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걸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글감이 있었다. 발단인즉슨 그동안 정신이 없어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방명록 글 하나였다:
쓰신 글 중에 zdf mediathek의 다큐 프로그램을 소개하셨잖아요?
영어 자막이 없어서 어떻게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독일어를 배웠지만 벼락치기 시험용으로만 공부를 해서인지
듣기가 쉽지 않네요. 혹시 독일어 자막이라도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것도 구할 수 없다면, 그 정도의 다큐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서는 어떻게
독일어 공부를 하면 효율적인지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외에도 최근에 비슷한 취지의 댓글들이 몇 개 있었다. 공통적으로 홈지기에게 어학 공부의 노하우를 묻는 내용들이었다. 우선 질문해주신 분들에게 홈지기를 잘 봐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또한 제깍 답변을 드리지 못해서 몹시 죄송하다.
하지만 사실 홈지기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꽤나 난감해진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홈지기는 스스로 외국어 실력이 여전히 별로라고 믿기 때문이고, 둘째는 홈지기의 개인적인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점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홈지기의 외국어 공부 이력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너무도 멀게 느껴지던 외국어 학습
이 블로그를 죽 봐오신 분들은 홈지기가 그래도 여러 언어로 된 책과 자료들을 끄적거리고 있음을 아실 것이다. 아무래도 독일어권 자료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한 것 같고, 러시아 자료, 일본어 자료, 중국어 자료 등도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식으로 따지고 나면 홈지기가 적당히 할 줄 아는 외국어도 몇 가지는 된다. 대략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는 꼽을 수 있다. 물론 홈지기가 이 모두를 유창하게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어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 언어 실력은 독해력에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이 정도로는 여러 언어에 두루 능통하신 많은 분들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다.
다만 어렸을 적에는 이만큼 올 수 있다고도 상상을 못했다. 고등학교 시험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단과학원 다니며 성문 기본영어를 들고 영어 공부를 해야했을 때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기본영어도 답답했으니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종합영어나 영어의 맥 등 형형색색 참고서들을 들춰야 했을 때는 오죽했겠는가. 곳곳의 지문을 장식한 배배 꼬인 영국식 문장은 어찌나 짜증스러웠는지.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지문 앞에서 그 의미를 음미하기도 전에 마침표가 어디 있는지 찾다 꿈은 커녕 절망과 패닉을 느낄 때는 또 어떠했는지. 영어는 할 수 없이 하는거지 재미랑은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시절 제2 외국어로 배운 독일어 공부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명사를 외울 때마다 성(性, Genus)도 같이 외워야 하고, 동사는 분리전철과 비분리전철을 구분해야 하고, 격(格, Kasus)과 성에 맞춰 관사가 달라진다고 'der des dem den die der……'을 암송하던 기억, 모두 다 갖고 계실 것이다. 시험지의 괄호 안에서 이게 중성명사였나 여성명사였나, 이게 몇격 지배 전치사였나 머리를 쥐어 뜯을 때면 퍽이나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하기사 마크 트웨인도 독일어의 성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하지 않는가:
…… a tree is male, its buds are female, its leaves are neuter; horses are sexless, dogs are male, cats are female — tomcats included, of course; ……
…… 나무는 남성이고, 그 새싹은 여성이고, 그 잎은 중성이다; 말은 성이 없고, 개는 남성이고, 고양이는 여성이다 — 물론 수코양이도 포함해서; ……1
— excerpts from 'The Awful German Language'
명쾌해보이는 수학과 과학의 세계와 너무 대조되는 어학,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은 아니구나라는 생각 뿐이었다. 언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다는 십대 초반의 문은 이미 닫혀 버렸고, 어디 옆문은 없나 들춰대기도 맥이 빠지는 시기였다.
좌충우돌 감으로 익혀간 일본어
그러던 홈지기가 외국어에 대한 태도가 조금 달라진 계기는 일본어가 필요해지면서 부터였다. 많은 분들의 경우에는 망가, 애니, 일드 등이 계기가 되셨겠지만, 홈지기에게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좋아한 별 보기 취미가 계기가 되었다. 어쩌다 학교 과학반에서 관측회 몇 번 쫓아가서 망원경 들여다보고 어린 마음에 홀딱 반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좀 해보려니까 우리말로 된 자료가 없었다. 국내 서점 뒤지고 대학 동아리에 놀러가서 자료를 복사해왔어도 영 허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발버둥쳐봤자 까막눈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사회인 동호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듣고 바다 건너 일본에 자료가 풍부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부모님을 졸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월간 『天文ガイド』라는 잡지를 정기구독했다. 잡지 가득 각종 망원경 광고와 천체사진, 관측정보가 넘쳐나는 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 환희란! 읽을 줄 몰라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잘은 몰라도 잡지에서 소개된 괜찮아보이는 책들은 갖은 인편을 동원해 사재기부터 해댔다.
허나 문제는 잡지와 책은 쌓여가는데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배운 한자실력으로 읽으려니 희미한 뜻은 알아도 뭔가 갑갑했다. 답답한 김에 서점에 가서 일본어 문법책을 집어오기는 했으나 한 장(chapter)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때려 치웠다. 홈지기가 알고 싶었던 것은 얼마전 발견된 혜성이 어느 별자리 사이를 비집고 가느냐였지 다나카 상이 밥을 맛있게 먹었느냐가 아니었다. 그래서 홈지기는 밤새 오십음도를 옆에 펴고 잡지의 가나 위에다가, 그 발음을 후리가나 쓰듯이 영문자로 하나하나 적어 넣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이었던게 그러고 나니 가타카나로 표시된 외래어들의 뜻이 먼저 들어오기 시작했다. 히라가나는 제껴두고 일본에서는 서구 외래어를 어떻게 표기하는지 하나하나 읽는 것부터 시작하니 한결 내용 이해가 편해졌다. 그 다음에 히라가나 읽기를 하고 가끔 사전을 찾아가며 뜻을 짜맞추는 버릇을 들이다보니 문법은 몰라도 때려맞추기식 해석은 어느새 부드럽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어 문헌을 어떻게 읽어내려가고 모르는 의미를 보충할지 알게 되자 홈지기는 신나게 일본어 참고서들에도 손을 뻗쳤었다. 홈지기는 수능 시행 및 본고사 부활 첫 세대여서 당시 동기들 사이에는 일본 본고사 문제집, 참고서가 대 유행이었다. 게다가 홈지기가 다니던 모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재밌는 문제집들을 재빨리 입수해 소개하는 경쟁(?)이 붙어서 주말이면 주머니 탈탈 털어 교보문고, 종로서적에 들어오던 일본 수학, 과학 문제집들을 집어오고는 했다. 그러다가 수학의 정석 시리즈가 科学新興新社의 『解法のテクニック』를 노골적(?)으로 베꼈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했던 기억이 있다. 한가지 더하자면 우연히 본 오분샤(旺文社)의 『ロイヤル英文法』이 어찌나 인상 깊었는지 그때부터는 문법적으로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될때면 이 책을 들여다보던 기억도 난다.
전쟁사 책을 보느라 공부한 영어
그래도 일본어는 한국어와 여러 모로 비슷하니 — 같은 SOV(주어-목적어-술어) 구조에 어휘도 대거 공유 — 이런 방법이 우연히 통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영어 문제로 돌아오니 여전히 깜깜하고 갑갑했다. 대학교에 올라가자 1학년 교양과정은 내용이 고등학교 수준이랑 큰 차이가 없으니 어떻게 넘어갔다. 하지만 2학년 때부터 생판 모르는 내용을 영어 원서 교과서들로 소화하려니 정말 고역스러웠다. 물리학을 배워가면 이제까지의 직감으로만은 이해가 안되는 다양한 자연현상에 대한 서술을 받아들이고 두뇌에 그 개념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런만큼 교과서에도 통념보다 훨씬 많은 설명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어 독해가 잘 안되니 그런걸 다 읽다 제껴버리고 수식만 달달 풀고는 했다. 물리학과 학생들의 로망이라는 리처드 파인만의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도 원서를 사 놓고 지지부진한 영문 해석에 질려서 책꽂이에 모셔 두고 있던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재미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홈지기가 다니던 대학은 인터넷계의 선구적인 곳이어서, 학교 교양 컴퓨터 수업 시간에는 X 터미널을 이용해 텔넷으로 서버에 접속해 C 프로그래밍을 배우고는 했다. 거기서 홈지기는 친구들을 통해 뉴스그룹을 보는 법을 익혔다. 당시에도 뉴스그룹에는 세계 각국의 고수들이 활동하고 있어서 여러 유용한 정보들이 나돌고 있었다. 홈지기는 그때 관심있던 분야 — 2차 세계대전사를 포함 — 에 이런 새로운 사실들과 정보들이 많이 있는지 깜짝 놀랐었다. 국내에서는 PC 통신에서 일본어로 된 책들을 몇 권 봤으면 그래도 목에 힘줄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와는 차별적인 정보들과, 수많은 참고서적 리스트들이 돌고 있는 것에 몹시 흥분했다. 그 신바람에 잘은 몰라도 열심히 뉴스그룹 들락거리고 게시물 프린트해서 읽어보고, 나와 있는 책들을 어렵사리 주문해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NCSA 모자익과 함께 WWW이 가시화되고, 이후 넷스케이프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이 대중화되자 자극은 훨씬 쉽게 이뤄졌다. 지금은 잊혀진 books.com — 이 도메인은 나중에 반즈앤노블에 매각되었음 — 이나 bookshop.co.uk 같은 초기 인터넷 서점에서 듣도 보도 못한 책을 사모으는 재미도 참으로 쏠쏠했다. 아무래도 그때는 국내 누구도 잘 모르는 전쟁사 책을 내가 먼저 산다는 은근한 자부심도 상당했던 것 같다. 그렇게 책이 쌓이고 무턱대고 읽다보니 어느새 영어 구문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고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 효과는 나중에 대학원 입시 때문에 토플을 준비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토플 문제지의 문법이나 독해 지문에서 맞고 틀린 부분을 꼼꼼히 따지지 않아도 그냥 읽다보면 뭔가 '어색하다',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게 무척이나 신기했다.
어설픈 외국어 공부의 노하우
홈지기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의 외국어 학습방법을 조금씩 찾아갔다. 홈지기는 사실 진득하게 노트 필기해가며 교과서, 학습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섭렵하는 스타일의 공부, 어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공부는 질색이다. 올 연초엔가 어떤 의사 분의 무시무시한 노트 정리 신공이 화제로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정말 놀라운 열의지만 그렇다고 그걸 따라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홈지기 스스로가 잘 안다. 마찬가지로 사전을 한 장씩 뜯어 삶아 먹는다는 의기로 외국어를 공부해서는 A 파트는 커녕 Ac...쯤 가서 던져버릴 것임도 잘 안다. (두 번인가 시도했다가 무참히 실패했다.) 또한 홈지기 직장이 강남역 부근이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비한 외국어학원의 수강생들과 곳곳에서 맞닥뜨리는데,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들 외국어 공부만 할 수 있을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1. 필요성의 자각
결국 홈지기가 새긴 최우선 조건은 어떤 경우든 그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이후 한참 놓아버린 독일어를 다시 잡게 만든 것도, 독일 배낭여행을 다니며 무작정 집어온 전쟁사 책들이었다. 일본어, 영어 서적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는 독일어권 서적들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이미 일본어와 영어를 좌충우돌로 헤집으며 익혔으니 독일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Der Teil und das Ganze2』, 괴테의 「Marienbader Elegie」, 막스 뮐러의 「Deutsche Liebe3」, 쉴러나 브레히트의 시가들을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욕구가 쏠쏠한 양념이 되었다.

홈지기에게 독일어 학습의 불을 지른 장작의 주인들
그만큼 자연스러운 욕구와, 함께 분비되는 말랑말랑한 감정을 섞어 칵테일을 만들 준비가 되었을 때만 외국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홈지기에게는 외국어 능력을 갖추는 것은 지적인 욕구(또는 소통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일뿐, 무슨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억지로 갖춰야 할 필요조건은 절대 아니었다.
2. 익숙함의 추구
그 다음에 깨달은 바는 어떤 외국어인들 그 안에서 띄엄띄엄 실마리를 찾아가며 헤매는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어 책을 다시 들었을 때, 이미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문법은 거의 다 까먹었고 어휘력은 보잘 것 없었다. 그래도 무턱대고 계속 읽고 중얼거리기를 반복했다. 독일어 어휘도 영어 어휘와 유사한게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읽다 보면 뜻이 들어오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재미삼아 생각날 때마다 뒤적이다보면 어느새 형언하기 힘든 '익숙함'이 느껴지게 된다. 아무 장을 펴들어도 뭔가 단속적이나마 의미의 연속성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여기에는 책으로 활자화된 문장에 익숙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듣고 스스로 말하는 자연스러움이 가미되면 더욱 좋은 것 같다. 그걸 터득하는 쉬운 방법은 역시 외국어 방송, TV 프로그램, 영화 등을 열심히 보고 따라 읊는 것이다. 홈지기는 국제뉴스 알아보는 목적으로 케이블TV에서 하던 Deutsche Welle 뉴스를 청취하거나, 독일 시대극 영화, 다큐멘터리를 주기적으로 보며 중얼중얼 따라 했다. 그런 것들은 그 자체가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있었지, 따로 어학공부를 해야겠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했다면 도저히 참지 못했을 것이다. 이짓이 늘다보면 언어의 세세한 부분은 몰라도 웬만한 읽기나 듣기의 익숙함이 느껴진다. 바하문트 님의 글을 보면 작고한 캐롤 촘스키(노엄 촘스키의 부인)의 연구에 기반한 'Repeated Reading' 방법 — 이 이름으로 구체화시킨 것은 미네소타 대학의 새뮤얼스 교수로 알고 있다 — 이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하니 전혀 엉뚱한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다른 언어에서는 이 장벽이 독일어보다 좀 더 높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어를 할 때는 묘하게 생긴 끼릴문자에 익숙해져야 하고, 중국어를 할 때는 간체자에 익숙해져야 한다. 듣기로 따지자면 러시아어의 현란한 자음 구분과 중국어의 성조같은 것들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홈지기는 물론 아직 그런 모든 요소에 통달하지는 못했다. 이들 언어에 대해서는 아직껏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독해'에만 익숙해지고자 노력해왔고, 알고자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어와 중국어 등은 아직도 어색함이 여러 군데에서 느껴지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러시아어를 듣고 중국어를 듣고 말해야겠다는 필요성이 턱밑에 차오를 때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3. 지식과 감정, 맥락의 결합
그 다음 단계는 특별할게 없다. 필요에 의해 집어든 내용 가운데에서도 그 뜻을 꼭 정확히 알고 싶을 때만 사전과 문법책을 뒤져 적어놓는 것이다. 쓰고 나니 숱한 영어 학습서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크게 다를게 없어 꽤나 민망한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홈지기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도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홈지기가 앞서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에 어학 공부에 절망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암기력이 매우 약해서였다. 특히 홈지기는 단기기억(STM)을 장기기억(LTM)으로 넘기는 부분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거기에 나쁘게 보면 건망증이 좀 있고 좋게 보면 기억의 재편집 및 필터링도 활발(?)한 듯 싶다. 그러다 보니 어학 공부에 전념한답시고 열심히 단어, 숙어, 문법 외워도 나중에 건지는게 몇 개 없었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려다 보니 흔히 이야기되는대로 학습 과정에 감정과 맥락을 최대한 결합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어학 지식에 대한 감정적인 필요를 최대한 끌어내고, 이 지식을 홈지기가 즐겨 보고 그나마 기억을 잘 하는 과학, 경제, 역사 등의 이야기 맥락에 끼워넣는 것이다. 말은 그럴듯 하지만 나름 괜찮다고 쓰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홈지기가 재밌어하는 과학, 역사, 경제 등 책 사이사이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단어와 간단한 문법 사항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놓는 것이다. 주의점은 어학 교재 지문 분석하듯이 어학 지식으로 책이 꽉 차면 안된다. 그 책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압도할 정도로 너저분하게 어학 지식을 우겨넣으려 하다보면, 책의 진도도 나가지 않고 내가 기대했던 필요와 의욕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구식이어도 펜으로 포스트잇에 하나하나 적는걸 선호한다. 아무래도 키보드 두들기는 것보다 손끝의 다채로운 근육의 움직임을 실어 써 내려가는게 뇌에 자극을 더 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어 섭렵한 책이 늘어가다보면 외국어에 대한 해석능력이 조금씩 커가는 듯하다. 불현듯 다시 맞닥뜨리는 단어와 문법 구조에서 이걸 메모했던 책의 내용이 떠오르고 연상작용이 일어나다가, 점차 그 내용이 침잠하여 기억의 밑바닥에 다져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홈지기의 경험이 별 도움이 안 될듯한 이유
여기까지 들어보면 왜 홈지기의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안되리라 생각하는지 감을 잡으셨으리라 생각한다. 홈지기는 외국어 교수학습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보지 않았다. 그런만큼 회화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외국어 능력을 어떻게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끌어 올릴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홈지기에게는 외국어는 학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대상일 뿐이었다. 때문에 다소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독해 위주로 홈지기에 맞는 방법을 찾으려고 약간의 노력을 했을 뿐이다. 아직도 그런 새로운 학습법의 자잘한 시도는 계속하고 있으며,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갈 길이 멀다.
더군다나 홈지기는 외국어 공부에 대한 절박감(?)이 그다지 없다. 영어 실력을 꾸준히 쌓고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야 밥벌이와 깊은 관계가 있으니 의식적으로 한다지만, 다른 제2, 제3의 외국어들은 그냥 적당히 필요한만큼 조금씩 해나갈 뿐이다. 여러 외국어로 된 책들을 하루 이틀 보고 놓을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평생 지적인 취미 삼아 채워나갈 부분이라는 느긋함을 갖고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빠른 어학 실력 향상을 바라는 분들에게는 정말로 변변한 도움을 드리기 어렵다.
홈지기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는 그저 너무 고민만 하지 마시고, 처음부터 지레 겁먹지 마시고, 외국어의 얕은 물부터 뇌를 적셔보시라는 것밖에 없다. 외국어가 결국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필요한 만큼만 공부해서 자신의 지적인 욕구를 채워갈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만큼을 익히는 데는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게 아니다(라고 믿어야 한다). 그렇게 부단한 학습을 추구하다보면 어느새 외국어도 익숙해지고 조금 더 발전한 자신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에는 여러 압박 속에서 급히 처리하고 배워 써먹어야 할 지식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가운데서 긴 호흡으로 나만의 길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즐길 수 있는 학습의 주제를 가져보는건 어떨까. 그리고 외국어도 그 길라잡이로 가볍게 함께 배낭에 꾸리고 나서면 어떨까. 모쪼록 방문객 여러분들의 외국어 공부도 꼭 성공하시길 바란다, 화이팅!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 나무 = der Baum, 새싹 = die Knopse, 잎 = das Blatt, 말(馬) = das Pferd, 개 = der Hund, 고양이 = die Katze
- 과거 김용준 교수(도올 김용옥 교수의 형)가 번역하여 소개하였으나 읽다 보니 어법이 영 어색하여 독일어 원문이 궁금해졌다.
- '독일인의 사랑'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소설(? 서사시?)이다. 홈지기도 친구의 소개로 나름 감명 깊게 읽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정작 독일 현지에서는 거의 아무도 모를 정도로 잊혀진 작품이란 것이다. 막스 뮐러는 유명한 언어학자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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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개멍의 생각
Tracked from gaemon's me2DAY 2009/03/24 00:36 삭제여튼 영어공부에 대한 똑같은 글을 쓰려고 했는데 체스님이 먼저 썼다. Periskop over Military History :: :: 외국어 공부는 필요한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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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영어 공부하는법 :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데카르트"가 되어야 한다
Tracked from 리카르도의 선형적인 게슈탈트 2009/03/24 21:06 삭제제가 학창시절 약 4개월간 영어 공부를 했던 기억을 살려서, 체험기 형식으로 적어봤습니다. 공부 하시는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당시 4개월의 공부후 받은 고2 모의고사 영어 점수는 만점이었습니다. 그 점수는 졸업할 때 까지 지속되더군요. 저는 중학교때 영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충 찍어서 맞추는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때 들어가서야 영어라는것을 제대로 공부하게되었죠. 그때 교과서와 선생님의 주입식 교육을 통해 배우면서 항상 이런생각이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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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Log on 4th April 2009
Tracked from Fly, Hendrix, Fly 2009/04/02 22:55 삭제I've been devoting myself to learning English for 2 months. I've done a lot of things but I haven't clarified how to do that for a month. I have to get more scores on TOEIC and TEPS but I haven't studied TOEIC nor TEPS accurately. Just practice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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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에 남겼던 글에 대해 이렇게 긴글로 답변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외국어 공부해 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실례가 아니라면, 블로그 주인장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물리학 얘기가 나와서 종잡을 수 없어서 이렇게 여쭤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
바로 아래 댓글의 쥔장님 본명만 네이버에서 쳐도 나와요.
XX경제연구소 복잡계연구원.
그리고 이 블로그에서도 본문이나 댓글에서 언뜻 언뜻 언급이 됐던걸로 기억.
방명록 글쓴이께서 금방 보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보시다시피 제 경험은 도움이 될만한 부분이 변변히 없으니 그냥 참고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결국 공부란게 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아 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윗분 말씀대로 모 민간 경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야..
채승병님 덕분에 좋은 생활습관을 들이고,
건전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저도 말씀하신대로, 외국어를 익혀가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어는 사전한권으로 안되는게 없더군요.
문법책 달랑 한권 2번 정도 봤고, 어휘나, 숙어, 문장구조에는 젬벵이지만,,
사전만으로도 뜻이 신기하게 통하더란 말이죠...
이제 저도 독일어 책에 손을 뻗쳐 보려 합니다.
의외로,
러시아어..(이것도 순전히 홈지기님 덕분입니다.)가
눈에 익숙해 지는 걸 느낍니다.
올해말 혹은 내년까지 러시아어가 현재의 독일어 수준이 되면, 딱 언어 한가지만 더 익히려 합니다.
그게 프랑스가 될지,,
전에 좀 익히던 스페인어가 될지...
일본어나 중국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제 삶에서 큰 영향을 끼친 홈지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이유입니다.
찬사를 마다하시는 분임을 너무 잘 알지만,,,
제가 외국어와 전쟁사 공부를 하면 할수록,
홈지기 님은 신의 경지라고 밖에는 할수 없더군요....
저는 그냥 가볍게 흘리는 말인데 저렇게 휘리릭 내용을 따라잡고 실천하시는걸 보면 dasleich 님의 경지가 더 높아 보입니다. 저야 발에 걸치는 신(靴) 수준이지요. 아무쪼록 앞으로도 지적 성취를 많이 이뤄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외국어를 할 줄 알다고 알려진 블로거들이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을 받으셨군요. 제가 생각했을 때, 진정한 정답을 적어 놓으신듯 합니다^^:: 저도 중국에 버려져서?! 살아남기 위한 중국어를 배웠기에(그리고 진정한 언어교육의 스승님도 계셨고요^^) 지금은 어디가서 그리 부끄러울 정도는 아닌듯 합니다. 그에 반하여 일본어와 영어는 단지 전공논문을 볼 정도의;;; (남들이 보면 오~~ 4개국어를 한다고 하지만...실제로는....)
하지만 저 같은 경우 남들이 물어보시면 보통...무식하게 외워라라고 한답니다.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어떻게 공부해야될까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은 조금 급박한 상황이 많더군요. 그럼 죽어보셔요^^:: 라면서 무식하게 외우기를 권한답니다. 어떤 언어든...한 만자정도 아무 생각없이 외워서 써내려갈 정도가 되면 바보라도 감이 잡히더군요. 하하;;;;
방문 감사합니다. 바로바로님 블로그는 TNM 디렉토리를 따라 찾아가 글을 읽고는 했는데 이렇게 댓글 남겨주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네요. 저는 국내에서 딩굴딩굴하며 외국어를 공부했으니, 바로바로님처럼 현지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외국어를 익히고 살아가는 경험이 꽤나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자주 들러주시길 바랍니다~^^
rss 구독중이랍니다. 감시당하고 계셨던겁니다^^::::
전 중학교 때 일본 게임을 하느라고 카타가나와 히라가나를 익혔고 전공 공부를 하느라고 영어를 팠죠... 애니메이션을 미친듯이 보다 보니 일본어 히어링이 어느 정도 되더군요?
문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익힌 게 없다는 거... 영어는 스피킹에 문제가 있고 일어는 문자와 음성언어가 매치가 안됩니다... ^^
그래도 그렇게 익힌 표현이나 단어는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외국어는 필요에 의해서 즐기면서 익히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언어를 습득하는 선천적 능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돌이켜보면 그런 능력에 기대어 무작정 보고 들으며 모국어 이외의 언어를 익히는 경험을 가져보는게 꽤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어도 독해 말고 회화까지 좀 잘해보고 싶은데 아직 영 지지부진하군요. =_=
수능 시행 및 본고사 부활 첫 세대여서 => 설마 94학번?! 저보다 연배가 위이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동갑이셨던 겁니까?! 내용에 대해서는 정답 중에 정답이라고 생각되는데, 지적 호기심이 부족한 것인지 아직 절실한 필요성이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 발목을 잡네요.
그나저나 "단기기억(STM)을 장기기억(LTM)으로 넘기는 부분이 그리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거기에 나쁘게 보면 건망증이 좀 있고 좋게 보면 기억의 재편집 및 필터링도 활발(?)한 듯 싶다." 이 부분은 120% 공감된다는...
수능 첫타자로 2번이나 봐야 했던 세대는 유일하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가면 갈수록 늘어가는 알콜 섭취에 기억 회로의 접촉 불량이 심해지니 고민되는 노릇입니다.
독어, 노어 공부에 한창인데 위 글을 보니 학구열에 더 불이 붙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불은 많이 질러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다행입니다.^^
저는 메가 드라이브의 '슈퍼 대전략'에 나오는 무기 이름을 알기 위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 했군요...-_-;;
지금도 기억납니다...'나스호른', '엘레판트' 등등...ㅎㅎㅎ
저는 그나마 영어도 겨우 하는지라.. 홈지기님이 부럽기만하네요..
너무하신거 알죠? -_ㅠ
저도 영어 공부하면서 나름 느낀 방법을 적은글있어서
트랙백 걸어봅니다.
PS : 그런데 Jay Samuels의 책을 찾아봤는데.. 혹시 추천하실만한 책이 있나요?
구글 북에 몇권 나오네요
http://books.google.com/books?as_q=&num=10&hl=ko&btnG=Google+%EA%B2%80%EC%83%89&as_epq=&as_oq=&as_eq=&as_brr=0&as_pt=ALLTYPES&lr=&as_vt=&as_auth=Jay+Samuels&as_pub=&as_drrb_is=q&as_minm_is=1&as_miny_is=2009&as_maxm_is=12&as_maxy_is=2009&as_isbn=&as_issn=
헉, 홈지기님께서 수능 첫세대셨으면 저랑 같은 학번이시란.....
홈지기님이 이렇게 본업에서나 전쟁사에서나 업적을 쌓으시는 동안
저는 뭘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당시에 본고사 준비를 위해서 일본 문제집을 보셨다니,
저도 마지막 학력고사 실패하고 첫 수능 준비하느라 종로학원 열심히 다닐 땐데 일본 문제집까지는 손을 못댔는데....여기서 홈지기님과 저의 차이가 나는지도....)
멋집니다.
저도 한때 소싯적에 천문학에 빠져서 망원경 보고 놀았던 적이 있었드랬죠...... 허나 저는 제가 외국어를 한다는 건 꿈도 못 꿨고, 다만 저희땐 40권짜리 교원 사이언스 총집이 있어서 그걸 보며 갈증을 해소했었죠.
지금도 그 책이 있는데, 하도 많이 봐서 34권, 22권은 책장이 다 떨어져나갔다는.....그런데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은 건 없으니 역시 저는 범재 이하인 모양입니다.(먼산) 한순간의 치기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