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떤 홍보 전문가가 모 언론사의 요청에 따라 1942년에 처칠의 대중 화술을 진단한 글이다:

최근 한 중립 언론사가 처칠 씨는 어떻게 영국 여론에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어왔다. 최악의 반전과 사기를 꺾는 패배들, 초기의 의심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국 대중은 이 영리한 문장가에 사로잡혀 그의 우둔한 정책과 군사 리더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질문은 대답하기에 쉬우면서도 어렵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은, 처칠 씨는 정치와 군사 리더십 양면에서 전략적 감각이 전혀 없긴 해도, 비상하게 능란한 전술가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적 정당과 언론을 다루는 리더십에서는 거장이며, 현존하는 영국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이다. 알려진대로 딱히 대단한 지성을 타고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의 수법은 누구나 생각할만큼 원시적이기도 하다. 그의 아이디어들은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않고, 누구든 그가 말하거나 행할 바를 그대로 예측할 수 있다.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영국 수상에 취임했을 때, 그는 후퇴나 패배를 망라한 어떤 정치적, 군사적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끝까지 버텨내겠다는 슬로건을 선언했다. 이는 모든 비난을 막아 주었다: "피와, 땀과 눈물1." 이런 슬로건 하에서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날 위험 없이, 쓰디쓴 결말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승리한다면 대중은 그런 슬로건 따위를 기억해내진 못할테고, 패배한다면 그는 예언가인 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칠 씨는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 병상 옆에 서서 이런 말을 하는 의사와 같다: "이 분 돌아가시겠군요." 환자 상태가 더 악화되거나, 죽는다면, 그는 옳은 것으로 판명난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의 탁월한 예지력을 자랑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환자가 호전되거나, 낫는다고 해도, 어느 누가 의사 말과 달리 병세가 호전되었다며 그 의사를 비난하겠는가?

누구도 이런 수법이 영리하다던가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는 이게 먹힌다. 지금 이 순간까지, 처칠 씨는 그렇게 해 왔다. 예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그의 속임수로부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도는 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주 동안 벌어진 대영제국의 심각한 패배 뒤에, 그는 분명 바로 이런 상황을 예상해왔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의 선견지명은 대중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처칠 씨가 두 달 뒤에 이야기할 바를, 그리고 당장 오늘 이야기할 바를 예측할 수 있다. 그의 수법 중 하나는 과거를 가장 암담한 시기로 색칠하고는, 현실에서 은빛 서광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도 그가 상황을 회색빛 정도로 봤던 지난 8월 연설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그가 오늘 이야기하는 것만 보고서 그 때 체감하던 심각성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을 과거보다 더 좋아 보이게 하기 위해, 과거가 더 나빴던 것처럼 만드는게 그의 수법이다! 이건 사실에 반하지만, 그는 대중의 망각에 의존한다. 대중은 그가 지난 8월에 정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찾아보고 오늘 한 이야기와 비교해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

그는 그 자신과, 그의 정책 또는 전쟁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불편함을 다루는 대단히 영리한 술책을 갖고 있다. 그는 비난 비스무리한 것들은 허용한다. 대영제국이 타격을 입고 비틀거릴 때, 그는 잠시 무대 뒤로 물러나 대중들이 비난을 퍼붓도록 내버려둔다. 말하자면 그는 밸브를 활짝 열고, 대중들의 분노가 흩어지도록 한다.

이게 그의 뜻에 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게임을 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는 대중이 가장 시끄럽게 목소리를 외치면 곧 목이 쉴 것임을 안다. 이른바 처칠판 위기가 정점에 다다르면,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등장할 것이다. 그는 파도를 잠재우고, 술에 물을 탈 것이며, 패배를 최소화하고, 그가 전부 예견한 것이라 설명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기가 더 심한 것도 예견했었다고 하며, 그렇게까지 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고 할 것이다. 대중들은 우박을 맞지 않고, 단지 비만 맞았다고 기뻐할 것이다……2

이 평가는 지극히 악의적이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불편한 진실을 일부 담고 있기도 하다. 처칠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신감과 담력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그는 쉽사리 지도자를 교체하기 어려운 전시 상황을 톡톡히 이용해가며 즐겼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영국 내에서도 많이 받았다. 이 점이 평시의 지도자들은 함부로 처칠의 리더십을 따라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꿰뚫어 본 전문가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괴벨스 박사였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처칠이 수상에 취임한 직후인 1940년 5월 13일에 하원에서 한 연설이다. 여기서 그는 "저는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2. 주간 『Das Reich』誌 1942년 3월 1일자에 실린 글이다.
2008/08/06 01:05 2008/08/0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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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8/06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기린아 2008/08/06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ㄲㄲㄲ. 역시 괴벨스 박사. 괴벨스는 이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 같아요. 그런점에서 보면 괴벨스는 역사학을 했어도 잘 했을거 같은 느낌. 말하는 완전히 양웬리네 -_-;;;

  3. 獨步 2008/08/06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 전 6.29 이후 대선 당시 노태우측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YS/JP에 대한 흑색선전물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참 가관이더군요(헛웃음). 찌라시다운 과장이 내용의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찌라시조차 일말의 진실은 담고 있는게 사실인거보면 어떻게 저런 양반들이 정치사의 거목으로 군림했었나... 싶은 정치혐오증이 느껴질 수 밖에 없더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08/07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 현대사에서는 그런걸 불가피하다고 자신을 위안할 이유가 매우 많았겠지요. 막막한 숲을 한 사람이 헤치고 가고, 다른 사람들이 뒤따르다보면 길이 만들어지게 되는 원리는 나쁜 쪽으로 더 많이 작용했을 겁니다.^^

  4. uriel  2008/08/06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괴벨스야말로 한 50년은 타임머신 타고 앞으로 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0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인간의 속성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역시 한 가닥 한 인물들의 어록 속에는 오늘날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괴벨스처럼 그런 속성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데 재능을 발휘한 인물들에게서는 서늘함이 느껴지는 대목이 종종 나오죠.

  5. 삽질랜드 2008/08/06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괴벨스 선생은 히틀러 때문에 스킬이 증가 하신 듯'ㅅ'

  6. 일화 2008/08/07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방식을 엄청난 두께의 얼굴로 밀어붙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거죠. 단순한 전략일수록 고도의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 거라... 롬멜에게 호되게 당했을 때의 연설도 다른 사람에게서 보기 힘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7. 비밀방문자 2008/08/07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8. 양성민 2008/08/07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고 보니 영화 매트릭스 3부에서도 'Deus ex machina'가 나왔었더군요.

  9. chrisx 2008/08/09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랄한 평가의 주인공이 괴벨스였다니.
    고수들끼리는 서로 알아보는 건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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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인호프 님께서 처칠의 유명한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뎅케르크 철수에 대한 1940년 6월 4일 하원연설)의 뒷이야기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잡학사전』을 참고하신 것이라는데, 여기에 수록된 상황은 다음과 같이 떠도는 이야기이다.

처칠은 6월 4일 하원연설을 대국민 방송을 위해 BBC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다시 낭독했다. 이 연설의 백미는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를 읊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말하고, 윈스턴 처칠은 잠시 마이크를 손으로 덮은 채, "We’ll hit them over the heads with beer bottles, because that’s about all we’ve got! (그리고 우리들은 맥주병으로 그놈들의 대가리를 후려 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는 그것밖에 없으니까!)"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조로 말을 했다가 연설을 이어갔다. "We shall never surrender!……"

이 일화(및 그 변종)는 굉장히 유명한데, 책들을 읽다 보면 조금씩 다른 식으로 전해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버젼의 뒷이야기에는 정황상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위에도 밝혔듯이 원래 저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은 영국 하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영국 하원에서는, 오늘날 법원에서 녹음/녹화가 불가능하듯이 연설 등을 직접 녹음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를 국민에게 방송하려면 별도로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해야 했다. 하지만 1940년 5월 말에서 6월 초의 시기는 프랑스전역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영국의 국운이 백척간두에 놓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처칠이 별도의 녹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형편이 못 되었다. 결국 저 연설은 BBC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가 일부만 발췌해서 소개했다. 즉, 전시의 영국 국민들은 저 6월 4일분 연설 내용을 처칠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기회가 없었다.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처칠의 육성 연설은 전후(1949년)에 Decca Records의 요청에 의해 녹음된 것이다.1 (아래는 어떤 사람이 10분 분량으로 편집한 전후 육성 녹음본)

결국 『잡학사전』에 소개된 뒷이야기는 몇 가지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게 낭설에 불과한 것일까? 그건 또 아니다. 오늘날의 통설은 이렇다:

이는 하원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영국 정치권이 독일과의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연설 중간중간에 의원들의 호응이 상당했다. 게다가 영국 하원 자체가 수상의 연설을 조용히 듣는 문화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BBC에서 중계하는 하원 연설을 보면, 내용에 따라 의원들이 환호하다가, 장탄식하다가, 야유하다가 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아래는 현직 영국 총리인 고든 브라운과 보수당 당수인 데이빗 카머론이 한 판 설전(?)을 벌이는 모습)

당시 의원들은 보다 점잔을 빼긴 했어도 처칠의 연설 중간중간마다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막바지에 한창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부분이 나오자 역시 의원들의 열렬한 환호로 연설은 잠시 중단되었다. 이때 처칠은 환호가 멎기를 기다리다가, 옆 자리에 앉은 동료2에게 슬쩍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And we'll fight them with the butt ends of broken beer bottles because that's bloody well all we've got.
(그리고 우린 그들과 깨진 맥주병 머리로 싸울 겁니다. 그게 분명 우리가 가진 전부니깐.)

『잡학사전』에 수록된 내용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으나, 이 내용이 운율도 맞고 보다 어감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정황 상으로도 하원에서 일부러 마이크를 가리고 연설문 일부를 누락했다는 것보다는, 환호 중간에 슬쩍 던진 위트였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현재로서는 처칠에 대한 대부분의 문헌들에 등장하는 버젼이기도 한 만큼, 이쪽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처칠의 탁월한 언변과 그 속에 묻어나는 위트는 어디 한 두 가지의 예화로 설명될 수준이 아니다. 혹시나 이런 류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The Wicked Wit of Winston Churchill (윈스턴 처칠의 짓궂은 위트)』라는 책까지 나와 있으니 한 번 구해 읽어 보시기 바란다. 한국 정치인들이 왜 지루하게 보이고 세월이 지난 후에라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홈지기 또한 이렇게 글에 위트가 없어서야…… (퍽퍽)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데이비드 어빙은 한 때 그의 저작(Churchill's War)에서 1940년 6월 4일 연설이 영국의 유명 배우 노먼 셸리(Norman Shelley)에 의해 대신 녹음되어 당일 저녁에 방송되었다는 설을 주장한 바 있다. 논란 끝에 셸리가 1942년 무렵에 성대모사로 이 연설을 재연하여 녹음했었다는 사실은 밝혀졌으나, 역시 공식적으로 방송된 적은 없음이 밝혀졌다.
  2. 이 동료(?)가 누군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전시 연립내각의 부수상을 지낸 애틀리를 거론하는 설이 있다. 아마 좌석배치로 보아 처칠 가까이에 있던 고위 정치인들이 이 말을 듣고 재밌어서 연설 뒤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퍼뜨린 것 같다. 때문에 당시 주영 미국대사였던 죠셉 케네디(JFK의 아버지)나 캔터베리 성당 참사회장 휴렛 존슨이 듣고 전했다는 설까지 있다.
2008/08/03 04:30 2008/08/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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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8/03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일화 2008/08/03 0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야 아직 위트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요... 홈지기님의 글은 충분히 재미있으니 그다지 부담갖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3. 폴라곰  2008/08/03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칠이 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건설회사를 했다면 지금쯤 삼성은 2위일껍니다.

    아울러 MB께서 2차대전 당시 제3제국의 지도자였다면 『Mein Kampf』를 탈고한 다음에 자살은 안했을 듯 합니다.

  4. 길 잃은 어린양 2008/08/03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정치인들도 말이라면 참 잘하는데 왜 그리 웃기는 재주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처칠경의 농담 실력이야 국민학교 시절부터 여러 종류의 위인전을 통해 접했지만 맥주병 이야기는 특히 깨는군요. 어째 염세적인 독일 농담같은 느낌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03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들 좀 위트를 존중해줘야 하는데, 이를 꼭 비틀어 해석해서 받아들이는게 정치인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장 홍준표 대표가 "암초"라는 표현을 썼다고 청와대가 발끈하는 모습이란……

  5. 슈타인호프 2008/08/03 1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긴 저도 읽으면서 아무도 듣지 못할 스튜디오 안에서 혼잣말로 했다면 기록이 어떻게 남았을까가 좀 의심스럽기는 했습니다. 의회에서의 연설중이었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08/03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들은 스튜디오 버젼은 옆에서 도와주는 방송 기술자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지만, 이것도 결국 와전이 거듭된 결과였던거죠. 다른 사람들의 소소한 일화들이야 그저 그러려니 넘어갔을텐데, 처칠의 이야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cross-checking을 하니 뭔가 어긋나면 자꾸 눈에 밟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6. 슈타인호프 2008/08/03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인해 보니 소개해주신 책은 국내에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위트의 리더 윈스턴 처칠"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7월에 나왔더군요.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읽어봐야 할 듯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8/03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헉, 그랬군요. 그러고 보면 처칠 관련 책은 이것저것 제법 많이 번역된 것 같습니다. 저도 서점 가서 어떻게 번역해놨는지 확인해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7. Lawlite 2008/08/03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위트를 기르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괜히 재주(?)를 부려보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다보니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홈지기님 글은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위트를 기대하겠습니다. ^^

    아,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휴렛 존슨에 관한 하이퍼링크의 주소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앞의 죠셉 케네디의 링크와 동일하게 되어 있네요.

  8. 삽질랜드 2008/08/04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정도 감각이 있는 인물이니 노벨 문학상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ㅅ'

    노벨 문학상 하니 생각난 건데 사실 처칠은 노벨 문학상보다 '골초&병나발상'이 더 어울릴 인물인데 말이죠'ㅅ' 세상에는 아직 이런게 없으니 말이죠'ㅅ'

  9. vicious 2008/08/04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걸로 보면.. 김종필 총재께서 조금은 있었던 것 같던대..
    "몽니를 부린다"던지..
    "숲은 아름답지만..깊고 어둡다" 던지
    이런 말들로 속내를 표현하던...

    하여간.. 다들 유머감각은 빵점이죠..

  10. 폴라곰  2008/08/04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 하원 동영상을 보니 'Westminster Palace나 Wembley Stadium이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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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 글에서 홈지기는 "때로는 역사적 사실보다도 다른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역사관을 들여다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썼다. 특히 우리 사회 핵심 행위자인 대통령의 역사관은 달리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그가 "링컨"을 역할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로부터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홈지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동 일단을 링컨의 행적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했던 바 있다. (⇒ 참고: 링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노 대통령)

근현대의 대통령 중에서 또 유달리 역사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인물이 있었다 — 바로 리처드 닉슨이었다. 닉슨은 역사에 대한 식견을 매우 중시했으며, 역사에 대한 통찰이 현세를 헤쳐가는 길을 보여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수많은 국내외 지도자들에 대한 책을 읽고, 많은 고사를 메모하며 외웠다고 한다. 역사라면 역시 한 가닥 하는 키신저와 함께 깊이 있는 토론을 즐겨하기도 했다. 밤새 루덴도르프 공세의 전략적 성패 요인과, 한국전쟁에서의 맥아서의 실패 요인에 대해 논하던 닉슨과 키신저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덕후 기질이 느껴지신다고??) 닉슨의 전략적 통찰력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리버럴 진영에서도 인정하듯이, 닉슨이야말로 진정한 실용적 보수주의를 추구할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1

Nixon and Kissinger

우리 오늘 끝장 토론을 해 보지

그런 닉슨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면이 나쁜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상황에 맞지 않는 위인을 역할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역할 모델에 대한 닉슨의 탐구는 또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소지가 있었다. 누구보다 완벽하게 닉슨의 생각을 사로잡았던 인물이 바로 샤를 드골이었기 때문이다…… 드골의 영향은 분명히 바람직한 면이 있었다. 그는 닉슨이 스스로 갖추고 싶어했던 자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대인들의 사고를 넘어 먼 지평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국민들이 삶에서 물질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눈뜨게 해주었다. 국민들이 보다 높은 목표를 갈망하고 있다면, 지도자는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국민을 결집시킬 혁명적인 변화를 일궈낼 수 있으리라. 닉슨은 사적, 공적 자리에서 레지스탕스 시절 드골의 명언을 즐겨 인용했다.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닉슨도 드골처럼 골수 민족주의자였으며, 그는 자신의 야망을 향해 미국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고자 했다……

Nixon and de Gaulle

각하,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드골과 같은 유럽의 지도자를 모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 모방 자체는 경박한 것이었고, 닉슨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닉슨이 자기 우상의 통치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하려고 했다는 데 있었다. 드골은 병적으로 남들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종종 남의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로다(L'État, c'est moi)"라는 말을 했다지만, 드골도 그와 똑같은 말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는 국민의 목소리를 얘기했지만, 국민과 함께 하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더구나 정치인들이나 언론인 할 것 없이 누구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전제적이고 오만했다. 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의 전통이 없었다면, 근대의 나폴레옹에 의해 새롭게 부활했던 프랑스의 전통이 없었다면, 그의 통치 스타일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골과 같은 정치인이 영국이나 혹은 미국의 토양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는 민주적인 자질을 결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드골을 모방하려는 노력은 닉슨의 가장 부정적인 본능을 강화시켰다. 이미 얘기했듯이, 그는 선천적으로 외롭고 수줍음이 많았으며, 아무리 큰 결정도 혼자 내리는 것을 좋아했다. 기껏해야 키신저 같은 파트너와 상의를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는 소란스러운 정치를 즐기지 않았으며, 민주주의적인 리더십의 기술과는 본능적으로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으로서 닉슨은 역사에서 확실히 많은 것을 얻었다. 그렇지만 드골보다 테오도어 루즈벨트나 윌슨, 아이젠하워처럼 최고의 미국 민주주의 전통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모델로 삼았더라면, 그는 훨씬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2

홈지기는 오늘 MB가 청와대 참모들에게 책을 한 권씩 돌렸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처칠 평전(『We Shall Not Fail』)이라…… 이제껏 MB는 무슨 역사의식이 있는지 알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런 MB가 대뜸 처칠의 리더십을 배우자고 나섰다. 그것도 정통적으로 처칠을 파헤친 깊이 있는 책이 아니라, 전형적인 비지니스 리더십 스타일로 요리된 책을 두고서 말이다. 맹형규 수석과 박형준 비서관이 추천했다고 하니 냉큼 듣고 솔깃했던 모양인데, 어찌 보면 참 얕은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단면인 것 같아 씁쓸하다. MB는 단순히 이런 연설을 쫓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본인은 피와 노고, 눈물과 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가장 혹독한 시련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보낼 많은, 많은 날들이 놓여 있습니다. (1940년 5월 13일 하원연설)

우리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커가는 자신감과 힘을 갖고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지킬 것입니다, 그 댓가가 얼마가 되건, 우리는 해안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 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1940년 6월 4일 하원연설)

하지만 '왜 지금 하필 처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깊은 고민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촛불시위가 독일군의 런던 폭격("The Blitz")인 것처럼 받아들이기라도 한단 말인가. 또 MB에게 과연 처칠에게 배울만한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걸 넘어서, 청와대 비서진한테 책을 돌려가면서 처칠의 리더십을 상기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꼬이고 꼬인 난국을 풀어가는데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나는 몹시 부정적이다. 처칠이 과단성이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얼마나 결점이 많았는 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저 얄팍한 책에 열광해서 무얼 도대체 얻겠는가?  더군다나 처칠이 어디 만만한 인물이던가. 최소한 그는 탁월한 입담과 유려한 글 솜씨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았고, 나름의 정치력이 켜켜이 쌓인 인물이었다. MB가 그런 덕성을 단숨에 쫓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인의 모습을 얕은 인식으로 흉내내려 들지 말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게 민주주의적 리더십을 익히고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다.

Churchill

이걸 바랬겠지만……

Bush

이 분이 느껴지는군요.

처칠을 어설프게 숭배하는 이들이 수많은 함정에 빠져 세계를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있다(⇒ 참고: 보수논객 뷰캐넌의 필봉은 여전하다). 이제 MB도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닉슨은 역사를 너무 많이 알면서 드골에 빠져 자신을 망쳤다지만, 역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처칠에 빠져드는 우리의 대통령은 더더욱 위태롭게 보인다. 그저 저 실리아 샌디스의 책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 '현명한 리더는 취미를 즐기거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업무 외의 다른 것도 추구한다.'3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이에 대해서는 국내에 최근 번역된 폴 크루그먼의 『The Conscience of a Liberal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도 언급을 하고 있다
  2. 데이비드 거겐.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pp. 50-58). 서울: 스테디북.
  3. 처칠은 그림 그리기를 매우 즐겨했다. 이 말이 단순히 골프나 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건전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말임은 다들 아실 것이다.
2008/07/23 14:30 2008/07/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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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함부르거  2008/07/23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어린 시절에는 처칠을 존경했는데 알면 알수록 따라가서는 안될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더군요. 그래도 그는 흥분한 노동자 군중의 면전에서 시가를 빼물고 당당히 나설 정도로 배짱과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 아니었습니까?

    MB가 그런 걸 따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황새 쫓아가는 뱁새 꼴 날 것 같습니다. 어쩌자고 이런 천박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 Periskop 홈지기  2008/07/24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처칠은 워낙 다양한 모습을 내재한 인물이라 파헤치며 즐기기엔 좋지만, 말씀하신대로 뭘 특별히 따라하기엔 곤란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들어주신 일화처럼 배짱과 카리스마도 있었지만, 한 켠에서는 눈물도 자주 흘리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는 몹시 당황스럽더군요. 그나저나 MB에 대해서는 역시 견적이 안 나옵니다.^^

  2. 후훗 2008/07/23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분석대상의 수준을 너무 높이 파악하신 거 아닐지...
    그냥 전쟁에 <승리>한 국가지도자들 중에서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도입한 사람,
    공산군에게 패배한 사람, <좌파>가 본받으라 읊어대는 나라의 지도자
    (이상, 어디까지나 MB 보시기에 그렇단 말이죠)
    이렇게 빼고 나면 처칠밖에 없죠...

    • Periskop 홈지기 2008/07/24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직선적인 필터링 규칙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MB가 역사적 식견이 더 있었으면 더 좋은 전범을 찾을 수 있었겠죠.

  3. 양성민 2008/07/23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명한 리더는 취미를 즐기거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업무 외의 다른 것도 추구한다.'라는 말이 멋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훗훗훗 2008/07/23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칠 평전 돌렸다길래 존 렘스덴의 책인줄 알았더니 저런 상업서를......

    하긴 MB 수준이 그렇지... -_-;

  5. 길 잃은 어린양 2008/07/23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저러나 각하께서 저 가벼운 책에서 뭔가 거창한 것을 이끌어내려는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24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나 말입니다, 각하의 머리 속에는 엘알라메인 전투가 아른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몬티 역으로 누구를 내세울까요?

  6. 흐흥 2008/07/23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골도 허걱했는데 처칠이라니.. orz
    하긴 전시의 이명박이라면 지금보단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24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신이 난세에 태어났으면 더 멋있게 활약했을텐데……라는 지도자 분들이 꼭 계시지요. 현대건설 현장을 누비던 야전사령관의 꿈과 사뭇 다른 대통령 직에 통분하고 있을 겁니다.

  7. 일화 2008/07/23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모습을 볼때 큰 걱정이 안들기는 하네요. 뭔가를 읽고 영향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질 않으니...

  8. 폴라곰  2008/07/24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가 박정희나 처칠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70년대의 '통치 낭만주의'에 빠져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거 당시 자신의 정체성으로 밝혔던 '경제 견인 성장'의 코드는 분명히 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박정희나 처칠 당시의 시대적 특질을 지금 시점에서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국가 목적 달성에 전제되는 피아식별이 분명했으며 사회 공동체 내에 '주적'에 대한 전사적 긴급상황이라는 공동 이해가 도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내외적으로 피아식별이 모호해지고 여러가지 불만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소위 '칼 든 영웅'이 활동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권 10년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낼 영웅 이명박'의 모습이 경선 때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랴'부터 이번 처칠 평전까지 지속되고 있는 듯 합니다. 씁쓸 그 자체네요.


    참고로 저는 앤드류 로버츠의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Hitler & Churchil: Secrets of Leadership)>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울러 MB도 꼭 이 책을 읽고 히틀러에게서 뭔가 배웠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보단 닮은 사람에게서 더욱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24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써주신 바에 공감합니다. 시대 흐름 속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적절히 적응해가야 할텐데, 아무래도 머리가 굳어지면 자기가 변화하려고 하기 보다는 시대가 나를 따라 잡아주길(?) 기대하는 심리가 강해지죠. 처칠도 1930년대에는 정말 많은 욕을 먹고 인기도 지지리 없었던 것을 상기하면서, MB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호기가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요?)

    • 폴라곰  2008/07/27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신에게 유리한 호기가 있는데 그걸 '저놈들이' 막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듯 합니다.

      문제는 '저놈들이'의 실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건데 언제쯤 거울을 들여다 볼지 모르겠습니다. 이리저리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주변에서도 다 손 놨다는 얘기가.. --;

  9. 승병님의 오랜 팬 2008/07/24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음.. 승병님은 자연과학을 전공하셔서 그런가요?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무척이나 신중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MB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저는 그 판단에 항상 공감하지만요. ^^;;)

    MB는 현상황을 그저 영웅설화의 시련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니 처칠이 얼마나 매력적이겠습니까. 전유럽을 석권한 히틀러에
    굴복하지 않고, 영국을 지켜내고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윈스턴 처칠수상.

    그야말로 MB취향에 딱인 겁니다. 실제 처칠의 진실같은건 전혀
    알 바 아니고요.(아직도 '읍니다'를 고수하는걸 보면 책이나 글과는
    담쌓은 사람이란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냉정히 말해 청와대 직원들한테
    돌린 저 책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거라는데 만원 걸겠습니다. ^^)

    얼마전에 승병님이 시티노 교수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잖아요.
    저는 그 책을 보면서 MB가 오버랩되더군요.
    그 사람은 60이 훌쩍 넘도록 밀어부치기 식으로만 살아왔으니
    그 프레임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파열음을 내다가 예전에도 썼다시피
    결국 한나라당의원들한테도 버림받을거라 봅니다.

    아웅~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졸려서 이만 자야겠습니다.
    타임라이프 2대전사랑 몇몇 책과 디시 2대전갤러리 글이나 읽은 제게
    승병님이나 다스라이히님, 어린양님, 윤민혁님 등 대인배들의 신선놀음같은
    토론을 보면서 그저 굽신굽신하기만 했는데 어째 MB관련해서만 덧글을 달게
    되네요. 이러고 싶지 않은데.. ㅡ.,ㅡ;;
    참고로 독소전쟁사는 정말 감동하면서 봤답니다. ㅠ_ㅠ
    디시 표현을 쓰면 우왕ㅋ굳ㅋ이었죠. ^^;;

    • Periskop 홈지기 2008/07/24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역시 남의 심리를 해석하는 것은 논리보다 정말 "블링크!"가 필요할 때도 종종 있는 법이라……^^ 저는 본능적 감지에 좀 약하다보니 주절주절 자꾸 줏어담아 분석하게 되더군요.

  10. 김동운 2008/07/24 0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