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보

출전: Raus, Erhard. 2005. Panzer Operations: The Eastern Front Memoir of General Raus, 1941-1945. [trans.] Steven H. Newton. Cambridge, MA : Da Capo Press, 2005.
저자: Erhard Raus (Generaloberst)
역자: 채승병 (Periskop 홈지기)
비고: 2007년 3월 17일 초역 및 Periskop 게재

역자 해설

필자가 과거에 KV 전차가 독일군에게 입힌 절절한 충격에 대한 글을 소개한 이후, 여러 자료를 추가로 입수하면서 좀 더 재밌는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필자가 다뤘던 라세이냐이 전투의 에피소드에 대해 보다 상세한 전모를 밝힌 에어하르트 라우스 상급대장의 기록이 영어로 번역, 출간된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이 기록에는 거의 2일간 이 1대의 중전차에 의해 노심초사한 여단장으로서 라우스의 모습과, 평범한 독일군 초급 장교 및 장병들의 전장 모습의 일단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특히나 갖은 적의 포화 속에서 단차를 끝내 버리지 않고 최후까지 저항한 용감했던 KV 전차 승무원들의 노력들까지 담담하게 느껴지고 있다. 기존 글의 이해를 더욱 높이고 비참했던 전쟁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판단되어 해당 부분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혹시나 이 글부터 봐서 전후 상황이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Pt. 1을 먼저 보시길 바란다.

단 한 대의 전차에 의해 고립되다!

...... 이로 인해[역주: 원문에는 이 앞에 독일군의 포로 후송 차량이 소련군 전차로부터 사격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우리 교두보의 유일한 보급로가 1대의 KV-1 중전차에 의해 차단당했고, 또 사단 사령부와의 전화 연결도 끊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적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 불분명했지만, 우리는 후방에 대한 역공을 예상해야만 했다. 나는 즉시 벵엔로트(Wengenroth) 소위가 지휘하는 제41 전차엽병대대 3포대를 당시 전투단 전체 지휘소 역할을 겸하고 있던 제6 차량화 여단 지휘소 부근의 언덕배기로 호출했다. 우리의 대전차 방어를 증강시키기 위해 나는 이 지역에 있던 1개 곡사포(Feldhaubitze) 포대에게 포신을 남쪽으로 180도 돌리도록 했다. 게브하르트(Gebhardt) 소위가 지휘하는 제7 기갑공병대대 3중대에게는 도로와 가능하다면 인근 야지까지 지뢰를 매설해 차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쉔크(Schenk) 소령의 제65 전차대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우리 전투단의 전차들은 당시 숲 속에 머물러 있었는데, 즉시 전투 태세를 갖추고 명령을 내리는 즉시 반격에 나설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몇 시간이 지났지만,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적 전차는 라세이냐이 방향으로 산발적인 포격을 해댈 뿐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6월 24일 정오 경에 나는 그 거인 전차 주변을 살피도록 수색대를 보냈지만, 공격이 임박했다는 징후로 보일만한 붉은 군대 병력이나 차량의 집결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대를 지휘한 장교는 이 전차의 모(母) 부대는 폰 젝켄도르프(von Seckendorff) 전투단과 교전했을 것이라는 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공격이 임박했다는 위험은 없어 보였지만, 즉시 이 귀찮은 전차를 박살내거나 쫓아버리든가 해야 했다. 이 전차의 공격으로 벌써 라세이냐이에서 긴요한 보급품을 싣고 오던 아군 트럭 12대가 격파됐다. 또한 교두보 주변에서 싸우다 부상당한 아군 장병들을 치료소로 후송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몇 명의 치명상을 입은 이들(이 가운데에는 지근거리에서 복부에 총상을 입은 한 젊은 소위도 있었다)이 수술을 적시에 받지 못해 구급차에서 사망하였다. 이 전차를 우회해보려는 모든 시도는 소용이 없었다. 차량이 진창에 처박히거나, 좀 멀리 돌아가려고 하다가는 아직 숲 속에 잠복해있던 적 패잔병들과 맞닥뜨렸다.

나는 그래서 벵엔로트 소위의 포대(50㎜ 대전차포로 새롭게 무장한)에게 숲 속을 뚫고 나가 유효사거리 내로 진입하여 그 전차를 격파하라고 명령했다. 포대장과 그의 용감한 병사들은 이 영예로운 임무를 받자 기쁨 가득한 얼굴을 띄고는, 곧 임무를 완수하리라는 자신감에 충만하여 실행에 착수했다. 우리는 언덕 꼭대기의 지휘소에서 그들이 숲 속을 따라 한발한발 나아가는 모습을 따라 지켜보았다. 모두는 첫 번째 대전차포가 전차 1000미터 이내로 접근한 것을 봤다. 그 전차는 도로 한 가운데에 잘 보이게 서 있었으나, 아직 다가오는 위협을 눈치채지는 못하고 있는 듯 했다. 두 번째 대전차포는 잠시 시야에서 벗어났으나, 갑자기 전차 앞 마지막 구덩이에서 쑥 나타나더니 잘 은폐된 사격 위치를 잡았다. 다시 30분 뒤에는 나머지 2문의 대전차포도 비슷한 위치에 자리잡았다.

언덕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몇몇은 아마 저 전차는 벌써 손상되어 승무원들이 버리고 도주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지 않다면 도로 한 가운데에서 저렇게 가만히 서 있으면서 완벽한 표적이 되어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한 대전차포에서 섬광이 번쩍였고, 은색 빛줄기 같은 탄도 궤적이 표적을 향해 뻗었다. 철갑탄은 600m의 거리를 단숨에 날아갔다. 불꽃에 이어 요란한 명중 소리가 났다. 명중!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사격이 뒤따랐다.

장교들과 병사들은 똑같이 기뻐하며 사격 대회에서의 관객인양 소리쳐댔다. “명중! 브라보! 전차를 작살냈다!” 그 전차는 적어도 8발의 직격을 두들겨 맞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포탑이 선회하기 시작하더니 차근차근 정조준하여 몇 발의 80㎜ 포탄으로 아군 대전차포들을 침묵시켰다. 2문의 아군 50㎜ 대전차포는 완전히 박살났고, 남은 2문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포대에 사상자도 속출했다. 벵엔로트 소위는 더 이상의 손실을 피하고자 살아남은 부대원들을 안전 지대로 피신시켜야 했다. 밤이 되고 나서야 그는 대전차포들을 회수할 수 있었다. 소련군 전차가 아직도 생생하게 도로를 장악하고 있었고, 우리의 작전은 엉망으로 실패했다. 깊이 실망한 채로 벵엔로트 소위와 그의 병사들은 교두보로 돌아왔다. 그가 그렇게 자신 넘쳐 하던 신무기(50㎜ 대전차포)도 저 괴물 전차 앞에서는 완전히 무력한 것으로 판명났다.

상황을 타개할만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제 우리에게 가용한 무기들 중에서 오직 88㎜ 대공포로 철갑탄을 사격하는 것만이 저 거대한 짐승을 격파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날 오후, 88㎜ 포 1문이 라세이냐이 부근의 전투에서 빼돌려져 그 전차를 향해 남쪽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KV-1은 이전에 우리가 공격을 시도했던 방향인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장포신의 대공포가 확실하게 격파 가능한 2000m 내로 그 괴수에게 접근했다. 불행하게도 그 괴물 전차에게 전에 격파된 몇몇 트럭 잔해가 아직 도로 위에 남아 포수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반면 이 트럭들은 엄폐물로도 기능하여 포를 좀 더 표적에 가깝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정지해있는 전차를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겉에 나뭇가지들로 위장한 채로 포수들은 이 88㎜ 포를 조심스럽게 앞으로 밀고 있었다.

뒤이어 포수들은 숲 언저리에 도달했으며, 여기서 최적의 시야가 확보된 사격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전차까지의 거리는 이제 800m로 줄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격이면 저 전차가 확실하게 격파되리라고 생각했다. 포수들은 포 방열을 시작했다.

적 전차는 첫 번째 대전차포 포대와의 교전 이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승무원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단차장 또한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포를 건드리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대공포는 그의 전차를 위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공포가 접근할수록, 보다 확실하게 격파할 수 있었다. 이 작은 결투에서 양자에게 결정적인 순간은 포수들이 사격 위치를 잡는 마지막 준비를 할 때 다가왔다. 포수들이 극도로 긴장한 채로 방열을 서두르고 있는 동안, 전차는 포탑을 돌려 먼저 사격을 시작했다. 매번마다 표적에 명중했다. 대공포는 심각하게 손상되어 배수로로 굴렀고, 포수들은 포를 포기해야 했다. 또 포수들에게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차에서 뿜는 기관총 세례는 대공포 회수와 사망자 수습도 방해했다.

크게 기대했던 두 번째 시도의 실패는 나쁜 뉴스였다. 88㎜ 대공포와 함께 장병들의 낙관도 날아갔다. 아군 병사들은 보급품이 도착하지 못해 통조림 비상식량을 까면서 우울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더 큰 근심거리는 적어도 잠시 사라졌다. 라세이냐이를 향한 소련군의 공격이 106고지를 성공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폰 젝켄도르프 전투단에 의해 격퇴되었다. 결국 소련군 제2 전차사단이 후방으로 진출하여 우리를 포위할 위협도 사라졌다. 단지 저 괴물 전차를 아군 보급로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더 작지만 훨씬 짜증나는 일만 남았다. 우리는 낮에는 해내지 못한 그 일이 적어도 밤에는 완수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여단 참모들은 그 전차를 격파할만한 모든 방안에 대해 몇 시간 동안 토론했고, 몇몇 다른 해결책에 대한 준비가 이뤄졌다.

세 번째 해결책은 6월 24~25일 밤 동안 아군 전투공병들이 저 전차를 날려버린다는 것이었다. 아군 공병들은 다른 무기들이 격파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졌고, 전우들에게 한껏 뻐길만한 기회를 잡게 되었다. 게브하르트(Gebhardt) 소위가 12명의 자원자 모집을 위해 손을 들라고 했을 때, 중대원 120명 전원이 손을 들었다. 공평하게 매 10번째 사람이 선발되었다. 이 행운의 공병 12명은 어서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폭약과 모든 필요 장비들이 이미 준비되었다. 공격을 직접 지휘하려는 게브하르트 소위는 모든 병사들에게 임무 전반과 공격 계획, 각자 책무를 상세히 알려줬다 어둠이 깃들자마자 소위가 앞장서서 이 자신 넘치는 병사들을 이끌고 갔다. 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모랫길에서 123고지를 지나 동쪽으로 뻗어 그 전차가 위치한 숲의 돌출부로 이어졌고, 이어 듬성듬성한 숲 사이를 거쳐 옛 집결지에 다다랐다.

하늘에 창백하게 빛나는 별빛은 가까운 나무들의 윤곽과, 도로, 전차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을 긴장시킬 어떤 소음도 내지 않기 위해, 공병조원들은 맨발로 도로가를 포복해가서 전차 가까이에서 최적의 접근경로를 선택했다. 그 러시아 거인은 조용히 같은 자리에 포탑 뚜껑을 닫은 채로 있었다. 넓고 깊은 완벽한 정적이 감돌았고, 때때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섬광과 곧 뒤이은 둔탁한 폭음이 들려왔다. 때때로 적의 포탄이 멋대로 날아가 라세이냐이 북쪽 도로 분기점 부근에서 폭발하였다. 이것들이 하루 종일 벌어진 남쪽으로의 격전의 끝물이었고, 자정 무렵이 되자 양측에서 지긋지긋한 포화도 끝이 났다.

갑자기, 도로 반대편 숲에서 쿵쾅거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속삭이듯 유령 같은 사람이 전차를 향해 움직였다. 승무원이 잠시 밖에 나왔던 것인가? 이어 포탑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고, 해치가 열리면서 뭔가 위로 전달되었다. 부드러운 딱딱거리는 소름으로 미루어보건대 그건 음식 사발이었음이 분명했다. 공병조원들은 게브하르트 소위에게 이를 보고했고, 그는 의문을 중얼거렸다. “지금 들이닥쳐 저놈들을 잡아야 하나? 저놈들은 민간인 같은데.” 쉽게 처치해버릴 수 있었기에 유혹은 강렬했다. 그러나 전차 승무원들은 포탑 안에서 분명히 깨어있을 것이기에 그런 공격을 했다가는 그들을 놀라게 해서 이 공격을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게브하르트 소위는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 예기치 않았던 사건 때문에 이 민간인들(파르티잔들?)이 떠나기까지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에, 전차와 그 주변은 더 샅샅이 수색되었다. 0100시 경에 전차 승무원들이 포탑 안에서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곯아 떨어지자 공병들은 다시 작업에 나섰다. 고폭약이 무한궤도와 전차의 두터운 측면 장갑에 부착되었고, 조원들은 물러나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몇 초 뒤에 커다란 폭음이 밤 하늘을 갈랐다. 임무는 완수되었고, 그들의 성공은 결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폭음의 메아리가 그치자마자 전차의 기관총이 울려대기 시작했고, 인근을 계속해서 훑고 지나갔다. 전차 자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한궤도는 격파된 것 같았으나, 기관총이 사방으로 쏴대는 통에 확실한 검사는 불가능했다. 게브하르트 소위와 그의 조원들은 낙심한 채 교두보로 돌아왔으며, 아무도 그들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한 채 1명이 실종되었다고 보고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 그를 찾으려 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동트기 얼마 전에 비록 더 작기는 해도 두 번째의 폭음이 전차가 있는 곳에서 들려왔으나, 아무도 이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전차의 기관총은 다시 몇 분 동안 주변을 훑어댔고, 다시 모두 조용해졌다.

곧이어 새벽이 밝아왔고, 금빛 아침 햇살이 숲과 대지에 내리쬐었다. 수천 개의 이슬 방울이 꽃과 풀에 맺혔고, 새들이 우짖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텐트 안에서 관절을 스트레칭하며 눈에서 잠을 쫓고 있었다. 새 날이 시작되었다.

해가 그리 높이 뜨지 않았을 때 한 맨발의 병사가 그의 팔 위로 군화를 흔들며 여단 지휘소로 걸어 들어왔다. 여단장인 내가 그를 처음 발견하고 호출한 게 그의 불행이었을 것이다. 근심한 채로 그는 내 앞에 섰고, 나는 이런 이상한 모습으로 아침에 돌아다니고 있는 이유를 똑똑히 물었다. 크나이프(Kneip) 신부의 열렬한 추종자라도 되나? 그렇다면 그런 열정은 분명 여기랑 맞지 않았다. (크나이프 신부는 19세기 육체적 건강을 위해 “자연 회귀” 운동을 이끌고 얼음목욕, 별 보이는 야외에서 자기 등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이 고독한 행자는 쩔쩔매며 그의 죄상에 대한 이유를 고백했다. 이 무뚝뚝한 비행 청년에게서 대답을 듣기 위해 심한 추궁이 필요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대답이 나올 때마다 내 얼굴은 밝아졌다. 10분여의 추궁 끝에 나는 이 고독한 모험가에게 아침 담배를 권했고,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받아 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그의 손을 흔들어줬다. 멀리서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에게는 참으로 기이한 반전이었다. 무엇이 이 맨발의 소년에게 이렇게 호의로 돌아서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건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 궁금증을 그 젊은 공병이 나에게 진술했던 보고 일부를 그날 여단 명령서에 실을 때까지 해소해주지 않았다:

저는 청음 경계 임무를 맡았고 러시아 전차 인근의 배수로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모든 게 준비되자, 저와 중대장님은 교범에서 무한궤도에 붙이라는 양보다 2배 많은 폭약을 설치하고 배수로로 돌아와 도화선에 불을 붙였습니다. 배수로는 파편을 막아낼 만큼 깊었기 때문에 저는 폭발의 효과를 확인하고자 거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전차는 폭발 후에도 숲 가장자리와 배수로에 계속 사격을 해대어 다시 조용해질 때까지 1시간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전차로 다가가 폭약을 설치했던 무한궤도 부분을 검사했습니다. 반 정도의 폭이 부서지기는 했으나 다른 손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저희 조의 집결지로 돌아왔을 때, 다른 병사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거기 놔두고 왔던 제 군화를 찾던 도중에 폭약이 거기 남아있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그걸 들고 전차로 돌아가 맨발로 기어올라가서는 포신에 묶었습니다. 폭약이 그리 크지 않아 다른 건 몰라도 포신만은 부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전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폭약을 점화시켰습니다.

폭발이 난 뒤에, 전차는 즉시 숲 언저리와 배수로에 다시 사격을 해댔습니다. 이 사격은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고, 그때까지 저는 전차 밑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번 폭발의 효과도 살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에 붙인 폭약도 부족했습니다. 포신은 단지 약간만 손상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집결지로 돌아오는 도중에 저는 군화를 신으려고 했지만, 이건 제 것이 아니어서 너무 작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 전우 중 한 명이 실수로 바꿔 신은 게 분명합니다. 이게 제가 맨발로 뒤늦게 복귀한 이유입니다.

이야 말로 실로 용감한 병사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전차는 여전히 도로를 막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격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6월 25일 아침에 세운 네 번째 해결책은, Ju-87 “슈투카” 급강하폭격기의 전차 공격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구에서 항공 지원을 급박히 요청하여 이 방안은 실행될 수 없었고, 설사 실행되었다 하더라도 직격탄을 꽂아 이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우리는 이 강철 괴물은 지근탄 정도로는 격파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 전차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제거해야 했다. 도로가 차단된 상태에서 교두보의 전투력은 심각하게 위협받았고, 사단도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나는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이 계획은 얼마가 될지도 예측이 불가능한 병력, 전차 및 다른 무기의 손실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어쨌건 내 의도는 적을 혼란에 빠뜨려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할 작정이었다. 우리는 쉔크 소령의 전차들이 위장 공격으로 KV-1의 주의를 끄는 사이에, 또 다른 88㎜ 대공포를 끌어다가 이 괴물을 격파하는 것이었다. 전차 주변의 지형지물은 이 목적에 아주 잘 맞아, 길 동쪽의 높은 숲 지대는 전차로 가깝게 접근이 가능했고 관측 지점으로도 좋았다. 숲도 작은 나무들로 듬성듬성 이루어져 우리의 38(t) 전차는 쉽게 사방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제65 전차대대는 곧 도착해서 3면으로부터 그 전차를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KV-1 승무원들은 확연히 긴장했다. 포탑은 성가시고 더 작은 독일 전차들을 잡기 위해 좌우로 움직였고, 숲 사이의 좁은 틈으로 주포를 발사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항상 너무 늦었다. 독일 전차들은 겨냥했다 싶으면 어느새 사라졌다. KV-1 승무원들은 코끼리를 닮은 그들 전차의 두터운 장갑이 아군 전차의 포탄을 튕겨낼 것은 알았지만, 이 성가신 것들을 도로를 무방비로 남겨두지 않고서도 격파할 수 있다는 패기가 있었다.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소련군 승무원들의 이러한 열의가 재앙이 다가오는 그들의 배후를 간과하게 만들었다. 대공포는 이미 전날 오후 배수로로 굴러 떨어진 대공포 옆에 사격 위치를 잡았다. 강력한 포신은 전차를 겨냥했고, 초탄이 굉음과 함께 날아갔다. 부상당한 KV-1은 여전히 포탑을 후방으로 돌리려 하고 있었으나, 아군 포수들은 그 사이 2발을 더 쏠 수 있었다. 포탑은 회전을 멈췄지만, 전차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처럼 타오르지는 않고 있었다. 거의 이틀 만에 이 차량은 우리 사격에 더 이상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성공을 확신하기에는 일러 보였다. 88㎜ 대공포는 이 괴수에게 철갑탄 4발을 추가로 찔러 넣었다. 7~8발을 얻어맞은 적 전차의 주포는 이제 하늘을 향해 있었지만 전차는 아직껏 도로 봉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이 도로 위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멈춰 있었다.

이 흥미진진한 결투의 목격자들은 이제 포화의 효과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놀라웠던 것은 명중탄 중 단 2발만 장갑을 관통했고, 5발은 그저 깊은 상처만 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또 신형 50㎜ 대전차포가 낸 8개의 푸른 자국을 발견했다. 공병들의 공격은 무한궤도에 낸 손상과 포신에 낸 작은 상처뿐이었다. 아군 38(t) 전차에서 쏜 37㎜ 포탄 자국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 격파된 “골리앗”에 오른 작은 “다윗”들은 호기심에 포탑 해치를 열려고 애썼다. 그러다 아무리 당기고 밀고 두들겨도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포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군 병사들은 깜짝 놀라 흩어졌다. 재빨리 공병들은 수류탄을 꺼내 포탑 아랫 부분에 명중탄에 의해 생긴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곧 둔탁한 폭음이 들렸고, 해치가 튕겨 열렸다. 전차 안에는 방금 전까지는 그저 기절했던 것 같던 용감한 승무원들의 시신이 있었다. 이런 영웅적인 모습에 깊이 감동받아, 우리는 시신들을 예우를 다해 매장해줬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투쟁은 적 편에서의 작은 영웅적인 드라마였다.

이 한 대의 적 중전차에 의해 무려 2일 가까이 차단당한 끝에, 도로는 마침내 열렸고, 트럭들은 차후 작전을 위해 긴요한 보급품을 교두보로 나르기 시작했다......

2007/03/18 13:35 2007/03/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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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거리 2007/03/31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말 생생한 회고록 이군요. kv의 공포가 저렇게까지 심했을줄이야..

  2. 박민수 2007/08/05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V-1이라는 전차가 그렇게까지 위협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둔탁한 느낌의 그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생생한 글 잘보고 갑니다.

  3. 임성택 2007/08/28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련군 병사들, 정말 끝까지 용감했군요. 그들의 최후에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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