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전을 비롯한 2차 세계대전기 군사이론에 대한 오해들
2차대전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전국들의 군사사상, 군사이론, 교리체계 등에 대해서도 잘못된 인식이 아주 폭넓게 퍼져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오해들에 대해 필자가 접해 본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 독일의 전격전과 소련의 종심작전 교리는 영국의 풀러와 리델-하트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이 영국식 기동전 이론의 진정한 계승자이다.
- 소련의 종심작전 교리는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대패를 당하면서 전격전 이론으로부터 배워온 것이며 그 내용도 전격전의 대규모 적용에 지나지 않는다.
- 전격전은 구데리안 등이 독일군 내의 보수파들의 심한 견제 속에서 히틀러의 도움을 받아 자리잡게 만든 독일군의 기본 군사교리 체계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진실과는 엄청나게 동떨어진 이야기들이다. 당장 맨 처음 이야기한 독일과 소련의 기동전 관련 사상들이 상당부분 영국의 영향이란 주장은 전후 승전국의 입장이던 영미 연합국의 필자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독일은 이미 대전 이전부터 프로이센 육군에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기동전의 개념이 있었으며, 소련은 광범위한 전장에서 벌어진 적백내전기의 경험을 통해 기동전의 개념을 체득하고 있었다. 풀러의 Plan 1919 같은 경우 독일-소련의 이론가들에게 많은 주목을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것은 실제 야전훈련과 기동부대 편성 등으로 현실성 있게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히 주목을 받은 것일 뿐이고, 이론적인 측면만 따진다면 여타 다른 나라에서도 동등한 수준으로 주목을 받은 수많은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리델-하트의 경우는 평균 이상 주목을 받았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거의 없다. 그것은 대부분 리델-하트가 전후에 유명한 전쟁사가로서 독일군 장교들을 취재했고, 많은 독일군 장교들이 예의상 그를 치켜세워주었으며, 리델-하트 또한 자신의 많은 저서에서 그런 부분을 언급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이다.
 J. F. C. 풀러 소장 |  B. H. 리델-하트 |  H. 구데리안 상급대장 |
또한 소련군의 종심작전 교리는 독일군의 전격전과는 그 뿌리에서건 세부적인 측면에서건, 사고의 범위에서건 차원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소련은 이미 대전 이전이나 이후에나 학문적 군사과학(military science)의 체계화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나라였다. 소련군의 종심작전 교리는 같은 시대 어느 열강들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체계를 갖췄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험에 있어서도 적극적이었다. 대규모 공수부대의 운용, 대규모 기동집단의 운용, 대규모 화력지원 집단의 운용 등 갖가지 분야에서 소련군은 대전 이전부터 한참 앞선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1937년 대숙청과 그 회오리 속에서 종심작전 교리를 실천할 경험 있는 간부층이 소멸되면서 대전 초기 참화를 겪었을 뿐이다. 오히려 대전 중기 이후 신진 세대의 등장과 혹독한 정비를 통해 거듭난 소련군의 기동전 체계는 독일군의 체계를 압도해버렸음을 역사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소련의 종심작전 교리는 하나의 잘 짜여지고 정립된 교리 체계로서, 뒤에서 보게 될 공허한 전격전의 개념과는 동일선상에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이면에는 사실 전후 냉전 시기 적국인 소련의 용병술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시각도 깔려 있다. 위에 열거한 오해 1, 2번의 맥락은 결국 영국→독일→소련 순으로 맥을 계승했다는 족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원조 스승은 영국이고, 독일은 똑똑한 제자이며, 소련은 그 제자에게 두들겨 맞으며 배운 사이비 문하생 정도라는 지적 오만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에 나오는 전격전(Blitzkrieg)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 이것에 대해 오늘 이 글에서 좀 더 깊이 논해보기로 하자. 기실 2차대전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특히 독일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라면 "전격전"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격전이란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보았을 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개의 2차대전사 팬들이 전격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생각은 유명한 독일군 전차관련 사이트인 Achtung Panzer에 나와있는 전격전 개념정리 부분에서 잘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전격전의 개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 공군이 우선 적의 전선, 후방거점, 주요도로, 공항, 교통중심을 공격한다. 동시에 보병들은 전 전선(또는 주요 지점들)에서 공격을 하고 적과 교전한다. 이로서 적이 주력이 어디에 투입될 것인가 판단하지 못하도록 한다.
- 집중된 전차부대들은 적 주 방어선을 돌파하고 적진 깊숙히 돌진해나간다. 동시에 이를 뒤따르는 기계화부대들은 방어부대를 추격하고 지속적으로 교전하여 적이 철수해서 효과적인 방어망을 재정비하는 것을 방해한다.
- 보병과 다른 지원부대들은 공격을 종결짓고 적을 포위할 다른 부대들과 연결하기 위해 적 후방을 공격한다.
- 기계화집단은 적의 거점을 우회하고 후방을 마비시키며 적 영토 깊숙히 돌입하여 적 방어부대가 효과적인 방어거점을 재확립하는 것을 방해한다.
- 주력부대는 다른 부대들과 연결하여 적을 포위하고 차단한다.
하지만 여기서 열거한 내용들은 어떤 하나의 체계 하에서 존재하는 원리들이 아니다. 이 각각의 항목들은 사실 독일군의 여러 군종, 병과에서 채용한 작전술/전술 개념들을 온통 뒤섞어놓고 실제 전례에 그럴 듯하게 끼워맞춰서 "전격전 교리"란게 있는 것처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우선 독일 육군은 공군의 지상지원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고, 1920~30년대에 걸쳐 이를 위한 효율적인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것이 어떤 육군의 작전체계에 종속적으로 편입된 개념은 아니었다. 또한 더 언급을 하겠지만, 여기서 보이는 유명한 포위섬멸전(Kesselschlacht)의 개념은 전차의 개발과 기계화부대의 등장으로 인해 새롭게 창안된 것이 아니다. 독일군의 포위섬멸전 사상에 대한 집착은 대단히 강했고, 독일 군사사 전반에 걸쳐 면면히 내려오는 전통으로서 그 뿌리도 매우 깊었다. 전차를 비롯한 장갑차량, 기동수단, 무선통신수단의 발달은 이러한 전통적 작전의 실행 효율을 크게 향상시킨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특히 전격전 하에서 기갑부대는 방어선 돌파 후 적 후방으로 한없이 돌진하여 적의 지휘체계를 총체적인 혼란에 빠뜨리고 "마비"시켜야 한다는 통념은, 이러한 포위섬멸전의 맥락에서 실제 독일군이 추구하던 바와는 많은 부분에서 배치되는 것이었다. 편제상으로도 독일군 기갑부대는 종심작전 교리에서 필요로 하는 소련군의 기갑부대와는 달리 기동성이 보강된 다용도 사단의 성격이 강했다. 독일군이 수행한 많은 포위섬멸전에서 기갑부대들은 돌파 이후 대규모의 희생적인 전투를 회피하지 않은채 적 섬멸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기동방어라는 이름으로 숱한 방어전에도 동원되었다. 오히려 기갑부대와 그 집단이 보병지원용, 방어선 돌파용, 후방 침투용 등으로 명백히 구분지어져 후방으로 적의 지속적인 마비를 위해 돌진하는 것은 독일군 교리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소련군 종심작전 교리의 특징에 가까웠다. (독일군과 소련군의 군사사상과 작전 체계를 독소전의 실제 전례와 비교하는 것은 이후 동부전선전사 정리를 하면서 꾸준히 시도하도록 하겠다.)
다시 말해 하나하나 뜯어보면 위에 열거한 특징들은 독일군이 실제 추구하고 확립한 교리 체계에 근거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 자체로도 모순되는 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전격전이란 무엇인가? 이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대니얼 휴즈가 1980년대에 쓴 글 하나를 이어가기로 하겠다. 글을 읽기 전에 이 글이 쓰여진 배경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야겠는데, 1970년대 말 이래로 당시의 미군 내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그 동안 미군이 계속 추구해 온 소모전적 교리들을 새롭게 개혁하여 기동전의 개념을 채용하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 수준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실 군사학의 수준은 소련, 독일 등에 비해 한참 뒤지는 나라여서, 이러한 새로운 운용 교리의 도입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따르고 있었다. 결국 독일과 소련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기동전 교리의 도입을 위해 모델로서 제시된 것이 바로 독일의 "전격전"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보여준 화려한 전격전의 체계를 미군에서 최첨단 기술과 함께 부활시켜 당시 위협적으로 간주하던 바르샤바 조약군의 거대한 기동군 위협에 맞서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2차 세계대전기 독일의 전례들을 "전격전"이라는 틀로 짜맞추어 이해하고 이를 미군의 기동전 교리에 심어넣고자 노력하게 된다 — 그 결과로 1980년대 초에 들어와서야 아주 어중간하고 애매하기 그지없고 (결국 후일 실패작으로 끝나는) 공지전(Air-Land Battle) 교리가 도입되게 된다. 대니얼 휴즈는 바로 이러한 독일 군사이론에 대한 미국측의 자의적인 해석이 실제로 독일군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별 근거가 없는 것이며, 심지어는 독일군의 의도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전격전이란 무엇인가?
Hughes, Daniel J. 1996. Blitzkrieg. [ed.] Franklin D. Margiotta. Brassey's Encyclopedia of Land Forces and Warfare. Dulles : Brassey's Inc., 1996, pp. 155-162.
전격전(Blitzkrieg)이란 독일어 낱말은 1939년 9월 폴란드전역을 지켜본 비 독일계 관찰자들에 의해 처음 유명해진 이래 세월이 더해가며 매우 다양한 범위의 외연적, 내면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나찌 경제 구조에 대해 연구해온 역사가들 중 상당수는 동일선상의 전반적인 군사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 단기전을 위한 조직적인 경제 계획 속에서 전격전 전략의 존재를 찾아왔다. 하지만 진짜 독일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래서 정말 장차 전쟁의 부담을 미리 준비해놨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에서 조차 이견은 존재한다. 전략과 군사작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필자들은 독일군이 공격적인 전쟁에서 신속하게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고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주장들의 새로운 형태는 근래 주로 미국의 군사 문헌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상당수의 저자들은 전통적인 전투를 통해 적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교란시키고 혼란에 빠뜨림으로서 전투와 전역에서 승리하도록 고안된 특정한 전술과 작전 체계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미국에서의 소위 군사개혁운동과 미 육군 내 공식, 비공식의 교리 사상 양쪽 모두에 많은 개념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런가하면 다른 역사가들은 아예 기계화전의 전 시기를 "전격전 시대"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전격전 시대는 최소한 1980년대까지 잡아야 하며, 기동전에 대한 소련의 접근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통파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독일 제국주의자들이 양대 대전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기울인 광범위한 노력을 전격전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관점들은 모두 전격전 뒤에는 정치적이거나, 경제 계획적이거나, 군사 교리이거나, 군사 방법론 적이거나 어쨌건 뭔가 어떤 큰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이러한 모든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전격전은 어떤 정책도, 경제적 수단도 아니었으며, 군사 교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쯔 구데리안(Heinz Guderian)이나 다른 이들이 독일군의 기갑부대를 위해 혁신적인 전술적, 작전적 교리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게 사실이다. 많은 역사가, 언론인, 정치학자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군 장교들도 이런 소위 전격전 교리를 결전을 치루지 않고서 적을 마비시키는 기동전의 사용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들은 전격전의 목적과 방법론에 대한 이론을 열심히 개발해왔으며, 그들의 결론을 지지하는 많은 여론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시각의 확산을 통해 현재 군사 사상에 순수한 학술적 중요성 이상의 이슈를 던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독일군 교리의 본질
어떤 군사적인 측면에서 전격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으로 먼저 알아둬야 할 것은 1919~45년 시기의 독일 군사 교리의 본질이다. (여기서 교리라 함은 군대의 전쟁 철학과 그 뼈대 안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전투를 치루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독일군의 교리 교범들은 상황에 따라 지휘관들이 적용해야 할 근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독일군의 교리는 어떤 전쟁의 포괄적인 원리나, 신조, 명령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지도, 도표, 도식 등으로 채워진 틀에 박힌 도해는 있어봤자 극소수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엄밀성과 확고한 기준은 없지만 독일군의 교리는 차량화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단위부대에 적용할 수 있는 군사행동에 대해 꾸준하게 긴밀히 접근해갔다. 그래서 대규모 기갑부대 창설 이전에 쓰여진 1933년판 「부대지휘론(Truppenführung)」에서는 이미 기갑부대에 적용하기에도 충분히 유연한 개념들을 담고 있었다.
두 종류의 전쟁
1919년과 1945년 사이의 독일 군사이론에서는 기동전과 진지전, 이렇게 두 종류의 전쟁을 구분하고 있었다. 1914~18년의 긴 진지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 대다수 군사이론가들은 일관되게 진지전을 미래의 모델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거부했으며, 대신 프리드리히 대왕, 몰트케, 슐리펜의 전통으로 복귀할 것을 그리고 있었다. 이 관점에서는 정적인 전선에서 지나치게 세심하게 준비된 단편적인 공격들과 큰 결정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로 점철된 1차 세계대전은, 상궤를 벗어난 것이었으며 작전 상의 고집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기동전 기반 이론으로의 복귀는 종전 직후부터 즉시 대두되었다.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장군과 그의 동료들, 계승자들이 1918년 이후 이러한 기동전 이론으로의 회귀에 대해 공적(또는 책임)이 있지만, 진실은 사실 더욱 복잡하다.
 L. 베크 상급대장 |  O. 루츠 기갑대장 |  H. v. 젝트 상급대장 |
젝트와 그의 선임자들
젝트의 기동전 부활은 때때로 이야기되는 것만큼 그렇게 중대한 혁신은 아니었다. 그의 새로운 1921년판 기본 교범인 「지휘와 전투(Führung und Gefecht)」는 전적으로 전통적인 독일 군사이론의 넓은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교범이 출판되기 전에도 이미 새로운 독일군은 1914~18년 진지전의 대안을 계속 찾아왔다.
1918년의 독일군 공격 방법이야말로 서부전선에 기동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주 오해되고 있는 돌격부대(Stoßtruppen) 전술은 결국 전통적인 기동전으로 복귀하는 수단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결코 이런 근본적인 원칙들에 대한 독일군의 신뢰를 흔들어놓지 못했다. 이미 1920년에 빌헬름 발크는 독일의 전시 전술의 기본적인 정확성을 지적하고 기동전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했다. 같은 해, 대전 이전의 주도적인 군사이론가이자 공간사가이던 휴고 폰 프라이탁-로링호펜 남작은 기동전으로의 회귀를 전후 독일 군사이론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전 직후 시기 주도적인 반(半) 공식 편람이던 로어베크의 「전술(Taktik)」은 그 논의 전체를 기동전과 진지전의 전통적인 구분에 초점을 맞췄으며, 과거 전쟁의 경험을 아무리 돌아봐도 기동전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전통적인 프로이센의 개념
젝트의 새로운 1921년판 교범은 공식적으로 기동의 원칙이 계속 지배적인 원리임을 확인시켰으며, 결국 기동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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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 심각한 줄 알았는데 미국도 만만치는 않군요. 전쟁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분야면서도 이것저것 골고루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돈이 안되는 게 주된 원인이지 싶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법의학도 비슷한 사정인 듯 하던데 말이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4년 전에 독일에 갔었는데, 신문인지 잡지인지 뒤적거리다 보니 가장 기대소득이 높은 전공과 낮은 전공 순위가 있더군요. 그런데 낮은 전공 1위가 "Geschichte(사학)"이었습니다. 그 순간 Geschichte 내에서 또 순위를 매기면 Militärgeschichte(군사사)가 탑이 아닐까 생각했었지요.^^
헉. 그러고 보니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미국이나 영국의 이름 있는 대학들이 찍어내는 군사사 관련 서적들 중 정통군사사로 분류할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세이나 논문을 묶어서 내는 군사사 단행본에도 절반 이상은 문화사나 사회사적 연구들로 채워지고 있으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몇 안되는 제대로 된 사학 전공자로서 윤시원 님은 계속 공부를 하신다면 어떤 주제를 선택하실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채승병님 // 실제로 공부를 더 해보면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군사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군사사 전공자들이 "불가촉천민(pariah)처럼 취급받는다"는 부분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계에 한숨 쉴 일이 이것 뿐이겠습니까.^^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알겠습니다, 검토하고 시간 되는대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군사사 전공자 키우기가 쉽지 않은것이..
군사학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사료비판 능력이 떨어지고
사료비판 능력이 뛰어나면 군사학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니..
그러고 보면 존스홉킨스 대학의 헤이백(M. Habeck) 교수같은 분이 신기하죠. 여성인데도 군사사 전공해서 그만큼 성과를 내는거 보면 말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반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군사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 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이해하라."는 리델 하트의 말이나 클라우제비츠의 그 수준높은 학문을 아무런 이해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반전을 위해서는 군사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죠'ㅅ';;;
세간에는 군사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호전적이거나 수구꼴통인 것처럼 인식하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는게 현실이기도 하죠.^^ 실제로는 스펙트럼이 훨씬 다양한데도 말입니다. 군사사의 지식이 특정 정파의 전유물은 아닐진대 조금 안타까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실 군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서 학위를 딸 수 있다는것 자체를 처음 알았습니다 -_-;;;;; 지금까지 오랫동안 군사사 분야 책을 뒤지고 다니긴 했지만. 국내에 군사사 학위 취득이 가능한가요? 육사나 이런데 말고는 없을것 같은데..;
어쨌거나 군사사가 정치사나 외교사에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데 그에 대한 이해 자체가 너무 부족한거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의 재발을 막자고 소리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6.25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그런 현실이랄까요..?
육사는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 아니죠.^^ 국방대학원에 박사학위과정이 있긴 하지만, 군사전략 전공이 있을뿐 군사사 전공은 없습니다. 대개 사학과 중에서 관련 연구를 한 교수님들 밑에서 지도를 받아 군사사 주제로 논문을 쓰면 군사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죠. 엄격한 의미의 군사사 박사학위과정이 개설된 사학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정치외교 분야에서 군사사가 꽤 중요하긴 한데, 정작 제대로 전공한 사람은 없고 대개 곁다리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쪽도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군사사 분야 연구자들이 시대사로 학위를 받죠. 예를들어 대한제국 군제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근대사 전공자가 되고 이승만시기 한국군을 연구하는 사람은 현대사 전공자가 되는 겁니다. 찾아보시면 그래도 군사사 연구자가 아예 없진 않습니다. 물론 외국에 비해 군사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인정해야 겠지만요.
제가 알기로 국내 대학 중에서는 서경대학교에 군사학과가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과정 등을 살펴보면 학문으로서의 군사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ROTC나 학사장교로 진출할 마음을 일찍부터 먹은 고교졸업생들을 입학하면서부터 같은 학과로 모아놓는데 의의를 두고 있는 듯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U.S. News & World Report지에 실린 글을 예전에 흥미롭게 읽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여러 역사분야들의 동향에 관해서 과 친구들이나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같이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것 같아 그냥 제 주변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글에서 언급하신대로 군사사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도 들기는 하지만, "쇠퇴"는 차라리 역사학 일반(더 넓게는 인문사회과학 전체)에 해당되는 듯 합니다. 군사사의 쇠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부분 동료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래도 군사사 정도되니까 쇠퇴하고 있다는 소리라도 나오는 것 아니냐?" 혹은 "군사사학자들 글만 읽어서 그런 소리하는 거다. 다른 분야는 소리소문없이 죽어가고 있다." 뭐 대충 이런 반응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역사학계의 부동의 본좌, 정치사를 제외하고는 아마 역사학 모든 분야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어려워진 미국경제상황이 학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지 수 년이 지난 현재 상황에서 군사사"만"의 쇠퇴를 논하는 건 일종의 "엄살"에 불과하다는 것이 타분야전공자들의 중론인 듯 합니다 (종교사나 문화사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여성사나 일반사회사 전공자들마저도 이렇게 생각하더군요.)
또한 잘 아시겠지만, "군사사 학위프로그램이 있다"라는 의미는 일반적인 역사학과 프로그램 구성이 지역별로 나누어지는(즉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경우가 많은데, 몇몇 대학들(즉 말씀하신 12개교)에 Military History라는 이름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대학이 12개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언급하신 Habeck같은 경우 예일대 역사학과에서 폴 케네디 밑에서 독일과 소련의 기갑교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때, 졸업학위가 역사학 박사중 군사사입니다. 이 말은 폴 케네디 밑에서 영국해군정책으로 논문을 쓴 학생들중 군사사로 학위를 받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냥 영국사로 학위를 받는 학생들도 있다는 의미가 되겠죠. 즉 다른 대학에서는 Habeck의 경우 Main adviser가 누구냐에 따라서 독일사나 혹은 소련사로 학위를 받아야 하지만, 군사사학위프로그램이 있는 12개교의 경우 Habeck의 경우와 같이 군사사로도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죠.
그리고 별도의 군사사학위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들(거의 대부분 동부와 중서부지역 대학들이죠. 군사사 연구의 지역적 편차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중 군사사 프로그램 교수진의 질적 양적수준을 따져보면 Ohio State University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군사사학위 프로그램이 없는 대학들에 비해 군사사연구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즉 학위프로그램이 없는 각 대학들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사 및 군사사관련 교수진의 수가 학위프로그램이 있는 대학들의 군사사 및 군사사관련 교수들의 수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대학은 군사사로 학위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대신, 다른 대학은 기존의 지역구분을 고수하느냐라는 의문이 생기는데요.... 영국학제의 영향등과 같은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만, "제가 들은바에 의하면"(교수들이나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자료를 본 건 아닙니다.) 결국 "돈"과 "취직"때문인 것 같습니다. 별도의 군사사 학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대학들은 정부(더 정확히는 군부)로부터 군사사 및 군사관련연구로 연구비를 받아오던 대학들(특히 캔사스주립대 같은 중서부의 주립대들의 경우나 동부의 몇몇 대학들)이었습니다. Military History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이 군관련 연구 및 군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연구비를 (거의 독점적으로) 받거나 자신들의 군사사 학위 졸업자들을 정부기관에 취직시키는데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별도의 군사사프로그램 설치없이 기존의 지역적 구분을 고수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도 역시 취직때문이라는 군요. 즉 실제로 민간인 역사학박사소지자의 경우 정부기관으로 취직하는 걸 제외하면, 군사사라는 이름으로 학위를 받는(학교 입장에서는 주는 것이겠죠) 것 자체가 민간대학 임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점때문입니다. 학위를 받고 assistant professor로 취직하고자 하면 연구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소위 "teaching"인데 지역적 구분, 즉 영국사나 독일사 같은 구분에 비해 "지나치게 specific하게 보이는 군사사"가 임용담당자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겠죠. 특히 많은 미국대학중 반이상이 넘는 소위 학부교육이 주된 목표인 대학들에서는 더욱 그러할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대학의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학위자같은 경우 (군사사 프로그램이 있다하더라도) 지역적 구분에 따른 학위를 받든지, 더 심한 경우 (군사사 프로그램이 없다 하더라도) 군사사를 연구하는 다른 학교에서 졸업하기를 더 원하는 경우가 많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예일에서 결국 tenure를 못받고 존스홉킨스로 옮긴 Habeck의 경우도 tenure도 안주면서 단물만 빨아 먹고 버리는 "악명높은" 예일의 나쁜 버릇때문만은 아닐것입니다.
군사사가 쇠퇴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맥락이나 정도차이가 있지나 않을까해서 그냥 잡설을 남깁니다. U.S. News & World Report에 나온 그 글을 읽고 "봐라! 미국에서도 군사사 쇠퇴한단다. 한국에서 군사사? 택도 없는 소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네요.
글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다른 답글 다신 분들께 폐나 끼치지 않았는지 걱정되네요...... 사과드릴께요.
반갑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계시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주시니 저로서는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도 아마추어 군사사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니 심층적인 내부의 문제의식을 파악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전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충분히 경청할만한 이야기였으니 길게 쓴 것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 좋은 말씀 많이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자세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특정 대학들이 군사사 부문에 특화가 된 것 처럼 보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군요.
역시 정부발주 연구프로젝트 수주에 의한 연구비확보는 - 결론은 학과/학교의 존속 - 현대 대학의 공통고민인 모양이군요.
없어도 먹고 사는데 하등 지장이 없는 학문/예술은 별다른 하는 일이 없어도 잘먹고 잘사는 '유산계급의 취미생활(?)'로서, 그들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했었는데 그게 요즘은 '정부/기업의 프로젝트'로 바뀐 듯 싶네요(헛웃음).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주색잡기와 명품에만 돈쓰지 말고 학문/예술에도 취미 좀 들여서 수표이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이겠죠(썩소)?
우리나라에는 "군사사"란 분야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종현 님께서 사학과에 남으셔서 군사사를 하셨어야 했습니다.^^
유행이라고 하긴 그렇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선 군사사쪽 논문 쓰는 사람들이 조금 늘었더군요. 미국에서도 불가촉천민 취급 받는다라...그쪽 분야 대중서 읽는 사람도 같은 취급을 받는걸까요.
대중서 시장에 별별 사람들이 들끓다보니 사학계에서 좀 고깝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국내에서 군사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 확대되는 징후가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학계가 어서 대감님을 더 존중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조선시대 전공자로서 한마디 거든다고 한다면, '군사사'라는 것이 좀 애매하게 떠버린 감이 있습니다. 군사사를 깊게 연구하려면 전략, 전술 같은 군사학에 대해 좀 알아야 하는데 군사학 자체가 육사에서나 가르치는 아주 지역접이고 특수한 학문으로 인식이 되어서 일반 대학의 커리큘럼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었죠. 거기에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전통적인 숭문천무 관념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었구요.
또 하나는 한국사를 한국사람이 자기손으로 직접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는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료를 접할 기회도 없었고, 50년대는 전쟁 후유증 때문에 사실상 한국인에 의한 근대적 방법론에 따른 한국사 연구는 60년대 부터라고 봐야 합니다. 즉 한국사 연구의 역사는 기껏 50년 정도 밖에 안되는 겁니다. 애시당초 유럽이나 일본의 자국사 연구에 있어서 축적된 역량과 시간의 양에서 비교가 안되죠. 60년대에서 80년대 까지도 일제식민사관의 극복과 신생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연구주제-자본주의 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 같은-를 해결하기에도 바빠서 전쟁사에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최근에 여성사다, 생활사다 하는 유행이 나오는 것도 가장 기초적인 정치사, 사회사, 경제사, 사상사의 연구가 어느 정도 축적이 되었기 때문에 가지뻗기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죠. 정치사나 사회경제사 연구도 부족한데 전쟁사 같은 약간은 마이너한(?!) 분야를 건드리기가 힘들죠.)
그래도 전쟁사 비슷한 것으로 '군제사'는 좀 연구가 많이 된 편입니다. 군제사는 일단 제도사에서 중요한 영역인데다 무력=권력이기 때문에 정치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죠. 조선후기의 붕당정치와 훈련도감, 장용영 같은 군영의 관계가 깊기 때문에 '군제사'의 경우는 그래도 국사학 안에서 메이져의 영역에 들어 갑니다.
어떻게 보면 그래도 기본적인 정치사, 사회경제사, 군제사의 연구가 축적된 지금이 '전쟁사'가 유행을 탈 수 있을 시점인데, 문제는 국사학을 비롯한 모든 인문사회과학이 다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