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시겠지만 지난 토요일 새벽에 모 공중파 방송에서 폰 도너스마흐크(F. H. v. Donnersmarck) 감독의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을 방영했다. 한 번쯤 이런 영화가 나왔구나 흘리고 1년여 전에 개봉할 때도 그냥 지나친 영화였는데…… 회식길에 늦는 마눌님 기다리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작품 때문에 거실에는 밤새 기나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동베를린의 거리를 걸어본 이라면 뭔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구 동독 시절의 음습한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큰 감정의 기복 없이 잔잔한 변화가 이어지는 줄거리는 어찌 그리 전형적인 유럽의 부슬비를 연상시키는지. 멍하니 지켜본 내 가슴은 레인코트 깃을 세우고도 얼굴을 스쳐가는 습한 기운에 떨다 돌아온 느낌이었다. 돌아누운 심상 한켠 밑 그림자에 있노라니 왜 진작 이 영화를 보지 못했던가 하는 아쉬움도 컸고.
오랜만에 본 여운 짙은 영화에 섣불리 평론이라고 무미한 글을 써내려서 아직 말랑말랑한 감정에 젤라틴을 부어 넣기는 싫다. 다만 뜬금없는 넋두리에 의아해할 분을 위해 한 문장만 적어보자 — 저 DVD 표지에 나와 있는 구 동독 국가비밀경찰(슈타지)의 냉혈한 게흐트 비즐러 대위가 극작가 드라이만과 여배우 질란트 커플을 도청하면서 심연에 묻어뒀던 삶의 의미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동서독의 냉전과 이후 통일 시기를 관통하며 그 속에 몸 담았던 인간군상의 이미지를 아주 적절히 압축해냈다고나 할까. 독일에 대한 감성을 어느 정도 공감하실 수 있는 분임에도 지금껏 이 영화를 못 보신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을 따름이다. 여기에 굳이 2007년 오스카 상 외국영화부문을 수상했다는 등의 거창한 영화제 수상 내력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홈지기도 새삼스레 한참이나 놓았던 베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이 그리워졌다. 비즐러 대위가 거실 소파에 누워 노란색 브레히트 시집을 읽으며 감상에 젖는 모습을 좇고 싶은 주말 밤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영화 속의 그 시, 「Erinnerung an die Marie A.」와 함께:
An jenem Tag im blauen Mond September
Still unter einem jungen Pflaumenbaum
Da hielt ich sie, die stille bleiche Liebe
In meinem Arm wie einen holden Traum.
Und über uns im schönen Sommerhimmel
War eine Wolke, die ich lange sah
Sie war sehr weiß und ungeheuer oben
Und als ich aufsah, war sie nimmer da.푸른 달 9월의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조용히
나는 그 고요하고 창백한 사랑에 멎어
우아한 꿈을 꾸듯 내 팔에 안았다.
우리 머리 위의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오랫동안 보아왔던 구름 한 점이 떠 있었고
무척이나 희고 너무나 높이 있었건만
내가 다시 올려다보니, 이미 그것은 사라져버렸다.Seit jenem Tag sind viele, viele Monde
Geschwommen still hinunter und vorbei.
Die Pflaumenbäume sind wohl abgehauen
Und fragst du mich, was mit der Liebe sei?
So sag ich dir: Ich kann mich nicht erinnern
Und doch, gewiß, ich weiß schon, was du meinst.
Doch ihr Gesicht, das weiß ich wirklich nimmer
Ich weiß nur mehr: ich küßte es dereinst.그날 이후 많은, 많은 달이 지나고
소리 없이 흘러내려 지나쳐가고 말았다.
자두나무들은 분명 베어졌을텐데
너는 나에게, 사랑이 어떻게 되었나 묻는가?
나는 답하련다: 난 떠올려지지가 않는다고
분명히,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난 정말로 모르겠고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예전에 그녀에게 입맞춤했다는 것뿐.Und auch den Kuß, ich hätt ihn längst vergessen
nicht die Wolke dagewesen wär
Die weiß ich noch und werd ich immer wissen
Sie war sehr weiß und kam von oben her.
Die Pflaumenbäume blühn vielleicht noch immer
Und jene Frau hat jetzt vielleicht das siebte Kind
Doch jene Wolke blühte nur Minuten
Und als ich aufsah, schwand sie schon im Wind.그리고 그 입맞춤마저, 구름이 거기 떠 있지 않았더라면
오래 전에 잊었을 것이다
구름이 그토록 하얬고 높이서 흘러왔다는건
지금도 생각나고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자두나무들은 변함없이 꽃을 피우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 부인은 이제 일곱번째 아이를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구름은 잠깐 동안 피어 올랐다가
내가 다시 올려다보니, 이미 바람에 실려 사라졌다.— Bertolt Brecht, 「Erinnerung an die Marie A.」
기억과 망각이 끝 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흘러가는 것은 한 줄기 구름과 우리의 향수뿐 아니라 모든 이의 역사도 그러하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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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 소개, 그리고 이과출신의 그것이라 기에는 너무나 섬세한 주인장님의 감성에 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는군요.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고향이 평양이십니다. 그래서 분단이란 상황에 타인보다는 좀더 민감하게 반응하나 봅니다. 제 일상의 밥벌이인 연구 이외에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을 건립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 이곳 미국에서 평양과기대에 교수 요원으로 가실 분들을 위한 모임을 가진 적이 있죠. 이미 미국 내에서 변호사나 의사, 교수, 엔지니어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30-40대의 교포 1.5세-2세 부부들이 제법 많이 참석했습니다.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에 대략 70-80% 정도의 부부가 부모나 조부모 대에 북한에서 월남하신 분들이더군요. 아마 피 속에 뿌리에 대한 끌림이 있나 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늘 북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소개해 주신 영화는 책이던 영화던 구해서 한번 읽던지 보던지 해야겠습니다. 힘찬 한 주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프라인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일들 하고 계신 것 같군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인접 블로그의 일을 보노라면 나의 좋은 의도라 해도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신중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예브게니 자먀찐의 Мы가 연상되더군요. 통제사회와 인간성이란 주제는 20세기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쟈마친의 『우리들』이 20세기 초의 경험으로 먼 미래를 다룬 이야기니 확실히 좋은 대구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우리들』은 표지가 이뻐서 ― 근데 이 회사가 『독소전쟁사』 표지는 왜 상의도 없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 찍어만 놓고 통독하진 못했는데, 주말에 다시 들여다봐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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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화를 볼때 비즐러가 인간성을 찾아가니 결국에는 약간 유치하면서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게 아니냐 싶었는데 중간에 비극적인 요소가 들어가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비즐러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모르는 게오르그의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짓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감정 과잉 없이 절제된 감동을 주는 연출력에 감탄을 금할수가 없더군요.
그렇죠, 무뚝뚝한 표정 속에서 아주 작은 변화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가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독일 영화도 보다보니 배우들의 이전 출연작 역할이 오버랩되는게 다소 몰입하는데 지연을 초래하더군요. 장관으로 나오는 토마스 티머는 자꾸 '몰락'에서의 마틴 보어만 역이 생각나고, 드라이만 역의 세바스티안 코흐는 '블랙북'에서의 루트비히 뮌체 역이 생각나고 그런 식 말입니다.
저는 주인공이 결국에는 자신의 원래 임무에 반하는 그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할 뿐 다른 고려를 전혀 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던 것이 그 배경이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주인공이 자기자신 이외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은 독신으로 묘사되었죠.
하여튼 최근 몇 년 동안 관람했던 영화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수작이었습니다 - 유럽영화들이 지나친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강조로 일반관객들과 괴리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큰 한 방'의 울림을 주는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기반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 영화를 정식상영관에서 보았는데 10 여명도 되지 않는 아무런 인연없는 타인들과 어두운 분위기에서 이런 영화를 관람하는 기분은 설명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가고 코닥/후지+돌비마크마저 지나갈 때 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