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 100일도 채 안 되었건만 MB 리더십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현안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불신감만 심어주어 벌써 지지율이 20% 대로 곤두박질쳤다는 뉴스가 나오고, 시사잡지마다 실패의 원인 분석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홈지기는 취임 첫 100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두고두고 발목을 잡힌 또 한 명의 대통령을 떠올려본다 — 그는 바로 미국의 38대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이다.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것은 겨우 895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들 중에 가장 임기가 짧았다. 그러나 그의 임기는…… 리더십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중에는 그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할 것도 있다. 그는 취임 후 처음 몇 주일 동안, 특히 첫 100일 동안 대통령의 능력을 입증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 기간은 나머지 임기보다 훨씬 중요하다. 구태여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모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포드는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에도, 그는 바로 이 대목에서 실패했다.
— 이하 본 글의 모든 인용문은 아래 책(영어판 및 국역판)을 인용함.
Gergen, D. Eyewitness to Power: The Essence of Leadership Nixon to Clinton. (Simon & Schuster: 2001).
데이비드 거젠 지음. 서율택 옮김.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스테디북: 2002).
제럴드 포드는 아시다시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의 뒤를 이어 갑작스럽게 대통령 직에 올랐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에 민심을 수습하고 미국의 자존심을 일으켜세워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 국민들은 그의 소탈함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고,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이 기대도 잠시, 포드가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보인 몇 가지의 치명적인 실수는 집권 기간 내내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되고 말았다. 『Eyewitness to Power』에서 데이비드 거젠은 신임 대통령이 금기해야할 실수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배우가 성공을 하려면, 첫 신과 마지막 신에서 탁월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들 한다. 첫 신은 극의 전체 흐름 속에서 그의 캐릭터를 형성시켜주고,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에게 좋은 기억을 갖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의 리더십에서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
포드의 별은 일단 광채를 잃자, 자신의 빛으로 다시 대권을 얻을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취임 후 첫 100일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의 첫 신에 해당했다. 그리고 이 기간은 그가 백악관을 차지했던 나머지 기간 동안의 대중적인 평가를 좌우했다.
포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정권은 왜 그렇게도 빨리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을까? 다음에 다루게 될 이 세 가지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미래의 대권주자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금기의 전형이다.
첫 번째 실수. 결정을 실행하는 방법의 중요성 간과
포드에게 치명상을 입힌 첫 번째 사건은 바로 전임 대통령 닉슨의 사면 발표였다. 집권 30일 만인 1974년 9월 8일 일요일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이 사면조치는 충격 그 자체였다. 백악관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대통령 특별담화를 계획했고, 이는 최측근 보좌관 여섯 명만이 전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사면을 단행한 이 조치는 예상과 달리 국민의 엄청난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71%에 달하던 포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단 하룻밤 사이에 49%로 추락해버렸다.

정권을 어떻게 이양해야할 것인가?
사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언론은 닉슨과 포드의 비밀거래설에 대한 광범위한 의혹을 제기했다. 닉슨의 사면은 전임 비서실장 알렉산더 헤이그와 포드 사이의 밀약에 의해 계획된 수순이었다는 보도가 빗발치면서, 포드는 궁지에 몰렸다. 포드는 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양심에 따라 국익을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포드는 사실 비밀거래를 해봤자 이득볼 거리도 없던 상황이었고, 그의 설명도 나름대로는 충분히 합당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포드는 임기 내 씻을 수 없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리더십과 관련하여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포드가 변변치 못해서 사면권을 발동하는 잘못된 혹은 어리석은 결정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포드는 닉슨이 기소되어 자신의 범죄행위를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았다는 것이다. 혹은 아예 은전을 베풀지 않았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포드의 닉슨에 대한 사면은 도덕적 측면은 물론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국익에 부합되는 결정이었다…… 담화문 발표가 있던 날 아침 포드가 의회 지도자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설명했듯이, 사면조치는 이 같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일단 사면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서자, 포드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즉각적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에 대해 네티즌 다수의 의견은 "MB가 변변치 못해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잘못된 혹은 어리석은 결정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질타하고 있다. 홈지기도 최소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6월 정도까지 기싸움을 더 해보는게 옳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홈지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안 자체는 현실적으로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꼬여가고 있는 한-미 FTA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고도 본다. MB 또한 아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한다면, 이왕 부시 만나는 자리에서 화통하게 제시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다.
신임 대통령을 비틀거리게 만든 것은 결정 자체가 아니라,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이었다. 언론보좌관이었던 존 허센의 표현처럼, "마치 진주만 기습처럼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포드는 지도자로서의 처신에 대해서는 아직 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인지, 정서적으로도 가장 부담이 큰 조치를 발표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준비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는 언론과 국민들의 정서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물론 측근들에게조차도 사면에 대한 고려는 몇 달 후쯤의 일로 보였던 것이다……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보좌관들조차 무슨 내용인지 전혀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수백만의 미국 국민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던 그 일요일 아침 시간에 방송을 타고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이라는 것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도 때로는 정치 지도자가 갑작스러운 깜짝쇼를 통해 대중들의 지지를 호소해야할 때가 있다. 아이젠하워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한국행을 발표했던 것이 그랬고, 인간의 달 착륙에 대한 케네디의 호소, 닉슨의 중국 방문이 또한 그랬다. 그들도 모두 극적인 발표의 주역이었다. 모두 좋은 뉴스들이었고, 깜짝쇼라는 자체가 특별한 희열이었다. 그렇지만 포드의 발표는 전혀 범주가 달랐다. 백악관의 결정이 논란의 여지가 많다거나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가 현명한 대통령이라면 여러 주 또는 여러 달에 걸쳐 세심한 정지작업을 했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국민들도 그 결정을 받아들일 심리적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포드처럼 MB의 결정적인 실수는 국민들의 정서를 전혀 읽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이게 국민들의 쇠고기 구입 부담을 줄여줄 좋은 뉴스라고 생각했고, 깜짝쇼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영 딴판임이 드러나고 있다. MB가 현명했다면 협상 카드를 노출시키지 않더라도 다른 적절한 방법으로 시간을 들여 세심한 정지작업을 했어야 했다. MB와 청와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실행에 옮기는 방법에서 극도로 미숙함을 보였다.
이 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포드의 행동은 전적으로 명예라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사면조치가 공익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지도, 그 같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도 못함으로써, 포드의 조치는 오히려 위기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 같은 잘못은 악의보다는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포드 대통령은 이 문제로 인하여 워터게이트의 함정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 후로 2년 동안 그 늪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 실수. 잘못된 대중적 이미지의 구축
포드가 취임했을 때, 미국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미국 경제는 초유의 스테그플레이션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 통제를 통한 해법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는 악화일로였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집권한 포드에게는 유효한 정책 수단이 없었다. 스테그플레이션을 잡을만한 현실적인 대책이 궁했던 포드 행정부는 가히 시대착오적인 국민계몽운동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게 유명한 "
Whip Inflation Now (WIN)" 운동이었다. 경험이 부족했던 백악관은 저축을 장려하고, 소비습관을 개선하자는 고리타분한 대국민홍보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1974년 10월 15일, 생방송으로 방영된 영농후계자들에 대한 절약운동 장려 연설에서 포드는 이런 어이 없는 말까지 했다:
마음껏 먹고, 음식은 절대 남기지 마라. 어렸을 때 부모들은 늘 이런 간단하지만 명확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식탁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이것은 지금 상황에도 매우 잘 들어맞는 가르침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포드와 WIN 운동은 온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빨간 WIN 배지를 사람들은 거꾸로 차고 다니며 — "NIM"으로 보이게 된다 — "Nonstop Inflation Merry-go-round (멈추지 않는 인플레이션 회전목마)"라고 희화화했다.
이런 실수는 MB도 똑같이 벌이고 있다. 인수위의 온갖 삽질부터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조소까지 MB의 대중적 이미지는 철저히 구겨지고 있다. 조중동이 아직은 버텨주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그의 실수를 부각하는데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메가바이트가 밀리바이트, 마이크로바이트까지 내려가지 않았는가?
이는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한 가지 진리를 말해준다. 뉴딜 시대 이후 백악관 보좌관들은 일반적으로, 신임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본받아, 취임 후 첫 100일 내에 의회를 압도하고 홍수같은 법안을 제출하여 이 나라를 주문 속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대통령을 통해 보았듯이, 첫 100일의 중요성은 새로운 백악관이 얼마나 많은 법안을 통과시키고 얼마나 많은 겉치레를 만들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언론이나 국민이 대통령이 생각했던 업무 우선 순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일단 선서증언을 하고 나면, 국민과 언론은 그를 새롭게 평가한다. 대통령으로서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자신들의 미래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새롭게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 같은 평가는 오로지 대통령으로서 오른손을 들고 공식적으로 지도자로서 선서를 하고 난 후에나 가능할 수 있다. 국민들의 판단이 형성되는 것은 단 몇 주일 안의 기간 동안이고, 일단 형성이 되면 돌처럼 단단히 굳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인 것이다.
MB도 천부적인 워커홀릭이라서 자기 방식대로 초기에 미친듯이 일을 해서 한국을 도약기의 현대건설로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MB의 업무 방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MB가 YS의 '신경제 100일'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미숙함으로 점철되었다. 벌써 국민들의 MB에 대한 이미지는 꽤나 단단히 굳어져버린 듯 하다.
세 번째 실수. 전임자의 유산에 대한 과민반응과 권한 위임의 실패
포드와 그의 보좌진은 갖은 비난을 받고 물러난 닉슨에 대해 매우 예민했다. 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나쁘지 않으나, 이런 강박관념은 마땅히 계승해야할 만한 유산들까지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백악관 보좌진의 운용 방식이었다. 닉슨 시절에는 강력한 비서실장을 두고, 폭넓은 권한을 위임하였다. 포드는 이들이 결국 신권의 남용으로 닉슨을 워터게이트의 수렁에 빠뜨렸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포드는 백악관 조직을 축소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업무의 축이 되어, 12명에 이르는 수석보좌관들을 직접 챙기는 구조("축과 바큇살" 구조)로 재편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 포드 스스로가 직접 비서실장 노릇까지 했던 것이다.
포드도 인정했다시피 그것은 끔찍한 실패작이었다. 신임 대통령으로서, 특히 준비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우선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을 파악해야 했으므로, 세부 문제에 대한 검토나 보좌관들의 업무 조율 따위의 문제는 아예 손댈 꿈도 꾸지 못했다. 책임의 소재 또한 불분명해졌다. 그 결과 보좌관들은 서로 적당히 책임을 회피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감"에 따라 적당히 알아서 움직였다. 남는 것은 갈등과 혼란 뿐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강력한 실권을 가진 비서실장이 있었다면, 닉슨의 사면조치 따위도 훨씬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포드 취임 6개월 뒤에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사람이 바로 럼스펠드였다. 부시 행정부에서 망가진 럼스펠드와는 달리, 그 당시 그는 꽤나 촉망받는 유능한 행정가였다. 럼스펠드는 임명 당시부터 이 구조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비서실장에게 폭넓은 권한 위임을 요구했다. 포드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말 뿐이었다. 럼스펠드, 그리고 후임 체니 — 역시 오늘날 망가진 체니가 아니라 매우 유능한 비서실장이었다 — 까지 비서실장들은 어정쩡한 권한 위임 속에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도 한 때는 이렇게 젊었다오 (왼쪽부터 럼스펠드, 포드, 체니. 1975년 사진)
MB도 이런 명백한 실패의 길을 밟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싫다고 국정홍보처를 없애고, 책임총리제도 폐지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운하 구상하고 연설문 다듬어주던 교수를 들어 앉혔다. 한 마디로 권한 위임의 의지란 눈꼽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이래 가지고는 일이 될 리가 없다. 지금도 책임 회피로 인한 갈등과 혼란이 이토록 심각한데, 현 구조를 가지고 앞길이 순탄히 열릴 리도 만무하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앉아 있는 대통령 — 노통도 사실 이 문제에서 피해갈 수 없었지만 — 밑에서 갈등과 혼란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나는 포드의 백악관을 통해 리더십에 대한 두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활하게 운영되는 훈련된 조직의 중요성이었다. 이 점에서는 아이젠하워가 정확했다. 그 같은 조직이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조직이 없다는 사실은 대통령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포드는 그 점을 너무 늦게 배웠고…… 그 같은 접근 방법을 선택했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훗날 로저 포터가 지적했듯이, "축과 바큇살이라는 개념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개방성과 접근의 용이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포드가 개척하려고 했던 독창적인 통치 스타일의 핵심적인 개념이 바로 이것이었으며, 나아가 대통령이 직접 실무 집단을 통제해야 한다는 실무가적인 기질을 드러내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통령에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가 확실한 집안단속이다. 백악관은 문어발처럼 방대한 정치조직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채찍을 들고 업무집행을 감독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감독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얽히고 설킨 바깥 세상의 일만으로도 너무나 바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비서실장에게 완전한 권위를 부여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누가 비서실장이 되어야 하고, 비서실장은 어떤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부통령 지명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대통령이 전임자의 잘못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기가 쉽다는 점이다. 과거로부터 잘못을 배우고, 잘못을 교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상적인 업무 집행 자체를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지만 처음 몇 달 동안 포드의 임명을 받았던 사람들은 마치 적국 수도에 진주한 점령군처럼 닉슨이 세웠던 모든 것을, 모든 조직구조와 관행을 파괴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차별성 있는 대안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 포드의 주변 인물들이 닉슨의 해악적인 부분은 폐기한다 치더라도 그의 최고의 유산들은 계승한다는 전망을 갖고 있었으면, 집권 초기를 보다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으리라.
권한 위임도 실패하고 있고, 전임자의 공과 과를 냉정히 평가하여 바람직한 유산을 계승하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이런 MB에게 과연 임기 말까지 역전의 희망이 있을 것인가? 홈지기는 이미 90%는 끝장났다고 본다. 포드가 범했던 세 가지 실수, 그리고 지금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실수를 MB는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주 22일의 대국민 담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 더 큰 곤혹스러운 일들을 겪고 나서야 뒤늦게 그의 잘못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모든 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처음 100일의 족쇄에 매달려 힘겹게 5년을 끌고 갈 공산이 크다.
MB가 지금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인가
MB는 이처럼 포드가 저지른 임기 초반 대통령의 금기 사항들을 너무나 곧이 곧대로 답습해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그 역시 포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포드는 미숙한 상태에서 대통령 직에 오르고, 초반에 치명적인 실수를 했지만, 그에게는 뛰어난 품성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대통령에 올랐듯이 본질적으로 권력욕이 없었다. 포드는 승리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을 부담없이 대하면서도 독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겸손한 인물이었다. 처음 100일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에 포드는 재임 초에는 온갖 조롱을 받았고 재선에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실무에서의 공은 인정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 포드는 결코 위인의 반열에 들지 못했다. 그렇지만 때가 늦기는 했어도, 어쨌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 모든 실책에도 불구하고, 특히 1976년 선거에서 그를 패배하게 만들었던 첫 100일 동안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훌륭한 실무 대통령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이 남긴 상처를 치료했으며, 이 나라를 경기침체에서 구해냈고, 철의 장막에 균열을 냈으며, 지미 카터에게 다시 말끔히 정리된 지휘봉을 넘겼다.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로서 판단한다면, 포드는 시험을 통과했다……
난장판 속에서 그는 너무 정직한 경기를 했다. 이것이 그에 대한 가장 공정한 비판이다. 또한 그는 이 나라를 진창에서 완전히 끄집어내지 못했다. 정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원상대로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렇지만 개방성과 정직, 겸손의 미덕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이 가치들은 세로운 세기를 맞아 다소나마 정치라는 말이 다시 품위를 뜻하는 말이 될 수 있도록 희망의 불씨를 당겨 주었다.
물론 MB는 포드만큼의 끝을 맺기도 쉽지 않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수많은 부도덕성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력해야 한다. CEO 대통령이라는 모토로 이 자리에 올랐으면, 남은 진실성이나마 최대한 발휘하고 실수를 받아들여 주어진 실무 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지금의 세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롱의 바람이 언젠가 가라앉고, 역사는 포드에게 그랬듯이 MB에게 작은 미소나마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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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산업이 민간을 선도하는 또다른 사례가 되겠군요. 미국의 항공산업이나 원자력 산업이 전쟁중의 군사적 성과로 인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은 전부터 많이 생각을 했었지만 야마토가 일본의 조선산업 발전에 기술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은 별로 의식하지 못했었습니다. 역시 "패배한 무기"라는 선입견 때문일까요...
당시 일본의 중공업은 워낙 군수산업의 비중이 높아서 군의 수요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 무리는 아니지요. 저도 거기에 조선산업은 워낙 투자가 많았으니 뭔가 확실히 나은 점은 있으리라 막연하게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분게이슌쥬를 보고 자료를 뒤져보면서 색다른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1950년대 고도성장 가도로 다시 올라선 배경과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훨씬 재미있는 연결고리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현장적응력, 특히 팔로우 업을 강조하는 것이 미국의 최근 분위기인 듯 한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일본의 강점이 무엇인지가 눈에 들어오기는 하네요. 뭐 메이지 이후 전략적인 사고를 한 흔적이 별로 안 보이니, 전략이 약한 것은 태생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어쨋든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좋은 내용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도 일본 수준의 '모노즈쿠리'가 한국에서 구현되기는 힘들지 않나 합니다. 기존에는 재벌체제의 대규모 적시 자본투입에 따른 자본집약적 스피드 경영을 한국의 강점으로 봤는데, 미래에는 어떤 강점을 바탕으로 도약을 이뤄내야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슈타인호프님의 지적처럼 패전국의 무기라는 선입견 탓인지 야마토의 기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미국의 과학산업만 2차 세계대전의 덕을 본 것은 아니었던가...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 전쟁을 치룬 나라들의 기술산업사를 잘 들여다보면 다들 다양한 영향이 배여 있더군요. 일본은 그 가운데서도 전후 가장 극적인 도약을 이뤄낸데다, 역시 우리와는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인지라 특히 재밌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똑같은 패전국인데도 독일은 과대평가되고 일본은 평가절하된 것도 아이러니... 전시 미국의 자국 내 추축국계 주민들에 대한 대우 상에 있어서의 차별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골룸???
일본은 평가절하될만한 비합리성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오...정말 보고 싶습니다...ㅎㅎㅎ
야마토가 대단한건 18인치 주포라기 보다는, 18인치 주포를 65,000톤內의
배수량으로 장비했다는 점이죠...
상대적으로 통통한 함형이 되었지만 그리면서도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한
구형선수(불바스 바우 채용 등...)
홈지기 님이 말씀하신 납기내 준공도 사실 따져보면 대단한 일입니다.
영국에서는 분게이슌쥬를 보기 힘드시겠네요.^^ 일본은 잡지기사를 공짜로 올려놓는 그런 착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아니면 도촬본을 메일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후 일본의 산업에서 전쟁이 남긴 유산은
머 조금만 훝어봐도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여기에 미국에서 건너온 QC(Quality control) 개념도 일본의 전후 경제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봐야겠죠...데밍(Deming)상 이라는 것도
있을 정도니까요...^^;;
デミング賞이라, 오랜만에 듣네요. 품질관리에 집착하는 그 모습은 역시 일본답습니다.
항공 산업 엔지니어들이 대거 자동차 회사로 간 것도 있습니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에 항공 산업 육성이 금지당했으니까요. YS-11( 코드가 맞나요? 일본 민수 여객기인데 --;;) 개발이나 항공 산업, 우주 산업에대한 집념은 그래서 더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요새 혼다나 토요타도 비행기 만든다고 하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저 기사에 해군의 폭격기 '긴가(銀河)'를 설계하던 미키가 신칸센의 유선형 설계를, 제로센의 사고조사를 담당하던 마츠다이라가 신칸센의 진동방지 대책 마련을 담당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육군 항공기술연구소에서 제트엔진 개발에 참여했던 나카무라가 혼다 F1팀 차량제작을 총괄했다는 이야기 등도 실려 있지요.^^
제로센과 야마토는 그 동네에 있어서 '영원한 명제'이긴 합니다.
그 길에 있어서의 명저 '실패의 본질-일본군의 조직론적연구(失敗の本質-日本軍の組織論的研究)'에서도 그 둘을 따로 다루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 책에서는 도리어 그러한 일부 기술의 극단적 첨예화가 도리어 화를 키웠다고 정의하고 있죠. 첨단 하드웨어(무기)에 소프트웨어(인간)가 따라가지 못한 대표적 경우로 말입니다. 역시 평가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가 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정말 제로센과 야마토는 일본에서 출간된 대전 관련 서적에는 갖가지 이유로 뻔질나게 나오지요. 양자가 어떤 맥락으로 쓰이는지만 쫙 모아봐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시나노에 대한 얘길 다루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당시 일본 기술 역량의 상징으로는 야마토보다 수위라고 생각됩니다만.
시나노는 물론 어마어마한 장갑갑판을 만들려는 초유의 기술적 난관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급박하게 완공하려다 초래된 부실공사로 허망하게 격침당해서 일본에서도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분위기입니다. 저도 그러다 보니 시나노 관련 자료는 특별히 신경써서 모아보지 않았습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 외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거죠. 다음에 자료 주문할 때 괜찮은 내용을 건지거든 추가 언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