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료 수집차 이런저런 잡지 과월호를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맞닥뜨렸다. "War Sells, but Not in Class (전쟁은 팔린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니다)." 미국의 손꼽히는 유력 주간지 중의 하나인 『U.S. News & World Report』誌 6월 23일호에 실렸던 기사이다. 제목만 보고 기사 내용이 짐작이 가시겠는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전쟁은 인류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20세기를 휩쓸었던 대규모의 전쟁은 확실히 줄었지만, 저강도 분쟁은 여전히 골칫거리고 미국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꼭꼭 잡혀있다. 밑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는 전쟁비용의 문제와, 이라크에서의 적절한 발빼기 문제는 대선의 중요 이슈이기도 하다. 고유가와 함께 부활하는 러시아의 재무장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북아시아의 조용한 군비 경쟁도 전쟁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다.

어디 그 뿐만이랴. 전쟁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잘 팔리는 주제이다. 라일구 이래로 화끈한 비쥬얼로 무장한 전쟁영화들은 여전히 각국 영화산업의 단골 소재이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고대전쟁까지 골고루 커버하는 흐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홈지기는 게임에는 거의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전쟁을 주제로 한 게임들이 가끔 눈에 들어오는걸 보면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시장도 만만치 않은 규모일 것이다. 거기에 밀리터리 피규어, 모델링 등등의 세계까지 한다면 전쟁의 상업성은 이미 구석구석에 뻗쳐 있다.

Call of DutySaving Private Ryan

이것만 본다면, 정치외교적 필요에서건 문화산업적 필요에서건 군사사(military history)에 정통한 사람들이 웬만큼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한국에서야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다는걸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 같은 군사대국에서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이 떠돌기도 했다. 미국에서 학위를 따와야 학자 대접을 해주는 국내 사회과학계 풍토를 감안하면, 군사사 전공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마저 산산조각을 내고 있다. 미국의 전쟁 열풍에도 불구하고, 전쟁 관련 학계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미국 내에서 사학 분야의 박사학위 과정을 개설한 학교는 150개 대학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군사사 학위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는 현재 단 12개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나마 미시간이나 퍼듀 같은 명문대조차 전공 교수가 은퇴해버리면서 군사사 전공자가 충원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스콘신 대학교는 군사사 분야 교수직이 10년 이상 공석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존 린(John A. Lynn) 교수는 이처럼 '전쟁은 잘 팔리지만 학문으로서의 군사사는 안 팔리는' 모순적인 세태를 꼬집으며 이미 10년 전인 1997년에 "The Embattled Future of Academic Military History"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여기서 그는 군사사 분야가 남자(덕후)들의 비학술적 담론들이 주를 이루면서, 정작 미국 사학계에서는 군사사 전공자들이 "불가촉천민(pariah)처럼 취급받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린 교수마저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또한 홈지기도 몇 번 소개한 바 있는 이스턴미시간 대학의 로버트 시티노 교수도 미국 명문 대학에서는 군사사학자들이 "상당수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Robert M. Citino

두 손 다 들었답니다 (시티노 교수)

이런 학문으로서의 군사사가 심각하게 쇠퇴한 원인의 분석은 다양하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현재 학계의 주류를 맡고 있어야 할 전후 세대들이 반전운동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자라났다는 점이 지적된다. 1960년대까지야 전쟁을 겪고, 전쟁에 관심이 많던 세대들이 군사사 연구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이후 세대들은 여성문제, 노동문제, 인종문제 등에 더 관심을 갖고, 전쟁문제는 구질구질하다는 인식을 가졌다는 해석이다.1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게 중론인 것 같다. 그보다도 미국 사학계의 팽창과 함께 유행이 급변한 점이 지적된다. 1960년대 사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 동안 소외받던 소수자들의 사회 문제나 문화적 흐름을 건드리는 쪽으로 유행을 타게 되었고, 그런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다보니 전쟁에만 좁게 초점을 맞추는 군사사의 인기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설령 전쟁을 건드리더라도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시 사회라든가, 기술사적 의의 등을 연구하고 말이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군사사 전공자들의 주가가 떨어졌고, '아직도 군사사 연구를 하세요?'라는 식으로 군사사에 남은 사람들은 시대에 뒤쳐진 퇴물 취급을 받게 되었다. 불가촉천민으로 떨어졌으니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지경까지.

자, 그렇다면 앞으로도 군사사의 미래는 암울한 것인가? 다행히도 기사는 약간의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미국 사학계 일각에서 이에 대한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의 이슈를 정통 군사사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 인식이 그 계기라고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사학계의 핵심 주제였던 전쟁에 대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너무 무시해왔다는 반성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뾰족한 가시적 해결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홈지기도 몇몇 국내 유수 정치, 외교, 역사 관련 학과 사람들로부터, 관심은 있어하나 정작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군사사의 현실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이렇게 미국에서도 군사사 전공자들이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아왔다는 적나라한 이야기를 들으니 참 묘하다. 이럴 때는 역시 군사사를 취미로 하고 있다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학문적으로 진중하게 군사사를 파고드는 전문 연구자들이 없다면 어찌 이런 아마추어로서의 지적 호사(?)라도 누릴 수 있겠는가. 아무쪼록 학문적 유행의 부침을 딛고, 국내외를 막론한 군사사 연구자들이 좀 더 고용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연구를 많이 출간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옛날에 스크랩한 자료를 뒤적이다보니 번동대감께서 말씀하셨던 국내 사학계의 분위기가 오버랩된다: "70년대에 한 대학에서 군사전략과 전쟁사 분야 강좌를 개설하려할 때 일부 교수들이 '신성한 대학에서 피를 부르는 군화발 학문을 연구한다는 말이냐'라는 터무니 없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군인 출신 정치가들의 권위주의적 통치제제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이해되기는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군사학이나 군사사에 대한 민간 학계의 편견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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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화 2008/07/2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만 심각한 줄 알았는데 미국도 만만치는 않군요. 전쟁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분야면서도 이것저것 골고루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돈이 안되는 게 주된 원인이지 싶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법의학도 비슷한 사정인 듯 하던데 말이죠...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4년 전에 독일에 갔었는데, 신문인지 잡지인지 뒤적거리다 보니 가장 기대소득이 높은 전공과 낮은 전공 순위가 있더군요. 그런데 낮은 전공 1위가 "Geschichte(사학)"이었습니다. 그 순간 Geschichte 내에서 또 순위를 매기면 Militärgeschichte(군사사)가 탑이 아닐까 생각했었지요.^^

  2. 길 잃은 어린양 2008/07/2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그러고 보니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미국이나 영국의 이름 있는 대학들이 찍어내는 군사사 관련 서적들 중 정통군사사로 분류할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세이나 논문을 묶어서 내는 군사사 단행본에도 절반 이상은 문화사나 사회사적 연구들로 채워지고 있으니.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나 말입니다, 몇 안되는 제대로 된 사학 전공자로서 윤시원 님은 계속 공부를 하신다면 어떤 주제를 선택하실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08/07/31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채승병님 // 실제로 공부를 더 해보면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군사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3. 양성민 2008/07/29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사사 전공자들이 "불가촉천민(pariah)처럼 취급받는다"는 부분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비밀방문자 2008/07/29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5. 후훗 2008/07/29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사사 전공자 키우기가 쉽지 않은것이..

    군사학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사료비판 능력이 떨어지고
    사료비판 능력이 뛰어나면 군사학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니..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 보면 존스홉킨스 대학의 헤이백(M. Habeck) 교수같은 분이 신기하죠. 여성인데도 군사사 전공해서 그만큼 성과를 내는거 보면 말입니다.

  6. 삽질랜드 2008/07/30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반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군사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 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이해하라."는 리델 하트의 말이나 클라우제비츠의 그 수준높은 학문을 아무런 이해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반전을 위해서는 군사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죠'ㅅ';;;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간에는 군사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호전적이거나 수구꼴통인 것처럼 인식하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는게 현실이기도 하죠.^^ 실제로는 스펙트럼이 훨씬 다양한데도 말입니다. 군사사의 지식이 특정 정파의 전유물은 아닐진대 조금 안타까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7. reske 2008/07/30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군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서 학위를 딸 수 있다는것 자체를 처음 알았습니다 -_-;;;;; 지금까지 오랫동안 군사사 분야 책을 뒤지고 다니긴 했지만. 국내에 군사사 학위 취득이 가능한가요? 육사나 이런데 말고는 없을것 같은데..;
    어쨌거나 군사사가 정치사나 외교사에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데 그에 대한 이해 자체가 너무 부족한거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의 재발을 막자고 소리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6.25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그런 현실이랄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육사는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 아니죠.^^ 국방대학원에 박사학위과정이 있긴 하지만, 군사전략 전공이 있을뿐 군사사 전공은 없습니다. 대개 사학과 중에서 관련 연구를 한 교수님들 밑에서 지도를 받아 군사사 주제로 논문을 쓰면 군사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죠. 엄격한 의미의 군사사 박사학위과정이 개설된 사학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정치외교 분야에서 군사사가 꽤 중요하긴 한데, 정작 제대로 전공한 사람은 없고 대개 곁다리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쪽도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08/07/3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서는 군사사 분야 연구자들이 시대사로 학위를 받죠. 예를들어 대한제국 군제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근대사 전공자가 되고 이승만시기 한국군을 연구하는 사람은 현대사 전공자가 되는 겁니다. 찾아보시면 그래도 군사사 연구자가 아예 없진 않습니다. 물론 외국에 비해 군사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인정해야 겠지만요.

    • 獨步 2008/07/31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알기로 국내 대학 중에서는 서경대학교에 군사학과가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과정 등을 살펴보면 학문으로서의 군사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ROTC나 학사장교로 진출할 마음을 일찍부터 먹은 고교졸업생들을 입학하면서부터 같은 학과로 모아놓는데 의의를 두고 있는 듯 합니다.

  8. 무명씨 2008/07/31 0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U.S. News & World Report지에 실린 글을 예전에 흥미롭게 읽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여러 역사분야들의 동향에 관해서 과 친구들이나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같이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것 같아 그냥 제 주변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글에서 언급하신대로 군사사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도 들기는 하지만, "쇠퇴"는 차라리 역사학 일반(더 넓게는 인문사회과학 전체)에 해당되는 듯 합니다. 군사사의 쇠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부분 동료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래도 군사사 정도되니까 쇠퇴하고 있다는 소리라도 나오는 것 아니냐?" 혹은 "군사사학자들 글만 읽어서 그런 소리하는 거다. 다른 분야는 소리소문없이 죽어가고 있다." 뭐 대충 이런 반응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역사학계의 부동의 본좌, 정치사를 제외하고는 아마 역사학 모든 분야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어려워진 미국경제상황이 학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지 수 년이 지난 현재 상황에서 군사사"만"의 쇠퇴를 논하는 건 일종의 "엄살"에 불과하다는 것이 타분야전공자들의 중론인 듯 합니다 (종교사나 문화사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여성사나 일반사회사 전공자들마저도 이렇게 생각하더군요.)

    또한 잘 아시겠지만, "군사사 학위프로그램이 있다"라는 의미는 일반적인 역사학과 프로그램 구성이 지역별로 나누어지는(즉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경우가 많은데, 몇몇 대학들(즉 말씀하신 12개교)에 Military History라는 이름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대학이 12개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언급하신 Habeck같은 경우 예일대 역사학과에서 폴 케네디 밑에서 독일과 소련의 기갑교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때, 졸업학위가 역사학 박사중 군사사입니다. 이 말은 폴 케네디 밑에서 영국해군정책으로 논문을 쓴 학생들중 군사사로 학위를 받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냥 영국사로 학위를 받는 학생들도 있다는 의미가 되겠죠. 즉 다른 대학에서는 Habeck의 경우 Main adviser가 누구냐에 따라서 독일사나 혹은 소련사로 학위를 받아야 하지만, 군사사학위프로그램이 있는 12개교의 경우 Habeck의 경우와 같이 군사사로도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죠.

    그리고 별도의 군사사학위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들(거의 대부분 동부와 중서부지역 대학들이죠. 군사사 연구의 지역적 편차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중 군사사 프로그램 교수진의 질적 양적수준을 따져보면 Ohio State University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군사사학위 프로그램이 없는 대학들에 비해 군사사연구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즉 학위프로그램이 없는 각 대학들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사 및 군사사관련 교수진의 수가 학위프로그램이 있는 대학들의 군사사 및 군사사관련 교수들의 수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대학은 군사사로 학위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대신, 다른 대학은 기존의 지역구분을 고수하느냐라는 의문이 생기는데요.... 영국학제의 영향등과 같은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만, "제가 들은바에 의하면"(교수들이나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자료를 본 건 아닙니다.) 결국 "돈"과 "취직"때문인 것 같습니다. 별도의 군사사 학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대학들은 정부(더 정확히는 군부)로부터 군사사 및 군사관련연구로 연구비를 받아오던 대학들(특히 캔사스주립대 같은 중서부의 주립대들의 경우나 동부의 몇몇 대학들)이었습니다. Military History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이 군관련 연구 및 군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연구비를 (거의 독점적으로) 받거나 자신들의 군사사 학위 졸업자들을 정부기관에 취직시키는데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별도의 군사사프로그램 설치없이 기존의 지역적 구분을 고수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도 역시 취직때문이라는 군요. 즉 실제로 민간인 역사학박사소지자의 경우 정부기관으로 취직하는 걸 제외하면, 군사사라는 이름으로 학위를 받는(학교 입장에서는 주는 것이겠죠) 것 자체가 민간대학 임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점때문입니다. 학위를 받고 assistant professor로 취직하고자 하면 연구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소위 "teaching"인데 지역적 구분, 즉 영국사나 독일사 같은 구분에 비해 "지나치게 specific하게 보이는 군사사"가 임용담당자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겠죠. 특히 많은 미국대학중 반이상이 넘는 소위 학부교육이 주된 목표인 대학들에서는 더욱 그러할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대학의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학위자같은 경우 (군사사 프로그램이 있다하더라도) 지역적 구분에 따른 학위를 받든지, 더 심한 경우 (군사사 프로그램이 없다 하더라도) 군사사를 연구하는 다른 학교에서 졸업하기를 더 원하는 경우가 많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예일에서 결국 tenure를 못받고 존스홉킨스로 옮긴 Habeck의 경우도 tenure도 안주면서 단물만 빨아 먹고 버리는 "악명높은" 예일의 나쁜 버릇때문만은 아닐것입니다.

    군사사가 쇠퇴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맥락이나 정도차이가 있지나 않을까해서 그냥 잡설을 남깁니다. U.S. News & World Report에 나온 그 글을 읽고 "봐라! 미국에서도 군사사 쇠퇴한단다. 한국에서 군사사? 택도 없는 소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네요.

    글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다른 답글 다신 분들께 폐나 끼치지 않았는지 걱정되네요...... 사과드릴께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31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계시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주시니 저로서는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도 아마추어 군사사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니 심층적인 내부의 문제의식을 파악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전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충분히 경청할만한 이야기였으니 길게 쓴 것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 좋은 말씀 많이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08/07/31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세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특정 대학들이 군사사 부문에 특화가 된 것 처럼 보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군요.

    • 獨步 2008/07/31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정부발주 연구프로젝트 수주에 의한 연구비확보는 - 결론은 학과/학교의 존속 - 현대 대학의 공통고민인 모양이군요.

      없어도 먹고 사는데 하등 지장이 없는 학문/예술은 별다른 하는 일이 없어도 잘먹고 잘사는 '유산계급의 취미생활(?)'로서, 그들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했었는데 그게 요즘은 '정부/기업의 프로젝트'로 바뀐 듯 싶네요(헛웃음).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주색잡기와 명품에만 돈쓰지 말고 학문/예술에도 취미 좀 들여서 수표이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이겠죠(썩소)?

  9. deutsch 2008/08/02 0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에는 "군사사"란 분야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10. 번동아제 2008/08/03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행이라고 하긴 그렇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선 군사사쪽 논문 쓰는 사람들이 조금 늘었더군요. 미국에서도 불가촉천민 취급 받는다라...그쪽 분야 대중서 읽는 사람도 같은 취급을 받는걸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8/03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중서 시장에 별별 사람들이 들끓다보니 사학계에서 좀 고깝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국내에서 군사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 확대되는 징후가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학계가 어서 대감님을 더 존중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11. umberto 2008/08/05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전공자로서 한마디 거든다고 한다면, '군사사'라는 것이 좀 애매하게 떠버린 감이 있습니다. 군사사를 깊게 연구하려면 전략, 전술 같은 군사학에 대해 좀 알아야 하는데 군사학 자체가 육사에서나 가르치는 아주 지역접이고 특수한 학문으로 인식이 되어서 일반 대학의 커리큘럼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었죠. 거기에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전통적인 숭문천무 관념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었구요.

    또 하나는 한국사를 한국사람이 자기손으로 직접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는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료를 접할 기회도 없었고, 50년대는 전쟁 후유증 때문에 사실상 한국인에 의한 근대적 방법론에 따른 한국사 연구는 60년대 부터라고 봐야 합니다. 즉 한국사 연구의 역사는 기껏 50년 정도 밖에 안되는 겁니다. 애시당초 유럽이나 일본의 자국사 연구에 있어서 축적된 역량과 시간의 양에서 비교가 안되죠. 60년대에서 80년대 까지도 일제식민사관의 극복과 신생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연구주제-자본주의 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 같은-를 해결하기에도 바빠서 전쟁사에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최근에 여성사다, 생활사다 하는 유행이 나오는 것도 가장 기초적인 정치사, 사회사, 경제사, 사상사의 연구가 어느 정도 축적이 되었기 때문에 가지뻗기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죠. 정치사나 사회경제사 연구도 부족한데 전쟁사 같은 약간은 마이너한(?!) 분야를 건드리기가 힘들죠.)

    그래도 전쟁사 비슷한 것으로 '군제사'는 좀 연구가 많이 된 편입니다. 군제사는 일단 제도사에서 중요한 영역인데다 무력=권력이기 때문에 정치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죠. 조선후기의 붕당정치와 훈련도감, 장용영 같은 군영의 관계가 깊기 때문에 '군제사'의 경우는 그래도 국사학 안에서 메이져의 영역에 들어 갑니다.

    어떻게 보면 그래도 기본적인 정치사, 사회경제사, 군제사의 연구가 축적된 지금이 '전쟁사'가 유행을 탈 수 있을 시점인데, 문제는 국사학을 비롯한 모든 인문사회과학이 다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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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侯 님의 블로그를 순례하다가 "슈판다우(Spandau)포"의 정체에 대한 재미있는 글이 있기에 한 마디 부연해볼까 한다. 문제인즉슨, 기 사예흐(Guy Sajer)의 유명한 회고록 『Le Soldat oublié(The Forgotten Soldier, 잊혀진 병사)』가 번역되어 나오면서 이 중간중간에 "슈판다우포"라는 정체불명의 무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슈판다우포"의 정체가 무엇인가 설왕설래하며 갖가지 추측이 오고간 듯 한데…… 홈지기는 사실 우리말 번역판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의 논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홈지기도 영어판을 읽을 때 이 정체불명의 무기('Spandau gun')가 도대체 뭔가 고민을 한참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기억을 되살려 간략하게 언급을 해보자.

우선 슈판다우가 뭔지 커다란 사전을 놓고 들춰보자.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슈판다우는 독일 베를린의 일개 구(區, Berzik)이다. 흔히 루돌프 헤쓰 등 다양한 전범들이 수용되었던 슈판다우 형무소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그런데 사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또 다른 항목이 있다. 예를 들어 Dictionary.com의 Spandau 항목 3번째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noun 'a German machine gun(독일의 기관총).' 난데없이 왜 이런 뜻이 붙었을까?

이에 대한 기원은 1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주력 기관총은 MG 08이었다. 이 MG 08은 애초에는 Deutsche Waffen und Munitionsfabriken(독일병기탄약공업, 이하 DWM)이라는 군수업체에서 제작했는데, 독일군이 공식화기로 채택하면서 국영 조병창이 생산 대열에 합류했다. 그 중 대표적인 하나가 베를린 슈판다우에 있던 Königliche Gewehrwerke Spandau(슈판다우 왕립 조병창)이었다. 그래서 이 조병창에서 생산해낸 MG 08(및 변종) 바닥에는 아래 사진과 같이 'Spandau'라는 마크가 찍혔다. (아래 Gwf.는 Gewehrfabrik을 의미하는 것 같다.)

LMG 08/15

그래서 이 기관총을 노획한 영국군은 독일군 기관총을 'Spandau gu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자료에 따라서는 MG 08 전체를 'Spandau gun'이라고 했다고도 하고, 항공기 탑재형만 'Spandau gun'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그러나 미루어보건대 아마 처음에는 좁은 의미로 쓰이다가 별명 붙이기 좋아하는 영국군의 특성상 독일군 기관총들을 싸잡아 'Spandau gun'으로 통칭하게 된 것 같다.

이 관습이 계속 남아 2차 세계대전이 되어서도 영국군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는 독일군 기관총을 'Spandau gun'이라고 종종 부르게 되었다. MG 34, MG 42같은 특정한 모델을 지칭한게 아니라 일반적인 속칭이였으며, 영국을 중심으로 연합군 영향권의 유럽 구어에서 널리 쓰였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제식명을 주로 쓴 독일군 내에서는 전혀 다른 별명들이 쓰였다 ― "Hitlersäge", "Knochensäge" 같은 '톱' 시리즈가 다 그런 류이다.

그럼 GD 사단 병사로 복무했다는 기 사예흐는 왜 이런 표현을 쓴 것일까? 필자도 그게 궁금해서 애초에 나왔던 프랑스어 판본 『Le Soldat oublié』을 뒤져봤다. 아 그러나 그때 알게 된 사실은…… 기 사예흐는 'Spandau gun'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었다! 필자도 서점에서 쓱쓱 넘겨본 것이어서 모두 대조해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그 자리에는 그냥 프랑스어로 'mitrailleuse'라고 쓰여 있었다. 이 mitrailleuse는 보불전쟁 당시 Reffye mitrailleuse를 특정해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역시 프랑스어에서는 일반적인 기관총의 의미로도 많이 쓰였다. 기 사예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평범한 기관총(또는 기관포)의 표현을 쓴 것이고, 영어 번역자는 아마도 이런 가벼운 느낌의 기관총 표현을 살리기 위해 그냥 'Spandau gun'이라는 영국에서 익숙한 표현을 쓴 것 같다. 하기사 이 책이 꼼꼼한 전투사 책도 아닌 이상 제식명을 하나하나 달아줄 필요가 뭐가 있었겠는가.

요약하면, '슈판다우포'는 프랑스어→영어→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빚어진 애매한 해프닝이었다. 독자 여러분들은 그냥 '기관총(또는 기관포)'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다. 이게 MG 34였을지, MG 42였을지, 심지어 20㎜ 경대공포라도 되는 것인지는 그저 눈치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정신 건강을 위해 고증 따지며 제식명에 얽매이는 태도를 던져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008/04/08 17:20 2008/04/0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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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타인호프 2008/04/08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원저자는 아예 슈판다우 건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았었군요. 원어는 미트라예즈였다니...그런데 미트라예즈가 일반명사로 기관총을 뜻한다는 걸 몰랐으니 원서를 봤더라도 또 한동안 혼란스러웠지 싶습니다. 이번에도 승병님 덕분에 또 하나 배웠네요. 감사합니다^^

    ...근데 전 후작이 아닌데요ㅡㅜ

    • Periskop 홈지기 2008/04/09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작위야 마'왕'님 맘대로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일각에서 저도 마왕이라고 부르시는데 왜 제가 마왕인지…… =.=

    • 우마왕 2008/04/09 1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부후의 好婦侯는 순면대제(pure cotton great emperor : 현 잠망경에선 순명대제로 오기중이라능...)가 하사한 작위이삼. 본햏과는 큰 연관이 없다능.

  2. 우마왕 2008/04/09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부후는 호프侯가 아니라 好婦侯라는 의미입니다.

  3. 길 잃은 어린양 2008/04/09 0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번역서에서 궁금한 점이 있을 땐 원서와 대조하는게 최고군요. 한국에 번역된 판본이 프랑스어판을 직접 번역한 것인줄 알았는데 영어판이었군요.

    • Periskop 홈지기 2008/04/09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번역자 분의 약력을 찾아보니 성균관대 번역대학원을 나오셨던데, 성대 번역대학원은 영한번역만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번역대학원에서 제2외국어 번역소양도 가르치겠지만, 아마도 영어판을 메인으로 하고 프랑스어판도 참고해가면서 번역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 dasleich 2008/04/12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대체 채승병 각하께서는 모르는게 뭐란 말입니까?
      저는 2003년 2월에 채 각하를 처음 보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나도 상식과 다방면에 아는 것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고 심각한 자만(?)을 해왔었는데...
      대화를 나누거나, 쓰신 글을 볼때마다 부끄러워집니다.

  4. dcafe 2008/04/24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저번 모임때도 2차 가서 당체 정체를 모르겠다고 했던 슈판다우 포가 기관총이라니. ;;;; 모젤 소총이나 미군이 베레타M92를 그냥 nine mili라고만 부르는 것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당시 병사들이 그냥 불렀던 명칭을 사용한 게 아닐까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는데, 원저자는 쓴 적이 없고, 영어판으로 번역한 사람이 그네들 관습에 따라 쓴 말이로군요. 전혀 몰랐던 신병기(?)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어판에선 무슨 대전차병기처럼 묘사해놓기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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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kop 방문객 한 분에게서 메일로 질문이 들어왔다. 사실 이런 질문 처리하려고 Periskop Forum을 만들었지만 숱한 스팸게시물 공격과 필자의 관리부실로 요즘 빈사상태이니 그냥 여기 블로그에서 처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질문의 내용인즉슨 아래와 같다:

왜 요즘들어 일반참모(general staff)를 자꾸 '장군참모(將軍參謀)'라고 번역하나요?

당장 게으른 한국인의 지식곳간(?)인 네이버에서 'general staff'를 검색해보면 백과사전 항목에 '일반참모(general staff)'라고 나온다. 또한 한국군의 공식 군사용어를 수록했다 할 수 있는 합참 홈페이지의 군사용어해설 부분에는 이러한 정의들이 있다:

참모(參謀, Staff)
지휘관의 지휘권 행사를 보좌하기 위하여 임명되었거나 파견된 장교들이며, 참모는 지휘관이 부대지휘의 막중한 책임과 불확실한 전장상황에서도 지휘관의 의지를 자유롭게 실현하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좌함. 이를 위하여 참모는 항시 지휘관의 의도를 명찰하고 하의상달을 도모하며, 상·하 의지를 일치시켜 임무를 완성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여야 함.

일반참모(一般參謀, General Staff)
부여받은 업무분야에 대한 지휘관의 주무참모로서, 각 일반참모는 부대의 활동을 계획, 조정, 통제 및 감독함으로써 지휘관을 보좌함은 물론 참모 상호간에 업무의 유기적인 협조를 통하여 지휘관을 보좌하며, 또한 부대가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통합함.

특별참모(特別參謀, Special Staff)
한 사령부에서 근무하며 일반(조정) 참모단이나 개인 참모단에 포함되지 않는 참모. 특별참모요원은 특수한 기술 전문가와 병과의 선임장교 등이 포함됨. 예를 들면 병참장교, 방공장교, 수송장교 등임.

주구장창 배워온 영어의 지식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참모의 업무범위에 따라 '일반(general)'과 '특별(special)'로 대별되는 구분도 그리 어색해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장군참모'라는 번역이 등장한 것일까?

필자가 '장군참모'란 번역을 처음 보고 동의하게 된 계기는,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류제승 장군의 책 중 하나를 보고난 뒤로 기억한다. 류제승 장군은 육사(35기)에서의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독일에 유학을 다녀오신 분인데, 이 분이 책 어느 대목에서인가 각주로 '장군참모'가 원래 올바른 번역인데 국내에는 '일반참모'로 잘못 알려졌다는 언급을 하신 바 있다. 필자도 그 전까지는 당연히 '일반참모'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대목을 보고서 '아하!'하고 무릎을 쳤다.

근대적 참모부 체계를 정립한 원조가 누가 뭐래도 샤른호르스트 이래의 근대 프로이센군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용어 또한 독일어의 'Generalstab'에서 출발하여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나간 것임이 분명하다 — 실제로 미국 육군이 General Staff 조직을 도입한 것은 1903년, 영국 육군은 1906년의 일이다. 결국 독일어 'Generalstab'을 직역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어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독일어의 'General'에는 영어의 general과 같은 '일반적'이라는 뜻이 없다. 독일어의 'General'은 오직 '장군(또는 우두머리)'의 뜻 밖에 없다. (일반적이라는 뜻의 독일어는 allgemein 정도에 해당된다.) 독일어에서 직역을 하면 '일반참모'라는 말이 나올 여지 자체가 없는 것으며, 이는 원래 '장군(사령관)'을 보좌하는 참모조직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 간단한 사실을 잊어먹고 있다가 저 각주를 보고 상기한 셈이었다.

결국 한국에서는 이러한 독일어의 원래 표현과 의미를 무시하고, 영미권의 번역어를 차용하다보니 중의성의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영어 단어 general이 가지는 중의성('일반적'과 '장군')은 순전히 프랑스어의 général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어에서는 형용사로 쓰일 때('일반적인')와 명사로 쓰일 때('장군')의 구분이 엄격하므로 의미의 혼동을 줄 이유가 없다 — 프랑스어는 매우 명쾌하다. 또한 프랑스군에서는 프로이센군에 한 발 앞서 나폴레옹 시대에 반(半)근대적 참모부를 도입한 전례가 있어 독일어의 Generalstab을 차용해 쓰지 않고, 고유의 état-major라는 표현을 쓴다. 반면 잡탕 언어인 영어에서는 형용사로 쓰일 때나 명사로 쓰일 때나 이들 의미가 모두 뒤섞여 있어 머리를 갸웃하게 만드는게 당연하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 그나마 영어에서 중역된게 아니라 다시 한 쿠션을 먹고 일본어에서 중역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전후 맥락을 모르는 누군가가 이를 덜컥 '일반참모'로 쓰기 시작했고, 이게 고착되었다 볼 수 있다.

물론 용어라는게 원어가 어떻게 되었건 나름의 의미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한국군의 용례가 꼭 틀리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지금 '일반'의 의미로 쓰이고 있으면 받아들이는게 뭐가 문제겠는가. 다만, 독일군 군제와 조직을 논할 때는 절대 '일반참모' 또는 '일반참모부'라는 번역이 성립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앞으로 독일군에 대해 언급할 때는 Generalstab을 꼭 '장군참모'(또는 조직 경우 참모본부)라고 쓰시기를 바란다.

P.S. 지인 분들의 블로그 순례 중에 ssn688님도 비슷한 의문을 표명하신걸 발견하고 트랙백을 추가. [2008-03-02 20:10]

2008/02/28 12:30 2008/02/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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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민혁 2008/02/28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학적인 지식 없이 그냥 막연하게 장군참모라는 번역이 독일군 참모본부에 한해서는 확실히 맞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대충은 알겠네요. -ㅅ-;

  2. ssn688 2008/03/05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의 잊어먹기 직전에 들러보고 눈이 뜨였습니다;;; Henry公께서 추천하신 육사 화랑대연구소의 "독일군 장군참모 제도"에서도 번역문제를 논한 서문을 보았습니다만... 독어, 불어, 영어에서의 general이라는 어학적인 맥락에서 설명해주시니 훨씬 더 명료합니다. *_*

    • Periskop 홈지기 2008/03/05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독일군 장군참모 제도"는 제가 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뭐라고 번역문제를 논하던가요? 시간 나실 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비밀방문자 2008/03/19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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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을 비롯한 2차 세계대전기 군사이론에 대한 오해들

2차대전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전국들의 군사사상, 군사이론, 교리체계 등에 대해서도 잘못된 인식이 아주 폭넓게 퍼져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오해들에 대해 필자가 접해 본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1. 독일의 전격전과 소련의 종심작전 교리는 영국의 풀러와 리델-하트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이 영국식 기동전 이론의 진정한 계승자이다.
  2. 소련의 종심작전 교리는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대패를 당하면서 전격전 이론으로부터 배워온 것이며 그 내용도 전격전의 대규모 적용에 지나지 않는다.
  3. 전격전은 구데리안 등이 독일군 내의 보수파들의 심한 견제 속에서 히틀러의 도움을 받아 자리잡게 만든 독일군의 기본 군사교리 체계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진실과는 엄청나게 동떨어진 이야기들이다. 당장 맨 처음 이야기한 독일과 소련의 기동전 관련 사상들이 상당부분 영국의 영향이란 주장은 전후 승전국의 입장이던 영미 연합국의 필자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독일은 이미 대전 이전부터 프로이센 육군에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기동전의 개념이 있었으며, 소련은 광범위한 전장에서 벌어진 적백내전기의 경험을 통해 기동전의 개념을 체득하고 있었다. 풀러의 Plan 1919 같은 경우 독일-소련의 이론가들에게 많은 주목을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것은 실제 야전훈련과 기동부대 편성 등으로 현실성 있게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히 주목을 받은 것일 뿐이고, 이론적인 측면만 따진다면 여타 다른 나라에서도 동등한 수준으로 주목을 받은 수많은 논문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리델-하트의 경우는 평균 이상 주목을 받았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거의 없다. 그것은 대부분 리델-하트가 전후에 유명한 전쟁사가로서 독일군 장교들을 취재했고, 많은 독일군 장교들이 예의상 그를 치켜세워주었으며, 리델-하트 또한 자신의 많은 저서에서 그런 부분을 언급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이다.

Fuller

J. F. C. 풀러 소장

Lidell-Hart

B. H. 리델-하트

Guderian

H. 구데리안 상급대장

또한 소련군의 종심작전 교리는 독일군의 전격전과는 그 뿌리에서건 세부적인 측면에서건, 사고의 범위에서건 차원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소련은 이미 대전 이전이나 이후에나 학문적 군사과학(military science)의 체계화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나라였다. 소련군의 종심작전 교리는 같은 시대 어느 열강들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체계를 갖췄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험에 있어서도 적극적이었다. 대규모 공수부대의 운용, 대규모 기동집단의 운용, 대규모 화력지원 집단의 운용 등 갖가지 분야에서 소련군은 대전 이전부터 한참 앞선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1937년 대숙청과 그 회오리 속에서 종심작전 교리를 실천할 경험 있는 간부층이 소멸되면서 대전 초기 참화를 겪었을 뿐이다. 오히려 대전 중기 이후 신진 세대의 등장과 혹독한 정비를 통해 거듭난 소련군의 기동전 체계는 독일군의 체계를 압도해버렸음을 역사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소련의 종심작전 교리는 하나의 잘 짜여지고 정립된 교리 체계로서, 뒤에서 보게 될 공허한 전격전의 개념과는 동일선상에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이면에는 사실 전후 냉전 시기 적국인 소련의 용병술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시각도 깔려 있다. 위에 열거한 오해 1, 2번의 맥락은 결국 영국→독일→소련 순으로 맥을 계승했다는 족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원조 스승은 영국이고, 독일은 똑똑한 제자이며, 소련은 그 제자에게 두들겨 맞으며 배운 사이비 문하생 정도라는 지적 오만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에 나오는 전격전(Blitzkrieg)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 이것에 대해 오늘 이 글에서 좀 더 깊이 논해보기로 하자. 기실 2차대전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특히 독일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라면 "전격전"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격전이란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보았을 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개의 2차대전사 팬들이 전격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생각은 유명한 독일군 전차관련 사이트인 Achtung Panzer에 나와있는 전격전 개념정리 부분에서 잘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전격전의 개념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1. 공군이 우선 적의 전선, 후방거점, 주요도로, 공항, 교통중심을 공격한다. 동시에 보병들은 전 전선(또는 주요 지점들)에서 공격을 하고 적과 교전한다. 이로서 적이 주력이 어디에 투입될 것인가 판단하지 못하도록 한다.
  2. 집중된 전차부대들은 적 주 방어선을 돌파하고 적진 깊숙히 돌진해나간다. 동시에 이를 뒤따르는 기계화부대들은 방어부대를 추격하고 지속적으로 교전하여 적이 철수해서 효과적인 방어망을 재정비하는 것을 방해한다.
  3. 보병과 다른 지원부대들은 공격을 종결짓고 적을 포위할 다른 부대들과 연결하기 위해 적 후방을 공격한다.
  4. 기계화집단은 적의 거점을 우회하고 후방을 마비시키며 적 영토 깊숙히 돌입하여 적 방어부대가 효과적인 방어거점을 재확립하는 것을 방해한다.
  5. 주력부대는 다른 부대들과 연결하여 적을 포위하고 차단한다.

하지만 여기서 열거한 내용들은 어떤 하나의 체계 하에서 존재하는 원리들이 아니다. 이 각각의 항목들은 사실 독일군의 여러 군종, 병과에서 채용한 작전술/전술 개념들을 온통 뒤섞어놓고 실제 전례에 그럴 듯하게 끼워맞춰서 "전격전 교리"란게 있는 것처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우선 독일 육군은 공군의 지상지원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고, 1920~30년대에 걸쳐 이를 위한 효율적인 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것이 어떤 육군의 작전체계에 종속적으로 편입된 개념은 아니었다. 또한 더 언급을 하겠지만, 여기서 보이는 유명한 포위섬멸전(Kesselschlacht)의 개념은 전차의 개발과 기계화부대의 등장으로 인해 새롭게 창안된 것이 아니다. 독일군의 포위섬멸전 사상에 대한 집착은 대단히 강했고, 독일 군사사 전반에 걸쳐 면면히 내려오는 전통으로서 그 뿌리도 매우 깊었다. 전차를 비롯한 장갑차량, 기동수단, 무선통신수단의 발달은 이러한 전통적 작전의 실행 효율을 크게 향상시킨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특히 전격전 하에서 기갑부대는 방어선 돌파 후 적 후방으로 한없이 돌진하여 적의 지휘체계를 총체적인 혼란에 빠뜨리고 "마비"시켜야 한다는 통념은, 이러한 포위섬멸전의 맥락에서 실제 독일군이 추구하던 바와는 많은 부분에서 배치되는 것이었다. 편제상으로도 독일군 기갑부대는 종심작전 교리에서 필요로 하는 소련군의 기갑부대와는 달리 기동성이 보강된 다용도 사단의 성격이 강했다. 독일군이 수행한 많은 포위섬멸전에서 기갑부대들은 돌파 이후 대규모의 희생적인 전투를 회피하지 않은채 적 섬멸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기동방어라는 이름으로 숱한 방어전에도 동원되었다. 오히려 기갑부대와 그 집단이 보병지원용, 방어선 돌파용, 후방 침투용 등으로 명백히 구분지어져 후방으로 적의 지속적인 마비를 위해 돌진하는 것은 독일군 교리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소련군 종심작전 교리의 특징에 가까웠다. (독일군과 소련군의 군사사상과 작전 체계를 독소전의 실제 전례와 비교하는 것은 이후 동부전선전사 정리를 하면서 꾸준히 시도하도록 하겠다.)

다시 말해 하나하나 뜯어보면 위에 열거한 특징들은 독일군이 실제 추구하고 확립한 교리 체계에 근거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 자체로도 모순되는 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전격전이란 무엇인가? 이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대니얼 휴즈가 1980년대에 쓴 글 하나를 이어가기로 하겠다. 글을 읽기 전에 이 글이 쓰여진 배경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야겠는데, 1970년대 말 이래로 당시의 미군 내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그 동안 미군이 계속 추구해 온 소모전적 교리들을 새롭게 개혁하여 기동전의 개념을 채용하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 수준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실 군사학의 수준은 소련, 독일 등에 비해 한참 뒤지는 나라여서, 이러한 새로운 운용 교리의 도입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따르고 있었다. 결국 독일과 소련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기동전 교리의 도입을 위해 모델로서 제시된 것이 바로 독일의 "전격전"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보여준 화려한 전격전의 체계를 미군에서 최첨단 기술과 함께 부활시켜 당시 위협적으로 간주하던 바르샤바 조약군의 거대한 기동군 위협에 맞서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2차 세계대전기 독일의 전례들을 "전격전"이라는 틀로 짜맞추어 이해하고 이를 미군의 기동전 교리에 심어넣고자 노력하게 된다 — 그 결과로 1980년대 초에 들어와서야 아주 어중간하고 애매하기 그지없고 (결국 후일 실패작으로 끝나는) 공지전(Air-Land Battle) 교리가 도입되게 된다. 대니얼 휴즈는 바로 이러한 독일 군사이론에 대한 미국측의 자의적인 해석이 실제로 독일군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별 근거가 없는 것이며, 심지어는 독일군의 의도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전격전이란 무엇인가?

Hughes, Daniel J. 1996. Blitzkrieg. [ed.] Franklin D. Margiotta. Brassey's Encyclopedia of Land Forces and Warfare. Dulles : Brassey's Inc., 1996, pp. 155-162.

전격전(Blitzkrieg)이란 독일어 낱말은 1939년 9월 폴란드전역을 지켜본 비 독일계 관찰자들에 의해 처음 유명해진 이래 세월이 더해가며 매우 다양한 범위의 외연적, 내면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나찌 경제 구조에 대해 연구해온 역사가들 중 상당수는 동일선상의 전반적인 군사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 단기전을 위한 조직적인 경제 계획 속에서 전격전 전략의 존재를 찾아왔다. 하지만 진짜 독일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래서 정말 장차 전쟁의 부담을 미리 준비해놨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에서 조차 이견은 존재한다. 전략과 군사작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필자들은 독일군이 공격적인 전쟁에서 신속하게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고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주장들의 새로운 형태는 근래 주로 미국의 군사 문헌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상당수의 저자들은 전통적인 전투를 통해 적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교란시키고 혼란에 빠뜨림으로서 전투와 전역에서 승리하도록 고안된 특정한 전술과 작전 체계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미국에서의 소위 군사개혁운동과 미 육군 내 공식, 비공식의 교리 사상 양쪽 모두에 많은 개념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런가하면 다른 역사가들은 아예 기계화전의 전 시기를 "전격전 시대"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전격전 시대는 최소한 1980년대까지 잡아야 하며, 기동전에 대한 소련의 접근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통파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독일 제국주의자들이 양대 대전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기울인 광범위한 노력을 전격전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관점들은 모두 전격전 뒤에는 정치적이거나, 경제 계획적이거나, 군사 교리이거나, 군사 방법론 적이거나 어쨌건 뭔가 어떤 큰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이러한 모든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전격전은 어떤 정책도, 경제적 수단도 아니었으며, 군사 교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쯔 구데리안(Heinz Guderian)이나 다른 이들이 독일군의 기갑부대를 위해 혁신적인 전술적, 작전적 교리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게 사실이다. 많은 역사가, 언론인, 정치학자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군 장교들도 이런 소위 전격전 교리를 결전을 치루지 않고서 적을 마비시키는 기동전의 사용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들은 전격전의 목적과 방법론에 대한 이론을 열심히 개발해왔으며, 그들의 결론을 지지하는 많은 여론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시각의 확산을 통해 현재 군사 사상에 순수한 학술적 중요성 이상의 이슈를 던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독일군 교리의 본질

어떤 군사적인 측면에서 전격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으로 먼저 알아둬야 할 것은 1919~45년 시기의 독일 군사 교리의 본질이다. (여기서 교리라 함은 군대의 전쟁 철학과 그 뼈대 안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전투를 치루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독일군의 교리 교범들은 상황에 따라 지휘관들이 적용해야 할 근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독일군의 교리는 어떤 전쟁의 포괄적인 원리나, 신조, 명령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지도, 도표, 도식 등으로 채워진 틀에 박힌 도해는 있어봤자 극소수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엄밀성과 확고한 기준은 없지만 독일군의 교리는 차량화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단위부대에 적용할 수 있는 군사행동에 대해 꾸준하게 긴밀히 접근해갔다. 그래서 대규모 기갑부대 창설 이전에 쓰여진 1933년판 「부대지휘론(Truppenführung)」에서는 이미 기갑부대에 적용하기에도 충분히 유연한 개념들을 담고 있었다.1

두 종류의 전쟁

1919년과 1945년 사이의 독일 군사이론에서는 기동전과 진지전, 이렇게 두 종류의 전쟁을 구분하고 있었다. 1914~18년의 긴 진지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 대다수 군사이론가들은 일관되게 진지전을 미래의 모델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거부했으며, 대신 프리드리히 대왕, 몰트케, 슐리펜의 전통으로 복귀할 것을 그리고 있었다. 이 관점에서는 정적인 전선에서 지나치게 세심하게 준비된 단편적인 공격들과 큰 결정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로 점철된 1차 세계대전은, 상궤를 벗어난 것이었으며 작전 상의 고집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기동전 기반 이론으로의 복귀는 종전 직후부터 즉시 대두되었다.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장군과 그의 동료들, 계승자들이 1918년 이후 이러한 기동전 이론으로의 회귀에 대해 공적(또는 책임)이 있지만, 진실은 사실 더욱 복잡하다.

Beck

L. 베크 상급대장

Lutz

O. 루츠 기갑대장

Seeckt

H. v. 젝트 상급대장

젝트와 그의 선임자들

젝트의 기동전 부활은 때때로 이야기되는 것만큼 그렇게 중대한 혁신은 아니었다. 그의 새로운 1921년판 기본 교범인 「지휘와 전투(Führung und Gefecht)」는 전적으로 전통적인 독일 군사이론의 넓은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교범이 출판되기 전에도 이미 새로운 독일군은 1914~18년 진지전의 대안을 계속 찾아왔다.

1918년의 독일군 공격 방법이야말로 서부전선에 기동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주 오해되고 있는 돌격부대(Stoßtruppen) 전술은 결국 전통적인 기동전으로 복귀하는 수단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결코 이런 근본적인 원칙들에 대한 독일군의 신뢰를 흔들어놓지 못했다. 이미 1920년에 빌헬름 발크는 독일의 전시 전술의 기본적인 정확성을 지적하고 기동전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했다. 같은 해, 대전 이전의 주도적인 군사이론가이자 공간사가이던 휴고 폰 프라이탁-로링호펜 남작은 기동전으로의 회귀를 전후 독일 군사이론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전 직후 시기 주도적인 반(半) 공식 편람이던 로어베크의 「전술(Taktik)」은 그 논의 전체를 기동전과 진지전의 전통적인 구분에 초점을 맞췄으며, 과거 전쟁의 경험을 아무리 돌아봐도 기동전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전통적인 프로이센의 개념

젝트의 새로운 1921년판 교범은 공식적으로 기동의 원칙이 계속 지배적인 원리임을 확인시켰으며, 결국 기동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