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지기가 윌리엄 예이츠의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일랜드(에이레)의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1 그런 그의 평소 모습은 영화 구석구석에서 예이츠의 시를 읊조리는 프랭키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다. 마지막 순간에 매기의 귓전에 'Mo cuishle'의 의미를 속삭이고는2, 과량의 아드레날린을 투여해 생을 거두어 돌아서는 프랭키의 모습. 돌아와 어둠에 잠긴 그의 모습을 떠올리노라면 예이츠의 시상(詩想)이 자연스레 나를 감돈다.

Million Dollar Baby

그 손에 들린 까만 예이츠. (출처: Blu-ray.com)

그런데 지난 밤 침대에 돌아누운 언저리에서 예이츠의 시가 계속 맴돌았다. 아일랜드의 몽환적인 풍광 속에 우뚝 솟은 벤 불벤, 그 아래에서 무언가 나의 뇌리를 휘젓고는 머나먼 길을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Under Ben Bulben

벤 불벤 기슭에서

by William B. Yeats3

I.

Swear by what the sages spoke
Round the Mareotic Lake
That the Witch of Atlas knew,
Spoke and set the cocks a-crow.

Swear by those horsemen, by those women
Complexion and form prove superhuman,
That pale, long-visaged company
That air in immortality
Completeness of their passions won;
Now they ride the wintry dawn
Where Ben Bulben sets the scene.

Here's the gist of what they mean.

II.

Many times man lives and dies
Between his two eternities,
That of race and that of soul,
And ancient Ireland knew it all.
Whether man die in his bed
Or the rifle knocks him dead,
A brief parting from those dear
Is the worst man has to fear.
Though grave-digger's toil is long,
Sharp their spades, their muscles strong,
They but thrust their buried men
Back in the human mind again.

III.

You that Mitchel's prayer have heard,
"Send war in our time, O Lord!"
Know that when all words are said
And a man is fighting mad,
Something drops from eyes long blind,
He completes his partial mind,
For an instant stands at ease,
Laughs aloud, his heart at peace.
Even the wisest man grows tense
With some sort of violence
Before he can accomplish fate,
Know his work or choose his mate.

IV.

Poet and sculptor, do the work,
Nor let the modish painter shirk
What his great forefathers did,
Bring the soul of man to God,
Make him fill the cradles right.

Measurement began our might:
Forms a stark Egyptian thought,
Forms that gentler Phidias wrought,
Michael Angelo left a proof
On the Sistine Chapel roof,
Where but half-awakened Adam
Can disturb globe-trotting Madam
Till her bowels are in heat,
Proof that there's a purpose set
Before the secret working mind:
Profane perfection of mankind.

Quattrocento put in paint
On backgrounds for a God or Saint
Gardens where a soul's at ease;
Where everything that meets the eye,
Flowers and grass and cloudless sky,
Resemble forms that are or seem
When sleepers wake and yet still dream,
And when it's vanished still declare,
With only bed and bedstead there,
That heavens had opened.

Gyres run on;
When that greater dream had gone
Calvert and Wilson, Blake and Claude,
Prepared a rest for the people of God,
Palmer's phrase, but after that
Confusion fell upon our thought.

V.

Irish poets, learn your trade,
Sing whatever is well made,
Scorn the sort now growing up
All out of shape from toe to top,
Their unremembering hearts and heads
Base-born products of base beds.
Sing the peasantry, and then
Hard-riding country gentlemen,
The holiness of monks, and after
Porter-drinkers' randy laughter;
Sing the lords and ladies gay
That were beaten into clay
Through seven heroic centuries;
Cast your mind on other days
That we in coming days may be
Still the indomitable Irishry.

VI.

Under bare Ben Bulben's head
In Drumcliff churchyard Yeats is laid.
An ancestor was rector there
Long years ago, a church stands near,
By the road an ancient cross.
No marble, no conventional phrase;
On limestone quarried near the spot
By his command these words are cut:

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

_

맹세하라, 성자들이 한 말을 두고,
마레오티스 호수 언저리에서,
아틀라스의 마녀가 알았고,
말했으며 수탉을 울게 했다 한 말을.

맹세하라, 저 말 탄 자들, 저 여자들을 두고,
낯빛과 매무새가 초인임을 증거하고,
그들의 열정으로 거둔 완벽함인
불멸의 몸으로 하늘을 나는
저 창백하고 길쭉한 얼굴의 무리들을;
지금 그들은 차가운 새벽에
벤 불벤이 펼쳐놓은 자락을 달린다.

여기 그들이 품은 뜻의 고갱이가 있다.

_

사람은 삶과 죽음을 무수히 반복한다
혈통의 영원함과 영혼의 영원함이라는
두 영원함 속에서,
옛 아일랜드도 이를 모두 알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죽든,
소총에 맞아 죽든,
다정한 이들과의 짧은 이별,
사람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무덤을 파는 이들이 오래도록 수고하고,
그들의 삽이 날카롭고, 근육이 강할지언정
그들은 그저 묻히는 자를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돌려보낼 뿐이다.

_

미첼의 기도를 들은 당신은 알리라,
"이 시대에 전쟁을 보내주소서, 오 주여!"
그 모든 말이 끝나고
한 사람이 미치도록 싸우고 있었을 때,
오래도록 멀었던 눈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부족했던 마음을 다 잡고,
이내 쉬이 일어서서,
평화로운 마음에 크게 웃었음을.
자신의 숙명을 이룰 수 있게 되었거나,
자신의 책무를 알게 되거나 짝을 고를 무렵엔
아무리 현명한 이라 할지라도
짐짓 격렬하게 긴장하게 마련이거늘.

_

시인이자 조각가여, 맡은 일을 하라,
유행을 좇는 화가라도
위대한 조상들이 해왔던 바를 기피하지 말라,
사람의 영혼을 신에게로 떠받들어
그로 하여금 요람을 올곧게 채우게 하라.

가늠에서 우리의 힘은 시작되었다:
굳건한 이집트인이 생각한 형상들, 
온유한 페이디아스가 만들어낸 형상들,
미켈란젤로시스티나 경당의 천장 위에
하나의 증거를 남겼다,
거기에서 반쯤 깨어난 아담은
세상을 주유하는 마담을
속이 뜨거워질 때까지 뒤흔들 수 있었다,
이는 비밀이 도사리는 마음 이전에
하나의 목적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인류의 세속적인 완성이라는.

콰트로첸토 시대에는
신이나 성인을 배경으로
영혼이 안식하는 정원을 그렸다;
이 정원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
꽃이나 풀이나 구름 없는 하늘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서도 여전히 꿈꾸는 듯 할 때와,
그 꿈이 사라져버려
거기에 침대와 침대 틀만이 있는데도,
여전히 천국이 열렸노라고 외칠 때
실재하거나 그런듯해 보이는 형상을 닮았다.

윤회는 계속된다;
그 위대한 꿈이 사라졌을 때
캘버트와 윌슨, 블레이크클로드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휴식을 마련했다는,
팔머의 말, 그러나 그 후
우리의 생각에는 혼미함이 드리워졌다.

_

아일랜드 시인들이여, 그대의 직분을 익혀라,
잘된 것은 무엇이나 노래하고,
요즈음 자라나고 있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망그러진 것들을 경멸하라,
기억을 상실한 그들의 마음과 머리는
싸구려 침대에서 잉태된 비천한 존재들.
농민을 노래하라, 그리고 나서
열심히 말 타기를 익히는 시골 신사들을,
사제들의 신성함을, 그 후엔
값싼 술 마시는 자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쾌활한 귀족과 귀부인들을 노래하라
영웅적인 일곱 세기 내내
흙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지난 날들에 생각을 돌려라
그러면 다가오는 날에 우리는
여전히 굴하지 않는 아일랜드인이 될 수 있으리라.

_

벗겨진 벤 불벤의 봉우리 기슭
드럼클립 묘지에 예이츠가 누워 있다.
먼 옛적 한 조상은 그곳 교구 목사였고,
근처에는 한 교회가 서 있으며,
길가에는 한 오래된 십자가가 서 있다.
대리석 조각도, 의례적인 비문도 부질없다;
근처에서 캐온 석회암 위에
그의 유언에 따라 다음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많은 사람들은 예이츠 시의 일부만을 기억하고는 한다. 그의 시 많은 부분이 미술사와 아일랜드의 모진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느끼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홈지기도 아일랜드와는 한참 떨어진 이국 사람으로서 그 정서를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랜 고통으로 점철된 아일랜드의 역사를 접해오며 그 속에서 묘한 유대감을 느껴온 터라 가슴 한 편 나지막한 맞울림을 느껴왔다. 아스라히 한국 역사의 떨림이 느껴질 때면 예이츠의 시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 시에 나오는 벤 불벤은 오랜 옛날, 지표가 거대한 빙하로 뒤덮였던 시절, 얼음덩어리들이 깎고 지나가며 남겨놓은 암괴이다. 푸르른 목초지 위에 덩그러니 남은 벤 불벤의 모습은 척박한 아일랜드에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생명과 정신이 우뚝 솟은듯한 인상을 준다. 윌리엄 예이츠는 바로 이곳 언저리, 슬리고 카운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벤 불벤의 그런 정기가 고스란히 전해진 탓일까, 예이츠는 비록 더블린에서 태어나고 한창 시절은 다른 곳에서 보냈음에도 이 일대를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다. 마지막 연 내용처럼 영원한 안식처도 이곳에서 찾을 정도로.

예이츠는 그런 끈끈한 정서 밑바닥으로부터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기억들을 끌어내어 이 시에 담아놓았다. II연에서 그는 삶과 죽음, 억겁의 세월 동안 반복하여 마주치는 그 현실을 담담히 읊는다. 망자 위에 흙을 뿌리는 한 삽, 한 삽은 결국 그를 남은 자들의 마음으로 돌려 보낼 따름이라는 구절.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흐름이 느껴진다. III연은 또 어떠한가, 19세기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의 풍운아 존 미첼, 그가 지배자 영국을 저주하며 외쳤다는 섬뜩한 단말마, 우리는 그 끝을 알고 있다. 반역죄로 수감된 형무소에서 탈출하여 미국을 배회했고, 미국 내전(남북전쟁) 속에서 두 아들의 목숨과 한 아들의 한 팔을 잃고서야 돌아온 그의 뒤안길은 분노와 증오의 무망함을 상기시킨다. IV연을 휘감는 영적인 승천을 갈망해온 예술의 역사를 지나고 나면, V연에서 우리는 꼭대기 귀족부터 밑바닥 민초들까지를 관통하는 역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역시 떠나갈 운명을 지닌 예이츠 자신의 존재까지 대비시키며……

Ben Bulben

예이츠의 무덤을 굽어보는 벤 불벤.

서둘러 깬 아침, 다시 켠 TV에서 흘러나오는 모습들, 오늘도 그가 사랑하고 마지막 안식처로 선택했다는 봉화산 기슭 풍경이 나온다. 그에게 별다른 애증을 느껴본 적이 없는 홈지기에게 솔직히 더 이상의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유언에서 당부했다는 말의 의미가 아련히 벤 불벤에 겹쳐 떠올랐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4

그 비석에 새겨질 말이 무언지는 모르겠다. 다만 흩뿌려지는 흙과 함께 홈지기의 마음 한 구석에 돌려보내질 비석에는 이렇게 새겨질 것만 같다.

지난 날들에 생각을 돌려라.
그러면 다가오는 날에 우리는
여전히 굴하지 않는 한국인이 될 수 있으리라.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
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홈지기는 이제 지나쳐 앞으로 가련다. 그리고 언제고 예이츠의 시구가 다시 떠오르는 날, 역사 속에 나름의 의미를 새기고 지나간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굴하지 않는 정신을 다잡으리라.

Notes.
  1.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조상 가운데 아일랜드계도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배적인 혈통은 아니다.
  2.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Mo cuishle means my darling. My blood."
  3. 번역은 기존에 돌고 있는 우리말 판본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홈지기가 대폭 수정하였다. 비전공자로서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전액 신뢰하지는 말고 참고만 해주시기 바란다.
  4. 전문은 연합뉴스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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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5/27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shrike 2009/05/27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일랜드에 비유하기는 좀 그렇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때 과연 영국에 해당되는 그런 나라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니까 말이죠.
    (일본의 지배력은 구한말 포함해도 고작 50년 정도에 불과하죠.)

    전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태생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탓에 마치 껍질을 밖에서 깨줘서 나온 병아리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으니까요. 밑바닥 국민정서와 문화흐름을 보고 그것을 외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죠.

    노무현의 죽음 역시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그것에 비유하기는 모자라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평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말이죠..

    • Periskop 홈지기  2009/05/27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일랜드는 그냥 감정적 연결고리일 뿐이지요. 우리나라 역사와 아일랜드의 역사를 직접 비교한 대목은 없습니다만? 그리고 제 글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의 죽음을 노무현의 죽음과 비교한 대목도 없습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제가 왜 예이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일 따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예이츠 스스로가 만년에 절감하고 'Under Ben Bulben'에 적은 내용이 노무현의 자살과 상통하는 바가 있으리라는 느낌을 적은 것이지요. 제가 감정의 흐름을 옮기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게 썼나 봅니다.

    • shrike 2009/05/28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래 군사적으로도 적의 수장. 커맨더를 먼저 노리고 제거하는것은 전투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그렇죠. 국가 내부 정치집단간의 암투 뿐만아니라 국가간의 영향관계에 있어서도 2차대전 겨울전쟁의 '핀란드-만네르헤임' 같은 관계가 어떤것인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MB야말로 제대로 운을 타고난 인물이 아닌가 합니다.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악재가 터지자마자 북한의 20Kt 핵실험 성공과 급속한 정세진행으로 완벽한 디펜스에 성공했으니까요.
      안됐지만 이번 사태는 과거 촛불시위보다 더 심각한 파장을 가져올겁니다. 촛불시위가 재야계의 공세축선과 예비전력을 날려버린 사태였다면 이번에는 지휘부의 붕괴로 'MB POWER' 를 극대화 시킬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것이니까요. 대운하부터 시작해 다양한 부분들에서 '역습' 이 아닌 '대공세' 차원의 판도가 빚어질겁니다.

      현재 재야계의 수준이나 모양새를 보고있자면 찹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무능합니다.
      게다가 스스로 무능하다는것 조차도 모르고있죠. 저쪽에서 그걸 이제 완벽하게 감 잡았고 그간 그걸 잘 활용해왔듯 이번 기회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을겁니다.
      감상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대단히 심각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04867&RIGHT_DEBATE=R0 이런 글도 돌아다니는 마당이니 사회 다양한 분야로 눈을 돌려보셨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배후에서 어떤 문제가 진행되어 왔고, 어떤 일이 기획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직무 특성상) 이쪽이 더 정보가 많을 듯하니 크게 걱정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런 민감한 내용은 앞으로도 블로그건 게시판이건 공개된 장소에 구체적으로 적을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고라의 저 글은 왜 링크해주셨는지 도통 모르겠군요. mechanism design 내용을 정확히 알고 저런 비유를 했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혹세무민 수렁에 빠지기 쉬운 글인데 말입니다. 저 글 내용에 정말 솔깃하셔서 링크를 걸어주셨다면 아고라를 끊으라고 권해드리고 싶고, 저런 억지 비유가 난무하는 세태를 알리기 위해 링크를 걸어주셨다면 이미 많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shrike 2009/05/29 0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과거 '쇠고기파동' 에 따른 촛불시위가 어떤건지 보셨을겁니다.
      알려드리고 싶은것이 바로 그겁니다. 혹세무민의 structural mechanics 이죠.

      집단지성에 근거한 위키피디아같은 시스템이 실제로는 상당한 오류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곳에 실린 지식들을 추적해보면 극히 협소한 몇몇 소스들에서 기인해 복제된것임을 알고 계실겁니다. 즉 집단지성이 항상 옳으리라는 법은 없으며 그것에 대한 낙관은 마치 파생상품의 리스크평가를 그대로 믿는것과도 같은것이라는거죠.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는 항상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미 격어보고 지켜본바 있으시듯 말이죠..
      결국 그런 집단지성의 구조적 위험은 얼마만큼 양호한 기반에 리스크햇지를 제대로 해놓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형편없이 취약한지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단지 지식의 양이나 질.. 이전에 학계수준.... 이전에 교육체계...... 국민의 의식........ 그 밑바닥 정서까지.
      수직으로 큰 구멍이 뚫려있는것과도 같습니다.
      물론 그 구멍의 밑바닥에는 구멍의 출발점이 있죠.

      저 역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곳이 많다보니 저런것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스스로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도 말이죠. 덕분에 승병님과 같은 분의 장단점도 알게되곤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부딛히며 산다는건 정말 좋은것이더군요.
      스스로 말을 타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것인지. 가야 할 것인지를 길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3. 일화 2009/05/27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줄은 알았지만, 예이츠까지 수비범위이실 줄은 몰랐네요. 저야 예술적 소양은 꽝인 인간이라 반의 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막연하게나마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지는 알 것 같습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7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예술적 소양은 별로이고, 시감은 더더군다나 떨어지지만 가끔 머리 속에서 뒤적이기엔 좋은 것 같습니다. 예이츠도 나름의 매력이 느껴져서 가끔 들여다보는 정도입니다.^^

  4. dasleich 2009/05/27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지기님께서 제 정치적 성향을 잘 아실테지만,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이토록 슬퍼할 줄 몰랐습니다. 오늘 분향소에 다녀왔고, 지난 토요일부터 그야말로 추모의 마음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 항상 남보다 한 발 늦는 듯 합니다.
    노대통령 재임당시에는 속으로 괜찮은 정책이다 싶은 것들도 참 많았고,, 겉으로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속으로는 인간적 공감을 느낀 것 도 참 많았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그분의 모습에서, 언제나 저는 과거의 모습만 집착하다, 현실을 놓친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더합니다.

    올 여름휴가때는 딸들 데리고 봉하마을에 한번 다녀오려 합니다.
    언제나 제 본적지인 합천의 그분(?)만 바라보는 정치적 성향도 이기회에 고쳐보려 합니다.

    하여간 홈지기님은 국가원수가 되실 분입니다.
    정치적 소양에서, 지식, 인간적 됨됨이, 실력, 능력,,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분이니 말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dasleich 님의 말씀이야말로 놀랍군요. 전에 만나뵐 때도 이런저런 말씀을 듣긴 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저나 마지막 말씀은 이거 영 민망해서…… --a 그냥 흘려 듣겠습니다.

  5. 獨步 2009/05/27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0.
    슈타인호프님의 블로그에 댓글로 썼던 내용을 거의 재탕하게 됩니다만 어떻든 여기도 쓰고 싶어지네요. 개인적인 글쓰기 공간이 없다보니 지인분들 블로그에 관련글이 등장하여 댓글로 쓸 기회만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많은 듯.

    1.
    저는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이미지가 에르빈 롬멜원수의 그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지네요.

    2.
    제 거주지 근처 강남역에 뜻밖에도 분향소가 설치되었더군요 - 서초/강남/송파가 한나라당 지지의 철벽요새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아고라의 관련글을 보니 설치한 분들의 예상도 벗어나 천막도 치고 규모면에서 대한문 분향소 수준까지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밤에 한 번 산책겸 나가서 살펴보니 4열종대 대기열이 한 블럭 가까이 이어져있더군요.

    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 거의 시종일관 반대입장을 유지했던 저로서는 등산길 소망탑에서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빈 다음 적어도 장례식이 끝나는 순간까지만이라도 고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입닥치고 삼가하는 편이 '죄송하다'며 분향소에서 소리내어 울먹거리는 것 보다 덜 위선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 분향하지 않았다는 말을 이렇게 늘일 수 있다는...

    3.
    숙어집에서만 본 표현이지만 영어로 'bury the hatchet'이 '휴전하다'는 뜻이라죠. 어떻든 이번 일을 기회로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무기를 너무 자주 빼들지 않는 대한민국이었으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롬멜 원수의 경우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예리한 지적에 동감합니다. 막전막후에 그러한 측면이 있는데, 이 역시 짧게는 추모기간, 길게는 이번 정권 동안에는 차마 적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언젠가에는 깊이 다뤄볼만한 주제이겠죠. 그리고 강남역 분향소는 바로 회사 앞이어서 계속 지나쳤습니다만, 대한문 분향소 수준까지는 아니더군요. 저는 강남역 주변 사람들이 강남/서초/송파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아 큰 의미는 두지 않았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어떤 계기로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감정의 창칼을 녹여 이성의 보습과 쟁기를 만들기를 바랬는데 참 갑갑할 따름입니다.

    • 獨步 2009/05/28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강남'에 대한 저와 홈지기님의 대화는 '대한민국'에 대한 한국인과 박노자 교수의 대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웃음).

      거의 한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모습'과, 외부인으로서는 느낄 수 없는 '심정'은 하나의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모두 중요할 것입니다 - 대개의 경우 네가 뭘 안다고... 라는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 deutsch 2009/06/18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보님이 강남 거주민이신 줄은 몰랐군요. 아마 저와 분향소에서 마주칠 번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6. noblenight 2009/05/29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동안 바빠서 채승병님의 홈페이지도 제대로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소식을 듣고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월요일 새벽에 대한문 갔다왔습니다. 아늑하게 펼쳐진 병풍속에서 오랜만에 만난 예전 부대 지휘관이었던분과 담소나 나누고 왔습니다. 서로 오지말아야 할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의 모여서 만든공간에 아늑하게 느껴지는 병풍속에서 함께한 대화는 참 어이러니 하더군요

    과연 앞으로 남은 세월이 지난세월만큼 보다 더 많은데 얼마나 더욱더 많은 일이 생길지가 걱정이 됩니다.

  7. 민우엄마 2009/06/0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저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지요. 성경 전도서를 읽으면서 "삶에, 죽음에, 냉철한 시선을 던져라.말 탄 자여, 지나쳐 가라!" 이런 마음을 느꼈답니다. 그분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지요.

    그나 저나..참...사진과 글에서 느꼈던 내공이...이렇게 시까지...당최..전공자라고 하기엔 네루다 밖에 모르는 저의 팍팍함이 부끄럽네요!

    여하간 오늘 또 존경의 마음! 한자락 품고 갑니다!

  8. Bigcat 2009/06/11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읽어온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9. leopord 2009/06/14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부터 읽어봐야지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뒤늦게 읽습니다.

    잠깐 아일랜드 전설에 관심이 있었을 때 관련 홈페이지에서 상당수 전설을 글로 남긴 사람이 예이츠임을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가 교과서에 실렸던 기억만 가물했던 때였는데도, 예이츠와 아일랜드 사이를 연결하는 몽환적인 이미지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 깔려있는 오랜 정서-한(恨)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가 예이츠의 독립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새삼 생각하게 되는군요. 여담이지만 예이츠가 제임스 조이스의 데뷔에도 관계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벤 불벤 기슭에서>. 정말 좋은 시입니다. 뜻도 채 모르는 문구를 입에 넣어 혀로 굴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느낌이 들어요.

  10. 廣野 2009/07/22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니스프리 호도'와 빌더글러스의 음악을 즐겨 감상했었는데
    예이츠에 대해서 이해의 폭을 넓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Innisfree
    이니스프리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외줄기 엮어 진흙 바른 작은오막집 짓고
    아홉 이랑 콩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벌떼소리 요란한 숲 속에서 홀로 살으리.

    그리고, 거기에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방울져 내리거든
    한밤중에는 온통 빛나고, 대낮에는 보라빛 光彩가 있고.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그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의 잔물결 소리 듣고 있으니
    한길이나 잿빛 鋪道위에 서 있을 때도
    가슴 깊은 곳에서 그 물결 소리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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