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맞아 처칠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돌렸다는 MB, 그 생뚱맞음을 지적한 글에 일화 님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다:

이 댓글을 보고 즉각 떠오른 책이 있었으니…… 이 기사를 상기해보자.
이 당선인은 이번 명절을 두 권의 책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의 <마인드 세트>(Mind Set)와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통찰과 포용>(Leading Mind)이다. <메가트렌드>라는 저서로 유명한 나이스비트의 <마인드 세트>는 앞으로 50년을 예측한 저서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다. <통찰과 포용>은 정치, 경영, 교육, 군대, 예술,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리더들의 이야기와 비전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등의 리더십을 담고 있다.
— "이명박 '설 연휴 정국구상' 내각·청와대 인선틀 짠듯." (2008. 2. 9.). 『한겨레신문』.

서평을 길게 쓰기는 그러하니, 이 책의 중요한 내용만 살짝 짚어보자. 이 책에서 저자 가드너는 리더십의 핵심을 "이야기(story)"를 구성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풀어가고 있다. 여기서의 "이야기"는 흔히 생각하는 언변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메시지를 의미한다. 학자의 이론과 사상, 예술가의 감성과 형식 등도 모두 이야기에 해당된다. 위대한 리더는 이러한 자신의 독특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가드너는 오펜하이머 같은 물리학자, 슬론 같은 경영자, 마셜 같은 군인, 교황 요한23세 같은 종교인도 각 분야에서 진중한 이야기를 전파한 위대한 리더들로 꼽고 있다. 이러한 각 분야에서 탁월한 11명의 리더와 그들의 리더십을 분석했으며, (홈지기에게 흥미롭게도)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각국의 지도자 10인들의 리더십도 별도의 장을 할애해 분석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더십 책과 달리, 가드너는 단순한 표층의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논하는데 그치지 않고, 청중/독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과정까지 비중있게 다뤘다는 데 큰 차별점이 있다. 홈지기가 특히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탁월한 리더는 청중/독자들마다 지니고 있는 "counter-story"와 "unschooled mind"를 이해하고 다루는 데에도 큰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살아오면서 자신만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갖게 마련이다. 각자 다른 사람의 말을 듣더라도 항상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에 맞춰 이해하고 판단하려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이와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counter-story"를 표출하고 저항하기 마련이다. 탁월한 리더는 이러한 청중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본질을 살리면서도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감성과 이성을 잘 조화시켜, 체계적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저항하는 상대의 마음("unschooled mind") 속으로까지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꽂는 표현 능력을 갖고 있다.
가드너는 이를 토대로 미래 리더십의 핵심적 요소를 여섯 가지 상수 — 이야기(story), 청중(audience), 조직화(organization), 구체화(embodiment), 직접 리더십과 간접 리더십의 선택, 리더십 패러독스 — 로 묶어 제시했다. 리더십에 대한 체계적인 지적으로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MB에게 이 책을 추천한 사람도 이러한 리더십의 다양한 덕목을 새겨 원만한 국정을 펴라는 바램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이 책을 읽었다는 2월 이후 6개월 여의 행보가 그러했던가? 가드너가 제시하는 탁월한 리더의 자질을 놓고 MB를 평가한다면, 일부 부합하는 부분이 있기는 해도 많은 결함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리더 왕회장의 복심에 따라 근면, 성실하며 기민하게 행동하는 능력은 출중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스스로 다른 사람의 "unschooled mind"와 "counter-story"를 헤아리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은 꽤나 부족했다. MB가 차분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 큰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를 구체화하여 전달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을 짜는 모습은 영 어색하지 않은가.1 『Leading Minds』를 읽고 얼마나 그런 결점을 보완하려고 작심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까지는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시 그런 능력은 책 한 권으로 이해하고 쫓아 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번 여름 휴가에 읽겠다는 독서 계획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더 부정적으로 퇴락하리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글을 맺기 전에, 이 책에 얽힌 뒷얘기나 마저 살짝 하자. 가드너의 좋은 책을 번역해놓고도 기대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했던 모 출판사는 대통령 추천도서(?)의 호재를 업고 대박의 꿈에 부풀었었나 보다.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이만한 호재가 그리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그러나 이후 민심이 흉흉해지니 어디 대통령을 내세운 적극적 마케팅에 나설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우여곡절 끝에……(중간 생략)…… 홈지기는 『Leading Minds』의 번역판을 공짜로 증정받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또한 MB의 은덕이라면 은덕이 아니겠는가. 여하간 지난 번 『We Shall Not Fail』에 비해 이 책은 훨씬 유익한 책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행여나 접해보실 기회가 있으신 독자 분들이라면, 앞서 읽은 사람의 그늘 때문에 일부러 피해가시지는 말길 권해드린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 신동아 최근 호에는 MB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하여 함께 현대건설에 몸 담았던 이상백 전 벡텔 부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여기서 그는 '이명박 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분은 다른 직원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근면 성실, 이 한 가지로 정주영 회장의 신임을 받은 거예요…… 현대건설에 '이명박 신화'는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나 내가 입사할 때 이미 현대건설은 국내 5대 건설사였습니다. 현대건설의 성장은 전적으로 사주인 정주영 회장의 덕으로 봐야 해요. 모든 아이디어, 전략, 결단은 정 회장에게서 나왔죠. 오너가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전세계 기업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의 사람은 스태프에 불과해요. 정 회장이 현대건설의 리더십 그 자체였고 이 대통령은 스태프 중의 수장이었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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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참고로 가드너의 책은 『Creating Minds』, 『Leading Minds』, 『Changing Minds』가 모두 번역되어 있으니, 이들을 세트로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근래에 나온 『Five Minds for the Future』도 어서 번역되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하워드 가드너의 사진을 보니 왠지 괴벨스 생각이...
머리 숱이 더 없으면 그렇게도 보이겠네요.^^ 댓글 보고 처음에는 괴벨스도 사시(斜視)였나 의아해했었습니다.
외모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파급"도 괴벨스식 대중선동과 양상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광선검이 루크의 손에 들려 있는 것과 다스베이더의 손에 들려있는 차이 아닐까요? 어떤 기준으로 전자와 후자를 구별해내야 할까요?
말씀하신 내용(!)도 가드너의 책에 중요하게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히틀러와 나찌의 재능도 어느 편에 섰느냐는 차이일뿐 본질적인 면에서는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날림 요약만 보고서 책의 중요한 내용까지 유추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아니 부끄럽게시리. :]
이런, han rss 탑 포스팅에 떠버리셔서,
예전 광우병 관련 글처럼 사람들이 몰려올까봐 우려되네요 ^^;
음, 이런 글이 HanRSS 탑에 올라왔다니…… 많이 방문해주시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만 선정기준이 뭔지는 헷갈리는군요. --a 여하튼 감사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같은 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맹독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웃음). 대한민국 사회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가치중립'의 의미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현상에 도덕적 가치를 낙인찍음을 주의해야한다는 지적, 훌륭하십니다. 저는 직장에 들어오니까 다루는 주제마다 규범적 논의를 피해갈 수 없어서 곤욕을 치룰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여 논의를 전개해도 마지막 선택지에 다다라서는 결국 규범이 개입할 수밖에 없더군요.=_=
지식으로 얻는 획득과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으로 얻는 획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분처럼 특정분야나 특정현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능력을 가진 현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인간의 심리를 읽고 거기에 따른 처방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체계를 정립하고 하는 문제는 결코 책 한두권 읽었다고 바로 실행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대중을 어떻게 설득하고 리드하는지에 대한 초점을 맞추어 책을 추천해주셨지만 이명박 대통령께 권해드려야할 책은 오히려 남을 어떻게 설득하고 리드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내용보다는 다양한 남의 의견을 어떻게 자신의 생각으로 녹아들게 할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명박대통령은 말하기능력보다는 오히려 듣기능력에 문제가 많은 분입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그리고 사실 자의적인 독서보다도, 관련 분야의 유능한 전문가를 참모로 발탁하여 밀착 진단 및 교정 처방을 받아보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부인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이런 부분(적당한 쓴소리와 행동 교정)에 있기도 한데, 현재 영부인께서 그런 역할을 할만한 분인지는……??
제 썰렁한 댓글이 이런 주옥같은 글로 이어지다니... 이거야말로 타산지석의 실례가 아닌가 싶네요. 어쨋든 덕분에 또 훌륭한 분과 책을 알게 되었으니 기쁘네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자꾸 생각이 튀는 법이지요. 앞으로도 좋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왠지 그 양반은 읽었다고 말만 하고 읽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ㅍㅍ 대통령처럼 높은 분들의 독서 스타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지원부서에서 어떤 책이든 2~3페이지로 요약하여 먹기 좋게 올려드리기…… 어느 회합에 가서든 내가 그 책을 읽어봤다고 한 마디 거들 수 있도록 핵심 포인트 챙겨드리기가 중요하지요. 요즘은 그런 요약 리포트가 얼마나 올라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요즘 흔히 유행하는 '세 줄 요약'같은 것을 보좌관들에게 써달라고 한 다음 그거 흩어봤을(!) 수는 있겠죠(웃음).
비즈니스 보고서 잘 쓰는 요령 등을 다룬 실용서를 보면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불필요한 주절주절로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제안만 하는 보고서를 최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전제라는 것이 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CEO들은 이미 사실관계나 그로 인한 인과관계는 '다 알고 있으므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 다 알고 있다는 것의 전제는 비슷한 제안을 여러 번 받기 때문으로 또 설명합니다.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하의 비즈니스 시스템의 유용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언급되었다시피 다른 모든 시스템을 그러한 방식으로 뜯어고치는 것은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채승병님 // 아하! 그런 멋진 방법이 있다는걸 간과했습니다.
獨步님 // 저는 시간에 쫓길 때 서론, 본론 각 장의 결론, 책의 결론만 후다닥 읽고 나가서 책을 다 읽은척 합니다.;;;;;;
'내가' 읽겠다고는 안했을 테니까요. ㅎㅎㅎ
@한동안 뉴스 잘 못보고 지내느라 이젠 좀 삽질이 뜸해졌나 했는데, 요 며칠 한가한 새 여기저기 둘러보니 여전히 떡밥이 비가 되어 내리고 있군뇨. 정말 이것도 나름 재능이라면 재능.
책 읽고 내용 요약하기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 보좌관 분이 대빵 자리에 더 적합할 것 같군요. -_-;
3줄은 좀 심한 거 같고, A4용지 1장 이내로 하루 내에 요약하지 못했다고, 모든 실정을 그 부하에게 돌릴 인간이 명박이죠
정말 가드너의 책을 요약이라도 읽었는지 궁금하네요. 아니면 요약한 보좌관이 정말 무능하단 생각이드네요. 자기 생각에는 MB에게 읽히면 좋은 책 같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전혀 먹혀 보이지 않네요. 그리고 홈지기님이 말씀하셨듯이 MB는 가드너가 말하는 리더와 전혀 맞지도 않구요. MB는 말만 처칠 같은 사람을 떠벌리지만, 사실 하고 있는 모습은 처칠의 강적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처칠은 꼴초에다가 술도 즐겨마셨지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책도 많이 읽고 문장력이있었는데, 오히려 처칠의 강적의 사생활은 깔끔 엄격 그자체 아니였나요? ^^
그렇지요.^^ 훨씬 절제된 채식주의자의 풍모가 어디 가겠습니까. 다만 둘 다 여색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게 놀랍다고들 하지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