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달 전에 독일연방군의 2차 세계대전 준 공간사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시리즈 소개글을 이곳 블로그에 재게시한 바 있다. 필자는 그 글 말미에서 한참이나 고대하던 이 시리즈의 8권 — 1943년 동부전선의 퇴각전을 다룬 — 이 올해 5월에 발간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었다. 이 때문에 4월부터 독일 아마존에 선주문을 걸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5월이 지나도록 배송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달 초에는 '2008년 1월에나 배송이 가능할 듯 싶으니 원한다면 취소해주겠다(!)'는 메일까지 날아왔다. 그 동안 몇 번이나 발간이 연기되어 온 8권이기에 '이번에도 또 물먹은 것인가!'라고 한탄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에 다시 확인을 해보니 갑자기 '월요일(18일) 배송 예정'으로 상황이 돌변했다. '드디어 이 책을 받을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기대감을 품은지 3일 남짓한 오늘, 갑작스럽게 책이 도착해버렸다! 보통 10~15일 정도 걸리던 것과 비교해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도착이었다. 아마 주문한지 2달이나 되어 재고가 확보된 것이 미안했는지 DHL 특송으로 물건을 보냈나보다. 한바탕 따져볼까하던 마음이 눈독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서둘러 비닐커버를 벗기고 집어든, 1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묵직한 8권. 「Die Ostfront 1943/44 (동부전선 1943/44)」이라는 제목답게 혼란한 독소전 후반부를 얼마나 잘 정리해놨을까 기대가 한껏 차오른다. 재빠르게 책을 부여잡고 종이를 넘겨가며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한글이나 영어만큼 빠르게 감흥이 오지는 않지만 신경을 집중하여 독일어 그대로를 떠올리려는 긴장 속에서, 필자의 입에서는 나지막한 탄성이 절로 나왔다. 6권 「Der globale Krieg (범 세계적 전쟁)」에서 느꼈던 기분이랄까, 흑백의 텍스트 책장 사이사이 컬러풀한 지도가 펼쳐지고, 잘 정리된 그래프가 꽂히면서 기분 한켠에 유쾌함이 솟아남을 느꼈다. 한 마디로 '맛깔난다.'

대부분 독자 여러분들께서 공감하시겠지만 독소전을 적절하게 소화하고 기술해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워낙 스케일이 방대한 전장과 전력이 동원된 전쟁이기에, 전 전선을 아우르는 시각을 견지하면서 4년여 동안의 전쟁 흐름을 단번에 머리에 담아내기에는 매우 벅차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전장 환경 자체가 매우 낯설기 때문에 텍스트 위주로 짜여진 책을 읽다보면 미시적인 에피소드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축척으로 전황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지도 등의 시각자료가 필수적이다. 학문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극악할 정도로 읽기 어려운 고(故) 에릭슨 교수의 『The Road to Stalingrad』와 『The Road to Berlin』을 잡아보셨던 분들이라면 이를 절절히 느끼셨을 것이다. 활자에 지치면서 중력을 따라 떨구어져가는 머리를 느낄 때마다 느껴지는 시각자료의 간절함이란. 그런 면에서 지난 번 필자도 교정 및 감수의 단역을 맡아 작업한 『When Titans Clashed (역서명: 독소전쟁사)』도 지나치게 거시적인 전황도만 담은 한계가 있었다. 풍부한 지도와 함께 당대의 지휘관이 된 듯한 기분으로 쫓아갈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질도 조악하다.

이번 8권의 저자들도 이를 절절히 통감했는지, 책 사이사이 시각자료의 배치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도들 각각은 독소전 관련 책을 여럿 모으신 분들이라면 어딘가 다른 자료에서 본듯한 모습도 느끼실테지만, 결정적으로 지도 대다수가 컬러(!)라는 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다지 세밀하지는 않아도 컬러가 주는 색감으로 인해 두뇌에 전달되는 인상은 더 강하다.

특히 몇몇 지도들은 『Blitzkrieg-Legende』에 버금갈 정도로 인상적이기도 하다. 아래의 체르카시 포위망에서의 돌파 전황도나,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독일군의 이동 포위진 전황도가 좋은 예이다:

Cherkassy-Korsun

1944년 2월 16/17일, 체르카시-코르순 포위망 돌파 전황도

wandernden Kesseln

1944년 6월 29일~7월 9일, 독일 제4군의 "이동 포위진"

구석구석 잘 박혀있는 지도로 인해 내용이 허공을 맴도는 괴리가 덜 발생하면서도 무난히 쫓아갈 수 있는 재미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내용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전체적인 독소전 기술 구성은 다분히 '전형적인' 독일풍(?)을 따르고 있다:

  1. 스탈린그라드에서 쿠르스크까지(Von Stalingrad nach Kursk) (80 pages)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로 인해 직면하게 된 문제들을 짚고 있다. 이 막심한 물적, 인적 피해가 가져온 독일의 새로운 전략 방향과 쿠르스크 전투로 귀결되는 과정이 서술된다.
  2. 쿠르스크 돌출부의 전투(Die Schlacht im Kursker Bogen) (128 pages)
    말 그대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Blitzkrieg-Legende』로 우리나라에도 알음알음 알려진 칼-하인츠 프리저 대령. 최근 필자가 러시아 자료들에 의한 쿠르스크 전투에 대한 시각 변화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책에서는 재빠르게 그러한 러시아 저작들의 시각을 수용해 한 단계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졸지에 필자가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별도의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3. 전쟁의 아포리아(Die Aporie des Krieges) (66 pages)
    아포리아(απορία)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난관'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쿠르스크 전투 실패 이후 전쟁을 유리하게 끝낼 길이 막혀버린 독일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4. 진자의 역전. 1943년 여름부터 1944년 여름까지 동부전선에서의 퇴각 (Der Rückschlag des Pendels. Das Zurückweichen der Ostfront von Sommer 1943 bis Sommer 1944) (216 pages)
    독일군의 퇴조가 가시화되는 시기의 전황을 집단군 별로 훑어가며 조망하고 있다. 북부집단군부터 시작하여 중부집단군, 남부집단군을 거쳐 A집단군 전선까지를 다룬다.
  5. 동부의 전면붕괴. 1944년 여름 시기 퇴각전 (Der Zusammenbruch im Osten. Die Rückzugskämpfe seit Sommer 1944) (468 pages)
    위태위태하면서도 어렵게 끌어온 동부전선이 전면붕괴로 치닫는 1944년 중기의 전황을 다루고 있다. 1944년 초 독일 전쟁 지휘부의 상황 오판과, 이어지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한 독일 중부집단군의 붕괴, 북부집단군의 퇴각과 쿠를란트 고립을 기술하고 있다. 이어 갈리치아와 루마니아, 카르파티아, 헝가리 등에서 벌어진 전투가 소개된다.
  6. 주변부 전선의 전투 (Der Krieg an den Nebenfronten) (104 pages)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주변부 전선들이란 스칸디나비아 반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튀니지 및 이탈리아 전선을 의미한다. 그리스의 퇴각전, 유고슬라비아의 대 파르티잔 전투 등까지 다룬 것은 괜찮은 수준이다. 다만 지면의 제약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탈리아 전선에 대해 너무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7. 벼랑 끝에 몰린 독일 (Deutschland am Abgrund) (46 pages)
    파멸 일보 직전에 몰린 독일의 상황을 정리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마지막 대단원인 10권으로 바통을 넘겨줄 준비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책의 독소전쟁(동부전선)의 1943/44년 이야기가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¾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방대한 전쟁의 흐름을 많은 보조자료와 함께 짚어가는 과정은 무난히 잘 짜여져있는 것 같다. 다만 애매한 것은 이탈리아 전선 같은 남부전구의 이야기가 어설프게 다뤄진 점이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약 2~3배 분량은 할애하여 앞서의 7권에서 다뤘어야 했다고 보인다. 7권에서 적절히 다루지 못하고 넘어가서 8권에서 우격다짐으로 밀어넣은 느낌이 드는게 아쉽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들과 시사점에 대해서는 숙독을 해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빠른 첫인상만으로도 그간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여전히 독일어의 장벽 때문에 많은 독자분들이 쉽게 접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점이 걸리기는 해도,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eite Weltkrieg』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가는, 값어치는 하는 책으로 보인다. 앞으로 쿠르스크 전투(특히 프로호롭카 전투)를 필두로 재밌는 내용들이 눈에 밟히는 대로 계속 소개글을 쓰도록 하겠다. 이제 마지막 10권 발간을 남겨둔 MGFA의 노력이 한층 가속화되어, 서가 한켠을 12권 1질이 오롯이 채우고 있는 모습이 빨리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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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성민 2007/06/23 0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갖고 싶습니다만 제가 학생인지라... 동부전선을 다룬 좋은 지도책은 없습니까??

    • Periskop 홈지기 2007/06/26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부전선만 따로 다룬 지도책은 사실 제대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부전역이나 태평양전선은 미군 공간사의 지도들을 모아 나온 멋진 놈들이 있는데, 이게 동부전선은 커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2차 세계대전 전체를 다룬 것들은 있습니다만 그건 영 두리뭉실해서 성에 차지 않을 것 같군요. 장차 독일군 공간사 DRZW의 관련 지도들만 모아 책이 따로 하나 나오기를 기대해봐야 겠습니다.

  2. J 2007/06/23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 중에 언급을 하셔서 질문드립니다만, 열린책들 에서 나온 '독소전쟁사' 는 퀄리티가 어떠한지요? 입문자가 읽기에 적당한가 궁금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7/06/26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입문자가 읽기에 적당하다고 봐야죠. 언급했다시피 입문자 분이라면 중간중간 난무하는 유럽의 지명들이 가끔 헷갈리는게 사실입니다만 그거야 어느 정도 감수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실 독소전 전체를 주마간산격이나마 제대로 커버한, 다른 한글로 된 책 자체가 없습니다.

  3. 윤민혁 2007/06/23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아아아아앙! (...)

  4. 라피에사쥬 2007/06/23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가히 이쪽 공부하는 분들의 샹그릴라라고 할만 하군요. 이 책을 구입하고 읽으실 수 있는 모든 분들이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바그라찌온의 이동포위진 지도는 말그대로 경악입니다. 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니 감격의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ㅜㅜ)

  5. 켈베로스 2007/06/23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본문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질문입니다만... 얼마전, 러시아 책 구입 사이트를 소개해주셨는데, 혹시 아마존외의 독일 책 구입 사이트.
    혹시 아시는 곳이 없으십니까?

    최근 실탄이 생겨서, 예전부터 눈독들인 책을 사볼까했는데, 아마존에는 재고가 없어서요. TT_TT

    • Periskop 홈지기 2007/06/26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량감이 비슷한 급이라면 bol.de와 libri.de 같은 곳이 있습니다만, 아마존에 없는데 여기에 재고가 있을지는 좀 미지수군요. 어떤 책인지 다시 답변주시면 개인적인 다른 경로를 소개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6. 우마왕 2007/06/24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콰쾅!(독일어판으로 갈아탈까...)

  7. WeissWine 2007/06/28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역시 본문과는 관련 없는 질문이지만..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서부전선 지도책 중에 추천하실 만한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지도들을 보니 괜히 확대복사해서 하나 방에 붙여놓고 싶기도 하네요.-_-;;

  8. 2007/06/29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멋진 책이 꾸준히 나와주는군요. 30년 짜리 프로젝트라니 입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겨 영역판의 서지 및 구매정보를 찾아보니 의문이 생깁니다. oup(uk), oup(us), amazon을 검색해봤는데, 각 사이트별로 완전히 동일한(ISBN동일) 책인데 가격이 크게 차이나는 경우가 있네요. 예를 들면 영역판 3권은 oup-uk 332$(파운드->$변환), oup-us 399$, amazon은 무려 212$입니다. 그것도 개인seller가 아니라 아마존 자체 in stock 상품이네요. 한편 6권은 oup-us와 amazon은 455$로 같은데 oup-uk는 무려 278$(역시 파운드를 변환).... 의아합니다. 아무리 봐도 정확히 같은 책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뭘까요?
    ps. 영역판 가격은 듣던대로 입이 벌어집니다.

  9. 2007/06/29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UP/uk OUP/us Amazon
    I $253 $303 $303
    II $194 $199 $199
    III $332 $399 $212
    IV ( out of stock )
    V/1 $320 $384 $317
    V/2 $398 $425 $425
    VI $278 $455 $455
    VII $280 $250 $250
    이게 의문이 생긴 김에 찾아본 가격입니다. 6월29일 기준이고 파운드->달러 변환도 당일 환율시세 적용했습니다.

  10. 우마왕 2007/06/29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러 약세 정책에 따른 영미간 환율문제와 보다 근본적인 재고문제입니다.

  11. Wenck 2007/07/1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셨군요. 잊어버리고 있다가 독일 아마존으로부터 이 책이 우송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기뻤습니다. 대강만 훑어보았는데, R. Hinze의 책들을 너무 보아서인지 지도는 아주 새롭다는 느낌이 안들었지만 정말 공을 많이 들인 책 같습니다. Kursk가 대전의 전환점인가하는 논의가 소제목으로 있던데 시간 나면 빨리 봐야겠습니다.
    이탈리아 전구의 독일측 기술은 개인적으로 H. Wilhelmsmeyer의 Der Krieg in Italien 1943-1945가 괜찮던데, 이상하게 DRZW 8권에는 참고도서로도 기재되어있지 않더군요.

    그리고 저 아래 푈커잠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12. 번동아제 2007/09/10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개 잘봤습니다. 자료발굴기 코너는 궁극의 유혹인 것 같습니다 ^^

  13. 번동아제 2007/09/10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면 승병님은 홈피 꾸미는 디자인 감각도 남다른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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