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사를 뒤적이다보니 한국에는 뒤늦게 소개된 사건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선주 부시는 그의 기반세력인 네오콘과 마찬가지로 처칠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2001년 블레어 영국 수상은 미국 출신의 조각가 엡스타인(Jacob Epstein)이 만든 처칠 흉상을 부시에게 진상임대해줬다. 이 동상은 부시 임기 내내 영-미 동맹과 우의의 상징으로서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흉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찬밥 신세가 된다. 오바마의 취향에 맞게 집무실 인테리어가 바뀌면서 이 자리에는 그가 존경하는 링컨의 흉상이 들어서고, 처칠 흉상은 영국에 반환되어 주미 영국대사 공관으로 밀려난 상태이다. 이것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영-미간 우의에 안좋은 징조라는 등의 이야기가 오고간다는게 기사의 내용이다.

우선 이 이야기는 그리 싱싱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지난 주말(2월 21일)에 나온 뉴스위크 기사를 보고 한글 기사를 만들어 송고했는데, 아마 연합뉴스 기자가 모니터링하는 언론매체가 몇 개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따지자면 이 뉴스는 1주일 전인 2월 14일에 영국의 텔레그라프가 내보낸 기사가 직접 발단이 되었고,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여기저기서 한 달 전부터 꾸준히 돌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홈지기가 작년에 썼던 글들을 떠올려 보니 이 뉴스로 이어지는 긴 맥락의 끈이 다시금 느껴진다. 우선 작년, 부시 정권의 심상치 않은 말로가 예견되던 시기에 홈지기는 대표적 고보수주의 논객인 뷰캐넌의 신작을 소개한 바 있다:

처칠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그 화살을 부시로 돌린 뷰캐넌, 그의 신간 마지막 구절은 바로 이번 뉴스의 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국은 1939년 대영제국처럼 과도하게 뻗쳐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핵심 이익과는 상관 없는 수십 개 국가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약속, 몇 개 국가가 한꺼번에 요청하면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갖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를 민주화시키고, 모든 국가를 우리의 사회 정의와 인권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며, "세계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미국의 정책을 천명해왔다.

그리고 만방에 그가 맡은 책무를 보여주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그의 집무실에 윈스턴 처칠의 흉상을 갖다 놓았다.

— Pat Buchanan, Churchill, Hitler, and 'The Unnecessary War'

재미있게도 이 대목에서 연합뉴스 기자는 물론 외국 기자들도 사실 확인에 게으른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 위의 기사들에는 블레어가 처칠의 흉상을 진상임대한 것이 9/11 사건 직후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어 달 전인 7월 16일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당시 백악관 공식 뉴스에서도 확인된다.

Acceptance of Bust of Winston Churchill

2001년 7월 16일, 영길리 대사가 황제에게 처칠 흉상을 진상하다

He was a man of great courage. He knew what he believed. And he really kind of went after it in a way that seemed like a Texan to me.

— 선주 George W. Bush

기쁜 마음으로 영국의 선물을 받으며 남긴 말에도 드러나듯이, 선주 부시에게 처칠은 알라모 요새윌리엄 트레비스데비 크로켓 정도의 우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히틀러나 사담 후세인, 김정일은 산타 안나?)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면 어쩔 수 없는 텍사스 카우보이 부시의 가슴 속에는 "Remember the Alamo!"를 외치며 멕시코 병사들을 향해 쇄도하는 샘 휴스턴의 모습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봤을 때 오바마의 집무실에서 처칠의 흉상이 치워졌다는 뉴스를 가벼이 볼 수는 없으리라. 대통령의 역할 모델로서 처칠이 물러나고 링컨이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은 지난 1년간 몰아닥친 거센 흐름의 변화를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역시 처칠과 링컨을 떠올리노라면 부시와 오바마에게만 시선이 머물 수는 없다. 홈지기는 다른 글을 통해 그들 각각을 역할 모델로 삼았던 우리네 두 전직 대통령과, 그들 모두를 역할 모델로 삼았던 또 다른 미국 대통령을 살펴본 바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역할 모델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만능의 관찰 포인트는 아니다. 홈지기도 저 두 글에서 공통적으로 닉슨을 언급하며 각자의 깜냥과는 상관 없는 역할 모델에의 매몰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의 아이러니에는 고개를 가로짓지 않을 수 없다. 링컨을 쫓아 민주화 이후의 통합 지도자를 꿈꿨으나 섣부른 열정이 앞선 나머지 경원당하며 퇴장한 노무현, 그리고 처칠을 쫓아 경제를 구할 전시 사령관을 꿈꿨으나 도덕성과 정치력 부족으로 지리멸렬하는 이명박 — 우리가 링컨을 치워버리고 처칠을 들어 앉히는 사이, 바다 건너에선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자꾸만 어긋나는 미국바라기에서 벗어나 우리의 항로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지혜는 이래서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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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獨步 2009/02/24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최상위권 강대국 일진들에게 둘러싸인 대한민국 처지에서는 에스파니아의 프랑코 총통처럼 도움받을 때에는 감사히 받았다가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려오면 중립으로 확 돌아서는 '배은망덕형 외교'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 물론 극한의 눈치숙련이 필요함.

    하지만 명나라에 대한 의리 운운하다가 임금이 머리쳐박고 항복의식하는 것도 모자라 명나라가 패망하고 나서는 소중화의 진정한 후계자 운운하는 무협만화적 설정에 도취되었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21세기에 이르러서까지 해방과 한국전쟁 당시의 은혜를 성조기 흔들며 수도 한 가운데에서 소리높여 찬양하는 사회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집권이 불가능한 리더십이겠죠.

    • Periskop 홈지기 2009/02/25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배은망덕형(?) 외교는 관리해야할 리스크 부담이 너무 커서 정치세력이 불안정한 우리나라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력까지 빈곤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다들 우물에 빠져 있는지 대안들이 아직 영 신통치 않습니다.

  2. foog 2009/02/24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대하면 멸종하는 것은 공룡뿐만이 아니겠죠. 미국을 보고 있으면 - 물론 전후의 - 굉장히 에너지효율이 낮은 거대한 스팀엔진이 연상됩니다. 전전의 영국이 그러했을 것처럼... 패권주의 국가를 용인하여야만 하는 시스템이라면 우리는 또 어느 나라를 그 비효율적인 공룡으로 키워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죠. :)

    • Periskop 홈지기 2009/02/25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당히 비효율적인 패권국가는 주변국가들의 생존과 번영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는 중국과 인도 같은 덩치 큰 국가들이 미국의 탐욕을 떠받쳐주며 자본획득에 열을 올리다보니 스트레스 누적으로 세계경제가 출렁대는 형국이겠지요. 안 그래도 직장에서 향후 국가간 경제질서와 의존 네트워크가 어떻게 변할지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해보고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3. 일화 2009/02/24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처칠이 2차대전 승리에 기여한 바는 히틀러나 스탈린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그나마도 체제상의 문제로 직접 지휘할 수 없었다는 점이 주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저로서는 처칠을 모델로 삼는다는 것이 영 걱정이 되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9/02/25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굳이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가카께서 생각하시는 궁극의 역할 모델은 따로 있다는 전언이 있거든요. 공개하기는 그렇습니다만, 그게 좋아서라기 보다는 지금보다야 더 나빠지지는 않을거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4. 비스마르크 2009/02/25 0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칠옹이 위인이긴 위인입니다만...

    이미지가 워낙 시카고 마피아보스 포스가 강해서...ㅋㅋ

  5. newrun 2009/02/26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의 처칠관련 글은 두번째 접하는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 봤습니다. 정치가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 어릴적 한번쯤은 처질의 위인전을 읽으면서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암튼 나의 역할모델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으 누구였나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2/26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언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셨다니 글쓴 보람이 조금이나마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 Crete 2009/02/26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이정환님의 블로그에 보니까 해외에 무제한 호스팅 회사를 쓰신다고 댓글을 남기셨더군요. 혹시 정보를 공유해 주실 수 있으실지요? 지금은 설치형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게 은근히 불편하네요. 계획이 끝나는 시점에서 저도 한번 사용하시는 호스팅 회사와 접촉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Periskop 홈지기 2009/02/26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은 웹호스팅 회사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간판회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디스크사용량, 트래픽 'Unlimited'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평판이 좋은 대표적인 웹호스팅 업체를 꼽아보자면,

      hostmonster.com
      bluehost.com
      inmotionhosting.com
      webhostingpad.com
      ……

      같은 것들이 있겠군요. whois 검색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저 가운데 bluehost.com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사시니까 저런 업체들을 이용하시는게 쓰기에 훨씬 편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7. Crete 2009/02/26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작 미국 살면서 저런 서비스가 있는지도 모르고 local에서 서비스하는 회사들 비싸다고 타박하고 있었군요...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뭘 좀 계획하는 것이 있어서... 이번 정보가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8. 비밀방문자 2009/02/27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3/02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래전 일도 기억하신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습니다. 당시 제 ID는 h*는 아니었고 c*였죠.^^

      그나저나 질문해주신 내용은 사실 제가 현용 밀리터리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명쾌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본질을 꿰뚫고 계신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문제를 좀 더 살펴보고, 언급하신 내용보다 더 자세한걸 말씀드릴 수 있으면 글을 올리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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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거의 두 주 가까이 블로그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방문객 여러분들도 뉴스를 통해 접하는 부분적인 정보만으로도 최근 경제, 사회, 안보 등 다방면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체감하실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심상치 않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고, 이런 것들을 분석-처리해야 하는 홈지기도 몹시 버거운 실정이다. 아무쪼록 방문객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양해 바란다.

이런 가운데 막간을 이용해 국방일보 기사를 뒤적여봤다. 군인도 아닌데 웬 국방일보?라는 말이 나올법 하지만, 홈지기는 '패전속 승리학'이라는 연재물을 내보낸 인연도 있고 해서 종종 들여다본다. 그런데 오늘은 공군본부 정훈공보처에서 기고한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러일전쟁이 끝난 직후의 중국 하얼빈 역. 철수를 준비하던 러시아군 패잔병 사이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삼소노프(1858~1914) 장군이 런넨캄프(1854~1918) 장군을 보자마자 그대로 달려들어 뺨을 때린 것입니다. 기병대를 이끌고 탄광지역을 지키던 삼소노프가 일본군에 포위돼 고전하고 있을 때 자신을 엄호하기로 돼 있던 런넨캄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패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둘은 부하들이 뜯어말릴 때까지 진흙탕을 뒹굴며 싸웠는데 근처에 있던 독일군 장교 막스 호프만(Max Hoffmann ; 1869~1927)이 이 싸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와 독일이 맞서게 됐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삼소노프와 런넨캄프 사이의 불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독일로 함께 진격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이들을 상대할 독일군 제8군에는 막스 호프만 대령이 작전 참모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둘이 절대로 서로 협조하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전 병력을 한 편에 집중시켜 섬멸시키는 각개격파 작전을 펼치게 됐습니다. 세계 전사(戰史)에 길이 남게 된 1914년 8월의 ‘타넨베르크 전투(Tannenberg War)’는 이렇게 시작됐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호프만 대령의 작전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런넨캄프와 삼소노프가 두 갈래로 나뉘어 진격해 들어오자 독일군은 삼소노프 부대에 전력을 집중해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런넨캄프의 참모들은 삼소노프의 부대를 지원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정작 최종 결재권자였던 런넨캄프는 사적인 원한에 사로잡혀 지원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삼소노프 부대는 전멸당했고, 얼마 안 돼 런넨캄프의 부대도 같은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군은 12만5000명의 전사자와 6만 명의 포로를 남기고 후퇴했는데, 이 패배는 기나긴 동부전선 전투의 시작은 물론 제정 러시아의 붕괴를 알리는 서곡(序曲)이 되고 말았습니다…… (후략)

출처: 국방일보 「살며 생각하며 - '타넨베르크 전투'의 시작」 (붉은색 강조는 홈지기가 추가)

타넨베르크 전투 당시 러시아군 제1군 사령관이던 파울 폰 렌넨캄프(Paul von Rennenkampf)1와 제2군 사령관이던 알렉산드르 삼소노프(Александр В. Самсонов)의 불화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특히나 이 일화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것만 보면 확실히 당시 러시아군은 막장의 군대였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서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점잖은 장군들이 뺨다귀를 날리지 않나, 체면 내던지고 말 그대로 이전투구를 하지 않나, 보드카에 감기약이라도 타서 마셨던 것일까. 반면 막스 호프만의 존재로 대별되는 독일군의 모습에는 '역시!'라는 말이 나온다. 그새 잘 노려보고 있다가 십여 년이 지나서 초유의 작전기동에 여지 없이 써먹다니, 독일군 참모장교의 예리함은 달리 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잠깐, 이런 생각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진 분이라면 글을 한 번쯤 차근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러일전쟁 당시 외국 참관단의 일원이었던 호프만이 목도했을 정도의 쌈박질이었다면 어떻게든 뒷말이 안 나왔을 리가 없다. 러시아 주재 무관들의 사교장에서 뒷담화가 돌았을 수도 있고, 러시아군의 보고체계를 통해 올라가서 황제나 군 최고위층의 잔소리라도 나왔지 않겠는가. 그런데 1차 세계대전 당시 이들의 불화를 상부에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어딘가 삐걱거리는 정황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Periskop 분위기에 익숙한 분들은 이만해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 진흙탕 싸움질 일화는 날조된 거짓이다.

Russian Army Generals in WW1

제1군 사령관 렌넨캄프, 제2군 사령관 삼소노프, 북서전선 사령관 질린스키, 전쟁부장관 수호믈리노프.

렌넨캄프와 삼소노프가 둘 다 러일전쟁에 기병사단장으로 참전했던 것은 사실이다 — 렌넨캄프는 자바이칼 카자끄사단을 지휘했고, 삼소노프는 시베리아 카자끄사단을 지휘했다. 이들은 모두 참모대학 출신으로 지적인 소양과 야전 경험을 통해 기병병과에서 나름의 명성을 날리고 있었으나, 둘 사이에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었다. 렌넨캄프는 사회적 배경부터 두터운 귀족 출신이었고, 군은 물론 왕가에도 인맥이 있었다. 이런 성향이 반영되어서인지 지휘 측면에서도 착실하고 비교적 안전한 작전을 선호한 인물이었다. 반면 삼소노프는 귀족 출신이긴 했으나 빈한한 집안이어서 사회적 배경이 훨씬 떨어졌다. 그는 지휘 측면에서 훨씬 공격적인 성향을 발휘하여 야전에서 명성을 쌓아올렸다. 따라서 러일전쟁에서도 서로의 지휘 스타일에 대해 백안시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렌넨캄프는 봉천회전(묵덴전투)이 끝났을 무렵에 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2삼소노프가 간도 지역의 작전 때문에 렌넨캄프에 대해 계속 불만이 있었다 하더라도 둘이 물리적으로 봉천역이나 하얼빈역(?)에서 싸울 처지가 안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 일화는 그냥 뜬소문에 불과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 렌넨캄프와 삼소노프 사이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러시아 군 수뇌부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건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군내 파벌 문제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삼소노프는 전쟁부 장관(военный министр)이던 블라디미르 수호믈리노프(Владимир А. Сухомлинов)쪽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리고 렌넨캄프는 형식상의 러시아군 총사령관이던 니콜라이 대공(Николай Н. Романов) 편에 가까웠다. 니콜라이 대공은 고급 지휘관으로서의 군 경력이 일천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전쟁 수행은 수호믈리노프와 총참모부가 주도했다. 하지만 짜르의 당숙이라는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미묘한 긴장이 있던 상황이었다. 러시아군 수뇌부는 오히려 이런 두 야전군 사령관의 연줄을 잘 알았기에, 양측 참모장은 역으로 임명이 되어 있었다. 즉 제1군 참모장 가브릴 밀레안트(Гавриил Г. Милеант)는 수호믈리노프 계였고, 제2군 참모장 표트르 포스톱스키(Пётр И. Постовский)는 그 반대 진영의 인물이었다. 현실적인 군 내부의 역학관계가 작전 향배에 영향을 덜 미치도록 인사상 배려도 이뤄진 셈이었다.

이런 면에서 당시 독일군 제8군 작전참모였던 호프만 중령3의 작전 입안에 양자의 불화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호프만에게 위험을 감수한 기동작전을 결행하게 만든 것은 감청된 러시아군 무전통신문의 내용이 더 결정적이었다. 당시에는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총참모부와 전진하는 각 야전군 사령부 사이의 전화망을 가설하는데도 허덕대던 시기였다. 따라서 지휘계선상 수평적인 두 야전군간 통신은 물론, 예하 군단 및 사단급 제대에게 명령을 발령하는데도 보안이 엉성한 무전이 남발되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독일군이 1914년 8월 20일에 굼비넨 전투에서 격퇴된 이래 패주하기 바쁘다는 막연한 인상만을 받았고, 당초의 계획을 뛰어넘어 무리하더라도 독일 제8군의 퇴로를 차단하는데 더 집중했다. 이로 인해 좌익을 맡은 러시아 제2군의 전열이 엉성해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둘러 진격하라는 명령을 남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명령을 훤히 감청하고 있었기에 호프만 중령은 이 틈새를 이용한 축차 격멸작전을 입안했던 것이다.

렌넨캄프가 제1군 병력을 적극적으로 남서진시키지 않고, 쾨니히스베르크 압박을 위해 서진시킨 조치도 엄연히 양 야전군을 통괄하는 북서전선군 사령관 야코프 질린스키(Яков Г. Жилинский)의 허가 하에 이뤄진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렌넨캄프는 기병 출신이지만 상당히 조심스러운 기동을 선호하는 성향이었음도 기억해야 한다. 렌넨캄프는 여전히 독일군의 상당수 전력이 동프로이센의 요충 쾨니히스베르크를 사수하기 위해 결진하고 있을 것으로 믿었고, 측면을 노출시켜가며 남서방향의 기동에 애쓸 생각이 없었다. 설마 독일군이 쾨니히스베르크 일대를 거의 텅 비워가면서 3개 군단을 빼돌리리라는 것은 렌넨캄프나 질린스키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렌넨캄프가 독일군 상황에 대한 정보와 전략적인 식견이 부족해서 파멸적인 결정을 내렸을지언정, 삼소노프에 대한 사심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German Army Generals in WW1

제8군 사령관 막시밀리안 폰 프리트비츠 운트 가프론, 제8군 작전참모 막스 호프만, 신임 제8군 사령관 파울 폰 힌덴부르크, 신임 제8군 참모장 에리히 루덴도르프

국방일보 기고문과 같은 식의 타넨베르크 전투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1차 세계대전 이후에 공고해진 것이다. 독일군은 타넨베르크 전투의 승리와 대전 말기 러시아에 대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점차 러시아군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소련군이 투하쳅스키부죤니의 불화로 사정없이 패주한 바르샤바 전투의 전훈도 이런 편견을 강화시켰다. 이런 러시아군의 조악함을 설명하는데 있어 렌넨캄프와 삼소노프의 이전투구 일화만큼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도 없었다. 아무래도 감청을 통해 결정적 정보를 잡아냈다는 이야기보다는 독일군 참모장교의 통찰력으로 적의 내면적 맹점을 꿰뚫어봤다는 이야기가 훨씬 극적이지 않겠는가. 전간기(1-2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에 타넨베르크 전투를 대대적으로 미화시키던 독일 분위기에서 이 일화는 매우 쉽게 확대증폭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식의 이해는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소련군을 드녜프르강 서쪽에서 모두 섬멸시키고 쉽게 독소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으리라는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예상 이면에는 타넨베르크 전투 때부터 쌓인 지독한 편견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4년이 넘는 전쟁 끝에, 타넨베르크에서 도륙되었던 러시아인들의 군화발 아래 독일은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어제 얕잡아 보던 상대라고 마냥 무시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 그게 오히려 저 일화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겸허함을 잊어버린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순간 확 떠오른다. 여기서 한 번만 더 겸허함을 잊었다간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벌어지고 홈지기 업무부담도 덩달아 늘어날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이름 때문에 간혹 독일군 장군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다. 정확히는 발틱 독일계 러시아인이라서 독일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고, 러시아식 이름으로는 파벨 카를로비치 폰 렌넨캄프로 불렸다.
  2. Showalter, Dennis E. (2004). Tannenberg: Clash of Empires, 1914. Washington, D.C.: Brassy's Inc. 이 책은 타넨베르크 전투에 대한 매우 훌륭한 책이므로 관심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3. 국방일보 기고문에는 대령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1916년에나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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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신화가 이야기하는 것

    Tracked from 고어핀드의 망상천국 2009/02/24 14:25  삭제

    신화 = 설명하는 이야기발달심리학 연구자들에 의하면, 똑같이 돈을 많이 벌고 똑같은 사회적 지위에 올랐어도 자기가 왜 거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자기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은 스스로도 성공했다고 느끼지 못한다. 정리하면, 우리는 언제나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야기의 형식으로 바꿔서 받아들인다.- 장근영, <싸이코 짱가의 영화속 심리학>, 메가트렌드, 2007, pp.75신화 하면 보통 떠올리는 것이 그리스·로마 신화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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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아스 2009/02/18 2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지 편견만큼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도 없다는 교훈이군요.
    지금 이순간에도 편견에 젖어 살아가는 저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홈지기님께서 아주 따끔!한 일침을 가하셨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_^

  2. 별마 2009/02/18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역 시절 군대에 비치된 전쟁사 교본을 몰래 보면서 알게 된 타넨베르크 전투의 허상과 당나라 군대 러시아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려주시는 좋은 글이군요. 왜 그때는 '아무리 당나라 부대라고 해도...'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을까요? 이래서 군대가 문제는 문제인 거 같네요(그냥 제가 문제인 듯...)
    타넨베르크 전투의 미화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치가 처음 주도세력으로 부상했을 때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이었고 히틀러가 총리(이땐 총통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였을 정도로 타넨베르크 전투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었죠. 전체적으로 패배한 전쟁 중에서도 국지전에서 대승을 거둔 장군이 영웅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3. 레닌 2009/02/18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학도를 부끄럽게 만들 만큼 휼륭한 글입니다. 어쩌다가 구글을 타고 왔습니다만, 오래전 하이텔 군사동의 채승병님이 맞는지요?

    딴지 하나만 걸자면.. 마지막 러시아군에 대한 독일의 평가는 바로잡을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은 1차대전 막바지까지 러시아를 두려워했습니다. 탄넨베르그에서 러시아가 아웃된 것도 아니지요.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러시아의 병력 수를 생각한다면 그다지 큰 손해도 아니었습니다.

    탄넨베르그 전투는 전술적으로 독일의 승리이지만 전략적인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정적으로 독일의 쉴리이펜 계획이 망가지는 데 일조를 하지요. 탄넨베르그 전투 자체에도 이미 일부 병력이 서부에서 이동됩니다만 (이것 자체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아무튼 영향을 못미쳤는지 아닌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요), 이후 이 승리의 의미가 과장되어서 그후로도 독일로 하여금 동부전선에서 일체의 전략적 후퇴를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러시아 때문에 독일은 동부전선에 상당한 병력을 주둔시켜야 했고 오히려 공세에 나서게 만들지요.

    러시아군은 탄넨베르그로 전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군은 독일의 마주리아 공세를 물리쳤고 브루실로프 공세에서는 독일의 동맹국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붕괴일보 직전까지 몰고 가서 독일의 개입으로만 (역시 서부전선으로부터 상당한 병력 이동) 사태가 진정되게 됩니다. 브루실로프 공세의 결과 거의 결단이 나버린 오스트리아 헝가리 때문에 독일은 동부전선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게 되지요.

    • 길 잃은 어린양 2009/02/19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레닌 //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독일은 1차대전 막바지까지 러시아를 두려워 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가는군요.

      많은 독일 군사사 연구자들은 동부전선 최대의 위기였을 브루실로프 공세 당시 조차 OHL은 별로 심각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Verdun 전투를 연구한 R. Foley는 브루실로프 공세에 대해 언급하면서 OHL 내에서 이상할 정도로 이 공세에 대해 낙관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915년에 힌덴부르크가, 1916년에 호엔보른이 각각 동부전선에 병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러시아군을 두려워 해서가 아니라 병력을 조금만 더 증강하면 러시아군을 상대로 포위섬멸전을 펼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독일이 러시아를 두려워 했다면 이런 대응을 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독일이 1차대전 전 기간 동안 러시아를 두려워 했다는 연구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4. 레닌 2009/02/18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의 존재와 그 끊임없는 위협은 결정적인 순간에 서부전선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던 프랑스를 구합니다.

    탄넨베르그 전투가 그 전략적 중요성에 비해 각광을 받은 이유는 지루한 서부전선의 참호전-결정적인 승리가 없던-에서 완승을 거둔 초기의 유일무이한 전투였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는 독일의 쉴리이펜 계획을 좌절시키고 2개 전선을 유지해서 어느쪽에서도 결정적인 승리를 못거두든 상황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 전투입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러시아군은 독일 측에서 절대 만만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탄넨베르그 승리와 2차대전의 독일군의 러시아에 대한 평가를 연결시키는 것은 조금 무리인듯합니다. 러시아를 전쟁에서 이탈시킨 것은 독일에 의한 패배가 아니라 혁명이었으니까요. 탄넨베르그에서 러시아군을 가장 괴롭힌 문제는 보급이었는데, 그 이유가 러시아의 철도 사정 등도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 이 전투가 프랑스의 필사적인 요청으로 인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채 시작된 공세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될 때마다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의 공세가 있었습니다. 독일은 항상 공세가 크리티컬한 시점에서 병력을 동부전선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 시달렸고, 1916년 이후 오스트리아가 붕괴 직전의 상황에 간 이후에는 혼자서 러시아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요.

    삼소노프와 렌넨캄프의 개인적 원한은 쓰신 것보다도 상당히 컸습니다. 그리고 주먹 결투 이야기도 분명히 사실이 아닙니다만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서로 결투 신청이야기가 당시 러시아 장교단 사이에 돌아 나올만큼 둘 사이는 안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러시아 총사령부에서도 분명히 알고 있었지요. 러시아 군사사 아르히브 (RGVIA)에 가면 렌넨캄프와 삼소노프 사이의 알력에 관한 양자의 개인적인 편지가 있습니다..

  5. 레닌 2009/02/18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혁명이 일어난 이후 독일군은 우크라이나와 남부러시아, 발틱 해 연안을 모두 정복하고 레닌그라드나 모스끄바도 마음맘 먹으면 점령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만, 그것은 혁명 이후 러시아 군이 붕괴된 이후의 상황이고, 1916년까지 러시아의 만만치 않는 군사력은 서부전선에 독일이 총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브레쓰트 리또프스크 조약 이후에야 총력을 기울일 수 있는 상황이 오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개입..

    다 아시겠지만, 그냥 끄적여 봅니다.

  6. 레닌 2009/02/1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탄넨베르그의 의미는 독일의 승리보다도 쉴리이펜 계획을 좌절시킴으로서 독일의 서부전선에서의 신속한 승리를 저지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게 러시아 사 학계에서의 총론-영미와 러시아 학계가 의견이 일치하는 얼마안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한가지.. 독일의 군부, 특히 프로이센 융커들은 전통적으로 친러적이었습습니다 (친소비에트가 아니라). 사실 러시아의 황가-로마노프 왕조 자체가 에까쩨리나 여제 이후로는 독일인의 후예들이지요. 많은 독일인들이 제정러시아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19세기 후반 이후 독일의 주적이 프랑스였기 때문에 비스마르크 같은 경우는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고 했지요. 러시아의 군사력을 그만큼 의미있게 봤기 때문입니다. 물론 질적으로라기 보다는 그 규모에서...

  7. 레닌 2009/02/18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하체프스키의 부죤니의 불화로 적군이 패배했다는 부분도 많이 과장인듯합니다.. 소련-폴란드 전쟁의 종결은 군사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아무튼 역사전공자가 아닌 분이 이정도로 깊이 있게 보신다는 것은 대단하시는 말밖에는.. 러시아 혁명을 전공하는 전공자의 입장에서 아주 간단한 사족을 달아보았습니다.

  8. 비밀방문자 2009/02/19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9. BigTrain 2009/02/19 0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일화는 국내에 소개된 왠만한 1차세계대전 관련 서적에도 다들 실려있었던 것 같은데, 날조된 일화였군요.

  10. 양성민 2009/02/19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1. 일화 2009/02/19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해 전쟁사 책에서 읽었지만 어째 수상쩍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홈지기님께서 의문점을 풀어주시는 군요. 사실 장군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은데 그걸 주변에서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되죠. 그렇다고 저 둘이 반드시 저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어쨌든 홈지기님께서 바쁘시다니 건강이 걱정되네요. 과로에 몸 상하지 마시고 쉬엄쉬엄 좋은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12. 슈타인호프 2009/02/20 0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또 하나의 "상식"이 교정되는군요^^;;

  13. 구들장군 2009/02/20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어디나 잘못된 정보가 상식이 되어버리는 일이 가끔씩 있나보군요.

    저도 자꾸만 겸허함을 잊어버리고 나대려고 하는데..조심해야겠습니다.
    한번은 저완 비교도 안될 실력자가 제 블로그에 들러갔더군요. 댓글도 없이 갔지만, 참 시껍했습니다. 망신을 안 당하려면 조용히 입 다물고 사는 게 최고 같습니다.

    • 일화 2009/02/20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넷상으로 자주 뵌 듯한 기억에 주제넘게 한 말씀드리자면, 망신을 안 당하려고 조용히 입다물고 계실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헛소리로 여러번 망신을 당하였습니다만, 만일 입을 다물었다면 지금도 잘 못 알고 있을 여러 오류를 시정할 수 있었으니까요. 중요한건 어설픈 근거로 독단에 빠지지 말고 고수를 대접해드리는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 구들장군 2009/02/20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화님/ 예 그런 면도 있군요.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수분들은 바로잡아 주지 않으시고 그냥 넘어가시는 일이 많더라구요. 얘는 도대체 답이 안나온다 싶었는지 ^^;;

  14. 방문객 2009/02/20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저 유명한 일화도 거짓이었군요.
    그나저나 렌넨캄프씨의 수염은 언제봐도 포스가 넘칩니다;;

  15. 고어핀드 2009/02/24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관련글을 한 편 쓰게 되어 트랙백 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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