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iskop의 여러 글 가운데 독소전 초기 라세이냐이 전투에 대한 내용을 기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이다. 라세이냐이 전투에서 КВ 전차가 독일군 제6 기갑사단에게 안긴 가공할만한 충격은 그만큼 세계 곳곳의 2차 세계대전사 팬들의 단골 이야깃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지난 연말, 필자가 관리에 소홀한 동안에 이곳 블로그에 묘한 댓글이 하나 붙었음을 확인했다. 대부분 우연히 다른 사이트를 통해 들러주신 분들의 촌평이 올라오는 정도였는데, 웬 이상한 영어 댓글이 올라온 것일까?
Hi, I'm from RASEINIAI (Rossienie) :) - Arvydas
이미 Periskop Forum을 운영하면서 스팸 글에 잔뜩 홍역을 치룬터라 스팸 댓글이 아닌가 긴장하면서 누가 쓴 글인가 살펴봤다. 이상한 정육점 사이트가 뜨지 않을까 하는 불안(혹은 기대?)을 가지고 클릭한 링크…… 헉, 그곳은 생소한 리투아니아어로 범벅된, 그러나 뭔가 친숙한 그림이 공존하는 사이트였다. 이름하여 "Rytų frontas 1941-1945 (리투아니아 전선 1941-1945)." 아하, 이곳 운영자가 Raseiniai란 키워드로 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Periskop를 방문한 모양이었다.
다른 분들도 링크를 클릭해보시면 공감하실 것이다, 이 "Rytų frontas 1941-1945" 사이트 대문에 걸린 КВ-2 전차가 주는 범상치 않은 느낌을. КВ(KV) 전차 쇼크가 벌어진 현장이었던 리투아니아에서, 현지 전사 팬들이 만든 사이트라면 감히 서방에서는 상상치 못했을 흥미로운 정보가 실려 있으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리투아니아어로 쓰인 내용을 억지로 유추해가며 살펴보자니 역시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재밌는 정보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러다 발견한 페이지가 바로 Galerijos(갤러리) → Vienišo tanko KV pėdsakais — 대충 번역하면 '도상에 고립된 KV 전차' 정도? — 이다. 여기서 운영자 분(Arvydas)은 라세이냐이 전투와 КВ 전차의 외로운 항전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현장을 방문하여 60여 년 전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있다. 현지의 풍광 사진은 물론, 생존 주민들이 КВ 전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던 위치를 회고하는 사진 등이 아주 색다른 느낌을 주는 페이지라 할 수 있다. 필자가 10여 년 전에 노르망디 지역에서 전장 답사를 하던 기억이 오버랩되는 대목이었다 — 물론 당시 필자는 현지어(프랑스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버스 제대로 타는 것만으로도 허덕대고 있었지만.
더군다나 이 사이트의 다른 컨텐츠는 리투아니아어로 되어 있어 그림의 떡인데 반해, 이 페이지의 사진 설명들은 다행히도 러시아어가 병기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했다. 이에 방문객 여러분들도 잠시 음미해보시라는 의미에서 간략히 설명을 번역해봤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Vienišo tanko KV pėdsakais (도상에 고립된 KV 전차)
…… 내가 지나간 길은 소련군 제2 전차사단의 행군로와 거의 맞아 떨어졌다. 전에는 모르던 길이었지만 이 길을 따라 군사 문헌들에서나 보던 이름들을 볼 수 있었다.
보실리슈키스. 리투아니아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독일 지도들에도 잘 나와있다. 심지어 데이빗 M. 글란츠의 『The initial period of war in Eastern front』에도 실려있다. 하지만 그닥 놀랄 일도 아닌 것이, 격렬한 전차전의 에피소드가 벌어진 현장이기 때문이다.
두비싸(Dubysa) 강을 지나는 철교 중 하나. 때로 키바르텔류(Kybartėlių) 다리라고도 불린다. 이 교각은 폰 젝켄도르프 전투단에 의해 장악되었다. (서안에서 바라본 풍경)
또 다른 작은 마을이지만 독일 문헌에서 확인 가능하다. 여기에 독일 제6 기갑사단이 주둔했었다.
마침내 라세이냐이 목전에 도착하여 동료를 만났다.
여기가 이번 여행의 목적지 중 하나이다. 다이냐이(Dainiai) 마을 근처의 교차로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제 다이냐이는 지도 상에만 남아있다.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들판 뿐이다. 여기서 약간 더 북쪽에 바로 그 잘 알려진 전차(역주: 문제의 KV 전차)가 서 있었다.
실루바 쪽으로 더 가면 두비싸 강의 또 다른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라우스 전투단에 의해 탈취되었다. 이 전투단이 그 전차와 격투를 벌인 부대였다. (북안에서 바라본 풍경)
동료는 여기서 7㎞를 더 가서 리두베나이로 가보자고 했다. 유혹은 강렬했다. 언제나 이만큼 긴 철교를 볼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한 가치는 있다.
안내판에 나와 있듯이 다리의 길이는 699m에 이른다. 이사예프의 책 『수보로프 반박』(역주: 독소전의 소련 선제침공설을 주장한 문제작들을 쏟아낸 망명객 수보로프(필명)에 대해 논박한 책)에는 이 다리의 길이가 300m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리 길이도 길이지만 그 높이에 놀랐다. (역주: 대통령부터 목사들까지 수 백 ㎞ 운하 그까짓거쯤이야!하는 토건국가 한국 국민의 눈에는 뭐가 놀라운지 사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라세이냐이 전차 사건을 언급할 때면 꼭 3개의 다리가 등장한다. 키바르텔류 다리, 실루바로 가는 도상의 다리, 리두베나이 철교이다. 리두베나이에서 4번째의 다리를 발견하고는 또 놀랬다. 리두베나이에는 다리가 2개였다.
이 근처에 사는 노인을 한 분 모셔왔다. 1925년 생인 이 노인은 친절하게도 그 전차가 서 있던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기가 그 전차가 있던 자리라고 노인장이 내 동료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에 그들(역주: 전사한 KV 전차 승무원들)이 묻혔다. 노인장은 시신을 이장(역주: 전후 소련군이 시신을 이장한 것으로 보임)하는 것도 지나치면서 봤었다고 했다. 이는 여기에 유골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도로 반대편은 숲이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추억을 위한 사진만이 남을뿐.
라세이냐이에서 내 동료는 KV 전차 근처에 서 있던 집을 보여줬다. 이제 거기에는 경찰서가 있다. 그 옆의 집 하나도 더 보인다.
닮은게 보이는가? 비교해보시라.

여기서 설명하는 다리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헷갈리신다면 필자가 그전에 올린 바 있는 아래 지도를 다시 확인하시기 바란다. 이 기행문 저자가 첫 번째로 보여준 두비싸 강 교량 사진은 아래 지도 우측 하단에 있는, 즉 소련군 제2 전차사단이 진격해오던 방향의 교량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보여준 두비싸 강 교량 사진이 가운데에 있는, 즉 라우스 전투단이 위치한 곳의 교량이다. 마지막으로 보여준 철교(+작은 도로교)가 왼쪽 상단에 있는 철교이다.

특히 마지막 철교는 구글 어스에도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 링크되어 있다. 보고 싶은 분은 여기(→ LYDUVENU TILTAS)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나저나 역시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사진 속에서 맞닥뜨리는 묘한 대비는 역시 재밌다. 예전에야 After the Battle 사의 Then and Now 시리즈에서나 이런걸 느끼고는 했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 리투아니아 촌구석 풍경까지 앉아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른 분들도 역사의 현장에 다녀오신다면 많은 사진 담아오셔서 인터넷에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풀어 주셨으면 한다.
P.S. 오늘 소개한 이 "Rytų frontas 1941-1945" 사이트의 컨텐츠도 파 보면 재밌는 내용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 리투아니아어 해독이 가능하신 독자 여러분들 있으시면 필자에게 도움을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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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재밌네요
재밌다니 다행입니다.^^
역시 여행 중에서도 사적 답사가 주는 매력은 최고입니다.
저는 이번에 잠깐 시간을 내서 만헤이와 그랑므닐 쪽을 다녀왔는데 지형이 글에서 읽은것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윤시원 님의 최근 유럽기행은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1997년에 브뤼셀에 갈 때, 2004년에 룩셈부르크에 갈 때 정도 밖에는 아르덴느 일대를 다녀보지 못했군요.
역시역시....현지 거주 매니아라 파고드는 정도가 다르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매니아라도 저 정도로 하기 힘들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한국의 블로고스피어에는 단연 번동아제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번동아제 님 등은 열의로 보나 성과로 보나 외국 매니아에 뒤쳐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업무+자료수집/정리에 바쁘신 관계로 자료를 그만큼 인터넷에 공개하지 못하고 계시는게 아쉬울 따름이죠.
심하게 오랜만에 글이 올라왔네요. 심하게 반갑습니다.
심하게 오랜만……이 석궁 화살처럼 가슴에 꽂히네요. -_-;
채승병님의 홈페지를 영양가 있게 잘 봅니다.
발트3국 사람들은 놀라는 것도 당연할 지도... 산이 거의 없는 평야국가라고 하네여. 하지만 한국은 산악국가, 장주로 해석되는 수십미터 짜리 교각이 수두룩하죠.
토목기술상 가장 어려운 것은 해저터널입니다. 영-불터널은 연약지반, 일본의 경우는 아예 지진에 견디어 내는 해저터널 구조물이죠.
영-불터널에 비하면 운하는 그까짓 것 쯤이야 할만 합니다.
하긴 말씀을 듣고 보니 유명한 이야기가 생각 나는군요. 역시 평탄하기로 소문난 덴마크에서 덴마크 사람이 노르웨이(스웨덴이었나?) 사람에게 "저 산을 보십시오, 얼마나 높습니까!"라고 했는데 노르웨이 사람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저런건 우리나라에선 구덩이라고 부릅니다"라고 했다지요. (덴마크는 최고 높은 곳이래야 해발 200미터도 안됨.) 다들 각자 환경에 맞춰 눈높이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