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순명大帝(sonnet) 님의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라는 글을 보고 깊이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의 진짜 (밥벌이용) 전공인 복잡성과학(complexity science)에서도 경제사회현상들을 이해하는데 통계물리학, 진화생물학, 개체군생태학, 진화경제학, 사회연결망 이론 등의 관점을 통합적으로 활용하여 유사한 결론을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성과학의 견지에서 본 보수-진보에 대한 논의는 다가오는 주말에 차분히 정리해보기로 하고, 그 전에 순명大帝의 글에서 생각난 다른 논객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자 — 그는 바로 복거일이다.
한 때 『비명(碑銘)을 찾아서』의 작가로, 그리고 해괴망측(?)해 보이는 '영어공용화론'의 지지자로만 알고 있던 작가 복거일. 필자가 그런 복거일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2004년에 자유기업원에서 발간한 그의 저서 『진화적 풍경』이었다. 원래 자연과학 전공자(필자는 통계물리학 전공)는 과학을 어설프게 알고 제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습성이 있다 — 그런데 사회에 나와 다양한 전공자들을 보니 이건 대부분 먹물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작가 복거일이 진화를 논한다?'는 것이 영 안 어울려서인지 한 번 읽어보고 허튼 소리로 도배되어 있으면 자근자근 씹어볼까 하는 마음이 앞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떡 책머리와 뒷표지에 박아놓은 인용구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줬다:
진화는 선험적 설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시된 대안들 가운데 가장 잘 되는 것의 선택에 의해서 나아간다. 우리는 저술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편집의 산물이다. — 조지 월드
Evolution advances, not by a priori design, but by the selection of what works best out of whatever choices offer. We are the products of editing, rather than of authorship. — George Wald
오늘날 자유주의 경제학의 중요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슘페터가 경제시스템의 진화를 깊이 있게 고찰했고, 자유기업원이 예전부터 슘페터적 시각을 전파하는데 애쓴 것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 견지에서 여느 자유주의 경제학자나, 조금 더 진보적인 진화경제학자가 이를 인용했다면 덜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복거일이 의외로 진화의 본질과 경제사회시스템에의 함의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있다는 첫 인상을 줄만한 부분이었다.
서언에서도 복거일은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등을 인용하며 그가 이해하는 진화에 대한 의미를 풀어놓았다. 연구자가 아닌 그에게 학문적 잣대를 들이대긴 힘들다 쳐도, 비교적 정확한 문헌들에 근거하여 주장의 바탕을 깔아놓는 것에는 분명 가벼이 볼 수 없는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책의 본 내용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현상들을 그런 진화의 시각, 정확히는 진화로 뒷받침되는 자유주의자의 시각으로 비평하고 있다. 이들 각론을 따지고 들어가면 역시 진화를 중시하는 필자로서도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이 간혹 있었으나 적어도 하나만은 분명해 보였다. 복거일이 결코 무개념 우파로 폄하될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진화의 관점에서 보고 비평하겠다는 그의 진지한 탐구적 자세는 충분히 존중할만한 것이었다.
복거일은 이 책에서 순명大帝와 마찬가지로 계몽주의적 진보관을 거대돌연변이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다:
…… 사회의 운영에서 중요한 실제적 지침은 진화의 과정이 방해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일은, 그것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든 혁명이라는 형태로 나오든, 거의 언제나 사회에 해롭다. 사회를 개혁하거나 혁명으로 체제를 바꾸는 일은 본질적으로 그 일을 주도하는 소수 집단의 판단이 나머지 다수의 판단보다 나을 뿐 아니라 다수의 실험들을 통해 검증되는 절차를 생략해도 될 만큼 옳고 완벽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삼는다. 그런 생각은 물론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근거가 아주 약하다. 그 점에서 큰 변혁을 통해 단숨에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변성론자(transmutationist)들이다. 그리고 자연계에서 성공적인 거대돌연변이(macromutation)가 나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믿음에 짙은 회의의 그늘을 던진다…… (복거일1 p.36)
결국 자유주의자 복거일에게 진정한 '진보'는 비(非) 목적론적인 '진화적 진보'을 의미하며, 여러 대가들을 인용하여 이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역설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진보라는 말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미리 정해진 목표를 향한 진전을 뜻한다면, 미리 정해진 목표들을 지니지 않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시간의 경과에 따른, 적어도 상당수의 후계 계통들에서, 퇴보의 가능성이 늘 있다는 조건 아래, 점점 더 복잡하고 통제적인 유기체들과 사회들의 생산을 뜻한다면, 진화적 진보는 분명한 실재다…… (복거일2 p.38)
복거일은 이를 바탕으로 줄기차게 진화적 진보에 초점을 맞춘 정부(및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뱅쌍 드 구르네이(Vincent d. Gournay)의 유명한 "Laissez faire, laissez passer"를 살짝 비튼 "진화하게 하라(Lassiez evoluer)"를 모토로 내세우면서. 최근 복거일이 줄기차게 "진화"를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런 성찰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복거일의 진화론적 관점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그가 진화를 촉진하는 사회적 기제로서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적이다. 진화의 산물 — 오늘날의 시장경제체제 — 은 밟아온 과거 순간순간의 생존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지,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환경에도 최적합한 것이기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인간의 눈과 오징어의 눈을 비교한다:
[참고] 「완벽하지 못한 사람의 눈」
오징어의 눈은 일반적인 척추동물의 눈보다 구조적으로 훨씬 자연스럽고 훌륭하다. 위의 링크에도 나와 있듯이 불합리한 인간의 눈 구조는 어쩔 수 없는 과거의 환경이 만들어낸 산물이지만, 이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시스템도 마찬가지 의미에서 진화의 산물이므로 현재 존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리적 함정에는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는 기술의 발전사를 보면 더더욱 극명하다 — 최선의 기술이 살아남았던 것은 절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사람의 눈을 당장 오징어의 눈으로 바꿔끼울 수 없듯이, 사회경제시스템도 이런 과거의 맥락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경제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하는 정책 문제에서 그 지향점의 설정보다도 진화적 변화(또는 이행) 관리(evolutionary transition management)가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네덜란드형 사회대타협 모델이 좋다고 해서 단숨에 그리로 도약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노사정위 설치와 대통령의 계도로 갑자기 없던 사회적 신뢰가 펑펑 생겨나겠는가?) 중요한 것은 더 나은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지향점을 세우는 미시적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은 단기간의 오기와 뚝심으로 이뤄지는게 아니라 역시 중장기적 진화의 맥락에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일 것이다.
아무튼 진영 논리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정치인이 좋다 또는 싫다는 이유로 섣불리 자신을 좌파 또는 우파로 규정짓는 모습이 횡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복거일의 일관된 진화적 성찰과 행보는 충분히 주목해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복거일을 대략 난감 뻘소리쟁이 정도로 알고 계신 분, 자유주의자들을 수구꼴통으로 치부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진화적 풍경』같은 책들을 보고 좀 더 고민해본 연후에 비판에 나서기를 권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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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론들에는 많이 동의 하겠는데, 굳이 일반균형이론을 까고 진화경제학을 집어 넣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적어도 현재의 경제학 레벨에서, 진화경제학, 복잡계경제학같은건 아직 일반균형이론의 '보론'에 불과한 처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앞으로 진화경제학이 학문적 레벨에서 얼마나 더 발전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반균형이론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일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진화론적인 일련의 관점을 아무리 적용한다고 한들, 아주 고전적인 Cobb-duglas 함수를 적용한 생산함수에 기반한 성장모형의 결론인,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이 수렴한다는 것을 뒤집을만한 어떤 역사적 성과나 사례가 보인적도 없기도 하구요. 복거일이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일반균형이론이 일련의 'state'간의 이동에 대해 조정할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저도 그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저 기사에 쓴글은 그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주는데는 실패하지 않았나 싶네요.
[참고]로 달아놓은 복거일의 글이 좋다던가 꼭 맞다던가 그런 의미에서 붙인 것은 아니니 걱정마시게.^^ 그냥 복거일이 왜 뜬금 없이 이런 소리나 해대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참고하라는 의미이지. 복거일이 과도하게 과학적 담론을 끌어다 자유주의 설파에 갖다 붙이는 고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그만큼 노력하는 자세는 나쁘지 않게 보이더군. 아, 그리고 일반균형이론에 대해서는 나도 생각이 많은데 그건 찬찬히 나중에 같이 따로 이야기해보지. 진화경제학이니 복잡계경제학이니 모두 마이너한 분야로서 감히 그 아성에의 대항마는 되긴 당연히 힘들지만, 의미 있는 논의 진전을 위한 소재는 많이 제공하고 있으니깐.
사실 저도 논문을 진화경제학적 관점에서 써야 할 처지이니 할말은 참 없기는 합니다만^^;;;
안녕하세요. sonnet님 블로그에서 보고 찾아왔습니다.
복거일 씨를 비롯해서 자연과학의 담론을 끌어오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단순한 유행에 그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사회과학도로서는 조금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사회학 쪽에서는 프리고진의 이론(분산구조)을 차용하여 현재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즉, 평형 상태와 비평형 상태가 사회에도 존재하고, 비평형 상태를 통해서 새로운 구조(평형상태)로 나아간다는 시각입니다. 제가 쓴 글이 있는데 너무 길어서(...) 추천은 힘들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반갑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셔서.
저희도 이와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사회학 하시는 선생님들과 몇몇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조직사회학이나 사회연결망 이론에 관심 있는 교수님들이 적극적이십니다. 연세대 사회학과의 K 교수님, H 교수님이라든가 서울대 사회학과의 J 교수님, L 교수님 등과 교류가 활발하죠. 사회학에서는 이런 논제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 만나뵐 때마다 즐거운 얘기가 많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글이 월러스틴에 대한 글인가요? 저도 좀 더 자세히 읽어 보고 필요하다면 가르침을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복거일의 <진화적 풍경>(도서의 경우 <>를 쓰면 안되지만 한글에서 퍼오기도 그래 이렇게 쓰겠씁니다)에 대한 평가 잘 봤습니다.
제게는 너무 버거운 주제군요. 우선 경제학의 경자도 모르는 저로서는 그런가보다 합니다.
다만 님께서 쓰신 시장에 대한 평가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시장이라는 기제에 대한 관점이 님의 그것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읽진 못했지만 복거일의 시장에 대한 관점이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그것(계몽주의적 진보관)에 대한 추앙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최근 존 킹 페어뱅크의 <신중국사>라는 책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페어뱅크는 명, 청 시대를 '발전없는 성장'으로 규정하면서 동시기 서구 사회의 자본주의적 성장이 결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중국 시대에 자본주의적 성장이 결여된 것은 사실이죠. 제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자본주의적 성장 혹은 시장질서의 확립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연적 결과물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에 대해서는 찬성을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세계화라는 기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찬성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평가는 아니지만 최갑수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특성>에서 나오는 내셔널리즘의 기원이 '국가 간 체제'라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강구되었듯이 자본주의 역시 근대 이후 세계 체제 속에서 수단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공병호의 저서들을 보면 시장적 기제가 역사적 발전을 이끌었다는 사례들이 제시되기도 합니다만 이것만이 역사적 발전을 이끌었다고 보기는 힘들죠). 물론 현 세계 체제(월러스틴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에서 자본주의 혹은 시장은 거의 필수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영원불멸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님의 말씀대로 현재의 기제가 반드시 최선의 기제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글을 다 쓰고 한 번 읽어보니 왠지 좌파 소리를 들을 글이군요^^. 가급적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려고 하지만 그게 참 힘듭니다. 많이 알면 보인다고 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면 더 안 보이고 더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마다 님의 해박한 지식과 거기에서 나오는 고견이 부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