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iskop의 여러 글 가운데 독소전 초기 라세이냐이 전투에 대한 내용을 기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이다. 라세이냐이 전투에서 КВ 전차가 독일군 제6 기갑사단에게 안긴 가공할만한 충격은 그만큼 세계 곳곳의 2차 세계대전사 팬들의 단골 이야깃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지난 연말, 필자가 관리에 소홀한 동안에 이곳 블로그에 묘한 댓글이 하나 붙었음을 확인했다. 대부분 우연히 다른 사이트를 통해 들러주신 분들의 촌평이 올라오는 정도였는데, 웬 이상한 영어 댓글이 올라온 것일까?

Hi, I'm from RASEINIAI (Rossienie) :) - Arvydas

이미 Periskop Forum을 운영하면서 스팸 글에 잔뜩 홍역을 치룬터라 스팸 댓글이 아닌가 긴장하면서 누가 쓴 글인가 살펴봤다. 이상한 정육점 사이트가 뜨지 않을까 하는 불안(혹은 기대?)을 가지고 클릭한 링크…… 헉, 그곳은 생소한 리투아니아어로 범벅된, 그러나 뭔가 친숙한 그림이 공존하는 사이트였다. 이름하여 "Rytų frontas 1941-1945 (리투아니아 전선 1941-1945)." 아하, 이곳 운영자가 Raseiniai란 키워드로 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Periskop를 방문한 모양이었다.

다른 분들도 링크를 클릭해보시면 공감하실 것이다, 이 "Rytų frontas 1941-1945" 사이트 대문에 걸린 КВ-2 전차가 주는 범상치 않은 느낌을. КВ(KV) 전차 쇼크가 벌어진 현장이었던 리투아니아에서, 현지 전사 팬들이 만든 사이트라면 감히 서방에서는 상상치 못했을 흥미로운 정보가 실려 있으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리투아니아어로 쓰인 내용을 억지로 유추해가며 살펴보자니 역시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재밌는 정보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 발견한 페이지가 바로 Galerijos(갤러리) → Vienišo tanko KV pėdsakais — 대충 번역하면 '도상에 고립된 KV 전차' 정도? — 이다. 여기서 운영자 분(Arvydas)은 라세이냐이 전투와 КВ 전차의 외로운 항전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현장을 방문하여 60여 년 전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있다. 현지의 풍광 사진은 물론, 생존 주민들이 КВ 전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던 위치를 회고하는 사진 등이 아주 색다른 느낌을 주는 페이지라 할 수 있다. 필자가 10여 년 전에 노르망디 지역에서 전장 답사를 하던 기억이 오버랩되는 대목이었다 — 물론 당시 필자는 현지어(프랑스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버스 제대로 타는 것만으로도 허덕대고 있었지만.

더군다나 이 사이트의 다른 컨텐츠는 리투아니아어로 되어 있어 그림의 떡인데 반해, 이 페이지의 사진 설명들은 다행히도 러시아어가 병기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했다. 이에 방문객 여러분들도 잠시 음미해보시라는 의미에서 간략히 설명을 번역해봤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Vienišo tanko KV pėdsakais (도상에 고립된 KV 전차)

…… 내가 지나간 길은 소련군 제2 전차사단의 행군로와 거의 맞아 떨어졌다. 전에는 모르던 길이었지만 이 길을 따라 군사 문헌들에서나 보던 이름들을 볼 수 있었다.

보실리슈키스. 리투아니아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독일 지도들에도 잘 나와있다. 심지어 데이빗 M. 글란츠의 『The initial period of war in Eastern front』에도 실려있다. 하지만 그닥 놀랄 일도 아닌 것이, 격렬한 전차전의 에피소드가 벌어진 현장이기 때문이다.

두비싸(Dubysa) 강을 지나는 철교 중 하나. 때로 키바르텔류(Kybartėlių) 다리라고도 불린다. 이 교각은 폰 젝켄도르프 전투단에 의해 장악되었다. (서안에서 바라본 풍경)

또 다른 작은 마을이지만 독일 문헌에서 확인 가능하다. 여기에 독일 제6 기갑사단이 주둔했었다.

마침내 라세이냐이 목전에 도착하여 동료를 만났다.

여기가 이번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이다. 다이냐이(Dainiai) 마을 근처의 교차로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제 다이냐이는 지도 상에만 남아있다.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들판 뿐이다. 여기서 약간 더 북쪽에 바로 그 잘 알려진 전차(역주: 문제의 KV 전차)가 서 있었다.

실루바 쪽으로 더 가면 두비싸 강의 또 다른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라우스 전투단에 의해 탈취되었다. 이 전투단이 그 전차와 격투를 벌인 부대였다. (북안에서 바라본 풍경)

동료는 여기서 7㎞를 더 가서 리두베나이로 가보자고 했다. 유혹은 강렬했다. 언제나 이만큼 긴 철교를 볼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한 가치는 있다.

안내판에 나와 있듯이 다리의 길이는 699m에 이른다. 이사예프의 책 『수보로프 반박』(역주: 독소전의 소련 선제침공설을 주장한 문제작들을 쏟아낸 망명객 수보로프(필명)에 대해 논박한 책)에는 이 다리의 길이가 300m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리 길이도 길이지만 그 높이에 놀랐다. (역주: 대통령부터 목사들까지 수 백 ㎞ 운하 그까짓거쯤이야!하는 토건국가 한국 국민의 눈에는 뭐가 놀라운지 사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라세이냐이 전차 사건을 언급할 때면 꼭 3개의 다리가 등장한다. 키바르텔류 다리, 실루바로 가는 도상의 다리, 리두베나이 철교이다. 리두베나이에서 4번째의 다리를 발견하고는 또 놀랬다. 리두베나이에는 다리가 2개였다.

이 근처에 사는 노인을 한 분 모셔왔다. 1925년 생인 이 노인은 친절하게도 그 전차가 서 있던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가 그 전차가 있던 자리라고 노인장이 내 동료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에 그들(역주: 전사한 KV 전차 승무원들)이 묻혔다. 노인장은 시신을 이장(역주: 전후 소련군이 시신을 이장한 것으로 보임)하는 것도 지나치면서 봤었다고 했다. 이는 여기에 유골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도로 반대편은 숲이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추억을 위한 사진만이 남을뿐.

라세이냐이에서 내 동료는 KV 전차 근처에 서 있던 집을 보여줬다. 이제 거기에는 경찰서가 있다. 그 옆의 집 하나도 더 보인다.

닮은게 보이는가? 비교해보시라.

여기서 설명하는 다리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헷갈리신다면 필자가 그전에 올린 바 있는 아래 지도를 다시 확인하시기 바란다. 이 기행문 저자가 첫 번째로 보여준 두비싸 강 교량 사진은 아래 지도 우측 하단에 있는, 즉 소련군 제2 전차사단이 진격해오던 방향의 교량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보여준 두비싸 강 교량 사진이 가운데에 있는, 즉 라우스 전투단이 위치한 곳의 교량이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철교(+작은 도로교)가 왼쪽 상단에 있는 철교이다.

라세이냐이 전투 전황도

특히 마지막 철교는 구글 어스에도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 링크되어 있다. 보고 싶은 분은 여기(→ LYDUVENU TILTAS)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나저나 역시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사진 속에서 맞닥뜨리는 묘한 대비는 역시 재밌다. 예전에야 After the Battle 사의 Then and Now 시리즈에서나 이런걸 느끼고는 했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 리투아니아 촌구석 풍경까지 앉아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른 분들도 역사의 현장에 다녀오신다면 많은 사진 담아오셔서 인터넷에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풀어 주셨으면 한다.

P.S. 오늘 소개한 이 "Rytų frontas 1941-1945" 사이트의 컨텐츠도 파 보면 재밌는 내용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 리투아니아어 해독이 가능하신 독자 여러분들 있으시면 필자에게 도움을 주시기 바란다.

2008/02/29 21:00 2008/02/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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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9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재밌네요

  2. 길 잃은 어린양 2008/03/01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여행 중에서도 사적 답사가 주는 매력은 최고입니다.

    저는 이번에 잠깐 시간을 내서 만헤이와 그랑므닐 쪽을 다녀왔는데 지형이 글에서 읽은것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3/01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윤시원 님의 최근 유럽기행은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1997년에 브뤼셀에 갈 때, 2004년에 룩셈부르크에 갈 때 정도 밖에는 아르덴느 일대를 다녀보지 못했군요.

  3. 슈타인호프 2008/03/02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역시....현지 거주 매니아라 파고드는 정도가 다르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매니아라도 저 정도로 하기 힘들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3/02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의 블로고스피어에는 단연 번동아제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번동아제 님 등은 열의로 보나 성과로 보나 외국 매니아에 뒤쳐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업무+자료수집/정리에 바쁘신 관계로 자료를 그만큼 인터넷에 공개하지 못하고 계시는게 아쉬울 따름이죠.

  4. 양성민 2008/03/15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심하게 오랜만에 글이 올라왔네요. 심하게 반갑습니다.

  5. 토목 2008/03/16 0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승병님의 홈페지를 영양가 있게 잘 봅니다.

    발트3국 사람들은 놀라는 것도 당연할 지도... 산이 거의 없는 평야국가라고 하네여. 하지만 한국은 산악국가, 장주로 해석되는 수십미터 짜리 교각이 수두룩하죠.

    토목기술상 가장 어려운 것은 해저터널입니다. 영-불터널은 연약지반, 일본의 경우는 아예 지진에 견디어 내는 해저터널 구조물이죠.

    영-불터널에 비하면 운하는 그까짓 것 쯤이야 할만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3/17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긴 말씀을 듣고 보니 유명한 이야기가 생각 나는군요. 역시 평탄하기로 소문난 덴마크에서 덴마크 사람이 노르웨이(스웨덴이었나?) 사람에게 "저 산을 보십시오, 얼마나 높습니까!"라고 했는데 노르웨이 사람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저런건 우리나라에선 구덩이라고 부릅니다"라고 했다지요. (덴마크는 최고 높은 곳이래야 해발 200미터도 안됨.) 다들 각자 환경에 맞춰 눈높이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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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kop 방문객 한 분에게서 메일로 질문이 들어왔다. 사실 이런 질문 처리하려고 Periskop Forum을 만들었지만 숱한 스팸게시물 공격과 필자의 관리부실로 요즘 빈사상태이니 그냥 여기 블로그에서 처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질문의 내용인즉슨 아래와 같다:

왜 요즘들어 일반참모(general staff)를 자꾸 '장군참모(將軍參謀)'라고 번역하나요?

당장 게으른 한국인의 지식곳간(?)인 네이버에서 'general staff'를 검색해보면 백과사전 항목에 '일반참모(general staff)'라고 나온다. 또한 한국군의 공식 군사용어를 수록했다 할 수 있는 합참 홈페이지의 군사용어해설 부분에는 이러한 정의들이 있다:

참모(參謀, Staff)
지휘관의 지휘권 행사를 보좌하기 위하여 임명되었거나 파견된 장교들이며, 참모는 지휘관이 부대지휘의 막중한 책임과 불확실한 전장상황에서도 지휘관의 의지를 자유롭게 실현하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좌함. 이를 위하여 참모는 항시 지휘관의 의도를 명찰하고 하의상달을 도모하며, 상·하 의지를 일치시켜 임무를 완성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여야 함.

일반참모(一般參謀, General Staff)
부여받은 업무분야에 대한 지휘관의 주무참모로서, 각 일반참모는 부대의 활동을 계획, 조정, 통제 및 감독함으로써 지휘관을 보좌함은 물론 참모 상호간에 업무의 유기적인 협조를 통하여 지휘관을 보좌하며, 또한 부대가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통합함.

특별참모(特別參謀, Special Staff)
한 사령부에서 근무하며 일반(조정) 참모단이나 개인 참모단에 포함되지 않는 참모. 특별참모요원은 특수한 기술 전문가와 병과의 선임장교 등이 포함됨. 예를 들면 병참장교, 방공장교, 수송장교 등임.

주구장창 배워온 영어의 지식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참모의 업무범위에 따라 '일반(general)'과 '특별(special)'로 대별되는 구분도 그리 어색해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장군참모'라는 번역이 등장한 것일까?

필자가 '장군참모'란 번역을 처음 보고 동의하게 된 계기는,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류제승 장군의 책 중 하나를 보고난 뒤로 기억한다. 류제승 장군은 육사(35기)에서의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독일에 유학을 다녀오신 분인데, 이 분이 책 어느 대목에서인가 각주로 '장군참모'가 원래 올바른 번역인데 국내에는 '일반참모'로 잘못 알려졌다는 언급을 하신 바 있다. 필자도 그 전까지는 당연히 '일반참모'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대목을 보고서 '아하!'하고 무릎을 쳤다.

근대적 참모부 체계를 정립한 원조가 누가 뭐래도 샤른호르스트 이래의 근대 프로이센군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용어 또한 독일어의 'Generalstab'에서 출발하여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나간 것임이 분명하다 — 실제로 미국 육군이 General Staff 조직을 도입한 것은 1903년, 영국 육군은 1906년의 일이다. 결국 독일어 'Generalstab'을 직역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어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독일어의 'General'에는 영어의 general과 같은 '일반적'이라는 뜻이 없다. 독일어의 'General'은 오직 '장군(또는 우두머리)'의 뜻 밖에 없다. (일반적이라는 뜻의 독일어는 allgemein 정도에 해당된다.) 독일어에서 직역을 하면 '일반참모'라는 말이 나올 여지 자체가 없는 것으며, 이는 원래 '장군(사령관)'을 보좌하는 참모조직을 의미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 간단한 사실을 잊어먹고 있다가 저 각주를 보고 상기한 셈이었다.

결국 한국에서는 이러한 독일어의 원래 표현과 의미를 무시하고, 영미권의 번역어를 차용하다보니 중의성의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영어 단어 general이 가지는 중의성('일반적'과 '장군')은 순전히 프랑스어의 général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어에서는 형용사로 쓰일 때('일반적인')와 명사로 쓰일 때('장군')의 구분이 엄격하므로 의미의 혼동을 줄 이유가 없다 — 프랑스어는 매우 명쾌하다. 또한 프랑스군에서는 프로이센군에 한 발 앞서 나폴레옹 시대에 반(半)근대적 참모부를 도입한 전례가 있어 독일어의 Generalstab을 차용해 쓰지 않고, 고유의 état-major라는 표현을 쓴다. 반면 잡탕 언어인 영어에서는 형용사로 쓰일 때나 명사로 쓰일 때나 이들 의미가 모두 뒤섞여 있어 머리를 갸웃하게 만드는게 당연하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 그나마 영어에서 중역된게 아니라 다시 한 쿠션을 먹고 일본어에서 중역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전후 맥락을 모르는 누군가가 이를 덜컥 '일반참모'로 쓰기 시작했고, 이게 고착되었다 볼 수 있다.

물론 용어라는게 원어가 어떻게 되었건 나름의 의미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한국군의 용례가 꼭 틀리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지금 '일반'의 의미로 쓰이고 있으면 받아들이는게 뭐가 문제겠는가. 다만, 독일군 군제와 조직을 논할 때는 절대 '일반참모' 또는 '일반참모부'라는 번역이 성립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앞으로 독일군에 대해 언급할 때는 Generalstab을 꼭 '장군참모'(또는 조직 경우 참모본부)라고 쓰시기를 바란다.

P.S. 지인 분들의 블로그 순례 중에 ssn688님도 비슷한 의문을 표명하신걸 발견하고 트랙백을 추가. [2008-03-02 20:10]

2008/02/28 12:30 2008/02/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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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민혁 2008/02/28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학적인 지식 없이 그냥 막연하게 장군참모라는 번역이 독일군 참모본부에 한해서는 확실히 맞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대충은 알겠네요. -ㅅ-;

  2. ssn688 2008/03/05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의 잊어먹기 직전에 들러보고 눈이 뜨였습니다;;; Henry公께서 추천하신 육사 화랑대연구소의 "독일군 장군참모 제도"에서도 번역문제를 논한 서문을 보았습니다만... 독어, 불어, 영어에서의 general이라는 어학적인 맥락에서 설명해주시니 훨씬 더 명료합니다. *_*

    • Periskop 홈지기 2008/03/05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독일군 장군참모 제도"는 제가 본 적이 없는데, 거기서는 뭐라고 번역문제를 논하던가요? 시간 나실 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비밀방문자 2008/03/19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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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이 예정된 수많은 2차대전사 신간들 가운데도 눈길을 잡아채는 것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가끔 생각날 때마다 이들을 조금씩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노파심이지만 물론 여기서 소개할 책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의해 선정한 것임을 상기시켜드리고 싶다. 대부분 정식 결과물을 아직 보지 못한 상황에서 기초 정보들로만 추론한 막연한 소개일 뿐이므로, 독자 여러분은 이를 저작의 가치와 직결시켜 받아들이지는 마시기 바란다.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Band 10/1 u. 10/2

DRZW Band 10/2
DRZW Band 10/1
개인적으로 단연 주목되는 저작은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는 독일군의 2차 세계대전 준(準)공간사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의 완결판(!)인 제10권이다. 출판사인 DVA의 소개 페이지에는 출간일이 2008년 4월로 예고되고 있으니 지난 해 8권의 전례를 보았을 때 5월 경에 입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정말 끝을 내려는지 막대한 분량의 10/1, 10/2 두 권을 한꺼번에 내는 분위기이다. 10권의 총 제목은 「Der Zusammenbruch des Deutschen Reiches 1945(독일의 붕괴 1945)」이고, 각 권의 부제는 10/1이 「Die militärische Niederwerfung der Wehrmacht(독일국방군의 군사적 패배)」(1024페이지), 10/2가 「Die Folgen des Zweiten Weltkrieges(2차 세계대전의 결과)」(768페이지)이다. 과감하게 분책해가며 군사적 패배 부분에도 1000페이지 이상을 할애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8권을 봤을 때는 마지막 10권 몫으로 남은 부분이 얼마 되지 않아 소홀히 다루고 지나가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자세한 내용은 5월을 기대해보도록 하자.

THE KORSUN POCKET: The Encirclement and Breakout of a German Army in the East, 1944

The Korsun Pocket
이 책이 기대되는 바는 단 하나, 저자들 때문이다. 단번에 느낌이 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공저자인 체터링(N. Zetterling)과 프랑크손(A. Frankson)은 여기서도 소개한 바 있는 『Kursk 1943: A Statistical Analysis』의 저자들이다. 이들의 또 다른 유명한 저작으로는 Periskop Forum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는 『Normandy 1944』가 있다. 두 권 모두 적어도 독일측 자료에 대해서만큼은 세심한 분석을 기울인 역작으로 소문이 나 있는 만큼, 이번 신작에도 기대가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로는 기존 두 저작처럼 원사료 분석에 근거한 통계적 접근이 중점이 될 것인지, 보다 일반적인 전투사를 서술할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미 이 체르카시 포위전(또는 코르순-셰프첸코프스키 작전)에 대해서는 내쉬(D. E. Nash)의 역작 『Hell's Gate』를 비롯한 몇몇 저작들이 소개되어 있는 만큼, 마저 남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조금 늦어 올 8월에 출간될 예정이므로 좀 더 여유를 갖고 기다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The Rise of the Wehrmacht: The German Armed Forces and World War II

The Rise of Wehrmacht
이 책은 사실 앞의 두 권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기대(?)가 되는 책이다. 앞의 두 권에 대해서는 정말로 내용이 탁월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기대가 크다면, 이 미첨(Samuel W. Mitcham)의 책은 반신반의 정도의 중립적 기대 뿐이다. 이 저자 미첨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다분히 다작 스타일로, 독일의 프란츠 쿠로프스키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2차대전사 관련 책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다 보니 다작의 폐해인지 논지의 근거가 철저하지 못하고, 시각 자체가 필자의 그것과 어긋나는 부분도 많아서 별 그리 선호하지 않는 저자 중 한 명이다.

다만 관심이 가는 것은, 이 책이 커버하려는 내용의 범위가 사뭇 넓다는 것이다. Greenwood 출판사의 해당 책 정보 페이지에서 예정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2권 짜리로 예정 분량이 1000페이지에 이른다. 독일군의 재무장부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이르기까지, 즉 독일군의 상승기 10년의 통사를 정리하겠다는 나름 야심찬 기획이다. 과연 미첨이 이만한 분량의 기획을 매끈히 소화하고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런지? 올해 5~6월에 두고 볼 일이다.

2008/02/27 21:00 2008/02/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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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텐보로 2008/02/28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들어와봤는데 글이 올라와있군요!!
    신혼이시라 블로그 업데이트를 앞으로도 한참동안 못하실줄 알았습니다.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2. dasleich 2008/02/28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다 천하의 채승병님이 사모님앞에 고양이 앞에 X꼴이 되었다 말입니까? 그런 위험을 덜기 위해서라도, 빨리 2세를 가지시고, 몸무거운 사모님 주무실동안 본연의 취미(?)를 즐기시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천하의 공처가이신 승병님 생각해보면, 사모님 2세 가지면 온갖 수발을 다 드실듯하여 그조차 좋은 방법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곧 3월에 모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3. 길 잃은 어린양 2008/02/28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 저나 유로가 계속 상승세라 짜증이 나려 합니다. 저는 당분간 영어권 책만 살까 고민중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8/02/29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그래도 이게 시작에 불과할 것 같군요. 앞으로 3년 정도는 경제가 힘들 터이니 가정을 위해서 지름신을 타파하고 지출에 신중을 기해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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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아 오래간만에 세바스토폴 전투(Störfang 작전) 관련 문헌 가운데 그 동안 채 읽지 못한 것들을 뒤적여봤다. 최근 입수한 오스프리 출판사 Campaign 시리즈의 신간 『Sevastopol 1942』와 W. Tieke의 『Kampf um die Krim 1941-1944』의 대조 작업이 주였다.

그 가운데 유명한 「막심 고리끼 I」 해안포좌 공략 내용을 보다보니 또 다시 독일의 80㎝ 열차포 「Schwerer Gustav("Dora")」와 관련된 내용을 맞닥뜨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포 자체의 활약이 아니라 그늘에 숨겨진 기관차의 존재에 대해서였다. 『Kampf um die Krim 1941-1944』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Interessant ist auch, daß im Jahre 1972 eine der für das "Dora"-Projekt entwickelten achtachsigen Doppelloks von 2000 PS auf einem süddeutschen Eisenbahnschrottplatz verschrottet wurde und die letzte der Dieselloks der "Dora" noch bis 1973 bei der Deutschen Bundesbahn im Einsatz war.

또 흥미로운 것은, "도라"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된 2000마력 짜리 8축 복식기관차 중 하나가 남독일 철도폐기창에서 해체된게 1972년이고, "도라"의 마지막 디젤기관차가 독일철도청(DB)에서 1973년까지 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번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던 1350톤 짜리 80㎝ 열차포는 종전과 함께 고철로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이 열차포를 움직이기 위해 힘쓴 기관차는 살아남아 평화시에도 제 몫을 한 셈이다.

내친 김에 이 기관차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다행히도 유럽(과 일본 등)에는 수많은 철도 매니아들이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이 기관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기관차의 정체는 크룹(Krupp) 사가 제작한 디젤전기기관차였다 — 독일군은 차량을 인수한 뒤에 D311이라는 제식명을 붙였다.

흔히 보는 "도라"의 사진 속에는 거대한 열차포의 위압적인 전면만 나오고, 이 열차포가 곡선화된 복선 레일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뒤에는 쌍둥이 디젤전동식 기관차 — 디젤엔진을 돌려 발전한 전기로 모터를 구동 — 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 기관차는 MAN 사의 940마력 6기통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196kW 짜리 직류모터 4개를 구동하는 방식이었다. 통상적인 증기기관차는 너무 요란하기도 하고, 조준을 위해 세밀하게 열차포를 앞뒤로 움직이는데 적당하지 않아서 —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도라"는 선회포탑이 없기 때문에 곡선레일을 앞뒤로 이동해가며 좌우 사각을 조정했다 — 이 특제 디젤전기기관차가 필요했다.

이 "도라"를 위한 디젤전기기관차는 1941년 10월에 완성되어 D311.01a/b 및 D311.02a/b으로 독일국방군에 인계되어 세바스토폴로 향했다. 하지만 독일은 가솔린, 디젤 등의 유류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었기에 명색이 "기관차"였어도 증기기관차에 견인되어 전선으로 이송되었고, 현지에서만 엔진을 돌렸다. 이후 1942년에는 "Schwerer Gustav 2"를 위한 기관차 2대가 더 생산되었으며, 추가로 1943년에 기관차 2대가 생산되었으나 에센 폭격 당시에 망가져서 취역하진 못했다고 한다.

Dora 뒤에서 운용 중인 D311 기관차

세바스토폴 전투 중 바크치사라이 역 부근에서 "도라" 열차포를 움직이고 있는 D311 디젤전기기관차

그러나 아시다시피 "도라"도 세바스토폴 전투 이후에는 별달리 전선에 투입될 일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 4대의 기관차는 모두 다른 열차포(특히 K5) 운용에 투입되어, 흑해 연안과 영불해협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대는 전쟁 중에 손실되었고, 3대가 살아남았다. "Dora"를 끌던 1대(D311.02a/b)와 "Schwerer Gustav 2"를 위해 만들어진 2대 중 1대(D311.03a/b)는 독일 땅에서 종전을 맞았으며, "Schwerer Gustav 2"를 위한 나머지 1대(D311.04a/b)는 네덜란드에서 노획되어 쓰이다 1949년에 독일이 다시 사들였다. 실제로 현역에서 운용된 것은 뒤의 2대로, 이때 DB에서 V188로 제식명이 변경되었다. 세바스토폴 전투에 참가했던 D311.02a/b는 다른 두 기관차의 예비부품 확보를 위해 1951년에 해체되었다. 결국 『Kampf um die Krim 1941-1944』에서 언급하고 있는, 1970년대까지 살아남은 바로 그 기관차들은 엄밀한 의미로 "도라"를 움직이던 차량은 아니었던 셈이다 — 물론 그 부품이 이식되었으니 명을 같이 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이 D311(V188) 기관차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가는 분들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P.S. 다른 글에 감상평을 쓰겠지만 『Sevastopol 1942』는 복잡한 1,2차 세바스토폴 포위전을 나름 정확하게 요약한 괜찮은 책으로 보인다.

2008/02/24 15:00 2008/02/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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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rca 2008/02/24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랜만의 업데이트 군요...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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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분들에게만 은근슬쩍 알리고 결혼한 지도 어느새 어제(18일)로 100일이 되었습니다. 솔로부대로 장기간 복무하다 혼자 적전이탈하여 많은 동호인 동지 여러분들께 송구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만, 때가 때이니 만큼 순리대로 살아야죠.^^ 다시 한 번 작년 11월 11일에 삼엄한 경비를 뚫고 결혼식에 와서 축하해주신 방문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제 결혼식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 뉴스보기 클릭]

아무튼 작년 7월 이후에는 결혼이라는 거사를 결행하기로 한 뒤에 정신 없이 바빴습니다. 직장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밑천 장만해놓은 것이 부족하다보니 당장 돈 벌고 튀기고 직장 일 하고 살림 마련하는데 힘을 쏟아야겠더군요. 처음에는 Periskop 운영을 포함해서 이것저것 골고루 해가면서 결혼 준비하지~라는 나이브한 생각은 산산조각! 매사튼튼 철저하신 마눌님의 영도 하에 一家 건설의 현장은 천리행군처럼 돌아갔습니다. 그러니 한참이나 블로깅도 손을 놓고 일단 설 자리를 닦는데 진력하는 수밖에요.

그렇게 결혼한 지 100일을 달려오니 집안도 좀 안정화되고 결혼 생활도 조금씩 궤도에 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다시 녹슨 사이트에 조금씩 기름칠하고 짬짬이 글을 올려야겠습니다. 뭐 저희 회사가 속한 기업집단이 한창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관계로 전반적으로 엄체호에 낮은 포복 모드로 있다는게 변수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봄은 오겠지요.^^

2008/02/19 22:30 2008/02/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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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린아 2008/02/20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이제서야 인사말을 남기시다니요^^;; 너무하세요^^;;

    집들이는 언제 하나요? ^^ ㅋㅋㅋㅋ

  2. 길 잃은 어린양 2008/02/21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옷. 벌써 100일이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3. 아이아스 2008/02/21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심으로 결혼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사세요^^

    예전에 무척 신세 끼치던 사람이
    이런 말씀드리니까 무척 쑥쑤럽네요^^

  4. dasleich 2008/02/24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리 2세를 가지세요..^^. 요즘같이 출산율 낮은 시대에 승병님과 사모님같은 천재부부는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아서, 미래 대한민국의 인재로 키워야 합니다. 최소한 넷은 낳으셔야 합니다.
    결혼 100일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오는 4월 11일 결혼 10주년이네요.^^

    • Periskop 홈지기 2008/02/28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허억... 마눌님이 너무 바쁘셔서 2세는 아직 조금 먼 이야기입니다. 권 선생님은 두 따님이 무럭무럭 커가시는 가운데 10주년을 맞으니 기쁨 두 배이시겠군요.

  5. 우마왕 2008/02/28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드디어 부활하셨군요. 3월은 되야 다시 하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유부족의 삶은 어떠십니까?

  6. shrike 2008/03/02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하셨었군요! 간만에 왔는데 100일을 넘기셨다니...
    나중에 모임 있을때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다들 어떻게 살고계시는지 궁금하네요. ^^

  7. 양성민 2008/03/15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렇게 글이 안 올라오나 했더니, 결혼하셨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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