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정체 불명의 책이 하나 배달되었다. 한참 지난 달의 출혈 여파로 지출을 자제하고 있는데 무슨 책이 또 왔단 말인가? 머리를 긁으며 포장을 풀어보니……

독일에서 온 잡지
WeltTrends誌 51호 「Geheime Dienste (비밀 기관)」이라, 순간 얕은 신음과 함께 이 블로그 방명록에서 주고 받은 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정보전에 관심이 많으신 H(怪…)님께서 독일 포츠담 대학 출판부에서 나오는 WeltTrends誌 가운데 한 호를 구하는 방법을 문의해오신 내용이었다. 홈지기도 사실 이 저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어떻게 방법이 없나 싶어서 이리저리 저널 홈페이지를 뒤지다 보니 주문란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그냥 달랑 알려드리기는 뭣해서,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통상의 절차대로 저널 과월호 리스트에서 해당 호를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 절차에 돌입해봤다. 아시다시피 대개의 온라인 서점은 주문 버튼을 눌러도 결제를 하라는 메시지가 뜨고, 결제를 진행하지 않으면 주문은 자동 중지되기 마련이다. 버튼을 눌러도 결제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안 나오기에, 홈지기는 그냥 뭔가 기능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에라, 여기까지 알려드리면 H님이 열심히 메일 보내서 알아서 결제하고 받아 보시겠지'라는 생각뿐. 그게 2달 전 일이었다.
홈지기는 분명 결제를 한 적이 없는데 왜 배송이 되었을까? 뒤적여보니 그 안에 종이가 한 장 더 있었다.

양심의 리트머스?
Rechunung(청구서)! 홈지기가 독일과 이런저런 거래를 했지만 이런 '후불 청구서'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국내도 아닌 외국에 책 먼저 보내놓고 책값 5유로에 송료 3유로를 더해 8유로를 첨부한 계좌로 입금하라니. 이 사람들이 순진한건가, 고도의 심리전을 쓰는건가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돈을 안 보내고 꿀꺽 삼키면 받을 도리가 없는데 말이다. 8유로 정도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인가? 역시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은 독일이라 한국 정도는 믿어보자는 생각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공무원에 다름 없는 대학출판부(Universitätsverlag) 사람들이라 사무적으로 처리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홈지기도 그 동안 이런저런 해외 거래를 해 보면서 돈도 떼어먹혀 봤고, 클레임도 걸어 보고, 본의 아니게 더 비싼 물건을 받아 — 페이퍼백을 주문했는데 하드커버가 날아오는 — 꿀꺽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조금 난감하다. 주문 실수였다고 하고 반송하자니 귀찮고반송료가 아깝고, 8유로를 그냥 부담하자니 온라인 해외송금할 때 발생하는 거금의 수수료 — 창구에서는 거의 1만원 정도 하고, 인터넷으로도 5천원 이상 나오던 것으로 기억 — 가 속이 쓰리다. 그렇다고 8유로를 떼어 먹자니 양심도 양심이지만 스스로가 째째한 것 같아 꽤나 불편하다. 물건이 금방 날아오기라도 했으면 H님에게 밀어버릴텐데 그것도 곤란하고, 공지를 통해 다른 분에게 싼 값에 넘기자니 이건 내용이 거의 전부 독일어여서 관심가질 분이 없을 것 같다.
여러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하실런지? 홈지기는 무신론자지만 다음 구절이 떠오른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Und führe uns nicht in Versuchung)……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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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wenjun의 생각
Tracked from wenjun's me2DAY 2008/07/17 02:18 삭제Periskop over Military History :: 양심을 시험하는 독일식 신뢰 : 믿음은 국경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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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인배로군요...;;
그렇습니다, 새삼 감복하는 중입니다.=_=
음 의외로 저런 경우에 사실대로 이메일을 보내시면 처리가 잘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문 중에 주문 페이지가 다운되어서 주문이 안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송비용이 너무 비싸고, 송금 수수료도 너무 비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달라. 정도로 설명하시고 PAYPAL 같은 송금방법(수수료가 가장 저렴한)을 받느냐 물어보시면, PAYPAL로 보내달라고 하거나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면 걍 당신이 가지고 도서관에 기부해라라는 취지의 답장이 오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 좋은 방법이!! 역시 합리적인 대화로 문제가 풀리는 경우도 있군요.
좋은 정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려주신대로 포츠담 대학출판부 쪽에 상의 메일을 보냈으니 조만간 답을 해주겠죠.
저는 도저히 못 할 일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귀찮아서라도 못할 일이죠.^^
그보다도 결제에 대해 알려주는 문구나 설명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놨다면 8유로를 낭비하는 일은 없으셨을 텐데'ㅅ'
그게 시스템적 해결법이겠죠. 그런데 가만 보면 미국은 아무리 작은 온라인 상점이어도 신용카드, PayPal 등으로 칼같이 돈을 챙겨가려고 드는데, 유럽은 여전히 계좌송금, 수표송금, COD 등이 많이 통용되는 것으로 보아 마인드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Henry님에게 전화 넣겠습니다-_-;;
이런 수고까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번거로울 것은 크게 없는데…… 이게 송금하려고 알아보니 송금수수료가 예상보다도 많이 나오더군요. 제가 포츠담 대학출판부와 컨택해서 저렴한 지불수단을 한 번 상의해보고 견적이 나오거든 따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밀댓글로 연락처를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장난삼아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을까봐 걱정됩니다. 끄응~
괜찮아요'ㅅ' 일단 독일어를 알아먹어야 주문이 될 수 있게 할 거 아니겠어요'ㅅ'
별로 인기 없는 독일어 책이니 그럴 유혹이 작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독일에 계셨던 지인의 이야기들을 들어봤을때
사무적인 일처리보다는;;;
사람을 믿는게 맞을 겁니다.;;;
지인이 독일에 있었건던 오래전 일이지만
항상 그때 관공서에서 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각종 지원들과 실제로 생활이 어려울 경우
아무런 조건없이 돈을 빌려 준다거나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항상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셨거든요...
크흘. 한국에선 그런일이 없겠죠..^^
헉, 돈을 빌려주는 경우까지 있다니 놀랍군요. 저는 독일에서 공무원들의 원리원칙적인 모습만 주로 봐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인들의 태도가 우리처럼 '정'에 입각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응대해주는 모습들을 보면 확실히 우리보다 선진국의 조건을 더 잘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밌는(?) 사례로군요. 여담이지만 제 경우에도 국제간의 이러한 거래에서 은근히 인간저인 사례도 꽤 있었지요. 배송을 늦게 했다고 이것저것 챙겨보내주는 경우도 있고 물건을 못 받았다 했더니 기꺼이 다시 보내겠다고 하고 이번에도 못 받으면 환불해주겠다고 하는 이도 있더군요.
저는 독일에서 예전에 책을 받아보는데 박스에다가 마이구미 비슷한 쫄쫄이 과자를 잔뜩 넣어주는 센스에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그 말씀하신 쫄쫄이 과자 생각이 나는데요. 아마 곰 모양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길 잃은 어린양//고 곰돌이 이름이 하리보일껍니다.
하~ 류한석님 블로그 보고 넘어왔습니다.
흥미로운 일이군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눈팅만 하다.. 대인배의 모습에 글을 남기게 되네요..
덕국의 저 신뢰는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소인배는 도저히 흉내내기 힘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온 국민이 대인배가 될 수 있을까요?^^
지나가다 읽게 되었는데, 역시 선진국은 그만한 의식을 갖춘사람들이 많은 거구나 하고 생각해봅니다. 우리나라도 저런 대인들이 많이 나와야 선진국으로 발돋음 할텐데.. 아무튼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요.^^
오랜만에 들른 형님의 인기 블로그...
위 책은 어떻게 되었나요?
위 책은 결국 원래 의뢰인인 H님께 넘어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