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주 동안이나 제대로 블로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6월에는 좀 한가하기를 바랬는데, 5월에 마무리 지었어야 할 일들이 지연되는데다 계속 후속 일들이 쏟아져 더욱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떤 때는 다소 바빠도 블로그나 다른 일상 생활이 함께 관리가 되는데, 또 어떤 때는 그런 구석에 도통 신경이 가질 않는다. 왜 그럴까 잠시 고민해보니 홈지기 경우에는 특히 숫자를 만지작거릴 때 그런 일이 빈번하다.
이번에도 거의 한 달 전부터 잡다한 숫자가 홈지기를 사로잡고 있었다. 회사 업무라 자세한 사항을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각종 유수 기업의 재무 데이터를 이용해 모종의 기업 평가모델을 만드는 작업이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게 글로벌 기업 데이터로 작업을 하다 보니 회계기준이 제 각각이어서 수작업 보정이 많이 필요했다. 결국 글로벌 기업마다 연차보고서, 분기보고서를 쌓아놓고 재무제표 들여다 보고 사업내용 파악해서 교정하는 작업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회계라고는 예전에 FRM® 자격시험 공부한다고 조금 들여다본 게 다였으니 결국 기업회계 책 찾아보고 직장의 재무전공자들에게 물어가며 일하는 수밖에.
그러고 나면 통계 분석을 하고 모델을 설계해야 하는데, 흔히 쓰는 간단한 모델로는 해결이 안 됐다. 게다가 재무 데이터는 홈지기가 예전에 다뤄봤던 데이터와 특성이 이모저모 달랐다. 통계 분석 핸드북 다시 꺼내고, 학교 시절 들었던 관련 과목들 내용 다시 복습해가며 결과를 뽑아 보고는 회의…… 또 문제가 발견되면 다시 시도해보고 또 회의…… 그렇게 데이터 가공하고 통계 분석해서 회의용 자료 만든답시고 한동안은 또 컴퓨터 모니터에 Excel, R, Eclipse만 띄워 놓고 살았다. 예전에 얼렁뚱땅 넘어가서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내용들 프로그래밍하려니 영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망각의 숙명을 한탄하며 뒤적뒤적, 뚝딱뚝딱, 데구르르…… (목 위에 얹힌 돌을 굴리는 소리)
이런 일을 반복하며 머리 속에 수식과 숫자만 뱅뱅 돌고 있을 때는 정말 블로그에 쓸 거리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웃 분들의 글을 읽어도 달리 생각이 잘 뻗어 나가지도 않는다. 느지막한 시간까지 그렇게 이리저리 수식을 맞춰보고 숫자를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반복하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남는 시간은 다른 업무관련 문서 작성하면 끝이다. 결국에는 침대에 누워서야 오늘도 이런저런 글을 못 올렸다는 자책감을 조금 떠올리고는 잠에 빠져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단순히 몸이 안 가는 것이야 어떻게 노력해볼 일이지만 머리에 제대로 글이 짜여지지 않는 것을. 방문객 여러분들도 가끔 홈지기 글이 뜸할 때면 숫자로 범벅 된 돌이 또 굴러가고 있구나 하고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기분이 영 답답하지만은 않다. 수식과 숫자나마 홈지기의 주의를 강렬하게 잡아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 순간에는 문득 소싯적 온종일 수학 문제집을 붙잡고 늘어지던 기억, 학창 시절 밤새 실험하고 정리하고 수식에 골몰하던 기억, 밤새 워크스테이션 앞에서 버그 잡고 데이터 들여다보던 기억 등이 왈칵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는 한다. 경제/경영/사회를 다루는 직장에 왔어도, 이렇게 아직은 이공계 출신(?)의 본능이 깊숙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홀연히 드는 것이다. 살면서 잡다한 일에 치여 바쁜 자신의 모습에 조금 울적하다가도, 무언가 잊고 있던 본능이 느껴질 때면 삶의 의지가 불끈 솟게 마련이다. 홈지기는 그런 느낌에서 작은 의지를 엿본다. 그리고 문득 그런 의지와 열정의 불씨를 조심스레 계속 지펴가면서 더 많은 지식과 디테일에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다져보았다. 허투루 세상을 재단하고 독설을 뿜어내는 무가치한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지금은 내뱉기보다는 빨아들이는 데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시기가 아니겠는가.
어느새 6월도 벌써 반이 넘게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남은 기간에는 말랑말랑한(?) 과제들도 해야 하니 그간 숫자로 가득 찼던 부분을 좀 덜어낼 수 있을 성 싶다. 그런 참에 그간 못 적은 글들을 채워보고자 노력하겠다. 아울러 방문객 여러분들께 조금 사죄(?)하는 의미에서 그간 비공개로 묶어놨던 Periskop Archive (http://archive.periskop.info)를 단계적으로 열어보고자 한다. 일단 옛 Periskop에 올렸다가 아직껏 복구를 안 해놨던 빌레흐-보카즈(Villers-Bocage) 전투 특집 글들을 일부 공개해놨다. 행여나 궁금하신 분들은 가끔 들러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또한 언제부터인가 Periskop Forum은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추정되는) 오류가 자꾸 발생하여 일단 차단해놓은 상태인데, 주말 쯤에 전면적인 보수를 한 번 해볼 요량이니 좀 더 참아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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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찌질한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깡마른 문과보다는, 실제로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공계가 더 멋지군요.
찌질함 vs 멋짐으로 보는건 좀 무리겠지요.^^ 직장에서 봐도 문과/이과할 것 없이 문제 해결에 달려드는 모습은 매양 비슷합니다. 개인차가 분명히 있지는 하지만 말입니다. 다만 문과/이과 출신이 그런 구도로 보이는 특정 직업군이 있다는 사실은 공감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걸 염두에 두시고 쓰신 댓글이라 이해하겠습니다.^^
전 이공계나 문과나 근본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문과쪽에서도 깊이있는 분들은 나름 이공계스러운 자신의 판단기법과 분류법들을 갖고계시거든요.
이공계 역시도 나름의 교류가 없으면 안되기에 깊이있는 분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이끄는 스킬부터 필요한 자료들을 요청하는 기술등 나름의 문과적 소양을 갖고있기도 합니다. 덕분에 아인슈타인같은 의외의 사람들이 쓴 유명한 글도 나올 수 있는것이겠죠.
찌질한 탁상공론만을 일삼으며 한자리에서 뱅뱅 도는 문과 뿐만 아니라 아는것만 반복해대며 허우적거리는 공과도 있답니다.
중요한것은 그런 의문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느냐의 여부겠지요..
은근히 찔리는 내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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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감사드리고, 말씀하신 글……은 제가 쓰긴 써야 할텐데 지금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서 뭐라 당장 답을 드리기 곤란하네요. T.T
Excel과 R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는데 Eclipse라니, 조금 의외로군요. (CDT? 아니면 널리 알려진 통계 관련 환경이 있나요?)
그러고 보니 저도 (본의 아니게) 코드에서 손을 떼게 된 지 꽤 되는군요.
코드 건드리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게 순식간이라서...
(me2day에서는 되는 오픈 아이디가 여기서는 안되네요.)
Eclipse에 따로 통계 환경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제가 통계작업 하면서 파이썬이랑 자바를 동시에 굴릴 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data mining이나 manipulation은 파이썬으로 해결하는데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픈아이디는 여기서도 잘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뭔가 일시적인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저도 여기 블로그에 오픈아이디로 로긴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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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공계 출신이지만 문과쪽으로 직업을 다시 바꿀려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학부시절 공업수학 시리즈 및 공업,유체,열,정,항/응역학
들과 C를 필두로 하는 부전공 과목들.....
거의 악몽이었습니다,
지금도 업무 관련해서 막연(?)하게 '이래저래하니 대강 이정도
아니겠나?' 하면 맞지만 실제로 계산을 수행한다거나 하면
눈과 뇌의 어지러움에 더불어 손발도 따로 논다는....
홈지기님의 박식함과 근성(?)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공계도 아닌 주제에 계산관련 일을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하긴 문과치고는 수학을 잘해서 대학입시 때는 상당히 도움을 받았었죠. 어쨌든 일이 바쁘실 때 글을 못 올리시는 거야 당연한 것이니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