 때까지도 별다른 위기의식이라든가, 전쟁에 대한 총화단결의 움직임이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히틀러의 준동은 그저 또 하나의 나폴레옹같은 무뢰한의 폭거였으며, 윗분들이 알아서 바다 건너에서 잘 해결하리라는 생각 뿐이었다. &#039;영국이 설마 지기야 하겠는가?&#039;라는 안이함 — 이것은 영국 사회가 여전히 뿌리 깊은 보수적 계급 사회인데 기인했다. 히틀러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비등한 여론, 프랑스에서 영국 원정군이 시시각각 쫓겨가며 패닉에 빠져드는 여론, 이 모두는 그저 신문과 방송에 귀 기울이며 세사를 논하는 중상층 이상 계층의 생각이었다. 영화에서 봄직한, 정장을 차려 입은 지긋하신 분들이 &#039;못 배운 무지랭이 놈들이 정치에 신경쓰기는…… 쯧쯧&#039;하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lt;/p&gt;
&lt;p&gt;이러한 계층간 장벽의 문제는 작년(2007년)에 &lt;a href=&quot;http://www.imdb.com/name/nm0461136/&quot; title=&quot;http://www.imdb.com/name/nm0461136/&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키라 나이틀리&lt;/a&gt;가 나온 영화로도 히트쳤던,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Ian_McEwan&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Ian_McEwa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이안 매큐안(Ian McEwan)&lt;/a&gt;의 『&lt;a href=&quot;http://www.imdb.com/title/tt0783233/&quot; title=&quot;http://www.imdb.com/title/tt0783233/&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Atonement&lt;/a&gt;』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탈리스(Tallis) 집안은 중상층(upper middle class)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로비 터너(&lt;a href=&quot;http://www.imdb.com/name/nm0564215/&quot; title=&quot;http://www.imdb.com/name/nm0564215/&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제임스 매커보이&lt;/a&gt;)는 명색이 캠브리지 의대생이었지만 이 집안 하인, 그야말로 노동층(working class)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갖고 있었다. 결국 로비는 사춘기의 질투심에 불탄 13세 소녀(브리오니 탈리스)의 거짓 증언에 강간미수의 누명을 쓰고 체포되었고, 후일 영국원정군의 일원으로 참전한다. 허구이기는 하지만, 로비가 중산층(middle class)만 되었더라도 이런 설정이 가능했을까?&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 cellspacing=&quot;5&quot; cellpadding=&quot;0&quot; border=&quot;0&quot; style=&quot;margin: 0 auto;&quot;&gt;&lt;tr&gt;&lt;td&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3780232497.jpg&quot; alt=&quot;Briony&quot; height=&quot;168&quot; width=&quot;227&quot; /&gt;&lt;p class=&quot;cap1&quot;&gt;사춘기 소녀의 질투심이&lt;/p&gt;&lt;/td&gt;&lt;td&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5452776680.jpg&quot; alt=&quot;Cecilia and Robbie&quot; height=&quot;168&quot; width=&quot;242&quot; /&gt;&lt;p class=&quot;cap1&quot;&gt;계층간 사랑을 망쳐놓다&lt;/p&gt;&lt;/td&gt;&lt;/tr&gt;&lt;/table&gt;&lt;/div&gt;
&lt;p&gt;이런 계층간 장벽이 전쟁 수행에도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사례엔 이런 것도 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 한 가지 충격적이고도 놀라운 증거는 (공습 가능성에 대비한 정부 계획으로) 전쟁 초기에 어린이들을 런던에서 소개시키는 작업이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전반적인 실패&lt;/span&gt;로 끝났다는 점이다. 이 계획에 따라 노동층의 어린이 100만여 명이 농촌 지역의 중산층 가정에 나눠져 살게 되었는데,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았다. &quot;이 계획은 (1940년 늦봄 시점에서 따져볼 때) 거의 실패한 형편이다. 사회학자들은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밝혀내고 기록했다. ……이들 어린이를 받아들인 수많은 중산층 가정은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더 이상 어린이들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lt;/span&gt;. 또한 어린이와 동행한 어머니들은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채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위험지역으로 돌아갔다&lt;/span&gt;.&quot;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m/books?id=bJnwGAAACAAJ&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m/books?id=bJnwGAAACAAJ&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War Begins at Home&lt;/a&gt;, p.296). 대중관찰(&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Mass_Observation&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Mass_Observatio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Mass-Observation&lt;/a&gt;) 보고서를 내는 한 관찰자는 이렇게 전했다.&quot;중산층 위탁가정과 노동층의 소개된 어린이의 간극은 메워지기 어려웠다. 몹시 가난한 일부 어린이들의 위생상태(이가 들끓고 기생충이 있는 등의 위생상태)는 중산층 가정이 기겁을 하게 만들었다. 어느 집의 주부는 보호해야 할 두 어린이가 너무 불결한데다, 병까지 있어 거의 미치기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녀가 그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quot; (ibid, p.312). &quot;이런 소개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주된 원인은 계층간 격차를 경시했기 때문이었다&quot; (ibid, p.306)……&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4#footnote_124_1&quot; id=&quot;footnote_link_124_1&quot;&gt;1&lt;/a&gt;&lt;/sup&gt;&lt;/p&gt;
&lt;/blockquote&gt;
&lt;p&gt;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중상층은 쓰는 악센트가 다르고 —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Received_Pronunciation&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Received_Pronunciatio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Received Pronunciation&lt;/a&gt;을 쓴다 —, 즐기는 스포츠가 다르며 — 축구가 아닌 크리켓을 좋아한다 —, 포크질도 다르다 — 포크를 스푼처럼 쓰는 삽질(shoveling)은 절대 금물. 말 그대로 노는 물이 확연히 달랐다. 상대적으로 계급간 이질성이 타파된 상태에서 전쟁에 나선 다른 참전국들에 비해 동원 측면에서도 불리한 점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다.&lt;/p&gt;
&lt;p&gt;전쟁이 흐르도록 영국 사회를 지배했던 이런 고루함 속에서, 처칠의 연설은 묘하게도 사회계층 타파의 서막을 열었다. 그의 연설은 먼저 위선적인 중상층에게 진솔한 감정의 표현을 일깨워줬다. 별도의 대국민 방송 없이 하원에서만 이뤄진 6월 4일 연설에서, 원내에서는 일부나마 격정의 무드가 흘러 넘쳤던 것 같다. 몇몇 의원들은 처칠의 연설을 듣고 눈물을 쏟았고, 무엇보다 처칠 자신이 눈물을 보였다. &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3&quot; title=&quot;http://blog.periskop.info/123&quot; class=&quot;external&quot;&gt;깨진 맥주병을 들고 싸우겠다는 위트&lt;/a&gt;를 날리고 돌아서서 자기 격정에 못이겨 눈물을 보인 처칠의 모습이란. 이것은 그의 (괴이하기까지 한) 다면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적어도 울지도 웃지도 못하던 다른 영국 양반들에게 감정의 대리배설 효과를 톡톡히 줬다. 이 연설장면을 지켜 본 미국 CBS 특파원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Edward_R._Murrow&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Edward_R._Murrow&quot;&gt;에드워드 머로우(Edward R. Murrow)&lt;/a&gt;&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4_2&quot; id=&quot;footnote_link_124_2&quot;&gt;2&lt;/a&gt;&lt;/sup&gt;는 감상을 이렇게 전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나는 과거 10년간 처칠 씨가 하원에서 한 연설을 간간이 들어 왔지만…… 오늘 그는 또 달랐다. 그의 연설에 웅변술은 없었다. 더는 흥행사로 보이고픈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대신 지금까지 의회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에 직접적인 위기의식을 담아 연설했다. 그 속엔 어떤 수식도, 속임수도 들어있지 않았다.&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4_3&quot; id=&quot;footnote_link_124_3&quot;&gt;3&lt;/a&gt;&lt;/sup&gt;&lt;/p&gt;
&lt;/blockquote&gt;
&lt;p&gt;여전히 많은 보수당 의원들은 처칠을 자기 멋에 들뜬 점잖지 못한 인물로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설을 시작으로 잇따른 처칠의 행보와 연설 속에서 보수당 의원들도 서서히 마음을 돌려 1940년 7월에 이르면 처칠의 전시내각에 강한 지지를 보내게 된다.&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5286563741.jpg&quot; alt=&quot;Das Reich cartoon&quot; height=&quot;386&quot; width=&quot;500&quot; /&gt;&lt;p class=&quot;cap1&quot;&gt;영국 상류층의 문제: &amp;quot;전하, 대안이 없습니다. 이걸(사회주의) 삼키셔야 합니다.&amp;quot;&lt;/p&gt;&lt;/div&gt;
&lt;p&gt;이렇게 하원에서 시작된 물결은, 다른 시민계층 전체에도 새로운 위기의식과 전의를 고취시켰다. 뎅케르크에서 독일군의 추격 속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수십 만 병력에 대한 이야기와, 내각의 항전 의지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영국 국민들은 설령 보수적 사회질서를 일거에 뒤엎지는 못했을지언정, 그들의 전통적인 국가적 자부심을 조용히 일깨워 국가적 전쟁 노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m/books?id=HctpGwAACAAJ&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m/books?id=HctpGwAACAAJ&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존 루카치의 책&lt;/a&gt;에서 소개하는 한 중산층 부인의 6월 5일자 일기는 그런 잔잔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오늘 아침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Dunkirk_evacuation&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Dunkirk_evacuatio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뎅케르크 소개작전&lt;/a&gt; 관련 기사를 읽고 또 읽는 바람에 아침식사가 늦어졌다.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마치 하프 소리가 울려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언덕 위에서 한 여름의 환한 햇살을 받으며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Gorse&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Gorse&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가시금작화&lt;/a&gt;를 바라보거나 공원을 거닐다가 화려한 색깔의 양귀비꽃 한 무더기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하다. 나는 아침에 가끔씩 두통 기운을 느끼며 피곤한 몸을 일으키는 중년 여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아침부터 날이 후덥지근해 일이 더뎌졌지만 매사가 밝고 값져 보였다. 그리고 &lt;strong&gt;내가 구조를 하고 구조를 받는 사람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 적잖은 기쁨을 느꼈다&lt;/strong&gt;.&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4_4&quot; id=&quot;footnote_link_124_4&quot;&gt;4&lt;/a&gt;&lt;/sup&gt;&lt;/p&gt;
&lt;/blockquote&gt;
&lt;p&gt;이후 런던에 폭탄이 떨어지고 많은 이들에게 전쟁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되먹임(feedback)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중상층들이 체면의 고삐를 풀고 전쟁의 고통을 다시 짊어지고자 다가섰고, 노동층들은 축구장과 펍에서 열광하듯 일터와 전쟁터로 나아갔다. 언론인으로서 영국의 계급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해왔던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George_Orwell&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George_Orwell&quot;&gt;조지 오웰&lt;/a&gt;조차 처칠의 기능을 인정했다.&lt;/p&gt;
&lt;blockquote&gt;
&lt;p&gt;파국적인 상황에서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데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인물은 다름 아닌 &lt;strong&gt;귀족 출신의 보수주의자&lt;/strong&gt; 처칠이었다.&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4_5&quot; id=&quot;footnote_link_124_5&quot;&gt;5&lt;/a&gt;&lt;/sup&gt;&lt;/p&gt;
&lt;/blockquote&gt;
&lt;p&gt;모래알같은 영국이 그제껏 생존하고 대영제국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수준의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Group_selectio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Group_selection&quot;&gt;집단선택(group selection)&lt;/a&gt;이 일어난 결과였을 것이다. 그렇게 체득한 특질이 다시 기능하면서, 영국은 내적 모순을 봉합하며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노력 속에서 대영제국의 헤게모니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경직성은 점점 허물어져갔다. 돌이켜보건대 처칠의 6월 연설들은 원대한 비젼이기 보다는 끝없는 경고와 전통적인 영국적 자존감에 대한 호소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러한 압력은 위기에 맞선 영국 고유의 특질을 일깨웠으며, 전후 사회적 계급체제의 약화를 불러온 진화과정을 촉발시킨 단초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면에서 그의 연설은 시원한 청량제가 아닌, 은근한 불에 서서히 우러나는 진국이었다 할 수 있다.&lt;/p&gt;
&lt;p&gt;우리나라에 조선시대같은 신분제는 소멸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격차가 확대되면서 모종의 차별적 계층이 형성, 고착화되는 추세가 여기저기서 경고되고 있다. 한국의 짧은 역사에서 이런 사회적 분리문제를 떠 안고서도 순탄히 굴러갈 시스템이 확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대로 방치하기에는 너무나 골치 아픈 사회적 뇌관이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lt;span style=&quot;text-decoration: line-through;&quot; class=&quot;strike&quot;&gt;관악을&lt;/span&gt; 북악이나 여의도를 보면 이만한 변화의 물꼬를 찾을 수 있을까? 얼만큼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 우리도 &#039;&lt;a href=&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3&quot; title=&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3&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We shall fight on the beaches&lt;/a&gt;&#039; 연설처럼 두고두고 진가를 발휘하는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보게 될까?&lt;/p&gt;
&lt;p&gt;P.S. 직장에서 사회적 격차 해소방안을 연구하며 골머리를 싸매다가 늘어놓은 잡상임을 양해 바란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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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li id=&quot;footnote_124_2&quot;&gt;그는 1940년 12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런던 공습의 현장을 라디오 방송으로 본국에 생생하게 전달하여, 미국의 참전 여론 조성에 큰 몫을 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124_2&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li id=&quot;footnote_124_3&quot;&gt;그레첸 루빈 (2007). 『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윤동구 譯). 서울: 고즈윈.에서 재인용 &lt;a href=&quot;#footnote_link_124_3&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li id=&quot;footnote_124_4&quot;&gt;Nella Last, et al.(1981). &lt;em&gt;Nella Last&#039;s War&lt;/em&gt;. New York, NY: Falling Wall Press. (존 루카치(&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John_Lukacs&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John_Lukacs&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John Lukacs&lt;/a&gt;) (2000). 『세계의 운명을 바꾼 1940년 5월 런던의 5일』(홍수원 譯). 서울: 중심.에서 재인용) 이 일기와 저자 Nella Last에 대해서는 BBC가 다룬 &lt;a href=&quot;http://www.bbc.co.uk/history/british/britain_wwtwo/nella_last_01.shtml&quot; title=&quot;http://www.bbc.co.uk/history/british/britain_wwtwo/nella_last_01.s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소개 페이지&lt;/a&gt;를 참조하기 바란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124_4&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li id=&quot;footnote_124_5&quot;&gt;George Orwell (1947). &lt;em&gt;The English People&lt;/em&gt;. Collins. &lt;a href=&quot;#footnote_link_124_5&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ol&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심야잡상록</category>
			<category>Atonement</category>
			<category>보수주의</category>
			<category>사회계층</category>
			<category>신분사회</category>
			<category>연설</category>
			<category>진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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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처칠</category>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guid>http://blog.periskop.info/124</guid>
			<comments>http://blog.periskop.info/124#entry124comment</comments>
			<pubDate>Mon, 04 Aug 2008 19:1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처칠의 연설 뒷이야기의 진실</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3</link>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nestofpnix.egloos.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슈타인호프 님&lt;/a&gt;께서 처칠의 유명한 &#039;&lt;a href=&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3&quot; title=&quot;http://www.winstonchurchill.org/i4a/pages/index.cfm?pageid=393&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We shall fight on the beaches&lt;/a&gt;&#039; 연설(뎅케르크 철수에 대한 1940년 6월 4일 하원연설)의 &lt;a href=&quot;http://nestofpnix.egloos.com/3846919&quot; title=&quot;http://nestofpnix.egloos.com/3846919&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뒷이야기&lt;/a&gt;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잡학사전』을 참고하신 것이라는데, 여기에 수록된 상황은 다음과 같이 떠도는 이야기이다.&lt;/p&gt;
&lt;div style=&quot;padding: 10px; background-color: rgb(228, 228, 228);&quot;&gt;처칠은 6월 4일 하원연설을 대국민 방송을 위해 BBC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다시 낭독했다. 이 연설의 백미는 &quot;&lt;span class=&quot;body&quot;&gt;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lt;/span&gt;……&quot;를 읊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말하고, 윈스턴 처칠은 잠시 마이크를 손으로 덮은 채, &quot;&lt;strong&gt;We’ll hit them over the heads with beer bottles, because that’s about all we’ve got!&lt;/strong&gt; (그리고 우리들은 맥주병으로 그놈들의 대가리를 후려 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는 그것밖에 없으니까!)&quot;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조로 말을 했다가 연설을 이어갔다. &quot;We shall never surrender!……&quot;&lt;/div&gt;
&lt;p&gt;이 일화(및 그 변종)는 굉장히 유명한데, 책들을 읽다 보면 조금씩 다른 식으로 전해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버젼의 뒷이야기에는 정황상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lt;/p&gt;
&lt;p&gt;위에도 밝혔듯이 원래 저 &#039;We shall fight on the beaches&#039; 연설은 영국 하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영국 하원에서는, 오늘날 법원에서 녹음/녹화가 불가능하듯이 연설 등을 직접 녹음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를 국민에게 방송하려면 별도로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해야 했다. 하지만 1940년 5월 말에서 6월 초의 시기는 프랑스전역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영국의 국운이 백척간두에 놓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처칠이 별도의 녹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형편이 못 되었다. 결국 저 연설은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BBC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가 일부만 발췌해서 소개&lt;/span&gt;했다. 즉, 전시의 영국 국민들은 저 6월 4일분 연설 내용을 &lt;strong&gt;처칠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기회가 없었다&lt;/strong&gt;.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처칠의 육성 연설은 전후(1949년)에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Decca_Records&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Decca_Records&quot;&gt;Decca Records&lt;/a&gt;의 요청에 의해 녹음된 것이다.&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3#footnote_123_1&quot; id=&quot;footnote_link_123_1&quot;&gt;1&lt;/a&gt;&lt;/sup&gt; (아래는 어떤 사람이 10분 분량으로 편집한 전후 육성 녹음본)&lt;br&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objec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www.youtube.com/v/6llT2ZYg-4E&amp;amp;hl=ko&amp;amp;fs=1&quot;&gt;&lt;/param&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gt;&lt;embed src=&quot;http://www.youtube.com/v/6llT2ZYg-4E&amp;amp;hl=ko&amp;amp;fs=1&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embed&gt;&lt;/object&gt;&lt;/div&gt;
&lt;p&gt;결국 『잡학사전』에 소개된 뒷이야기는 몇 가지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게 낭설에 불과한 것일까? 그건 또 아니다. 오늘날의 통설은 이렇다:&lt;/p&gt;
&lt;p&gt;이는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하원에서 벌어진 상황&lt;/span&gt;이었다. 당시에는 영국 정치권이 독일과의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연설 중간중간에 의원들의 호응이 상당했다. 게다가 영국 하원 자체가 수상의 연설을 조용히 듣는 문화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BBC에서 중계하는 하원 연설을 보면, 내용에 따라 의원들이 환호하다가, 장탄식하다가, 야유하다가 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아래는 현직 영국 총리인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Gordon_Brown&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든 브라운&lt;/a&gt;과 보수당 당수인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David_Cameron&quot; target=&quot;_blank&quot;&gt;데이빗 카머론&lt;/a&gt;이 한 판 설전(?)을 벌이는 모습)&lt;br&gt;&lt;/p&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objec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www.youtube.com/v/TsAa9VmwOaI&amp;amp;hl=ko&amp;amp;fs=1&quot;&gt;&lt;/param&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gt;&lt;embed src=&quot;http://www.youtube.com/v/TsAa9VmwOaI&amp;amp;hl=ko&amp;amp;fs=1&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425&quot; height=&quot;344&quot;&gt;&lt;/embed&gt;&lt;/object&gt;
&lt;/div&gt;&lt;p&gt;당시 의원들은 보다 점잔을 빼긴 했어도 처칠의 연설 중간중간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막바지에 한창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quot;&lt;span class=&quot;body&quot;&gt;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lt;/span&gt;……&quot; 부분이 나오자 역시 의원들의 열렬한 환호로 연설은 잠시 중단되었다. 이때 처칠은 환호가 멎기를 기다리다가, 옆 자리에 앉은 동료&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footnote_123_2&quot; id=&quot;footnote_link_123_2&quot;&gt;2&lt;/a&gt;&lt;/sup&gt;에게 슬쩍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lt;/p&gt;
&lt;blockquote&gt;
&lt;p&gt;And we&#039;ll fight them with &lt;strong&gt;the butt ends of broken beer bottles&lt;/strong&gt; because that&#039;s &lt;strong&gt;bloody well&lt;/strong&gt; all we&#039;ve got.&lt;br&gt;
(그리고 우린 그들과 &lt;strong&gt;깨진 맥주병 머리&lt;/strong&gt;로 싸울 겁니다. 그게 &lt;strong&gt;분명&lt;/strong&gt; 우리가 가진 전부니깐.)&lt;/p&gt;
&lt;/blockquote&gt;
&lt;p&gt;『잡학사전』에 수록된 내용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으나, 이 내용이 운율도 맞고 보다 어감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정황 상으로도 하원에서 일부러 마이크를 가리고 연설문 일부를 누락했다는 것보다는, 환호 중간에 슬쩍 던진 위트였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현재로서는 처칠에 대한 대부분의 문헌들에 등장하는 버젼이기도 한 만큼, 이쪽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된다.&lt;/p&gt;
&lt;p&gt;처칠의 탁월한 언변과 그 속에 묻어나는 위트는 어디 한 두 가지의 예화로 설명될 수준이 아니다. 혹시나 이런 류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lt;a href=&quot;http://books.google.com/books?id=4owOAAAACAAJ&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books.google.com/books?id=4owOAAAACAAJ&quot;&gt;The Wicked Wit of Winston Churchill&lt;/a&gt; (윈스턴 처칠의 짓궂은 위트)』라는 책까지 나와 있으니 한 번 구해 읽어 보시기 바란다. 한국 정치인들이 왜 지루하게 보이고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홈지기 또한 이렇게 글에 위트가 없어서야…… (퍽퍽)&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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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li id=&quot;footnote_123_2&quot;&gt;이 동료(?)가 누군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전시 연립내각의 부수상을 지낸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Clement_Attlee&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Clement_Attlee&quot;&gt;애틀리&lt;/a&gt;를 거론하는 설이 있다. 아마 좌석배치로 보아 처칠 가까이에 있던 고위 정치인들이 이 말을 듣고 재밌어서 연설 뒤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퍼뜨린 것 같다. 때문에 당시 주영 미국대사였던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Joseph_P._Kennedy,_Sr.&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Joseph_P._Kennedy,_Sr.&quot;&gt;죠셉 케네디&lt;/a&gt;(&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John_F._Kennedy&quot; target=&quot;_blank&quot;&gt;JFK&lt;/a&gt;의 아버지)나 캔터베리 성당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Dean_of_Canterbury&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Dean_of_Canterbury&quot;&gt;참사회장&lt;/a&gt;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Hewlett_Johnso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Joseph_P._Kennedy,_Sr.&quot;&gt;휴렛 존슨&lt;/a&gt;이 듣고 전했다는 설까지 있다. &lt;a href=&quot;#footnote_link_123_2&quot;&gt;&lt;img src=&quot;/plugins/FootNote/image/dizzle/btt.gif&quot; align=&quot;absmiddle&quot; style=&quot;margin-left:5px;&quot; /&gt;&lt;/a&gt; &lt;/li&gt;
&lt;/ol&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인물과사건</category>
			<category>We shall fight on the beaches</category>
			<category>맥주병</category>
			<category>연설</category>
			<category>위트</category>
			<category>처칠</category>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guid>http://blog.periskop.info/123</guid>
			<comments>http://blog.periskop.info/123#entry123comment</comments>
			<pubDate>Sun, 03 Aug 2008 04:3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전쟁은 팔려도 군사사는 팔리지 않는다</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2</link>
			<description>&lt;p&gt;오늘도 자료 수집차 이런저런 잡지 과월호를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맞닥뜨렸다. &quot;&lt;strong&gt;War Sells, but Not in Class&lt;/strong&gt; (전쟁은 팔린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니다).&quot; 미국의 손꼽히는 유력 주간지 중의 하나인 『&lt;a href=&quot;http://www.usnews.com&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usnews.com&quot;&gt;U.S. News &amp;amp; World Report&lt;/a&gt;』誌 6월 23일호에 실렸던 기사이다. 제목만 보고 기사 내용이 짐작이 가시겠는가?&lt;/p&gt;
&lt;p&gt;21세기에 들어와서도 전쟁은 인류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20세기를 휩쓸었던 대규모의 전쟁은 확실히 줄었지만, 저강도 분쟁은 여전히 골칫거리고 미국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꼭꼭 잡혀있다. 밑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는 전쟁비용의 문제와, 이라크에서의 적절한 발빼기 문제는 대선의 중요 이슈이기도 하다. 고유가와 함께 부활하는 러시아의 재무장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북아시아의 조용한 군비 경쟁도 전쟁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다.&lt;/p&gt;
&lt;p&gt;어디 그 뿐만이랴. 전쟁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잘 팔리는 주제이다.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Saving_Private_Rya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Saving_Private_Ryan&quot;&gt;라일구&lt;/a&gt; 이래로 화끈한 비쥬얼로 무장한 전쟁영화들은 여전히 각국 영화산업의 단골 소재이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고대전쟁까지 골고루 커버하는 흐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홈지기는 게임에는 거의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전쟁을 주제로 한 게임들이 가끔 눈에 들어오는걸 보면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시장도 만만치 않은 규모일 것이다. 거기에 밀리터리 피규어, 모델링 등등의 세계까지 한다면 전쟁의 상업성은 이미 구석구석에 뻗쳐 있다.&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 cellspacing=&quot;5&quot; cellpadding=&quot;0&quot; border=&quot;0&quot; style=&quot;margin: 0 auto;&quot;&gt;&lt;tr&gt;&lt;td&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9455173884.jpg&quot; alt=&quot;Call of Duty&quot; height=&quot;135&quot; width=&quot;242&quot; /&gt;&lt;/td&gt;&lt;td&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2122876930.jpg&quot; alt=&quot;Saving Private Ryan&quot; height=&quot;135&quot; width=&quot;100&quot; /&gt;&lt;/td&gt;&lt;/tr&gt;&lt;/table&gt;&lt;/div&gt;
&lt;p&gt;이것만 본다면, 정치외교적 필요에서건 문화산업적 필요에서건 &lt;strong&gt;군사사(military history)에 정통한 사람들이 웬만큼 필요&lt;/strong&gt;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한국에서야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다는걸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 같은 군사대국에서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이 떠돌기도 했다. 미국에서 학위를 따와야 학자 대접을 해주는 국내 사회과학계 풍토를 감안하면, 군사사 전공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마저 산산조각을 내고 있다. 미국의 전쟁 열풍에도 불구하고,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전쟁 관련 학계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lt;/span&gt;는 것이다.&lt;/p&gt;
&lt;p&gt;단적으로 미국 내에서 사학 분야의 박사학위 과정을 개설한 학교는 150개 대학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군사사 학위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는 현재 단 12개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나마 미시간이나 퍼듀 같은 명문대조차 전공 교수가 은퇴해버리면서 군사사 전공자가 충원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스콘신 대학교는 군사사 분야 교수직이 10년 이상 공석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lt;a href=&quot;http://www.history.uiuc.edu/people/johnlynn/&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history.uiuc.edu/people/johnlynn/&quot;&gt;존 린(John A. Lynn)&lt;/a&gt; 교수는 이처럼 &#039;전쟁은 잘 팔리지만 학문으로서의 군사사는 안 팔리는&#039; 모순적인 세태를 꼬집으며 이미 10년 전인 1997년에 &quot;&lt;a href=&quot;http://www.jstor.org/pss/2954086&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jstor.org/pss/2954086&quot;&gt;The Embattled Future of Academic Military History&lt;/a&gt;&quot;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여기서 그는 군사사 분야가 남자(덕후)들의 비학술적 담론들이 주를 이루면서, 정작 미국 사학계에서는 군사사 전공자들이 &quot;&lt;a style=&quot;font-weight: bold;&quot;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araiyar&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Paraiyar&quot;&gt;불가촉천민(pariah)&lt;/a&gt;처럼 취급받는다&quot;고 지적하고 있다. 린 교수마저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또한 홈지기도 몇 번 소개한 바 있는 이스턴미시간 대학의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Robert_M._Citino&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Robert_M._Citino&quot;&gt;로버트 시티노&lt;/a&gt; 교수도 미국 명문 대학에서는 군사사학자들이 &quot;상당수 사라졌다&quot;고 이야기한다.&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3106794035.jpg&quot; alt=&quot;Robert M. Citino&quot; height=&quot;262&quot; width=&quot;400&quot; /&gt;&lt;p class=&quot;cap1&quot;&gt;두 손 다 들었답니다 (시티노 교수)&lt;/p&gt;&lt;/div&gt;
&lt;p&gt;이런 학문으로서의 군사사가 심각하게 쇠퇴한 원인의 분석은 다양하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현재 학계의 주류를 맡고 있어야 할 전후 세대들이 반전운동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자라났다는 점이 지적된다. 1960년대까지야 전쟁을 겪고, 전쟁에 관심이 많던 세대들이 군사사 연구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이후 세대들은 여성문제, 노동문제, 인종문제 등에 더 관심을 갖고, 전쟁문제는 구질구질하다는 인식을 가졌다는 해석이다.&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2#footnote_122_1&quot; id=&quot;footnote_link_122_1&quot;&gt;1&lt;/a&gt;&lt;/sup&gt;&lt;/p&gt;
&lt;p&gt;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게 중론인 것 같다. 그보다도 미국 사학계의 팽창과 함께 유행이 급변한 점이 지적된다. 1960년대 사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 동안 소외받던 소수자들의 사회 문제나 문화적 흐름을 건드리는 쪽으로 유행을 타게 되었고, 그런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다보니 전쟁에만 좁게 초점을 맞추는 군사사의 인기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설령 전쟁을 건드리더라도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시 사회라든가, 기술사적 의의 등을 연구하고 말이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군사사 전공자들의 주가가 떨어졌고, &#039;아직도 군사사 연구를 하세요?&#039;라는 식으로 군사사에 남은 사람들은 시대에 뒤쳐진 퇴물 취급을 받게 되었다. 불가촉천민으로 떨어졌으니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지경까지.&lt;/p&gt;
&lt;p&gt;자, 그렇다면 앞으로도 군사사의 미래는 암울한 것인가? 다행히도 기사는 약간의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미국 사학계 일각에서 이에 대한 &lt;strong&gt;자성론&lt;/strong&gt;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의 이슈를 &lt;span style=&quot;color: rgb(255, 0, 0);&quot;&gt;정통 군사사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lt;/span&gt;하다는 문제 인식이 그 계기라고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사학계의 핵심 주제였던 전쟁에 대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너무 무시해왔다는 반성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뾰족한 가시적 해결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lt;/p&gt;
&lt;p&gt;홈지기도 몇몇 국내 유수 정치, 외교, 역사 관련 학과 사람들로부터, 관심은 있어하나 정작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군사사의 현실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이렇게 미국에서도 군사사 전공자들이 &quot;불가촉천민&quot; 취급을 받아왔다는 적나라한 이야기를 들으니 참 묘하다. 이럴 때는 역시 군사사를 취미로 하고 있다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학문적으로 진중하게 군사사를 파고드는 전문 연구자들이 없다면 어찌 이런 아마추어로서의 지적 호사(?)라도 누릴 수 있겠는가. 아무쪼록 학문적 유행의 부침을 딛고, 국내외를 막론한 군사사 연구자들이 좀 더 고용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연구를 많이 출간해주길 바랄 따름이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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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ol&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군사학산책</category>
			<category>military history</category>
			<category>군사사</category>
			<category>라이언 일병 구하기</category>
			<category>쇠퇴</category>
			<category>시티노</category>
			<category>전쟁</category>
			<category>학문</category>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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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blog.periskop.info/122#entry122comment</comments>
			<pubDate>Tue, 29 Jul 2008 19:3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MB로 인해 묻힌 또 하나의 책</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1</link>
			<description>&lt;p&gt;여름 휴가를 맞아 처칠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돌렸다는 MB, 그 &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19&quot;&gt;생뚱맞음을 지적한 글&lt;/a&gt;에 일화 님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다:&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8564445563.png&quot; alt=&quot;막간의 &quot; height=&quot;100&quot; width=&quot;495&quot; /&gt;&lt;/div&gt;
&lt;p&gt;이 댓글을 보고 즉각 떠오른 책이 있었으니…… 이 기사를 상기해보자.&lt;/p&gt;
&lt;blockquote&gt;
&lt;p&gt;이 당선인은 이번 명절을 두 권의 책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의 &amp;lt;마인드 세트&amp;gt;(Mind Set)와 심리학자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하워드 가드너의 &amp;lt;통찰과 포용&amp;gt;(Leading Mind)&lt;/span&gt;이다. &amp;lt;메가트렌드&amp;gt;라는 저서로 유명한 나이스비트의 &amp;lt;마인드 세트&amp;gt;는 앞으로 50년을 예측한 저서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다. &amp;lt;통찰과 포용&amp;gt;은 정치, 경영, 교육, 군대, 예술,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리더들의 이야기와 비전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등의 리더십을 담고 있다.&lt;br&gt;
— &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68416.html&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68416.html&quot;&gt;&quot;이명박 &#039;설 연휴 정국구상&#039; 내각·청와대 인선틀 짠듯.&quot; (2008. 2. 9.). 『한겨레신문』.&lt;/a&gt;&lt;/p&gt;
&lt;/blockquote&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3439440847.jpg&quot; alt=&quot;Howard Gardner&quot; height=&quot;150&quot; width=&quot;100&quot; /&gt;&lt;/div&gt;&lt;a href=&quot;http://www.howardgardner.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lt;/a&gt;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Theory_of_multiple_intelligences&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Theory_of_multiple_intelligences&quot;&gt;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lt;/a&gt;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교육심리학자이다. 가드너는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오며, 1990년대 무렵부터는 교육과 HR 분야에의 응용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기사에서 언급된 『Leading Minds』는 1995년에 발간된 책으로서, 1993년에 출간된 『Creating Minds (국역판: 열정과 기질)』에서 파헤친 창조성의 실마리를 이어받아 보다 광범위한 &#039;리더십&#039;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책은 가드너의 본격적인 HR 관련 연작들 중에서 비교적 앞쪽을 차지하고 미국에서도 꽤나 반향을 던진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10년이 지나서야 나왔으니 좀 늦은 감이 있긴 하다.&lt;/p&gt;
&lt;p&gt;서평을 길게 쓰기는 그러하니, 이 책의 중요한 내용만 살짝 짚어보자. 이 책에서 저자 가드너는 리더십의 핵심을 &quot;이야기(story)&quot;를 구성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풀어가고 있다. 여기서의 &quot;이야기&quot;는 흔히 생각하는 언변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메시지를 의미한다. 학자의 이론과 사상, 예술가의 감성과 형식 등도 모두 이야기에 해당된다. 위대한 리더는 이러한 자신의 독특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가드너는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Robert_Oppenheimer&quot; target=&quot;_blank&quot;&gt;오펜하이머&lt;/a&gt; 같은 물리학자,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Alfred_P._Sloan&quot; target=&quot;_blank&quot;&gt;슬론&lt;/a&gt; 같은 경영자,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George_Marshall&quot; target=&quot;_blank&quot;&gt;마셜&lt;/a&gt; 같은 군인,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Pope_John_XXIII&quot; target=&quot;_blank&quot;&gt;교황 요한23세&lt;/a&gt; 같은 종교인도 각 분야에서 진중한 이야기를 전파한 위대한 리더들로 꼽고 있다. 이러한 각 분야에서 탁월한 11명의 리더와 그들의 리더십을 분석했으며, (홈지기에게 흥미롭게도)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각국의 지도자 10인들의 리더십도 별도의 장을 할애해 분석했다.&lt;/p&gt;
&lt;p&gt;그러나 일반적인 리더십 책과 달리, 가드너는 단순한 표층의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논하는데 그치지 않고, 청중/독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과정까지 비중있게 다뤘다는 데 큰 차별점이 있다. 홈지기가 특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탁월한 리더는 청중/독자들마다 지니고 있는 &quot;counter-story&quot;와 &quot;unschooled mind&quot;를 이해하고 다루는 데에도 큰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살아오면서 자신만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갖게 마련이다. 각자 다른 사람의 말을 듣더라도 항상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에 맞춰 이해하고 판단하려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이와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quot;counter-story&quot;를 표출하고 저항하기 마련이다. 탁월한 리더는 이러한 청중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본질을 살리면서도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감성과 이성을 잘 조화시켜, 체계적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저항하는 상대의 마음(&quot;unschooled mind&quot;) 속으로까지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꽂는 표현 능력을 갖고 있다.&lt;/p&gt;
&lt;p&gt;가드너는 이를 토대로 미래 리더십의 핵심적 요소를 여섯 가지 상수 — 이야기(story), 청중(audience), 조직화(organization), 구체화(embodiment), 직접 리더십과 간접 리더십의 선택, 리더십 패러독스 — 로 묶어 제시했다. 리더십에 대한 체계적인 지적으로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MB에게 이 책을 추천한 사람도 이러한 리더십의 다양한 덕목을 새겨 원만한 국정을 펴라는 바램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lt;/p&gt;
&lt;p&gt;그러나 어디 이 책을 읽었다는 2월 이후 6개월 여의 행보가 그러했던가? 가드너가 제시하는 탁월한 리더의 자질을 놓고 MB를 평가한다면, 일부 부합하는 부분이 있기는 해도 많은 결함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리더 왕회장의 복심에 따라 근면, 성실하며 기민하게 행동하는 능력은 출중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스스로 다른 사람의 &quot;unschooled mind&quot;와 &quot;counter-story&quot;를 헤아리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은 꽤나 부족했다. MB가 차분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 큰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를 구체화하여 전달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을 짜는 모습은 영 어색하지 않은가.&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1#footnote_121_1&quot; id=&quot;footnote_link_121_1&quot;&gt;1&lt;/a&gt;&lt;/sup&gt; 『Leading Minds』를 읽고 얼마나 그런 결점을 보완하려고 작심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까지는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시 그런 능력은 책 한 권으로 이해하고 쫓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번 여름 휴가에 읽겠다는 독서 계획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lt;strong&gt;더 부정적으로 퇴락하리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lt;/strong&gt; 같다.&lt;/p&gt;
&lt;p&gt;글을 맺기 전에, 이 책에 얽힌 뒷얘기나 마저 살짝 하자. 가드너의 좋은 책을 번역해놓고도 기대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했던 모 출판사는 대통령 추천도서(?)의 호재를 업고 대박의 꿈에 부풀었었나 보다.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이만한 호재가 그리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그러나 이후 민심이 흉흉해지니 어디 대통령을 내세운 적극적 마케팅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우여곡절 끝에……(중간 생략)…… 홈지기는 『Leading Minds』의 번역판을 공짜로 증정받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또한 MB의 은덕이라면 은덕이 아니겠는가. 여하간 지난 번 『&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19&quot;&gt;We Shall Not Fail&lt;/a&gt;』에 비해 이 책은 훨씬 유익한 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행여나 접해보실 기회가 있으신 독자 분들이라면, 앞서 읽은 사람의 그늘 때문에 일부러 피해가시지는 말길 권해드린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이 글은 &lt;a href=&quot;http://seanchae.springnote.com/&quot;&gt;스프링노트&lt;/a&gt;에서 작성되었습니다.&lt;/p&gt;&lt;fieldset style=&quot;margin:20px 0px 20px 0px;padding:5px;&quot;&gt;&lt;legend&gt;&lt;span&gt;&lt;strong&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lt;/strong&gt;&lt;/span&gt;&lt;/legend&gt;&lt;!--Creative Commons License--&gt;&lt;div style=&quot;float: left; width: 88px; margin-top: 3px;&quot;&gt;&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lt;img alt=&quot;Creative Commons License&quot; style=&quot;border-width: 0&quot; src=&quot;http://i.creativecommons.org/l/by-nc-nd/2.0/kr/88x31.png&quot;/&gt;&lt;/a&gt;&lt;/div&gt;&lt;div style=&quot;margin-left: 92px; margin-top: 3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저작물은 &lt;a rel=&quot;license&quot; href=&quot;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nd/2.0/kr/&quot; target=_blank&gt;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lt;/a&gt;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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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ol&gt;&lt;/div&gt;&lt;/div&gt;</description>
			<category>자료발굴기</category>
			<category>Howard Gardner</category>
			<category>Leading Minds</category>
			<category>MB</category>
			<category>이명박</category>
			<category>추천도서</category>
			<category>통찰과포용</category>
			<category>하워드 가드너</category>
			<author>(Periskop 홈지기)</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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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8 Jul 2008 15:3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모든 모델은 틀렸다, 그러나……</title>
			<link>http://blog.periskop.info/120</link>
			<description>&lt;p&gt;최근에 학회 활동 관계로 모 대학에서 모델링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모델링이라고 하니 프라모델 만드는 법(……)을 떠올리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아니고 사회과학도들을 위한 &lt;a href=&quot;http://en.wikipedia.org/wiki/Agent-based_model&quot; title=&quot;http://en.wikipedia.org/wiki/Agent-based_model&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external newWindow&quot;&gt;행위자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lt;/a&gt; 입문 강좌였다. 아무래도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모델링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모델링에 대한 기본 내용 설명도 곁들였다. 여기서 모델링에 대한 몇 가지 유명한 격언들을 함께 소개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거였다:&lt;/p&gt;
&lt;blockquote&gt;
&lt;p&gt;All models are &lt;span style=&quot;color: rgb(254, 0, 0);&quot;&gt;wrong&lt;/span&gt;; some models are &lt;strong&gt;useful&lt;/strong&gt;.&lt;sup style=&quot;font-family:tahoma;&quot;&gt;&lt;a href=&quot;http://blog.periskop.info/120#footnote_120_1&quot; id=&quot;footnote_link_120_1&quot;&gt;1&lt;/a&gt;&lt;/sup&gt;&lt;/p&gt;
&lt;/blockquote&gt;
&lt;p&gt;우리가 과학에서 다루는 모델(또는 &#039;이론적 모형&#039;)을 설명할 때는 흔히 &#039;지도&#039;를 들어 설명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아래 구글어스 위성영상과 콩나물 지도를 비교해보자.&lt;/p&gt;
&lt;div class=&quot;imageblock dual&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 cellspacing=&quot;5&quot; cellpadding=&quot;0&quot; border=&quot;0&quot; style=&quot;margin: 0 auto;&quot;&gt;&lt;tr&gt;&lt;td&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1079863783.jpg&quot; alt=&quot;Google Earth&quot; height=&quot;169&quot; width=&quot;242&quot; /&gt;&lt;/td&gt;&lt;td&gt;&lt;img src=&quot;http://blog.periskop.info/attach/1/6489784935.png&quot; alt=&quot;Congnamul&quot; height=&quot;169&quot; width=&quot;242&quot; /&gt;&lt;/td&gt;&lt;/tr&gt;&lt;/table&gt;&lt;/div&gt;
&lt;p&gt;위성영상에 나타나는 수많은 건물의 꼼꼼한 디테일은 일반적인 지도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서울특별시청은 그저 뭉툭한 회색 다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도로부터 현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위치에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모양의 건물이 있다고 해석한다. 왜 그럴까?&lt;/p&gt;
&lt;p&gt;첫째 이유는, 현실 대상과 지도 사이에 &lt;strong&gt;구조적 유사성&lt;/strong&gt;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에 나온 수많은 건물이 비슷해보이긴 해도 약간씩 모양의 차이가 있고, 공간적 배열의 차이가 있다. 지도는 위에서 바라본 모습만 투사하지만 건물의 기본적인 단면 차이 정도는 드러낸다. 또한 도로의 생김새도 기본 윤곽은 분명히 드러낸다. 각각의 요소가 구분되는 대응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lt;/p&gt;
&lt;p&gt;둘째 이유는, 그런 구조적 대응 관계를 해석하는 &lt;strong&gt;사회적 규약&lt;/strong&gt;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진한 회색 또는 노랗고 발그레한 색으로 칠한 부분이 건물에 대응되고, 하얀 부분이 도로에 대응된다는 규약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슨 색깔인지를 명시적으로 교육받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색으로 구분되는 존재가 각각 건물, 도로, 녹지, 기타 공터에 해당된다는 규칙을 익혀왔다. 하지만 이렇게 규약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점점 특수한 목적의 지도가 될수록 특별한 규약이 점점 늘어나며, 일반인들은 해석하기가 어려워진다. 항공지도나 해도를 펼쳐 놓는다고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겠는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사용되는 모델도 그러하다. 일련의 수식으로 짜여진 모델, 여러 개념들로 이뤄진 모델을 이해하려면 각 학계에서 확립된 규약을 익혀야 한다. 그걸 모르면 그냥 의미 없는 기호와 숫자의 나열, 뭔가 그럴듯 해보이는 글자의 잔치일 따름이다.&lt;/p&gt;
&lt;p&gt;이로부터 분명한 것은, 지도는 결코 &lt;s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