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패트릭 뷰캐넌의 신작 『Churchill, Hitler, and "The Unnecessary War": How Britain Lost Its Empire and the West Lost the World (처칠, 히틀러, 그리고 "불필요한 전쟁": 영국은 어떻게 제국을 상실하고 서구는 어떻게 세계를 상실했는가)』의 소식에 대해 전한 바 있다. 그 당시 주문했던 책은 이미 한참 전에 도착했으나, 다른 읽을거리가 많다보니 일독을 피일차일 미루고 있었다. 결국 이번 주말에야 내용을 숙독해볼 기회를 가졌다.
![]() 패트릭 뷰캐넌의 존안과 | ![]() 처칠로 부시를 통타하는 이번 신간 |
책을 읽어내려가며 느낀 첫 인상은 간단하다. '과연 뷰캐넌답다.'
이 의미에 대해 뷰캐넌의 글을 별로 안 읽어보신 분들을 위한 보충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뷰캐넌은 닉슨 시대부터 활약한, 고보수진영의 말 그대로 '논객'이다. 이 또한 요즘 인터넷에 '논객'으로 불리는 이가 너무나 많아(?)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홈지기가 생각하는 논객에 대해 좀 더 엄밀히 짚어보자.
우선 논객은 시시비비에 대한 견해를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자신의 신조, 자신의 정파 등에 따른 명확한 글쓰기의 목적을 갖고, 독자들이 여기에 정확히 동조하도록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표현은 간결하고 직선적이어야 하며, 적절한 근거들이 쏙쏙 입력이 되도록 잘 직렬화되어 있어야 한다. 현학적인 표현, 복잡한 학술적 개념, 모호한 태도를 남발하여 의심의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논객은 그 주장이 정말로 옳고 그름에 의해 정해지는게 아니다. 논객은 그런 면에서 선동꾼과 비슷해보일 수도 있으나, 감정에 의지하지 않고 논리적 근거의 배열에 더욱 치밀하여 듣는 이, 읽는 이로 하여금 이성에 감복당한다는 느낌을 준다.
뷰캐넌은 예전부터 이런 목적 의식을 가진 글쓰기에 능했다. 이런저런 견해를 두루 활용하는 능력이 있었고, 이를 또 적절히 맞추어 자신의 논지에 빠져들게 하는 흐름을 만들 줄 알았다. 보수주의 운동의 서막을 여는 악의적이면서도 교묘한 그의 글들은 많은 적들의 분노를 자아낸 바도 있다 —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또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번 책 또한 예고했다시피 현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의 정책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20세기 전반 대영제국의 외교적 딜레마와 실책들을 주욱 펼쳐 놓았다. 역사가들이 같은 주제를 놓고 책을 쓴다면, 훨씬 글은 복잡하고 맥락을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현상을 둘러싼 다면적 논란을 제시하고 조심스럽게 진실을 끄잡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의 글에서는 수많은 상반되는 견해가 병렬적으로 나열되면서 뇌의 단기기억 용량이 넘쳐 버리기 일쑤이다. 읽다가 맥락을 놓쳐 책 앞뒤를 오락가락 하다보면 꾸벅꾸벅 졸기도 십상이다. 그러나 뷰캐넌의 책은 그런 고민이 덜하다. 늘어지지 않는 문장과 명확한 메시지, 적절한 인용을 쫓아가다보면 영어책임에도 재밌게 한 권을 끝낼 수 있다. 이번 책도 예외가 아니다.
뷰캐넌은 이 책을 통해 양 세계대전을 "불필요했던 전쟁"으로 규정짓고 있다 ― 물론 이것은 철저히 영국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대전에 대한 전후 영국 보수진영과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견해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주류의 논의도 교묘히 끌어오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집중하여 보자면, 체임벌린 내각의 동유럽 문제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 오히려 전쟁을 불필요하게 확대했다는 내용을 우선 전개하고 있다. 애초에 육군력이 매우 약한 영국은 동유럽 문제에 현실적으로 개입할 수단이 매우 부족했다. 이러한 한계가 있음에도 영국은 처음에는 유화정책으로, 나중에는 섣부른 안전보장 약속이라는 백지수표로 독일의 팽창에 대응하고자 했으며, 이 모두가 악수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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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영국을 말아먹었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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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히틀러가 처음 팽창의 기미를 보이고 라인란트에 진주하고자 했을 때, 프랑스의 적극적 개입을 막아선 것은 영국이었다. 현실적으로 유럽 대륙에서 독일을 상대할 맞수는 당대 최강의 육군국 프랑스였음에도 말이다. 프랑스군이 예정대로 아직 빈약한 독일군에 대해 라인란트에 대한 강력한 무력시위를 행사했다면 독일의 팽창에 대한 경고로는 가장 확실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1938년 뮌헨 협정의 중재자로 나선 것도 그리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뮌헨 협정이라는 외교적 탈출구가 없었다면 오히려 후일 독일의 동맹국으로 돌아선 다른 동유럽 국가(루마니아, 헝가리 등)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좀 더 자발적이면서도 강력한 대독 연합의 형성이 가능했다.
이후 독일이 뮌헨 협정의 틀을 깨고 체코슬로바키아 전 국토와 메멜을 병합하며, 단치히 회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때의 개입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핼리팩스의 판단에 따라 체임벌린이 폴란드와 동유럽 여러 국가들이 침공받을 경우 자동적으로 독일과 전쟁에 돌입한다는 선언을 한 것이 최악이었다는게 뷰캐넌의 주장이다. 영국은 현실적으로 이들 국가의 체제를 보장해줄 수 있는 육군, 공군력이 전무했기에 이는 허세에 불과했다. 독일은 이를 간파하고 폴란드와의 전쟁이라는 강수를 두었으며, 전통적 양면전쟁 회피의 옵션 가운데 소련과의 화친과 영국-프랑스와의 대결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면 '영국이 중동부 유럽에 거대 강대국 독일이 출현하는 것을 그대로 방관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나올 법하다. 뷰캐넌은 그에 대해 '그렇다'라는 입장이다. 해양세력으로서의 영국이 누리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중동부 유럽은 사실 현실적으로 포기할 수도 있는 카드였다는 것이다. 동유럽의 민주국가 수호라는 명분에서는 밀리더라도, 오히려 이 경우 독일이 동유럽에서 소련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면서 더 이상의 팽창이 억제되는 효과는 발휘될 수 있었다.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에 나선 것은, 자본주의 국가 영국/프랑스와 독일이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면서 공멸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란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에 영국이 폴란드 안보를 담보하는 강수를 두지 않았다면, 스탈린은 여전히 독일의 제1 주적이 소련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게 독-소 양측이 팽팽히 대립하는 사이에 영국은 군비를 강화하여 서유럽으로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는 선에서 사태를 관망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1940년의 전쟁은 프랑스가 아니라 벨라루스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다.
뷰캐넌도 독일이 주도한 격랑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 '나치 독일보다 영국이 더 책임이 크다', '체임벌린은 무죄고 처칠만 유죄다'는 등의 생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어설픈 개입이 가중되는 유럽의 위기를 더 심화시키기도 했고, 무엇보다 의도와는 달리 영국에게 더 불리한 방향으로 불길이 번지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영국의 연이은 실수에 마지막 불가결한 요소를 더한 것이 처칠이라고 주장한다.
처칠은 전시 내각을 인계받은 상황에서 '모든 희생을 각오한 승리'를 쟁취할 것을 결심한다. 프랑스에서의 패배를 안고서 강화를 추구했다가는 영국이 독일의 의도에 종속되는 2등 국가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처칠은 영국이 버티면 어떻게든 소련과 미국이 전쟁에 휘말릴 것이고, 그들의 힘을 빌어 '고통스러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이것은 분명 그다운 혜안의 결과였다. 그러나 뷰캐넌은 오히려 그의 탁월한 계산이 잘못된 방향으로 작동되었음을 지적한다. 대영제국이 2등 국가로 전락하는 선택보다, 막대한 인명피해와 전후 갈갈이 찢기고 쇠락한 대영제국, 공산화된 동유럽, 서구를 위협하는 공산세계의 출현을 낳은 선택을 더 좋게 볼 수는 없다. 해양세력으로 결코 등장할 준비도, 능력도 되지 못했던 독일과 강화함으로써 대영제국의 헤게모니는 좀 더 잘 보존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홈지기에게 (그리고 많은 2차대전사 팬들에게) 이런 글이 꽤나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역사를 볼 때 항상 경계하라고 이야기되는 '만약에……'가 너무 남발되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후세의 시각으로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정작 당대 사람들을 짓눌렀던 요인들에 눈을 감게될 위험이 크다. 체임벌린, 핼리팩스, 처칠을 짓눌렀던 현실의 무게와 고뇌에 대한 이해를 의도적으로 경시했다는 점에서 분명 이 책은 '나쁜' 역사이다. 그러나 글쓴이 뷰캐넌이 역사가가 아니라 '논객'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또한 그가 쓰고자 했던 글은 역사서가 아니라 '현실 비판서'임을 상기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도 있다. 이것은 이 책의 맨 마지막 섹션에 잘 나와있다:
처칠식 어리석음의 반복
1989년 냉전의 종식,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미국은 그 정점에 올랐다. 모든 유럽 열강 —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 은 미국의 동맹국이 되었고, 중동의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그리고 극동의 호주, 남한, 일본 모두도 마찬가지이다. 레이건 시대에 러시아는 1980년 초의 "사악한 제국"에서, 고르바쵸프와 함께 붉은 광장을 걸으며 격려해줄 정도의 나라로 변모했다.
유럽과 소련의 4억 인민은 해방되었다. 붉은 군대는 짐을 싸서 귀향했다. 소련에 억눌렸던 국가들은 레이건의 미국을 해방자로 여겼다. 일국이 필요로 하는 모든 영역과 안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제1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군사적 강자인 미국은, 이미 갖고 있는 자산을 지키고 보호할 정책을 채택해야 했다. 미국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졌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우리는 친숙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구축하려고 했다.
9/11 이후, 국제 정치에 무관심하고 이를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한 죠지 W. 부시가 민주화 원리주의(democratic fundamentalism)라는 윌슨식 이데올로기로 돌아서자 이 프로젝트는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 전 세계를 민주화시켜야만 미국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원리주의는, ……, "고루한 종교적 열정"과 유사하다.
부시는 민주화 원리주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신 성경식 레토릭으로 고백한 바 있다: 그리스도가 말하듯이 부시는 선언했다.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우리에게 맞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는게 아니라면, 당신은 테러리스트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선과 악의 투쟁입니다." "사악한 존재들은… 국적도 없고, 이데올로기도 없습니다, 그들은 증오에 의해 움직입니다." 미국의 "궁극의 목적"은 "우리 세계의 독재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결백성"에 뿌리를 둔 외교 정책이 7년 동안 이어진 뒤, 1989년의 세계는 사라지고 미국은 샐즈버리와 밸푸어의 영국, 즉 정점을 지나 도처에 적들이 일어서기 시작하는 강대국의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중국은 우리에게 영국 입장에서 빌헬름 시대 독일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가려 하고 있다. 우리가 "단극세계"의 "유일한 강대국"이라는 신보수주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대륙에서 광란에 빠져들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케난, 아이젠하워, 레이건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우리는 열강에서 추락한 대영제국의 모든 어리석음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불가결한 국가"가 되자느니, "Bring'em on!(다 덤벼라!)" 식의 허풍을 크게 떠드는건 전 세계가 혐오하게 만드는 제국적 오만을 내비치는 것이다.
우리가 답습하지 않은 대영제국의 큰 실책은 거의 없을 지경이다. 그레이와 처칠이 폰 클루크가 벨기에의 중립을 훼손할 경우에 미숙한 전쟁 계획이 즉시 발동되도록 했듯이, 9/11에 사로잡힌 네오콘들은 우리의 못 배운 대통령에게 그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를 해방시키며, 이란과 시리아 배후에 전략적 거점을 확보하여, 중동과 이슬람 국가를 민주화시킴으로써, 이 시대의 처칠이 되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설득했다.
체임벌린이 지킬 수 없음에도 폴란드에게 참전을 약속했듯이, 미국은 6개 바르샤바 조약국, 발트 3국, 이어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게까지 NATO의 참전 약속을 건네기 시작했다. 만약에 모스크바에 적대적 정권이 들어서고 이들 국가를 다시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날에는, 우리는 선전포고를 해야한다. 허나 우리가 신생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소중히 생각한들, 그들의 독립은 미국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했던 적도 없었다. 그리고 설사 그들이 독립을 잃는다 해도, 그게 핵무장한 러시아와의 전쟁을 정당화해주지도 않는다.
영국이 어떤 국가도 유럽의 지배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는 "힘의 균형" 정책을 세웠듯이, 2002년의 미국 국가 안보 전략은 어떤 대륙에서도 미국의 지배권에 도전할 위치로 부상하는 국가가 나오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도를 천명했다 — 이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일시적 상황을 고착화시키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시간은 멈춰있지 않는다. 새로운 열강은 부상한다. 과거의 열강은 사라진다. 그리고 어떤 열강도 오랫동안 전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제국들의 묘지, 20세기를 돌아보라. 우리 미국도 이런 역사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다.
영국이 일본을 내던지고, 이탈리아를 히틀러 품 안으로 몰아갔듯이, 부시는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정치에 관여하고 중앙아시아에 미군 기지를 설치함으로써 러시아의 푸틴을 중국의 품 안으로 몰아갔고,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 기금(National Eonowment for Democracy)' 기준에 부합하지도 않는 독재국가가 만들어지도록 했다.
우리에겐 참 묘한 미국적 맹목성이 있다. 먼로 독트린 하에서, 해외 열강들은 우리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열강도 그들의 영향권을 갖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독선적으로 외국인들이 우리 선거에 돈을 밀어넣는 현상에 호통을 치면서도, 다른 나라 선거에 우리 세금을 퍼부어가며 간섭하고는 한다 — 우리의 민주주의敎를 전도하기 위해서 말이다.
영국이 오토만 제국에게 승리한 이후 이라크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켰듯이, 우리는 소련에게 승리한 이후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우리의 간섭이 그토록 다발적이고 광범위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역 병력은 인구의 0.5%로 줄어들었고, 1945년 5월 무장시킨 병력의 고작 1/9에 불과하다.
우리는 월터 립먼이 "대외 정책 파산"이라 불렀던 지경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의 전략적 자산, 무장, 동맹국으로는 우리의 전략적 채무와, 중남미로부터 발트해, 발칸, 중동, 페르시아만, 일본, 남한, 필리핀, 호주, 대만에 걸친 수십 개 국가들을 위해 전쟁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수 없다. 우리 이전의 영국처럼, 미국은 과도한 확장의 한계에 도달했다. 우리의 육해공 전력을 두 배, 또는 세 배로 늘리던가, 혹은 의무의 짐을 벗어던지기 시작하든가, 불가피하게 미국판 디엔비엔푸를 향해 나아가든가 하는 선택이 남아 있다. 미 육군과 해병대가 메소포타미아와 아프가니스탄의 준동으로 인해 극한 상황까지 몰린다면, 어떻게 지구 남은 부분에서 경찰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가 건네준 차용증 2, 3개에 대한 상환 요청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미국의 대외 정책 파산은 만천하에 노출될 것이다.
미국은 1939년 대영제국처럼 과도하게 뻗쳐 있다. 우리는 우리의 핵심 이익과는 상관 없는 수십 개 국가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약속, 몇 개 국가가 한꺼번에 요청하면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갖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를 민주화시키고, 모든 국가를 우리의 사회 정의와 인권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며, "세계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미국의 정책을 천명해왔다.
그리고 만방에 그가 맡은 책무를 보여주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그의 집무실에 윈스턴 처칠의 흉상을 갖다 놓았다.

2001년 7월 16일, 영길리 대사가 황제에게 처칠 흉상을 진상하다
결국 뷰캐넌은 네오콘들이 숭배하고 쫓아하려는 처칠의 행동이란 미국을 쇠락으로 빠뜨리는 길이라는 결론을 향해 4백 페이지 이상을 치달았다. 역사적 사실의 전개가 다소 불편해도 결론에 이르러서는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홈지기도 그의 말마따나 미국의 독선에 다소 질린 주변국가 국민일 수밖에 없어서일까? 또한 처음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의 우려처럼 쓰레기 수준의 왜곡이 판치는 아주 허술한 책도 아니다. 이만한 수준이라면 역사가가 아닌 현실 논객이 내용상의 여러 결점(일부 사실관계 왜곡, 논리적 취약성)을 감수하고서라도 펼 수 있을만한 논변임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네오콘과는 또 다른 미국 보수파 일각은 어떻게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갖고 있나를 살펴봄에 있어서는 충분히 일독의 의의가 있다. 때로는 역사적 사실보다도 다른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역사관을 들여다 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표류하는 미국 여론의 일단을 음미해보고픈 분들에게는 가볍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양 세계대전을 둘러싼 외교사를 제대로 접해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경고를 드리고 싶다. 흡인력 있는 논객의 글은 근거의 배열이 교묘해서, 자기도 모르게 왜곡된 역사적 맥락을 갖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다른 균형잡힌 역사 개설서들과, 인물 평전들을 접하면서 스스로 균형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병행될 때, 이 책도 맛깔나게 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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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筆鋒'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이 확장한계점에 도달했다라... 논란이 될만한 내용이네요. 소개 감사드립니다.
저자의 이름값도 있고... 되도록이면 번역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저자의 이름값이 있다지만 국내에 번역된 책들은 그만큼 없으니 이거라고 번역되어 나올지는……^^ 어떻게 좀 팔릴 책일지 감을 잡기 힘드니 출판사 분들에게 번역해보시라고 슬쩍 찔러 보기도 그렇네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은 몰라도 수긍은 할 수 있는 주장이네요. 역시 뷰캐넌입니다. 책이 번역돼 나왔으면 좋겠네요 진짜.
저도 공감은 잘 안 갑니다만, 이런 논객의 활약상을 보는 것도 역시 재미는 있더군요.^^
저도 폴란드에 영/프가 개입한 것이 2차대전을 발발시킨 악수라고 생각해왔던 사람이라 일단은 동질감이 들기는 하네요. 뭐 처칠이 끝까지 버틴 것을 나무랄 생각까지는 없습니다만, 제국의 과대팽창을 비판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언제쯤 이런 논객을 볼 수 있을지...
대한민국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체제를 수입할거면 이러한 '사상/정책의 자유시장경쟁'을 최우선적으로 도입해야겠죠. 나 이외의 모든 진영에 대한 '박멸의 신화'에 언제까지나 빠져있는 이상 맹목과 인신공격이 아닌 논리로 승부하는 투기장은 만들어지기 힘들 것입니다.
'박멸의 신화'라... 정말 와닿는 표현이네요. 독보님이 직접 만드신 거라면 카피라이터의 재능이 있으신듯 乃
일화님/
과찬이십니다. 누구나 아주 가끔씩은 성공작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웃음). 지혜로운 자가 천 번을 고쳐 생각해도 놓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우매한 자라 해도 천 번 정도 헛소리를 늘어놓다보면 한 마디 정도는 건질 말이 있게 마련이겠죠(智者千慮一失 愚者千慮一得).
수백 권의 책을 섭렵하고 자신의 논지를 다듬어서 책으로 정리해내며, 이를 현실 변화로 끌고 가는 동력까지 갖춘 사람들은 정말 드물죠. 미국의 회전문 제도가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음은 분명한듯 합니다. 반면 우리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키워내고 끌어내는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현실이 자꾸 부각되어 다소 서글프군요.
그렇다면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에 반대한 영국의 피트 수상은 어떤 입장에서 나폴레옹을 반대한 걸까요.. 왕정에 대한 프랑스 대혁명의 반대에 대한 반대 - 아 말 꼬인다 --;; - 입장의 연장선일까요...
프랑스 혁명 이후의 유럽사 책 번역 된거 좋은 거 없을까요..
프랑스는 당시 이미 세계 각지에 방대한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국가로 대영제국의 해양패권에 대한 유일한 경쟁국이 아니었습니까?
때문에 혁명이 발발하자 기회로 여기고 경쟁국의 대열에서 완전히 탈락시키고자 압박을 가한 것이고, 나중에는 대륙을 완전히 장악하는 일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것이겠죠.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입장이 아닐까요? 해외 식민지가 없고 해양패권에 도전할 입장이 아니었던 나치 독일과는 전혀 다른 국가였죠. 오히려 그때의 프랑스는 1차 대전기의 독일 쪽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됩니다.
윌리엄 헤이그가 쓴 『William Pitt the Younger』라는 전기가 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군요. 번역된 책은…… 제가 잘 모릅니다.=_=
lesis/ 맞는 말씀 이기는 한데 어차피 영국은 유럽에 여러 세력이 있는 걸 원했으니 나치를 방관했어도 어차피 2차 대전은 일어날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1/2차 대전 전에 전 유럽에 단일 세력이 등장하려는 것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말고는 아는 게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빈 체제 이후에 프랑스는 힘이 그렇게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 -사견입니다만 --;; - 프랑스의 잔존은 영국이 어느 정도 방관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아는게 없으니 "이지않을까 통신"은 그만해야 겠죠.
피트는 사실 처칠과는 달리 대륙의 정세에 되도록 간섭을 안 하려 했습니다. 이 무렵의 영국도 빅토리아 시대 수준의 헤게모니가 구축된게 아니어서 프랑스의 위협을 일일히 대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영국의 재정상황도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에, 막대한 전비를 쓸 형편이 못 되었죠. 웬만하면 대륙의 다른 열강들이 견제해주기를 기대했고, 곤란하면 혁명 프랑스 체제를 그냥 인정할 요량이었습니다.
오히려 상황은 프랑스가 도발한 측면이 큽니다. 프랑스가 직접적으로 영국을 적대시하고 혁명을 부추기려는 시도를 공공연히 벌이자, 피트는 어쩔 수 없이 반 프랑스 동맹에 참여합니다. 피트는 고된 전쟁을 끌고 가면서도 제국의 기반을 말아먹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심초사했습니다. 섬나라 영국으로서는 유럽 대륙의 세력구도를 자신의 마음대로 재편하는 것이 별 이득도 없으면서 굉장한 국력의 소모를 가져오는 길이었습니다.
일단 책 이름 알려 주셨으니 번역 여부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언제 조사 끝나고 읽어 볼 수 있을지는 잘 ^^;; -
감사합니다.
눈팅/ 동유럽을 다 합쳐봐야 서유럽 3강국 중 하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아실테고, 가만히 병합하도록 놔두면 어차피 합스부르크 제국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죠.
민족국가의 시대가 도래한 상황에, 나치가 어찌 타 민족의 국가를 병합하고 그 전력을 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1+1이 2가 되지 못하는 상황만 초래하게 될 뿐이죠. 결국 조선처럼 합병당해 수십년이 지난 다음이라면 모를까, 당장에는 별반 도움이 안되죠.
단기적으로는 국력 강화는 크게 기대할 수 없고 단지 부담만 더 늘어나는 겁니다. 더욱이 대륙에는 프랑스와 소련이 건재한 마당에요. 그리되었다면 2차 대전은 상당기간 늦춰지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안 일어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건 가정일 뿐...;;
승병님/ 피트 수상과 그 정권이 원한 것과는 달리 대다수의 우매한 군중과 정적들은 숙적 프랑스의 완전한 몰락을 원하죠. 프랑스가 도발하고 내부에서 반발한 이상 전쟁에 내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몰락으로 인해 패권이 공고화되지 않았습니까? 빅토리아 시대의 영광은 상당부분 경쟁국의 몰락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죠. 경쟁국이 없었기에 여유전력을 투사해 세계로, 동아시아로 뻗어나갈 수 있었고요.
잘 읽었습니다. 어찌보면 자신의 논변을 위해 일련의 팩트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최소한 그 본래의 목적하에선 적절한 사실 배치와 신랄한 논법이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적당히 유명한 사람이면 참신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뷰캐넌은 이런 모습을 하도 많이 보이다보니, 사람들이 이제는 경계심을 품으며 읽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