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블로그 대표 주제가 군사사인데도 한동안 관련 글을 올리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그 동안 짬짬이 구상했던 기획물(?) 가운데 하나를 실천에 옮겨보고자 한다.
홈지기도 요즘 가욋시간이 예전 같지않다 보니 특정 전역(campaign), 작전(operation)을 잡아 장문의 글을 쓰기가 좀 버겁다. 엄청난 분량의 글을 단숨에 토해내는 분들도 있다지만, 홈지기는 글을 정리하다 보면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하게 된다. 좋게 보자면 이런저런 자료를 보충하고자 하는 욕심이 과한 탓이고, 나쁘게 보자면 아직 지식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화보집마냥 사진으로 때우는 글은 이미 곳곳에 널려 있기에 홈지기까지 더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그러고 나면 그나마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것은 홈지기가 섭렵했던 책이나 자료들을 골라 소개하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국내 2차대전사 관련 게시판마다 근거 없는 억측과 헛소문이 여전히 가득한데, 홈지기의 소개글을 통해 보다 많은 분들이 좋은 문헌자료를 구해 읽으시고 이를 고쳐나가는데 앞장서주시면 좋겠다. 더 나아가 시간과 정열이 충분한 분들이라면 이들을 섭렵하여 멋들어진 연재글을 써주신다면 더더욱 좋겠다.

이처럼 마켓가든 작전은 이미 1970년대부터 재조명 작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에 나왔던 책들은 역시 독일군과 연합군 양측의 활약상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마켓가든 작전은 연합군 3개 공수사단이 에인트호번(Eindhoven)에서 네이메헨(Nijmegen), 아른헴(Arnhem) 까지 광범위하게 낙하하여 이곳 저곳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혼란스럽게 펼쳐졌다. 거기에 당시 독일군은 정신 없이 패주하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퇴각한 야전부대와 후방의 예비부대, 네덜란드나 독일 현지에서 급조된 부대들이 다수 투입되었다. 그야말로 육군, 해군, 공군, 무장친위대 소속 병력이 총출동하여 전투를 벌였다. 이러다 보니 장면마다 참여한 양측의 실상을 정확히 꿰뚫지 못하고 두리뭉실하게 처리한 책들이 너무 많았다. 이 때문에 이를 보완한 1990년대 이후의 빼어난 책들은 몹시 반갑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마켓가든 작전이건 최신의 양서 하나만 소개하면 되지 않느냐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다. 분명 어떤 분들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책만 섭렵하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기야 바쁜 세상에 비슷한 내용의 책들 여러 권 읽는 것이 뭔가 손해인 듯싶기도 하다. 하지만 홈지기는 가끔은 자신이 깊이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책을 골고루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여러 시기에 걸쳐 쓰여진 책들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진실이 어떤 순서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지,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시 어떻게 풀어 헤쳐져 나오는지가 느껴진다. 마켓가든 작전 이야기만 쫓아가더라도 전후 초기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주눅이 지배하던 시절의 기억과, 이후 세계구도가 재편되면서 승자 내부에서의 자성의 목소리, 패자 내부에서의 무시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를 곱씹는다면 아직도 세세하게 이설이 분분한 현실을 대할 때 어떻게 의문을 더해가며 진실에 다가갈지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1. Operation Market-Garden Then and Now (by Karel Margry)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이 책도 예외가 아니며, 시리즈 내에서도 수작으로 꼽을 수준이다. 특히 압권은 마켓가든 작전을 취재한 연합군 및 독일 선전부 종군기자들의 사진 및 영상 필름을 모조리 입수하여 이를 철저히 분석한 부분이다. 특히나 돌격포들의 지원을 받아 영국군 제1 공수사단을 마녀의 솥단지(Witches Cauldron, Hexenkessel)로 불린 오스터베크(Oosterbeek) 포위망에 몰아넣고 힘겹게 조여가는 과정은 이제껏 어느 서적에서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상세히 묘사된다. 진정 이제껏 보았던 모든 마켓가든 작전의 사진들이 이 책 속에서 아귀가 들어맞으며 머리 속에 쏙쏙 박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위업은 저자 Karel Margry가 기울인 오랜 연구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바로 네덜란드 출신으로, 자기 고장에서 일어난 이 드라마틱한 전투에 대해 어릴 적부터 매료되어 30년 가까이 자료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까만 슬립케이스에 담긴 2권의 하드커버 책은 그 자료의 묵직함을 겉으로도 느끼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다소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한 질이 ₤80 정도),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 책이니 마켓가든 작전을 알고픈 분이라면 잠깐 무리를 해서라도 장만하시길 권해드린다.
2. A Bridge Too Far (by Cornelius Ryan)
두 말할 필요가 없는 마켓가든 작전의 고전이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30년이 넘은 책이지만, 그 가치는 크게 퇴색하지 않았다. 특히나 군사사 책을 각 장면 및 단계마다 분석적으로 파고들기보다는 하나의 넌픽션으로 술술 읽어나가는데 만족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작전의 큰 흐름 속에서 여러 개별 에피소드를 녹여 나가면서 적절한 긴장감과 읽는 기쁨을 주는 맛이 있으니 말이다. 다른 다소 건조한 책들을 읽기 전에 마켓가든 작전의 이슈들을 개관하고픈 분들에게도 추천한다.
3. It never snows in September (by Robert J. Kershaw)

이 책은 발간 당시(1990년대 초) 영어권에 나온 책으로는 전례 없이 독일군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만큼 마켓가든 작전에서의 독일군에 대한 정보에 굶주려 하던 군사사 팬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영어권 독자들이라면 1990년대 이전까지 영미 연합군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자꾸 읽어가다 보면 패주하던 독일군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고 승자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뇌리를 때리고는 한다. 앞서 소개한 『A Bridge Too Far』같은 책에 나온 설명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남는 것이다. 저자 R. J. Kershaw는 바로 이 부분을 채우고자 하였다. 그리고 영국군 공수부대원들의 후배이자 군사사 연구자로서 독일측 자료들을 성실히 조사하여 바로 이런 점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특히나 이전에는 독일군 개별 부대사들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독일측 전투서열 정보를 최대한 모아 재구성해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홈지기도 1990년대 중반에 이 책을 접하고서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이를 많이 참고하여 대학로 모 소극장에서 하이텔 후원 군사동 주최 세미나를 한 적도 있었다. 지금에야 다른 충실한 서적들이 많이 나와서 그 빛이 다소 바래긴 했다. 그래도 마켓가든 작전 팬, 특히나 독일어 자료들을 구해다 읽기는 곤란한데 독일군 동향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4. Arnhem 1944 (by Martin Middlebrook)

1994년에 나온 『Arnhem 1944』 또한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대로 아른헴 장악을 맡았던 영국군 제1 공수사단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만큼 독자의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고 마켓가든 초기 이 사단 제대들의 동향과 아른헴에서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접근해간다. 아무래도 아른헴 시가의 전투에 대해서는 교량 북단을 장악한 존 프로스트 중령의 제2 낙하산대대와 사단 본대의 합류가 저지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의문에 대해 하나하나 책임 소재를 잘 짚어나가며 나름의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미들브룩의 글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제1 공수사단의 활약상에 관심이 많은 영국군 팬 분들이라면 이 역시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5. Battleground Europe: Market Garden 시리즈 (by Tim Saunders & Frank Steer)


- Hell’s Highway (by Tim Saunders): 마켓가든 작전에 참가한 지상군 병력들이 가느다란 실을 꿰듯 핵심 진격로 및 보급로로 삼은 길이 바로 이 ‘Hell’s Highway’였다. 끊임없이 측면을 두들겨댄 독일군의 반격에 어떻게 이 길이 진정한 지옥길(?)이 되었는지를 짚어가고 있다.
- Nijmegen (by Tim Saunders): 그라버(Grave)와 네이메헨의 교량 장악 임무를 맡았던 미군 제82 공수사단의 활약을 주로 그리고 있다. 독일군의 거센 저항을 뚫고 강행도하를 감행하여 교량을 장악한 전설적인 전투 전후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 The Island (by Tim Saunders): 네이메헨의 교량을 장악한 이후, 근위 기갑사단을 대신해 오스터베크의 제1 공수사단 구원에 나선 제43 웨섹스 보병사단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네이메헨을 내준 뒤에도 엘스트(Elst) 일대에 포진하고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하며 10월까지 전투를 끌어간 제10 SS 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의 활약도 볼만하다.
- Arnhem (by Frank Steer): 제2 낙하산대대를 중심으로 한 아른헴 교량 주변 및 시내 전투를 다루고 있다.
- Arnhem Landing Grounds and Oosterbeek (by Frank Steer): 아른헴 시내가 아닌, 제1 공수사단의 낙하지점 일대와 마지막 포위망에 몰린 오스터베크에서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들은 해당 전장 답사를 나서는 사람들에게 그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정보를 알려주고 오늘날의 지세와 비교해보도록 해주는 가이드북이다. 처음에는 책 두께로 보나 편집이 좀 세련되지 못한 걸로 보나 그렇게 믿음이 가는 책은 아닌 듯싶다. 하지만 이게 보면 볼수록 중간중간 박힌 사진과 설명에서 다른 책과 차별되는 가치가 느껴진다. 볼품 없는 이런 책을 굳이 살 필요가 있겠느냐는 마음이 들다가도 마켓가든 작전에 빠져들다 보면 꼭 5권 모두를 구비하고픈 자료의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저자 둘이 모두 군인 출신 — Tim Saunders는 소령, Frank Steer는 준장 — 이라 군사적 자료가치에 초점을 두어 저술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사기보다는, 개설서들을 읽은 다음에 언젠가 전적지 답사를 가겠다는 상상을 하며 한꺼번에 모두 구입해보라고 추천 드리고 싶다.
6. 영미 연합군측 공간사
항상 군사사를 공부함에 있어 꼭 참고하고 넘어갈만한 사료가 각국의 공간사(official history)이다. 마켓가든 작전에 대해서도 당연히 영국군, 미군 양측이 공간사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미군은 육군 공간사와 공군측 자료 모두 마켓가든 작전을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이에 비해 영국군 측은 배려가 좀 부족한 듯하다. 원래 영국군의 노르망디 전투 이후를 다룬 공간사가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한계도 있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수부대와 지상군 사단들을 망라하여 적지 않은 병력이 참가한 것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아무리 잘 봐줘도 1개 사단이 녹아 내린 찜찜한 결과에 대한 고려가 있었던 듯하다.
- The Siegfried Line Campaign (by Charles B. MacDonald) [링크]: 마켓가든 작전이 포함된 미 육군 공간사. 독일군의 지크프리트 방어선 외곽을 두들기는 미군 작전의 일환으로 소개되어 있다. 게다가 미 육군 공간사는 예전에 홈지기가 소개할 때보다 더욱 공개 폭이 넓어졌다. 이번 권도 온라인으로 공개되어 쉽게 볼 수 있다.
- Airbone Operations in World War II, European Theater (by John C. Warren): 미 공군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에서 벌인 공수작전에 대해 정리한 간행물이다. 이 방면의 표준적 저작으로 아직도 종종 인용되고 있다. 예전에는 미 공군 역사 연구처(AFHRA)에 전문 공개가 되어 있었는데 사이트 이전 관계로 링크가 삭제되어 있다. 그래도 구글링 잘 해보시면 어떻게든 구하실 수 있을 것이다.
- Victory in the West, vol. 2: Defeat of Germany (by L. F. Ellis): 노르망디 전투 이후 종전까지를 다루고 있는 영국군 공간사. 이 책은 온라인 공개판이 없는듯 하니 1950년대 하드커버판을 중고로 구하는 수밖에 없다.
7. 독일군측 부대사

그 다음 정식 군단사라고는 볼 수 없으나 마이클 레이놀즈(Michael Reynolds)의 『Sons of the Reich』도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도 커버하는 내용은 앞 책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앞 책의 저자 빌헬름 티케가 독일 무장친위대 출신인데 반해, 레이놀즈는 영국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인물이다. 그만큼 다른 각도에서 펼쳐지는 저자의 분석적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분량은 그리 많지 않으나 마켓가든 작전에서의 독일군 역할에 대한 나름의 견해가 꽤나 읽을 만하다.
기타 사단사 이하 수준에서의 독일측 서적들은 구하기도 쉽지 않고 크게 소개할만큼의 내용도 없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8. 그 밖의 책들
언제나 간편하게 전쟁사의 개요를 훑을 때 유용한 게 오스프리 출판사의 책들일 것이다. 마켓가든 작전에 대해서는 Campaign 시리즈 24권인 『Arnhem 1944』가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오스프리 출판사에서 내놓는 책 가운데 괜찮은 수준에 들어간다. 96페이지의 한정된 분량에 딱 필요한 만큼의 작전 개요를, 크게 틀리지 않은 내용으로 잘 소화해놓고 있다.

이외에도 마켓가든 작전 관련 서적은 꽤나 많이 있다. 특히 홈지기는 회고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모조리 빼놓았지만, 다양한 참전자들의 회고록이 남아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쪽을 파 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가이드는 홈지기의 기억에 의존해 쓴 것이니, 행여 유명한 책인데도 누락된 것이 있는듯 하면 지체 없이 댓글로 알려 주시기를 바란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P.S. [2009-05-06 추가]
홈지기가 깜빡 잊고 있었다. 마침 이웃 윤시원 님께서 작년 초에 아른헴과 오스터베크를 다녀오셔서 남긴 기행문이 있으니, 따끈따끈한 현장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 아른헴, Hartenstein 공수박물관 [길 잃은 어린양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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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님의 내공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시는 글이로군요...
뜬금없는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가끔 공간사(Official History)라는 어휘가 나오는것을 보는데 단어의 뜻이 어떻게 되는지요?
혹시 '公刊史'라고 쓰는 것인가요?
제가 IT 쪽에 있어서 그런지 공간... 어쩌고 하면서 나오면 Space Information.., geographical information.. 어쩌고 하는 것으로 자동으로 인식이 되어서 좀 혼란스럽습니다.
네, 맞습니다.
공간사는 공식간행사의 줄임말입니다.
그나저나 채승병 님이 오랜만에 2차 세계대전 관련 글을 쓰셨군요.
전 군대에서 읽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생각나는군요(사실 그거 하나 뿐이랍니다^^;). '지옥의 고속도로'를 돌파할 때의 난점이 기술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부대원들의 체험기에 집중하다보니 사료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먼 논픽션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 소개 잘 읽었습니다. :)
홈지기님의 소개글만 봐도 머리 속이 꽉 차오는 느낌입니다.
저도 언젠가 소개하신 이 책들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하네요. 감사합니다.
마켓가든작전을 보고 제가 느낀건 적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 자료가 아닌 막연히 패주하는 적이 강력하고 조직적 저항을 못할 거란 다분히 희망이 섞인 주관적 판단에 기초한 작전은 실패한단 것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이다 란 말의 의미를 깨우쳐 준 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