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쓸지도 모르는 물건이 방 구석에 1㎥ 이상 차지하고 있으면 사재기 병이라는 말이 있다. 필자도 업무 때문에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방 한켠에 계속 쌓여가는 것을 보니 병이 도진 모양인데…… 병에서 벗어날 겸 자기 전에 수면제 겸용으로 군사사 관련 책을 읽다 보니, 이제 차례가 노먼 데이비스(Norman Davies)의 『Rising '44』로 넘어갔다. 폴란드 국내군(Armia Krajowa, AK)의 바르샤바 봉기를 다룬 이 책은 처음 봤을 때는 종이부터 두툼한 750페이지 짜리 책이라 이걸 언제 읽나!라고 한탄이 절로 나왔으나, 막상 읽어 보니 재미있게 잘 쓰여져 책장 넘어가는 손길이 한결 가볍다.

내용 배분도 봉기 당대의 사건에만 할애한 것이 아니라, 봉기 이전/도중과 맞먹는 분량으로 봉기 이후를 다루고 있어 느낌이 색다르다. 그 동안에는 바르샤바 봉기가 왕정 및 망명정부를 지지하는 국내군 세력이 주도한 것이라 소련군 및 공산주의 진영에 의한 해방 및 정권 수립 이후 평가절하가 되었다고 막연하게만 들었는데, 이 책에서는 1944~47년에 벌어진 치열한 세력 다툼, 1956년 스탈린 격하운동 이전까지의 봉기 가담자들에 대한 탄압, 이후 오늘날까지의 복권 및 재평가의 단면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봉기 진행과정도 혼란한 전개과정에 무리하게 연속성을 부여하려하지 않고, 다양한 당대 기록, 회고록 등에 나온 일화들을 글상자로 촘촘이 병렬적으로 배열하여 다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 필자는 역사책의 경우 글상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놓고 보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잔혹한 파괴와 학살이 난무한 봉기 현장이었지만 역시 다양한 인간 군상과 에피소드가 그대로의 모습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책 읽는 가운데 짤막한 미소를 자아낸 가벼운 일화나 소개해볼까 한다:

1944년 9월 18일 미군의 공수 보급을 바라본 두 시선

폴란드 국내군 사령관 부르-코모롭스키의 회고:

그날은 날씨도 좋고 햇살 가득한 날이였다. 청명한 하늘.

물론 바르샤바 주민들은 구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미군 비행기들이 도시 상공 머리 위로 날아가는 예상치 않았던 모습은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을 자아냈다. 폭격기들은 매우 높은 고도를 비행했고, 그들 뒤에는 하얀 반점들의 자국이 남았다. 낙하산들이었다.

독일군은 대공포화를 날려 대었으나, 비행기에는 이르지 못했다.

바르샤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열정의 순간들을 헤쳐왔다. 병자와 부상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지하실에서 뛰쳐나왔다. 은신처에서 나온 사람들이 거리와 뜰을 메웠다. 그들은 이게 폴란드 공수여단의 도착이라고 믿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한 병사는 쌍안경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고함쳤다:

'이럴 수가, 독일군이 저들을 쏴대고 있어!'

한 장교가 그를 진정시키며, 그들은 공수부대원이 아니라 무기와 보급품을 담은 컨테이너에 불과하다고 설명해줬다.

'하지만 쌍안경으로 하늘에 흔들리고 있는 그들의 다리를 볼 수 있다니까요!'

병사는 계속 주장했다.

그래도 독일군들도 자기 부대들에게 비상을 거는 것을 보니 똑같이 판단 착오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독일군 수송부대 병사 H. 슈트렉바르트의 일기:

우리는 오늘 지휘소에서 대부분이 뉴스필름에서나 보아오던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13시55분 경 미군과 영국군 비행기들이 약 1,000미터 상공에 처음 2~3대씩 짝지어 나타났다. 대략 50~60대는 되어 보였다(나는 54대까지 세다 포기했다). 거대한 새 무리가 날아오르듯 많은 수의 비행기가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뭔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것을 알아챘고, 그것들은 우리들 바로 상공에 있어 보였다. 낙하산이 펴진다! 경보가 내려지고 포화가 울려대었다. 몇몇은 사람과, 관절과, 손을 목격했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서부에서처럼 여기도 마침내 공수부대가 투입되는 것인가? 여기에 그럴리는 없는데. 낙하산이 내려오면서 나는 까만색, 초록색, 노란색, 흰색 등 갖가지 색깔의 낙하산을 목격했다. 오, 저것들은 보급품 용기들이다!

…… 다른 용기들 안에는 독일 탄약이 있었다. 오, 이렇게 예의바를 수가. 미군들은 우리가 황급히 서부에 버려두고 온 보급품들을 갖다주고 있었다. 그것도 비행기로 바르샤바에 있는 우리한테까지 배달해주다니!1

비극을 덜 수도 있었던 인간관계?

제73 기갑척탄병 연대의 중대장 핫소 크라페의 회고:

…… 9월 28일 저녁에 모코토프에 위치하고 있던 제73 기갑척탄병 연대 2대대와 사단2의 다른 부대들은 봉기 진압을 위해 호출되었다. 공격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중대는 화염방사기와 3개 소대의 전투공병들을 가진 공병부대를 증원받아, 매우 넓고 엄폐물도 없는 포토츠카 거리를 따라 몇몇 가옥들을 공격해야 했다.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진격도 못한 채 32명의 사상자만 발생했다. 결국 오후에는 퇴각했다. 나중에 9월 30일에는 남서쪽 모퉁이의 간극을 봉쇄하는 임무에 투입되어, 봉기군이 항복할 때까지 거기 머물러 있었다.

Bor-Komorowski

폴란드 국내군 사령관 T. 부르-코모롭스키 소장

Källner

독일 제19 기갑사단장 H. 캘너 중장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상대편 폴란드측 인사들의 이름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모두 가명으로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복 후에 저쪽 장군(부르-코모롭스키)이 우리 사단장(제19 기갑사단장) 캘너(Källner) 중장을 만났을 때, 둘은 당당하게 차려 자세로 서 있었다. 기병으로서 그들은 전쟁 이전에 펜싱 대회에서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장군은 캘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하, 본관은 귀관께서 상대편에 계신 줄 알았더라면 훨씬 일찍 항복했을 겁니다.'

그는 제19 기갑사단이 시가전에 투입된지 고작 5일 밖에 되지 않았음을 몰랐었다.

Notes.
  1. 봉기한 폴란드 국내군들은 탈취 또는 노획한 독일군 화기들을 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 영국군용 탄약보다 독일군용 탄약 보급을 원해 벌어진 해프닝이다.
  2. 제73 기갑척탄병 연대는 제19 기갑사단 소속이었으며, 바르샤바 봉기 기간 동안 사단 병력 일부는 비스와 강 동안의 프라가에서, 다른 일부는 마그누셰프 교두보에서 격전을 벌였다.
2007/05/01 11:23 2007/05/0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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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Kubuś 바르샤바 봉기 중 봉기군이 직접 만든 장갑차

    Tracked from deutsch`s Web Cafe Blog 2007/05/03 11:57  삭제

    바르샤바 봉기는 1944년 8월 1일부터 시작되어 63일간 진행된 봉기였습니다. 이 봉기는 시민군으로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그야말로 영웅적인 봉기였죠. 빈약한 무기를 가진 시민군을 상대로 독일군은 슈투카 급강하폭격기를 비롯하여 헤르만괴링 강하기갑사단, 무장친위대 등을 총동원해서 무참하게 진압했습니다. 영화 <피아니스트>에 폐허가 된 바르샤바를 잘 묘사했죠. 포스터의 폐허는 소련군과 독일군 간에 전투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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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타인호프 2007/05/02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기군이 독일군 탄약을 필요로 한 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독일 병사의 대사가 더 웃기는군요^^;;

  2. 조이 2007/05/02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독일병사의 말이 너무 웃기네요. "이렇게 예의바를수가!!"

  3. 삽질랜드 2007/05/03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많은 보급품 중에서 대다수가 독일군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고 있었던 마켓가든의 원조가 되어 버렸잖아요. 그나마 봉기군 손에 들어간거는 주로 스텐건하고 박격포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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