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녁 운동을 하고 지친 몸으로 느즈막히 현관에 들어섰다. 서둘러 유청단백질을 휘휘 들이키고 거실 소파에 앉아 킨 TV,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어딘지 낯 익은 얼굴이 보이는게 아닌가. '앗, 저 양반은……'

Daniel Yergin

한 눈에 알아보는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으나, 바로 다니엘 여긴(Daniel Yergin)이다.1 홈지기의 책장 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꽂혀 있는 책 『황금의 샘(The Prize)』의 저자이다. 책날개에 박힌 저자 사진이 어디가 인상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도 재빨리 떠올랐다. 이 『The Prize』는 석유를 둘러싸고 엎치락뒤치락한 강대국들과 석유 메이저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다룬 책으로서, 여긴은 이 책으로 1992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략 15년 전쯤에 이 책을 샀던 것 같은데, 당시 대학생이 된지 얼마 안 된 홈지기는 석유 그 자체보다도 책 내용 중에 2차 세계대전 중 석유 쟁탈을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이유로 3권 1질을 덥썩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Daniel Yergin황금의 샘Commanding Heights

어쨌든 이 양반이 갑자기 왜 TV에 나오나 싶었는데 조금 보다보니 다시금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 이 프로그램도 그, 다니엘 여긴의 동명 넌픽션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바로 『Commanding Heights2』였다. 원작은 지난 1998년에 출간된 것으로, 당시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급부상하던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를 둘러싼 이슈를 다각도로 파헤친 작품이다. 이번에 KBS에서 방영3는 하는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공영방송 PBS가 이후 2002년에 9/11 이후 미국의 상황을 반영하여 조금 다른 관점의 3부작 다큐멘터리(총 6시간)로 이를 정리해낸 것이다. 꽤나 오래 전에 본 다큐멘터리인데 이렇게 다시 맞닥뜨리다니 반가움과 어색함이 교차했다.

이 작품의 함의는 부제에서도 미묘하게 드러난다 — 『The Battle for the World Economy (세계 경제를 둘러싼 전투).』 여기서 전투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시장'과 '정부'이다. 최근 새로운 서브프라임발 경제위기를 맞아 다시금 가열되고 있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이 떠오르지 않는가? 여기서는 이 논의가 실은 얼마나 지난 한 세기 자본주의 역사를 달궈온 것이며, 얼마나 많은 논란과 반전 속에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인지를 조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다음의 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1. The Battle of Ideas
    첫 번째 에피소드는 20세기 경제사의 쟁쟁한 두 거두, 케인즈하이에크가 중심 인물이다. 잘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글로벌화된 세계 경제에서 이들은 각자의 독특한 논점에서 지향점을 제시한 이들이었다. 맑시즘과 경쟁하는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케인즈는 일반이론 이후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고, 하이에크는 일관되게 자유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후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케인즈주의가 대세로 자리잡았으나, 상황은 역전되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새롭게 글로벌 스탠다드로 부상한다. 자본주의 진영 내부에서 벌어진, 이러한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둘러싼 이론의 부침이 20세기의 역사적 순간과 오버랩되어 펼쳐진다.
  2. The Agony of Reform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이어지는 1990년대 공산주의의 몰락은 세계 곳곳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 맑스주의 혁명의 세기가 끝나며 거꾸로 자본주의 혁명이 곳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그 현장을 동유럽(폴란드), 러시아, 남미(볼리비아나 칠레), 인도 등 다양한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조망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체제 붕괴로 인한 거센 세파에 내몰린 동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이른바 '시카고 보이'들에 의해 경제변화를 강요당한 남미, 네루의 제3 세계 노선에서 벗어나 세계경제로 편입해간 인도…… 기존의 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이행한 국가들이 얻은 외형적 번영과, 그 속에서 깊어져간 골과 신음이 동시에 펼쳐진다.
  3. The New Rules of the Game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는 희망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심각한 재앙의 뇌관이기도 했다. 공산주의가 붕괴될 때만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1990년대 후반이 되자 점차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세계 경제를 국경 없이 넘나드는 자본의 힘이 현대의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본다. NAFTA 이후 멕시코의 난점들, 급부상하는 아시아 네 마리 용과 중국,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등의 익숙한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로 기존의 발전모델이 송두리째 붕괴되는 현장, 이어 대두되는 글로벌 양극화와 반 세계화 움직임도 펼쳐진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모호함에 갇혀버린 세계의 파노라마 속에서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용 요약을 보면 알겠지만, 실로 상당한 분량의 이슈들을 포괄하고자 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러다 보니 각 에피소드에 2시간씩이 할애되었어도 충분히 깊이 있는 분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각 꼭지(chapter) 마다 수 분간 펼쳐지는 시간들은 너무나 짧게 느껴지고 이래가지고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될까 우려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PBS의 이 『Commanding Heights』에는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 뭐랄까, 내용의 단순한 정보성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장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홈지기가 이전에도 몇 개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면서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정보의 양과 질 면에서 다큐멘터리는 책을 따라오기 힘들다. 2차 세계대전사도 당연히 잘 정리된 책을 통해 훨씬 압축적으로 많은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장답사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The Battle Box' 답사기에서도 밝혔듯이 역사의 현장에 직접 가봤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말레이 전역과 싱가포르 전투에 대해 책에서 받아들였던 정보가 다시 풀어 헤쳐지면서 좀 더 몸에 꼭 맞는 느낌으로 다시금 자리잡는 것이다.

홈지기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감흥을 많이 느꼈다. 홈지기도 문헌으로야 케인즈주의자나 하이에크주의자들의 주장을 여럿 섭렵했으니 나레이터의 해설은 좀 진부했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케인즈의 남긴 육성이 흘러나오자 짜릿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이에크가 생전에 가진 인터뷰들에서 파란의 시기에 대한 회고를 늘어놓는 모습에서 한층 고조되는 박동을 느꼈다. 그들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죽은 옛사람이 아니라 이렇게도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충격이었을까.

또 다른 장면을 보자.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정부 개입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풍조에 위기의식을 느낀 하이에크가 유명한 몽펠르랭회(Mont Pélerin Society)를 만든 것을 아시는가. 스위스의 한적한 리조트에서 당대 자유주의 수호의 거두 39인이 모였던 방의 모습과,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의 생전 회고가 펼쳐질 때는 꽤나 숙연했다. 우리가 그토록 많이들 이야기해왔던 브레튼우즈 체제는 또 어떠한가. 그 이름이 붙게 된 회의장소,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가 시청자의 마음을 편하게 할 정도로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지는 여기서 처음 알았었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영양가는 떨어질지언정 고적답사를 느끼며 즐기던 감정의 선율을 재현하는 힘이 있는 법이다. 이것이 홈지기가 글 제목에 '경제 청량음료'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이기도 하다.

Bretton Woods

브레튼우즈의 Mount Washington 호텔

Mont Pélerin

Mont Pélerin의 회합이 열린 방

6시간을 들여 이 세 에피소드를 섭렵한다고 오늘날 우리가 처한 복잡한 경제위기의 본질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펼쳐지는 이 모습이, 그리 간단한 도식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20세기 내내 지구촌 곳곳, 수많은 현장에서 허다한 사람들이 흘려온 땀과 피, 그리고 수많은 지성들의 치열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음을. 변변한 경제 지식도 없이 우리의 경제 현실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분이라면, 그 깊이를 맛보는 의미에서도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라고 본다. 설령 이미 많은 책을 섭렵하여 정보로서는 더 얻을게 없는 분이라도, 가끔 책을 놓고 역사의 감흥을 즐기기에도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된다. 주말 버라이어티 쇼에서 연예인 풍설에 지친 분들, 특히나 키보드 워리어로 자나깨나 리만 브라더스 욕으로 혈압이 올라가신 분들이라면, 분노를 잠시 삭히고 이런 다큐멘터리라도 보면서 생각을 한층 가다듬으시길 권해드린다.

한 가지 팁을 더 알려 드린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굳이 졸리는 시간대에 KBS를 통해 볼 필요가 없다. 이미 2004년에 PBS는 이 다큐멘터리 전편을 홈페이지에서 마음껏 공짜로 볼 수 있도록 차려놨다. 영어 듣기가 안 된다고 걱정을? 그런 걱정도 덜 수 있도록 PBS는 VOD에 영문 자막 서비스도 하고 있으며, 영어 대본을 따로 볼 수 있게도 해놨다. 편한 시간대를 골라 영어 공부도 좀 할겸 시청해보시라.4

마지막으로 홈지기가 인상적으로 들었던 하이에크의 한 마디를 소개하며 맺기로 하자. 첫 번째 에피소드에 보면 얼마전에 작고한 랄프 해리스가 몽펠르랭에서 하이에크가 남긴 말을 회고하는 장면이 있다:

해설자:
그러나 하이에크는 회합에서 그들[역주: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아주 큰 교훈 하나를 얻었다고 말했다.

랄프 해리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자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찬사를 바치며 이렇게 말했어요.
사회주의자들의 위대한 힘은,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상주의적이 되고,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가지고, 하나의 비젼을 가지고, 그리고 그 비젼을 향해 시종일관 일해나갈 그런 용기를.5

하이에크가 배우자고 역설한 저런 용기야말로 이런 시기일수록 되새겨야 할 자세가 아닐까. 이 용기는 섶을 짊어지고 불길에 뛰어들라는 만용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신을 가다듬고 새 시대의 논리를 마련해가는 용기이다. 우리 앞을 살아간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그런 용기를 갖고 "The Battle of Ideas"를 펼쳐갔다. 과연 이 시대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사람들이 진정 그런 용기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홈지기 스스로부터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기억하자, 세상에는 더한 좌절 속에서도 저런 용기를 갖고 시대의 지평을 열어온 이들이 있었음을.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KBS는 '다니엘 여진'이라고 자막을 넣어놨다.
  2. 러시아어로는 'командные высоты'라고 하는데, 한 국가의 경제를 주도하는 기간산업 또는 주도 세력을 의미한다. 이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레닌이 주요 기간산업을 초기 국유화 목표로 설정하면서 회자된 말이다.
  3. 자세한 국내 방송 일정 안내는 KBS의 안내 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4.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다큐멘터리 페이지도 두고두고 보며 추가학습할 수 있는 정보들을 담아 공들여 만들기를 바란다.
  5.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RALPH HARRIS: Hayek paid enormous tribute to the socialist intellectuals and said that the great strength of the socialists is that they had the courage, he said, to be idealistic; to have a theory, to have a project, to have a vision, and to go on working towards that, through thick and thin."
2009/01/06 13:05 2009/01/06 13:05
creative commons license 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獨步 2009/01/06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 마지막 인용문에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끼면 아직 나이가 덜 든 것일까요(웃음).

    '빨갱이'와 '친일파'들에게도 무언가 배울 긍정적인 점은 분명 있을텐데. 양 진영 모두 너무나도 쉽게 척결만을 외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이를 덜 먹은게 아니라 아직 인생이 내리막길은 아니라는 증거겠죠. 말씀마따나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절충하고 합의하고 지켜가는 자세가 매우 아쉽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워낙 담벼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분들이 많으니 반작용으로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인지 올해도 계속 고민, 고민입니다.

  2. 양성민 2009/01/06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역시 '맛있는' 글이 많네요.

    조금 늦었지만 "새해 福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shrike 2009/01/06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어제부터 KBS1 에서 하고있습니다. 저녁 11시 30분에 합니다.

  4. 2009/01/06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방송된 1부를 봤는데, 정말 재미있더군요..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픈 프로그램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언론이고 블로고스피어고 너무 연예 프로그램에 매몰된 감이 있는데, 교양 프로그램도 적극 소개하고 추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 Crete 2009/01/0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 포스팅 중에 어느 하나도 감사 드린다는 말씀이 허언인 적이 없었지만, 이번 포스팅은 정말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부족할 듯 싶네요. 특히 마지막 말씀은 저 역시 쥐구멍을 찾게 만듭니다. 언제나 좋은 글, 생각할 거리를 듬뿍 주시는 글에 감사 드립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Crete 님이 쥐구멍을 찾으시면 저는 무슨 구멍을 찾아야할까요. =_= 앞으로도 좀 더 팬시한 아이디어와 글감이 없을지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6. foog 2009/01/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아시겠지만 이 다큐는 동명의 책을 기초로 만들어진거죠. 요즘 그 책을 읽고 있답니다. 다 읽고 다큐를 감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맛뵈기로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침 그 책을 읽고 계셨다니 재밌는 우연이네요. 책과 다큐멘터리가 논조가 미묘하게 다르게 잡혀 있으니 독서와 시청을 연달아 하시면 훨씬 느낌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창 신자유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확 다를 것 같습니다. 번역판에서는 자그만치 "국가 주도 경제의 쇠퇴와 시장 경제의 승리"라고 부제를 달아놨는데 10년도 안 되어 상황이 이렇게 역전이 되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foog 2009/01/07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현재까지로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물론 그 책이나 여타 경제현상을 다룬 책들이 신자유주의 혹은 그와 다른 입장들의 우위를 기조로 하는 내용들이 대다수이고 이 책도 그러한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부분들보다는 '결국은 어떠한 입장이든지 간에 혁신하지 않는 고인 물은 썩게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소비에트 모델도 어찌되었든 한때는 다른 국가들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습니다. 케인즈 모델도 서구자본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하게끔 만들어 주었던 모델이고요.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신자유주의 모델도 케인즈적인 국가개입주의 모델의 부담을 덜어냈다는 점에서는 혁신이었죠. 하지만 그 부담을 덜어냄의 과함, 즉 균형점을 찾지 못한 일방적인 자유화때문에 또 다시 이전의 모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거죠. 결국 인간은, 그리고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찾아헤매고 그것이 혁신적일 때까지는 유효한 그러한 좌충우돌의 시스템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새해 첫 주말도 아직 읽지 못한채 널부러진 책들을 한아름 챙겨들며 맞이했다. 그렇게 집어든 책 가운데 하나가 『Kluge』이다.

아, Periskop 방문객 분들이라면 족히 반 정도는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이 분을 떠올리실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이 책은 스티븐 핑커의 제자이자 심리학계의 기린아로 이름 높은 개리 마커스(Gary F. Marcus)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우리 심리의 재미있는 측면들을 파헤친 책이다. (제목 또한 '클루-지'라고 읽어야 한다.) 저자의 유명세도 있고, 홈지기의 평소 의문을 살살 긁어주는 짜릿한 맛도 있기에 술술 재밌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http://www.houghtonmifflinbooks.com/assets/product/9780618879649.gifhttp://www.psych.nyu.edu/gary/images/marcus_edge_bw_c250px.jpg

그런데 읽다 보니 한 군데에서 눈이 딱 멎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동기에 의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라고 불리는 편향으로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확증 편향은 우리의 신념과 일치하는 자료에 주의가 쏠리는 자동적인 경향인 반면, 동기에 의한 추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더 까다롭게 따지는 보완적인 경향이다. 예컨대 쿤다(Z. Kunda)의 한 연구에서 (절반은 남자, 절반은 여자로 구성된) 피험자들은 카페인이 여성에게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읽었다. 여기서도 우리의 신념과 추론이 동기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대로 확인되었는데, 곧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여성들은 카페인을 조금 섭취하는 여성들보다 이 기사의 결론에 대해 더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반면에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남성들의 경우에는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1

……

만약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동기에 의한 추론에 빠져 자신의 오류를 시사하는 중요한 신호들을 무시한다면 커다란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대 군사사에서 발생한 가장 큰 실수의 하나는 1944년 봄에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일어났을 것이다. 당시에 히틀러는 육군 원수 에르빈 롬멜(Erwin Rommel)이 선견지명을 가지고 경고했음에도, 힘 있는 육군 원수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Gerd von Rundstedt)의 조언에 따라, 노르망디 대신 칼레 지역을 방어하기로 결정했다. 룬트슈테트는 자신의 계획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히틀러에게 잘못된 조언을 하였으며, 히틀러는 그 대가로 프랑스를, 아니 어쩌면 서부전선 전체를 잃고 말았다.

— Marcus, Gary (2008). Kluge: The Haphazard Construction of the Human Mind. New York, NY: Hughton Mifflin.
   마커스, 개리 (2008). 클루지: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최호영 譯). 서울: 갤리온.

Periskop의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보신 분은 아실 것이다. 아래 문단의 사례는 시대에 뒤진 잘못된 해석을 근거로 한 것임을. 홈지기는 아래의 두 글에서 근래의 통설을 바탕으로, 롬멜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한 것이 아니며, 폰 룬트슈테트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히틀러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린 부분도 있음을 이야기했었다.

물론 이걸 두고 개리 마커스를 비난한다던가, 그의 책이 쓰레기라던가 이런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Kluge』가 좋은 교양과학서임은 분명하며, 홈지기도 시간나는 분은 일독하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사실 홈지기가 이 순간 번뜩 떠오른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역지사지의 묘(妙)는 올해도 변함없이 새겨야한다는 생각이었다. 개리 마커스처럼 이름난 학자가 쓰는 책에도 이런 실수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아마 그도 대중적인 군사사 개괄서를 읽고 교차 검증을 소홀히한채 그냥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역설적으로 정작 그가 '동기에 의한 추론' 편향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군사사 책을 몇 권 읽는 사이에 롬멜에 대한 동정심이 생겨 롬멜에 우호적인 자료를 더 믿고 싶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이는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다. 홈지기의 글쓰기 이력 가운데에도 은연중 비슷한 실수는 여럿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매사 모든 문헌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리는 자세와, 나의 글쓰기도 한 번 더 돌아보는 자세는 새해에도 더욱 갈고 닦아야 할 부분이다.

둘째로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읽은 캡콜님의 글이었다. 이 글 말미에 보면, 언제나 신선한 캠페인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캡콜님께서 '백 투 더 소스' 캠페인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써주셨다. 특히나 이 대목에서 크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비판적인 글읽기와 자성적인 글쓰기를 촉진하고 습관화하는 방법은 단연 '한꺼풀 더 벗기기'에 있다. 내가 습득한 정보가 있으면, 그 정보 소스는 무엇인지, 그 정보 소스는 또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 정보는 또 어느 곳에서 이용되었는지 가지에 가지를 쳐 가면서 살펴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학계에서야 관행으로건 규약으로건 이것을 철저히 교육시키지만, 비단 학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센스 있는 누리꾼이라면 어느 정도는 익혀야 할 덕성이 아닐까. 이미 습관이 된 사람이라면 주어진 소스 링크 없이도 갖가지 검색 수단을 동원하여 문제점을 캐내겠지만,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현실적으로 적은 마당에 가만히 문제가 해결될리 만무하다. 각자가 귀찮다고 후다닥 글 올리기 전에, 나의 정보 소스를 열심히 공개하고 불가피한 실수가 있으면 약침 한 방이라도 맞을 여유쯤은 가져줘야 서서히 개선될 것이다.

그러고 나니 군사사(military history)라도 열심히 공부해보면 좋은 이유에도 생각이 미쳤다. 홈지기도 한 십수년 전부터 '그깟 전쟁 이야기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걸 그렇게 들여다봐?'라는 질문을 허다하게 받았다. 사실 맞는 말이다. 군사사 공부한다고 직업군인이 될 것도 아니고, 살림살이 좀 나아질리도 만무하다. 좀 더 세련되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연장선상에 놓인 전쟁의 인류사적 의의……' 운운해도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군사사 공부도 이런 자질과 덕성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훌륭한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듯하다.

그 무슨 분야든 진지하게 공부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다. 우선 매사 한 가지 대상을 두고도 공존하는 수많은 이견과, 각자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구사하는 치열한 수법들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거기서 고삐를 바짝 쥐면 다양한 의견 속에서 고갱이를 잡아내고 좀 더 엄정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해가는 과정을 느끼고 익히게 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편견을 바로잡으며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고 더해가는 능력이 쌓여가는 것이다.

이런 능력이 꼭 남들 다수가 몰려가는 길을 쫓아서만 얻어지라는 법은 없다. 군사사를 아는 사람이면 저런 노르망디 상륙작전 예시 대목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법이고, 다른 분야를 잘 아는 분이라면 또 다른 대목에서 읽기를 멈추고 더 생각해볼 것이다. 각자가 다양한 생각으로 한 꺼풀씩을 벗겨가며 자욱들을 남기고, 이들이 알알이 링크되면서 사고의 맥이 형성되어 결국 우리 사회 여론공간의 성긴 그물을 촘촘히 메우리라. 이 모든 출발점은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생활의 일부분이나마 순수한 흥미에 할애하여 색다른 길을 찾아가는 습관에 있을 것이다. 홈지기는 각자가 기울이는 이런 작은 습관이야말로 돈벌이에 찌든 우리네 인생, 사회의 진정한 자양강장제가 되리라 믿는다.

아무쪼록 올 한해, 방문객 여러분들 모두 어떤 분야이건 소박한 깨달음의 재미를 다들 느끼시길 바란다. 아울러 캡콜님이 캠페인 하시기 전이라도 작은 실천삼아 다들 쓰시는 글에 링크 하나라도 더 달아주시면 좋겠다. 내가 좀 더 클릭질하고 타이핑해서 남기는 링크 하나, 출전 하나가 누군가의 등대가 될지 모르니.2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관련된 연구 내용들을 집약한 故 쿤다의 유명한 논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2. 다들 아시겠지만 서산대사가 남겼다는 '夜雪'을 비틀었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2009/01/04 22:25 2009/01/04 22:25
creative commons license 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hrike 2009/01/05 0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사실 군사사는 그것 자체가 만들어지고 공부해야되는 목적 자체가 분명하죠. 우리같은 사람들은 다분히 취미로 그것을 접하긴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음 전쟁에서의 승리' 를 위한겁니다.
    때문에 과거를 항상 냉철하고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있죠. 궁극적으로 군사사에 대한 공부란 미래의 승리를 위한 예비작업의 일환이고 여기에서 얻어지는 성과는 곧 미래 어떤 사람의 목숨 하나하나와 맞바꿔지는 것일테니까요.

    전 개인적으로 '지식' 이라는것 자체를 '도구' 의 일종으로 봅니다.
    컴퓨터,볼펜,자동차,냄비,보일러 등등..
    그런 도구가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확장시키듯 지식도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확장시킵니다. 그리고 정확하지 못한 도구가 인간을 오히려 곤경에 빠뜨리고 죽이기도 하듯.. 정확하지 못한 지식 역시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버리죠.

    때문에 오늘날 우리 주변의 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학적 '사실' 을 외면하고 여기에 충실하지 않다는것에 대해 마찬가지로 큰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과학에 기반한 '사실' 에 대한 인식이 궁극적으로 맹목적 인식에 의존하던 기존 절대왕권과 종교로부터 권력을 가져와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기반이 되었다는것을 보면서 이런 사회인들의 인식역량이 민주주의의 근간에도 영향을 미친거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최근 촛불시위를 통해 과거와는 사뭇 다른 '민주운동' 의 다양한 실제적인 스펙트럼이 드러난것이 이 나라의 처절하게 뒤떨어진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과거에 비해 확실히 진보한것이 무엇인지도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우리나라가 발전속도는 빠르구나(..) 싶은 안도감을 갖게 해줍니다.
    느릿느릿 나아가게 되겠죠.. ^^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의 논지가 조금 모호해서 살짝 고민했습니다. 저는 사실 지식을 '도구'로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지식활동을 살펴보면 지식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구이기도 하고, 다른 활동의 뜻하지 않은 부산물이기도 하며, 때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이 고루 고려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아직도 잘못된 지식이 많이 유통되고 있는게 문제라는 점은 공감합니다. (모기불통신에 이런 기가 찬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가 되고 있지요.) 다만, 현실의 지식 가운데 '자연과학에 기반한 확고부동한 사실' 수준의 엄밀성을 갖출 수 있는건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되겠죠. 지난 광우병파동 당시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현재 가용한 최선의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한들 분노의 수위는 제각각이었을 겁니다. 사회의 움직임을 가늠하는 최종 가치판단의 문제에서는 일률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인간이 모든 지식과 정보를 종합해 완벽히 합리적인(?) 추론을 해낸다는게 불가능한 노릇이고 말입니다.

      민주주의의 작동에는 과학적 사고도 중요한 토대로 작용하지만, 그 이상의 사회적 규약이 필요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과학적 사고습관의 확대나 민주적 사회규약의 형성 모두 느리면서도 불규칙하게 진행되는 것이기에 꾸준한 기다림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래도 저절로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으니 밑바닥에서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죠. Periskop는 거기에 무슨 공헌을 할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2. 일화 2009/01/05 0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소한 것에서 참 많은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는 중 입니다. 사실 재밌어서 좀더 알고 싶다는 것에 이런저런 이유는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뭔가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을 얻게 된다는 부수입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죠. 원래는 대학에서 교양을 가르치는 이유 중의 하나였는데, 요즘은 전혀 해당이 없으니 말이죠. (그나저나 사족이지만 저도 당연히 그 분인 줄 알았다는...)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나 걸려드셨군요.^^ 클루게와 클루지.

      사소한 것에서 차근차근 결론을 유도하는 글쓰기가 사실은 어거지가 되기 십상이지요. 그런 면에서 아직 저도 미흡함을 느낍니다. 이건 그걸 타개해보자 하는 습작의 의도가 강했는데 잘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저희도 좀 날림 교양교육을 받기는 했는데, 요새 대학가는 어떤지 참 궁금하네요.

  3. noblenight 2009/01/05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읽고 갑니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느낄수 있는 많은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애쓰시는 채승병님의 글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사실 저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인 단순화의 오류를 쉽게 범하게 되지요 저도 최근에 이 오류 때문에 큰 낭패를 보기도 했습니다만 올 한해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횟수가 적었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의 말씀입니다, 아직 퇴고할 때마다 영 맘에 안드는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아직 고리타분한 글쓰기에 젖어있는게 아닌가 고민이지요. 블로그에 맞는 글이 뭘까 좀 더 색다른 시도를 해볼 생각입니다. 아무튼 새해 뜻한 바 두루 이루시길 바랍니다.^^

  4. oldman 2009/01/05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에서 무심히 읽은 소재를 흥미있다는 이유로 올렸다가 여러번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던 저에게 '백 투 더 소스' 캠페인은 참 마음에 와닿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료를 머릿속에 수집하고 소화하는 데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검증하는 노력도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5. capcold 2009/01/06 0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헉, 아직 준비단계인데 미리 판을 펼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실 넘치고 재미 만발한 캠페인으로 완성시키라는 긍정적 압박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말씀을, 캡콜님의 센스면 가히 캠페인 흥행의 보증수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압박의 짐을 너무 얹어드린건 아닌지……)

  6. ㅁㅁ 2009/01/06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rike// 지식을 도구로만 여기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야 좋은 것입니다. 도구로만 여긴다면 눈앞에 매몰되어 크게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문득 Periskop 방문객 여러분들께 뭔가 작게나마 베푸는 이벤트로 새해 벽두를 열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책이라도 하나 내놓을까 했지만, 대부분 본가에 쌓아놓은터라 구미를 끌만큼 잡히는게 없으니 어쩌랴. 대신 한동안 묵혀두었으나 써먹지 못했던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캐논의 파워샷 G9(및 G7) 디카에 딱 맞는 정품 소프트케이스 SC-DC55A이다.

SC-DC55ASC-DC55A

홈지기와 예전부터 교분을 나눈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원래 홈지기도 사진에 대해 꽤 열정이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사진동아리에서 나름 열심히 활동했고 심미적인 흑백사진을 즐겨 찍었다. 100피트 짜리 필름 롤을 사다가 암백에서 빈 필름 카트리지에 감고, 나중에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를 하기까지 모든 과정도 참 좋아했다. 빨간 안전등 아래 조심스레 인화지를 깔아 놓고는 노출을 주는 순간, 그리고 현상액 트레이 속에서 상이 화악 나타나는 순간의 긴장과 환희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진전시회 준비한다고 암실에서 밤새던 추억은 아직도 아련하다.

지금은 열정이 식었는지 그 때만큼 사진생활을 누릴 짬이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절정의 디카 고수들이 워낙 많아져서 어디 사진 찍는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노릇이 되었다. 그냥 일상을 기록하고 가까운 이들끼리 공유할 소소한 사진 찍는 수준에 만족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사진에 대한 열정이 불쑥 솟아오르기도 하고, 덩달아 그 핑계로 지름신의 한없는 유혹에 휘말리기도 하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 내놓는 소프트케이스도 언젠가 파워샷 G9에 끌려 마음 먹고 미리 질러버린 물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국내에 발매되는 G9에 흔히 딸려오는 케이스는 밋밋한 직육면체 꼴에 아무런 멋도 없다. 반면 이 정품 소프트케이스는 나름 경통의 윤곽을 살려주는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5천 엔쯤 하는 값을 선뜻 지불하고 일본에서 덜컥 사왔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카메라는 아내님 눈치 보느라 사지도 못했고, 결국 케이스는 까맣게 잊혀진 존재가 되버렸다. 그런 사이 이제는 G9의 후속모델인 G10까지 나와버렸다. 신모델인 G10은 외형도 조금 달라져서 이 케이스가 맞지도 않는다. (G10 전용 소프트케이스는 조금 더 큰 SC-DC60A로 새로 발매되었다.)

한 번도 못 써봤다는게 부담 없이 내놓기에는 차라리 잘 된 듯싶다. 행여 방문객 여러분 중에 캐논 파워샷 G7이나 G9을 갖고 계시고 이 케이스를 끼워 더 멋진 사진생활을 누릴 자신이 있으신 분이라면 댓글로 연락바란다. 선착순 1분! 이렇게 매정하게 자르면 좀 그러하니 내일까지 희망 의사를 댓글로 밝혀주신 분들 가운데 한 분을 추첨하여 공짜로 보내드리도록 하겠다. 나름 공정을 기하기 위해 추첨에는 난수발생기를 사용하겠으나, 사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댓글에는 가중치를 마음껏 얹어드릴 생각이다. 아무쪼록 본연의 기능을 다 하지 못했던 케이스가 제 자리를 찾아가길 바란다.

아울러 다른 모든 Periskop 방문객 여러분들도 올해 자신에게 꼭 맞는 자리 찾아가는 행운 누리시길.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9/01/02 21:15 2009/01/02 21:15
creative commons license 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초하(初夏) 2009/01/02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백의 매력에 한 번 빠져들고 나면,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
    1분이지만, 당첨자에게는 복권일 것 같구요... 미리 축하드려요.

    새해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블로깅으로 자주 뵈요~~

  2. 김동선 2009/01/03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한살더먹은게 우울하긴 하지만...ㅎㅎ

    업데이크 내용 기대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1/04 0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꾸 어깨가 무거워지네요.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방문객 여러분들의 기대도 늘어만 가는듯 하니…… 심기일전하여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3. 엄재성 2009/01/03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쓰형, 올한해도 건강하세요.

    G9구입 좌절글(저는 이렇게 읽히는데요 ^^)을 읽어보니 예전에 형이 처음 G1사고, 디지털 카메라에대해 열변을 토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한때 돈모아 빨간딱지 라이카 사보겠다고 하다가 삼일천하(삼일만에 아내님께 통장발각및 전액 환수)되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그뒤 아이 사진 찍는다는 명목으로 렌즈몇개 바꿈질한게 다이고, 이제는 빠듯한 포닥 월급으로는 감히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ㅜㅜ

    • Periskop 홈지기 2009/01/04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동아리 사람들은 지름의 고난을 이해하는군.^^ 제수씨랑 아이도 잘 크고 있지? 언제 기회되면 만나봤으면 좋겠네. 새해 복 많이 받고~

  4. 엄대호 2009/01/03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웹검색 중에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중고카페에서나 매물을 구할수 있을까 싶어서
    제품명을 몇번 두드려 봤습니다,)

    저는 작년 9월경에 지구를 구입하여 써오고 있는 25살 휴학생입니다.^^

    돈을 아끼고 아껴서 경통과 스트로브는 구입하였지만..
    가죽케이스는 품절이 되었더군요..ㅜ

    지금은 못나디 못난 직육면체 케이스를 쓰고 있습니다.(ㅜㅜ)

    혹시나 저에게 행운이 주어진다면..꼭 쓰고 싶습니다!!

    참고로 사족일거라고 생각하지만.. 지난 1월1일은 저의 25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써놓고 보니 되게 구차해보이지만 거짓말은 아닙니다^^"")

    여하튼 새해복 듬뿍 받으세요^^

  5. 이창훈 2009/01/03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우연히 검색하다가 들어오게되었습니다.

    G7을 사용하고있는데요 어느덧 요녀석과 함께한지도 3년째가 되어가는군요.

    작년까지만해도 매일 과제하면서 빼먹지 않고 챙기고 다녔던 녀석인데

    항상 들고다니면서 풍경사진찍고 노을사진 찍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맘에드는 컷이있으면 수시로 눌러대곤 했습니다.

    아 이야기가 다른데로 샜군요.

    이런 케이스가 있는지 조차 몰랐던 저로써는 매우 놀라울따름입니다.
    혼데 이 케이스를 그냥 주신다니
    제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데요 ^^

    저는 디자인과 학생이구요. 올해로 25살이 되는 청년입니다.

    이 케이스를 저에게 주신다면. 잘 유용하게 쓸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윗분도 저랑같은 나이대의 분인것같은데 ^^;;

    여튼. 아마 고민좀 하게되시지않을까 싶은데요 ^^

    괜히 지나가다가 이글을 보게되가지고 일이 이렇게까지 될줄이야 ^^;

    여튼 새해 복많이받으시구요. 자주 놀러올게요 ^^

  6. Periskop 홈지기 2009/01/04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의 두 분, 엄대호 님 및 이창훈 님 두 분이 신청하신 것으로 일단 끊겠습니다. 신청이 별로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만 한 분이나 세 분도 아닌 딱 두 분이라 이거 참 선뜻 정하기가 힘드네요. 두 분 모두 나름 열심히 쓰시겠다는 의사도 피력해주셨고 말입니다.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 엄대호 님 앞면, 이창훈 님 뒷면으로 놓고 동전 던지기를 해야겠군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동전을 던져서 결과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 Periskop 홈지기 2009/01/04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전을 던져보니 앞면이 나왔습니다.^^ 엄대호 님께서는 비밀댓글로 발송해드릴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월요일(5일)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창훈 님도 아쉬우시겠지만 너그러운 양해바랍니다.

  8. 비밀방문자 2009/01/04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9. dasleich 2009/01/04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잘하면 1월 10일 모임에 나갈수 있을 듯 합니다. 요즘 죽을 맛이지요. 청소/식사/빨래/아이들 공부가르치기 등등등.. 집사람 노여움 풀기가 매우 어렵네요.. 덕분에 노기가 좀 누그러졌습니다.
    최근 2주이상 노는 날 마다 집에서, 빵/과자 만들기, 요리해다 바치기 하다 보니, 빵/과자 만드는 실력이 늘어나는 군요..ㅋㅋ.. 원래 자격증도 있긴 했습니다만,,,
    중/고등학교 수학/과학을 전부 다 공부해놓고 나니,, 왜 이렇게 쉬운걸 당시에는 머리 싸맸는지 후회도 되더군요..

    덧붙여 러시아어 실력 향상을 위해, 국내에 발행된 어지간한 러시아어 교재들을 싸그리 구입했습니다. 2010년이 되기전에 러시아어도 마스터해야 겠습니다.

    기실.. 이 모든 상황반전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사람에게 어물게 쓴 카드전표 발각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합니다. 그덕에 쥐죽은 듯.. 모범적으로 살면서, 위에서 말한 것들도 하게 되고,,,
    정말 위기는 또다른 기회로 반전될 수 있음을 느낍니다.

    하여간 홈지기님에게 귀한 선물 받게 되신분께도 축하를 드리고, 오는 주말에 홈지기님을 비롯한 여러분들과 식사라도 해야 겠습니다.^^

  10. deutsch 2009/01/05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승병님이 사진에도 조예가 있으시군요! 몰랐습니다 -.-;; 저는 사진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서 사진이라면 몰라도 말이죠. 그런데 찍다 보면, 사진 자체로도 멋진 게 나올때가 종종 있더군요. 재작년 11월부터 니콘의 D40을 쓰는데, 똑딱이 파워샷AS90도 제대로 안쓰던 주제에 덜커덕 DSLR을 사고는 똑딱이로 2년간 찍은 분량만큼을 D40으로 한달만에 찍어버렸더군요. (얼마나 안찍었으면...) 조리개와 셔터도 모르던 사람인지라 닥치는 대로 찍어보는 중입니다. .............. 이런 횡설수설로 변했군요. 저는 요즘 눈독 들이는 니콘 기종이 있는데, 정품 가격이 348만원이더군요. OTL. 어차피 아직도 셔터와 조리개, ISO 관계도 아직도 잘 모르는 초보 주제에 348만원 짜리는 엄청난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눈을 낮추고 있습니다.

    • 獨步 2009/01/05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홈지기님의 관심분야에 경계선 따위는 없는겁니다(웃음).

      디카 그리고 그 이전에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로모가 유행해서 사진취미에 붐이 일기 이전부터 저로서는 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살롱사진' 등에 관한 말씀을 홈지기님께서 하시던 기억이 나는군요. 저는 사진에 거부감이 좀 있는 편이라 아는 것도 전혀 없고 해서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었다는.

    • Periskop 홈지기 2009/01/07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촛불시위 때 열심히 찍어 올리시는걸 보니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카메라 무겁다는 핑계로) 그렇게 기자처럼 뛰어다니며 찍지를 못하겠다군요. 비싼 필름 아껴가며 찍던 버릇이 남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은 정말 찍고 회고하다보면 느는 기분이 듭니다. 열정과 다작이 버무러지면 결국 명작이 나오는 법이죠.

      그래도 지나친 지름신의 마수에 빠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아버님께 물려받은 카메라에 용돈 모아 산 10만원 짜리 싸구려 렌즈로 더 기억이 남는 사진을 찍었으니까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황망하게도 Crete 님께서 사자성어 릴레이 바톤을 넘겨 주셨다. 분위기를 보니 이미 여러 분들께서 릴레이를 재기발랄하게 이어가신 것 같다. 홈지기는 지난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싱가포르에 다녀오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