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여기서 저자 스티븐 뉴튼 교수는 제48 기갑군단, 좀 더 특정하면 주공을 맡은 GD 사단이 원활한 초기 돌파에 실패한 이유를 다각도로 들고 있다. 특히 지나친 작전 보안 유지에 집착하다가 전방 고지군 확보가 늦어지고 준비 포격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점, 처음 실전에 투입된 판터 부대의 잘못된 운용 책임 등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LXVIII Panzerkorps

1943년 7월 5일 체르카스코예 부근의 전투 (출처: Замулин, Валерий Н. Курский излом: Решающая битва Отечественной войны. Москва: Яуза, Эксмо, 2007.)

제48 기갑군단의 공격 작전 계획

폰 크노벨스도르프 장군이 담당한 구역에서는 GD 사단의 제67 근위 소총사단의 방어 전선을 돌파하려는 노력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공격을 개시하는 준비 포격에는 GD 사단의 사단포병과 3개 대대의 군단포병 뿐만이 아니라, 제3 기갑사단과 제11 기갑사단의 포병연대가 증원되어 105-210㎜ 구경의 야포 총 100-125문이 불과 3㎞의 폭의 적 참호선을 향해 불을 뿜을 예정이었다. 게다가 GD 사단의 인상적인 124대의 전차 및 돌격포(14대의 티거 포함) 뿐만이 아니라, 폰 크노벨스도르프는 판터 204대 전체를 증원했다. GD 사단은 또한 표준적인 기갑사단과 같은 4개 보병대대가 아닌, 6개 보병대대를 갖고 있었으며 성공에 필요한 모든 제대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은 사실을 현혹시키는 것이었다: 제48 기갑군단의 전력 집결은 몇 가지 심각한 결점을 가리고 있었다(모두 치명적일 수 있었다).

GD 사단의 준비 포격은 제122 포병지휘부(Arko 122)와 제70 특임 포병연대 사령부(Artl.Rgt.Stab zbV 70)에 의해 계획되고 조율되었으며, 이는 처음부터 육감에 의존한 즉흥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소련군 방어선 바로 앞에 늘어선 언덕들은 7월 4일의 예비공격 때까지는 장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GD 포병연대의 칼 알브레히트 중령은 나중에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책임있는 보병 또는 포병 지휘관 어느 누구도 적 진지를 정말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약점을 보상하려는 다급한 시도로 포병들은 공군의 항공정찰사진을 요구했으나, 이것들은 "매우 깔끔했으나, 불행히도 꽤나 높은 고도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참호선이 미로처럼 뻗어있다. 근데 도대체 어느게 진짜고 어느게 가짜란 말인가?" 포대가 사거리 측정사격을 시작하고 최종 수정사격을 날릴 때까지 아무도 포격이 정확한 지점에 떨어지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포격의 정확도에 대해 신경쓸 시간도 없었다. 7월 5일의 준비 포격은 순전히 대규모 곡예였다. 제167 보병사단이 확보하고 있던 사격위치는 공격이 진행됨에 따라 유효한 지원을 하기에는 너무나 후방에 놓여 있었다. 결과적으로 외곽 언덕들이 장악된 뒤인 7월 4일 오후와 저녁에야 100문이 넘는 야포들이 전방의 새로운 사격위치로 이동해야했다. 이동 일정도 매우 빡빡했고 (수정사격이 03시00분에 시작되어야 했으나, 집단군 사령부의 어떤 회의론자는 이미 포격 계획서의 여백에 큰 물음표들을 써놓았었다), 소련군은 이미 이 지역 상당 부분에 지뢰를 매설해놨고, 대포병사격을 위해 좌표를 설정해놨다. 03시00분 전에, GD 포병연대 예하의 한 대대장 차량이 지뢰를 밟아 박살났으며, 다른 대대의 작전장교는 파편에 머리 부상을 당했고, 지뢰 폭발로 적어도 1명의 대대장이 사망했다. 너무나 많은 통신차량들을 잃어버려 연대 통신장교들은 준비 포격 개시 얼마 전에야 전화망을 간신히 가설할 수 있었다.

사거리 측정사격과 최종 수정사격은 03시00분과 04시30분 사이에 완료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피할 수 없는 일정이었겠으나, 결정적으로 불행한 선택이 되었다. 이전까지 정적이던 전선에 대한 이런 치밀한 공격에서는 통상적으로 사거리 측정이 수 일에서 수 주에 걸쳐 이뤄지면서 포병의 집중 타격점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쿠르스크에서 독일군은 주 공격이 개시되기 바로 전날에 언덕들을 점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단 공격 담당구역 전문을 발령했기 때문에, 보병이 진격하기 직전에 퍼붓는 수정사격이 적에게 주공점을 정확히 찍어주는 꼴이 되었다. 굳이 전술적 천재가 아니어도 제67 근위 소총사단장 바크소프 소장이나 그의 상급자들 모두 03시30분 무렵에는 GD 사단이 제196 근위 소총연대를 쓸어버리려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는 제245 전차연대와 제27 대전차여단이 그토록 빨리 예비진지를 떠나 전방으로 이동할 수 있던 이유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탄약 문제가 있었다. 알브레히트 중령의 야포들은 불과 15-20분간 집중사격을 할 수 있는 분량의 탄약밖에 없었다. "지속적인 포격을 해댈 수도 없고, 실제 포격은 그만큼 쏘면 끝날 것이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고 재삼재사 강조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제3 기갑사단과 제11 기갑사단의 사단포병들은 포격 직후 각자 사단 구역으로 다시 이동해야 했고, 군단포병의 3개 포병대대 일부도 이들을 따라 재배치되어야 했다는 점이다. 초기 포병사격의 광풍이 소련군 방어진에 구멍을 내지 못하거나, 전차-보병 공격의 타이밍이 잘못될 경우, GD 사단의 자체 사단포병만으로는 전투 향배에 결정타를 날릴 만한 충분한 전력이 되지 못했다.

공격을 위한 지휘권 조정도 마찬가지로 문제 투성이였다. GD 사단의 2개 보병연대는 수발총병연대(Füsilier-Rgt. GD)가 좌익에, 척탄병연대(Grenadier-Rgt. GD)가 우익에 서서 병진할 예정이었다. 희안하게도 두 공격 모두 각 연대의 3대대가 선봉에 섰다. 불행하게도 GD 수발총병연대 3대대의 원래 지휘관은 7월 4일의 예비 공격에서 한쪽 다리를 잃어 선임 중대장이 대대장직을 승계해야 했다. 이는 3㎞ 정면의 공격에서 수발총병연대의 공격이 주공점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심각한 문제였다. GD 기갑연대의 1개 대대와 판터 2개 대대 모두가 수발총병연대의 공격 지원에 투입되었고, 따라서 가장 심각한 지휘권 문제도 여기 있었다.

제51 및 52 전차대대의 판터는 제39 기갑연대(마인라트 폰 라우헤어트 소령 지휘) 및 제10 기갑여단(칼 데커 대령 지휘)에 배속되어 있었다. 히아진트 폰 슈트라흐비츠 백작 대령이 GD 기갑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제39 기갑연대 지휘부와 제51 전차대대는 7월 1일에 독일로부터 열차편으로 도착했다. 제52 전차대대는 7월 3일에야 도착했다. 데커 대령의 지휘부 대부분은 전투 개시 때까지도 도착하지 못했다. 승무원이나 지휘관들이나 소수만이 베테랑들이었고, 소련에서의 전투 경험도 한참 부족했다. 판터의 잘 알려진 기술적 결함 외에도, 판터 부대들은 대대급 전술훈련은 물론 심지어 전술 무선통신망 훈련조차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데커는 폰 슈트라흐비츠를 지휘했다. GD 사단의 "전차 사자(Panzer-Löwe, 폰 슈트라흐비츠의 별명)"는 이미 육군의 가장 우수한 기갑 전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음에도 연공서열에 밀려 폰 슈트라흐비츠가 데커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결과적인 실책들의 희극은 악명 높은 판터의 초기 결함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승무원들의 미숙함과 지휘관의 어리석음에 기인한 것이었다. 전투 종합 보고서에서 한 관찰자는 2개 판터 대대들이 데커나 폰 라우헤어트가 상황 명령을 발령하지 않았음에도 공격을 위해 이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중대들은 공격 계획에 대해 철저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런 공격 목표, 대형, 방향을 적시한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혼란이 연출되었다." 어둠 속에서 서툴게 집결지에서 나오는 바람에, 판터들은 처음부터 소련군 대전차포와 대전차총 소대들이 포진하고 있던 지뢰원으로 무모하게 돌입했다. 소대급 이상의 전술훈련과 효과적인 무전 교신훈련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 전차들은 곤경에서 빠져 나오려다 첫 손실들을 겪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데커 대령은 그의 여단을 희망없는 수렁으로 계속 밀어 붙였고, 여기서 전투공병들은 통로를 개척하기 위해 긴요한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판터가 선봉에 선데다가 좁은 구역에 너무 빽빽이 들어차는 바람에, 폰 슈트라흐비츠가 이끄는 GD 사단의 4호전차 대대는 이들을 우회해나갈 수 없었다. 따라서 GD 수발총병연대 3대대는 포격이 시작될 때 전차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두 강박 — 사단이 짧은 준비 포격만 제공해줄 수 있다는 사실과, 전차 지원을 당장 받을 수 없다는 사실 — 에 시달리고, 유선이건 무선이건 연대본부와 교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대장은 주저했다. 그는 결국 준비 포격이 끝나고 몇 분 뒤에야 3개 공격 중대들을 투입했다. 이것은 그가 내릴 수 있던 최악의 결정이었다. 소련군은 포격이 지나간 뒤에 사격 위치로 복귀할 결정적인 시간을 벌었고, 독일군은 전차 지원을 여전히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 독일 공군 지원이 거의 전혀 없는 상황에서 — 소련군의 전폭기들이 상공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작전 개시 2시간도 안 되어 소련군 방어선에 상처 하나 주지 못한 채 1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폰 슈트라흐비츠 대령은 격노했고, 우익에서 보다 성공적으로 진행되던 GD 척탄병연대 3대대 공격 지원을 위해 기갑전력 다수를 전환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오자 화는 더욱 치밀었다. 데커의 신출내기 두 판터 대대들은 미련하게 움직여서 적절한 위치를 잡거나 소련군 방어진 외곽의 대전차 참호선을 건너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후속 보병대대들의 투입까지 방해해서 이를 적어도 1시간이나 지연시켰다. 더 이상 이런 웃기는 광경을 참지 못한 폰 슈트라흐비츠는 스스로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다. 데커가 후일 항의했듯이, "그(폰 슈트라흐비츠)는 무전을 받지도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폰 슈트라흐비츠는 지휘계선을 따라 항의를 계속하여, 7월 6일 오후에 폰 크노벨스도르프는 개인적으로 데커를 4일 동안 지휘선상에서 떼어놓게 되었고, 판터들은 완전히 GD 사단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초기 공격 단계란 측면에서 심대한 손상이 이미 발생한 뒤였다.

이에 비해 GD 척탄병연대 3대대의 공격은 교과서의 모범 사례처럼 성공적으로 전개되었다. GD 사단의 돌격포대대와 티거 중대, 신예 페르디난트 자주포 1개 중대(역주: 페르디난트는 GD 사단과 작전한 사례가 없으므로 저자의 오류이다)가 모두 적시에 도착하여, 보병대대는 전진하는 탄막을 바짝 쫓아 나아갈 수 있었다. 폰 슈트라흐비츠의 GD 기갑연대 2대대는 예정 투입 구역이 차량으로 들어차 정체되는걸 방지하기 위해 한참 뒤에 머물러 있었으나, 방어망 외곽이 돌파되자 체르카스코예 공격 지원에 나설 수 있었다. 이는 서측 공격 지구에 너무 많은 전차들을 투입한 실책을 두드러져 보이게 할 뿐이었다. 이로 인해 프숄 강에 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 자체가 비현실적이 되었다.

이러한 연이은 실책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으며, 이를 피하려면 어떤 조치가 이뤄져야 했을까? 작전 예비대도 확보하지 않은 채 전 전선에서 공세를 취한 결정이나, 제10 기갑여단 전체를 1개 사단 구역에 투입한 결정은 호트의 책임이다. 7월 3일까지도 하우저는 판터들을 제48 기갑군단과 제2 SS 기갑군단에 나눠 배치해달라고 호트를 설득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통념보다도 더 "순수한 전차" 열성 팬인) 기갑군 사령관은 소련군 방어선을 전속으로 돌파해나가는 판터들의 물결을 완고하게 꿈꾸고 있었다. 일단 호트가 이러한 배치를 결정한 다음에는, 폰 만슈타인의 직접 개입만이 이를 재고시킬 수 있었으나 이나마 두 가지 이유에서 어려웠다. 호트는 이미 대국적 작전 계획의 방향을 바꿔놓을 정도로 집단군 사령관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폰 만슈타인도 주관이 뚜렷한 이런 하급자의 의견 앞에서 그의 주장을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 더욱 나쁜 사실은, (구데리안의 동조로) 히틀러도 판터가 대규모 집단으로 투입되는 것을 보길 바랬기에, 폰 만슈타인이 이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려 했다면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었다.

공격 사단들이 주공이 개시되기 한참 전에 전방의 고지들을 장악해놓는 것을 허가해주지 않은 완전히 몰상식한 결정은 히틀러와 육군 총사령부(OKH)의 책임이다. 폰 만슈타인이건 호트건 이 명령을 시정할 능력이 없었다. 사실 그들이 명령 변경 요청을 상신하려는 시도를 해봤는지 확인할 증거도 부족하다. 이런 난관 속에서 군단의 포병부대들이 떠안아야 했던 핸디캡을 생각해보면, 그나마 짧게라도 정확히 제 시간에 포격을 전개한 기적에 가까운 업적은 포병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겪었던 탄약 부족은 이미 악화되고 있던 독일군의 보급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GD 수발총병연대 3대대 담당 구역에서의 공격을 비대하게 조직한 문제는 GD 사단장이던 발터 회른라인 중장과 작전참모였던 올트비히 폰 나츠머 대령에게 책임이 있다. 회른라인은 사단 내에서 신망을 받던 인물이지만, 그의 전술적 기술은 헤르만 발크보다는 제프 디트리히와 닮았다. 하나의 예화를 들어보자: 회른라인은 7월 5일 아침이 되어서도 사단의 탄약 부족 상황의 정도에 대해 알지 못했다. 폰 나츠머 대령은 대전 전반에 걸쳐 뛰어난 전술 및 작전 능력을 선보였지만, 성채 작전 준비 기간 동안에는 이상하게도 전체 계획 과정에서 배제된 것인양 보인다. 일례로 6월의 연이은 도상연습에서 지뢰원과 습지대로 제한된 그토록 좁은 정면에 250대의 전차를 집중시킨다는 계획에 대해 그가 하나의 의문이라도 제기했다는 기록이 없다. 게다가 전투가 개시되기 전까지 회른라인과 폰 나츠머 누구도 사단의 베테랑 기갑 지휘관(폰 슈트라흐비츠)이 신편 부대의 잘 알지 못하는 지휘관(데커)의 지휘를 받는다는 현명치 못한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단 지휘부는 상급 사령부로부터의 명확한 제약에 의해 방해받았어도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다. 호트가 전 판터 여단을 GD 사단 구역에 배치시켰다 하더라도, 판터 여단이 꼭 실제 일어난 것처럼 투입되었을 필요는 없었다. 제3 및 제11 기갑사단이나 3개 SS 기갑척탄병사단 지휘관들 전부가 그러했듯이, 회른라인과 폰 나츠머도 기갑부대의 공격 참여를 전술적으로 효과적인 수로 제한하고, 나머지 병력을 전과확대 단계에 투입할 예비대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한 폰 슈트라흐비츠에게 전투에 돌입하는 전차 1제파의 통제권을 주는 방식으로 지휘 문제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다.

제48 기갑군단의 주공점 공격에서의 결점들에 대한 이 긴 고려에서 핵심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는 점은 — 이런 모든 잘못된 점들을 감수하면서도 — GD 사단은 소련군 1선 방어선을 돌파하고, 제11 기갑사단과 협력하여 체르카스코예를 장악했다는 점이다. 이날로 제67 근위 소총사단은 전투부대로서의 능력을 상실했다. 글랜츠(David M. Glantz)와 하우스(Jonathan House)는 그들의 저서에서 야음이 내린 뒤에 "비참한 잔존병력들"과 "지친 병사들"이 "북동쪽으로 퇴각하여 페나(Пена) 강을 따라 형성된 제90 근위 소총사단 전선에서 잠시간의 안전을 찾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체르카스코예 전면의 소련군은 격렬하게 싸웠고 특정 상황에서는 독일군에게 막대한 사상자를 강요했다. 그럼에도 GD 사단은 소련군의 방어가 강해서라기 보다는 독일군 스스로의 실책 때문에 7월 5일 일찍 예정된 돌파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결론을 뒤집기는 어렵다.

(⇒ 「제2 SS 기갑군단의 공격 작전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이 글은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음에도 몇 가지 점은 유의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저자는 판터 부대의 운용 책임에 있어 제10 기갑여단장 칼 데커 대령의 무능함(?)을 꽤나 강조하며, GD 기갑연대장 폰 슈트라흐비츠 대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편견과는 달리 칼 데커 대령도 제2 기갑사단의 제3 기갑연대장으로 프랑스전역과 바바롯사 작전에 참가하는 등 풍부한 기갑부대 지휘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며, 그의 기갑부대 지휘에 대한 식견이 폰 슈트라흐비츠에 비해 못하다고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는 데커 대령 개인의 능력 문제라기 보다는,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여단 지휘부의 도착이 너무 늦어져서 충분히 지휘통제 준비를 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상황의 문제가 컸다. 다만 판터 운용에 있어 폰 슈트라흐비츠가 판터의 특성에 대한 무지와 텃세 때문에 데커를 과잉 견제하고 실책을 연발했다는 일부 세간의 인식도 분명 잘못된 것임도 알 수 있다.

2007/06/28 03:13 2007/06/28 03:1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양성민 2007/06/29 0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10기갑여단 밑에 제39기갑연대가 있고, 그 밑에 제51, 52전차대대가 있다는 말씀이신데 그러면 연대가 필요없지 않습니까??

    • 윤민혁 2007/06/30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10기갑여단은 39기갑연대와 GD사단 기갑연대를 통합지휘하는 중간지휘부였다고 기억합니다. 아래 글에서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는 「1943년 7월 제48장갑군단, 제10전차여단, 라우헤르트 연대」에서도 그렇게 나오는군요. 10기갑여단이 원칙적으로 GD사단의 지휘를 받는 부대인지, 아니면 GD사단의 기갑연대가 사단에서 떨어져나와 10기갑여단에 배속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쪽은 잘 모르니...;

  2. 양성민 2007/06/3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민혁님, 오랜만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글을 제대로 안 읽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아이언사이드>는 언제나 쓰실 생각이십니까?? 열심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3. necrosant 2007/08/13 0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민혁// 10기갑여단은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에 배속된 부대입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최근에 독일, 러시아로부터 쿠르스크 전투 관련한 유익한 자료들을 추가로 입수하고 있다는 글을 소개한 바 있다. (참고→ 『Курский излом』, 『Прохоровка』, DRZW Bd.8 「Die Ostfront 1943/44」) 쿠르스크 전투는 사실 필자도 한참이나 관심을 끄고 있던 주제였는데, 새로운 자료들을 읽다보니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짚어보고픈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 틈틈이 이 역사적인 전투에 대해 인식을 달리할만한 글들을 소개해보는 기회를 가져볼까 한다 — 물론 이러다 필자의 본업이 언제 어떻게 바빠질지 모르니 독촉은 정중히 사양……

사실 쿠르스크 전투는 독소전의 가장 유명한 3대 전투로 손꼽히면서도, 오늘날의 시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남부축선(벨고로드-오보얀-쿠르스크)에서 독일군의 공세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이다.

통상적으로 소련군 제1 전차군과 제5 근위전차군 등의 소련군 기갑예비가 막대한 피해를 무릅쓰고 독일군 기갑부대에게 출혈을 강요한 것을 이유로 꼽는데, 독일군도 이미 작전이 입안될 때부터 후위에서 대규모 소련군의 예비대와 충돌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몇 가지 면의 이점으로부터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당시가 독소전쟁 중 야전에 배치된 소련과 독일 전차의 기술 격차가 가장 큰 시기였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이 주력으로 운용한 T-34/76과 T-70에 비해 독일의 티거와 판터는 기술적인 안정화가 덜 되었음을 감안해도 월등한 성능을 자랑했다. 실제 프로호롭카 전투와 같은 대규모 전략예비대와의 격돌에서는 독일군이 압도적인 전술적 승리를 거둔 사실들에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준비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이 기대만큼의 진격을 하지 못한 이유는, 전투 초기에 소련군의 전면 방어선을 돌파하는 단계에서 지나치게 큰 피해를 입으면서 지체한데 기인한 바 크다. 특히 판터를 집중운용한 제48 기갑군단과 공세의 우익을 엄호해야할 제3 기갑군단의 초기 작전 실패는 작전 시간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래 소개할 스티븐 뉴튼(Steven H. Newton)의 글에서는 바로 이 실패 원인이 소련군의 강력한 방어망보다도 독일 남부집단군 및 제4 기갑군의 잘못된 전술적 고려와 초기 돌파 계획 수립에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남부집단군의 심각한 문제였던 보병전력의 부족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임기응변이 어떤 잘못된 결과를 낳았는지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포럼에 Wenck 님이 쓰셨던 스티븐 뉴튼 씨의 글이 수록된 원저 『Kursk: The German View』의 소개글, 「1943년 7월 제48장갑군단, 제10전차여단, 라우헤르트 연대」 글을 숙독하고 넘어가기를 강력히 권장한다.

Chapter 14. Army Group South's Initial Assault: Analysis and Critique

— Newton, Steven H. Kursk: The German View. Cambridge, MA: Da Capo Press, 2002. 381-406.

1943년 7월 5일, 제4 기갑군과 켐프 분견군이 진격을 개시했을 때, 독일측 입안자들은 단시간 내에 소련군의 처음 두 방어선을 분쇄하는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 낙관했다. 천둥같은 예비 포격이 방어측을 약화시킬 것이었다. 전투공병들은 지뢰원 사이로 공격로를 개척하고, 이어 보병들은 3호 돌격포와 티거의 지원을 받으며 좁은 구획을 따라 공격할 것이었다. 일단 전선이 뚫리면 중형(medium) 전차들을 중심으로 보병장갑차량(SPW)에 탑승한 보병들과 함께 편성된 전과확대 집단들이 러시아군 후방으로 진격해들어갈 준비를 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단들은 첫날 최종 목표로부터 45㎞ 가량 떨어진 프숄(Псёл) 강 교량들을 배정받았다. 작전 개시의 연이은 지연과 잘 준비된 소련군의 병력과 장비 집결 상태에도 불구하고, 1939-1942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러한 예상들은 그리 무리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날(7월 5일)이 에리히 폰 만슈타인(남부집단군 사령관), 헤르만 호트(제4 기갑군 사령관) 또는 베르너 켐프(켐프 분견군 사령관)이 예상했던 것과 아주 다르게 흘러갔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공격 연대들을 지휘하는 대령들로부터 남부집단군 사령부에 이르기까지 각급 지휘소들을 따라 스며든 충격을 잘 포착해내지 못한다. 제48 기갑군단이 달성한 가장 깊은 돌파라고는 군단 좌익에서 제3 기갑군단이 5㎞ 진격한 것이었다; 대독일(Großdeutschland, 이하 GD) 사단의 주공은 병력 및 장비 양면의 심각한 손실에 쩔쩔매며 정지했다. 늦은 오후에 제11 기갑사단이 체르카스코예(Черкасское) 근방에서 조공을 펼치고서야 대독일 사단은 초기 전술 목표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이런 성과에 실망한 제4 기갑군의 전투일지는 대독일 사단이 초기 돌파를 이뤄내는데 필요했던 3시간과, 이후 체르카스코예로 진격해 나가는데 필요했던 10시간에 대해 길게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 체르카스코예는 원래 09시00분 이전에 장악할 예정이었다. 하우저의 제2 SS 기갑군단은 좀 더 잘 나아가서, 아돌프 히틀러 경호대(Leibstandarte SS Adolf Hitler, 이하 LSSAH) 사단은 소련군의 제1 방어선을 관통해 20㎞를 전진하여 제2 방어선 앞에서 멈춰섰다. 좌익에 선 제국(Das Reich, 이하 DR) 사단과 해골(Totenkopf, 이하 TK) 사단은 그다지 인상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당한 돌파를 이뤄냈다. LSSAH 사단은 602명의 병력과 30대의 전차를 잃어 쿠르스크 전투 13일 간 전체 손실의 25% 가까이를 잃었다. DR 사단은 290명을 잃어 쿠르스크 전투에서의 사단 일간 손실로는 최대치를 기록했다. 먼 우측익에서는 켐프 분견군의 제3 기갑군단이 불균등한 전과를 거뒀다. 벨고로드(Белгород) 근방에서 제6 기갑사단 전면의 공격은 거의 나아가지 못해서 사단이 투입될 수가 없었다. 더 남쪽에서는 제19 기갑사단이 소련군 방어선 안쪽으로 마침내 몇 ㎞를 밀어붙였고, 제7 기갑사단은 6㎞의 종심으로 돌파했다. 최우익에 배치된 라우스 군단의 제106 및 320 보병사단은 동쪽으로 약 3㎞ 전진에 성공하여 당일 초기(그러나 계획상 최종은 아닌) 목표를 달성했다.

소련군의 방어 전력, 전술적 기습 달성의 실패와 신예 판터 전차의 기술적 결함, 소련군 파일럿들의 독일 공군의 제공권에 맞서려는 열의 등이 토마롭카(Томаровка)-벨고로드 전선을 따라 소련군을 분쇄하려던 독일군의 기도가 실패한 이유로 손꼽힌다. 이들 요인들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이들이 작전 개시 당일의 실패를 낳은 독일군의 전술 및 작전상 계획의 심각한 결함을 가려주지는 않는다. 이들 오판과 계획상의 오류들은 너무나 심각해서 독일군의 작전적 전문성에 대한 전설에 가까운 이미지에 진중한 의문을 자아낼 정도이다.

제4 기갑군의 공격 계획

호트의 제4 기갑군 작전 계획은 제48 기갑군단과 제2 SS 기갑군단의 평행한 진격을 상정하고 있었다. 각 군단의 주공점(Schwerpunkt)은 각 1개 사단이 담당했다. 오토 폰 크노벨스도르프(제48 기갑군단장)의 경우에는 GD 사단이 공격 선봉을 맡고 제3 및 제11 기갑사단이 측면을 방호하기로 되어 있었다. 파울 하우저(제2 SS 기갑군단장)은 공격 중심을 좌익의 LSSAH 사단에 두고, 우익에 DR, TK 사단을 배치했다. 제48 기갑군단 지구의 성공을 담보할 목적으로 호트는 제10 기갑여단 소속 200대의 판터를 GD 사단에 배속시켜 거의 350대에 이르는 전차 및 돌격포로 구성된 사단급 기갑 괴물을 만들었다. 그는 이만하면 소련군이 어떤 방어벽을 만들더라도 능히 뚫고 나가리라 기대했다. LSSAH 사단에게 가용한 전차라고는 이의 ⅓을 갓 넘는 수준이었다; 사실 7월 5일에 GD 사단 하나만도 거의 제2 SS 기갑군단 전체가 보유한 만큼의 전차를 통제했다. 그러나 하우저의 여력을 향상시켜주기 위해 호트는 제8 항공군단의 지원 출격 소티의 압도적인 다수를 하우저의 공격 지원에 배정했다. 이런 이상하게 편향된 판터와 공군 전력의 투입이 7월 5일의 전투 향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Hoth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

Fangohr

프리드리히 판고어 소장

Knobelsdorff

오토 폰 크노벨스도르프 기갑대장

호트의 공격 계획에서 추가로 언급해야하면서도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간과되어오던 측면은 다름 아닌 전술적 예비대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6개 기동사단(기갑 및 기갑척탄병사단) 전체를 공격 개시 시점에 한꺼번에 투입한 것이 보병사단의 부족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아래에서 분명해지겠지만, 남부집단군이 주공 지역에 확보한 소수의 보병사단들은 전선에 걸쳐 매우 위험하면서도 비정통적인 방식으로 엷게 분산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호트나 판고어(Friedrich Fangohr, 호트의 참모장) 모두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소련군 방어선에 처음 내습하는 매우 제한된 전력만 가지고는 공격 첫날에 전선에 전 기갑사단들을 투입하는 도박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고. 이러한 시각은 외견상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초기(그리고 잠정적인) 전술적 우위를 노린 이러한 배치는 호트를 장기적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작전적 외통수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제4 기갑군은 7월 5일 단 1개 사단도 예비로 확보해놓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호트는 각 사단의 배정 구역에서 소련군의 방어 전력에 무관하게 전면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GD 사단의 선봉 공격이 난관에 빠져 허우적댈 때, 제3 기갑사단이 코로비노(Коровино)를 장악하고 자체 기갑부대를 크라스니 포치노크(Красный Починок) 방향으로 돌파시켜 제71 근위 소총병사단의 제1, 제2 방어선을 뚫으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48 기갑군단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차이를 줄 수 없었다. 이 성공이 그의 좌익에서 이뤄졌고, 그는 전력 전부를 이미 중앙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폰 크노벨스도르프 장군은 이 기회를 이용할 수 없었다. 전격전의 특징은 부분적 성공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강화하고, 단숨에 공격 주공을 전환할 수 있을만큼 유연한 지휘체계를 유지한다는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호트는 그의 한정된 자원을 갖고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까? 가장 극단적인 해법은 GD 사단 하나와, 다른 2개 기갑사단 중 하나로 제48 기갑군단의 공격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제11 기갑사단이 제48 기갑군단과 제2 SS 기갑군단의 간극을 메꿀 제167 보병사단 지원을 위해 1개 기갑척탄병연대를, GD 사단의 공격 지원을 위해 사단포병을 차출하고 나머지를 예비대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제3 기갑사단이 포치노크에서 달성한 것과 같은 전술적 성공이 일어나면, 제11 기갑사단이 보유한 102대의 전차 및 돌격포는 보병장갑차량에 탑승한 보병, 공병, 대전차자주포 등과 함께 7월 5-6일 밤에 전방으로 진출, 작전 2일차에 새로운 전력으로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제11 기갑사단이 공격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소련군이 조용한 전선에서 전술 예비대를 빼내어 GD 사단 전면으로 돌려 단순히 일진이 나쁜 날을 철저한 재난으로 몰아갈 위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예비대 편성을 반대하는 것은 2가지 이유에서 성립하기 어렵다. 첫째는, 전투 초기에 걸쳐 보로네시(Воронеж) 전선군과 예하 야전군은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측면 이동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예비대는 보통 후방에서 전방으로 이동하는데, 일단 전선에 자리잡으면 그 부대는 성공을 거두거나 격파될 때까지 남아있기 마련이다. 설사 소련군이 그런 이동을 시도했다 하더라도,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던 제11 기갑사단은 그로 인해 전선에 생긴 약점을 추가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그만한 약점이면 당시 전 전장을 휘젓고 다니던 독일군의 광범위한 항공정찰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는, 제10 기갑여단을 활용하여 적어도 하나의 괜찮은 작전 예비대를 만들 수 있다는, 덜 극단적이면서도 실행가능한 대안 계획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판터의 기계적 문제와, 첫날 진창과 지뢰원에 쳐박혀야했던 불운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명백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제48 기갑군단은 한정된 구역에 너무 많은 전차를 투입했다. 폭 3㎞의 공격 전면에 350대의 전차와 돌격포가 투입되고, 그나마 그 가운데 250대가 단 1개 대대가 선도하는 1개 연대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쓰인 것은 공격의 무력화로 직행하는 길이었다. 이렇게 좁은 공격 전면에서라면 반수의 전차는 돌파를 달성하기에 더 좋은 기회를 엿보며 멈춰서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제10 기갑여단의 2개 대대 가운데 하나는 제39 기갑연대 지휘부와 함께 GD 사단의 공격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분리될 수 있었다. 이는 군단이 상황에 따라 1개 보병대대, 1개 공병중대, 1개 대전차자주포 포대 정도만을 긁어모아 배속시킴으로써 편성할 수 있는 예비 전투단의 중핵으로 활용이 가능했다. 이런 결정은 제48 기갑군단으로 하여금 성패에 무관하게 정면만을 두들겨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성공을 거둔 지점에 전력을 증강할 수 있는 전술적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재밌는 점은 호트와 판고어가 실제로 이러한 2가지 옵션에 대해 토의했으나, 결국 각각 이를 무시한 것 같다는 점이다. 제3 기갑사단을 예비대로 돌리고 공격 2일차에 투입하자는 아이디어는 원래 5월 10일 폰 만슈타인과의 회합에서 논의된 것이었으나, 호트는 6월 27일에 그의 마음을 바꿨다. 판고어는 기갑군의 전투일지에 꽤 상세하게 GD 사단의 배치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리를 적어놨다. 그 요지는, GD 사단이 양 측면에서 전차의 지원을 받는 공격을 하지 못한다면 충분히 빨리 돌파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었다. (공격이 임박해서도) 제4 기갑군 지휘부가 여전히 제48 기갑군단의 신속한 소련군 방어선 돌파 및 전과확대 단계 돌입 능력에 심각한 우려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기실 매우 나쁜 징조였다.

(⇒ 「제48 기갑군단의 공격 작전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2007/06/26 09:26 2007/06/26 09:26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감사 2007/12/26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약 2달 전에 독일연방군의 2차 세계대전 준 공간사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시리즈 소개글을 이곳 블로그에 재게시한 바 있다. 필자는 그 글 말미에서 한참이나 고대하던 이 시리즈의 8권 — 1943년 동부전선의 퇴각전을 다룬 — 이 올해 5월에 발간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었다. 이 때문에 4월부터 독일 아마존에 선주문을 걸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5월이 지나도록 배송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달 초에는 '2008년 1월에나 배송이 가능할 듯 싶으니 원한다면 취소해주겠다(!)'는 메일까지 날아왔다. 그 동안 몇 번이나 발간이 연기되어 온 8권이기에 '이번에도 또 물먹은 것인가!'라고 한탄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에 다시 확인을 해보니 갑자기 '월요일(18일) 배송 예정'으로 상황이 돌변했다. '드디어 이 책을 받을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기대감을 품은지 3일 남짓한 오늘, 갑작스럽게 책이 도착해버렸다! 보통 10~15일 정도 걸리던 것과 비교해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도착이었다. 아마 주문한지 2달이나 되어 재고가 확보된 것이 미안했는지 DHL 특송으로 물건을 보냈나보다. 한바탕 따져볼까하던 마음이 눈독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서둘러 비닐커버를 벗기고 집어든, 1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묵직한 8권. 「Die Ostfront 1943/44 (동부전선 1943/44)」이라는 제목답게 혼란한 독소전 후반부를 얼마나 잘 정리해놨을까 기대가 한껏 차오른다. 재빠르게 책을 부여잡고 종이를 넘겨가며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한글이나 영어만큼 빠르게 감흥이 오지는 않지만 신경을 집중하여 독일어 그대로를 떠올리려는 긴장 속에서, 필자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탄성이 절로 나왔다. 6권 「Der globale Krieg (범 세계적 전쟁)」에서 느꼈던 기분이랄까, 흑백의 텍스트 책장 사이사이 컬러풀한 지도가 펼쳐지고, 잘 정리된 그래프가 꽂히면서 기분 한켠에 유쾌함이 솟아남을 느꼈다. 한 마디로 '맛깔난다.'

대부분 독자 여러분들께서 공감하시겠지만 독소전을 적절하게 소화하고 기술해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워낙 스케일이 방대한 전장과 전력이 동원된 전쟁이기에, 전 전선을 아우르는 시각을 견지하면서 4년여 동안의 전쟁 흐름을 단번에 머리에 담아내기에는 매우 벅차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전장 환경 자체가 매우 낯설기 때문에 텍스트 위주로 짜여진 책을 읽다보면 미시적인 에피소드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축척으로 전황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지도 등의 시각자료가 필수적이다. 학문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극악할 정도로 읽기 어려운 고(故) 에릭슨 교수의 『The Road to Stalingrad』와 『The Road to Berlin』을 잡아보셨던 분들이라면 이를 절절히 느끼셨을 것이다. 활자에 지치면서 중력을 따라 떨구어져가는 머리를 느낄 때마다 느껴지는 시각자료의 간절함이란. 그런 면에서 지난 번 필자도 교정 및 감수의 단역을 맡아 작업한 『When Titans Clashed (역서명: 독소전쟁사)』도 지나치게 거시적인 전황도만 담은 한계가 있었다. 풍부한 지도와 함께 당대의 지휘관이 된 듯한 기분으로 쫓아갈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질도 조악하다.

이번 8권의 저자들도 이를 절절히 통감했는지, 책 사이사이 시각자료의 배치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도들 각각은 독소전 관련 책을 여럿 모으신 분들이라면 어딘가 다른 자료에서 본듯한 모습도 느끼실테지만, 결정적으로 지도 대다수가 컬러(!)라는 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다지 세밀하지는 않아도 컬러가 주는 색감으로 인해 두뇌에 전달되는 인상은 더 강하다.

특히 몇몇 지도들은 『Blitzkrieg-Legende』에 버금갈 정도로 인상적이기도 하다. 아래의 체르카시 포위망에서의 돌파 전황도나,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의 이동 포위진 전황도가 좋은 예이다:

Cherkassy-Korsun

1944년 2월 16/17일, 체르카시-코르순 포위망 돌파 전황도

wandernden Kesseln

1944년 6월 29일~7월 9일, 독일 제4군의 "이동 포위진"

구석구석 잘 박혀있는 지도로 인해 내용이 허공을 맴도는 괴리가 덜 발생하면서도 무난히 쫓아갈 수 있는 재미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내용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전체적인 독소전 기술 구성은 다분히 '전형적인' 독일풍(?)을 따르고 있다:

  1. 스탈린그라드에서 쿠르스크까지(Von Stalingrad nach Kursk) (80 pages)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로 인해 직면하게 된 문제들을 짚고 있다. 이 막심한 물적, 인적 피해가 가져온 독일의 새로운 전략 방향과 쿠르스크 전투로 귀결되는 과정이 서술된다.
  2. 쿠르스크 돌출부의 전투(Die Schlacht im Kursker Bogen) (128 pages)
    말 그대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Blitzkrieg-Legende』로 우리나라에도 알음알음 알려진 칼-하인츠 프리저 대령. 최근 필자가 러시아 자료들에 의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시각 변화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책에서는 재빠르게 그러한 러시아 저작들의 시각을 수용해 한 단계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졸지에 필자가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별도의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3. 전쟁의 아포리아(Die Aporie des Krieges) (66 pages)
    아포리아(απορία)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난관'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쿠르스크 전투 실패 이후 전쟁을 유리하게 끝낼 길이 막혀버린 독일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4. 진자의 역전. 1943년 여름부터 1944년 여름까지 동부전선에서의 퇴각 (Der Rückschlag des Pendels. Das Zurückweichen der Ostfront von Sommer 1943 bis Sommer 1944) (216 pages)
    독일군의 퇴조가 가시화되는 시기의 전황을 집단군 별로 훑어가며 조망하고 있다. 북부집단군부터 시작하여 중부집단군, 남부집단군을 거쳐 A집단군 전선까지를 다룬다.
  5. 동부의 전면붕괴. 1944년 여름 시기 퇴각전 (Der Zusammenbruch im Osten. Die Rückzugskämpfe seit Sommer 1944) (468 pages)
    위태위태하면서도 어렵게 끌어온 동부전선이 전면붕괴로 치닫는 1944년 중기의 전황을 다루고 있다. 1944년 초 독일 전쟁 지휘부의 상황 오판과, 이어지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한 독일 중부집단군의 붕괴, 북부집단군의 퇴각과 쿠를란트 고립을 기술하고 있다. 이어 갈리치아와 루마니아, 카르파티아, 헝가리 등에서 벌어진 전투가 소개된다.
  6. 주변부 전선의 전투 (Der Krieg an den Nebenfronten) (104 pages)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주변부 전선들이란 스칸디나비아 반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튀니지 및 이탈리아 전선을 의미한다. 그리스의 퇴각전, 유고슬라비아의 대 파르티잔 전투 등까지 다룬 것은 괜찮은 수준이다. 다만 지면의 제약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탈리아 전선에 대해 너무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7. 벼랑 끝에 몰린 독일 (Deutschland am Abgrund) (46 pages)
    파멸 일보 직전에 몰린 독일의 상황을 정리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마지막 대단원인 10권으로 바통을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책의 독소전쟁(동부전선)의 1943/44년 이야기가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¾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방대한 전쟁의 흐름을 많은 보조자료와 함께 짚어가는 과정은 무난히 잘 짜여져있는 것 같다. 다만 애매한 것은 이탈리아 전선 같은 남부전구의 이야기가 어설프게 다뤄진 점이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약 2~3배 분량은 할애하여 앞서의 7권에서 다뤘어야 했다고 보인다. 7권에서 적절히 다루지 못하고 넘어가서 8권에서 우격다짐으로 밀어넣은 느낌이 드는게 아쉽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들과 시사점에 대해서는 숙독을 해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빠른 첫인상만으로도 그간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여전히 독일어의 장벽 때문에 많은 독자분들이 쉽게 접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점이 걸리기는 해도,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가는, 값어치는 하는 책으로 보인다. 앞으로 쿠르스크 전투(특히 프로호롭카 전투)를 필두로 재밌는 내용들이 눈에 밟히는 대로 계속 소개글을 쓰도록 하겠다. 이제 마지막 10권 발간을 남겨둔 MGFA의 노력이 한층 가속화되어, 서가 한켠을 12권 1질이 오롯이 채우고 있는 모습이 빨리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2007/06/23 01:33 2007/06/23 01:3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양성민 2007/06/23 0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갖고 싶습니다만 제가 학생인지라... 동부전선을 다룬 좋은 지도책은 없습니까??

    • Periskop 홈지기 2007/06/26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부전선만 따로 다룬 지도책은 사실 제대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부전역이나 태평양전선은 미군 공간사의 지도들을 모아 나온 멋진 놈들이 있는데, 이게 동부전선은 커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2차 세계대전 전체를 다룬 것들은 있습니다만 그건 영 두리뭉실해서 성에 차지 않을 것 같군요. 장차 독일군 공간사 DRZW의 관련 지도들만 모아 책이 따로 하나 나오기를 기대해봐야 겠습니다.

  2. J 2007/06/23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 중에 언급을 하셔서 질문드립니다만, 열린책들 에서 나온 '독소전쟁사' 는 퀄리티가 어떠한지요? 입문자가 읽기에 적당한가 궁금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7/06/2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입문자가 읽기에 적당하다고 봐야죠. 언급했다시피 입문자 분이라면 중간중간 난무하는 유럽의 지명들이 가끔 헷갈리는게 사실입니다만 그거야 어느 정도 감수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실 독소전 전체를 주마간산격이나마 제대로 커버한, 다른 한글로 된 책 자체가 없습니다.

  3. 윤민혁 2007/06/23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아아아아앙! (...)

  4. 라피에사쥬 2007/06/23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가히 이쪽 공부하는 분들의 샹그릴라라고 할만 하군요. 이 책을 구입하고 읽으실 수 있는 모든 분들이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바그라찌온의 이동포위진 지도는 말그대로 경악입니다. 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니 감격의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ㅜㅜ)

  5. 켈베로스 2007/06/23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본문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질문입니다만... 얼마전, 러시아 책 구입 사이트를 소개해주셨는데, 혹시 아마존외의 독일 책 구입 사이트.
    혹시 아시는 곳이 없으십니까?

    최근 실탄이 생겨서, 예전부터 눈독들인 책을 사볼까했는데, 아마존에는 재고가 없어서요. TT_TT

    • Periskop 홈지기 2007/06/26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량감이 비슷한 급이라면 bol.de와 libri.de 같은 곳이 있습니다만, 아마존에 없는데 여기에 재고가 있을지는 좀 미지수군요. 어떤 책인지 다시 답변주시면 개인적인 다른 경로를 소개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6. 우마왕 2007/06/24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콰쾅!(독일어판으로 갈아탈까...)

  7. WeissWine 2007/06/28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역시 본문과는 관련 없는 질문이지만..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서부전선 지도책 중에 추천하실 만한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지도들을 보니 괜히 확대복사해서 하나 방에 붙여놓고 싶기도 하네요.-_-;;

  8. 2007/06/29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멋진 책이 꾸준히 나와주는군요. 30년 짜리 프로젝트라니 입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겨 영역판의 서지 및 구매정보를 찾아보니 의문이 생깁니다. oup(uk), oup(us), amazon을 검색해봤는데, 각 사이트별로 완전히 동일한(ISBN동일) 책인데 가격이 크게 차이나는 경우가 있네요. 예를 들면 영역판 3권은 oup-uk 332$(파운드->$변환), oup-us 399$, amazon은 무려 212$입니다. 그것도 개인seller가 아니라 아마존 자체 in stock 상품이네요. 한편 6권은 oup-us와 amazon은 455$로 같은데 oup-uk는 무려 278$(역시 파운드를 변환).... 의아합니다. 아무리 봐도 정확히 같은 책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요?
    ps. 영역판 가격은 듣던대로 입이 벌어집니다.

  9. 2007/06/29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UP/uk OUP/us Amazon
    I $253 $303 $303
    II $194 $199 $199
    III $332 $399 $212
    IV ( out of stock )
    V/1 $320 $384 $317
    V/2 $398 $425 $425
    VI $278 $455 $455
    VII $280 $250 $250
    이게 의문이 생긴 김에 찾아본 가격입니다. 6월29일 기준이고 파운드->달러 변환도 당일 환율시세 적용했습니다.

  10. 우마왕 2007/06/29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러 약세 정책에 따른 영미간 환율문제와 보다 근본적인 재고문제입니다.

  11. Wenck 2007/07/1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셨군요. 잊어버리고 있다가 독일 아마존으로부터 이 책이 우송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기뻤습니다. 대강만 훑어보았는데, R. Hinze의 책들을 너무 보아서인지 지도는 아주 새롭다는 느낌이 안들었지만 정말 공을 많이 들인 책 같습니다. Kursk가 대전의 전환점인가하는 논의가 소제목으로 있던데 시간 나면 빨리 봐야겠습니다.
    이탈리아 전구의 독일측 기술은 개인적으로 H. Wilhelmsmeyer의 Der Krieg in Italien 1943-1945가 괜찮던데, 이상하게 DRZW 8권에는 참고도서로도 기재되어있지 않더군요.

    그리고 저 아래 푈커잠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12. 번동아제 2007/09/10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개 잘봤습니다. 자료발굴기 코너는 궁극의 유혹인 것 같습니다 ^^

  13. 번동아제 2007/09/10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면 승병님은 홈피 꾸미는 디자인 감각도 남다른신 것 같습니다.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최근 참평포럼 상임집행위원장 안희정 씨의 발언으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sonnet 님기린아 님의 글을 보고 떠오르는 바 있어 적어 놓고자 한다.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이해할 때 링컨을 종종 떠올리고는 한다. 링컨 이야기를 읽으며 대통령의 꿈을 꾸었다는 일화도 있고, 자신이 직접 링컨에 대한 책까지 썼으니 말이다. 그만한 애정이면 행동과 생각 구석구석 링컨에 대한 이미지가 박혀있고, 그것을 자신에 대한 다짐으로 종종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최근 노 대통령의 행보에서는 링컨의 유명한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올랐다:

"…… I did understand however, that my oath to preserve the constitution to the best of my ability, imposed upon me the duty of preserving, by every indispensable means, that government – that nation – of which that constitution was the organic law. Was it possible to lose the nation, and yet preserve the constitution? By general law life and limb must be protected; yet often a limb must be amputated to save a life; but a life is never wisely given to save a limb. I felt that measures, otherwise unconstitutional, might become lawful, by becoming indispensable to the preservation of the constitution, through the preservation of the nation. ……"

"…… 나라를 잃으면서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가당합니까? 일반적인 법에 의한다면 목숨과 사지(四肢)는 모두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종 목숨을 살리기 위해 사지 하나를 절단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지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포기하는 법은 없습니다. 나는 그 조치들이 국가를 수호하고, 따라서 헌법을 수호하는데 필수 불가결하므로 일면 헌법에 맞지 않더라도 합법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 1864년 4월 4일, 링컨이 하지스(Albert G. Hodges)에게 보낸 서신에서

당시 링컨은 미국내전(남북전쟁)을 치루면서 적절한 의회의 동의 없이 인신보호법의 무력화, 예산 낭비, 강제 징병 등을 초래한 것에 대해 비난여론에 시달리고 있었다 — 남부 지지자라는 이유로 18,000명의 시민을 불법 격리 구금시키기도 했다. 이 서신은 그러한 비난들에 대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내용이다. 그는 여기서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매우 확대해석하여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의 최근의 언동 속에서도 이런 링컨의 잔상이 느껴졌다면 필자가 매우 과민한 것일까? 자신의 발언이 현행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에서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의 더 큰 가치로 인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듯 하다. 링컨에게 연방 수호를 위협하는 적이 남부 분리주의자들이었다면, 노 대통령에게는 '수구' 언론이나 한나라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직껏 (일반적으로) 칭송되고 있는 링컨처럼 대한민국사에 자리매김하려는 욕구가 숨어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링컨을 상기하며 국정을 운영한 또 다른 분이 계셨다:

F: …… you stated, quote, "It's quite obvious that there are certain inherently government activities, which, if undertaken by the sovereign in protection of the interests of the nation's security are lawful, but which if undertaken by private persons, are not." What, at root, did you have in mind there?

F: …… 이런 말씀을 하셨었죠, 읽어드리자면, "정권이 국가 안보의 이익 수호를 위해 하면 합법이고, 개인이 하면 불법인, 분명한 정부 고유의 활동들이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근본적으로 무엇을 염두해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N: Well, what I, at root I had in mind I think was perhaps much better stated by Lincoln during the War between the States. Lincoln said, and I think I can remember the quote almost exactly, he said, "Actions which otherwise would be unconstitutional, could become lawful if undertaken for the purpose of preserving the Constitution and the Nation."

Now that's the kind of action I'm referring to. Of course in Lincoln's case it was the survival of the Union in wartime, it's the defense of the nation and, who knows, perhaps the survival of the nation.

N: 음, 제가 본질적으로 염두해둔 것은 링컨이 남북전쟁 당시에 남긴 말이 훨씬 더 잘 설명할 것 같군요. 제가 거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여깁니다만,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르게라면 헌법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도 헌법과 국가 수호를 위한 목적으로 행해졌다면 합법화될 수 있다."

그것들은 제가 언급하고 있는 종류의 행동들입니다. 물론 링컨의 경우는 전시에 연방의 존립의 문제였지만, (제 경우에는) 국가 방위의 문제였고, 또 누가 알겠냐만 아마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F: But there was no comparison was there, between the situation you faced and the situation Lincoln faced, for instance?

F: 하지만 각하가 직면한 상황과 링컨이 직면했던 상황을 비교했던 적은 없었는데요. 예를 들자면 뭡니까?

N: This nation was torn apart in an ideological way by the war in Vietnam, as much as the Civil War tore apart the nation when Lincoln was president. ……

N: 이 나라는 링컨이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를 갈라놓은 남북전쟁 만큼이나 베트남전으로 인해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

— 1977년 5월 20일자 뉴욕 타임즈에 실린 닉슨 전 대통령(N)과 데이빗 프로스트(F)의 인터뷰

필자는 노 대통령이 나름의 신념과 능력도 있고, 국정을 잘 끌어가려는 선의와 노력도 강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한계가 답답하다고 이런 식으로 무리한 승부수를 계속 걸면서 개혁의 추진력을 소진하고 일부 지지자들만 열광하게 만드는 일련의 처사에는 개탄할 수밖에 없다. 링컨의 그림자를 쫓으며 지역주의 타파와 언론개혁을 부르짖는 노 대통령의 마지막 발걸음이 과연 링컨과 닉슨 사이의 스펙트럼 가운데 어디쯤에 놓일지, 필자로서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일 따름이다.

2007/06/21 14:41 2007/06/21 14:4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바보이반 2007/06/21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간조선에 조갑제 영감님께서 링컨의 저 고사를 인용하며 "국군이여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기위해 (빨갱이 노무현일당을 때려잡는)행동에 나서라!"고 쓰신걸 보면 노짱과 갑제횽아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링컨 대통령은 대인배를 넘어 마성의 X이가 틀림없습니다.

  2. shrike 2007/06/22 0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컴퓨터가 국가라면.. os가 헌법이겠죠.

    만약 윈도우가 다운되어 정상종료가 불가능해졌다면 os를 무시하는 하드웨어적인 강제리셋도 불가피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급적이면 정상적으로 셧다운을 하는게 좋겠지만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느정도 하드웨어적인 무리가 따르더라도 리셋을 하고 os를 갈아엎을수 있는것이라 생각됩니다.

    너무 단순한 생각일까요? ^^;

  3. 玄武 2007/06/22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그 컴퓨터가 개인컴이 아니라 공용컴이라는 거죠. 단지 한 사람의 판단으로 OS를 갈아엎겠다는건 권한남용일뿐이지요.

  4. 바보이반 2007/06/22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rike님의 논리라면 5.16 과 12.12도 주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OS를 무시한 강제종료및 OS 재설치가되죠.

  5. 켈베로스 2007/06/22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 대통령...... 아무래도 믿었던 사람들이 당을 깨부수고 나가겠다고 하니, 이대로는 자신이 실패 대통령으로 남지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좀 무리수를 많이 두네요.

  6. 번3 2007/06/23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rike님// (이번 일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shrike님의 댓글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헌법의 강제 리셋이라...그것이 정치적이나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신지.

  7. Lawlite 2007/06/24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헌법학에서 이야기하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OS를 재설치해도 된다는 논리 덕분에(바이마르 헌법의 기본 틀이라고 할까요) 히틀러와 나치가 집권해서 그 난리를 칠 수 있었죠. 종전 후 서독 헌법에서는 이걸 교훈삼아 방어적 민주주의라든가, 최고 권력관계의 규율을 새로이 하는 등 여러 불가침적인 헌법 조항들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한국 헌법 역시 이와 거의 유사하고요. 헌법이란, 함부로 지웠다 다시 까는 게 아닙니다. 그냥 대한민국이 아닌 새로운 나라를 현재의 국체를 뒤엎어서 만들자고 하는 게 빠르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엄밀히 말해 헌법학적으로는 역대의 독재 헌법들 역시 헌법의 개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8. shrike 2007/06/26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럼 os 를 정권.
    bios를 헌법에 비유하는게 좀더 걸맞을듯 싶군요. 한때 메인보드 롬바이오스가 플래쉬롬을 사용하며 이것을 sw적으로 통제할수 있도록 만들자 이것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바이러스가 출현해 홍역을 격은일이 있었죠.

    그 뒤로 메인보드 cmos 셋업메뉴에 bios Protect 항목이 새로 생겨서 sw적인 라이팅 여부를 bios 차원에서 결정해 스스로를 보호시킬수 있는 기능이 생겨났죠. Lawlite 님의 말씀을 보니.. 여기에 비유하는게 더 걸맞겠다 싶어집니다. ^^

    (예전 롬바이오스 잡아먹는 바이러스 파동때.. 등장한 해결책은 메인보드상의 바이오스 플래쉬롬을 직접 뽑아내어 멀쩡한 다른 롬으로 바꾸는 것이었죠. 번거롭긴 하지만 시스템이나 메인보드를 새로 구입하는것보다는 훨씬 저렴했기에 이렇게 해결하곤 했습니다. )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