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재밌게 본 책 중의 하나가 『설득의 논리학(김용규 著)』이다. 독일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는 저자가 체계적인 논리 단련을 위해 쓴 책이라는데, 여느 논리학 책과는 달리 책 군데군데 무릎을 칠만한 실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설파했다는 '논쟁술(eristik)'도 그 중 하나이다.
쇼펜하우어는 토론술과 논쟁술을 구분했다. 토론술(dialektik)은 '담화의 상대방들이 질문과 답변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반박하거나 무언가를 증명하여 주장할 때 사용하는 말하기 기술'이다. 따라서 그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견지하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논쟁술(eristik)은 '정당한 수단을 쓰든 정당치 못한 수단을 쓰든(per fas et nefas)'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하는 기술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논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올바른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방어하는데 교활하고 민첩한 사람이다. 따라서 논쟁술은 어디에 진실이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후략)
일상 속에서 작은 대화가 논쟁으로 번질 때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상대가 잘 모르면서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주눅들게 하거나 평상심을 잃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반박이 옳은지 그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확신도 없고 정리도 안된 발언을 방어하려 들다가 자꾸 중언부언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상대는 이윽고 흐려지는 논점 속에 논쟁의 주도권을 잃게 되고, 지켜보는 제3자는 그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대학 시절 심심치 않게 벌어진 이념논쟁들도 종종 그렇게 흘러갔고, 오늘날 석희公의 시선집중 같은 열띤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러한 논쟁술이 과연 소소한 일상에서만 쓸모가 있을까? 훨씬 큰 무게를 지닌 국정과 외교의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도 의외로 이러한 논쟁술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우들이 있다. 그 재미있는 사례를 1945년 2월의 얄타 회담의 한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얄타 회담은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던 2차 세계대전 말에 미·영·소 3국이 전후 세계질서를 논의한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국사 및 세계사 시간에 열심히 배우던 바와 달리 조선 문제의 비중은 극히 미미했고, 핵심 논제 중의 하나는 폴란드 문제였다. 영국과 미국은 런던의 망명정부를 지원했고, 소련은 친소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루블린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승전 3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폴란드에 자국에게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도록 갖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소련이 폴란드 영토를 해방하고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었기에 영미측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얄타 회담 초기부터 영미측은 수 차에 걸친 본회의에서도 폴란드 문제에 대해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1945년 2월 9일의 담판에 대비해 양국의 단일 협상안을 조율했다. 폴란드에 수립될 신 정부 구성에 대해서는 세세히 따지지 말고 — 친서방 런던 망명정부나 친소 루블린 임시정부를 민감히 건드려 합의 도출이 좌초될 수 있기 때문에 — 완벽한 "자유선거"를 보장하는 선에서 소련의 합의를 끌어내자는 것이었다. 폴란드 국민 전반적으로는 친서방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확실한 자유선거만 보장된다면 능히 친서방 정부가 조직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결국 처칠은 스탈린과의 담판에서 바르샤바 주재 각국 외교관들로 구성된 자유선거 감시단의 구성과 폭넓은 활동 보장을 요구했다. 처칠은 이에 유고슬라비아의 예를 들어가며 그 당위성을 역설했다:
…… 그(처칠)는 스탈린에게 한 공산주의자의 말을 인용하여 대응했다. 즉 티토는 선거가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세계에 확신시키기 위해서 외국인 옵서버들을 방해하진 않았었다. 마찬가지로 영국은 그리스에서의 선거에 참관인이 참석하는 것에 대해서, 이태리에서 미국, 영국, 그리고 러시아가 모두 참관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처칠은 이내 틈을 보였으며 스탈린은 재빨리 대인배다운 논쟁술을 보여줬다:
처칠은 이 요구가 어리석은 요구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집트의 예를 들면서 그곳에서는 참관이 제대로 이루어져서 선거가 정부의 주도 하에 잘 치뤄졌다고 말하였다. 스탈린은 즉시 폴란드와 이집트를 비교하는 것은 반대했다. 이집트에서는 뇌물과 타락이 횡행했기 때문에 진정한 선거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칠이 주장한 것은 그 점이 아니었다. 그는 선거를 감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토론방향을 돌렸지만 스탈린은 완강히 고집했다. 이집트에서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 하지만 폴란드에서는 다행스럽게도 70%가 글을 해득할 수 있어서 사람들은 (옮긴이 주: 자유선거를 감시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처칠은 이집트에서의 문맹을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해야만 했다. 그는 이집트와 폴란드 사이를 비교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 Clemens, Diane L. 『얄타』. 마의웅 譯. 서울: 대림기획, 1990. p.231.
처칠이 섣불리 이집트의 사례를 비교대상으로 내세우자, 스탈린은 재빨리 양국의 문맹률 차이나 알고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여기에는 문맹률의 차이가 자유선거 감시단 필요성의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는 반격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맹률 문제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처칠은 순간 말문이 막힌 것이다. 노회한 처칠이지만 허를 찌른 논쟁술 앞에 그는 소련을 좀 더 밀어붙일 주도권을 잃고 말았다. 스탈린이라고 이집트 문맹률을 자세히 알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상대방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을 파고들어 맥을 끊고 기를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정상간 회담에서 처칠은 스탈린의 동의를 끌어내지 못했고, 다시 이 문제는 외무장관 회담으로 미뤄졌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지 않은 이런 예민한 문제가 외무장관간 담판으로 쉽사리 해결될 리가 없었다. 앤서니 이든과 스테티니어스의 갖은 노력도 몰로토프의 고집에는 먹히지 않았다. 결국 폴란드 문제는 런던 망명정부와 영미측의 명문화된 참여 여지는 철저히 차단된 채, 새로운 폴란드 통일정부의 자율적 결정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미봉책으로 매듭지어지게 된다. 이는 소련과 루블린 임시정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이었다.
사실 얄타 회담에서 치열한 협의 끝에 도출된 합의안들은 곧 빛이 바랬다. 소련에 우호적인 루스벨트의 서거 이후 고조된 냉전 속에서 그나마의 신뢰가 산산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논쟁술은 치열한 협상 과정에서 쉽게 잊혀질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후적인 해석은 너무 지나치다. 얄타 회담 당시 승전 3국은 적당히 서로가 양보하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계 질서를 되도록 평화적으로 분할하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루스벨트의 기운을 빼고, 역시 대영제국의 쇠퇴와 실각을 눈에 앞두고 초조해진 처칠의 예봉을 교묘히 에둘러 피해가는데 분명 이러한 논쟁술은 효과적이었다.
논쟁술은 물론 남용해서는 안 된다. 친구들에게 남발했다가는 금방 공공의 적으로 몰릴 것이다. 방송이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잘못 구사했다가는 나중에 두고두고 복기되면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논쟁술에 앞서 명징한 토론술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만 한다. 그럼에도 팽팽한 긴장 속에서 허점을 뚫고 승리를 쟁취해야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는 법이고, 논쟁술은 그 순간 발휘될만한 필살기이다. 그러고 보면 위의 스탈린의 사례처럼 능란한 논쟁술이야 말로 대인배의 필요조건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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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직장에서도 저런 걸로만 일하는 사람있죠.. 저게 자기 이익을 위해 좋을지 모르나 저런 정치학적으로 회담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혹은 극히 중요한 협상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극도의 않좋은 감정을 남기기 때문에..(저런 논쟁술 사용해서 상대로 유쾌하게 해주는 방법은 없겠죠..)
그렇죠, 지나치게 눈 앞의 작은 이익에만 집착해서 참 껄끄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웬만하면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는 논쟁술을 자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상대방과 불쾌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한 판 붙어야 할 때를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논리적 허점을 빨리 포착하고 공략하는 법은 연마해둬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승병님의 글을 즐겨읽는 이름없는 팬입니다. ^^;;
7~8년 전부터 승병님의 글을 항상 즐겨읽었었는데 댓글을 남기긴
처음이네요.
글 읽다보니 논쟁술이라는걸 잘 하는 사람이 하나 떠올라서요.
바로 전여옥의원이요.
그 분이 토론하는거 들어보면 스탈린같은 교묘한 사술을 아주 잘 쓴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승병님이 읽은 '설득의 논리학'과는 비교하기 남사시럽긴 하지만
토론이나 논쟁 관련해서 저도 인터뷰 하나 소개하고 싶어지네요.
바로 진중권씨가 디시인터뷰 한건데 이 글을 읽으니 왠지 그 인터뷰가
생각나서 승병님도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주소 가르쳐 드릴게요.
http://www.dcnews.in/etc_list.php?code=succeed&id=8743&curPage=&s_title=&s_body=&s_name=&s_que=&page=3
그럼 언제나 승병님의 재밌는 글 감사해하며 읽는 이름없는 팬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꾸벅~ (__)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팬(?)이라니 황송합니다. 제가 7~8년 전에는 무슨 글을 썼었나 가물가물할 정도인데 -.- 전 의원이 토론에 나오는 것을 보고서는 제가 느낀 바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말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목소리의 톤과 느낌이 논쟁술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을 음습하게 만드는 묘한 포스의 소유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