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료 수집차 이런저런 잡지 과월호를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맞닥뜨렸다. "War Sells, but Not in Class (전쟁은 팔린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니다)." 미국의 손꼽히는 유력 주간지 중의 하나인 『U.S. News & World Report』誌 6월 23일호에 실렸던 기사이다. 제목만 보고 기사 내용이 짐작이 가시겠는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전쟁은 인류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20세기를 휩쓸었던 대규모의 전쟁은 확실히 줄었지만, 저강도 분쟁은 여전히 골칫거리고 미국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꼭꼭 잡혀있다. 밑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는 전쟁비용의 문제와, 이라크에서의 적절한 발빼기 문제는 대선의 중요 이슈이기도 하다. 고유가와 함께 부활하는 러시아의 재무장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북아시아의 조용한 군비 경쟁도 전쟁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다.

어디 그 뿐만이랴. 전쟁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잘 팔리는 주제이다. 라일구 이래로 화끈한 비쥬얼로 무장한 전쟁영화들은 여전히 각국 영화산업의 단골 소재이다. 2차 세계대전은 물론, 고대전쟁까지 골고루 커버하는 흐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홈지기는 게임에는 거의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전쟁을 주제로 한 게임들이 가끔 눈에 들어오는걸 보면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시장도 만만치 않은 규모일 것이다. 거기에 밀리터리 피규어, 모델링 등등의 세계까지 한다면 전쟁의 상업성은 이미 구석구석에 뻗쳐 있다.

Call of DutySaving Private Ryan

이것만 본다면, 정치외교적 필요에서건 문화산업적 필요에서건 군사사(military history)에 정통한 사람들이 웬만큼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한국에서야 경험적으로 그렇지 않다는걸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 같은 군사대국에서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이 떠돌기도 했다. 미국에서 학위를 따와야 학자 대접을 해주는 국내 사회과학계 풍토를 감안하면, 군사사 전공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런 실낱같은 희망마저 산산조각을 내고 있다. 미국의 전쟁 열풍에도 불구하고, 전쟁 관련 학계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미국 내에서 사학 분야의 박사학위 과정을 개설한 학교는 150개 대학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군사사 학위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는 현재 단 12개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나마 미시간이나 퍼듀 같은 명문대조차 전공 교수가 은퇴해버리면서 군사사 전공자가 충원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스콘신 대학교는 군사사 분야 교수직이 10년 이상 공석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존 린(John A. Lynn) 교수는 이처럼 '전쟁은 잘 팔리지만 학문으로서의 군사사는 안 팔리는' 모순적인 세태를 꼬집으며 이미 10년 전인 1997년에 "The Embattled Future of Academic Military History"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여기서 그는 군사사 분야가 남자(덕후)들의 비학술적 담론들이 주를 이루면서, 정작 미국 사학계에서는 군사사 전공자들이 "불가촉천민(pariah)처럼 취급받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린 교수마저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또한 홈지기도 몇 번 소개한 바 있는 이스턴미시간 대학의 로버트 시티노 교수도 미국 명문 대학에서는 군사사학자들이 "상당수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Robert M. Citino

두 손 다 들었답니다 (시티노 교수)

이런 학문으로서의 군사사가 심각하게 쇠퇴한 원인의 분석은 다양하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현재 학계의 주류를 맡고 있어야 할 전후 세대들이 반전운동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자라났다는 점이 지적된다. 1960년대까지야 전쟁을 겪고, 전쟁에 관심이 많던 세대들이 군사사 연구에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이후 세대들은 여성문제, 노동문제, 인종문제 등에 더 관심을 갖고, 전쟁문제는 구질구질하다는 인식을 가졌다는 해석이다.1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는게 중론인 것 같다. 그보다도 미국 사학계의 팽창과 함께 유행이 급변한 점이 지적된다. 1960년대 사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 동안 소외받던 소수자들의 사회 문제나 문화적 흐름을 건드리는 쪽으로 유행을 타게 되었고, 그런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다보니 전쟁에만 좁게 초점을 맞추는 군사사의 인기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설령 전쟁을 건드리더라도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시 사회라든가, 기술사적 의의 등을 연구하고 말이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군사사 전공자들의 주가가 떨어졌고, '아직도 군사사 연구를 하세요?'라는 식으로 군사사에 남은 사람들은 시대에 뒤쳐진 퇴물 취급을 받게 되었다. 불가촉천민으로 떨어졌으니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지경까지.

자, 그렇다면 앞으로도 군사사의 미래는 암울한 것인가? 다행히도 기사는 약간의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미국 사학계 일각에서 이에 대한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의 이슈를 정통 군사사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 인식이 그 계기라고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사학계의 핵심 주제였던 전쟁에 대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너무 무시해왔다는 반성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뾰족한 가시적 해결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홈지기도 몇몇 국내 유수 정치, 외교, 역사 관련 학과 사람들로부터, 관심은 있어하나 정작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군사사의 현실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이렇게 미국에서도 군사사 전공자들이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아왔다는 적나라한 이야기를 들으니 참 묘하다. 이럴 때는 역시 군사사를 취미로 하고 있다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학문적으로 진중하게 군사사를 파고드는 전문 연구자들이 없다면 어찌 이런 아마추어로서의 지적 호사(?)라도 누릴 수 있겠는가. 아무쪼록 학문적 유행의 부침을 딛고, 국내외를 막론한 군사사 연구자들이 좀 더 고용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연구를 많이 출간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옛날에 스크랩한 자료를 뒤적이다보니 번동대감께서 말씀하셨던 국내 사학계의 분위기가 오버랩된다: "70년대에 한 대학에서 군사전략과 전쟁사 분야 강좌를 개설하려할 때 일부 교수들이 '신성한 대학에서 피를 부르는 군화발 학문을 연구한다는 말이냐'라는 터무니 없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군인 출신 정치가들의 권위주의적 통치제제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이해되기는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군사학이나 군사사에 대한 민간 학계의 편견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생각된다."
2008/07/29 19:30 2008/07/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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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화 2008/07/2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만 심각한 줄 알았는데 미국도 만만치는 않군요. 전쟁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전문적인 분야면서도 이것저것 골고루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돈이 안되는 게 주된 원인이지 싶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법의학도 비슷한 사정인 듯 하던데 말이죠...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4년 전에 독일에 갔었는데, 신문인지 잡지인지 뒤적거리다 보니 가장 기대소득이 높은 전공과 낮은 전공 순위가 있더군요. 그런데 낮은 전공 1위가 "Geschichte(사학)"이었습니다. 그 순간 Geschichte 내에서 또 순위를 매기면 Militärgeschichte(군사사)가 탑이 아닐까 생각했었지요.^^

  2. 길 잃은 어린양 2008/07/29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그러고 보니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미국이나 영국의 이름 있는 대학들이 찍어내는 군사사 관련 서적들 중 정통군사사로 분류할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세이나 논문을 묶어서 내는 군사사 단행본에도 절반 이상은 문화사나 사회사적 연구들로 채워지고 있으니.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나 말입니다, 몇 안되는 제대로 된 사학 전공자로서 윤시원 님은 계속 공부를 하신다면 어떤 주제를 선택하실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08/07/31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채승병님 // 실제로 공부를 더 해보면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군사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3. 양성민 2008/07/29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사사 전공자들이 "불가촉천민(pariah)처럼 취급받는다"는 부분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비밀방문자 2008/07/29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5. 후훗 2008/07/29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사사 전공자 키우기가 쉽지 않은것이..

    군사학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사료비판 능력이 떨어지고
    사료비판 능력이 뛰어나면 군사학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니..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 보면 존스홉킨스 대학의 헤이백(M. Habeck) 교수같은 분이 신기하죠. 여성인데도 군사사 전공해서 그만큼 성과를 내는거 보면 말입니다.

  6. 삽질랜드 2008/07/30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반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군사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 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이해하라."는 리델 하트의 말이나 클라우제비츠의 그 수준높은 학문을 아무런 이해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반전을 위해서는 군사사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죠'ㅅ';;;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간에는 군사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호전적이거나 수구꼴통인 것처럼 인식하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는게 현실이기도 하죠.^^ 실제로는 스펙트럼이 훨씬 다양한데도 말입니다. 군사사의 지식이 특정 정파의 전유물은 아닐진대 조금 안타까운 대목이기도 합니다.

  7. reske 2008/07/30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군사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서 학위를 딸 수 있다는것 자체를 처음 알았습니다 -_-;;;;; 지금까지 오랫동안 군사사 분야 책을 뒤지고 다니긴 했지만. 국내에 군사사 학위 취득이 가능한가요? 육사나 이런데 말고는 없을것 같은데..;
    어쨌거나 군사사가 정치사나 외교사에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데 그에 대한 이해 자체가 너무 부족한거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25전쟁의 재발을 막자고 소리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6.25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그런 현실이랄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육사는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이 아니죠.^^ 국방대학원에 박사학위과정이 있긴 하지만, 군사전략 전공이 있을뿐 군사사 전공은 없습니다. 대개 사학과 중에서 관련 연구를 한 교수님들 밑에서 지도를 받아 군사사 주제로 논문을 쓰면 군사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죠. 엄격한 의미의 군사사 박사학위과정이 개설된 사학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정치외교 분야에서 군사사가 꽤 중요하긴 한데, 정작 제대로 전공한 사람은 없고 대개 곁다리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쪽도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08/07/3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에서는 군사사 분야 연구자들이 시대사로 학위를 받죠. 예를들어 대한제국 군제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근대사 전공자가 되고 이승만시기 한국군을 연구하는 사람은 현대사 전공자가 되는 겁니다. 찾아보시면 그래도 군사사 연구자가 아예 없진 않습니다. 물론 외국에 비해 군사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인정해야 겠지만요.

    • 獨步 2008/07/31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알기로 국내 대학 중에서는 서경대학교에 군사학과가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과과정 등을 살펴보면 학문으로서의 군사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ROTC나 학사장교로 진출할 마음을 일찍부터 먹은 고교졸업생들을 입학하면서부터 같은 학과로 모아놓는데 의의를 두고 있는 듯 합니다.

  8. 무명씨 2008/07/31 0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U.S. News & World Report지에 실린 글을 예전에 흥미롭게 읽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여러 역사분야들의 동향에 관해서 과 친구들이나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같이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것 같아 그냥 제 주변 이야기를 하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글에서 언급하신대로 군사사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도 들기는 하지만, "쇠퇴"는 차라리 역사학 일반(더 넓게는 인문사회과학 전체)에 해당되는 듯 합니다. 군사사의 쇠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부분 동료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래도 군사사 정도되니까 쇠퇴하고 있다는 소리라도 나오는 것 아니냐?" 혹은 "군사사학자들 글만 읽어서 그런 소리하는 거다. 다른 분야는 소리소문없이 죽어가고 있다." 뭐 대충 이런 반응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역사학계의 부동의 본좌, 정치사를 제외하고는 아마 역사학 모든 분야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어려워진 미국경제상황이 학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지 수 년이 지난 현재 상황에서 군사사"만"의 쇠퇴를 논하는 건 일종의 "엄살"에 불과하다는 것이 타분야전공자들의 중론인 듯 합니다 (종교사나 문화사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여성사나 일반사회사 전공자들마저도 이렇게 생각하더군요.)

    또한 잘 아시겠지만, "군사사 학위프로그램이 있다"라는 의미는 일반적인 역사학과 프로그램 구성이 지역별로 나누어지는(즉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경우가 많은데, 몇몇 대학들(즉 말씀하신 12개교)에 Military History라는 이름으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대학이 12개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언급하신 Habeck같은 경우 예일대 역사학과에서 폴 케네디 밑에서 독일과 소련의 기갑교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때, 졸업학위가 역사학 박사중 군사사입니다. 이 말은 폴 케네디 밑에서 영국해군정책으로 논문을 쓴 학생들중 군사사로 학위를 받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냥 영국사로 학위를 받는 학생들도 있다는 의미가 되겠죠. 즉 다른 대학에서는 Habeck의 경우 Main adviser가 누구냐에 따라서 독일사나 혹은 소련사로 학위를 받아야 하지만, 군사사학위프로그램이 있는 12개교의 경우 Habeck의 경우와 같이 군사사로도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죠.

    그리고 별도의 군사사학위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들(거의 대부분 동부와 중서부지역 대학들이죠. 군사사 연구의 지역적 편차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중 군사사 프로그램 교수진의 질적 양적수준을 따져보면 Ohio State University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군사사학위 프로그램이 없는 대학들에 비해 군사사연구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즉 학위프로그램이 없는 각 대학들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사 및 군사사관련 교수진의 수가 학위프로그램이 있는 대학들의 군사사 및 군사사관련 교수들의 수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대학은 군사사로 학위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대신, 다른 대학은 기존의 지역구분을 고수하느냐라는 의문이 생기는데요.... 영국학제의 영향등과 같은 다른 요인들도 있겠지만, "제가 들은바에 의하면"(교수들이나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자료를 본 건 아닙니다.) 결국 "돈"과 "취직"때문인 것 같습니다. 별도의 군사사 학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대학들은 정부(더 정확히는 군부)로부터 군사사 및 군사관련연구로 연구비를 받아오던 대학들(특히 캔사스주립대 같은 중서부의 주립대들의 경우나 동부의 몇몇 대학들)이었습니다. Military History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이 군관련 연구 및 군교육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연구비를 (거의 독점적으로) 받거나 자신들의 군사사 학위 졸업자들을 정부기관에 취직시키는데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별도의 군사사프로그램 설치없이 기존의 지역적 구분을 고수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도 역시 취직때문이라는 군요. 즉 실제로 민간인 역사학박사소지자의 경우 정부기관으로 취직하는 걸 제외하면, 군사사라는 이름으로 학위를 받는(학교 입장에서는 주는 것이겠죠) 것 자체가 민간대학 임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점때문입니다. 학위를 받고 assistant professor로 취직하고자 하면 연구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소위 "teaching"인데 지역적 구분, 즉 영국사나 독일사 같은 구분에 비해 "지나치게 specific하게 보이는 군사사"가 임용담당자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겠죠. 특히 많은 미국대학중 반이상이 넘는 소위 학부교육이 주된 목표인 대학들에서는 더욱 그러할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대학의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학위자같은 경우 (군사사 프로그램이 있다하더라도) 지역적 구분에 따른 학위를 받든지, 더 심한 경우 (군사사 프로그램이 없다 하더라도) 군사사를 연구하는 다른 학교에서 졸업하기를 더 원하는 경우가 많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예일에서 결국 tenure를 못받고 존스홉킨스로 옮긴 Habeck의 경우도 tenure도 안주면서 단물만 빨아 먹고 버리는 "악명높은" 예일의 나쁜 버릇때문만은 아닐것입니다.

    군사사가 쇠퇴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맥락이나 정도차이가 있지나 않을까해서 그냥 잡설을 남깁니다. U.S. News & World Report에 나온 그 글을 읽고 "봐라! 미국에서도 군사사 쇠퇴한단다. 한국에서 군사사? 택도 없는 소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네요.

    글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다른 답글 다신 분들께 폐나 끼치지 않았는지 걱정되네요...... 사과드릴께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31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계시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주시니 저로서는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도 아마추어 군사사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니 심층적인 내부의 문제의식을 파악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전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충분히 경청할만한 이야기였으니 길게 쓴 것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 좋은 말씀 많이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08/07/31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세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특정 대학들이 군사사 부문에 특화가 된 것 처럼 보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군요.

    • 獨步 2008/07/31 2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정부발주 연구프로젝트 수주에 의한 연구비확보는 - 결론은 학과/학교의 존속 - 현대 대학의 공통고민인 모양이군요.

      없어도 먹고 사는데 하등 지장이 없는 학문/예술은 별다른 하는 일이 없어도 잘먹고 잘사는 '유산계급의 취미생활(?)'로서, 그들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했었는데 그게 요즘은 '정부/기업의 프로젝트'로 바뀐 듯 싶네요(헛웃음).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주색잡기와 명품에만 돈쓰지 말고 학문/예술에도 취미 좀 들여서 수표이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이겠죠(썩소)?

  9. deutsch 2008/08/02 0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에는 "군사사"란 분야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10. 번동아제 2008/08/03 0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행이라고 하긴 그렇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선 군사사쪽 논문 쓰는 사람들이 조금 늘었더군요. 미국에서도 불가촉천민 취급 받는다라...그쪽 분야 대중서 읽는 사람도 같은 취급을 받는걸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8/03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중서 시장에 별별 사람들이 들끓다보니 사학계에서 좀 고깝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국내에서 군사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 확대되는 징후가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학계가 어서 대감님을 더 존중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11. umberto 2008/08/05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전공자로서 한마디 거든다고 한다면, '군사사'라는 것이 좀 애매하게 떠버린 감이 있습니다. 군사사를 깊게 연구하려면 전략, 전술 같은 군사학에 대해 좀 알아야 하는데 군사학 자체가 육사에서나 가르치는 아주 지역접이고 특수한 학문으로 인식이 되어서 일반 대학의 커리큘럼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었죠. 거기에 군부독재에 대한 반감+전통적인 숭문천무 관념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었구요.

    또 하나는 한국사를 한국사람이 자기손으로 직접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는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료를 접할 기회도 없었고, 50년대는 전쟁 후유증 때문에 사실상 한국인에 의한 근대적 방법론에 따른 한국사 연구는 60년대 부터라고 봐야 합니다. 즉 한국사 연구의 역사는 기껏 50년 정도 밖에 안되는 겁니다. 애시당초 유럽이나 일본의 자국사 연구에 있어서 축적된 역량과 시간의 양에서 비교가 안되죠. 60년대에서 80년대 까지도 일제식민사관의 극복과 신생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연구주제-자본주의 맹아론이나 내재적 발전론 같은-를 해결하기에도 바빠서 전쟁사에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최근에 여성사다, 생활사다 하는 유행이 나오는 것도 가장 기초적인 정치사, 사회사, 경제사, 사상사의 연구가 어느 정도 축적이 되었기 때문에 가지뻗기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죠. 정치사나 사회경제사 연구도 부족한데 전쟁사 같은 약간은 마이너한(?!) 분야를 건드리기가 힘들죠.)

    그래도 전쟁사 비슷한 것으로 '군제사'는 좀 연구가 많이 된 편입니다. 군제사는 일단 제도사에서 중요한 영역인데다 무력=권력이기 때문에 정치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죠. 조선후기의 붕당정치와 훈련도감, 장용영 같은 군영의 관계가 깊기 때문에 '군제사'의 경우는 그래도 국사학 안에서 메이져의 영역에 들어 갑니다.

    어떻게 보면 그래도 기본적인 정치사, 사회경제사, 군제사의 연구가 축적된 지금이 '전쟁사'가 유행을 탈 수 있을 시점인데, 문제는 국사학을 비롯한 모든 인문사회과학이 다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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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맞아 처칠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돌렸다는 MB, 그 생뚱맞음을 지적한 글에 일화 님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다:

막간의

이 댓글을 보고 즉각 떠오른 책이 있었으니…… 이 기사를 상기해보자.

이 당선인은 이번 명절을 두 권의 책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의 <마인드 세트>(Mind Set)와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통찰과 포용>(Leading Mind)이다. <메가트렌드>라는 저서로 유명한 나이스비트의 <마인드 세트>는 앞으로 50년을 예측한 저서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다. <통찰과 포용>은 정치, 경영, 교육, 군대, 예술,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리더들의 이야기와 비전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등의 리더십을 담고 있다.
"이명박 '설 연휴 정국구상' 내각·청와대 인선틀 짠듯." (2008. 2. 9.). 『한겨레신문』.

Howard Gardner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교육심리학자이다. 가드너는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오며, 1990년대 무렵부터는 교육과 HR 분야에의 응용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기사에서 언급된 『Leading Minds』는 1995년에 발간된 책으로서, 1993년에 출간된 『Creating Minds (국역판: 열정과 기질)』에서 파헤친 창조성의 실마리를 이어받아 보다 광범위한 '리더십'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책은 가드너의 본격적인 HR 관련 연작들 중에서 비교적 앞쪽을 차지하고 미국에서도 꽤나 반향을 던진 책인데, 우리나라에는 10년이 지나서야 나왔으니 좀 늦은 감이 있긴 하다.

서평을 길게 쓰기는 그러하니, 이 책의 중요한 내용만 살짝 짚어보자. 이 책에서 저자 가드너는 리더십의 핵심을 "이야기(story)"를 구성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풀어가고 있다. 여기서의 "이야기"는 흔히 생각하는 언변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메시지를 의미한다. 학자의 이론과 사상, 예술가의 감성과 형식 등도 모두 이야기에 해당된다. 위대한 리더는 이러한 자신의 독특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가드너는 오펜하이머 같은 물리학자, 슬론 같은 경영자, 마셜 같은 군인, 교황 요한23세 같은 종교인도 각 분야에서 진중한 이야기를 전파한 위대한 리더들로 꼽고 있다. 이러한 각 분야에서 탁월한 11명의 리더와 그들의 리더십을 분석했으며, (홈지기에게 흥미롭게도)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각국의 지도자 10인들의 리더십도 별도의 장을 할애해 분석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더십 책과 달리, 가드너는 단순한 표층의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논하는데 그치지 않고, 청중/독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과정까지 비중있게 다뤘다는 데 큰 차별점이 있다. 홈지기가 특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탁월한 리더는 청중/독자들마다 지니고 있는 "counter-story"와 "unschooled mind"를 이해하고 다루는 데에도 큰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살아오면서 자신만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갖게 마련이다. 각자 다른 사람의 말을 듣더라도 항상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에 맞춰 이해하고 판단하려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이와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counter-story"를 표출하고 저항하기 마련이다. 탁월한 리더는 이러한 청중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본질을 살리면서도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감성과 이성을 잘 조화시켜, 체계적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저항하는 상대의 마음("unschooled mind") 속으로까지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꽂는 표현 능력을 갖고 있다.

가드너는 이를 토대로 미래 리더십의 핵심적 요소를 여섯 가지 상수 — 이야기(story), 청중(audience), 조직화(organization), 구체화(embodiment), 직접 리더십과 간접 리더십의 선택, 리더십 패러독스 — 로 묶어 제시했다. 리더십에 대한 체계적인 지적으로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MB에게 이 책을 추천한 사람도 이러한 리더십의 다양한 덕목을 새겨 원만한 국정을 펴라는 바램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이 책을 읽었다는 2월 이후 6개월 여의 행보가 그러했던가? 가드너가 제시하는 탁월한 리더의 자질을 놓고 MB를 평가한다면, 일부 부합하는 부분이 있기는 해도 많은 결함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리더 왕회장의 복심에 따라 근면, 성실하며 기민하게 행동하는 능력은 출중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스스로 다른 사람의 "unschooled mind"와 "counter-story"를 헤아리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은 꽤나 부족했다. MB가 차분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 큰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를 구체화하여 전달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을 짜는 모습은 영 어색하지 않은가.1 『Leading Minds』를 읽고 얼마나 그런 결점을 보완하려고 작심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까지는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시 그런 능력은 책 한 권으로 이해하고 쫓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번 여름 휴가에 읽겠다는 독서 계획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더 부정적으로 퇴락하리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글을 맺기 전에, 이 책에 얽힌 뒷얘기나 마저 살짝 하자. 가드너의 좋은 책을 번역해놓고도 기대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했던 모 출판사는 대통령 추천도서(?)의 호재를 업고 대박의 꿈에 부풀었었나 보다.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이만한 호재가 그리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그러나 이후 민심이 흉흉해지니 어디 대통령을 내세운 적극적 마케팅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우여곡절 끝에……(중간 생략)…… 홈지기는 『Leading Minds』의 번역판을 공짜로 증정받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또한 MB의 은덕이라면 은덕이 아니겠는가. 여하간 지난 번 『We Shall Not Fail』에 비해 이 책은 훨씬 유익한 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행여나 접해보실 기회가 있으신 독자 분들이라면, 앞서 읽은 사람의 그늘 때문에 일부러 피해가시지는 말길 권해드린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신동아 최근 호에는 MB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하여 함께 현대건설에 몸 담았던 이상백 전 벡텔 부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여기서 그는 '이명박 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분은 다른 직원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근면 성실, 이 한 가지로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받은 거예요…… 현대건설에 '이명박 신화'는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나 내가 입사할 때 이미 현대건설은 국내 5대 건설사였습니다. 현대건설의 성장은 전적으로 사주인 정주영 회장의 덕으로 봐야 해요. 모든 아이디어, 전략, 결단은 정 회장에게서 나왔죠. 오너가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전세계 기업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의 사람은 스태프에 불과해요. 정 회장이 현대건설의 리더십 그 자체였고 이 대통령은 스태프 중의 수장이었다고 할 수 있죠."
2008/07/28 15:30 2008/07/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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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7/28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꽤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29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고로 가드너의 책은 『Creating Minds』, 『Leading Minds』, 『Changing Minds』가 모두 번역되어 있으니, 이들을 세트로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근래에 나온 『Five Minds for the Future』도 어서 번역되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2. 폴라곰  2008/07/28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워드 가드너의 사진을 보니 왠지 괴벨스 생각이...

    • Periskop 홈지기  2008/07/29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머리 숱이 더 없으면 그렇게도 보이겠네요.^^ 댓글 보고 처음에는 괴벨스도 사시(斜視)였나 의아해했었습니다.

    • 폴라곰  2008/07/29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외모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파급"도 괴벨스식 대중선동과 양상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광선검이 루크의 손에 들려 있는 것과 다스베이더의 손에 들려있는 차이 아닐까요? 어떤 기준으로 전자와 후자를 구별해내야 할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7/29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 내용(!)도 가드너의 책에 중요하게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히틀러와 나찌의 재능도 어느 편에 섰느냐는 차이일뿐 본질적인 면에서는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날림 요약만 보고서 책의 중요한 내용까지 유추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 폴라곰  2008/07/29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부끄럽게시리. :]

  3. 억천만 2008/07/28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han rss 탑 포스팅에 떠버리셔서,
    예전 광우병 관련 글처럼 사람들이 몰려올까봐 우려되네요 ^^;

    • Periskop 홈지기 2008/07/29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이런 글이 HanRSS 탑에 올라왔다니…… 많이 방문해주시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만 선정기준이 뭔지는 헷갈리는군요. --a 여하튼 감사합니다.^^

  4. 獨步 2008/07/28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히 하는 말로 같은 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맹독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웃음). 대한민국 사회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가치중립'의 의미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29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상에 도덕적 가치를 낙인찍음을 주의해야한다는 지적, 훌륭하십니다. 저는 직장에 들어오니까 다루는 주제마다 규범적 논의를 피해갈 수 없어서 곤욕을 치룰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여 논의를 전개해도 마지막 선택지에 다다라서는 결국 규범이 개입할 수밖에 없더군요.=_=

  5. 위대한행운아 2008/07/29 0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식으로 얻는 획득과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으로 얻는 획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분처럼 특정분야나 특정현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능력을 가진 현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인간의 심리를 읽고 거기에 따른 처방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체계를 정립하고 하는 문제는 결코 책 한두권 읽었다고 바로 실행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대중을 어떻게 설득하고 리드하는지에 대한 초점을 맞추어 책을 추천해주셨지만 이명박 대통령께 권해드려야할 책은 오히려 남을 어떻게 설득하고 리드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내용보다는 다양한 남의 의견을 어떻게 자신의 생각으로 녹아들게 할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명박대통령은 말하기능력보다는 오히려 듣기능력에 문제가 많은 분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29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지적이십니다. 그리고 사실 자의적인 독서보다도, 관련 분야의 유능한 전문가를 참모로 발탁하여 밀착 진단 및 교정 처방을 받아보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부인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이런 부분(적당한 쓴소리와 행동 교정)에 있기도 한데, 현재 영부인께서 그런 역할을 할만한 분인지는……??

  6. 일화 2008/07/28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썰렁한 댓글이 이런 주옥같은 글로 이어지다니... 이거야말로 타산지석의 실례가 아닌가 싶네요. 어쨋든 덕분에 또 훌륭한 분과 책을 알게 되었으니 기쁘네요.

  7. 길 잃은 어린양 2008/07/29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그 양반은 읽었다고 말만 하고 읽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29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ㅍㅍ 대통령처럼 높은 분들의 독서 스타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지원부서에서 어떤 책이든 2~3페이지로 요약하여 먹기 좋게 올려드리기…… 어느 회합에 가서든 내가 그 책을 읽어봤다고 한 마디 거들 수 있도록 핵심 포인트 챙겨드리기가 중요하지요. 요즘은 그런 요약 리포트가 얼마나 올라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獨步 2008/07/29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흔히 유행하는 '세 줄 요약'같은 것을 보좌관들에게 써달라고 한 다음 그거 흩어봤을(!) 수는 있겠죠(웃음).

      비즈니스 보고서 잘 쓰는 요령 등을 다룬 실용서를 보면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불필요한 주절주절로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제안만 하는 보고서를 최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전제라는 것이 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CEO들은 이미 사실관계나 그로 인한 인과관계는 '다 알고 있으므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 다 알고 있다는 것의 전제는 비슷한 제안을 여러 번 받기 때문으로 또 설명합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하의 비즈니스 시스템의 유용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언급되었다시피 다른 모든 시스템을 그러한 방식으로 뜯어고치는 것은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08/07/29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채승병님 // 아하! 그런 멋진 방법이 있다는걸 간과했습니다.

      獨步님 // 저는 시간에 쫓길 때 서론, 본론 각 장의 결론, 책의 결론만 후다닥 읽고 나가서 책을 다 읽은척 합니다.;;;;;;

    • chrisx 2008/07/29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읽겠다고는 안했을 테니까요. ㅎㅎㅎ

      @한동안 뉴스 잘 못보고 지내느라 이젠 좀 삽질이 뜸해졌나 했는데, 요 며칠 한가한 새 여기저기 둘러보니 여전히 떡밥이 비가 되어 내리고 있군뇨. 정말 이것도 나름 재능이라면 재능.

    • 액시움 2008/07/30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책 읽고 내용 요약하기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 보좌관 분이 대빵 자리에 더 적합할 것 같군요. -_-;

    • deutsch 2008/08/02 0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3줄은 좀 심한 거 같고, A4용지 1장 이내로 하루 내에 요약하지 못했다고, 모든 실정을 그 부하에게 돌릴 인간이 명박이죠

  8. comorin 2008/07/29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가드너의 책을 요약이라도 읽었는지 궁금하네요. 아니면 요약한 보좌관이 정말 무능하단 생각이드네요. 자기 생각에는 MB에게 읽히면 좋은 책 같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전혀 먹혀 보이지 않네요. 그리고 홈지기님이 말씀하셨듯이 MB는 가드너가 말하는 리더와 전혀 맞지도 않구요. MB는 말만 처칠 같은 사람을 떠벌리지만, 사실 하고 있는 모습은 처칠의 강적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처칠은 꼴초에다가 술도 즐겨마셨지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책도 많이 읽고 문장력이있었는데, 오히려 처칠의 강적의 사생활은 깔끔 엄격 그자체 아니였나요? ^^

    • Periskop 홈지기 2008/07/30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훨씬 절제된 채식주의자의 풍모가 어디 가겠습니까. 다만 둘 다 여색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게 놀랍다고들 하지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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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학회 활동 관계로 모 대학에서 모델링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모델링이라고 하니 프라모델 만드는 법(……)을 떠올리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아니고 사회과학도들을 위한 행위자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 입문 강좌였다. 아무래도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모델링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모델링에 대한 기본 내용 설명도 곁들였다. 여기서 모델링에 대한 몇 가지 유명한 격언들을 함께 소개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거였다:

All models are wrong; some models are useful.1

우리가 과학에서 다루는 모델(또는 '이론적 모형')을 설명할 때는 흔히 '지도'를 들어 설명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아래 구글어스 위성영상과 콩나물 지도를 비교해보자.

Google EarthCongnamul

위성영상에 나타나는 수많은 건물의 꼼꼼한 디테일은 일반적인 지도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서울특별시청은 그저 뭉툭한 회색 다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지도로부터 현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위치에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모양의 건물이 있다고 해석한다. 왜 그럴까?

첫째 이유는, 현실 대상과 지도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에 나온 수많은 건물이 비슷해보이긴 해도 약간씩 모양의 차이가 있고, 공간적 배열의 차이가 있다. 지도는 위에서 바라본 모습만 투사하지만 건물의 기본적인 단면 차이 정도는 드러낸다. 또한 도로의 생김새도 기본 윤곽은 분명히 드러낸다. 각각의 요소가 구분되는 대응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둘째 이유는, 그런 구조적 대응 관계를 해석하는 사회적 규약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진한 회색 또는 노랗고 발그레한 색으로 칠한 부분이 건물에 대응되고, 하얀 부분이 도로에 대응된다는 규약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슨 색깔인지를 명시적으로 교육받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색으로 구분되는 존재가 각각 건물, 도로, 녹지, 기타 공터에 해당된다는 규칙을 익혀왔다. 하지만 이렇게 규약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점점 특수한 목적의 지도가 될수록 특별한 규약이 점점 늘어나며, 일반인들은 해석하기가 어려워진다. 항공지도나 해도를 펼쳐 놓는다고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겠는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사용되는 모델도 그러하다. 일련의 수식으로 짜여진 모델, 여러 개념들로 이뤄진 모델을 이해하려면 각 학계에서 확립된 규약을 익혀야 한다. 그걸 모르면 그냥 의미 없는 기호와 숫자의 나열, 뭔가 그럴듯 해보이는 글자의 잔치일 따름이다.

이로부터 분명한 것은, 지도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세밀한 지도를 만든다고 해도, 현실의 모든 특징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콩나물 지도에는 지형의 고저, 건물의 높이, 색깔 등에 대한 정보가 없다. 직접 시청 주변을 걸어다니며 관찰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비해 극히 일부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한국에 한 번도 와본 일이 없는 외국인이 콩나물 지도만 보고서는 서울 시내 고층건물들이 얼마나 들어서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미국의 어느 소도시마냥 평평한 땅에 2~3층 정도의 건물이 늘어선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지도는 필연적으로 현실의 모든 특징 가운데 일부만을 선택해서 담을 수밖에 없으며, 선택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오도와 왜곡의 위험까지 있다. 모델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을 단순히 축소(또는 확대)한 것이 아니라, 정보가 의도적으로 첨삭되었다는 점에서 모든 모델은 틀렸다.

그렇지만 콩나물 지도가 쓸데 없는 추상화라고 욕할 사람은 없다. 콩나물 지도는 우리가 어떤 지점을 찾아가는데 필요한 적당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 내려서 웨스틴조선호텔을 찾아간다고 할 때, 롯데백화점 높이가 몇 미터이고, 건물에 유리창이 몇 개이며, 무슨 색깔로 칠해져 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한국은행 방향을 따라 난 대로를 따라 가다가 롯데영플라자와 CGV 명동이 보이면 우회전해서 가면 된다'라는 간단한 정보들만으로도 (길치가 아닌 이상) 충분하다. 이런 면에서 콩나물 지도는 유용하다. 모델 또한 특정한 목적에 따라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서 충분히 유용하다. (세상에는 그나마도 얻지 못하는 쓰레기 모델이 부지기수이다.) 바로 그런 유용한 지도, 아니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 모델링이라 할 수 있다.

자,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또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모델링 강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홈지기는 요즘 말랑말랑한 과학(사기?)에 주로 종사하고 있다보니 새삼스레 저 '유용하다'는 의미를 되새겨보고는 한다. 조직론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를 하나 들여다보자.

Albert Szent-Györgyi
비타민 C의 발견 업적으로 1937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örgyi)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 징집되어 위생병으로 복무했다.2 그의 부대는 오스트리아 알프스 일원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부대장은 일단의 척후조를 편성하여 산악지역 안쪽으로 정찰을 보냈다. 한 나절 정찰을 하고 주둔지로 돌아오는 가벼운 일정이라 이들은 별다른 장비를 휴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이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 혹독한 눈보라가 이 지역을 강타했다. 말 그대로 블리자드(blizzard) 속에서 척후조는 길을 잃어 버렸으며, 해가 지도록 부대에 복귀하지 못 했다. 부대장부터 센트-죄르지를 비롯한 남은 부대원들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기다렸으나, 이틀이 지나도록 흔적을 발견할 길이 없었다. 모두는 그들이 블리자드 속에서 헤매다 죽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사흘째 되던 날, 그들은 눈을 뚫고 부대로 복귀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예상했던대로 블리자드에 휘말린 척후조는 모두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왔던 길을 되짚어 부대로 복귀하려고 했다. 그런데 폭설에 뒤덮여 어디가 길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지형지물도 익숙하지 않은 곳인데다 한치 앞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조원들은 멈춰섰다. '이대로 죽는구나!'하는 절망 속에서 최후를 기다릴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조원들 가운데 한 명이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지도 한 장을 발견했다. 이들은 반색했다. 지도가 있으니 블리자드가 지나갈 때까지만 기다리면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번졌다. 급히 눈 속에 굴을 파고 이들은 눈보라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날씨가 좋아지자, 이들은 눈 덮인 산 속에서 열심히 지세를 가늠했다. 지도의 지형과 산세를 대조해가며, 이들은 서서히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눈길을 헤치고 난 끝에 그들은 부대 숙영지로 돌아왔던 것이다.

부대장은 척후조를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감격하여 그 희망의 지도를 받아 보았다. 그러더니 부대장은 갑자기 낯빛이 바뀌며 한 마디를 던졌다.

"이건 피레네 산맥3의 지도잖아!"

Karl E. Weick
이 이야기는 조직론 분야에서 유명한 칼 와이크(Karl E. Weick) 교수가 자신의 글4에서 써먹은 뒤에 널리 알려졌다. 사람마다 이 이야기에서 제각기 다른 통찰을 얻을 수 있을테지만, 홈지기는 이 이야기를 듣고 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All models are wrong; some models are useful."을 떠올렸다.

앞에서 설명한 모델의 '유용함'의 판단하는 기준을 다시 상기해보자. 우리가 보고자 하는 현실의 수많은 정보 가운데 목적에 부합하는 일부의 정보만을 끄집어낼 수 있으면 '유용한 모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알프스를 헤맨 헝가리 병사들이 갖고 있던 지도(모델)는 그 수준도 못 되었다. 그들이 직면한 현실과는 전혀 관계 없는 정보를 담은 지도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지도를 정말로 유용하게 여겼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나마도 없었다면 그들은 주변에서 헤매다가 죽었을테니 말이다.

우연히도 그들이 쥐고 있던 피레네 산맥 지도의 지형과 정찰나간 알프스 지형이 많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5 그러나 그게 꼭 결정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이들이 지도의 정확성에만 신경썼다면, 설사 지형이 유사했더라도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조할 수 있는 많은 지형의 특징들도 눈에 일단 뒤덮이고 나면 판별하기가 아주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홈지기는 이 사례가 지도(모델)의 유용성이란 현실과 유사한 정도 이상의 의미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연구뿐 아니라 일상사 모든 일은 어차피 불확실성 속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정작 현실의 전체 그림이 뭔지 아는 사람도 없고, 내가 갖고 있는 지도(모델 또는 세계관)가 얼마나 정확한지 판별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완벽한 지도를 미리 갖고 출발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첫 걸음을 떼고, 여럿이 함께 길을 가면서 갖고 있던 지도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현실 지형의 의미를 파악해가야 한다. 기존의 지도에는 없던 언덕이 나오면 누군가가 재빨리 올라 그 너머의 지형을 점검하고, 계곡이 나오면 조심스레 물길을 밟아 내려갈 방향을 가늠하는 식이다. 이야기 속의 헝가리 척후병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살 길을 헤치고 나왔을 것이다. 막막한 눈밭에 주저앉은 상황에서 던져지는 지도(모델) 한 장은 완전히 틀린 것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꺼져가는 삶의 의지를 되살리고 분연히 일어나 지형을 대조해가며 지혜를 모아보려는 사람들의 행동을 촉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한 것이기도 하다.

꼭 전문적인 모델링을 업으로 하는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모델을 매일 그렸다 지웠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학술저널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블로거들이 매일 던지는 글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모델들이 숨어 있다. 각자가 품고 있는 모델을 함께 살펴보고 현실과 대조해가는 의논 속에서 모델은 점점 더 정교해진다. 그런 정교한 모델을 이해하고 가끔은 한 걸음 더 나아간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연구자, 아니 소박한 모든 블로거들의 즐거움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 마음 한 구석으로 꿈꾸는 이상은, 설사 미흡하더라도 헝가리 병사들을 구한 바로 그런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물론 틀린 피레네 산맥의 지도조차 트랜싯을 맨 수많은 발길이 필요했듯이, 그런 모델을 만드는 저력도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많은 학습와 단련의 기간이 필요하다. 지난 강의는 홈지기도 아직 미숙한 입장에서 얼버무린, 그리 길지 않은 모델링 강의였다. 그러면서도 강의실을 나서는 길에, 그 지루한 과정을 진중하게 밟아 결국 변화를 끌어내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이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조용히 기원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