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랑스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최후의 노병이라는 라자르 퐁티첼리(Lazare Ponticelli) 씨가 향년 110세(!)로 사망하셨다. 언제나 세계대전은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는 한국이지만, 한 세기 넘게 살아온 참전용사에 대해 국장으로 예우하는 프랑스의 분위기에 대해 많은 보수언론들은 훌륭한 귀감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듯하다. 특히 동아일보는 사설까지 할애하는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 동아일보 — [사설]프랑스의 1차대전 참전 노병 國葬을 보며
- 조선일보 — "조국은 결코 용사를 잊지 않는다"
의미 있는 국제 뉴스지만 동아일보처럼 사설까지 쓰는건 역시 찜찜하다. MB 정부 출범 이후 참여정부에 들이밀던 펜날을 쓸 곳이 없으니 이런 것으로라도 사설을 채워야하는 압박의 결과 같기도 하고…… 불쌍히 한 번 흘겨주고 지나가자.
그러고 나니 문득 프랑스는 국장을 어떻게 진행하나 궁금해졌다. 뼈대 있는 국가의 행사에는 언제나 국가의 문화와 전통이 서려있는 법이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이해하는 것으로도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퐁티첼리가 앵발리드에 묻힌다는 이야기에 더욱 동했다 — 홈지기도 가장 최근에 파리를 방문했던 2004년에 하루 시간을 내서 이곳에 있는 Musée de l'Armée(육군 박물관)에 가봤는데, 그 거대한 전시실 규모에 한 나절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외국인이 한 국가의 국가행사를 들여다보려면? 이럴 때 유용한 곳이 각국의 정부기관, 특히 최고 권력기관인 국가원수 관저의 사이트가 유용하다. 한국에 청와대가 있듯이, 프랑스는 엘리제궁을 보면 된다. 역시 거북한 사르코지의 이미지 아래 퐁티첼리의 국장 동영상이 대문에 잘 링크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앵발리드의 안뜰에서 추모행사를 거행하는 동영상은 다음과 같다:
- PR1 TV — Cérémonie d'hommage national à Lazare PONTICELLI et aux poilus de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à l'Hôtel National des Invalides
직접 들어가 걸어봤던 곳에서 벌어지는 행사라 그런지 좀 더 현장감이 느껴진다. 프랑스 육군의 전통답게 다양한 복장의 의장대들이 행사에 참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저 도끼를 들고 치마를 두른 아저씨들은 과연 누구인가? (아래 사진의 노란 사각형 안)

앵발리드 안뜰에서 거행된 퐁티첼리 국장 모습: 노란 사각형은 National Geographic과 무관함
우선 퐁티첼리의 관을 에워싸고 있는 병사들은 캐피 블랑(흰 모자)을 쓴 모습에서 이들이 유명한 프랑스 외인부대(La Légion étrangère)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위에 링크한 기사들에도 나와 있듯이 퐁티첼리가 외인부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 실마리를 물고 구글신에게 또 열심히 신탁을 구해 본 결과……
저 도부수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저들은 프랑스 외인부대의 공병대(Pionniers de la Légion étrangère)였다.
![]() Grenadiers-á-Pied 연대의 sapeur | ![]() 프랑스 외인부대의 pionniers |
저 특이한 모습 — 도끼와 가죽 앞치마, 구레나룻 — 들에 대한 설명을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와 여러 웹페이지에서 긁어 모아보니 이런 사연들이 있었다. 원래 공병(sapeurs)은 원래 중근세기 공성전에서 적진을 향해 종심방향의 참호를 뚫던 임무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공성돌격 단계에서는 도끼를 들고 쇄도하여 각종 장애물을 때려 부수면서 진로를 개척하고는 했다. 프랑스에서는 이에 18세기 초부터 척탄병부대 — 역시 공격의 선봉에 자주 선 부대들이다 — 에서 도끼를 소지하고 성문을 때려 부수는, 이른바 "porte-haches2"가 출현하게 되었다.
위 2장의 사진에서 좌측에 보이는 사진은 그 결과 프랑스 혁명기, 통령정부 시절에 제식화된 sapeurs의 모습이다. 통령근위대(나중의 제국근위대)의 이 공병들은 일반적인 근위대 척탄병이 쓰던 것과 같은 털가죽 모자를 썼으나 앞에 금속판은 대지 않았다. 프랑스 정규 육군에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전투공병대(pionniers)가 제3공화국 시기에 완전히 사라졌으나, 프랑스 외인부대만이 1831년 전투공병대를 창설한 이래 그 전통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프랑스 육군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이런 험악한 도부수들이 프랑스 외인부대 관련 행사에는 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의 인상적인 특징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 도끼(hache): 앞서 이야기한대로 돌격을 가로막는 목제 장애물들을 부수기 위한 장비이다.
- 가죽 앞치마(tablier de cuir): 도끼질을 할 때 튀게 마련인 각종 나무 파편들에 다치지 않기 위해 착용한 것이다.
- 손목장갑(gants à crispin): 역시 도끼질할 때 다치지 않도록 소매 위로 길게 올라오는 장갑을 착용했다.
- 구레나룻(barbe): 원래 이들은 살아남을 가망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전투에 나갈 때 수염을 깎지 않는 것을 허용했다고 한다. 이게 전통이 되어 다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다 보니 외인부대 공병대에서는 아예 1844년부터 의무적으로 구레나룻을 기르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퐁티첼리에 대한 의문을 이어가면서 프랑스 도부수의 정체까지 이르고 보니 두 가지 잔념이 남는다. 하나는, 여러 의문들을 꼬리를 물고 이어나가며 지식체계를 늘여가는 즐거움이다. 포털 뉴스 사이트에서 쉽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뉴스를 쓱 훑고 지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시 원어로 된 정보들을 자꾸 찾아다니다 보면 건질거리는 풍부해지는 법이다.
다음은, 외국인의 시각으로 한국과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 과연 창이 있느냐는 의문이다. 위에서도 엘리제궁이 외국인도 접근할만한 적절한 매체를 제공하기 있기에 의문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우리의 청와대는 그에 비하면 한 눈에 봐도 우리 안에서 치고박고 하는데만 편리하지 외국인에게 한국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의 역할은 매우 빈약하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대 보수언론 전쟁의 최전선으로 요새화시키는 살기나,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국정홍보처 없애고 대못질 빼겠다는 요란함이 앞서기 전에, 낮은 눈높이에서 유익한 국가의 창을 만드는데 신경 쓰겠다는 인식부터 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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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혁명기념일 퍼레이드에서 도끼를 메고 행진하는 외인부대 공병대의 사진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임영훈씨의 '외인부대'라는 책에서 외인부대 공병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 놓은 덕에 프랑스군 중 다른 부대는 몰라도 외인부대 공병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시시한 사설에도 동정심을 보여주시니 정말 아량이 넓으십니다.
그렇죠, 저는 임영훈 씨 책에 관심이 없었는데 글을 올리고 나서 포털의 책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보니 '외인부대'에도 관련된 이야기가 있더군요. 역시 저는 현용 밀리터리에는 까막눈이라……^^ 그리고 동아일보의 기사들은 지능범들 사이에 끼인 멍청한 종범을 보는 재미로 눈에 조금씩 적셔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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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가의 창에 대한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국정홍보처 폐쇄와 맞물려 현 정권의 홍보력이 문제시 되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실은 우리정부의 국가 홍보 정책이랄까.. 실무적인 면에서 보면 문제가 제법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답니다.
2005년과 2006년에 분배 문제와 관련해서 아일랜드 정부 지출 내역서를 찾기 위해 구글신께 여쭤본 적이 있죠. Republic of Ireland를 치니 바로http://www.irlgov.ie/가 맨 위에 뜨더군요. 이 사이트를 통해 아일랜드에 관한 모든 정보를 클릭 한번에 모두 찾을 수 있었고 방문자들로 하여금 One-Stop 투자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반면에 구글(www.google.com)에서 Republic of Korea를 치니 북한 공식 홈페이지가 맨 위에 뜨더군요. 아... 이 황당함이란..... (-.-;)
물론 지금은 위키피디아의 South Korea가 맨 위에 뜨고 북한 공식 홈페이지는 6번째로 내려 앉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거의 2년 여 동안 여러 곳에 진정을 했는데도 생각보다 금방 바뀌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 자료 중 영문으로 된 걸 찾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 정도의 우수한 인력 풀을 가진 나라도 찾기가 쉽지 않을 테고 사회간접자본 역시 유럽 연합내의 어느 나라에 뒤 떨어지지 않는데, 제가 보기에는 외국인을 위한 홍보개념이 아직 공무원들에게 절실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거주하는 곳은 미국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인데.. 이 곳은 미군이 합동작전을 하는 전세계 모든 국가의 장교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기 전에 언어 연수를 실시하는 교육기관이 있는 곳이랍니다. 당연히 매년 우리나라의 육해공 해병 장교들이 100여명 씩 방문을 하고 짧게는 3주 길게는 3개월 정도 언어연수를 받고, 다음 번 군사연수를 받을 장소로 떠나고는 하죠.
각군에서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분들께서만 선발되어 오시는데도 영어가 말이 아닙니다. 오셔서도 골프 주로 시간을 보내시지 영어 연수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신 것 같고. 오죽하면 그곳의 교관 분이 한국 장교들을 보면서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렇게 영어가 안 느는 것도 신기하다고 하실 정도죠.
늘 좋은 글과 자료에 감사하단 말씀을 언젠가는 정식으로 드리고 싶었답니다. 그럼..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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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는 무관한 질문입니다. 동부전선의 동지 작전에 동원된 SS군단이 제10군단입니까, 제11군단입니까?
이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들은 Periskop Forum을 찾아 보시면 웬만큼 논의된 바 있습니다: http://forum.periskop.info/viewtopic.php?t=495 결론만 이야기하면 제11SS 군단입니다.
C.Duffy의 <Red Storm on the Reich>에서도, wikipedia에서도 제10군단이라고 하던데, 오류인가 보네요.
윽, 제가 실수를 했군요. 군단을 물어보시는 건데 제11군(제11SS 기갑군으로 불리기도 했음)을 묻는 질문인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a 당시 제11군 예하 군단을 묻는 것이라면 제10SS 군단이 맞습니다. 제11SS 군단은 퀴스트린 지구에 배치되어 있었지요. 착오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친절한 답변 '매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간혹 질문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