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서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은 종종 이야기되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홈지기도 예전에 포럼에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간 바 있다. 유색인종들은 대부분 후방근무지원 부대들에 배치되었다. 전투부대 혹은 전투지원부대에 배치되었다 하더라도 대개 일반 백인 부대와 격리(?)가 가능한 기갑, 포병, 항공 등의 병과에 독립부대로 편성된 예가 대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주요 간부와 지휘관은 대전 내내 백인이 차지했다. 많은 유색인종 부대와 장병들이 뛰어난 무훈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유색인종에 대한 처우가 어땠을지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가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식민지를 경영했던 국가들은 그리 나을 처지가 없었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당장 자유프랑스군 소속으로 격전을 치뤘음에도 외면받은 알제리인들을 그린 영화 『Indigènes (국내개봉 타이틀: 영광의 날들)』에도 이런 모습은 잘 나와 있다. 영연방군은 워낙 거대한 규모로 식민지(특히 인도)인들을 징집 — 인도에서만 250만 명 수준 — 했었고, 식민지 현지인 부대들을 활용한 역사도 오래되어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차별은 엄존했다. 자료에 의하면 1939년 개전 이전 20만 5천여 명의 인도군 중에서 인도인 장교는 단 396명 뿐이었다. 1945년의 250만 인도군 역시 영국인 장교가 34500여 명이었던데 반해, 인도인 장교는 8300여 명에 불과했다.
그 다음에 관심이 가는 국가는 역시 소련이다. 사회주의 국가로 민족 문제에 관용적(?)이었던 소련군 내부의 인종 및 민족 구성은 어떠했을까? 사회주의 특유의 연대 정신을 내세우던 소련군의 민족 구성에 대해 궁금해하던 차에 발레리 자물린의 『Прохоровка』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프로호롭카 전투에서 주역을 맡은 소련군 제5 근위전차군의 1943년 7월 5일자 민족 구성이 실려 있다:
| 민족 | 병 | 하급간부 | 지휘관 및 상급간부 | 총계 | 비율(%) |
|---|---|---|---|---|---|
| 러시아인 | 17734 | 10806 | 4520 | 33060 | 74.1 |
| 우크라이나인 | 2485 | 1542 | 1210 | 5237 | 11.7 |
| 벨라루스인 | 346 | 247 | 202 | 795 | 1.8 |
| 아르메니아인 | 100 | 40 | 43 | 183 | 0.4 |
| 그루지야인 | 93 | 38 | 19 | 150 | 0.3 |
| 아제르바이잔인 | 67 | 24 | 15 | 106 | 0.2 |
| 우즈벡인 | 231 | 71 | 13 | 315 | 0.7 |
| 타지크인 | 40 | 10 | 3 | 53 | 0.1 |
| 투르크멘인 | 33 | 10 | 2 | 45 | 0.1 |
| 카자흐인 | 294 | 82 | 29 | 405 | 0.9 |
| 키르기즈인 | 55 | 18 | 3 | 76 | 0.2 |
| 카리알라인 | 24 | 10 | 3 | 37 | <0.1 |
| 핀란드인 | - | - | 6 | 6 | <0.1 |
| 유대인 | 208 | 176 | 323 | 707 | 1.6 |
| 체첸인 및 인구시인 | 1 | 3 | - | 4 | <0.1 |
| 카바르디인 및 발카르인 | 3 | 3 | 3 | 9 | <0.1 |
| 오세트인 | 22 | 10 | 13 | 45 | 0.1 |
| 다게스탄인 | 27 | 19 | 8 | 54 | 0.1 |
| 타타르인 | 744 | 331 | 78 | 1153 | 2.6 |
| 추바시인 | 446 | 164 | 44 | 654 | 1.5 |
| 모르도바인 | 293 | 111 | 34 | 438 | 0.9 |
| 바시키르인 | 146 | 22 | 14 | 182 | 0.4 |
| 칼미크인 | 26 | 3 | 1 | 30 | <0.1 |
| 우드무르트인 | 154 | 62 | 7 | 223 | 0.5 |
| 마리인 | 144 | 71 | 14 | 229 | 0.5 |
| 코미인 | 56 | 59 | 9 | 124 | 0.3 |
| 부랴트인 | 32 | 19 | 1 | 52 | 0.1 |
| 몰도바인 | 15 | 12 | 4 | 31 | <0.1 |
| 불가르인 | 3 | 1 | 2 | 6 | <0.1 |
| 라트비아인 및 라트갈레인 | 7 | - | 2 | 9 | <0.1 |
| 에스토니아인 | 1 | 2 | - | 3 | <0.1 |
| 리투아니아인 | 5 | 1 | 2 | 5 | <0.1 |
| 폴란드인 | 11 | 6 | 2 | 19 | <0.1 |
| 독일인 | - | - | - | - | - |
| 그리스인 | 2 | 2 | 3 | 7 | <0.1 |
| 한족 | - | - | - | - | - |
| 기타 | 103 | 57 | 13 | 173 | 0.4 |
| 총계 | 23948 | 14032 | 6645 | 44625 | 100 |
이 통계 하나만 놓고 대전기 소련군 야전부대의 민족 문제 전반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확실히 재미있는 사실 몇 가지는 드러나는 것 같다.
첫째로, 소련군은 적어도 연방 내 민족 자치정부 별로 통계를 나누어 인사관리에 반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이는 동원체계 정보수집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었던 것 같다. 러시아인 및 우크라이나인이 절대 다수인 85%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기타 카프카즈 및 중앙아시아로부터의 동원도 점차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 소련군도 야전부대에서 소수민족의 비중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당대 소련 인구의 민족 구성에 비해 소수민족 비중이 꽤 낮아 보인다. 더군다나 간부 비중에 있어서는 다른 서방 국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일반 보병 중심의 부대가 아니고, 전략 예비 수준의 기갑부대라는 점을 감안해도 격차는 제법 있다. 아마도 소련 내에서도 기갑병과 장교를 하기 위한 교육 수준에서 민족적 격차가 있었다고 보인다. 사회주의 국가도 역시 민족 평등을 완전히 구현하지는 못했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이런 모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역시 튀는 민족이 하나가 보인다 — 그건 바로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희한하게도 일반 병사가 208명(29.4%)인데 상급간부가 323명(45.7%), 하급간부가 176명(24.9%)이나 된다. 간부가 이토록 높은 비중(70.6%)을 차지하는 다른 민족은 없다. (극소수에 불과한 그리스인은 예외로 하자.) 스탈린이 유대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설적인 이반 체르냐홉스키(Иван Д. Черняховский)처럼 당성이 강하고 잘 교육 받은 유대인들이 승승장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나저나 역시 당시에는 고려인들이 민족 자치를 쟁취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이런 기록에서 따로 분류되어 관리되지 못한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홈지기는 한 때 소련이라면 '고려인' 항목을 따로 만들어 공식 문서에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을까 기대를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분명 고려인(корё-сарам, '고려사람')들이 일부 참전한 것은 맞지만, 도대체 어느 민족 항목 통계에 섞여 있었을까? 단순히 '기타'에 들어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중앙아시아 인종들에 슬쩍 끼어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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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2차대전 중 소련군의 민족별 포상내역
Tracked from 길 잃은 어린양의 놀이터 2008/07/08 10:06 삭제채승병님이 쓰신 '독소전쟁기 소련군 야전부대의 민족분포'라 는 글을 읽고 나니 저도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아래의 표는 Народы Кавказа и Красная Армия : 1918-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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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국가라도 해도 민족주의적 성향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힘든 듯 하더군요. 주장이야 이념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다고 하지만, 특히 민족은 인간의 본성과 결부되어 있는거라...
간부 비율이 떨어지기는 해도 미군처럼 노골적인 인종 장벽은 없던게 그나마 낫다고 볼 수 있죠. 고려인 가운데 소비예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고 소총병대대 지휘관까지 역임했던 '민 알렉산드르 빠블로비치(МИН Александр Павлович)' 씨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특히 그러합니다. 본성이야 못 버려도 교육으로 어느 정도의 교화는 가능하다는 선에 만족해야할 것입니다.
인종이 엄청 다양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이반 체르냐홉스키'를 클릭하면 'Награды'라는 게 있던데 어떤 겁니까?
'서훈'이란 뜻입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윽, 이런 치명적인 오타가 있었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핀란드인이 당당히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의외로군요. 전원 숙청되거나 형벌대대로나 보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핀란드군 포로 출신이 아니라, 카렐리야 자치공화국 출신의 핀란드인이 아닐까 합니다. 카렐리야 자치공화국에는 카리알라인 외에도 소수의 핀란드계 주민들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그보다도 '독일인' 항목이 있는데, 이게 소위 볼가 독일계 주민 출신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회유한 친 공산주의 성향의 포로들을 포섭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170만의 볼가 독일인들이 개전 직후 전원 동쪽으로 이주된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카렐리야 핀란드인들도 당연히 군에서 축출되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간만에 그간 묻어두었던 제 3차 하르코프 공방전 번역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글이 준비되는 대로, 너무 오래 찾지 않았던, Periskop Forum에 글을 올리려 합니다.
하여간 러시아어 책을 사실때마다, 제것도 사주십시오.. 비용은 몽땅 제가 대겠습니다.
이제 독일어는 너무나 수월하네요..^^
왜 이렇게 쉬운걸 진작하지 못했는지..T.T
오랜만의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대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군요. 그리고 '독일어가 수월하다'의 경지에 오르셨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b
다행히도 한족은 없군요(응?'ㅅ'a)
시베리아에 당시 한족이 얼마나 살고 있었는지도 궁금해지는군요. 그나마 소련이 국민당 정부에는 우호적이었는데 과연 한족은 얼마나 소련군에 복무했었을까요?
軍史 64호에 실린 부가이의 "대조국전쟁에 참여한 소수민족"이라는 글에서는 고려인들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 러시아인 이름으로 성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고 언급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특히 고려인이 얼마나 전쟁에 참여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글이 있었군요, 좋은 정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족구성도 민족구성이지만 전체적인 병:하급간부:상급간부의 비율에도 눈길이 가는군요.
만약 저 통계의 기준이 일반적인 병:하사관:장교에 준한다면 전차군이라서 그렇다 쳐도 장교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 궁금해집니다. 장교 한명당 정치위원 한명씩 세트로 붙어서 그럴성 싶지도 않고요.. ^^
하급간부(하사관)이 사실 '상병'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그 수가 많은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상급간부(장교급)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요. 정치위원들 외에도 아마 기술사관들이 많아서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세한 것은 퇴근하고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평상시 교육 수준의 차이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그랬겠죠. 유대인이 서방에서 특정 직군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질 좋은 교육을 시킨 스토리들이야 예전부터 어렵지 않게 접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뭔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소련 사회에서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나름의 입지를 다졌는지 개인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 신앙도 버려가며 신 체제를 추종했는지 등 이들의 생활에 대해 조사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러시아도 기록을 남기는 수준이랄까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느낌니다. 러시아에는 기원전 233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연대기를 작성하는 책임을 맡은 전담 관변 연구원도 있다고 하더군요..
유대인의 지휘관 및 고급 간부 숫자는 확실히 인상적이네요. 6명에 불과하지만 핀란드인 고급 간부들도 호프님 말씀처럼 눈길을 끄는 숫자인듯...
대상에 대한 식별 및 구분에 의한 산술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은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중앙 권력을 강화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나.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예로 들며 한민족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는 그런 선조를 둔 후손들이 맞나 싶을 때가 많죠. 특히 군사정권 시기에 활동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에게는 증거로 불리하게 작용될 우려가 있어서 비망록 등을 남기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활약상(?) 등은 '머릿속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는데, 최근 휘발되어 없어지기 전에 각자 기록으로 남겨놓고 교차검증하자는 시도도 있는 듯 합니다.
둘.
선친의 유품을 정리하는 작업이 더운 날씨 탓도 있고 더디기만 한데 일흔 평생 대청소를 해보신 일이 없으신 듯한 그 엄청난 분량 앞에서는 가끔 멍~해집니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서로 격려문을 나눠쓰신 공책 등을 보면 미소가 떠오르기도 하고... 제 나이와 비슷하셨을 시절의 일지를 보면 시대상이 조금이나마 읽히는 느낌도 들고 그렇습니다. 서재 쪽은 아직 제대로 손도 못대고 있는데, 1946년 발행된 외솔 최현배의 한글론 등은 챙겨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친과 저의 관심사가 어긋나는 분야의, 발행년도가 너무 오래된 책들은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고민도 되고... 전혀 원하지 않았던 사건을 계기로 어울리지 않게 기록물의 의미에 대해서 가끔 고민하는 요즘입니다(한숨).
어서 러시아어를 익히셔서 모스크바 출장도 다녀 오시고 그러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아니, 이제는 세 자제분을 챙기셔야하니 좀 더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아지시길 빌어야 하는 것일까요.^^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다민족국가이든, 자칭 단일민족국가이든 민족 정책은 참으로 골치아픈 문제죠. 다만, 승병님의 이번 글에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지적해보자면,,
1) 민족 링크를 위키피디어로 거신 것은 위키피디어가 해당 분야 정보를 찾는데 안내자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좋습니다만, 하필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판으로 거셨는지 ;;;; 물론 러시아어판에서 영어판으로 링크가 다 걸려 있긴 합니다만, 러시아어보다 영어에 그나마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좀 번거롭게 느꼅니다.
2) 물론 도표는 아마 참고하신 자료에서 가지고 오신 듯 한데, 저 도표 자체에 대한 아쉬운 점이니 승병님이나 다른 분들이 오해는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승병님도 분명 저 자료의 한계를 미리 언급하셨기 때문입니다)
5근위전차군 내 비율이 당시 전체 소련군 내 비율은 말할 것도 없고, 더 정확하게 따지자면 당시 소련 인구 (그것도 독일군이 점령하지 못한 지역의 인구) 내에서 전체 소련군에서 비율, 거기서 다시 5근위전차군의 %가 나오면 보다 의미있는 자료가 되었을텐데 그 부분이 아쉽군요(물론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그 작업이 상당히 방대한 작업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0-;;) 솔직히 저 자료만 가지고는 당시 소련군 내 민족 분포도에 대해서는 평가하기 좀 곤란해보입니다.
러시아어 위키피디아를 건 것은 제가 나중에 다른 자료 정리에도 쓰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되도록 문서의 원어에 맞게 링크를 걸어 놓는다는 정리 원칙이 있어서 말이죠. 그리고 러시아어에 좀 더 익숙해지려는 공부 목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방문객 여러분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군요. 양해 바랍니다.^^
3년만에 포럼에 글올리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요즘처럼 공부와 책읽는게 재밌었던 시절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또 있었나 싶네요..
열심히 공부해서, 홈지기님과 어린양님, 남창우 교수님과의 까마득한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제가 여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포럼에 이토록 노력을 기울여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글을 2개 올렸는데,,ㅋㅋㅋ..
포럼에는 요즘 새롭게 올라오는 글이 없어서,,
방문객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아쉽네요..
어쨋든..
이제 제가 나서서..
호랑이(홈지기님, 어린양님, 남교수님 등등등) 없는 곳에서,,
제가 왕노릇 해야 겠습니다.^^
포럼은 제게 맡기시고, 홈지기님께서는 열심히..
수준 높은 글로,,
대한민국 지식인 전체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해주십시오..
저는 앞으로 포럼에 1000개의 글을 써야 겠습니다...
수준낮은 저라도 글을 써야지.
잘못해서 사이트 폐쇄라도 되면...
대한민국 문화사적으로도 큰 손실 아니겠습니까?
방문객들이 좀 찾아서,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좀 북적대는 곳이 되도록...
가급적 널리 선전해야 겠습니다.^^
권 선생님도 바쁘실텐데 그 정도의 노력을 해주신다면 포럼이 다시 들불처럼 열기에 들뜰 날도 금방 찾아올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다시금 감사드립니다.^^