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정보를 모으자면 당연히 많은 시간과 열정, 수고가 따른다. 그러나 역시 뭐니뭐니해도 돈이 만만치 않게 든다. 홈지기야 직장 도서관이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준다지만, 그래도 이 책 저 책 사다 보면 婦納金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가끔 부업 삼아 여기저기 기고문을 써서 메꾸는 수밖에. 다행히 이번 주에는 H경제신문에 서평을 하나 싣게 되었다 — 리처드 오글(Richard Ogle)이 1년 전쯤 내놓은 『Smart World: Breakthrough Creativity and the New Science of Ideas (스마트 월드: 혁신적 창조성과 아이디어의 新과학)』에 대한 서평이다.

Richard OgleSmart World스마트 월드

따끈따끈한 번역서를 받아들고 신문 주말판의 서평 섹션을 채우기 위해 황급히 써내려간 원고는 이렇다:

집단은 한 명의 천재보다 똑똑하다

최근 정부, 기업할 것 없이 지식경제 시대의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이미 개발 시대의 성장 모델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소수의 첨단 수출산업에 의존하는 현재의 성장은 양극화와 불안한 국제 환경에 의해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해낼 수 있는 '혁신적 창조성(breakthrough creativity)'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때 우리는 이러한 ‘혁신적 창조성’이 그저 '천재'라 불리는 몇몇 뛰어난 개인들의 뇌 속에서 이뤄지는 것으로만 여겨왔다. 이러한 인식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혁신과 창조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스마트 월드(Smart World)』의 저자 리처드 오글(Richard Ogle)은 이러한 통념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동서고금의 비즈니스, 과학, 기술, 예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 창조에 대한 연구와, 최근의 뇌과학의 발달을 두루 살펴보며 색다른 결론을 내고 있다. 즉, 세상을 발전시킨 창조성은 개개인의 천재성만이 아닌, 사회의 아이디어 네트워크와의 통합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오글은 창조적 도약을 이룬 천재나 거장들은 공통적으로 다양한 지식으로 구성된 아이디어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음을 보이고 있다. 피카소의 걸작 '아비뇽의 아가씨들(Les Demoiselles d'Avignon)'은 그의 두뇌에서 완성되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트로카데로(Trocadéro) 박물관에서 접한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 때문에 창조될 수 있었다. 반세기 넘는 히트작 '바비(Barbie) 인형'은 인형을 통해 자신을 성인 여성의 모습에 투영하려던 아이들의 은밀한 욕구와 독일 성인만화 주인공('Bild-Lilli')이 결합됨으로써 탄생했다. 건축계의 흐름을 바꾼 프랭크 게리(Frank Gehry)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는 건축에 미술과 과학적 원리가 결합되어 탄생했다.

창조의 주인공들은 이처럼 이미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던 지식 및 아이디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두뇌뿐 아니라 이런 네트워크에 내재된 이른바 '배태 지능(embedded intelligence)'까지 폭넓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네트워크를 이용해 아이디어의 상호작용을 끌어내었고, 거기서 발생한 시너지가 창조적 도약으로 영근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만나 상호작용함으로써 영리해진 세상, 즉 아이디어 네트워크로 짜인 유기체적 공간을 '스마트 월드'라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스마트 월드'에서 일어나는 창조의 원리를 최근의 네트워크 과학 및 복잡계 이론과 접목시켜 한층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스티븐 스트로가츠(S. Strogatz), 던컨 와츠(D. J. Watts), 알베르트-라슬로 바라바시(A.-L. Barabási) 등의 선구적 연구 작업에서 유래한 네트워크 과학은 새롭고도 흥미로운 학문 영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네트워크 과학은 역동적이고 자기조직적이며 자기변형적인 광대한 아이디어 네트워크의 생성과 진화를 통찰할 강력한 사고의 틀을 제시해준다.

저명한 철학자이자 뇌과학자인 앤디 클라크(Andy Clark)는 "우리는 지능을 보다 덜 사용하고도 성공할 수 있도록 우리의 환경을 구축하는 데 우리의 지능을 활용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그간의 학문적, 상식적 견해와는 정반대로 사고가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왜 우리가 역동적인 아이디어 공간인 스마트 월드를 이해하고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의 두뇌의 경계를 넘어 스마트 월드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창조의 주인공으로 얼마든지 나설 수 있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은 수많은 인맥 속에서 사고체계에 자연스럽게 네트워크 개념이 스며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블링크(Blink)』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도 이러한 동아시아인들의 관계적 사고의 틀이, 창조적 사고와 현대 사회의 성공에 더욱 적합하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우리 스스로가 스마트 월드를 활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티핑 포인트의 법칙', '핫스팟의 법칙' 등 9가지 법칙을 숙고하고 창조적 도약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현안들에도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언제나 한정된 분량의 신문 지면에 꽉 맞춰 넣으려면 군더더기는 다 빼고, 적당히 좋은 말 많이 골라 써야 된다는 제약이 있으니 그 점 이해 바란다.

이 책은 올해 출판계에서 계속 공략하고 있는 주요 키워드인 "창조" 유행의 맥락에서 번역·출간된 책이다. 창조경영을 외치던 회장님께서는 잠수 중이시지만, 창조성과 거리가 먼 대통령이 앉아 있어서 그런지 현장에서 느끼는 목마름은 더한 것 같다. 경제상황은 좋지 않고, 예전처럼 잘나가는 선진국을 열심히 벤치마킹하여 모방하고 각종 요소투입을 늘려 추격하는 식으로는 어림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새로운 활로를 찾겠다고 혁신에 이어 창조까지 외치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수많은 지식인들이 듣기 좋게 갖가지로 창조의 본성을 해석하고 포장하여 책으로, 강연으로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각계 경영자들을 가만히 관찰하다보면 여전히 이에 대한 인식이 피상적이거나 아예 잘못된 분들도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라면 이른바 '천재론' — 한 사람의 천재가 x명을 먹여 살린다 — 의 허상이 아닐까 싶다. 본질이 곡해된 측면도 있지만, 저 말은 천재가 창조적 드라이브를 걸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기에 '묻어 가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대기업 임원들은 최고의 인재를 찾겠다고 미국의 유명 대학을 쏘다니며 유학생들에게 공짜밥을 먹여 주는 일에 많은 시간과 돈을 쏟는다. 그런데 정작 가까이에 있는 임직원들을 다독이고 그들의 창조성을 끌어내는 데는 인색하다. 힘들게 유능한 사람들을 채용해와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허드렛일만 시키다가 얼마 안 있어 사표 쓰게 만든다. 그리고는 또 낚아올 사람이 없는지 나가서 출장비와 사이닝 보너스만 축낸다. 이런 식이다 보니 창조는 그저 밖으로 황금알 낳는 닭이 어디 없나 찾아다니고, 안으로 공돌이를 더 효과적으로 쥐어짜는 방법 고민하는 식으로 전락해버렸다.

한국처럼 인구 5천만 명이나 되는 경제 구조에서 이런 인식은 치명적이다.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는 사회 인력들이 새로운 용처를 찾지 못하고 계속 생계형 자영업으로 밀려가는 구조적 악순환이 벌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그저 소수의 잘 나가는 기업들로부터의 적하효과(tricke-down effect)나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성장에 솔깃해서 MB 뽑아놓고, 바구니 달랑 짜서 만나(manna)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모습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재성, 창조성에 대한 재인식이 무엇보다 긴요하지 않나 싶다. 지난 번에 말콤 글래드웰의 뉴요커 誌 기사 「In the Air: Who says big ideas are rare?」를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도 글래드웰은 '대박 아이디어가 결코 드물지 않다', 즉 위대한 진보가 천재의 전유물이 아님을 꿰뚫어 보고 있다. 시대를 이끌어온 지적인 발전은 기존에 쌓여 있는 수많은 지식과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다. 역사 속의 위대한 발명가들 가운데, 그들 누군가 한 명이 없었다고 세계가 퇴보의 늪에서 헤매고 있기라도 할까? 천재는 태초의 광막한 공간에서 뚝딱 세상을 만들어내는 (허구의) 조물주가 아니다. 주변 세계에 있는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체계화시키는 효율이 뛰어난, 진화의 연쇄고리를 자극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의 한계에 갇혀서는 제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창조성에는 한계에 부딪히는 법이다. 오히려 끊임없이 외부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접촉하며 이들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더 큰 성과를 내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홈지기도 별 성과랄 것은 없지만, 포럼을 운영하던 시절부터 블로깅을 하고 있는 요즘까지 이러한 다이내믹스의 덕을 톡톡히 보아왔음을 느낀다. 포럼에서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자연스레 더 많은 자료를 찾고 스스로도 공부하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논의에 참여하는 다른 뛰어난 분들의 아이디어와 지적 자극이 없었다면 그만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 『스마트 월드』의 표현대로라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아이디어 공간의 네트워크 속에서 소통하며 시너지를 끌어내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웠다고 할까.

그러나 『스마트 월드』가 이러한 창조성의 외생적 요인만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해외 서평들을 보노라면, 크게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번드르하게 포장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언어가 달랐다 뿐이지 이러한 창조의 속성은 여러 군데서 이미 이야기되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홈지기의 글에 솔깃하여 이 책을 읽어보시는 분들 가운데서도, 제법 많은 수가 이런 의구심과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스마트 월드』의 가치 포인트는 이를 최근의 네트워크 이론과 뇌과학, 복잡성 과학의 틀에서 이해하고 한데 묶어내려는 시도라는 점에 찾아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아이디어의 속성처럼, 하늘 아래 없던 이야기가 터져나온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과학적 지식들과 창조적 경험의 접목으로서의 가치다. 그런만큼 이 책은 창조성의 속성을 담아내는데 이용한 최근의 과학적 논의들을 함께 알아갈 때 훨씬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다. 일상에서 느껴왔던 사실이 일견 다른 분야에서 발전된 과학적 체계와 맞닿아 있음은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런 자극 하나하나가 결국 자기가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까지 지적인 호기심을 뻗고, '스마트 월드'와의 링크를 더 확장시켜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홈지기도 다음 번에는 이를 좀 더 포괄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추천 독서 목록을 한 번 만들어보든지 하겠다.)

결국 기업 현장이건, 교육 현장이건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통의 능력을 함양시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고 본다. 'copy & paste + 감정 배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된 기술이 제공해주는 공간을 자신의 아이디어 네트워크로 활용하는 능력 말이다. 스스로가 그런 네트워크에 속에서 의미 있는 링크를 많이 맺고, 자신의 노력을 더해나가는 선순환이 활발히 벌어질 때, 그토록 우리를 짓누르는 '성장'의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8/06/28 04:20 2008/06/28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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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6/28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문에 서평까지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길 잃은 어린양 2008/06/28 0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양 같은 아둔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아주 훈훈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oT
    예전에 공부삼아서 경제사 서적을 몇 사람과 번역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서 다루는 논의의 대상이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는 점에 감탄한 경험이 있습니다. 부분 부분을 뜯어 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는 글이었는데 이런 평범(?)한 내용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가져와 훌륭하게 조합했다는 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3. uriel  2008/06/2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의 서평보다는 뒤의 언급 쪽이 사실 훨씬 더 좋은 서평이라고 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01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맘 같아서는 뒤쪽처럼 쓰고 싶습니다만 한국 신문지상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지요. 많은 서평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밖에 없습니다.^^

  4. 삽질랜드 2008/06/28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이런 것은 별로 가까이 하지 못해서 잘 모르겠네요'ㅅ';;

  5. 獨步 2008/06/28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

    저 자신은 평균에도 훨씬 못미치는 지적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위대한 예술은 위원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아직까지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마치 누려보지도 못한, 정상배들이 조작한 영남정권의 기득권에 갇힌 영남인들과 비슷한 사고구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둘.

    초고가인 난치병 치료제가격을 둘러싼 제약회사와 환우단체들의 논쟁이 언뜻 생각나는군요. 제약회사는 엄청난 연구비가 들어간 치료제의 특허권을 주장하지만 환우단체들은 그것이 대학 등에서 이루어진 기존연구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제약회사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식으로 독점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면서 저렴한 카피약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요.

    이것은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논쟁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렇다면 저작권자가 달성한 +a를 과연 어디까지,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가? 홈지기님께서 소개한 책의 저자와 같은 입장이라면 지재권의 인정범위는 좁아질테고, 다른 입장이라면 작품 하나 히트치면 자식까지 놀고 먹을 수 있겠죠 - 마치 'About a Boy'에서 Hugh Grant가 캐롤송 딱 한 곡 대히트시킨 작곡가 아버지 덕분에 우아한 솔로백수로 평생을 살아가듯...

    저의 역량을 잘 알기에 댓글은 여기까지(스르륵).

    • Periskop 홈지기 2008/07/01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술은 사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살아남는 메커니즘이 과학기술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창조성에 대한 논의에서 양자가 일률적으로 비교되기 어렵지요. 저는 사실 예술적 소양은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장광설을 펼만한 내공은 못 됩니다. 지재권 문제도 사실 일률적인 해답이 얻어지기 힘든 것 같습니다. 창조와 발명에 대한 인센티브라는 측면에서 긍정은 합니다만…… 요즘 보다보면 이게 정작 연구자에게 제대로 가는게 아니라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는 폐해가 더 문제로 느껴집니다.

  6. 일화 2008/06/29 0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조적 아이디어는 의외로 넘쳐난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이 생각나네요. 복잡계이론이 여기저기 적용되는 것을 보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막상 몇페이지보다보면 의욕이 꺾인다는...

  7. noblenight 2008/06/29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천재성, 창조성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성에 대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던것 같습니다. 그동안 2~3주 동안 제대로 못들어온거 같은데 그동안

    적어주신 글들도 잘읽었습니다. 요즘 촛불집회랑 관련하여 리더쉽에 대한 글

    이 많은데 채승병님도 이에 관한 글을 적어주시니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기본적으로 저랑은 다르시니 상반되는 입장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을수 있기도 하고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7/01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말고사 때문에 그러셨나보군요. 설마 아직도 계속 집회 쫓아다니면서 설득을……?^^

    • noblenight 2008/07/03 0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그분들이야 제가 아무리 설득 한다 할지라도워낙 강한 신념을 가진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요즘은 교수님이말씀하신 부분도 있고 해서 글을 써볼려고 하는데 과연얼마나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을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듭니다.

      요새는 그저 한 선배분의 추천으로 코스모스란 책을 보고 있는데 과연 이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들의 논쟁이 과연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요새는 그저 이런 저런 책들을 보고 있습니다.

  8. mu 2008/06/30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천재성과 창의성이 왜 다양성에서 나오는지 말해주는군요.

  9. 라피에사쥬 2008/07/02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느낀점이 많습니다.

    현실은 시궁창입니다만[..]

    • 폴라곰 2008/07/03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모두는 시궁창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 몇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죠.

      오스카 와일드(1854-1900), Lady Windermere's Fan, 1892, Act III

      p.s : 에미넴 동무를 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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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大帝께서 상국의 폐주 닉슨의 선례를 들어 박노자의 언설에 대해 일침을 날려 주셨다. 홈지기는 이 글을 보니 문득 몇 년 전에 정치경제학에서 인기를 끈 유명한 효과가 생각났다 — 바로 "Nixon goes to China" 효과라 불리는 것이다.

이 효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경제학자인 마리아노 토마시(Mariano Tommasi)의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경제학계의 권위 있는 저널 중의 하나인 American Economic Review에 1998년에 실린 논문 "When Does it Take a Nixon to Go to China?"에 나온 이야기이다. 원문을 읽기 전에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아보자.

순명大帝의 글에도 나와 있듯이 닉슨은 집권 이전인 1950~60년대에 걸쳐 전형적인 반공투사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집권한 1970년대에는 동서 데탕트의 문을 열어 젖혀 중국 방문이라는 빅 이벤트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런 예는 닉슨과 키신저가 유별난게 아니다:

  • 페론주의자로 알려졌던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볼리비아의 포퓰리스트 파즈 에스텐소로 모두 예상과 달리 친 시장적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 초, 사회당 미테랑 정권 하에서 일부 민영화가 추진되고, 물가 안정 중심으로 경제 정책이 선회했다.
  • 이스라엘에서도 1970년대 말, 매파로 꼽히던 베긴 총리가 오랜 반대 끝에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는 조치를 취했다.
  • 상대 파트너였던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도 이스라엘에 대한 효과적인 군사행동(욤 키푸르 전쟁)을 벌여 명성을 떨친 바 있다.
  • ……

이런 수많은 사례들은 정당의 정강 및 노선과 정책이 일치하고, 이럴 때 가장 큰 추진력을 얻는다는 이상주의적인 생각과 배치된다. 오히려 중대한 변화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정당(또는 정치인)에 의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확인된다. 윌리엄슨의 연구1에 의하면 시장 친화적 개혁을 했다는 13개 국가의 사례를 조사해보니, 정작 우파에 의해 이런 개혁이 이뤄진 경우는 3건에 불과했다 — 그리고 그 중 2건은 독재 정권(칠레와 한국)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2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이런 중대한 "정책 반전"이 결코 이상한 현상이 아니었다. 즉,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주변부 2류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Menachem Begin

나는 왼쪽으로

Paz Estenssoro

나는 오른쪽으로

Carlos Menem

나는 아내쪽으로

그렇다면 이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토마시의 설명의 개요를 알기 위해 논문 초록까지 읽어보실 분들은 아래 숨겨진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토마시 논문 초록 펼치기

토마시는 정치경제학자 답게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우선 많은 경우 정책 당국자들은 정책 반전이 국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더 나은 정보를 갖고 있으나, 이를 자기 정당 지지자들이나 다른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정책 하나만 뚝 떼어놓고 그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같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실행하는 주체가 어떤 사람이냐는 점을 함께 고려하여, 즉 정책 입안자와 정책을 쌍으로 놓고 찬반 의견을 결정한다. 닉슨이 중국 방문을 전격적으로 성사시켰을 때, 미국의 여론은 그나마 저항이 덜한 편이었다 — 물론 좌파들은 "정치적 개종"이라 조롱하고, 일부 우파들은 "배신"이라고 분노했지만 말이다. 이것은 닉슨같은 골수 반공투사가 공산주의자들과 화해를 추진한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설사 잘못 되더라도 나라를 공산주의자들에게 팔아 먹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에 민주당의 허버트 험프리가 집권하여 이런 정책을 시행했으면 공산주의자와의 결탁이라고 훨씬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다. 이렇게 정책 입안자가 기존에 구축한 신뢰를 바탕으로, 반대 정파라면 불가능했을 과감한 정책 반전을 이뤄내는 것이 바로 "닉슨 중국에 가다(Nixon goes to China)" 효과이다.

Nixon in China

역시 역사는 나를 재평가하기 시작했어!

지난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한미 FTA도 어땠는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추진했기 때문에 그나마 비난이 그 정도였던 것은 아닐까? 아시다시피 수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은 연이은 이런 돌발정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우왕좌왕했다. 일부는 반노로 돌아서기도 했으나, 또 그래도 많은 수의 지지자들은 '노짱이 하시는 일인데……'라며 온갖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고자 갖가지 눈물 겨운 논리를 짜내지 않았던가? 이회창이 한미 FTA를 추진했더라면 당장 거리로 나섰을 사람들까지 말이다. (이명박에게는 지금 그런 정도의 우군도 변변히 없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는 "닉슨 중국에 가다" 효과와 더불어 "노짱 FTA 추진하시다"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3

물론 이런 현상이 아주 "빈번한"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반적인 사안에 있어서는 정당이 추구해오던 방향을 따라 순항하는 것이 대체로 올바른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류가 역사 속에서 파괴적 부작용 없이 점진적인 변화를 쌓아가는 과정으로서 진화시켜온 체계이다. 그러나 내생적이건 외생적이건 중대한 환경 변화에 따라 급격한 방향 전환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며, 이는 뭔가 "잘못된" 듯 보이는 바탕에서 튀어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긴 역사에서 보면 그것은 반드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럴 법도 한" 것일 뿐이다. 때로는 그런 반전이 파탄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닉슨이 냉전 해체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되듯이 역사에 길이 남는 업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하튼 세상에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상식과 반한 역사도 많이 있었고, 그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한국도 국민의 반대를 찍어 누를 수 있는 독재체제에서 탈피했고, 국가적 지향점에 대한 논의는 혼란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출현할 여러 정권에서 다른 형태의 정책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분명 기존의 반대파는 조소를 퍼부을 것이고, 기존의 지지자는 배신자라고 돌을 던져댈 것이다. 그럴 때 상기하시라, 그것이 꼭 후진성의 증거는 아니라는 점을, "닉슨 중국에 가다" 효과의 틀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길길이 날뛰며 바로 잡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폐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Notes.
  1. Williamson, J. and Haggard, S. "The Political Conditions for Economic Reform." in Williamson, J. (ed.) The Political Economy of Policy Reform. Washington, D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1994, pp. 527-536.
  2. 이건 물론 십수 년 전 연구 결과이니, 오늘날 개정한다면 DJ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친 시장적 정책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3. 오해는 마시라, 홈지기는 노통을 (인간적인 이유는 절대 아니고 정파적 이유에서) 아주 소극적으로 지지했고 한미 FTA는 찬성한다.
2008/06/25 10:00 2008/06/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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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8/06/25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Crete 2008/06/25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승병님 글에 특별히 딴지를 걸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소전 관련해서야 워낙 각종 자료와 객관적 해석에 더해 인품이 묻어 나오는 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니까요. 또한 시사 관련 글 역시 대개의 경우 조급함이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거리를 두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비교적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글의 전개를 통해 폭 넓은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시는 글 쓰기를 보여 주셨으니 그 또한 높이 사고 있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글은… 그런데…

    일단 스타트는 박노자님이 끊으셨고 홍순명님께서 추임새를 넣으신 것까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과연 홍순명님의 글이 박노자님의 글에 ‘일침’을 날리신 글인지는 차치하고… 오늘 채승병님 글의 말미에 언급하신 ‘노무현 지지자’들에 대한 언급에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1)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우왕좌왕
    (2)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고자 갖가지 눈물 겨운 논리를 짜내지 않았던가?

    쩝….

    소위 ‘노무현 지지자’들의 경제적인 입장이야 천차만별이고 한미 FTA에 대한 견해 역시 각기 주어진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 것 같은데… ‘노무현 지지자’들이 무슨 개인 숭배의 종교 집단도 아니고 특정 정책의 해석을 위해 우왕좌왕할 일은 무엇이며 또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일은 무엇일까요? 게다가 특별히 자신의 입장과 상반된 논리를 ‘짜낼’ 필요까지 있을지.

    작년 1월에 제가 서프에서 한 분과 한미 FTA에 대한 토론 중에 써 올린 글이 있어 퍼 오겠습니다. 일단 2007년 1월 15일에 쓴 글이죠.

    “저는 비록 민노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FTA에 한가지 궁금점이 있어서 출동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현재 정부쪽에서 FTA 추진의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는 대외정책경제연구원(KIEP)의 작년 3월 보고서를 보면 한가지 의문점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과 FTA 체결시 우리나라의 수출은 단기적으로 50억 달러 정도 증가하는 반면에 수입은 80억 달러 증가라고 나옵니다. 결국 30억 달러 적자 요인이 발생하죠. 장기적으로는 수출 154억 증가, 수입 152억 증가로 변해서 2억 달러 정도 흑자가 나온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혜택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위의 자료는 우리나라의 전체 무역에 관한 이야기이고, 미국과의 무역 부분으로 촛점을 좁혀보면 이야기가 한층 달라지죠.

    즉 단기적으로는 미국에 수출이 54억 달러 증가, 수입은 96억 달러 증가로 나와, 42억 달러의 적자 요인이 발생합니다. 장기적으로도 수출은 99억 달러 증가에 불과한데 반해서 수입은 172억 달러 증가해서 결국 73억 달러의 적자가 생기게 되죠.

    물론 무역 수지 그 자체보다는 교역 규모의 증가에 촛점을 맞춘다면 여전히 긍정적인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언듯봐도 우리에게 그렇게 유리한 면이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가 미국에 대해 수출하고 있는 품목중에서 높은 관세 때문에 물먹고 있는 분야는 철강 수출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용 창출도 단기적으로는 8만5천명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장기적으로는 68만명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지만 솔직히 구체적인 논리의 전개가 적어도 제게는 설득력이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미 FTA에 대해서는 선듯 손을 들어줄 판단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은 제가 인용한 KIEP의 작년 3월 보고서는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이론적 근거로 사용하는 강력한 자료이기는 하지만 저는 같은 자료에서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았습니다.

    출동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다른 자료나 별도의 자료가 있으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생각의 간격을 좁히는 토론 자체를 ‘우왕좌왕’ 이라고 표현하실 셈이신지요?

    제가 의문을 제기한 위 글에 당사자인 출동님은 ‘FTA- crete님 에게.....’라는 글로 본인의 생각을 보여 주셨고

    http://seoprise.com/board/view.php?uid=56796&table=global&mode=search&field=nic&s_que=%C3%E2%B5%BF&start=220

    그 글에 대해 저 역시 다음의 글로 추가로 문제 제기를 했죠.

    “우선 출동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별도로 글을 올려 주시고.

    그리고 제 글의 분위기는 출동님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기 보다는 제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에 혹시라도 설명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올리는 글이었습니다.

    사실 여전히 제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출동님이 주장하시는 내용은 100% 수긍을 하기는 하는데….

    그런데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올라가는 것, 그리고 우리 경제 체질을 바꾸는 것과 한미 FTA 가 높은 연관성이 있나요? 가령 미국의 금융업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국내에 진출하면 우리 경제 체질이 바뀌나요? 또한 의약업쪽으로 개방이 되면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 체질이 출동님의 희망대로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위로 가게 되는지요?

    솔직히 저는 두 가지 개념 사이에 연관성이 잘 납득이 안됩니다.

    대미 무역 수지 악화를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우리 경제 체질이 바뀐다는 확신이 있다면 몇 년간의 적자 확대도 인내할 수 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게 그런 효과를 담보하는 거래인지 잘 모르겠네요.

    이 부분에 대한, 즉 서비스업과 의약업, 농업 쪽의 개방이 우리 경제 체질을, 그것도 경제 피라미드의 최상위로 올려 놓는 것에 대한 연관성을 좀 더 자료와 논리로 설명해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출동님께 듣고 싶은 건, 그러니까 양쪽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은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라기 보다는 그 다리를 건넌 뒤에 딛고 선, 즉 반대편에의 좋은 면에 대한 강조 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


    이런 식으로 열린 마당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정리해 보는 것이 어찌 ‘눈물 겨운 논리 짜기’가 될까 합니다.

    전 여전히 한미 FTA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당장 뭔가 손에 주어지는 확정적인 이득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 정도라고 보는 거죠. 물론 우리가 기회를 충분히 활용을 하지 못 한다면 오히려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또한 농업 분야나 의약, 서비스, 금융 쪽은 단기간에 확정적인 손해가 있을 테고.

    어차피 자신의 의식 속에 특정 집단에 대한 stereotype이 굳어진 분께 이런 글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피상적으로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내부의 진지한 의사소통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물론 제가 ‘노무현 지지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무현 지지자’들의 소굴(?)인 서프에서 Crete 란 필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는 아닐 겁니다. 그러니 이 정도 appeal 글을 쓸 자격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에 관해서는 서프 대문에 다음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한미 FTA 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
    (국가의 안보는 단순히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http://crete.pe.kr/154

    이 부분은 평소 제 소신이기도 한 내용입니다.. 그럼...

    • Periskop 홈지기 2008/06/25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괜한 말을 언급하여 긴 댓글 남기시게 한 것 같아 무안합니다. 제가 그 말을 쓴 것은 당연히 '노무현 지지자' 일반을 싸잡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각주에다가 저도 '소극적 노무현 지지자'라고 적시했습니다. Crete 님이 말씀하신대로 일반적인 지지자층 전체를 염두해뒀다면야 그건 제 스스로에 대고 욕하는 셈이겠죠. 거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한미FTA의 실행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말이 바뀌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염두해두고 쓴 것입니다.

      그리고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너무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봤지만, 돌이켜 보면 좋게 생각할 점도 많이 있다는게 이런 평가들의 요지 아니겠습니까? 노무현도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는 뉘앙스로 재밌게 쓴다는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좀 더 배려하여 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일화 2008/06/25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히 두 분의 댓글에 끼어드는 것이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두분의 글 모두 존경의 마음으로 즐겁게 읽고 있는 사람이라(Crete님의 글에는 덧글을 달기 힘들어서 못달고 있기는 합니다만...) 한 마디 하자면, Crete님께서 홈지기님의 글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신 것이 오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홈지기님께서 오해의 소지가 있게 쓰신 잘못이 있습니다만, 제3자인 제 입장에서 볼때, 홈지기님이 말씀하시는 노무현지지자들은 현재 광우병 파동 등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감정적인 지지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되고, Crete님처럼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하면서 의견을 수립해나가는 분들을 포함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3. 빛둥 2008/06/25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느 때처럼 홈지기님 글 잘 읽었습니다.

    단, 저는 열렬노빠인데도 노전대통령의 '한미FTA 추진'에 대해 별로 인지부조화는 겪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물론 다른 노빠분들은 어떨 지 모르지요.)

    노전대통령은 대우조선 노동자 파업에도 지원을 했었지만 동시에 대우자동차가 GM에 인수될 때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쪽이었고, 대선 직전에는 농업의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계란을 맞은 적도 있습니다. 특히 자유무역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돌을 맞아도 할 건 하는 정치인들이 김대중-노무현-유시민 이 라인들입니다.

    정치/사회적 민주화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이 둘이 무역 및 경제의 자유화와 같이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글쎄요. 서구의 역사는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보기도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지요.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에 대한 이런 오해?는 꽤 광범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그게 오해?라는 걸 여러번 해명했었답니다. 문제는 그 해명조차 계속 오해?하며 받아들이니...

    생각해보니, 미국 민주당도 비슷하군요. 오바마 후보의 말을 문제삼아 민주당이 집권하면 보호무역이 될 것이라고 뉴스에 말들이 많은데... 정작 유명한 NAFTA가 시행된 건 클린턴 행정부 때죠. 그 이후 각종 자유무역협정을 본격적으로 맺기 시작한 것도 클린턴 행정부 때이고요. 긴 역사로 봐서도 미국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세력들은 꾸준히 자유무역을 지지해왔죠. 보호무역주의자는 민주당의 소수였을 뿐이고요...

    각설하고, 최소한 제게 있어 1997년 선거와 2002년 선거에서 두 전 대통령을 찍은 이유에 '보호무역(예를 들어, 농업을 보호)'을 할 것이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정치/사회 개혁과 경제적 자유(자유무역 포함) 이 두 가지를 믿기 때문에 찍었고, 10년 간 물론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큰 인지부조화는 다행히 없었답니다.

    다시 한번 홈지기님의 여러 글 내용에는 감사드립니다. 재밌습니다. ^_^

    • 빛둥 2008/06/25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쓰는 동안(딴 짓을 하느라 오래 써서)...

      홈지기님이 비슷한 내용의 Crete님 댓글에 대한 답글을 다셨군요. 홈지기님의 뜻은 잘 이해되는군요. 제 글에 대한 답이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쓴 글을 지우는 건,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남겨 두겠습니다.

    • 일화 2008/06/25 15: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듣기로는 클린턴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상당한 당내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시글의 지적대로 그건 공화당이 할 법한 일이라는 식의 비판이었다고 하더군요. 미국 민주당내에서 보호무역주의자가 소수라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드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빛둥/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말씀하신 뜻은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좀 더 독자분들의 오해가 없도록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4. 漁夫 2008/06/25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어느 현대 작곡가가 'Nixon in Peking'인가 하는 오페라로까지 썼다고 하던데요 ^^

    저도 이번 광우병 논란을 보면서, 차라리 노 대통령이 마무리해 버렸으면 이런 정도의 문제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데 10000원 걸 의향이 있습니다. 어차피 욕 많이 먹었다면, 별 문제 없을 만할 일은 다 처리해 버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페라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네요. 제가 클래식이나 오페라 같은 쪽에는 워낙 문외한인지라……^^ 저도 쇠고기 수입 협상을 참여정부에서 끝냈으면 이런 일까지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랬다면 ABR이 훨씬 탄력을 받았을테니 폐해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그럼 아마 대운하를 두고 촛불시위가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여하튼 노통 덕(?)으로 대통령에 오른 MB가 요즘 온갖 삽질로 보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니 참 재미있습니다.

    • 漁夫 2008/06/27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거 뭐 '고양이의 보은'도 아니고... (MB의 이미지는 鼠公 아니3. 하하)

      어찌됐거나 MB 수령께서 '오른편으로 깜박이 넣고 좌회전'하는 센스를 발휘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Of course I'm afraid not. (sigh)

  5. sonnet 2008/06/25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인의 박람강기는 당할 수가 없습니다. ;-)
    제 생각에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혹은 반대로 "오른쪽쪽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이 국민적 저항을 줄이고 지지를 획득하기 유리하다는 현상은 현실정치에서 두 가지 함의를 갖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중도지향적인 개혁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론통합을 도모하는데 고유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
    둘째는 어떤 개혁정책이 필요하다고 간주했을 때, "누구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이 더 쉬울지에 대해 판단근거를 제공한다는 점.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博覽强記라니 별 말씀을.^^ 사실 이 "Nixon goes to China" 효과는 참여정부 때 신 국가비젼 수립하면서 설왕설래했었다고 합니다. 노통 귀에까지 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최근에는 MB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이 지향할 생산레짐 이야기가 또 달라지면서 안주거리로 등장하고 있지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핸들을 급히 꺾으려면 적당히 반대편을 끌어들이는 妙도 필요한 법인데, MB는 성격상 그런걸 꽤나 껄끄러워 했다고 합니다.

  6. 바보이반 2008/06/26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짱 무오류설의 신봉자로 신심이 지극한 분들은 당연히 FTA 추진에대한 인지 부조화를 겪지 않은게 당연합니다. 노짱이 하시는 일에 잘못이란 있을수 없으니까요. 그분들의 사고체계에서는 "노짱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노짱을 믿는자는 영원히 살고 노짱을 불신하는자는 수구 보수 한나라 당 무리들과 같이 무간지옥에서 영원히 타리라. 노렐루야 노렐루야 노멘" 이지요.

    솔직히 인지 부조화를 겪은 사람들은 이른바 비판적지지를 내세우며,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위해 어쩔수 없이 민노당 대신 노무현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사이비 노빠들이 아니겠습니까. 민노당은 민노당이고 노짱은 노짱이거늘, 예시당초 이미 존재하고 있던 인지부조화가 FTA를 계기로 표출된 것이라고 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한탄해야 할까요?^^ 저는 정치색이 흐릿한 사람이라 여기저기 표류하며 스스로 인지부조화를 종종 겪는다고 느낍니다.

  7. 바보이반 2008/06/26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TA가 노빠들의 신앙심의 순수성을 테스트 할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게 좀 아이러니 하지만 더 해괴망측한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죠. MB교도의 신앙의 순수성은 대운하로 테스트 할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도 듭니다. 순수 맹빠와 노짱이 싫고 정동영이 재수 없어서 찍은 사이비 맹빠를 가르는 기준으로 꽤 유용할듯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의미에서 극보수 개신교 목사 분들은 대박해를 상기시키는 설교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폭도들의 촛불에 맞아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대운하를 건설하시니……"라고 읊조릴 수도 있는 추 목사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8. 獨步 2008/06/26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노무현만큼 지금까지나 앞으로도 논란의 대상이 될 캐릭터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 2mb에 대해서는 이미 평가/정리가 완료되어 논란 자체가 없을 듯(냉소).

    흔히 공부를 잘하든지 착하든지... 에서 2mb는 이미 공부도 못하고 착하지도 못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노무현은 공부짱에 맘짱이다에서 2mb나 별 차이가 없다까지 평가의 스펙트럼이 참으로 넓은 듯 합니다 - 또한 특이한 점은 평가자마다 자신의 평가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랄까요?

    덧말 )

    개인적인 시련의 시기에 위로를 전해주신 홈지기님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홈지기님 직장과 제 거처도 가깝고 하니 식사 한 번 함께할 기회가 있었음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6/27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그래도 MB의 미래가 더 궁금합니다. 욕이야 계속 먹겠지만 과연 어디서 헤매다 멈출 지는 예측불허 아니겠습니까. 역사 속에서 선천적인 수면부족인 사람들은 반드시 끝까지 지켜봐야 하더군요.

      P.S. 그나저나 일은 무사히 잘 치루셨는지요. 아무쪼록 힘든 일 겪으셨는데 집안 두루 잘 추스르시기를 바랍니다.

    • 슈타인호프 2008/06/27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홈지기님의 "선천적 수면부족"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나폴레옹이 생각납니다. 나폴레옹도 하룻밤에 4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고 했었죠. 2MB의 워털루는 어디일까요(...)

  9. 쿤돌 2008/06/27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홈지기님의 글들은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잠시 짬을 내어 블로그 순례를 하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이 글을 읽어 보면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 랭킹에 대한 기사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6월호에 실렸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망의 1위를 차지한 작가는……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차지했다고 한다. 자그만치 6362개(!) 언어로 번역되어서.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참으로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갖가지 언어를 모두 통틀어도 7천여 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크리스티의 작품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언어로 다 번역이 되었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세상에 추리소설 팬이 이토록 많고도 많다니, 실로 놀랍기까지 하다. 역시 추리소설의 여왕님이 아닐 수 없다. God save the Queen!

그러나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이성의 회로를 가동하여 차분히 생각해보자. 이게 과연 가당한 일인가? 저 7천여 개 언어 중에는 언중(言衆)이 수백 명, 수십 명 이하인 집단도 많을 것이다. 그 정도 공동체에서 정상적인 출판활동을 할 수는 있는 것일까? 그 모든 공동체가 생활의 여유를 갖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준이 되어 '추리소설'을 기꺼이 번역할 수고를 감당했을까? 이건 한 번쯤 심각하게 의심하고 넘어 가야하는 정보이다.

그렇다, 사실 평소부터 뉴스를 꾸준히 스크랩해온 분이라면 저 기사가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다. 저 랭킹은 잊을라치면 등장하는 세계 최다 번역서 랭킹 기사의 연장선에 있다:

이런 기사들은 모두 유네스코에서 오랫 동안 집계해오고 있는 Index Translationum 프로젝트에 기반한 것이다. 이것은 1932년 이래 세계에서 번역서들만을 모아 색인화하고 있는 작업이다. 이곳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재미있는 여러 통계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이곳 DB에 가장 많이 등재된 작가순, 국가순, 모국어순, 번역어순으로 랭킹 Top 50 통계를 볼 수 있다.

National Geographic 6월호에서 인용한 랭킹은 이 중에 'Top 50: Authors' 항목이다. 이는 다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기사들에서 나왔다시피 원래 No. 1은 월트 디즈니 사(Disney Production)이다. 그러나 개인으로서는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가 6362회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여기서 아가사 크리스티가 어떤 항목으로 등재되어 있는지 좀 더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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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쿼리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처음 25개(분량상 그 중 10개만 표시)는 모두 독일어 번역판들만 열거되어 있다. 뒤로 가 봐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어판이 또 잔뜩, 에스파냐어판이 또 잔뜩, 이탈리아어판이 또 잔뜩…… 다시 말해 6516개 항목은 '번역언어의 개수'를 센 것이 아니라, '번역판본의 개수'를 센 것이다. 한 나라 언어로 100권이 번역되었다면 저기에는 100개가 카운트된 셈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굉장히 많은 책을 냈다는 것을 감안하면, 왜 지명도가 더 높은 셰익스피어에 비해 더 높은 랭킹에 올랐는 지를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사실 이 랭킹은 이런 약점 때문에 단순한 재미 이외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통계이기도 하다. 이런 점 말고도 Index Translationum DB가 75년이 넘는 장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이너 언어로 출간된 번역서가 다 집계되지 않는 등, 미진한 부분이 많이 있다는 점도 종종 지적된다.

어쨌거나 사실 이 글을 포스팅한 분이야 재미있는 내용 서로 즐겁게 공유하자는 좋은 의도에서 쓰셨을 것이다. 글 내용을 봐도 악의적인 낚시글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글판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보지 않아서 확언은 못 하겠지만, 잡지사 수준에서 번역을 잘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다만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받아들임에 있어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자는 뻔한 점이나마 살짝 환기시키고 싶어서이다. 편집적으로 매사 의심할 필요야 없겠지만, 자연스러운 논리 흐름 속에서 의문을 품어보고 이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가 특히 아쉬운 요즘이지도 않은가?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2008/06/24 17:10 2008/06/24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