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Source 캡콜드 님께서 새로운 캠페인, ‘백 투 더 소스’의 개막 테이프를 끊어 주셨다. 이번 ‘백 투 더 소스’는 캡콜드 님이 꾸준히 떡밥을 뿌려주신데다, 홈지기도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 캠페인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정상적 상황이라면 진작에 열렬한 환영 인사를 지어 헌상했어야 했거늘, 최근 2주 동안 갖가지 사건이 연발1하여 늦어진 점이 안타깝다. 캠페인의 세세한 면모에 대해서는 캠페인 메인 사이트를 가 보시면 쉽게 아실 수 있을 것이니 따로 적지는 않겠다. 다만 여기서는 홈지기가 그 동안 꾸준히 생각해온 ‘백 투 더 소스’의 의미를 잠시 부연하며 환영문을 갈음할까 한다.

‘백 투 더 소스’에서 추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캠페인에서 내세우는 ‘출처를 찾아 명시한다’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사실 논증의 근거와 인용의 출처를 정확히 밝히는 행위가 발전적 토의에 필수적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인류의 지성이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학계에는 이미 확립된 관행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의 영향을 받아 학계에서 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나, 매사에 꼼꼼한 분들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미 블로그 글쓰기에도 이를 꾸준히 실천해오고 계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2

그럼에도 일반적인 글쓰기에까지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귀차니즘’ 때문일 것이다. 논문 쓰는 것도 아니고 마음 편히 글을 끄적거리려는데 무슨 시비냐? 그런 식으로 꼬치꼬치 출처를 명시하라는 것도 상상력과 일탈을 옭아매려는 이른바 ‘먹물’들의 속셈이 아니냐? 하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맞다, 정제된 논문이나 보고서를 써본 사람들이라면 참고문헌 정리하는데 무진장 골치를 썩여보고, 그런 작업이 부족하다고 여기저기서 잔소리 들어본 경험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습관들이기가 녹녹치 않은데 곳곳에 암약하며 바삐 게릴라전을 벌이는 익명의 투사(?) 분들에게는 오죽하랴. 한시 바쁜 세상에서 그런 속박일랑 신경 쓰지 않고 내 목소리를 적어 내려가고픈 유혹은 언제나 강렬하다. 그만큼 ‘출처 명시’와 ‘소스 탐험’이란 몹시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질 만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홈지기는 ‘백 투 더 소스’ 캠페인이 권고하는 이 행위가 단순히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둘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이것이 역사 속에서 힘겹게 쌓아온 ‘무지의 철학’과 ‘의심의 자유’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실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故 리처드 파인먼을 인용하는 게 좋을 듯싶다. 기억하시겠지만 지난 글에서 홈지기는 파인먼의 인터뷰와 함께 관찰과 공감의 가치를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실상 홈지기가 그의 여러 자취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간직하고 있는 구절은 따로 있다. 바로 ‘과학의 가치’에 대해 역설한 다음의 연설문이다:

…… 과학자들은 무지와 의심과 불확실함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 경험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과학자가 문제에 대한 답을 모를 때 그는 무지한 겁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짐작만 한다면 그는 불확실한 겁니다. 사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꽤 확신이 서도 그는 얼마간 의심합니다. 진보하기 위해서는 무지를 인식하고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과학 지식이란 다양한 수준의 확실성을 지닌 진술들의 집합입니다. 어떤 것은 거의 확실치 않고, 어떤 것은 거의 확실한데,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그것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확신하지 않는 것에 어떤 모순도 없다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다시 말해서 무지한 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것이 옳다고 보는지는 나는 모르겠습니다. 의심하는 자유는 과학의 초기에 권위와 투쟁하면서 탄생했습니다. 우리에게 질문을, 의심을 허용하라. 확신하지 않을 자유를 달라. 우리는 이 투쟁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얻은 것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합니다. ……

우리의 책임은 이렇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고, 해결책을 개선하고, 그것들을 후대에 전하는 것. 미래의 인류에게 자유 재량권을 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어린 인류의 성급한 치기로, 오랫동안 인류의 성장을 저지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실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어리고 무지한 우리가 이미 해답을 가졌다고 말하면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모든 논의와 비판을 억압하고, “바로 이거야, 이것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리하여 인간을 오랫동안 권위의 사슬에 묶어두고, 현재의 상상력에 울타리를 쳐버리면 우리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지난날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과학자로서 우리의 책임은 이렇습니다. 무지의 철학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얼마나 진보적인 것인지를 깨닫고, 위대한 진보가 사상의 자유의 열매임을 깨닫고, 이 자유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 의심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환영하고 논의해야 할 것임을 가르치는 것, 모든 다음 세대들도 의무적으로 자유로우라고 다그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리처드 파인먼 (2001). 『발견하는 즐거움 (원제: The Pleasure of Finding Things Out)』. (승영조·김희봉 譯). 서울: 승산. pp. 157-158 및 161-162.

이것은 1964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갈릴레오 심포지엄(Galileo Symposium)3에서 행한 "현대 사회에서 과학문화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What is and What Should be the Role of Scientific Culture in Modern Society)"라는 연설의 일부이다. 원래 이 연설의 취지는 종교와 같은 절대적 권위가 자연스러운 의심을 품으며 새로운 지식을 탐구해나가는 열정을 압살해가던 과거를 상기시키고, 오늘날 과학계가 누리고 있는 ‘무지의 철학’과 ‘의심의 자유’가 수많은 투쟁 속에서 힘겹게 얻어진 소중한 유산임을 역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여기서 강조하는 사항들이 과학만의 전유물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인터넷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부르짖는 사상/표현의 자유와 상통하는 것이며,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가 링크를 달고 원전을 표기하는 행위는 단순하고 번거로운 헛수고가 아니다. 그런 과정 하나하나는 자신이 품어온 사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이나 기사의 링크를 달고 언급하는 것은, 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 그 글이 자신의 사고에 끼친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어준다. 그 링크를 보면서 우리는 글쓴이가 왜 이런 생각을 더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맥락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부딪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일회성의 독립된 하나의 문제로서만 판단하기 어렵다. 그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영향을 끼친 다양한 요인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도 있다.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문제를 조망하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최소한의 링크마저 걸지 않는다면 어찌되겠는가? 검색엔진이 워낙 발달한 세상이니 갖은 수고를 다해 바로 그 '사라진 링크(missing link)'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주고받다 망각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인간은 맥락 속에서 기억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시간을 두고 가치를 발하는 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신의 글에 맥락을 부여하는 작업, 링크 남기기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이것은 파인먼이 말한, 우리의 ‘무지를 인식하고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모든 맥락을 파악했을 리도 만무하고, 나의 생각이 결코 완벽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링크를 남기고 원전을 표기하는 행위를 통해 어떤 읽는 이는 나와 다른 맥락을 인지하고 의심을 품어볼 수 있다. 거기서 얻어지는 의견이 우리의 지식세계와 담론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반면 링크를 꼭꼭 닫아걸고 다른 사람의 의심의 길을 가로막아 나의 의견이 마치 완전무결한 것처럼 포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마치 전능한 선지자인양 사람들을 미혹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허깨비에 의지해 자신을 절대화하려는 시도는 또 하나의 비극의 씨앗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대해서도 ‘질문과 의심을 허용’하고 스스로를 ‘확신하지 않을 자유’의 길에 내던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의 네트워크 말단에 하나의 노드(점)과 링크(선)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그 위를 자유로이 활보하며 전혀 새로운 다리(bridge)를 놓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고 의심의 가지를 뻗어나가는 데에서 시작한다. 나의 반응을 이끌어낸 대상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그 대상은 올바른 추론 과정에 의해 도출된 것인지 의심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의심이 타당한 것인지 스스로 자료를 찾아가며 검증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하찮아 보일 수도 있고, 처음에는 별반 얻는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끔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눈을 크게 뜨게 만드는 발견을 끌어낼 수 있다. 이제까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존재해왔던 사실을 연결시키는 링크를 찾아내어 ‘아하!’라는 말이 나오게도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이제껏 과학이 발전해오고 인류의 지성이 발전해온 길이었다.

백 투 더 소스’는 인터넷 공간이라는 신천지(?)에 이러한 보다 적극적인 사고 과정을 실천하고 표출하자는 지식 명랑문화 캠페인이다. 이는 단순히 수수께끼 풀듯 ‘소스 따먹기’ 놀이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다른 이의 의견에 의심을 가져보고 나의 의견도 그런 의심의 대상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환영하고 논의해야 할만한 일이다. 홈지기는 이 캠페인을 통해 실천하는 작은 행위가 한편으로 얼마나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 많은 분들이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지의 철학’과 ‘의심의 자유’가 갖는 소중함을 깨달아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거대담론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자신만의 강박과 옹졸함을 벗어 던지고, 세세한 부분부터 신중함을 더해가는 작은 실천이야말로 답답한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출발점이라 다시금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홈지기도 ‘백 투 더 소스’ 캠페인을 적극 지지하며 짬이 나는 대로 미력이나마 보태도록 하겠다. 홈지기는 홍보전략 같은 부분이야 영 재주가 없으니, 나름의 소소한 실천 방안 — 비판적인 사고 방식, 링크 정리 방법 등 — 에 대한 글이 주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무쪼록 글 읽는 여러 분들도 캠페인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며 작은 실천을 더해주시면 고맙겠다. 우리가 남기는 링크 하나, 소스 하나가 분명 뒷날 누군가의 길라잡이가 될 것을 확신하며!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跡 遂爲後人程4

Notes.
  1. 모두 자세히 적기는 곤란하나 그 중 하나는 출장 다녀오는 길에 평소 글을 적어놓던 메인 노트북을 제대로 박살(!)낸 일이 있었다. 거기에 때맞춰 다른 UMPC의 HDD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끝내 운명을 다하기까지……
  2. 백 투 더 소스 캠페인 FAQ 12번도 참고. 이미 환영문을 헌상하신 다른 분들도 대부분 이를 잘 실천해오신 분들이다.
  3. Atti del Simposio su «Galileo Galilei nella storia e nella filosofia della scienza (과학사와 과학철학에서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Firenze-Pisa, 14-16 Settembre 1964)
  4. 이 한시도 서산대사가 지은 시로 알려져 있었고 홈지기도 그렇게 쓴 바 있으나, 오마이뉴스 2004년 1월 25일자 기사 "눈 길 가는데 어지러이 가지 마라"에 의하면 조선 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작품이라고 한다. 백투더소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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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본격 백투더소스 권장하는 포스트

    Tracked from 고어핀드의 망상천국 2010/06/18 00:19  삭제

    "출처를 밝히는 인터넷" 은 유익할 뿐만 아니라,평소에는 얻기 힘든 깨달음도 준다.1.이미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필자의 블로그 오른쪽 하단에는 "백투더소스" 캠페인 배너가 달려 있다. 본격 개념 블로거™ capcold 님이 시작한 이 캠페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터넷에 유통되는 정보에 출처를 명기하자." 는 운동 되겠다. 나는 이 캠페인이 아직 구상 단계일 때 capcold 님께 캠페인 도메인을 제보했으며, 지금도 나름 열성적으로(?) 참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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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pcold 2009/05/18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오오, 멋진 환영글 감사합니다. :-) 종종 인용하도록 하겠고, 이후에도 비판적 사고에 대한 좋은 글들 기대하겠습니다. // 배너는 미소녀 버전을 선택하셨군요. 사이트 분위기와 의외로 자연스럽게 잘 어울... (핫핫)

  2. 일화 2009/05/18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파인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군요. 현대 서구문명의 최대 미덕이 바로 저 의심의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19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심의 자유가 서구문명의 전유물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서구에서 많은 진전을 이뤄온 중요한 보편적 가치임에는 분명합니다. 국내에도 표현/언론의 자유가 의심의 자유로 승화되는 움직임이 뚜렷이 가시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이승환 2009/05/18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저도 곧 달 생각인데 저 냐옹이가 제 스타일이 아닌지라=_=

    • Periskop 홈지기  2009/05/19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ㅍㅍ 어떤 배너를 원하시는지 머리 속에 스멀스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제가 뽀샵 실력이 안 되어 만들어드리지 못하는게 한스러울 뿐입니다.^^

  4. 비단꽃 2009/05/19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2차대전 관련책이 나왔는데
    이 방면에 조예가 깊은 홈지기님께서 이책 평가해주셨으면 합니다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입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19 0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책이 앤토니 비버(Antony Beevor)의 작품이지요? 『Stalingrad』 같은 다른 작품들을 접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자가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라 읽기 편한 책입니다. 스페인 내전을 처음 접하는데 적당한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이 방면의 아주 권위있는 역사책이라든가 그런걸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이 책을 가볍게 읽고 —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닙니다만 — 스페인 내전에 관심이 더 생기시면 휴 토마스(Hugh Thomas)의 『The Spanish Civil War』처럼 좀 더 방대한 저작들을 읽어보시면 좋을 겁니다.

  5. 길 잃은 어린양 2009/05/19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편안하게 잘 읽히는 글 속에 진지한 화두를 심어 두시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나저나 고양이귀 미소녀가 취향이시라니 살짝 충격입니다.

  6. 슈타인호프 2009/05/20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달아둔 무미건조한 배너보다 더 예쁘네요 ㅎㅎ

    확실히 이야기할 때 근거를 적어두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이게 어디서 본 이야긴지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요. 저 스스로를 위해서도 출처 명시가 필요하긴 합니다^^;;

    • Periskop 홈지기  2009/05/22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고질적인 망각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자꾸자꾸 적어놔야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적어 놓고도 어디에 적어 놨는지도 잊어 먹으니 큰일입니다. -_-a

  7. Lawlite 2009/05/20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하신 것처럼 검색엔진이 워낙 좋아서, missing link를 금방 찾긴 하더군요. 위키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출처가 붉은 색 링크의 어느 웹페이지로 되어 있길래 해당 문장을 구글링했더니 금방 책 본문 검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국내의 여러 검색엔진들도 책 본문 검색을 지원하니, 사람들이 이런 강력해진 검색엔진의 기능들을 그저 넘겨버리지 말고 출처를 확실히 밝히는 데 썼으면 합니다. ㅎㅎ

    그런데 철십자 훈장과 포신부터 눈에 보이는 이 블로그 스킨에 고양이귀 미소녀 캐릭터 배너라니, 뜻밖의 조합이었는데 취향이시라니 더더욱 뜻밖입니다. :D

    저는 배너들이 블로그 스킨과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결국 직접 배너를 만들어 제 블로그에다 붙였습니다. -_-;

    • Periskop 홈지기  2009/05/22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서검색의 위력은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리라 확신합니다. 이런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 휴먼 인터페이스에 대한 문제도 큰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고요. 백투더소스도 그런 기술적 진보와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는지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고는 합니다.^^

      그나저나 제 블로그 스킨과 미소녀 캐릭터에 대한 선입관들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다음에는 좀 더 파격적인(!) 스킨으로의 변신을 도모……해볼까도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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