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홈지기는 더만과 윌모트의 "금융 모델러 선언 (The Financial Modelers’ Manifesto)"을 번역하여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그런지 뉴스위크 최신호의 표지를 보고 짐짓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뉴스위크 표지는 겉면도 빨갛게 장식된 한가운데, 자극적인 문구가 금빛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름하여 「자본주의자 선언(The Capitalist Manifesto)」. 뉴스위크가 다분히 리버럴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과감한 표지를 선택하다니. 게다가 글쓴이는 바로 뉴스위크 인터내셔널의 편집장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이다. 개인적인 정치 스탠스 또한 대표적인 리버럴1로 알려진 자카리아인지라 도대체 무슨 내용을 썼는지 한껏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잠시 일을 제쳐두고 빠르게 커버 스토리가 실린 35페이지를 펼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예의 그 서두에는 세상을 배회하는 유령이 등장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문구로.
A SPECTER IS HAUNTING THE WORLD — the return of capitalism.
한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 자본주의의 귀환이라는 유령이.
그렇다, 이번 커버 스토리는 자본주의를 질타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세계 경제가 다소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내용도 아니다. 이 글은 비관과 낙관을 쉽사리 오고 가는 갈대 같은 인간의 본성, 그리고 그 특성이 녹아있는 자본주의의 숙명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Most of us want to see more punishment inflicted, particularly on America’s bankers. Deep down we all have a Puritan belief that unless they suffer a good dose of pain, they will not truly repent…… But fundamentally, markets are not about morality. They are large, complex systems, and if things get stable enough, they move on.
우리들 대다수는 더 많은 징벌이, 특히 미국의 은행가들에게 가해지는걸 보고 싶어한다. 우리는 가슴 속 깊이, 그들이 충분한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속죄하지 않을 것이라는 청교도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시장이란 도덕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시장은 매우 크고 복잡한 시스템이며, 사태가 충분히 진정되고 나면 계속 굴러갈 것이다.
자본주의를 떠안은 이 사회의 문제점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 해도 그 모든 책임이 '시장'이라는 존재로 쏠리는 발상은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시장 시스템의 복잡성(complexity)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제쳐둔 채, 감정의 과잉으로 시장이라는 시스템을 바라보는 시각을 마비시키는 것도 곤란하다.
Capitalism means growth, but also instability. The system is dynamic and inherently prone to crashes that cause great damage along the way. For about 90 years, we have been trying to regulate the system to stabilize it while still preserving its energy.
자본주의는 성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시스템은 동태적이며, 본디 그 행로를 따라 엄청난 피해를 입히며 붕괴되기 쉽다. 90여 년 동안, 우리는 그 에너지를 유지한 채 시스템을 안정하게 통제하고자 노력해왔다.
자본주의로 엮인 시스템의 동학(dynamics)은 아직껏 충분히 이해되고 있지 못하다. 인간이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너무나도 크고 복잡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성장의 욕구를 위해서 자본주의란 야생마에 애써 올라탄 운명이다. 오랜 세월 그 야생마의 속성을 탐구하며, 길들이고, 고삐를 바짝 쥐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면 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여지 없이 우리를 내동댕이치고 짓밟았다. 우리는 여전히 통제할 수 없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의 숙명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 골칫거리 야생마를 멀리 광야로 돌려보내고 안식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이제 좀 더 이 야생마를 다루는 법을 고민하고 다시 잔등에 올라타야 할까? 아니면 함께할 전혀 새로운 존재를 찾아 나서야 할까?
We are at the start of another set of these efforts. In undertaking them, it is important to keep in mind what exactly went wrong. What we are experiencing is not a crisis of capitalism. It is a crisis of finance, of democracy, of globalization and ultimately of ethics.
우리는 또 다른 한 줌의 이런 노력들을 기울일 출발점에 서 있다. 이들을 시작하기 전에, 정확히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되새겨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다. 이것은 금융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글로벌화의 위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윤리의 위기이다.
이 말의 진의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실의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감정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막연한 과녁에 꽂히고서는 더 이상 이성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한국에서 으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밀짚 인형에 저주의 송곳을 꽂는 유희가 횡행하듯 말이다.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좀 더 미세한 부분에서 위기의 본질을 풀어헤쳐야 한다.
자카리아는 작금의 현실을 자본주의의 위기로 보는 것은 침소봉대라고 이야기한다. 그 파급력이 아직 자본주의 시스템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들이 대책 없이 나가 떨어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실물 부문의 기업들은 건재하게 버티고 있다. 홈지기도 상반기 내내 수많은 국내외 기업들의 사업 동향과 재무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어서 웬만큼은 알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크긴 했어도 아직 연쇄 파멸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지금 상황은 엄청난 레버리지 경쟁에 골몰했던 금융 부문이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다. 이번 사태는 우선적으로 금융의 위기이다.
또한 금융이 이렇게 망가진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위기도 도사리고 있다. 저금리와 방만한 규제 완화로 누리는 달콤한 환상이 결국 미래를 갉아먹을 것임을 알면서도,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선출된 행정부와 입법부는 이를 방조하고 부추기는 입법에 거침없이 나섰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극적으로 감소한 정부부채를 다시 천문학적 수준으로 부풀린 것도 합법적으로 선출된 부시 행정부였다. 부자의 배를 우선적으로 불려주는 감세안에 지지를 보내는 의원들은 또 누가 뽑았단 말인가.
This is the disease of modern democracy: the system cannot impose any short-term pain for long-term gain.
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병폐이다: 이 시스템은 장기적인 이득을 위해 단기적인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주 자본주의를 두고 기업의 단기적 이익을 빼어먹느라 장기적 성장기반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 체제만큼 영속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보다는 지금 당장의 달콤함을 누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그러한 근시안적인 열망이 그대로 배어나는 무대가 있을까. 유권자들은 당장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수사에 혹해 쉽게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리고는 또 쉽게 그들을 조롱거리로 내몰며 냉소로 일관한다. 민주적 자질과 리더십이 결여된 어떤 분을 욕하기 보다는, 왜 그런 분이 저런 자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의 과정을 찬찬히 되짚어 보고 새로운 정치제도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글로벌화의 위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화가 만악의 근원인양 소리 높여 비난하는 자세도 톺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아시아, 특히 한국이야말로 지난 반 세기 동안 진행된 글로벌화의 최대 수혜자가 아닌가. 지난 사반세기 동안 아시아의 4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난의 절망에서 벗어났다. 글로벌화를 통해 경제 네트워크가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확장되면서, 빈곤에 시달리던 후발국 국민들이 수익을 챙길 틈새(niche)가 곳곳에 생겨났다. 단절되고 안정한 소규모 생태계는 충분한 생명체를 부양할 수도 없고, 특정 종이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구도가 깨지기도 어렵다. 이런 생태계들이 확장되고 엮여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틈새와 기회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글로벌화 속에서 운 좋게 기회를 얻어 이만큼 살게 되었고, 여전히 그 글로벌화 구도에 종속된 경제 시스템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의 확장이 기회와 위기의 지평을 동시에 넓혔다는 사실이다. 경쟁 구도에서 탈락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은 비참해지고 있고, 지난 번 글로벌 불균형과 Saving Glut 논란을 소개한 글에서 이야기했듯 안전하다고 믿던 선진국 국민들도 그 부작용의 파편을 맞고 있다.
The world economy had become the equivalent of a race car — faster and more complex than any vehicle anyone had ever seen. But it turned out that no one had driven a car like this before, and no one really know how. The real problem is that we’re still driving this car. The global economy remains highly complex, interconnected and imbalanced…… More broadly, the fundamental crisis we face is of globalization itself.
세계 경제는 점점 경주용 차처럼 변해왔다 — 사람들이 봐왔던 것보다도 더욱 빨라지고,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나 아무도 전에는 이런 차를 몰아본 적이 없었고, 사실 어떻게 운전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이 밝혀졌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는 여전히 이 차를 몰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는 대단히 복잡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불균형한 상태로 남아있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위기는 글로벌화 그 자체의 위기이다.
이 문제는 여러 번 제기되었듯이, 글로벌화된 시스템의 통제에 필요한 수단을 조정할 적절한 국제 공조 시스템이 미흡한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각국은 자국 경제 시스템 내부의 상충되는 이해를 조정하는데 쓸 수 있는 강제력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글로벌화된 경제 시스템 앞에서 그간의 경험은 여전히 부족하며, 이해 조정 및 공조 수단과 메커니즘은 한참 미흡하다. 지금 도래한 글로벌화의 위기가 과연 글로벌화의 물꼬를 돌림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면 EU 또는 그 이상과 같은 새로운 국제 공동체로 나아감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까? 이미 글로벌화된 시스템에 종속된 한국 경제 시스템을 위해서는 어떤 길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분명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금융 부문의 위기, 현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 글로벌화의 위기, 이 모두가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한 단계 층위를 내렸음에도 여전히 갈 길이 먼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복잡성과 불안정성, 불확실성 앞에서는 오만해서도 안되지만, 마냥 절망할 수만도 없다. 그래도 그게 한없이 막막하게만 보인다면 우리는 여전히 일말의 인성과 윤리에 대한 호소라도 기대야 할지 모른다.
We are in the midst of a vast crisis, and there is enough blame to go around and many fixes to make, from the international system to national governments to private firms. But at heart, there needs to be a deeper fix within all of us, a simple gut check. If it doesn’t feel right, we shouldn’t be doing it. That’s not going to restore growth or mend globalization or save capitalism, but it might be a small start to sanity.
우리는 거대한 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국제 시스템부터 각국 정부, 민영 기업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조리돌려야 할 숱한 비난과, 고쳐야 할 많은 점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는 내면 깊숙이 뭔가 고쳐야 할 점, 바로 간단한 직감 체크를 필요로 한다. 무언가 옳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우린 그걸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행동이 성장을 시키거나, 글로벌화를 개선하거나, 자본주의를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건전한 정신을 향한 작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름 장중한 시작에 비해 글의 맺음은 허망하게까지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맺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 작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느 한 구석 만만히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 온갖 지혜를 짜내고 노력하여 변화를 이뤄낸다 하더라도 끝내 또 어디선가는 실패하고 위기에 빠져들 것이다. 그럼에도 이 현실을 조롱하고 욕 하는데 소중한 시간을 허송해서야 하겠는가. 혹자는 금융 분야의 새 질서를 만드는데 힘을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표류하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긴 안목의 안녕을 도모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또 글로벌화의 새로운 장치와 협력 체제를 만들어가는데 힘을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것도 하기 어렵고 귀찮고 짜증나게만 느껴지는 분들이라면 자카리아의 말대로 하나라도 실천하시면 어떨까.
깊은 내면의 양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하긴 홈지기의 일상을 돌아보면 이게 제일 어려운 건지도 모르지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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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는 항상 저런식인것 같습니다..
전에는 금융위기는 인터넷 때문이다 라고 하더군요.
즉 인터넷으로 누구든지 모기지 버블을 알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기에 경제위기가 온거라는 식으로
글을 적었더군요.
실상은 그 위기를 지적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자신들 언론인들인데 말이죠.
위의 글도 개개인의 탐욕을 논하기 전에
그걸 고발해내지 못한 언론들의 문제부터
짚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언론이야 언제나 빠져나가기 좋은 구실들이 있지 않습니까. 전문가들도 몰랐는데 언론인들이 어찌 알 수 있었겠냐는…… 지적하신대로 언론의 기능도 느슨해지는 그런 시스템적 문제 또한 개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다만 저 글만 놓고 보자면 언론의 위기에 해당하는 층위가 위의 글에서 다룬 위기의 층위와는 조금 상이하다는 점에서 일단은 넘어가줄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넵, 지적 감사합니다.^^
!@#... 내면의 목소리에 기울여도 "나만 경쟁에서 도태되어 멸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널리 납득시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지만 말이죠. 여튼 크고 아름다운 떡밥, 기약은 없지만 잘 숙성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
역시 핵심적인 걸림돌을 쏙쏙 잘 끄잡아 내시는군요.^^ 요점을 집어내어 일반 대중들이 쉽게 동참할만한 행동 방향을 끌어내시는 재능이 살짝 부럽습니다. 저는 허구한 날 기호와 숫자, 수식 속에서 허우적대는 잡기밖에 없는지라 T.T
자카리아가 리버럴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그는 미국 보수주의의 아버지랄 수 있는 윌리엄 버클리의 아들 쯤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자카리아가 대학원생시절인가에 버클리의 여름 별장에 초대받기도 하고 버클리가 사망했을 때 그의 추도사를 뉴스위크에 실은 것이 기억나는군요.
자카리아는 인도계지만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스위크가 리버럴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자카리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구독자로서 처음으로 댓글을 씁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지적 감사합니다. 자카리아와 버클리의 연관성이 그렇게 되는지는 제가 몰랐네요. 과거 행적상으로 보수에 좀더 가깝다는 점은 저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로 접해온 근래의 행보로만 보면 리버럴 성향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게 제 판단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 간의 뉴스위크의 스탠스나, CNN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해온 그의 모습들을 보면 명확한 '보수'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봤거든요. 물론 좀 더 정확히는 네오콘과는 궤를 달리하는 현실적인 보수주의자라고 보는게 옳을 것도 같습니다. 첫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하고, 제가 좀 더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네요.
"개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쪽은 공화당 또는 보수세력들이죠.
헬스케어 문제의 경우에도, 개개인의 책임과 선택을 미끼로
국가의 의료보험을 전복시켰었구요.
매우 잘 쓰여진 글이긴 하나, 아쉽게도 이건 보수세력들이 만들어낸 레파토리로
"개개인의 책임"에 모든걸 뒤집어 씌우려는 무책임하고
저열한 의도가 담긴 글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작금의 위기는 개개인이 아닌, 투기 광풍을 그대로 방치한
보수세력 그들에게 있는 것이죠.
미국내 투기 광풍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다더군요.
본문이랑은 조금 틀어진 이야기지만,
영국 금융감독청(FSA)에서 작성한 Turner review 도 좀 참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머 이미 읽어보셨을 수도 있지만요...
http://www.fsa.gov.uk/pubs/other/turner_review.pdf
금융위기의 발단과 그 이전의 리스크 관리 모델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그 이후에 금융 감독 제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는 점은 참조가 될만한 것 같습니다.
아...요즘은 저도 좀 업무과 과한지라 '점심발송' 아이디어가 고갈됬다능...-_-;;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Turner Review는 틈틈이 읽고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엔 난데없이 금융기관 규제방안 개선에 대해서도 맡은 일이 있는지라 =_= Orca 님도 많이 힘드실텐데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그게 제가 만든게 아니라 이 텍스트큐브 기본 옵션이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눈에 거슬렸는데, 아무래도 귀차니즘에 시달리다보니 어느새 그냥 익숙해져버렸습니다. =.=
윤리의 위기 운운하기에는 늘 보던 모습의 재판이라... 뭐 지금의 위기가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도적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나 깊은 내면의 목소리 운운은 아들 부시의 첫 대선 때 많이 듣던 기억도 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